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인터뷰 <문화일보> > News Insight | (사)국가미래연구원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인터뷰 <문화일보> 본문듣기
기사입력 2018-02-15 01:27:14
김광두 | 서강대학교 석좌교수,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조회1630
문화일보는 지난 2월9일자에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물론 한국경제의 전망에 대해 의미 있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 그 인터뷰 내용을 옮겨 싣는다. <편집자>
“노동개혁, 독일식 ‘노사통합주의’가 바람직,
사람중심경제에서 미국식 자유 원칙기반 해고제는 안 맞아“
“최저임금 인상 취지 좋았지만 혼란, 로드맵 다시 생각해야”
“경제 체력 키우는 구조조정 … 체질개선 규제혁파·4대개혁 추진”
국민경제자문회의(자문회의)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한 중요 정책의 수립에 관해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한 목적으로(헌법 제93조) 설립된 헌법기관이다.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부 석좌교수가 자문회의 부의장(의장은 대통령)으로 임명되던 날 문재인 대통령은 “저와 다른 시각에서 경제를 바라보는 분이지만, 합리적 보수와 개혁적 진보가 손잡는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김 부의장이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에 관한 한‘중심축’ 역할을 하고, 대통령께도 편하게 직언을 하는 분이라고 했다. 지난 5일 오후 문화일보와 파워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김 부의장은
- 3% 경제성장의 허실,
- 최저임금의 역설,
- 일자리 문제,
- 구조 조정과 4대 개혁의 현주소,
- 시장과 정부의 관계,
-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의 관계 등
‘문재인 브랜드’ 정책들을 하나하나 거론하면서 문제점과 대안을 꼼꼼히 지적했다.
보수적 관점에 충실한 이 경제학자는 진보 정권 내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쓴 소리’라고 규정한다..
그게 문 대통령이 ‘나와 다른 시각에서 경제를 바라보는’ 자신을 자문회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임명한 뜻을 받들고 궁극적으로는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자문회의가 내놓은 화두는 ‘사람중심경제’다. 경제가 어려운 시기인데, 사람중심경제가 경제성장과 어떻게 연결이 되나.
“사람중심경제에는 두 요소가 있다.
그게 문 대통령이 ‘나와 다른 시각에서 경제를 바라보는’ 자신을 자문회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임명한 뜻을 받들고 궁극적으로는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자문회의가 내놓은 화두는 ‘사람중심경제’다. 경제가 어려운 시기인데, 사람중심경제가 경제성장과 어떻게 연결이 되나.
“사람중심경제에는 두 요소가 있다.
- 하나는 삶의 기본권을 어느 정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
- 다른 하나는 사람의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 처음 것은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게끔 해줘야 하지 않느냐 하는 개념이고,
- 두 번째 것은 개인의 능력이 올라가야 기업도 경쟁력이 생기고 산업도 경쟁력이 생기는 거기 때문에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개념이다.
사람중심경제는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경제 패러다임이라고 볼 수 있다.”
―지표상으로는 한국 경제가 좋아질 거라는 관측이 있다.
“경제를 ‘지금 3% 성장하니 좋다’ 이런 식으로만 보면 안 된다. 미래를 볼 때는 경제의 체력 강화와 체질 개선, 이 두 가지를 봐야 한다.
―지표상으로는 한국 경제가 좋아질 거라는 관측이 있다.
“경제를 ‘지금 3% 성장하니 좋다’ 이런 식으로만 보면 안 된다. 미래를 볼 때는 경제의 체력 강화와 체질 개선, 이 두 가지를 봐야 한다.
체력 강화라는 건 곧 구조 조정을 통한 산업 경쟁력 강화인데 정부 내에 거기에 대한 고민이 안 보인다. 현시점에서는 별 적극적인 움직임이 안 보인다. 좀 답답하다.
또 체질 개선은 유연성을 만드는 거고 그러려면 4대 개혁과 규제 개혁을 해야 하는데 이런 움직임이 매우 약해서 우리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중심경제를 통해 사람의 능력을 키우고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제 질서를 만든다는 것도 경제의 체력 강화와 체질 개선을 위한 거다.”
