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6

땅 살림 시골살이 - YES24



땅 살림 시골살이 - YES24

소득공제

땅 살림 시골살이
'똥꽃' 농부의 생태 스케치전희식 저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1년 01월 24일리뷰 총점8.0 정보 더 보기/감추기 회원리뷰(1건) | 판매지수 24 판매지수란?공유



농촌 사람들, 그들과 생명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개와 닭, 우렁이와 지렁이, 곡식과 들풀의 이야기. KBS 인간극장 「그해 겨울, 어머니와 나는」과 산문집 『똥꽃』을 통해 잘 알려진 농부 전희식이 소박한 문장과 삽화로 다양한 시골 살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치매에 걸린 노모와 아이들의 이야기, 이웃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정겹게 그려내며 농촌의 온기를 전한다.

이 책은 시골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사연을 가감 없이 담아내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상상 속에 존재할법한 포근하고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저자는 농촌에까지 미친 자본주의의 영향과 그로 인한 현실의 문제들을 정직하게 기록해내 우리가 마주한 오늘을 전한다. 그는 가난한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넉넉한 일상을 진솔하게 그려내며 바쁜 삶에 지친 이들에게 달콤한 휴식을 선사한다.



저 : 전희식

글 쓰는 농부, 생태영성 운동가. 도시에서 청장년기를 보내다가 1994년부터 농사짓고 살고 있다. 
현재 생명평화 단체, 영성 공동체, 채식과 명상 단체에서 활동하며 ‘알아차리기-치유의 글쓰기’ 지도와 ‘살아보기 상담’을 하고 있다. 
저서로 치매 어머니를 모신 이야기를 담은 《똥꽃》(그물코, 2008, 공저), 《엄마하고 나하고》(한국농어민신문, 2010, 공저)와, 농사 생활의 생태적 각성과 농업 문제에 대한 통찰을 담은 《시골집 고쳐 살기》(들녁, 2011), 《아름다운 후퇴》(자리, 2012), 《소농은 혁명이다》(모시는사람들, 2016), 《삶을 일깨우는 시골살이》(한살림, 2016), 《옛 농사 이야기》(들녁, 2017) 등이 있다.

저자 : 전희식

1958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곡절 많은 학창 시절을 겪었고, 한때 노동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생태적 삶에 대한 자각을 하고 1994년 전북 완주로 귀농했고, 치매 앓는 어머니를 모시기로 작정하고 2006년에 전북 장수로 거처를 옮겨 살고 있다.
현재 ‘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로 일하면서 대안공동체인 ‘밝은마을’의 이사와 생명ㆍ환경ㆍ개벽 운동 단체인 ‘천도교한울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보따리학교’와 ‘100일학교’ 일에 열심이며 ‘생명살이 농부학교’를 운영한다.
저서로 귀농 생활을 담은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먹다』와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의 이야기를 담은 『똥꽃』 『엄마하고 나하고』가 있다.

그림 : 전새날

삽화를 그리기 위해 아버지가 쓴 원고를 받아 읽었습니다. 시골의 살림살이는 잔잔했다가 거칠어지기도 하는 물살처럼 이채롭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점점 더 뚜렷하게 수면 아래가 비쳐 보였습니다. 그곳에는 한 사람의 삶과 의지가 있었습니다. 흐르는 것도 아름답지만 또한 그 물길을 내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런 웅실거림이 섞이고 흐르는 것에 집중하여 그림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글쓴이의 말 | 귀농과 귀촌을 권하는 사회

감자 놓던 날
참견은 즐거워
고맙다 지렁이
귀농하여 살아가기
조용한 시골 마을의 공포
한여름 밤의 이야기
땅이라는 것
재치 덩어리 호박 덩이
양지 쫓는 사람
줄 풀어진 개 ‘금이’

‘금이’의 첫 출산
귀농인 큰잔치
생명 살림 농사와 우리말 쓰기
방아 찧어주고 얻은 새경
아들아 변심하기 없기다
할아버지와 티격태격
집 나가겠다는 할아버지
동침
‘흰꼬’의 주검을 묻다
내 영혼의 넝쿨손

논두렁 태우기
휴가 온 도시 사람들
우리 어머니 신났네
이토록 환한 뒷간
타작하는 날 만든 당그레
호박잎 구하기 대작전
젖 값 내놓으라는 어머니
우리 영감, 말은 안 들어도 글은 들을랑가
사람 맴이 변덕이지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사람

고사리 좀 팔아줄티여?
택시
꼬부랑 일꾼 다 모였네
동지섣달의 추석
‘시골 쥐’의 서울 나들이
살아남은 닭, 구원된 나
닭들의 눈 흘김

물난리, 이거 남 얘기 아닌데?
맨발의 콩밭 매기
봄을 부르는 것들
‘미래 청년’ 심원보
우렁이의 사생활
중국에서 온 일꾼들
보 막으러 가세
어머니의 마을회관 나들이
‘생명살이 농부학교’ 아이들
쪼그랑 씨감자



