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9

14 [[정은미. 식량안보에 기여하는 유기농업 - 북한 유기농업지원센터(KCCOA) 설립


14 [[정은미. 식량안보에 기여하는 유기농업 - 북한 유기농업지원센터(KCCOA) 설립

* 『모심과 살림』 4호(2014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


식량안보에 기여하는 유기농업

- 북한 유기농업지원센터(KCCOA) 설립

글 루카스 바움가르트 (Lukas Baumgart. 유기농업연구소(FiBL) 연구원(북한유기농업프로젝트 연구 담당자) Lukas.Baumgart@fib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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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문지영 (한살림연합)

요약

북한은 다년간 식량위기로 고군분투해 왔으며 1990년대에는 기근을 겪기도 했다. 지난 몇 년간 사정이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상황은 불안정한데다, 언제든지 기근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

북한은 국가 전략 차원에서 저투입농업과 유기농업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농업 전문가들도 유기농업 분야에 대한 자신들의 지식과 기술, 경험을 강화하고자 마음을 먹고 있다. 하지만 개인 차원의 농업기술 수준을 넘어선 포괄적인 농업체계로서 유기농업을 거대 규모로 북한에 도입하고자 할 때, 몇 가지 제약이 눈에 띈다.

유럽연합 유럽원조협력청(EuroAid) 프로젝트(시행기간: 2010년 4월~2014년 7월)를 통해 지속가능한 농업 생산을 담보하는 향상된 유기농업 기술을 지원해서 북한의 식량안보에 기여하기 위한 첫 걸음은 이미 시작됐다. 새로 설립된 북한유기농업지원센터(KCCOA)가 이를 촉진하는 역할을 맡는 동시에 유기농업 기술 소개 및 보급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훈련기관의 중심지로 기능할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북한 기술자와 기관들이 자신들의 기술적 지식을 최신화해 연구 역량을 높이고, 이것을 통해 북한이 자체 국가적 수단을 가지고 식량안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강화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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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90년대, 대기근으로 인한 북한의 사망자 수는 24만 명에서 42만 명으로 추산된다.1) 일반적으로 농업 분야의 문제들은 식량 불안정과 식량난 위험에 따른 인도주의적 측면과 깊은 관련이 있다. 특정 농작물의 생산 개선에도 불구하고 만성적 영양결핍은 북한의 건강 문제로 여전히 남아 있다. 식량위기는 북한에서 과제로 남아있는데, 현재 북한이 가지고 있는 인센티브와 마케팅 구조, 기계화의 미비, 병충해와 질병에 대비한 합성비료와 화학물질 투입 제한 등이 문제 해결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요한 문제는 불충분하고 불균형한 양분(질소/인산/칼륨) 사용으로, 이것의 부족은 수확량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아직까지도 북한 정부가 목표한 수확량을 달성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2)

1980년대 이미 북한 정부는 단위면적당 곡물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집약적 농업생산을 목표한 바 있다.3) 하지만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집약적 농업생산은 국가 경제사정에 크게 좌우된다. 또한 화학비료와 농약 등 외부 자재의 투입 부족 및 단조로운 공급 역시 수확량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특히 소련 붕괴 후 국가 생산 및 해외로부터의 수입이 급격히 감소했고, 북한의 협업농장(co-operation farms)은 화학비료나 농약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해왔다.4) UN식량농업기구와 유럽연합, 그리고 다른 여러 기관들이 토양에 필수적인 영양분을 공급해 간극을 메우고자 노력했으나 국가적인 필요를 충분히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비록 식량 생산이 더디게 늘어났으나 그것으로는 전체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2011년 북한의 필요 곡물 수입량은 약 73만9천 톤으로 추산된다.5)

북한의 에너지공급 분야가 가진 문제와 투입기반 시스템이 수반하는 낮은 에너지 효율을 목격한 북한 농업부와 국가연구소(농업연구소)는 최근 들어 유기농업과 같은 자원효율적인 시스템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외부 자재 투입 여부와는 별개로, 유기농업은 천연자원의 지속 가능한 이용을 통해 보다 안정된 생산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또 다른 주요 문제는 토양의 비옥도가 장기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시비施肥와 윤작輪作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이다. 토양 내 부식토 함량을 높이기 위한 유기자원이 한정돼 있다 보니 지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에서 사용하는 농업 기술은 도리어 토양의 산성도를 높여왔기 때문에, 농업 효율성을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토양 내 어떤 영양소는 아예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북한 내 모든 작물의 수확량은 관련 국제기준 및 지역기준과 비교했을 때 꽤 낮은 편이다. 동시에 밀과 보리를 이모작 해온 터라 이미 지력이 고갈된 상태여서 수확량이 낮기도 했다(재식기의 제한된 연료 사용 역시 낮은 수확량의 원인이 됐다). 그래서 국가연구소는 경작지 내 낮은 부식토 함량이 가진 문제를 깨닫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찾았다. 그리하여 녹비 개발과 콩과科 작물의 윤작이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나, 아직 대규모로 적용되지는 않고 있다. 북한 농업부는 북한 농업이 외부 자재 투입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도록, 최근 몇 년간 농업 부산물과 가축 분뇨, 그 외 바이오매스의 퇴비화를 권장해 왔다. 양질의 퇴비를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토양 비옥도를 높이기 위한 첫 번째 노력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농장 가축과 그 가축을 먹이기 위한 사료작물에는 불균형이 수반되는데, 이는 토양 비옥도와 농업의 지속가능성에 파급효과를 일으킨다.6)

농업 생산과 식품 소비에 있어 식품안전상 위험은 서로 다른 문제다. 한국과 유럽의 소식통은 부적절한 농약 사용으로 인한 문제들이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한편에서 농장 노동자들(farm workers)은 충분한 예방조치가 적용되지 않거나 안전 장비를 이용할 수 없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임산부나 여성, 어린이 등 취약계층에게 식품 잔류 농약이 가장 해로운 요인이 되기도 한다. 사실 과학적 수준에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인식이 이미 형성되어 있으며, 유기농업이 식품 잔류농약의 위험을 줄이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독성이 없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식품 소비 과정에서 그 어떠한 농약도 섭취되지 않도록 하는 가장 성공적인 예방책이다.



자원 및 방법

이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유기농업과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연구 및 훈련 목적의 지원센터를 북한에 세우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국가 차원에서 연구원들과 정책 결정자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것은 연수 과정을 통해 검증된 유기농업 전문가 그룹에 의해 시행됐으며, 현장 방문, 기술 자문, 참여형 워크숍, 국제 유기농업 컨퍼런스 참석, 그리고 유럽 선진지 견학까지 유기농업연구소(FiBL) 출신의 국제 전문가들이 연수 과정을 준비하고 지도했다. 동시에 함께한 북한의 지역 전문가들은 시범농장에서 실천적 경험을 쌓은 사람들로, 유기농 전환을 지원하고 촉진하기 위한 연구실험농장을 세울 계획이다. 이 실험농장은 북한 농업연구원(AAS) 출신 전문가들이 철저하게 유기농업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연구센터로 기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기농업과 지속가능농업을 북한 전역으로 확대 적용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맥락에서 이 실험농장은 실용적 경험을 쌓으면서 농업기술 연구와 개발을 진행하고 그 효율성을 평가하는 공간으로 사용될 것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연구에는 유기농업 체계 속에서 농업 생산을 향상시키는 데 적합한 유기농업 기술을 엄선하고 결합하기 위한 조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시범농장에서의 연구 및 생산을 통해 축적된 과학적 결과들과 유기농으로 완전 전환해 기능하는 농장에서의 실질적 실험은 북한 농업부의 정책 결정과 계획 수립의 근거는 물론 농업 생산에서 유기농업 기술의 확대를 가속화하는 확고한 토대로서 가능성을 제공해주고 있다.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북한과 유럽연합의 연구기관들은 돈독한 관계로 발전했으며 북한 농업연구원(AAS)은 국제교류 및 협력에 폭넓게 참여함으로써 세계 유기농업 동향에 익숙해졌다. 이러한 연계는 유기농업과 관련한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는 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유기농업의 발전을 명확히 지원하는 국가 차원의 정치적 전략과 결합한다면, 이 프로젝트는 국내 및 해외의 관련 기관들과 이미 확립된 관계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경과 및 전망

유기농업연구소(FiBL)와 파트너로서 북한의 농업연구원-유기농업연구소(AAS - OARI) 간의 논의를 바탕으로 2010년에 북한에 유기농업을 소개하기 위한 연구조사 수준의 협력안이 만들어지고 승인됐다.

2011년 4월부터 2014년 7월까지 유럽연합 유럽원조협력청(EuroAid)의 기금을 받아 유기농업기술 도입으로 식량안보에 기여하고자 하는 협력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북한 유기농업지원센터(KCCOA) 설립이었다. 유기농업연구소(FiBL)는 협력기관인 북한 농업연구원이 농장에 센터를 설립하는 것을 지원했다. 센터는 연구뿐 아니라 유기농업기술의 실제 적용 및 실험, 북한 내 유기농업 기술 도입 및 보급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북한 유기농업지원센터(KCCOA)와 그에 딸린 시범농장, 그리고 조사 활동들은 기후, 토양, 농작물 및 사회경제적 조건 등 북한의 특수한 조건들을 고려하는 한편, 유기농 생산의 실질적인 경험을 획득하고 현지에 적합한 농업기술과 경종농업 및 축산업을 발전시키는 토대를 만들었다. 이는 북한 농업연구원-유기농업연구소(AAS-OARI)가 관리하는 30 헥타르 규모의 국영 실험농장(미림 농장)에서 이뤄졌는데, 선정된 농장은 평양 시내에서 약 5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북한 농업연구원-유기농업연구소(AAS-OARI) 연구단지로부터는 8km 정도 떨어져 있다.

지금까지 비화학非化學 자재와 익충益蟲을 이용한 해충 방제기술, 그리고 퇴비나 미생물비료 제조법과 같은 각기 다른 유기농업 기술들이 개발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기술들은 보다 총체적인 농장의 관점에서 유기농업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포괄적으로 적용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식량안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북한이 가진 특수한 맥락에서 유기농업을 발전시키고 적용시키는 차원에서 기존의 노하우와 경험을 활용하고 이를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농장 단위는 농작물과 가축에 대한 실질적 몫을 포함한다. 1헥타르 경지면적당 가축 약 0.5마리 같은 기준이 그렇다. 이러한 유형의 농가는 북한에서는 상당히 새로운 접근 방식이며, 또한 성공적인 유기농업 운영을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이 된다.