―경제의 체력 강화와 체질 개선이 안 되면 3% 경제성장을 해봐야 큰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성장의 구조를 봐야 한다. 3% 성장은 되는데 왜 일자리가 안 늘어나느냐.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 아닌가. 뭘 갖고 성장했느냐를 봐야지. 반도체, 석유화학, 정유 등이다. 이것들은 일자리 효과가 매우 제한된 업종이다. 경제 전체로 봐서 우리가 원하는 건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업종이 잘되는 것 아니냐.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는 업종은 어렵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못 하는 업종은 잘돼서 3% 성장한다면 일반 국민의 삶은 ‘좋아진 게 뭐 있나’ 이렇게 될 수가 있다. 지금 세계 경제 전체가 좋다. 무역 환경도 좋고. 그 덕을 우리가 본 거다. 세계경제성장률이 3%가 넘는다. 세계에 비하면 우리 성장률이 낮은 수준인 거지. 즉 우리 산업 전체가 강해져서 3% 성장했다, 이렇게 생각할 수는 없다. 반도체 부문의 성장에 따른 착시도 있고. 무엇보다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 그런 성장이 갖는 의미는 상당히 제한돼 있다.”
―4대 개혁은 지금 어떤가. 별 움직임이 있나.
“4대 개혁 가운데 노동 개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세 가지 흐름이 있다. 첫째는 ‘근로보호주의’인데 ‘포괄적 판례 중심 해고제’라고 한다. 또 독일식의 ‘노사통합주의’가 있는데 ‘구체적 법규 기반 해고제’라는 거다. 마지막으로 미국식의 ‘시장자유주의’인데 이른바 ‘자유 원칙 기반 해고제’다. 사람중심경제에서는 사람을 함부로 자르는 자유 원칙 기반 해고제는 반대한다. 노사 간에 입장을 존중하는 쪽으로 간다는 관점에서 보면 독일식 이게 바람직한 거 같다.”
―아무래도 보수 정치권은 미국식의 ‘쉬운 해고’ 이쪽에 가까운 것 같고, 진보 진영은 근로보호주의에 가까울 것 같다. 현 정부와 민주당은 어디쯤 있나.
“여권이 노동정책을 갖고 지금까지 번번한 공개토론 한번 해 본 일이 없었다. 이 정부가 노동정책을 어떻게 할 거냐 토론한 적이 있나. 그러니 나도 정부와 여권이 무슨 입장인지 잘 모르겠다. 노동 개혁을 포함해 4대 개혁이라는 것, 그동안 논의된 게 별로 없다. 이 정부에서 노동 개혁의 액션이 보이는 거 같지 않다. 노동·공공·금융·교육 등 4대 개혁에 대한 논의 자체가 별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건 문제가 있다.”
―자문회의의 최우선적 목표는 뭔가.
“물론 일자리다. 사람중심경제 패러다임의 핵심 성과 요인은 일자리다. 대통령께도 사람중심경제 성과의 핵심 지표는 소득과 일자리라고 보고했다. 소득은 어차피 일자리에 달렸다. 일자리가 있어야 소득이 생기니까.”
―문제는 문 대통령이 집무실에 일자리 현황판을 설치해서 일일 체크까지 하는데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자리는 지표상 현상유지는 하고 있다. 문제는 일자리 구성이 좋지 않다는 거다. 일자리가 늘어나는 연령대는 60대인데 그중에서도 남성보다 여성이 많다. 대개 식당·숙박업소 같은 일인데, 파트 타이머로 봐야 할 거다. 일주일에 한 시간 일하면 취업자로 들어가거든. 60대 아줌마의 일자리가 많이 는다는 건 일주일에 한 시간만 일하면 되는 일이 많이 생겼다는 거니까 일자리의 구조가 별로 좋지 않은 거다. 60대 아줌마가 1등, 60대 아저씨가 2등, 20대는 절대적으로 마이너스, 30대도 그렇고. 그런 현상이기 때문에 구조는 안 좋다. 양질의 일자리는 별로다, 그렇게 볼 수 있다.”
―양질의 일자리가 감소하고 파트타임 위주의 일자리만 늘어나는 근본 원인이 뭘까.
“일자리가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느냐, 서비스 업종이다. 서비스업에서 일자리 성적이 아주 나쁘다. 서비스산업이 발달해야 하고 그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 서비스 업종이 전체 고용의 40% 이상을 차지하는데 우리 경우는 25% 수준이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10년이 넘도록 국회에 계류 중인 것도 문제다.”
―여론조사를 보니 소상공인 중에 일자리 안정기금을 신청할 생각이 없다는 응답이 절반이나 된다.
“정책을 입안할 때 정책의 대상에 대해 사전에 좀 더 연구해야 한다. 소상공인들이 안정기금을 신청하지 않는 이유는 4대 보험에 대한 부담 때문인데 이는 종업원들의 기피 심리와도 물려 있다. 종업원들은 대체로 생활이 어려운 집 자녀들인데 이들이 4대 보험에 들면 소득이 노출되고 그러면 부모가 기초생계비를 못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럴 바에는 4대 보험에 안 들겠다는 거다. 이런 복잡한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노동시간도 단순하지 않고 업종별로도 복잡하다. 이런 것들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연구를 못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불만이 많고 이게 정치적으로도 잘못하면 좋지 않은 여론이 나올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아무리 좋은 정책도 현장을 모르면 안 된다, 현장을 알고 해야 한다는 거다. 정부의 사전 현장 연구, 이게 부족했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최저임금도 그렇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탈원전, 비트코인 대책 등 정부가 사사건건 개입과 규제 위주로 하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여권은 정부가 시장을 끌고가겠다는 생각이 강한 것 아니냐.