나는 어린애 달래듯이 하며 지렁이가 몸을 편다 싶을 때 줄자를 대놓고 셔터를 눌렀다. 길이는 30센티미터가 조금 넘었다. 사진을 찍고는 제일 축축해 보이는 밭 구석에 지렁이를 모시고 가서 흙으로 잘 덮어주었다. 지렁이 한 마리가 1년에 평균 10킬로그램의 거름을 만들어낸다는데, 너는 덩칫값을 꼭 하라고 격려를 해주었다.
사람 중에는 먹기만 하고 빈둥빈둥 노는 사람도 있지만 지렁이는 먹는 것 자체가 일이니까 덩치만 크고 빈둥거리는 지렁이란 있을 수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다만 남의 밭으로 넘어가지만 말라고 당부했다. 남의 밭에 가면 맹독성 농약 때문에 명대로 살지 못할 테니, 이 밭에서 좋은 짝 만나 자식 많이 낳고 자자손손 천수를 누리라고 축복을 해주었다. --- 「고맙다 지렁이」 중에서

새벽에 일어났는데 금이가 낑낑대는 소리가 났다. 순간적으로 ‘맞다, 새끼 낳는구나’ 싶어서 마당 구석에 있는 개집에 가 봤더니 정말 금이가 새끼를 낳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목줄이 말뚝에 칭칭 감겨 있고 개집 속에 깔아준 몇 장의 수건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밤새 진통이 오죽 심했으면 저랬을까 싶었다. 부랴부랴 말뚝에 감긴 목줄을 풀고 마른 수건을 가져다 다시 깔았다. 자리를 만들어주자마자 새끼 한 마리를 툭 낳아버렸다. 새벽 6시가 조금 못 된 시간이었다. --- 「‘금이’의 첫출산」 중에서

“어무이. 머리에 물 부을게요. 눈 꼭 감으세요.”
“귀 안 먹었어! 온 동네 다 떠들어라. 지 에미 병신 에미 굿을 해라, 굿을 해!”
“하하하. 어무이 머리에 물 부을게요. 눈 꼭 감으세요.”
“이기요. 하지 말랑게 더 찌랄하고 자빠졌네.”
“어무이. 말 하지 마세요. 입에 비눗물 들어가요.”
“한 번 말하믄 됐지 실삼시리 카노 와?”
“인자 안 그랄게요.”
“이 물은 오데로 가노?”
“이 물요? 이 물은요. 하늘나라로 가요.”
“그라믄 우라부지 동네 가겄네?”
“예. 하늘나라 외할아버지 동네 갔다가 비가 돼가지고 내린대요.”
“별일이네.”
“어무이. 물 따싱게 좋죠?”
“말하믄 뭐해야. 따싱게 좋지.” --- 「젖 값 내놓으라는 어머니」 중에서

신나는 꽹과리 소리가 앞장을 서고 장구와 북, 징이 뒤따르면서 장독대와 부엌, 뒷간과 우물을 돈다. 지신밟기 풍물패다.
“여기는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전 아무개 님 집 부엌이니 일 년 내내 쌀독에 쌀 안 떨어지고 음식 상해 버리지 말게 해주소서.”
상쇠의 축원을 따라 놀이꾼들이 “좋지!” 하고 합창한다. “잘 먹고 된똥 바락바락 잘 싸게 해주소서”는 뒷간에서, “담근 장맛 좋게 하시고, 두루두루 나눠 먹게 하소서”는 장독대 앞에서 하는 기원이었다. 조왕신, 측신, 철융신 등 집안 모든 귀신들을 찾아다니며 맑은 물과 쌀그릇을 놓고 한 해 동안 서로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 「봄을 부르는 것들」 중에서




KBS 인간극장 「그해 겨울, 어머니와 나는」과 산문집 『똥꽃』을 통해 잘 알려진 농부 전희식의 책이 새롭게 출간되었다. 전희식은 치매 걸린 어머니를 모시며 생명을 살리는 농사짓기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저자가 모시는 것은 어머니뿐 아니라 공생 공존하는 온갖 미물들과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전희식의 이러한 생명 모심의 철학과 범부로서 농사지으며 있었던 다양한 시골 살이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다. 알콩달콩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들에 윤기를 더한 삽화는 저자의 딸인 전새날이 직접 그려 넣었다.

