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yeang Oh added a new photo.
9 hrs ·
오늘은 신문에서 정말 인상적이면서도 가치있는 기사를 하나 읽었습니다.
북한사회와 사람들의 삶을 연구하는 ‘일본인’, ‘문화인류학자’의 인터뷰입니다.
북한 사회와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내용 자체는 여기 저기서 주워 듣고, 읽은 것들이 있어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였지만, 그 보다 <일본인>, <문화인류학자>의 시점이라는 것이 매우 신선했습니다.
기사가 매우 길지만, 특히 인터뷰의 마지막 부분들이 인상적이고 의미 심장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즉,
<한국에게 북한은 전쟁을 했던 적입니다. 연구자라고 해도, 그 틀을 벗어나기가 어렵고 언동에도 주의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연구는 정부관련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한국의 안전보장에 기여하는 국책 연구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성과는 인정하지만, 북한사회의 전체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불충분 합니다. 저는 이러한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한반도는 냉전의 최전선으로 남북에 대한 평가도 정치에 크게 좌우되어서, 일본 연구자들의 입장도 미묘했었습니다. 북한 체제가 잘 돌아가고 있을 때에는, 체제에 호의적인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솔선해서 공식 정보들을 다루었습니다. 교류도 현지 연구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공식 정보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사회주의의 공적인 제도가 더 이상 기능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으로는 실태를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필드 워크를 주체로 해온 문화인류학은, 이데올로기나 제도에 의존하는 견해로 부터 자유로웠습니다.>
<문화인류학의 시점으로보면, 북한은 사회주의 독재 하의 특수한 사회라고는 한들, 어떤 인간사회에서도 공통되는 생활상도 보여집니다. 상업은 물론이고 뇌물과 절도, 연줄, 계를 통해 돈을 융통하는 서민의 지혜 등이 그렇습니다.>
<지금처럼이라면 북한 체제는 언젠가 무너 질 것입니다. 일본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북한의 붕과나 체제변동(体制移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난민의 수용과 남북의 통합을 위한 지원도 필요합니다. 북한 사람들을 동아시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다양성을 인정해 가면서 공존해 간다. 이를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을 바라 볼 수있는 것, 그리고 인도적인 시점이 필요합니다. 저의 연구가 이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
(한국어 기사)
[북한/ 사람들의 생활은?] (인터뷰)
탈북자들에게 수기 의뢰
비공식 시장과 화려한 졸부도
[문화인류학자] 이토우 아비토 씨
1943년 출생, 동경대학 명예교수. 저서에 ‘진도 한국농촌사회의 민족지(珍島―韓国農村の民族誌: http://amzn.asia/1PsMX55)’,’북한인민의 생활 탈북자의 수기로 읽는 진상(北朝鮮人民の生活--脱北者の手記から読み解く実相:http://amzn.asia/0zBVLio) ’ 등
<핵 미사일의 실험을 반복하고 있는 북한. 평창 올림픽 참가로 긴장은 일시 누그러진것 같지만, 문제는 무엇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 일본에서는, 김정은 조선 노동당 위원장이 지시하는 모습, 용맹한 열병식 등과 같이 ‘이상함(異常性)’만을 강조하는 영상들이 흘러나온다. 문화인류학의 조사이기에 볼 수 있는 보통사람들의 생활은?>
- 북한에서 한국으로 탈출한 탈북자들을 어떻게 조사해서, 사회나 사람들의 생활의 실태를 파악하는 건지요?
‘저는 1970년대 초에 한국 남단의 진주에 살면서, 농촌사회 연구에 착수하였습니다. 문화인류학에서는 일상 생활의 관찰에서 부터 시작해서, 대상으로 삼은 사회에 시간을 걸쳐 깊이 관여합니다. 인터뷰 조사에서는 과장을 하거나, 여러 가지 의도들이 작용하거나 하기 때문에 실정을 파악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가능한한 자연스러운 대화를 중시합니다. 북한에 대해서는 현지 조사가 불가능 하기 때문에, 탈북자들에게 학교나 직장, 지역에서의 생활 경험 등에 관한 수기를 몇 번이고 받았습니다. 가족구성, 집락(集落), 농작업의 모습 등을 그림을 그리듯이 묘사한 사람도 있습니다. 시간에 여유가 있고, 더욱이 사회주의화 과정을 목격해 온 60대 후반에서 70대의 약 40명이 협력 해 주었습니다. 남녀 거의 반반 입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고향의 위성사진을 보아가면서 탈북자의 설명을 듣는 것도 가능합니다.’