“시장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비치는 건 이 정부의 표현 방법이 조금 서툴기 때문에 그렇다. 모든 걸 정부가 다 한다면 이건 시장경제가 아니다. 지시경제인 거지. 시장에서 기본적인 건 하되 시장이 잘 못하는 거 그걸 정부가 한다고 봐야 한다.”
―예를 하나 들겠다. 더불어민주당이 개헌안을 만들면서 헌법 제119조 2항,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을 손보겠다고 한다. ‘국가가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문구를 ‘규제와 조정을 한다’로 수정하기로 했다. 시장이 우선이고 국가는 보조라는 ‘국가 보충성’의 원리가 무너지는 것 아닌가.
“민주당이 그렇게 한다면 그건 바람직하진 않다. 시장경제의 흐름과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볼 때 시장이 기본이고 정부는 거기서 잘못된 거를 보정해주는 식으로 가는 게 맞는다. 유럽도 그렇고 시장의 자유와 창의는 보장하되 거기서 나오는 이익을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고 보는 거다. 시장경제를 (민주당이 제119조 2항을 손보겠다는)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건 세계 경제 질서를 봤을 때 바람직하지 않다. 그건 세계 경제의 흐름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다시 강조하지만 시장의 자유와 민간의 창의가 기본이고 정부는 보조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가 원칙 없이 개입하면, 잘못하면 남미 꼴이 날 수도 있다. 세계 경제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정부가 그렇게 하면 우리만 손해 보는 결과가 온다.”
―최근 정부와 여권에서 혁신성장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간 소득주도성장만 얘기하다 그나마 다행인데, 과연 혁신성장에 대한 의지가 있는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
“혁신성장을 해야 한다는 건 이 정부 내에 공유된 인식이라고 본다. 실은 지난해 대선 공약 때 이미 다 밝힌 얘기다. ‘사람중심경제’ 개념 속에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성장 이 세 개가 다 들어 있다. 단지 이 정부가 출범할 때 생활이 어려운 분들에 대한 배려를 먼저 하다 보니까 소득주도성장만 강조됐던 거고 혁신성장이 뒤에 나온 거지. 이젠 같이 안 하면 안 된다는 컨센서스가 생긴 거다.”
―부의장 님은 일자리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걸로 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의 경제 관련 주요 직책을 맡은 분 중에 철학이 상당히 다른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건 조금 과장된 얘기다. 기본적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건 기업이라는 게 문재인 정부 내에서는 공유됐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경제 참모들이 기업과 관계가 좋지 않다고 인식되는 것은 기업인과 자주 안 만나니까 그런 느낌이 있는 거고, 적폐청산 과정에서 정경유착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게 강조되다 보니 그런 거 같다. ‘기업이 우리 경제 잘되는 데 중요하다’는 인식은 같다. 그건 내가 확실히 얘기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 경제 참모들 사이에 슘페터 주의자와 네오 케인지언의 싸움이 있지 않았나. 그걸 항간에서는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의 싸움이라고 본 건데.
“주변에서 만들어낸 말이라고 본다. 같이 가야 한다. 혁신과 공정. 공정하지 않으면 혁신하기 어렵다.”
―사실 소득주도성장론만 해도 기업에 부담이 되는 현실 아닌가. 당장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부작용이 있고.
“소득주도성장이란 건 원래 임금주도성장의 다른 표현이다. 임금주도성장에는 기본 가정이 있다. 영어로는 ‘wage―efficiency hypothesis’, 즉 임금이 오르면 노동생산성도 오른다는 가정이다. 임금을 올려줘도 생산성이 오르니까 기업 부담이 없다는 게 기본 프레임이다. 그런데 이 정부가 최저임금도 큰 폭으로 인상하고, 노동시간도 단축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이렇게 노동과 관련해 한꺼번에 많이 쏟아내니까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 이전에 부담으로 느끼게 되는 거다.”
―최저임금 정책은 현 단계에서 실패했다고 봐야 하나.