최우선 사항은 적절한 윤작과 녹비, 최적화된 퇴비화 기술, 그리고 축산업을 포함한 순환농업을 통해 토양 비옥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북한 내 넓은 면적의 토양이 황폐화되어 있는 만큼 토양 비옥도 개선 문제는 매우 중요하며, 유기농장뿐만 아니라 모든 농장까지 지속가능한 농업기술로서 바꿔낼 수 있다. 토양 비옥도 향상은 북한의 식량안보 개선에 결정적인 요인이며, 현재 구상 중에 있는 저투입 전략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또한 이것은 보다 더 효율적인 농업생산 양식을 갖추는 데 기여한다. 농가의 토양 내 부식토 균형 정도는 토양 비옥도의 개선을 확인하는 지표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부식토는 식량안보를 강화하는 중요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미림농장에서 진행 중인 농장연구(OFR, On-Farm-Research)는 시범농장의 통상적 확립을 목적으로 하며, 이는 적합한 농업 접근법을 선택하거나 개발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목표는 대규모 시험재배로부터 실행된 비반복 실험과 작은 구획의 땅에서 이뤄지는 반복실험을 통해 달성될 것이다. 첫 시험재배는 2011년에 시작되어 2012년과 2013년에도 진행됐다. 클로버와 클로버 혼파초지가 농장에 잘 알려지지 않았었기 때문에 첫 대규모 시험재배는 클로버 혼파초지를 심는 데 전념하였다. 시험재배를 통해 최적의 파종 시기를 알아냈고, 북한 환경에 적합한 유럽산 클로버나 다른 풀 품종의 서리 내성 정도 등에 대해 전반적인 성질을 조사했다. 반복 실험은 옥수수와 클로버를 보호작물로 함께 심는 것과 이모작으로 겨울곡류 작물을 수확한 뒤 대두를 심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예비조사 결과, 유럽산 콩 작물이 겨울보리나 겨울밀 등 이모작으로 겨울곡류 작물을 수확한 후에 성공적으로 기를 수 있는 작물로 보였다. 한 철에 밀이나 대두 같은 두 가지 주요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농업 생산성(식량안보)을 상당히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게다가 윤작을 하는 동안 더 많은 콩과科 작물을 도입함으로써 토양 비옥도를 높일 수 있다. 향후 활동을 위한 현명한 아이디어를 더욱 정교화시키고, 국가 공식기록 저널을 통해 발표된 첫 시험농장사례를 실제로 구현해 낸 것은 농장연구(OFR)의 주된 결과라 할 수 있다.7)

이외에도, 이 프로젝트는 북한의 기술진과 연구기관들이 외국의 기관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를 통해 북한은 자체의 국가적 수단들을 통해 식량안보 문제를 완화하는 전문 지식을 강화해 올 수 있었다. 나아가 이번 프로젝트는 북한과의 협력 단체들에게 북한 상황에 가장 적합한 식량 안보 조치에 대해 논의하고 결정하고 최적의 접근법으로 다가가도록 하는 역량을 길러내는 기회를 제공했다. 연수 활동에 포함된 분야로는 유기농업으로 경작 가능한 작물과 채소류 생산, 유기질 비료, 천연자원 관리, 가축 사육, 경영 및 관리상 문제 그리고 (시범농장에 대한) 유기농 목표생산량 적용 등이 있다.

시범농장과 농장연구 확립의 첫 단계를 거친 후, 북한 농업연구원(AAS)은 실제 현장에서 유기농업을 실천하고 응용하는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전문지식을 갖추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가 최종 수혜자에게 미칠 영향을 상기해 볼 때, 북한의 더 많은 대중들에게 이러한 경험과 추가적 노하우를 널리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북한 유기농업지원센터(KCCOA)의 중요성은 확장과 훈련의 단위로써 앞으로도 계속 높아질 것이다. 시범농장이 온전히 시행되고 기능하게 된다면 유기농업이 북한에서 어떻게 시행 가능한지를 확인하게 되고, 유기농업의 적용을 통해 축적된 과학적 결과들을 바탕으로 농업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내려질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정치인과 정책결정자들은 지속가능하고 안정된 식량 생산을 목표로 북한의 국가농업 정책을 개선하고 적용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지지할 것이다.

* 이 논문은 유럽연합의 지원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이 논문 내용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유기농업연구소(FiBL, http://www.fibl.org)에 있으며, 유럽연합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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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poorenberg, T. and Schwekendiek, D. (2012). Demographic Changes in North Korea: 1993.2008. Population and Development Review, 38: 133.158.

2) Gunjal, K., Goodbod, S., Coslet, C., Hollema,S., Vurumuku, E., Singhkumarwong, A., Wanmali, S. (2012). Special Report: Crop and Food Security Assesment Mission to the Democratics People’s Republic of Korea, 12 November 2012,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ROME.

3) Kim, U. G. (1999). The agricultural situation of North Korea, No. 475. Food & Fertilizer Technology Center.

4) Ireson, R. (2006). Food security in North Korea: Designing realistic possibilities. In Proceedings of the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Meeting(May). Beijing, China.


5) Gunjal et al., 2012.

6) 위 논문.

7) Pyongyang. 2014. DPR Korea No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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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주권의 관점에서 본 북한의 유기농업*69)

정은미(서울 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이 연구는 2010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 아 수행되었다(NRF-2010-361-


이 연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북한의 공간(公刊) 문헌에서 유기농업이 자주 거론되고 있는 데 대한 배경과 맥락을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

다. 쿠바의 유기농업 경험과 비교해보면 북한의 유기농업 정책은 단순히 영농기술적인 측면에서 유기농업을 도입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점이 발견된다. 쿠바와 북한이 공통적으로 대외적 고립과 수입 영농 자재의 부족과 같은 유사한 상황적 제약 속에서 유기농업에 관심을 돌렸 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쿠바와 달리 북한은 집단농 업체제는 그대로 유지하는 상황에서 영농기술적인 측면에서만 유기농법 을 도입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럼 에도 북한 사회에서는 식량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농촌과 도 시 모두에서 유기농법에 의거한 가족농이 십수 년 동안 이루어져 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유기농업에 대한 관심은 열악한 영농 조건 속에서 농업 증산을 위한 수단의 하나로 시작하여 유기산업법의 제정 및 생태환경의 보존 문 제에 이르기까지 담론이 진화해왔다. 또한 유기농법에 대한 북한의 초기 적 관심은 부족한 화학비료를 대체할 친환경적 방법의 유기비료를 자체 적으로 개발하려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2000년대 이후 외부 세계의 유기농업 기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관심의 폭을 넓혀갔다.




그동안 남북한 간에 이루어진 농업교류협력은 주로 북한의 농업정책 요 구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강했으며, 화학화와 기계화를 기반으로 한 남한의 관행농법의 영농기술과 자원의 이전에 불과하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재개될 남북한의 농업교류협력은 한반도 차원에서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동시에 농촌과 생태의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는 대 안적인 통일농업의 모델을 모색하는 과정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에 북한 정권이 관심을 보이는 유기농업은 남북한 농업교 류협력에서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주제어: 유기농업, 관행농업, 남북농업교류협력, 식량주권, 생태, 가족농, 통일농업
1. 들어가며

1950년 에 미국의 주도로 시작된 ‘녹색 명’은 1970년 발생한 세계 식량 기를 극복하는 데 분명히 크게 기여하 지만 결과 으로 오늘날 녹색(생태)을 멸하는 녹색 명이 되고 말았다.[1]) 이에 비 인 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식량주권 개념이다. 2007년 2월 23~ 27일에 말리(Mali) 닐 니(Nyeleni)에서 개최된 식량주권 포럼에서 공표

된 닐 니 선언(Declaration of Nyeleni)에 의하면, 식량주권(food sovereignty)이란 “환경친화 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되고 문화 으 로도 합한 식량에 한 민 의 권리이며, 한 민 이 그들의 고유 한 식량과 농업생산체계를 결정지을 수 있는 권리”이다.[2]) 식량주권의 개념은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농산물의 자유무역화 과 정에서 피해를 입은 농민들―특히 소농, 무토지 농민, 여성 농민, 농업 노동자 등―이 모여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라는 국 사회운 동조직에서 수년간의 토론을 거쳐 1996년에 창안되었다.[3])

식량주권의 개념은 1970년 에 발생한 세계 식량 기를 계기로

등장한 식량안보(food security) 개념을 비 하며 안으로 등장하 는 데, 기존의 식량안보 개념이 기에는 식량자 에 기 한 증산정책과 농업보호정책을 강조했지만 차 무역(=수입)을 통한 안정 인 식량 확보를 강조하는 개념으로 변화하여 1990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농산물의 자유무역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 을 받고 있다.[4]) 피터 로셋(Peter Rosset)은 “식량안보는 아 이, 여성, 남성 모두가 매일 충분한 먹거리를 보장받는다는 확신이 있 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식량안보의 개념에는 먹거리가 어디에서 오는 지,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한 언 이 없다”[5])며 식량안보 개념의 한 계 을 지 하고 이 한계를 뛰어넘는 개념으로 식량주권을 주장한다.

비아 캄페시나에 따르면 식량주권은 국가 으로 충분한 양의 먹을 거리 생산과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문제뿐만이 아 니라 어떤 먹을거리를 생산하는가, 어떻게 생산하는가, 어떤 규모로 생산하는가의 문제도 같이 요하게 본다.6) 특히 비아 캄페시나가 제시한 ‘식량주권 실 을 한 7 원칙’ ―기본 인권으로서의 먹거리, 굶주림의 세계화 끝내기, 농업개 , 먹거리 무역의 재조직, 민주 통제, 제 조건으로서의 사회평화, 자연자원의 보호―을 통해 확인되는 바처럼, 식 량주권은 단순히 먹거리 농업의 문제뿐만 아니라 평화와 생태의 문제까지 포 하는 개념으로서 이러한 가치들은 한반도의 통일 문제 와도 충분히 목될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결과 으로 식량주권이 지향하는 가치들을 실 할 수 있는 안

인 농업모델은 근 행농업이 아니라 소농 는 가족농 심의 통 농경―특히 유기농―방식을 지향한다. 구체 으로 식량주권 개념에 기반을 둔 안 농경은 다각 농으로 단작을 체하고, 다양성으로 단일성을 극복하며, 화학비료와 농약 신 천연비료와 생 물학 해충 방제를 통해 자연을 지배하거나 통제하는 신에 자연과 상호 작용하는 것이다. 간략하게 비교해 설명하면, 행농업의 패러다 임은 집 화, 의존, 경쟁력, 자연에 한 지배, 문화, 착취 등을 특징 으로 한다면, 안 농업의 패러다임은 탈집 화, 독립, 공동체, 자연과 의 조화, 다양성, 규제(혹은 안 장치) 등을 특징으로 한다.7)

이미 남한에서는 지속 가능한 새로운 안 농업모델로 유기농업 에 한 심이 1990년 부터 지속 으로 이루어져왔다. 그런데 흥미

롭게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북한의 공간(公刊) 문헌에서 유기농업에 한 강조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다. 인민의 기 인 식량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북한 정권이 유기농업을 운운하는 것은 분명 우리에 겐 낯설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남한 주민에게조차 유기농 제품이란



6) 아네트 아우 리 데스마 이즈(Annette Aurelie Desmarais), 󰡔비아캄페시나: 세계 화에 맞서는 소농의 힘󰡕(구: 한티재, 2007), 72쪽.