- 그렇게 해서 파악한 북한 사람들의 생활상은 어떻습니까?
‘먼저, 사회주의의 공적인 제도 하에서의 생활이 있습니다. 1948년의 건국 이래, 소련식 사회주의가 도입되어, 노동당이 사회를 지도, 통제, 관리 해왔습니다. 부친의 직업에 기초한 “출신성분”, 자신의 직업에 의한 “ 사회성분”이 주민등록에 기재됩니다.
국민은, 정치적인 지위에 따라서 3대 계층으로 분류됩니다. 체제를 유지하는 특권적인 "핵심계층”(전체의 약30%), 당원이 아닌, 노동자와 농민, 교원, 사무직 등의 “동요(動揺)계층”(약50%), 식민지 시대의 부농과 지주, 중소기업가 등 반동분자, 불순분자 취급을 받는 “적대계층”(약20%) 입니다. 국민은 모두 학교, 직장, 지역에서 노동당의 지도를 받는 “조직생활”에 배속되어서, 학습과 자기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직업과 거주지는 국가가 정하는 것이 원칙으로, 여행은 허가제입니다. 수도 평양에 사는 것은 특권으로, 장애가 있거나 죄를 짓거나 하면 지방으로 추방당합니다.’
■ ■
- 북한은 경제지원등을 통해서 구 소련과 동구권 등 사회주의권 국가들과 우호관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들이 차례로 붕괴되고, 90년대에는 북한의 어려운 처지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계획 경제 하에서는 식료, 생산물자, 일상용품 등이 국가로 부터 배급되었지만, 그게 불가능해 졌습니다. 90년대 후반은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리는데, 식량부족이 심각해 지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자력갱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공인되지 않은 비공식적인 구조들이 확산되었습니다.’
‘먼저, 시장이 급속도로 발전했습니다. 식료품, 의료, 잡화 등의 일상품에서 부터 생산자재들까지 팔립니다. 총과 폭탄 이외에는 뭐든지 입수할 수 있고, 한국의 비디오도 돌아다니다고 합니다. 집에 있는 옷이나 가구를 팔아서 자금을 만들어서, 옥수수나 밀가루를 산다. 이걸로 빵과 떡, 면류, 술 등을 만들어서 판다. 가정의 텃밭을 넓혀서 판매용 채소를 기르고, 돼지도 사육한다. 땅 바닥에 상품을 펼처 놓고, 노지에 서서 판매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단속이 있으면 일제히 도망친다. 단속하는 쪽도 생활에 쫒기고 있으니, 다소 눈 감아 줍니다. 직장을 쉬면서 부업에 열중하기 위해서 상사에게 뇌물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업도 자력갱생에 몰리고 있습니다. 국영기업의 부업은 종업원의 생활에 필요한 것에 한해서 인정되어 왔지만, 자활해야 하는 기업들이 자금을 만들기 위해서 부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동해쪽 기업과 군(軍)이 배를 가지고, 제철소의 부업반도 오징어나 명태 조업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에 흘러들어오는 작은 어선들도 그러한 부업에 의한 것들입니다.’
- 원래라면 인정되지 않을 법한 개인경영의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해서 놀랐습니다.