“아직 실패로 규정하기는 이르다. 올해 상반기가 지나봐야 안다. 아직 시작도 안 한 거나 다름없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는 취지는 옳았다. 소득 양극화 완화와 기본 생활권 보장이니까. 그 전제는 기업이 부담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 정책을 잘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모든 정책은 정책의 대상이 잘 알아야 한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 대상인 기업들이 먼저 두려워하게 됐다. ‘어, 큰일 났네’ 이런 정서적인 수용이 먼저 생긴 것 같다. 둘째는 정부가 보조해준다는 게 영원히 갈 순 없는 거 아닌가. 정부도 3년 정도 생각했고 3년 뒤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정부 생각은 3년 동안 노동생산성도 올라가고 그걸로 소비도 늘어 경기가 좋아지면 3년 뒤부터 선순환에 돌입한다 이렇게 생각한 거다. 그런데 이게 현장에서 먹혀들지 못했다. 현장에서 정책을 안 받아들이면 의미가 없다. 영세 업종이라는 게 얼마나 다양한가. 업종에 따라 편차가 큰데 생산성이 올라갈 수 없는 곳이 많다. 편의점 직원이 어떻게 생산성을 올리나. 최저임금 인상의 본래 취지는 기본 생존권을 보장해주고 일자리는 유지될 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장은 사람을 줄이겠다는 분위기가 많았다.”
―최저임금 문제의 출구전략, 어떻게 가야 하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에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분위기가 여당에서도 나오고 있고, 정부에서도 나오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조만간 최저임금 속도 조절의 구체적인 움직임이 나올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시급 1만 원 인상을 2022년으로 늦추는 게 좋다. 원래 2020년인데 속도를 좀 늦춰야 한다.”
―부의장님은 평소 “경제의 생존 여부는 혁신에 달려 있고, 혁신은 얼마나 유연한 경제 체질이 뒷받침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셨다. 유연한 경제 체질의 조건은 무엇인가.
“의사결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런 경제 질서다. 최대 장애 요인은 역시 규제다. 규제, 이걸 큰 폭으로 완화해서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게 첫째다. 둘째는 이걸 관리한다고 하는 관료의 문제다. 관료가 뭘 모르면서 계속 간섭하면 되는 게 없거든. 또 기술이라는 것이 여러 부처에 걸려 있기 때문에 부처 간 협조가 필수적이다. 정부 내 칸막이 행정이 상존하는데 이걸 해결해줘야 한다. 규제와 칸막이 행정을 없애는 것, 이것이 유연한 경제 체질의 핵심이 된다.”
―여태까지 모든 정부가 규제 혁파를 얘기했는데 왜 다 실패했을까.
“정치권과 관료 사회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그 뒤 기득권층이 문제다. 규제를 풀면 손해 보는 사람과 집단이 있다. 이들이 정치인과 관료라는 국민의 대리인을 활용한다. 공무원들의 자세도 문제다. 똑같은 법이라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되는데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해석한다. 공무원들이 법과 제도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노력을 하면 지금 규제의 30%가 해결된다는 연구 보고서도 나와 있다. 그런데 공무원이 그걸 못 한다. 책임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감사원의 정책 감사도 공무원이 몸을 사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근본적으로는 정책 감사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법인세를 대폭 인하했다. 거꾸로 우리는 인상했다. 미국에서는 해외 진출 기업이 국내로 돌아오는 리쇼어링이 이뤄지지만, 우리는 전 세계적인 ‘택스 컴피티션’에서 뒤질 수밖에 없고 결국 오프쇼어링으로 가는 거 아닌가.
“법인세 인상이 우리 기업을 해외로 내모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선 해외로 나갈 제도적 환경이 될 수 있다. 좀 걱정이 된다.”
―자문회의 내에 경제정책회의라는 게 있다고 들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내 핵심적인 회의체다. 이게 잘 운영되면 자문회의가 제대로 기능하는 거고 제대로 운영이 안 되면 별 볼 일 없는 거다. 대통령도 이게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고 계신다. 정부 주요 정책이 이 정부의 패러다임과 잘 맞는지 모니터링하고 국정 운영의 기조에 맞게 운영되도록 토론해서 바람직한 방향을 도출해내는 게 경제정책회의의 목적이다. 원칙적으로는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하게 돼 있다.”
―경제정책회의 참석 대상은.
“청와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 정책실장, 경제보좌관이 참여하고 내각에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고용노동부 장관이 참여한다. 자문회의 민간위원 중 두 분이 함께 하고 해당 이슈에 따라 필요한 장관이 같이 하자 할 수 있다.”
―그렇게 중요한데 왜 아직 첫 회의도 열지 못했나.
“자문회의 구성이 워낙 늦어졌다. 지역별·성별 구성 원칙을 지키기 어려워서 그랬다. 자문회의 첫 모임을 연 게 지난해 12월 말이다. 원래는 경제정책회의를 대통령 주재로 2월에 한 번 할까 했는데 타이밍이 안 맞는다. 평창동계올림픽도 있고 설 연휴도 있어서. 오는 3월에는 한 번 열 생각이다.”