7) 의 책, 136~138쪽.

일부 제한된 계층만이 소비할 수 있는 것처럼 아직은 이지 않 기 때문에 기근에 허덕이는 북한에서 유기농업을 강조하는 것이 실 과 무나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이 유기 농업에 심을 갖게 된 배경은 우리와 무나 다른 역사 ·구조 맥 락을 갖고 있다. 남한에서는 1990년 부터 농민과 소비자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농업과 안 한 먹거리 생산이라는 두 과제를 해결하기 해 유기농업에 한 정책 심이 시작되었다면, 북한에서는 장기 화된 경제 쇄 속에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한 농업 증산의 자구책 의 하나로서 유기농업에 해 심을 갖기 시작하 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쿠바는 미국의 경제 쇄에 응하여 식량문

제를 해결하기 해 기존의 화학화·기계화를 기반으로 한 규모 앙집권 행농업을 신하여 가족농 심의 유기농업으로 환하

여 식량자 을 달성할 수 있었다. 북한의 경우 역시 오랜 기간 미국의 경제 쇄에 직면하고 있지만 쿠바의 사례와 같이 근본 으로 농업생 산체계를 개 하는 차원에서 유기농업에 심을 갖고 추진하려 한다 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북한이 핵 개발을 넘어 핵 보유를 체제수호의 유일한 수단으로 인식하는 한 외부 세계의 북 경제 쇄가 쉽게 해 제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이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한 자구 인 농업 증산의 수단으로써 유기농업 방식은 분명히 실 인 방안이 될 수도 있다.

김 정부·노무 정부 시기에 남북한 간에는 경제의 여러 분야 에 걸쳐 교류 력이 활발하게 개되었으며 여기에는 농업 분야의 교 류 력도 포함된다. 농업 분야의 남북교류 력은 그동안 화학비료, 농 약, 비닐, 농기계 등과 같은 농자재와 농기술의 지원을 통해 북한 스스로 농업 생산력을 복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해왔다. 하지만 10년 넘게 추진해온 남북 농업교류 력에는 통일 비 농업공동체의 형성이나 통일된 한반도 농업의 미래상과 같은 장기 이고 근본 인 합의 없이 당면한 북한의 식량 부족 문제를 돕고 식량 생산능력의 복 원을 해 남한이 일방 인 농업 자원과 기술을 북한에 이 하는 방 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농업교류 력을 추진하는 남한 의 ·민 모두 북한 지역의 토양 산성화와 산림 황폐화가 심각하여 화된 농기계 농자재의 충분한 투입 없이 재의 농업체계와 농업기반으로는 식량 증산이 구조 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남한의 ·민이 추진해온 북농업교류 력 방식은 기존의 생산 구조를 복원하거나 보조(補助)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왔 다는 에서 기존의 교류 력 사업에 한 종합 인 검토와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좀 더 근본 인 문제 은 통일의 선상에서 남북한 농업교류 력이 궁극 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 구체 으로는 통 일된 한반도의 농업 방향성에 한 남북한의 공유가 없다는 이다.

이상의 문제의식하에서 이 은 우선, 쿠바가 세계 인 유기농업의 메카로 떠오르게 된 역사 ·정치경제 맥락뿐만 아니라 유기농업의 실천 노력을 살펴 으로써 쿠바의 경험이 북한에 주는 시사 을 도 출해보고자 한다. 특히 쿠바의 경험은 북한이 최근 심을 보이는 유 기농업 정책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북한의 유 기농업 정책이 갖는 한계가 무엇인지 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이 은 북한 문헌의 검토를 통해 유기농업과 련된 담론 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자세히 검토해보고 실 으로 진행되고 있 는 유기농업의 실태는 어떤지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선 유기농업과 련된 담론(는 이데올로기)과 실천 간의 간극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간극은 어쩌면 쿠바의 경험을 통해서 도출된 북한의 유기 농업이 구조 으로 내포하고 있는 한계 (는 제약)일 수도 있을 것 이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진행해온 남북한 농업교류 력의 반을 성 찰해보고 안 비 의 에서 식량주권이라는 개념을 통해 북한 의 유기농업 정책을 포함하여 통일 한반도의 농업공동체 형성에 필요 한 농업교류 력의 방향에 해 제언하고자 한다.
2. 쿠바의 유기농업 전환 경험과 북한의 적용 가능성

북한이 공간 문헌을 통해 유기농업에 심을 보이기 시작한 지도 십수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그 배경이나 맥락에 해 크게 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쿠바가 외 계의 쇄 속에서 식량난 해소를 해 기존의 화학화·기계화를 기반 으로 한 앙집권 행농법을 포기하고 유기농업으로 환한 것이 북한에 주는 시사 이 크다며 쿠바의 경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아직까지 학계를 비롯하여 남북농업교류 력에 참여하는 민간단체들 사이에서 공감 를 형성하 지 못하고 있다.

쿠바가 세계 인 유기농업의 메카로 떠오르기 이 에 쿠바 농업은

명 이후 도시화가 속히 이루어지면서 농 노동력이 부족하고 사 탕수수와 같은 단작재배체계로 기부터 규모 기계화를 통한 농 방식이 발달하 다. 소련이 붕괴하기 이 쿠바의 농업은 1,000헥타 르당 21의 트랙터를 이용하여 라틴아메리카 내에서 최고의 수 이 었으며 화학비료 투입량은 미국보다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규모의 근 농업을 지탱했던 농업자재를 모두 수입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농약 98%, 화학비료 94%, 가축사료 97% 등 종자에서 트랙터와 연료, 부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소련과 사회주의권이 공 해주었다. 그 러나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 지고 사회주의권이 붕괴하자 사탕 수수 주의 단작농업체계는 기에 직면했다. 사탕은 1980년 쿠바 수출액의 80%를 차지했는데 소련의 구매 능력이 없어지면서 수출길 이 막혔고, 사탕 국제가격이 추락하면서 농자재나 석유 등의 수입액 이 크게 었다. 농자재 수입이 어들면서 그 향으로 설탕 생산량 도 1989년 810만 톤이었던 것이 매년 크게 어 1995년에 336만 톤 으로 락했다.8)

농자재의 수입이 락하면서 쿠바의 경제는 마비되었으며, 미국은

이 기회에 카스트로(Castro) 정권을 무 뜨리기 해 1961년부터 지속 해온 경제 쇄를 더욱 강화했다. 1992년에 미국 의회는 국내외의 미 국계 기업 모든 자회사가 쿠바와 거래하는 것을 지한 ‘톨리체리

법(Toricelli Act)’, 이른바 ‘쿠바 민주화법’을 제정했다. 당시 러시아를 비롯해 소련붕괴 후 탄생한 신생국들은 미국과 유럽의 나라들로부터 원조를 받아야 했는데, 그에 해 미국이 제시한 조건 하나가 쿠바 와 모든 무역을 단하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993년 3월에는 세기 최악이라는 허리 인이 습하여 쿠바 명 이후 처음으로 쿠바 는 국제사회에 긴 원조 요청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 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쿠바에 한 경제 쇄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주요 에 지원인 석유의 수입량은 1989년에 1,330만 톤이었지만 1993 년에는 약 570만 톤으로 었다. 석유뿐 아니라 원료, 기계 등의 부품 마 수입할 수 없게 되면서 공장은 차례로 문을 닫았다. 1993년 말까



8) 요시다 타로(吉田太郞),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작은 나라 쿠바의 커다란 도 , ‘늘 푸른 명’󰡕(주: 들녘, 2004), 37~39쪽.

지 공장의 80%가 폐쇄되었고, 많은 노동자가 직장을 잃어 실업률은 40%에 이르 다. 식량을 생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농약, 화학비 료, 트랙터 연료 등 생산자재의 부족도 심각한 상태 다. 1989년에는 130만 톤 이상의 화학비료, 1만 7,000톤 이상의 제 제, 1만 톤 이상의 농약이 수입되었지만 1992년에는 화학비료는 23% 었고, 살충제는 60% 이상 감소했으며, 가축사료도 200만 톤에서 47만 5,000톤으로 었다. 석유 부족으로 1991년 11월에는 이미 농업용 트랙터의 12% 가 가동되지 못했고, 결국에는 반가량을 가동할 수 없게 되었다.[6]) 한 연료 부족으로 개용 펌 와 콤바인도 정지해버렸다. 이 게

하여 농업 생산은 1992년에 10%, 1993년에는 23%, 1994년에는 1990 년 기 으로 55%까지 감소했다.[7])

이 게 하여 식량 기가 나라 체를 흔들었으며, 카스트로(Fidel Castro)는 ‘평화시의 특별 기간’, 곧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나라를 시의 경제통제 아래 두었다. 아사자가 속출할 기의 순간 아바나 시민이 선택한 비상 수단은 도시를 경작하는 것이었다. 일명 ‘도시농 업’이 시작되었다. 국가가 시민에게 국유지를 빌려 으로써 1993년부 터 시작된 이 제도를 통해 도시의 버려진 땅이 개간되고 쓰 기장이 채소밭으로 변모하기 시작하 다. 이로써 아바나시에만 3만 이상의 공동체 텃밭이 생겨났고 역에 100만 이상의 공동체 텃밭이 생겨났

다. 이 텃밭은 식량 생산이 최우선으로 되었다.[8]) 그리고 도시농업은 화학비료나 농약의 부족으로 자연스럽게 유기농업으로 진행되었다. 화학비료는 지 이를 이용한 퇴비로 체되고 화학농약 신 미생물 농약이 이용되었다.