어머니를 모시며, 우렁이와 지렁이를 모시며,
시골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전북 장수군 덕유산 중턱, 고즈넉한 오두막집에 살고 있는 농부 전희식. 그리고 치매에 걸리신 여든아홉의 어머니. 그림을 그리는 딸 새날이와 아버지처럼 농사를 짓겠다고 농업고등학교에 들어간 아들 새들이. 그곳에서 복닥복닥하며 살고 있는 시골마을 사람들. 또 이들과 함께 생명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개와 닭, 우렁이와 지렁이, 곡식들과 풀들…….
『땅 살림 시골 살이』의 주인공은 바로 이들 모두이다. 저자에게 이 땅위에서 ‘살림’ ‘살이’를 하는 모든 것들이 모심의 대상이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에게 가장 특별한 사람은 어머니다. 혼자 힘으로 7남매를 키우시고 농사일에 누에치는 일, 길쌈까지 하시며 억척스럽게 사셨지만 누구보다 현명하고 경우 바르셨던 어머니. 그런데 여든이 넘어 다시 아기가 되신 어머니와 함께 전희식은 시골로 들어갔다. 어머니를 가장 잘 모실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다 간 곳이 지금 살고 있는 마을이다.
전희식은 매일 아침 어머니에게 세숫물도 갖다 드리고, 머리도 곱게 빗겨드리며 온갖 수발을 다하는 아들이지만 어머니 눈에는 농사일이며, 살림이며 서툰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늙고 병들었어도 여전히 자식 걱정뿐인 어머니,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 그 마음들을 전희식은 모시고 산다.
전희식이 모시는 또 다른 것은 땅과 땅위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들이다. 호미나 괭이질을 할 때도 함부로 땅을 내리찍지 않고 살살 긁어낸다. 농사일에서 가장 큰 일꾼이라고 생각하는 지렁이가 다칠까봐서다. 또 총총한 별들이 보이는 ‘생명살이 뒷간’을 한 달여에 걸쳐 힘들게 짓기도 했다. 집을 지을 때처럼 모든 자재는 다 재활용이었다. 전희식이 땅위의 생명들을 소중히 모시는 이유는 ‘주어진 자연을 피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고스란히 내면화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겨운 농촌 사람들과
다복다복 복닥복닥 어울려 살아가기

전희식이 이 책에 담아낸 것 중 가장 많은 사연들은 시골마을 사람들과 알콩달콩 엉켜 살아가는 이야기들이다. 오랫동안 노동운동 현장에서 치열하게 활동하다가 귀농을 했지만, 이제 누구보다도 농부다운 농부가 되었다. 이웃 할아버지 할머니와 주고받는 농이 진하게 무르익어 정겹기만 하다. 귀농 10여 년이 훌쩍 넘다 보니 도시와 달리 시골에서 살기 위해선 ‘이웃과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그려내는 농촌의 풍경은 마냥 포근하거나 핑크빛 모습은 아니다. 투박한 농촌 사람들의 에피소드는 우리가 잃어버렸던 정겹고 따뜻한 풍경 그대로지만, 자본주의의 침투와 거기에 적응해가는 실상까지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하지만 농촌은 아직 우리가 가야 할 ‘오래된 미래’에 가깝다.
전희식은 주름진 삶의 모습, 그러나 가난한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넉넉한 모습을 정직하게 담아낸다. 농촌 사람들이 살아가는 쉼표와 같은 일상을 들여다보면 잔잔한 웃음과 한 움큼 풀냄새와 고향의 흙냄새를 맡는 느낌이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무료진료 공로를 인정받아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교황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의사 임정남은 추천사에서 전희식을 ‘치매 걸린 어머니를 사랑과 존경이란 명약으로 치료하고 있는 의사이며, 감칠나는 사투리로 농촌의 생활을 한 폭의 그림처럼 담아낸 화가이며, 마을 주민과 친화하고 온갖 미물들과 생명을 수호하려는 생명평화론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전희식은 1인 다역을 소화하고 있다. ‘전국귀농운동본부’와 ‘천도교한울연대’ 공동대표로, 대안공동체 ‘밝은마을’ 이사로, ‘보따리학교’와 ‘100일학교’ 선생님으로 동분서주하고 있고 ‘생명살이 농부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를 모시며 농사를 짓고, 생명을 살리는 농사일을 이웃들과 함께 꿈꾸는 그는 쉴 틈이 좀체 나지 않는다. 낳고 기르고 모시는 일에는 밤낮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 일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쓴이의 말
시골 와서 농사짓고 산 지 16년째가 되다 보니 농사짓고 살면 뭐가 좋으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정말 뭐가 좋을까요?
시골 와서 농사짓지 않았으면 이렇게 책을 낼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책을 내는 것이 좋은 일이냐를 떠나서 틈틈이 글을 쓰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입니다. 제 경우는 시골에 와서 그게 가능해졌습니다.
매년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보따리 싸 들고 산에 들어가서 명상 수련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시골 와 살았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형편없는 제 돈벌이 능력을 고려할 때 이렇게 온전한 자연식품으로 밥상을 차린다는 것도 시골 와 농사짓고 살지 않았다면 엄두를 못 낼 일입니다.
성격도 많이 누그러워진 것 같고, 몸도 건강해졌고, 아이들도 잘 자랐고, 세끼 밥 안 거르고 잘 먹고, 여력이 닿는 대로 이웃을 도와가며 살고 있으니 큰 복이다 싶습니다. 무엇보다 병들고 늙으신 우리 어머니를 모시고 살 수 있는 것도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기에 망정이지 도시에 줄곧 살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하려면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곡절이야 있었지만 시골로 내려온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으니까 잘한 선택 같습니다.―「글쓴이의 말」에서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