―첫 경제정책회의의 아이템은 뭔가.
“일자리가 되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는 국회 내 여야 구성으로 볼 때 소수정권이다. 정부 정책이 대부분 입법과정으로 이뤄진다.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해야 국정 운영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까.
“협치는 불가피하다. 더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문재인 정부에 호의적인 야권에 각료를 나눠주는 방안이 어떤지….”
―연정을 말하나.
“그렇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때부터 연정을 했다면 좋았을 걸 생각해봤다. 그랬다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까지 함께 했을 수도 있는 서 민주당이 대승한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여권과 야권이) 반반이라는데 어떻게 3분의 2를 확보하겠나.”
―자문회의 향후 계획은.
“설 후에 유럽에 출장을 간다. 싱크탱크 네트워킹을 할 생각이다. 인터내셔널 어드바이저 그룹을 만들어 모시려고 한다. 세계를 알고 얘기를 해야지.”
―부의장 님이 문재인 정부와 대통령에 대해 궁극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쓴 소리다. 대통령도 말했듯 그분과 내가 생각이 다르다. 생각이 다른 사람의 역할은 ‘나는 당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걸 얘기하는 거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쓴 소리지. ‘이건 잘못됐다’ 얘기하는 게 내가 할 일 아닐까. 이분(대통령)은 쓴 소리를 듣는 자세는 돼 있다.”
―쓴 소리를 하는데도 계속 반영이 안 된다면.
“내가 옳은 얘기를 했는데 ‘의미 없다’ 그런 반응을 보이면 그럼 내 존재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봐야겠지. 의견이 달라도 필요하다고 해서 여기(자문회의)에 온 거 아닌가. 의견이 다른 걸 전혀 못 받아들이면 나는 과연 뭐냐를 고민해 봐야지.”
<인터뷰 = 허민 문화일보 선임기자(정치부)>
<끝>
―경제의 체력 강화와 체질 개선이 안 되면 3% 경제성장을 해봐야 큰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성장의 구조를 봐야 한다. 3% 성장은 되는데 왜 일자리가 안 늘어나느냐.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 아닌가. 뭘 갖고 성장했느냐를 봐야지. 반도체, 석유화학, 정유 등이다. 이것들은 일자리 효과가 매우 제한된 업종이다. 경제 전체로 봐서 우리가 원하는 건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업종이 잘되는 것 아니냐.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는 업종은 어렵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못 하는 업종은 잘돼서 3% 성장한다면 일반 국민의 삶은 ‘좋아진 게 뭐 있나’ 이렇게 될 수가 있다. 지금 세계 경제 전체가 좋다. 무역 환경도 좋고. 그 덕을 우리가 본 거다. 세계경제성장률이 3%가 넘는다. 세계에 비하면 우리 성장률이 낮은 수준인 거지. 즉 우리 산업 전체가 강해져서 3% 성장했다, 이렇게 생각할 수는 없다. 반도체 부문의 성장에 따른 착시도 있고. 무엇보다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 그런 성장이 갖는 의미는 상당히 제한돼 있다.”
―4대 개혁은 지금 어떤가. 별 움직임이 있나.
“4대 개혁 가운데 노동 개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세 가지 흐름이 있다. 첫째는 ‘근로보호주의’인데 ‘포괄적 판례 중심 해고제’라고 한다. 또 독일식의 ‘노사통합주의’가 있는데 ‘구체적 법규 기반 해고제’라는 거다. 마지막으로 미국식의 ‘시장자유주의’인데 이른바 ‘자유 원칙 기반 해고제’다. 사람중심경제에서는 사람을 함부로 자르는 자유 원칙 기반 해고제는 반대한다. 노사 간에 입장을 존중하는 쪽으로 간다는 관점에서 보면 독일식 이게 바람직한 거 같다.”
―아무래도 보수 정치권은 미국식의 ‘쉬운 해고’ 이쪽에 가까운 것 같고, 진보 진영은 근로보호주의에 가까울 것 같다. 현 정부와 민주당은 어디쯤 있나.
“여권이 노동정책을 갖고 지금까지 번번한 공개토론 한번 해 본 일이 없었다. 이 정부가 노동정책을 어떻게 할 거냐 토론한 적이 있나. 그러니 나도 정부와 여권이 무슨 입장인지 잘 모르겠다. 노동 개혁을 포함해 4대 개혁이라는 것, 그동안 논의된 게 별로 없다. 이 정부에서 노동 개혁의 액션이 보이는 거 같지 않다. 노동·공공·금융·교육 등 4대 개혁에 대한 논의 자체가 별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건 문제가 있다.”