도시농업 운동은 결국 쿠바의 규모 국 행농업체제를 소규모

가족농 심의 유기농업 체제로 환시켰다. 규모 국 농장은 부 분 개별 가족농과 동 경 으로 쪼개져 철 히 지역 자원의 재활용 과 순환농법 그리고 자연생태계 과학기술과의 연계에 바탕을 둔 21세기형 유기농운동이 개되었다.[9]) 이 게 하여 사탕수수와 방 목지를 제외한 약 190만 헥타르 경작지의 [10]할이 유기농업이나 농약 화학비료를 폭 인 환경보 형 농업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경제 기 이 에 130만 톤 가량 수입되던 화학비료도 2001년에는 약 16만 톤만 수입되고 농약 역시 같은 해에 1,900톤밖에 사용되지 않았다.[11][12]) 이와 같은 농업개 의 과정을 거쳐 결국 쿠바는 식량자 률이 유기농

업 운동 시작 이 의 43%(1990년)보다 훨씬 높은 95%(2002년) 수 을 달성하기에 이르 다.14)

쿠바가 유기농업에 불리한 자연 조건을 가졌음에도 단기간에 성

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술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쿠바는 1959년 명 이래 학까지 무료 교육제도를 확립하 고 농업 련 연구기 이 33개에 이르는 등 인재 육성에 힘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수많은 연구자들이 유기농업의 기술 개발에 동원되었고, 연구자들은 탁상공론이나 실험에만 의존하지 않고 각지의 농민과 얘 기를 나 고 장에서 최첨단 바이오기술과 재래농법을 결합시켜 자 재가 부족한 가운데서 실천 가능한 정기술을 개발하는 데 매진했다. 그 결과 지 이를 이용한 퇴비 만들기, 미생물 비료의 개발, 천 을 활용한 해충 방제, 각종 곰팡이나 식물 엑기스로부터 얻은 바이오 농 약, 먹고 남은 음식을 사료로 용한 순환형 축산 등 각가지 유기농법 기술이 개발되었다.

하지만 쿠바의 식량 기 극복을 단순히 농방식을 행농업에서 유기농업으로 환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투입 생태 생산방식으로 농업을 개편한 쿠바 정부는 1993년 반에 이르 러 복잡한 실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수입 농자재의 부분을 입수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당시 체 농지의 20%정도를 차지하던 소농 부 문은 높은 효율을 내며 투입 생태 농업에 응해간 반면 체 농 지의 80%를 차지하는 집단 부문(국 농장과 동농장 포함)은 새로운 체 농법에 잘 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1993년 9월 쿠바 정부는 효과 인 유기농업에 필수 인 소규모 경 단 를 조직 하기 해 농업생산체계를 근본 으로 개편했다. 이 개편의 핵심은 국 농장을 농장 노동자들에게 실질 으로 넘기는 것이었다. 국 농 장을 폐지하고 이를 노동자들이 소유한 기업 는 동조합인 UBPC

(unidades basicas de produccion cooperativas, 동생산 기 조직)로 개편했

다. UBPC는 정부에 의무 으로 주(主)작목 일정량을 납부하기만 하면 나머지 농산물은 농민의 몫이었고, 농민들은 과생산한 농산물 을 농민시장에 매하 다.[13]) 이처럼 쿠바의 유기농업으로의 환과 식량 기의 극복 배경에는 농기술 인 측면에서의 환뿐만 아니 라 집단농장의 구조 개편이 함께 병행됨으로써 가능했음을 간과해 서는 안 된다. 특히 이것은 최근 북한 정부가 강조하는 유기농업 정책 이 과연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한 근본 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 임시방편의 정책 제안으로 그칠 것인가를 평가하는 데 요한 시사 을 제공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를 토 로 쿠바의 유기농업이 성공한 요인을 요

약해보면 첫째, 사 경 을 허용한 가족농 심의 토지개 , 둘째, 직거래 유통 심의 시장개 (농민시장의 개설), 셋째, 지 이 분변토, 토상농법, 각종 토착 미생물과 생약 천 개발 보 , 실용 인 흙살 리기운동, 넷째, 유축농법 등 지 자원의 재활용과 윤작, 간작, 휴경 작 등 순환농법의 정착, 다섯째, 통농업 기술 자재의 생물학 과학기술과의 성공 인 결합, 여섯째, 농민참여하의 장 연구와 농가 응시험의 시 등이라고 할 수 있다.[14]) 쿠바의 유기농업의 시 작은 ‘강제된 선택’이었지만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 쿠바 시민의 자발 참여, 일반 소비자의 호응,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국의 과 학자와 연구기 의 합작 등으로 인해 성공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 다.[15]) 이로써 쿠바는 과감히 근 화학농업을 버리고 친환경 유기농 법을 선택함으로써 환경생태보 과 생산성 향상―요약하면 지속 가능 한 발 ―이라는 21세기 인류 사회가 직면한 시 과제를 성공 으 로 해결할 수 있는 발 을 만들었다.

쿠바의 유기농업을 매우 높게 평가하면서 한반도의 용 가능성을 극 으로 주장하는 김성훈은 한편으로 화학농업에 들어 국민의 건강과 생명, 그리고 환경생태계의 극심한 오염에 시달리고 다른 한편 으로 수입 개방으로 쓰러져가는 남한의 농업에, 그리고 아직도 ‘우리 식’ 주체농법의 통제하에 수백만의 아사자를 배출하고 있는 북한의 농업 모두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고 주장한다.18) 한 그는 남북한이 력하고 친환경 인 유기농업을 통해 북한이 식량 증산과 국민건강 환경보 을 장기 으로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면서 남북한 간의 농업 력 분야의 하나로 친환경 유기농업의 자재, 기술, 그리고 가공 유통 분야의 력을 요한 의제로 제안한다.

김연철은 쿠바의 사례를 두 가지의 측면, 즉 집권 농업체제의 개

모델이라는 과 유기농법이라는 에서 북한 농업개 의 방향을 망하는 데 주목하 다. 그는 북한이 당분간 정치 필요로 인해 앙집권 농업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면서 인센티 강화와 분권화, 그리고 농민시장의 허용 등을 요지로 하는 쿠바의 국 농장체계의 개 편이 실 으로 북한 농업정책에 주는 시사 이 크다고 하 다. 동시 에 장기 인 농업발 목표로서 기계화를 심으로 한 집체농업의 한 계를 지 하면서 에 지의 부족과 농자재 련 산업의 침체 등을 고 려할 때 쿠바와 같이 유기농업으로의 환을 제안한 바 있다.19)이와 함께 그는 남북한의 유기농업 력 방안에 한 극 인 모색의 필 요성을 제안한다. 구체 인 방안으로 미생물 비료를 포함한 바이오



18) 의 , 5쪽.

19) 김연철, “집권 농업체제의 개 : 쿠바의 농업개 이 북한에 주는 시사 ,”

󰡔북한연구󰡕, 제5권 제2호(2002), 136~137쪽.

농업의 기술과 재래 농업의 특징을 결합한 공동 연구와 통일 이후를 비해 북한 지역을 유기 농업 지역으로 육성하는 농업분업체계의 형 성 필요성을 제시하 다.[16]) 김연철의 논문은 쿠바의 유기농업에 한 구체 인 서술이나 북한의 유기농업 환 가능성 등의 서술까지는 진 척되지 않았지만 남북한의 유기농업 력 방안이나 한반도 통일농업 의 방향성 차원에서 북한 지역의 유기농업 육성을 제기했다는 은 주목할 만하다.
3. 북한 문헌에 나타난 유기농업에 관한 담론 구조의 진화

처음부터 북한의 유기농법이 정책 으로 구체화되었던 것은 아니 다.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한 응 수단으로 개별 으로 추진 되던 농업정책이 장기화되면서 구조 으로 순환 생산방식과 연계 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1990년 경제 기가 발생한 기에는 화학비료와 농자재의 부족으로 인해 과 옥수수의 생산 이 부족해져 그것을 보충할 감자의 증산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유기농 법 방식이 단편 으로 고안되었다.

김정일은 감자농사를 잘하면 식량문제뿐만 아니라 고기문제도 풀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것은 농장 안에 돼지공장을 건설하여 감자를 가공하고 나오는 꺼기로 돼지를 사육하고, 돼지를 기르면서 나온 물거름을 다시 감자농사에 쓰는 ‘순환 ’ 생산방식을 의미했다. 창 기에는 이것이 바로 홍단식 감자농법의 핵심으로 두되었다. 김정 일은 홍단군의 감자농사 지 지도에서 “이제 홍단군에서는 감자 를 가지고 돼지를 길러 돼지 부자가 되며 흰 밥에 고깃국이 아니라 감자에 돼지고깃국을 먹게 만들어야 한다”21)고 언 하면서 홍단군 종합농장의 매 분장마다 돼지공장을 하나씩 지어 돼지와 감자가 연 된 순환생산 구조를 조성할 것을 주문하 다. 이것은 농업생산 구조의 변화가 주민들의 식생활 구조의 변화까지 동반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다. 최근에 조선로동당에서 발간한 경제이론 해설서 역시 “의 감자농사는 반드시 축산과 배합하여야 한다”22)고 강조 하 다. 따라서 감자증산정책과 더불어 새로운 생산방식의 축산업이 육성되기 시작했다.

이어 양어 분야가 축산업과 연계되었다. 2000년 5월의 담화 “양어

를 과학화, 집약화할데 하여”에서 김정일은 김일성이 풀과 고기를 바꾸라고 했듯이 자신은 “풀과 고기를 바꿀 뿐 아니라 강냉이와 물고 기를 바꾸어야 합니다”23)라고 강조하면서 양어업을 발 시켜 인민의 식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구하 다. 한 북한 당국은 2001년 에 양어법을24) 개정하여 양어사업을 체계 으로 육성할 수 있는 제도 기반을 마련하 다. 인공 양어 수역보다는 하천, 호수, 수지, 물 웅덩이, 개용 물길 등과 같은 자연 수역을 이용한 양어사업이 입지 조건이 유리한 각 농장과 연계되어 추진되고 있다. 당 김정일은 곡



21) 김재호, 󰡔김정일강성 국건설 략󰡕(평양: 평양출 사, 2000), 141쪽.

22) 서재 외, 󰡔우리 당의 선군시 경제사상해설󰡕(평양: 조선로동당출 사, 2005),

142쪽.

23) 김정일, “양어를 과학화, 집약화할데 하여,” 󰡔김정일 선집󰡕, 제15권(평양: 조선로동당출 사, 2005), 53쪽.

24) 양어법은 1998년 12월 18일 최고인민회의 상임 원회 정령 제288호로 처음 채택되었다.

물과 물고기를 바꾼다고 했지만 곡물사료의 부족으로 체사료로 개 발된 미생물 번식에 가축 배설물이 필요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양어 장은 농장 안에 조성되었다. 농장의 양어장에서 길러진 물고기는 탁아 소, 유치원, 농장원 세 에 공 되었다.

양어업에서 ‘동물성 먹이’의 확보는 양어업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요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북한 당국은 동물성 먹이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축산업에서 찾았다. 󰡔로동신문󰡕(2005.7.26)은 메기 양 어를 으로 발 시키기 해서는 먹이문제를 ‘우리식’으로 해결 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 방법은 메기공장이 치한 시·군의 농목장에 서 나온 단백질 부산물, 즉 가축의 배설물을 메기공장에 보내는 것이 라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민주조선󰡕(2005.12.16) 역시 황해남도 청 단군 갈산 동농장의 양어장(10개) 사례를 들며 양어장 주변에 농장의 비육 분조를 비롯한 축산시설을 배치하여 가축 배설물로 물고기 먹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즉 가축 배설물은 양어의 먹이가 되는 미생물을 번식시키는 데 요한 원료가 된다.