‘국가로 부터 생산재료가 공급되지 않으니, 탄광과 제약, 제화 등 국영기업의 조업이 저하되었습니다. 그렇게되자 기업간부에 인맥이 있는 개인이, 이윤의 일부를 떼어주는 것을 조건으로 명의를 빌려서, 경영을 합니다. 일이 없어진 국영기업의 기술자와 노동자를 고용해서, 옆으로 빼돌려서 나돌고 있는 재료나 도품을 사용합니다. 중국과 밀무역을 하는 상인으로 부터 원료를 입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사업용 자금을 고리고 빌려주거나, 생산재료를 빼돌리거나 하는 브로커도 있을 것같네요.
‘사업수완이 좋은 사람들은 돈을 모아서, 사업자금의 고리대부업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돈주라고 부릅니다. 돈은 “금전(카네)”, 주는 “主”입니다. 스스로도 식당과 사우나를 경영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고급 시계와 금빛 장식품을 과시하면서, 어깨로 힘을 주고 걸어 다닙니다. 졸부입니다. 도품과 횡령품인 재료를 집에다 숨겨두고, 암거래 하는 브로커도 있습니다. 화려함이 지나치면 원한을 사고, 단속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탈북한 사람도 있습니다.’
■ ■
- 한국에 있는 탈북자가 3만명을 넘었습니다. (한국) 정부도 연구자도 많은 데이터를 축척하고 있습니다. 일본인 연구자가 이 문제를 다루는 것에는 담긴 의미는 무었입니다.
‘예전에는 한국으로 넘어온 온 사람이 적었고, 귀순자라고 불리면서 영웅 취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3만명이나 되면, 출신지역, 직업, 계층, 연령 등이 광범위해 집니다. 북한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정도로, (여기서)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게 북한은 전쟁을 했던 적입니다. 연구자라해도, 그 틀을 벗어나기가 어렵고 언동에도 주의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연구는 정부관련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한국의 안전보장에 기여하는 국책 연구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성과는 인정하지만, 북한사회의 전체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불충분 합니다. 저는 이러한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 하지만, 이제까지 일본의 북한 연구는 지도자의 연설이나 당, 정부의 공식 문서의 분석 등이 대부분입니다.
‘한반도는 냉전의 최전선으로 남북에 대한 평가도 정치에 크게 좌우되어서, 일본 연구자들의 입장도 미묘했었습니다. 북한 체제가 잘 돌아가고 있을 때에는, 체제에 호의적인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솔선해서 공식 정보들을 다루었습니다. 교류도 현지 연구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공식 정보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사회주의의 공적인 제도가 더 이상 기능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으로는 실태를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필드 워크를 주체로 해온 문화인류학은, 이데올로기나 제도에 의존하는 견해로 부터 자유로웠습니다.'
■ ■
[이상함을 강조하면 있은 그래로의 서민들이 보이지 않게 된다.]
- 일본에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의한 도발으로 이제까지 없었던 위기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난이라든지 국익이라든지 하는 말들을 함부로 쓰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라고 하는 장벽 넘어에있는 사람들의 생활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대중매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서 시청률을 높이고, 수익을 증대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지요. 단편적인 정보를 이상하고 우스꽝스럽게 전달해서, 그 나라의 이상함을 강조합니다. 그렇게 해서 실체와 다른 이미지를 앞세 웁니다.’
‘문화인류학의 시점으로보면, 북한은 사회주의 독재 하의 특수한 사회라고는 한들, 어떤 인간사회에서도 공통되는 생활상도 보여집니다. 상업은 물론이고 뇌물과 절도, 연줄, 계를 통해 돈을 융통하는 서민의 지혜 등이 그렇습니다. 간부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 관여 한다 든지, 눈감아 준다든지 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이라면 북한 체제는 언젠가 무너 질 것입니다. 일본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북한의 붕과나 체제변동(体制移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난민의 수용과 남북의 통합을 위한 지원도 필요합니다. 북한 사람들을 동아시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다양성을 인정해 가면서 공존해 간다. 이를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을 바라 볼 수있는 것, 그리고 인도적인 시점이 필요합니다. 저의 연구가 이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청취: 사쿠라이 이즈미(桜井泉)
https://www.asahi.com/articles/ASL1R5DRSL1RUPQJ002.html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