―자문회의의 최우선적 목표는 뭔가.
“물론 일자리다. 사람중심경제 패러다임의 핵심 성과 요인은 일자리다. 대통령께도 사람중심경제 성과의 핵심 지표는 소득과 일자리라고 보고했다. 소득은 어차피 일자리에 달렸다. 일자리가 있어야 소득이 생기니까.”
―문제는 문 대통령이 집무실에 일자리 현황판을 설치해서 일일 체크까지 하는데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자리는 지표상 현상유지는 하고 있다. 문제는 일자리 구성이 좋지 않다는 거다. 일자리가 늘어나는 연령대는 60대인데 그중에서도 남성보다 여성이 많다. 대개 식당·숙박업소 같은 일인데, 파트 타이머로 봐야 할 거다. 일주일에 한 시간 일하면 취업자로 들어가거든. 60대 아줌마의 일자리가 많이 는다는 건 일주일에 한 시간만 일하면 되는 일이 많이 생겼다는 거니까 일자리의 구조가 별로 좋지 않은 거다. 60대 아줌마가 1등, 60대 아저씨가 2등, 20대는 절대적으로 마이너스, 30대도 그렇고. 그런 현상이기 때문에 구조는 안 좋다. 양질의 일자리는 별로다, 그렇게 볼 수 있다.”
―양질의 일자리가 감소하고 파트타임 위주의 일자리만 늘어나는 근본 원인이 뭘까.
“일자리가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느냐, 서비스 업종이다. 서비스업에서 일자리 성적이 아주 나쁘다. 서비스산업이 발달해야 하고 그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 서비스 업종이 전체 고용의 40% 이상을 차지하는데 우리 경우는 25% 수준이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10년이 넘도록 국회에 계류 중인 것도 문제다.”
―여론조사를 보니 소상공인 중에 일자리 안정기금을 신청할 생각이 없다는 응답이 절반이나 된다.
“정책을 입안할 때 정책의 대상에 대해 사전에 좀 더 연구해야 한다. 소상공인들이 안정기금을 신청하지 않는 이유는 4대 보험에 대한 부담 때문인데 이는 종업원들의 기피 심리와도 물려 있다. 종업원들은 대체로 생활이 어려운 집 자녀들인데 이들이 4대 보험에 들면 소득이 노출되고 그러면 부모가 기초생계비를 못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럴 바에는 4대 보험에 안 들겠다는 거다. 이런 복잡한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노동시간도 단순하지 않고 업종별로도 복잡하다. 이런 것들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연구를 못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불만이 많고 이게 정치적으로도 잘못하면 좋지 않은 여론이 나올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아무리 좋은 정책도 현장을 모르면 안 된다, 현장을 알고 해야 한다는 거다. 정부의 사전 현장 연구, 이게 부족했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최저임금도 그렇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탈원전, 비트코인 대책 등 정부가 사사건건 개입과 규제 위주로 하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여권은 정부가 시장을 끌고가겠다는 생각이 강한 것 아니냐.
“시장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비치는 건 이 정부의 표현 방법이 조금 서툴기 때문에 그렇다. 모든 걸 정부가 다 한다면 이건 시장경제가 아니다. 지시경제인 거지. 시장에서 기본적인 건 하되 시장이 잘 못하는 거 그걸 정부가 한다고 봐야 한다.”
―예를 하나 들겠다. 더불어민주당이 개헌안을 만들면서 헌법 제119조 2항,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을 손보겠다고 한다. ‘국가가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문구를 ‘규제와 조정을 한다’로 수정하기로 했다. 시장이 우선이고 국가는 보조라는 ‘국가 보충성’의 원리가 무너지는 것 아닌가.
“민주당이 그렇게 한다면 그건 바람직하진 않다. 시장경제의 흐름과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볼 때 시장이 기본이고 정부는 거기서 잘못된 거를 보정해주는 식으로 가는 게 맞는다. 유럽도 그렇고 시장의 자유와 창의는 보장하되 거기서 나오는 이익을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고 보는 거다. 시장경제를 (민주당이 제119조 2항을 손보겠다는)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건 세계 경제 질서를 봤을 때 바람직하지 않다. 그건 세계 경제의 흐름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다시 강조하지만 시장의 자유와 민간의 창의가 기본이고 정부는 보조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가 원칙 없이 개입하면, 잘못하면 남미 꼴이 날 수도 있다. 세계 경제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정부가 그렇게 하면 우리만 손해 보는 결과가 온다.”