북한의 표 인 축산 문 동농장의 하나인 황해북도 은정축산

문 동농장에서는 2006년 8월에 양어장 공식을 진행하 는데, 무 려 6정보 면 에 양어못 35개를 조성하 다. 은정 양어장은 축산업과 양어사업을 유기 으로 결합시킨 표 인 모델이다. 송화메기공장 역시 축산과 연계하여 메기를 생산하고 있다.[17]) 양어업은 1998년 12 월에 채택된 양어법 제44조 “해당기 , 기업소, 단체는 양어 수역에서 미생물 번식에 리용할 수 있도록 집짐승 배설물 같은 것을 보장하여 야 한다”고 명시한 것처럼 애 부터 축산업과 연계해 계획한 것은 사 실이지만 두 부문의 연계가 실화된 것은 2000년 반에 들어서이

다. 새로운 방향의 축산업이 발 하면서 물고기 먹이 역시 안정 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 농업은 감자+축산+양어 등이 유기 으로 결합된 순환 생

산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와 같은 순환 농업생산 구조가 처음부터 계획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1990년 후반에는 축산, 양어, 감자농 사 부문이 각각 개별 인 증산정책으로 시작되었지만 2000년 에 들 어서는 세 부문이 상호 연계 인 생산구조로 발 했다. 순환 농업생 산 구조는 동물성 단백질 섭취량의 확 주식의 다종화 방향으로 식생활 구조를 개선하고, 화학비료의 부족 심각한 토지의 산성화 등과 같은 취약한 농 조건하에서 가능한 체 생산방식을 고안한 데서 형성되었다.

순환 농업생산 구조의 강조는 단순히 증산 차원을 넘어 식생활 구조의 환과 연계되며 정책의 범 가 확장되었다. 오랫동안 다각 농이 제한되고 벼과 옥수수 심의 작부체계는 주민들의 식생활 구 조를 주식 주로 바꾸어놓았다. 경지의 부분이 벼와 옥수수 재배에 돌려졌기 때문에 부식물 생산과 공 이 충분하게 되지 않아 불균형 인 식생활 구조를 래하 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해서는 주식 소비를 이고 부식물 소비를 늘리는 식생활 구조의 개선이 필요했 다.[18]) 김일성 시 에 이상 인 식생활로서 ‘흰 밥에 고깃국’이 지향 되었다면, 김정일 시 는 ‘고깃국에 흰 밥’을 지향했다. 따라서 1990 년 말부터 2000년 최근까지 북한 당국이 농업 부문에서 주력하고 있는 닭·오리공장, 염소목장, 돼지공장, 메기 양식장 등의 신설 는 개건 화 사업, 그리고 감자농사의 확 는 바로 식량문제 해결과 함께 식생활 구조의 개선이라는 두 가지 목 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1996년 4월 당 앙 원회에서 김정일이 농업생산 구조의 개선을 언 한 이후 ‘집짐승(식 가축)’ 심의 축산업과 메기, 잉어, 송어 등 민물고기 심의 양어사업이 국 인 군 운동으로 개되었다.

한 식생활 구조의 개선은 기존의 과 옥수수 심의 주식 구성

에서 감자의 비 을 늘리는 것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서,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식생활 구조를 바꾸기 해서는 먼 주식원을 다종화할 필 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과거에는 과 옥수수가 주식물이었다면 이제 는 과 옥수수와 함께 감자를 제3의 주식물로 만들려는 것이다. 양강 도, 자강도, 그리고 함경도와 같은 고산지 와 내륙지 는 기후와 토 지의 조건상 과 옥수수를 많이 생산할 수 없다. 반면 감자는 내한성 과 내병성이 강하여 의 지역에서도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 따라 서 감자의 증산은 북한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요한 안 으로 떠올랐다. 특히 ‘고난의 행군’ 이후 감자가 제3의 주식원으로 주 목을 받게 된 데는 화학비료가 으로 부족하고 토지의 산성화가 매우 심각한 농환경 요인들도 크게 작용하 다. 일반 으로 감자 는 벼나 옥수수보다 비료의 소비량이 으면서도 단 당 소출량이 많 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자를 주식원으로 하는 감자 증산은 식생활 구조와 농업생산 구조의 변화를 동시에 수반하 다.27)



27) 이상에서 서술된 북한의 순환 농업생산 구조에 한 은 정은미 , “북식량 자원의 사회 분배효과와 ‘순환 ’ 농업생산구조,”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

북한 당국이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친 후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해 새로운 농업정책을 내놓은 것은 2003년 5월 21일 김정일 국방 원장이 조선노동당 앙 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우리 당의 농 업 명방침을 철 히 철할데 하여”에서이다. 하지만 이 담화에서 직 으로 유기농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고 유기농업의 구 체 인 방법에 해서 언 하 다. 이 담화에서는 지 까지 농 에서 주로 화학비료에 의존하여 농사를 지어온 실태를 지 하면서 “화학비 료를 많이 쓰면 부침땅이 산성화되고 생태환경이 괴되게 됩니다”라 고 하면서 국제사회에서 확 되고 있는 유기농업의 추세에 해 언 하 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는 화학비료를 게 쓰고 미생물비료와 유기질비료를 가지고 농사를 짓는 로 방향 환을 하여야 합니다”28) 라며 유기농업으로의 환 필요성을 부분 으로나마 제시한 바 있다.

북한 당국이 국정운 의 방향에서 유기농업을 처음으로 언 한 것

은 2010년 신년 공동사설 “우리는 ‘당창건 65돐을 맞는 올해에 다시 한 번 경공업과 농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에서 결정 환을 이룩하자!’는 구호를 높이 들고나가야 한다”에서이다. 이 사설에서 2010년을 “경공업과 농업을 인민생활향상을 한 투쟁의 주공 선” 으로 설정하고 농업 생산을 늘리기 한 실천 방법의 하나로서 “주 체농법의 요구를 철 히 지키며 유기농법을 비롯한 새로운 농방법 과 농기술을 극 받아들여야 한다”고 언 하 다.

유기농법에 한 북한 당국의 심은 2011년 신년 공동사설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이 사설에서는 “농업 선은 인민생활문제해결의 생명



논문집󰡕, 제12호(2009), 120~137쪽을 발췌한 것이다.

28) 김정일, “우리 당의 농업 명방침을 철 히 철할데 하여,” 󰡔김정일선집󰡕, 제15권(평양: 조선로동당출 사, 2005), 415쪽.

선”이라며 농업 생산에 변 을 일으키는 것은 “강성 국의 문을 열 기 한 건 고리”라고 강조하 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설은 농업 생산을 올리기 한 실천 방침으로 “당의 종자 명방침, 두벌농사 방침, 감자농사 명방침, 콩농사방침을 철 히 철하고 유기농법을 비롯한 선진 농방법과 기술을 극 받아들여야 한다”고 언 하 다.

이후 유기농법은 유기산업이라는 더 넓은 범주에 포함되어 언 되 곤 하 다. 북한 당국이 추진하는 유기산업이 구체 으로 언 된 문헌

은 경제 련 문학술지 󰡔경제연구󰡕(2011년 1호)에 실린 리 일의 논 문에서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유기산업법은 2005년 11월 23일 최고 인민회의 상임 원회 정령 제1396호로 채택되었다. 이 법의 문은 제5장 제39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기산업법의 목 을 “유기제품의 생산과 품질인증, 수출입에서 제도와 질서를 엄격히 세워 인민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국토와 생태환경을 보호하는데 이바지한다”(제1 조)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유기산업에 한 정의를 “화학 인 방 법으로 합성하여 만든 비료, 농약, 사료, 수의약품, 원료, 자재, 가공첨 가제 같은 것을 거의 쓰지 않고 인민들의 건강 증진에 유익한 농산물, 수산물, 목제품, 식료품, 의약품, 화장품, 공 품, 방직 피복제품 같은 것을 생산하는 경제 부문”(제2조)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유기 산업은 유기농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제 친환경 제품 생산을 포 한 다. 하지만 의 리 일 논문에서 “사회주의 유기산업의 발 이 경제 강국 건설을 물질경제 으로 담보하게 하자면 우선 나라의 식량문제, 인민들의 먹는 문제부터 푸는 데 힘을 집 하여야 한다. 농업에서 기 본은 알곡 생산이며 알곡 생산을 늘여 식량문제를 푸는 것은 경제강 국 건설에서 선차 으로 나서는 미의 문제라고 할 수있다”29)라고 언 되어 있듯이 유기산업법의 실 용은 농업 분야, 특히 식량문 제를 해결하는 것과 [19] 히 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논문에서도 유기산업의 발 이 실제로는 식량문제의 해결

과 히 연계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손리학의 논문은 비료와 농자재의 생산 수송원가가 증가하고 있으며 기후 변화에 의한 흉작과 인구의 속한 증가, 농경지의 사막화 진, 그리고 식량가격 의 상승 등과 같은 환경에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한 방법의 하나 로 녹색자원의 극 인 개발과 이용을 제시한다. 우선 논문은 북한에 서 녹색자원의 개발과 이용이 “단백질 문제를 해결하며 특히 식량문 제를 푸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을 주목한다. 이어 논 문은 “알곡 주의 식생활 양식을 고칠 수 있게 단백질 식품문제를 풀게 되면 식량문제를 푸는 데서 환을 가져올 수 있으며 인민생활 을 좀 더 향상시킬 수 있다. 이로부터 록색식품의 개발과 리용문제는 우리나라 유기산업발 의 요 요구로 나선다”[20])라고 서술하고 있다. 나아가 논문은 녹색상품의 개발과 이용이 사회경제생활에 미치는 정 인 요인으로 첫째 “그것이 생태환경을 보호하고 그의 지속 인 발 을 보장하는 데 극 이바지한다는 것”[21])이라고 설명한다. 둘째 요인으로는 “순환경제의 발 을 진시켜 경제를 끊임없이 발 시킬 수 있게 한다는 것”이라며 이어 여기서 순환경제란 자원을 반복 이용 하는 경제로, 다시 말해 생산과 폐설물의 종합 이용을 결합시킨 경 제체계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세계 인 추세가 녹색기술에 한 연구 와 개발 비용이 매년 10%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일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녹색 명의 명목하에 막 한 양의 알곡을 생 물 원료로 환시켜, 한편으로는 세계 인 식량 기를 조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발 도상국가들을 통제하는 무기로 식량을 이용하고 있 다며 비 한다. 한 북한 당국이 추구하고자 하는 녹색상품의 개발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알곡작물로 생물 에 지를 개발하는 신에 비알 곡작물로 생물 에 지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북한 문헌에서 언 되는 순환생산 는 순환경제 용어는 쿠바의 유 기농업 특징 하나인 지역 내 자원의 재활용과 순환농법을 떠올리 게 한다. 쿠바의 경우, 교외의 축산 농가에서는 도시의 스토랑, 호 텔, 학교 등에서 나오는 음식물 꺼기를 가공 처리하는 등 도시에서 배출되는 유기성 폐기물이 모두 농사에 재이용된다. 분뇨도 간단한 메탄가스 발효장치에 의해 에 지로 활용되는 등 지역 내 자원이 재 활용되고 있다.32)

마지막으로 2012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북한 당국은 다시 유기농 업을 언 함으로써 2010년부터 3년 연속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유기 농업의 요성을 역설하 다. 이 사설에서는 “ 시기 인민들의 먹는 문제, 식량문제를 푸는 것은 강성국가 건설의 미의 문제”라고 하면 서 “농산과 축산을 결합하는 고리형 순환생산체계와 우리식의 유기농 법들을 극 받아들이며 농업생산 목표수행에 필요한 농물자와 설 비들을 수요 로 제때에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 다. 다만 기 존과 달리 2012년 신년 공동사설에서는 ‘우리식의 유기농법’이라는 수식어구가 붙었다는 이 차이라면 차이일 수 있다. 이후 사회과학



32) 요시다 타로(吉田太郞), “유기농업으로 나라가 변한다,” 107~136쪽.

련 북한의 공간 문헌에는 종종 고리형 순환생산체계나 유기농법에 한 이 등장하기 시작하 다.

우선 고리형 순환생산체계에 한 구체 인 내용은 2012년 5월에

발간된 󰡔사회과학원학보󰡕에 실린 리민재의 논문을 통해 어느 정도 악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고리형 순환생산체계는 서로 련 되는 생산공정, 부문들의 생산물이나 부산물, 지어 폐설물까지도 원료, 자 재로 리용할수 있게 하는 생산체계”[22])라고 하며, 이러한 생산체계의 장 으로 첫째, 추가 인 투자 없이 기존의 생산기반으로 증산할 수 있어 좀 더 큰 실리(수익)를 낼 수 있다는 , 둘째, 세계 으로 천연자 원이 고갈되고 있는 기 상황에서 자원의 재활용성을 높여 지속 가능 한 경제발 을 할 수 있다는 , 셋째, 자연생태환경의 괴를 방지하 고 훌륭한 생활환경과 경제의 지속 발 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다는 등을 제시한다. 그리고 첫 번째 장 의 실례로 “농산과 축산을 유기 으로 결합시킨 고리형 순환생산체계하에서 축산 부문은 조성되는 유기질 원천으로 농산 부문에 필요한 유기질비료의 생산을 최 한으 로 늘릴 수 있게 하며 농산 부문은 축산 부문에 필요한 사료를 좀 더 게 히 생산 보장할 수 있게 하여 총체 으로 추가 인 투자 없이 같은 생산 조건에서 농산과 축산을 다 같이 빨리 발 시킬 수 있게 한다”[23])고 설명한다. 이처럼 고리형 순환생산체계는 단순히 농 업 부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농·축산업 부문을 포함한 체 산업 부문에서 자원의 부족 상황을 타개하기 한 안 인 생산방식의 하 나로 제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리형 순환생산체계가 오랜 경제 쇄로부터 부족해진 경제 자원의 기 상황을 극복하기 한 체요 법으로 제안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논문에서 “이미 마련된 생산 토 에 기 하여 생산을 최 한으로 늘리며 자원 기와 환경 기를 극복하 고 경제의 지속 발 과 사람들의 생활환경을 다 같이 보장한다는 데 고리형 순환생산체계의 확립이 갖는 거 한 사회경제 의의가 있 다”35)고 언 한 것은 시 에서 세계 인류사회가 공통 으로 고민하 는 문제의식을 북한 역시 공유하고 있다는 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 다면 2012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언 된 ‘우리식의 유기농법’ 이란 무엇일까? 2012년 4월에 발간된 󰡔김일성종합 학학보: 철학, 경 제학󰡕 제58권 제2호에 실린 김 길의 논문 “유기농업의 정보화의 기 본 내용과 그 실 을 한 요구”에서 ‘우리식의 유기농법’과 련된 흥미로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 논문은 “나라마다 경제 리체계와 농업 리체계가 다르고 유기농업이 진행되는 환경과 구체 조건과 방법이 다르며 유기농업 생산과 리에 정보기술 수단을 용하는 목 과 조건에서도 차이가 있다”36)며 유기농업정보체계의 로그램을 “우리식으로 개발하는 문제는 우리식의 유기농업발 과 유기농업 정 보화를 실 하는 데서 건 문제”37)라고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북한의 유기농업에 한 심은 농업 증산

을 한 수단의 하나로 시작하여 유기산업법의 제정와 같은 제도화 수 까지 진행되어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북한의 유기농법 정책에 한 구상과 체계가 구체화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특히 2000년 이



35) 의 , 45쪽.

36) 김 길, “유기농업의 정보화의 기본내용과 그 실 을 한 요구,” 󰡔김일성종합 학학보: 철학, 경제학󰡕, 제58권 제2호(2012), 124쪽.

37) 의 , 127쪽.

에는 화학비료를 비롯하여 농자재가 부족한 상황에서 과 옥수수 의 부족을 메워 감자의 증산을 강조하면서, 그리고 다음에는 화학비 료를 체할 재래식 방법으로 생산된 유기질비료를 생산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순환 ’ 생산방식이 고안되었고 그것이 다시 식생활 구조 의 명과 연계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농업 증산과 생태환경의 보존 문제의 동시 해결이라는 논리 구조로 진화했다.
4. 북한 유기농업의 실태와 한계

북한 정권이 유기농법에 심을 갖던 창기에는 화학비료를 체 할 유기농비료를 자체 으로 개발하는 데 역 을 두었다. 유기산업법 이 제정되고 농업이 ‘주공 선’으로 선언되었던 2005년에 북한의 <조선 앙통신>은 “과학원에서 미량원소 복합비료를 연구·완성했 다”며 “이 비료는 붕소·아연·구리 등 필수 미량원소를 보충해 으로 써 식물의 활성을 높여주고, 합성과 양물질 합성 등 물질 사 과 정에 원만히 진행되게 한다”고 소개하며, 이와 함께 함경북도를 비롯 한 각지 주민들은 농사에 비료로 사용하기 해 이탄 캐기에 주력하 고 있다는 소식을 했다. 이탄은 늪지 등에 서식하던 갈 류나 이끼 류의 식물이 죽은 뒤 땅 속에서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고 남은 부분으 로 형성된 것으로 비료로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통신은 비료뿐 아니 라 화학공법이 아닌 친환경 방법으로 만들어진 농약도 자체 개발하 다고 했다. 과학원 함흥분원 유기화학연구소가 개발한 이 새 농약 은 특히 콩과 과수에 효과가 있다고 방송은 소개하고 있으며, 생물 분원 과학자들이 개발한 식물성 농약은 화학농약을 사용하지 않고도

<표 1> 경제 기 이 과 1998년도의 농업동력 비교


구분

기 이

1998년




동력 종류

가용량

사용 메가와트

비율

(%)

가용량

사용 메가와트

비율

(%)


사람

3.4백만

254

9

4.4백만

328

27


축력

80만 마리(소)

418

14

80만마리(소)

418

35


트랙터

70만

1,947

67

20만

418

35


기타 기계

8만

(소엔진모터)

284

10

2만

(소엔진모터)

44

3


합계



2,902

100



1,209

100


자료: Daud Kahn, “북한 농업 하부구조 복구 개발 방안,” 󰡔북한 농업개발을 한 력 방안 모색󰡕, 한국농 경제연구원 국제학술 회(2000.11.1), 64쪽.

병충해의 피해를 입지 않게 했으며 소출도 18~20% 증가하게 했다고 했다.38)

1990년 반 탈냉 이후 사회주의진 으로부터 화학비료나 농 약, 비닐, 농기계의 연료와 부품 등 요한 농자재의 수입이 크게 면 서 불가피하게 북한의 농업은 <표 1>에 나타나듯이 기존의 행농 업이 크게 후퇴하고 통 인 재래식 농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경제 기가 발생하기 이 의 주요 농업동력은 트랙터로 체 동력의 67%를 차지하 다. 반면에 사람과 축력의 의존도는 각 각 9%, 14%에 불과하 다. 하지만 1998년에는 트랙터의 비 은 35% 로 크게 감소하고, 그 신 사람과 축력의 비 이 각각 27%, 35%로 크게 증가하 다.

농기계를 신하여 사람과 축력에 한 의존도가 높아진 것뿐만 아

니라, 화학비료 신에 가축 배설물이나 인분 등을 이용한 거름이나



38) 󰡔연합뉴스󰡕, 2005년 7월 6일.

퇴비와 같은 자 비료의 사용도 크게 증가하 다. 이와 같은 농환경 의 변화는 북한의 공간 문헌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비료와 연유, 비닐박막들이 계획 로 공 되지 않는다니 어떻게 하 면 좋은가. 부족되는 량을 어떻게 자체로 해결한단 말인가.) 생각다못해 그는 다음날 진거름 달구지를 끌고 20여 리 떨어진 읍에까지 갔다 왔다. 그날 녁 그는 작업반장들을 모아놓고 이 게 말했다.

“비료는 자체로 해결합시다. 읍에서 진거름만 다 날라와도 상당할 것

같소. 세 당 계획된 퇴비도 무조건 생산하게 하고……자 비료 반출 엔 연유가 부족한 만큼 뜨락 르 신 달구지와 손수 들을 총동원시킵

시다. 웬만한 소에는 모두 보습을 메워 논밭에 내보내고 그래도 안되면 모두가 삽을 들고 떨쳐나섭시다.”(략)

인호는 이삭비료를 얻으려 군은 물론 도농 경리 원회나 농업 원

회까지 뛰여나갔다. 웬만큼 아는 사람들은 다 만나 사정을 하 지만 찾 아가는 사람마다 몹시 딱해하며 빈 손바닥을 내보일 뿐이 다. 하긴 그 들이라고 사정이 다를 리는 없었다.39)

의 인용문에서 나타나듯 심각한 경제 기 속에서 북한 농 은

불가피하게 기존의 행농업 방식을 버리고 통 인 재래식 농경 방 식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이 게 회귀한 농경 방식은 장기화된 경제 침체 속에서 북한 농 에서 일상화되었다. 그리고 앞 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러한 농경의 변화는 2000년 이후에 유기농법이라는 이름 으로 하나의 요한 농업정책으로 발 하기에 이르 다.



39) 김혜 , “원한 노을,” 󰡔조선문학󰡕, 제4호(2004), 36쪽.