―최근 정부와 여권에서 혁신성장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간 소득주도성장만 얘기하다 그나마 다행인데, 과연 혁신성장에 대한 의지가 있는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
“혁신성장을 해야 한다는 건 이 정부 내에 공유된 인식이라고 본다. 실은 지난해 대선 공약 때 이미 다 밝힌 얘기다. ‘사람중심경제’ 개념 속에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성장 이 세 개가 다 들어 있다. 단지 이 정부가 출범할 때 생활이 어려운 분들에 대한 배려를 먼저 하다 보니까 소득주도성장만 강조됐던 거고 혁신성장이 뒤에 나온 거지. 이젠 같이 안 하면 안 된다는 컨센서스가 생긴 거다.”
―부의장 님은 일자리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걸로 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의 경제 관련 주요 직책을 맡은 분 중에 철학이 상당히 다른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건 조금 과장된 얘기다. 기본적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건 기업이라는 게 문재인 정부 내에서는 공유됐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경제 참모들이 기업과 관계가 좋지 않다고 인식되는 것은 기업인과 자주 안 만나니까 그런 느낌이 있는 거고, 적폐청산 과정에서 정경유착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게 강조되다 보니 그런 거 같다. ‘기업이 우리 경제 잘되는 데 중요하다’는 인식은 같다. 그건 내가 확실히 얘기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 경제 참모들 사이에 슘페터 주의자와 네오 케인지언의 싸움이 있지 않았나. 그걸 항간에서는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의 싸움이라고 본 건데.
“주변에서 만들어낸 말이라고 본다. 같이 가야 한다. 혁신과 공정. 공정하지 않으면 혁신하기 어렵다.”
―사실 소득주도성장론만 해도 기업에 부담이 되는 현실 아닌가. 당장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부작용이 있고.
“소득주도성장이란 건 원래 임금주도성장의 다른 표현이다. 임금주도성장에는 기본 가정이 있다. 영어로는 ‘wage―efficiency hypothesis’, 즉 임금이 오르면 노동생산성도 오른다는 가정이다. 임금을 올려줘도 생산성이 오르니까 기업 부담이 없다는 게 기본 프레임이다. 그런데 이 정부가 최저임금도 큰 폭으로 인상하고, 노동시간도 단축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이렇게 노동과 관련해 한꺼번에 많이 쏟아내니까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 이전에 부담으로 느끼게 되는 거다.”
―최저임금 정책은 현 단계에서 실패했다고 봐야 하나.
“아직 실패로 규정하기는 이르다. 올해 상반기가 지나봐야 안다. 아직 시작도 안 한 거나 다름없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는 취지는 옳았다. 소득 양극화 완화와 기본 생활권 보장이니까. 그 전제는 기업이 부담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 정책을 잘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모든 정책은 정책의 대상이 잘 알아야 한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 대상인 기업들이 먼저 두려워하게 됐다. ‘어, 큰일 났네’ 이런 정서적인 수용이 먼저 생긴 것 같다. 둘째는 정부가 보조해준다는 게 영원히 갈 순 없는 거 아닌가. 정부도 3년 정도 생각했고 3년 뒤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정부 생각은 3년 동안 노동생산성도 올라가고 그걸로 소비도 늘어 경기가 좋아지면 3년 뒤부터 선순환에 돌입한다 이렇게 생각한 거다. 그런데 이게 현장에서 먹혀들지 못했다. 현장에서 정책을 안 받아들이면 의미가 없다. 영세 업종이라는 게 얼마나 다양한가. 업종에 따라 편차가 큰데 생산성이 올라갈 수 없는 곳이 많다. 편의점 직원이 어떻게 생산성을 올리나. 최저임금 인상의 본래 취지는 기본 생존권을 보장해주고 일자리는 유지될 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장은 사람을 줄이겠다는 분위기가 많았다.”
―최저임금 문제의 출구전략, 어떻게 가야 하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에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분위기가 여당에서도 나오고 있고, 정부에서도 나오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조만간 최저임금 속도 조절의 구체적인 움직임이 나올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시급 1만 원 인상을 2022년으로 늦추는 게 좋다. 원래 2020년인데 속도를 좀 늦춰야 한다.”
―부의장님은 평소 “경제의 생존 여부는 혁신에 달려 있고, 혁신은 얼마나 유연한 경제 체질이 뒷받침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셨다. 유연한 경제 체질의 조건은 무엇인가.
“의사결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런 경제 질서다. 최대 장애 요인은 역시 규제다. 규제, 이걸 큰 폭으로 완화해서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게 첫째다. 둘째는 이걸 관리한다고 하는 관료의 문제다. 관료가 뭘 모르면서 계속 간섭하면 되는 게 없거든. 또 기술이라는 것이 여러 부처에 걸려 있기 때문에 부처 간 협조가 필수적이다. 정부 내 칸막이 행정이 상존하는데 이걸 해결해줘야 한다. 규제와 칸막이 행정을 없애는 것, 이것이 유연한 경제 체질의 핵심이 된다.”