유기농법에 한 북한의 기 심은 부족한 화학비료를 체할

친환경 방법의 유기비료를 자체 으로 개발하려는 데 집 되어 있 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북한은 외부 세계의 유기농업의 기술에 심을 갖으며 유기농업에 한 심의 폭을 넓 갔다. 농림부 장 출신인 김성훈 교수의 언에 의하면, 그가 캐나다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청으로 밴쿠버에 머물고 있던 2002~2003년에 북한 농업과학원 평양 농과 학 표 일행 4명이 UBC의 청으로 캐나다의 유기농법을 연수했다. 그리고 김 장 이 캐나다에서 만난 북한 농학자와 농업 부문 고 료들은 화학비료와 농약의 조달이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북한 농업을 친환경 농법방식으로 환하는 방 안에 해 고심하고 있었다고 한다.40)

하지만 외부 세계로부터 유기농법과 련된 기술을 배우려는 가시 인 움직임은 2011년부터 본격 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독일

의 민간단체 한스 자이델 재단(Hanns Seidel Foundation)의 웹 소식지에 따르면, 2011년 5월, 한스 자이델 재단의 표단은 북한의 나선시에 있는 동물 육종농장(나선시 청계농장)과 곡식농장(선 시 운성농장) 두 곳을 방문했는데, 특히 농장 표자들에게 농업 문학교를 통해 유기 농 농업훈련을 수행하는 데 동의했다. 이 재단의 소식지는 북한에서 유기농업은 화학비료와 해충제의 부족으로 매우 요한 문제가 되었 으며, 재단이 유기농업에 련된 과학 교과서 업무를 평양에서 수행했 다고 했다.41)

김정은 국방 원회 제1원장이 집권한 첫해인 2012년에는 유기농



40) 김성훈, “식량난 북한, 환경난 남한, 쿠바 유기농업 벤치마킹 하라,” 󰡔신동아󰡕, 통권 542호(2004년 11월호), 474~482쪽.

41) http://www.hss.or.kr/A1286Korean.html

과 련된 외부의 선진 농방법과 기술을 배우기 한 시도가 활발하 게 이루어졌다. 2012년 1월 신년 공동사설에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한 방법의 하나로서 유기농의 극 인 도입이 언 된 직후 북한 과학원이 북한에서 처음으로 ‘유기농법 안내서’ 수천 권을 제작해 평 양 인민학습당과 김일성 학 등의 농업 련 학과와 각 도의 동농 장에 비치했다. 이 최 의 유기농법 안내서는 유럽의 한 민간단체의 도움을 받아서 제작·인쇄된 것이다.[24]) 유기농법 안내서의 인쇄를 담 당했던 민간단체의 계자는 최근 북한 당국이 유기농법을 극 으 로 권장하고 있다고 한 언론사의 인터뷰에서 했다.

이 밖에도 독일의 유기농연구소는 북한 농업지도자들에게 친환경

농법을 교육하는 동연구농장을 평양 인근에 운 이라고 밝혔다.

이 유기농연구소의 비아 테 후버(Vias Te Hoover) 변인은 “유럽연합 에서 약 50만 유로를 지원받아 올해부터 2014년까지 3년 계획으로 농업지도자 20여 명에게 유기농 수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했다. 이어 후버 변인은 “유기농연구소에는 독일 에서 견된 연구원 5명이 북한 농업과학원 산하의 유기조사연구원과 함께 약 30헥타르 규모의 농장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곡물을 재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25]) 이처럼 북한 당국이 유기농업에 한 심이 높 아진 배경에 해 외부 세계의 민간단체 계자들은 화학비료 부족과 토양의 산성화 등의 제약 속에서 농업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해 유 기농법을 극 장려한 것이라고 공통 으로 분석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북한의 유기농업 실태가 집단농업 부문에서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다른 한 축으로 북한 인민에 의해 자발 으로 이루어지는 유기농업 부문이 있다는 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이나 심지어 북한 문헌을 통해 북한의 도시 외 곽지역과 농 지역에서 개인농(는 가족농) ―그것이 불법 경작이든 합법 경작이든 상 없이―이 상당히 범 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텃밭이나 소토지와 같은 경지가 개인 농 는 가족농의 주요 기반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농의 경우 사실상 유기농법에 한 의존도가 높다. 화학비료 신 인분이나 가축 배설물을 이용한 거름 는 두엄 등이 주로 사용되며 틈틈이 김 매기, 제 작업, 해충 제거 등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생산성도 높은 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유기농법을 기반으로 한 개인 텃밭의 경작은 오랫동안 집단농장과 공존해온 북한 인민들에게 꽤 익 숙한 일상의 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재는 발간되지 않는 농근 맹 앙 원회 기 지인 󰡔농업근로자󰡕에는 1960년 반 농 의 텃 밭 경작 황을 자세히 묘사한 기사가 실려 길을 끈다.

룡강군 오신 동농장 제7작업반 김윤희농근맹원네 집에서는 마당 한 쪽으로는 남새를 심고 집 뒤와 집 에는 포도나무, 살구나무 등 과일나 무들을 보기 좋게 심어 놓았다. 텃밭에는 배추, 무우, 쥐무우, ( 와 가을 ), 근 , 부루, 마늘(풋마늘과 김장용 마늘), 오이, 고추, 호박, 박 그밖에 완두콩, 당콩, 올감자, 사탕수수 등 열다섯 가지를 심고 잘 가 꾸고 있다. 좁은 뜰 안에는 시 치를 심어 먹은 후에 배추를 심었고 그 뒤그루도 고추를 심었다는 것이다. 김윤희 농근맹원의 말에 의하면 온 가족이 아침 일 기 일어나 오 을 물에 타서 덧거름을 주는 일, 김매기 와 씨솎음, 벌 잡이를 하는데 이제는 아 습 이 되 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게 가꾸는 남새를 가지고 이른 부터 가을까지 떨구지 않 고 푸짐이 먹는다고 한다.44)

의 인용문에 묘사된 것처럼 농가에 딸린 텃밭은 유기농법에 의해

경작되며 부식물의 주요 공 원 역할을 한다. 한 생산성도 매우 높 음을 알 수 있다. 텃밭은 일반 으로 이모작 는 삼모작의 형태로 경작되는데, 주로 옥수수와 감자와 같은 알곡 작물이 함께 재배되고 추수 후에는 김장용 배추와 무가 심어진다. 이외에 콩(두부용)과 강낭 콩, 가지, 호박, 등 다양한 채소류를 함께 심으며, 특히 고추와 마늘 은 환 성이 높아 체로 시장 매용으로 심는다. 연구자가 심층 면 한 농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텃밭에서 나오는 생산물의 양은 텃밭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같은 면 비 집단농장의 경우보 다 게는 3배 많게는 10배까지 차이가 난다고 한다.

쿠바의 유기농업 경험과 비교해보면 북한의 유기농업 정책은 단순 히 농기술 인 측면에서 유기농업을 도입하려고 한다는 에서 근 본 인 차이 이 있다. 앞 에서 자세하게 살펴본 것처럼 쿠바와 북 한이 공통 으로 외 고립과 수입 농자재의 부족과 같은 유사한 상황 제약 속에 유기농업에 심을 돌렸다는 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쿠바가 식량자 을 성공 으로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유기농업으로의 농기술 환에만 국한하지 않고 집단농 업체제의 근본 개편과 농산물 유통시장의 개 등을 병행했기 때문 에 가능했다. 반면 북한은 집단농업체제는 그 로 유지하고 농기술 인 측면에서만 유기농법의 기술을 도입하려고 한다는 에서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갖고 있다.



44) 󰡔농업근로자󰡕, 1966년 7월 5일.
5. 나오며: 대안과 정책적 시사점

사실상 북한의 농업체계는 오랫동안 근 행농업과 가족농

심의 통 인 농업이 공존해왔다. 자는 국 농장과 동농장에서, 후자는 농 과 도시의 가구에 합법 으로 배정된 텃밭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공존은 북한에서만 발견되는 모습은 아니다. 󰡔이코노미 스트(The Economist)󰡕에 따르면, 세계 부분의 지역에서 행농업은 “불편하지만 통 농경 행 들과 동거”해왔다.[26]) 유엔의 식량농업 기구/세계식량계획(FAO/WFP)에 의하면, 2012~2013년 북한의 식량 작물 총 식부면 은 총 202만 5,000헥타르로 추정되는데 개인과 기 이 보유한 텃밭 2만 5,000헥타르와 경사도 15°를 넘는 산지에 조성된 비탈밭 약 55만 헥타르가 포함된다. 동농장의 농가는 최 30평의 텃밭을 경작할 수 있는데 약 170만 농가가 경작하고 있는 텃밭은 1만 7,000헥타르에 이른다. 430만에 달하는 도시 거주자들도 가구당

5~10평 정도의 소규모 텃밭을 소유하는 경우가 많다.[27])

북한의 텃밭과 비탈밭에서는 체로 가족농 심의 통 인 방식

의 농경이 이루어진다. 식량 사정이 좋았던 시기에는 주로 부식물의 해결을 한 주요 원천이었고, 1990년 ·반에 발생한 규모 식 량 기 시기에 텃밭과 비탈밭은 식량 기로부터 살아남는 데 매우 요한 역할을 하 다. 그리고 텃밭의 생산성이 국 농장 는 동농장 과 같은 집단농장의 생산성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은 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서 주목할 은 쿠바의 사례처럼 국가의 정책 환은 없었지만 이미 북한은 식량 부족을 타개하기 해 자발 으로 농 과 도시 모두에서 유기농법에 의거한 가족농이 십수 년 동안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자세히 살펴본 쿠바의 유기농업은 단순히 ‘무농약·무비 료’라는 소극 개념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환경의 지속 순환을 가 능하게 하는 생태문제를 이룩했다는 에서 인류문명 발달사

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으며, 자원의 지역 내 순환과 생산 생활양식의 변화를 통해 생태계의 지속성과 농업 생산성의 지속성, 그리고 생활양 식의 환을 동시에 이룬 “늘 푸른 농업 명”이라는 에서 한반도 통일 농업의 미래 비 으로서 충분히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할 수 있 다.[28]) 쿠바의 경험은 생태학 농업 기술에 바탕을 둔 ·소형 농장들 로 체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으며, 그 게 됨으로써 좀 더 자 인 먹거리 생산이 가능해진다는 을 시사한다.[29]) 이러한 안 농업은 쿠바의 경험에서도 입증되었듯이 식량 기와 경제 쇄에 직면한 북 한에도 충분히 용될 수 있다.