―여태까지 모든 정부가 규제 혁파를 얘기했는데 왜 다 실패했을까.
“정치권과 관료 사회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그 뒤 기득권층이 문제다. 규제를 풀면 손해 보는 사람과 집단이 있다. 이들이 정치인과 관료라는 국민의 대리인을 활용한다. 공무원들의 자세도 문제다. 똑같은 법이라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되는데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해석한다. 공무원들이 법과 제도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노력을 하면 지금 규제의 30%가 해결된다는 연구 보고서도 나와 있다. 그런데 공무원이 그걸 못 한다. 책임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감사원의 정책 감사도 공무원이 몸을 사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근본적으로는 정책 감사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법인세를 대폭 인하했다. 거꾸로 우리는 인상했다. 미국에서는 해외 진출 기업이 국내로 돌아오는 리쇼어링이 이뤄지지만, 우리는 전 세계적인 ‘택스 컴피티션’에서 뒤질 수밖에 없고 결국 오프쇼어링으로 가는 거 아닌가.
“법인세 인상이 우리 기업을 해외로 내모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선 해외로 나갈 제도적 환경이 될 수 있다. 좀 걱정이 된다.”
―자문회의 내에 경제정책회의라는 게 있다고 들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내 핵심적인 회의체다. 이게 잘 운영되면 자문회의가 제대로 기능하는 거고 제대로 운영이 안 되면 별 볼 일 없는 거다. 대통령도 이게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고 계신다. 정부 주요 정책이 이 정부의 패러다임과 잘 맞는지 모니터링하고 국정 운영의 기조에 맞게 운영되도록 토론해서 바람직한 방향을 도출해내는 게 경제정책회의의 목적이다. 원칙적으로는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하게 돼 있다.”
―경제정책회의 참석 대상은.
“청와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 정책실장, 경제보좌관이 참여하고 내각에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고용노동부 장관이 참여한다. 자문회의 민간위원 중 두 분이 함께 하고 해당 이슈에 따라 필요한 장관이 같이 하자 할 수 있다.”
―그렇게 중요한데 왜 아직 첫 회의도 열지 못했나.
“자문회의 구성이 워낙 늦어졌다. 지역별·성별 구성 원칙을 지키기 어려워서 그랬다. 자문회의 첫 모임을 연 게 지난해 12월 말이다. 원래는 경제정책회의를 대통령 주재로 2월에 한 번 할까 했는데 타이밍이 안 맞는다. 평창동계올림픽도 있고 설 연휴도 있어서. 오는 3월에는 한 번 열 생각이다.”
―첫 경제정책회의의 아이템은 뭔가.
“일자리가 되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는 국회 내 여야 구성으로 볼 때 소수정권이다. 정부 정책이 대부분 입법과정으로 이뤄진다.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해야 국정 운영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까.
“협치는 불가피하다. 더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문재인 정부에 호의적인 야권에 각료를 나눠주는 방안이 어떤지….”
―연정을 말하나.
“그렇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때부터 연정을 했다면 좋았을 걸 생각해봤다. 그랬다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까지 함께 했을 수도 있는 서 민주당이 대승한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여권과 야권이) 반반이라는데 어떻게 3분의 2를 확보하겠나.”
―자문회의 향후 계획은.
“설 후에 유럽에 출장을 간다. 싱크탱크 네트워킹을 할 생각이다. 인터내셔널 어드바이저 그룹을 만들어 모시려고 한다. 세계를 알고 얘기를 해야지.”
―부의장 님이 문재인 정부와 대통령에 대해 궁극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쓴 소리다. 대통령도 말했듯 그분과 내가 생각이 다르다. 생각이 다른 사람의 역할은 ‘나는 당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걸 얘기하는 거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쓴 소리지. ‘이건 잘못됐다’ 얘기하는 게 내가 할 일 아닐까. 이분(대통령)은 쓴 소리를 듣는 자세는 돼 있다.”
―쓴 소리를 하는데도 계속 반영이 안 된다면.
“내가 옳은 얘기를 했는데 ‘의미 없다’ 그런 반응을 보이면 그럼 내 존재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봐야겠지. 의견이 달라도 필요하다고 해서 여기(자문회의)에 온 거 아닌가. 의견이 다른 걸 전혀 못 받아들이면 나는 과연 뭐냐를 고민해 봐야지.”
<인터뷰 = 허민 문화일보 선임기자(정치부)>
<끝>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