북한 당국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연속 신년 공동사설에서 유기농법을 거론한 것은 분명히 이례 인 것이다. 이것은 북한에서 유기농법이 요한 농업정책의 하나로 다루어지고 있음을 간 으

로 보여 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강조되고 있는 북한의 유기농업 정책에는 두 가지의 정치경제학 맥락이 작용한다고 해석 할 수 있다. 하나는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에 한 국제사회 의 경제제재가 쉽게 해제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비용·고투입의 행 농업은 실 으로 불가능하다는 단하에 쿠바의 사례와 같이 유기 농법이 북한에서도 농업 생산력을 최 로 끌어올릴 수 있는 실 인 안이 될 수 있다는 이다. 다른 하나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군사 긴장 고조로 인해 남북 계는 크게 경색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동 안 남한 정부로부터 받았던 규모의 화학비료나 농자재의 지원이 단되었다. 한 그동안 농업교류 력에 극 이었던 남한의 민간 단체나 지자체로부터의 지원도 단된 상태이다. 이러한 열악한 농업 환경에서 유기농법의 강조는 북한 인민이 농업 생산의 참여를 독려하 고 자력갱생의 구호를 철하는 새로운 정당성을 부여해주고 있다.

북한이 유기농업에 심을 보이는 상황에서 기존에 추진되어온 남

북한의 농업교류 력을 성찰하고 향후 방향성에 해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의 남북한 간 농업 부문에서 이루어진 교류 력의 방향은 주로 생산 효율성에 맞춰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이 식량 기 이 까지 고수해오던 화학화와 기계화를 기반으로 한 고도 로 집약화된 행농법의 복원이나 남한 행농법의 선진 농기술과 자원의 이 이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지난 시기 남북 당국 간에 합의 되고 진행된 농업교류 력 사업에서 한반도의 환경생태계를 유지하 는 지속 가능한 농업발 을 한 친환경 생산양식으로의 환과 같 은 통일된 한반도의 농업공동체의 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 정부 당국보다 더욱 활발하게 진행해왔던 민간 차원의 농업교류 력 역시 방향 교류 력보다는 북한의 농업 생산성 향상을 해 남한 의 물자와 기술을 일방 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한 지원 사업의 내용 역시 결과 으로는 이모작(두벌농사) 확

, 감자농사 명, 종자 명 등과 같이 북한의 농업정책 요구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동안 정부,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차원 에서 이루어진 모든 남북 농업교류 력에는 통일될 한반도의 농업 공 동체의 비 , 목표, 방향 등에 한 의 과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연 지 까지 추진해온 방식 로 남북한이 농업교류 력을 지속 한다면 궁극 으로 북한의 자립 인 농업 생산능력이 복원될 수 있는

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외의 정치환경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남북한의 농업교류 력은 단될 수 있고 그 다면 북한의 자립 인 농업 생산능력의 복구는 북한 경제가 완 히 정상화될 때까지는 불가 능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 남한의 농업은 21세기 인류 문 명사회의 공통 화두인 안 한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 지속 가능한 발 과 생태보 등의 문제가 주요 쟁 으로 두되고 있는 반면에 남 북한 농업교류 력은 20세기 개발 산업화 시 의 사고에 머물러 있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만일 향후 추진될 남북한의 농업교류 력이 궁극 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통일 한반도의 농업공동체의 형성이라고 한다면, 통일 한반도 의 농업공동체가 생태질서를 괴하고 농업 기반을 무 뜨리며 먹거 리의 안 을 하는 기존과 같은 비평화 인 녹색 명 방식을 추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재개될 남북한의 농업교류 력은 체 한반도 차원에서 농 과 생태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인간 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 안 인 통일농업의 모델을 모색하는 과정이 병행되 어야 할 것이다. 이런 에서 볼 때 최근에 북한 정권이 심을 보이 는 유기농업은 남북한 농업교류 력에서 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남한은 유기농업 분야에서도 북한에 비해 월등히 발 된 농 지식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유기농업이 최종 인 통일농업의 안 모델이 될 것인가는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다. 요한 것은 유기농업 분야의 남북한 농업교류 력이 장기 인 차원에서 식량권의 확보뿐 만 아니라 평화와 생태의 문제까지 포 하고 있는 한반도의 식량주권 문제에 해 남북한이 동시에 고민하고 가장 이상 인 안을 함께 찾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은 분명히 의의가 있을 것이다.

■ 수: 2월 28일 / 수정: 3월 27일 / 채택: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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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North Korean Organic Farming from the Perspective of Food Sovereignty

Jeong, Eunmee(Institute for Peace and Unification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This study examines the background and context of organic farming which has been often mentioned in the literature published in North Korea for the last few years. In comparison with the experience of organic farming in Cuba, Cuba and North Korea have in common with paying attention to organic farming when there is a lack of imported farming materials and foreign isolation. On the other hand, unlike Cuba, North Korea has not solved the food problem because they are likely to introduce organic farming only in terms of technical aspects while maintaining collective agriculture. However, in the North Korean society, it should not be overlooked that organic farming based on family farming in both rural and urban areas voluntarily has been practiced in order to overcome the lack of food for several decades.

The discourse on organic farming has evolved the enactment of organic industry law and ecological conservation from a means for increasing production. Also, North Korean regime’s early interests in organic farming concentrated on developing the organic fertilizers to substitute insufficient chemical fertilizers on its own. Since the 2000s, however, North Korea has broadened its interests into organic farming technology of the outside world.

Agricultural cooperation between the North and South tends to be determined in accordance with the requirements of the agricultural policy of the North and limited to transfer of resources and farming technology of custom farming of the South based on chemistrization and mechanization. Inter-Korean agricultural cooperation needs to ensure food sovereignty over the entire Korean Peninsula while seeking alternative joint agricultural model that is able to recover the health of agriculture and ecology. Therefore, organic farming that North Korean regime has been interested in will become an important opportunity for inter-Korean agricultural cooperation.

Keywords: organic farming, custom farming, inter-Korean agricultural

cooperation, food sovereignty, ecology, family farming, joint agriculture






[1] ) 권 근, “식량 기에 얽힌 진실과 안,” 󰡔환경과생명󰡕, 통권 59호(2009, 호), 214쪽.


[2] ) http://www.nyeleni.org/spip.php?article333.


[3] ) 송원규·윤병선, “세계농식품체계의 역사 개와 먹거리 기-안의 모색: 식량안보에서 식량주권으로,” 󰡔농 사회󰡕, 제22집 제1호(2012), 290쪽.


[4] ) 송원규·윤병선, “세계농식품체계의 역사 개와 먹거리 기-안의 모색: 식 량안보에서 식량주권으로,” 289쪽; 장경호, “식량안보인가, 식량주권인가?,” 󰡔민 의 소리󰡕, 2012년 11월 1일.


[5] ) Peter Rosset, “Food Sovereignty: Global Rallying Cry of Farmer Movements,” Backgrounder, Vol. 9, No. 4(Fall, 2003), p. 2.


[6] ) 1990년 쿠바는 총 8만 5,000의 트랙터를 사용했으나, 1990년 수입석유의 공 이 60%까지 감소하자 연료의 부족으로 인해 부분의 트랙터 사용이 불가능하 게 되었다. 이로써 1997년에 트랙터 7만 3,000를 활용했으나 2000년에는 4만 로 었고 2012년에는 100km2당 203만 남았다. 트랙터 사용이 어든 신 에 쿠바의 농업에서는 73만 5,000마리 이상의 가축이 활용되고 있다. Eduardo Francisco Freyre Roach, “쿠바의 유기농업과 한국에서의 용,” 2012년 한국유기 농업학회 국제심포지엄, 󰡔세계 유기농업 황과 망󰡕(2012.10), 60~61쪽.


[7] ) 의 , 41~43쪽.


[8] ) 스테 쥬니스(Stephen Zunes), “쿠바는 녹색국가가 되는가,” 󰡔녹색평론󰡕, 제67 호(2002), 137~141쪽.


[9] ) 김성훈, “쿠바는 어떻게 식량 기를 벗어났나?: 쿠바의 유기농업 성공이 북한 에 주는 교훈,” 제7회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평화나눔센터 정책포럼(2004.


[10] .19), 2쪽.


[11] ) 요시다 타로(吉田太郞), “유기농업으로 나라가 변한다,” 󰡔녹색평론󰡕, 제67호

(2002), 107~136쪽.


[12] ) 요시다 타로(吉田太郞),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작은 나라 쿠바의 커다란 도 , ‘늘 푸른 명’󰡕, 6~7쪽.


[13] ) 드 맥도(FredMagdoff)·존 포스터(John Bellamy Foster)·드릭 버텔 (Frederick H. Buttel), 󰡔이윤에 굶주린 자들󰡕(서울: 울력, 2011), 310~316쪽.


[14] ) 김성훈, “쿠바는 어떻게 식량 기를 벗어났나?” 3쪽.


[15] ) 의 , 2쪽.


[16] ) 의 , 137쪽.


[17] ) 󰡔로동신문󰡕, 2006년 7월 31일.


[18] ) 물론 충분한 주식 섭취도 어려운 상황에서 주식의 소비를 이고 부식물의 소비를 늘리자는 것이 북한 정권의 허구 이데올로기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농정에서 감자 증산과 축산 양어 기지 건설이 강조되고 김정일이 이 분야의 지 지도를 자주 했던 은 부인하기 힘들다.


[19] ) 리 일, “경제강국건설의 요구에 맞게 유기산업을 발 시키는데서 나서는 몇 가지 문제,” 󰡔경제연구󰡕, 제1호(2011), 29쪽.


[20] ) 손리학, “록색식품을 개발리용하여 유기산업발 에 이바지하기 한 방도,”

󰡔경제연구󰡕, 제4호(2009), 32쪽.


[21] ) 리성길, “록색상품의 개발과 리용이 사회경제생활에 미치는 향,” 󰡔경제연구󰡕, 제2호(2012), 37쪽.


[22] ) 리민재, “고리형 순환생산체계와 그의 사회경제 의의,” 󰡔사회과학원학보󰡕, 제2호(2012), 44쪽.


[23] ) 의 , 44쪽.


[24] ) 󰡔노컷뉴스󰡕, 2012년 1월 12일.


[25] ) 󰡔노컷뉴스󰡕, 2012년 11월 7일. http://m.nocutnews.co.kr/view.aspx?news=2308305.


[26] ) The Economist, March 25, 2003.


[27] ) 김 훈, “북한의 식량사정 농업 동향,” 󰡔KDI 북한경제리뷰󰡕, 1월호(2013), 38~39쪽.


[28] ) 요시다 타로(吉田太郞),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작은 나라 쿠바의 커다란 도 , ‘늘 푸른 명’󰡕, 6~7쪽.


[29] ) 드 맥도(FredMagdoff)·존 포스터(John Bellamy Foster)·드릭 버텔

(Frederick H. Buttel), 󰡔이윤에 굶주린 자들󰡕, 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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