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7

[북한 탐방기] 재미동포 교사 이금주의 북한이야기(6) - 뉴스페이퍼

[북한 탐방기] 재미동포 교사 이금주의 따끈따끈한 북한이야기(6) - 뉴스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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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탐방기] 재미동포 교사 이금주의 따끈따끈한 북한이야기(6)
이금주 매사추세츠 한국평화운동 공동의장
승인 2019.12.31


평양 거리 명물, 길거리 카페 ‘빙수’

8월 1일. 북녘땅에서 맞은 둘째날 오후다. 대동강 변 아침 산책, 보통강호텔 고려링크에서의 인터넷 연결, 평양교원대와 김일성대학 방문. 오전 7시 30분부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어느새 4시가 다 되어간다. 고려호텔에서 먹은 냉면은 이미 뱃속에서 꺼진 지 오래다. 출출하다. 점심으로 먹었던 담백하고 깔끔한 평양냉면의 식감이 아직도 입안에 남아 있다.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단연코 여행지의 먹거리다. 냉면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 평양 여러 곳의 냉면 전문식당의 냉면을 골고루 맛보고자 했다. 냉면으로 남에서도 유명한 옥류관은 이미 다른 날로 예약이 되어 있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동선을 고려해 고려호텔에서 냉면을 먹었다.

서울보다 위도가 조금 높은 평양도 한여름의 폭염을 피해갈 수 없다. 어젯밤 보통문거리 식당에서도 평양시민들이 고기와 냉면을 즐기는 모습을 보았다. 한여름 시원한 냉면은 남이나 북이나 대중에게 인기 있는 음식이다. 안내원에게 평양에서 냉면을 제일 잘 하는 식당 세 곳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는 평양의 3대 냉면 식당으로 옥류관, 청류관, 고려호텔 식당을 꼽았다. 이 3대 냉면집을 평양방문 기간 중 다 섭렵하였다. 다음 기회에 평양냉면 맛집을 다루면서, 옥류관, 청류관과 함께 오늘 먹은 고려호텔 냉면에 대해 소개하겠다.

우리의 평화 자동차는 다음 여정인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으로 달려간다. 이제 북녘땅에 온 지 만 하루가 지났다. 여전히 평양 거리의 풍경, 평양시민의 일상 하나하나가 새롭고 경이롭다. 버스, 전차, 트럭, 택시, 승용차가 섞여 도로 위를 달린다. 구간에 따라 지역에 따라 도로에 차가 붐비기도 하고 조금은 한산하기도 하다.
평양의 도심 도로
평양 도심의 전차

차창 너머로 흰색 상의와 검은색 치마를 입은 단발머리의 여학생들이 보인다. 8월의 태양 아래 종일 달구어진 보도블록 위를 걷고 있다. 흰색 챙모자를 살짝 얹어 쓴 여학생들의 얼굴이 여름의 열기에 발갛다. 챙모자로는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흰색 양말에 굽이 낮은 샌들과 운동화를 신고 있다. 앳된 모습이 고등학생으로 보인다. 백팩을 메고 하교하는 모양이다. 멋스러운 체크무늬의 원피스를 입은 20대 여성이 양산을 받쳐 들고 뒤를 따른다. 양산을 쓴 일군의 다른 여인들도 보인다.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평양시민의 거리 모습이다.
평양거리-인도를 걷고 있는 여고생

살아 숨 쉬는 평양의 모습을 거리 여기저기서 마주한다. 그중 새로운 발견은 ‘청량음료’, ‘빙수’라는 간판이다. 거리 이곳저곳에서, 거의 20m 간격으로 청량음료와 빙수 매대를 보았다. 오늘 아침 대동강 변에서도 여러 곳 보았는데... 흠... 저것이 무엇일까?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평양거리 청량음료 매대

우리의 평화자동차는 아파트가 즐비한 동네를 지난다. 시민들이 옥외 테이블에 앉아서 무언가를 먹고 있다. 그리고 ‘빙수’라는 간판과 매대가 보였다. 아, 여기도 빙수네! 마침 그 앞에 차를 세웠다. 안내원이 근처 사무실에서 안경을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리 선생님, 죄송하지만 5분만 차 안에서 기다려주시라요.” 더우니 나와 있지 말고 시원한 차 안에서 기다리라고 당부한다.

이제 만 하루가 지나,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고 조심스럽다. 안내원의 당부에 따라 얌전히 차 안에 앉아서 차창 밖 빙수 매대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매대 안에 하얀 얼음이 수북이 쌓인 그릇이 보인다. 사람들이 둘러앉은 테이블에는 작은 숟가락이 유리그릇에서 입으로 빙수를 분주히 나른다.

삼삼오오 테이블에 앉아 빙수를 먹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입이 즐겁다. 표정에는 시원함과 만족감이 역력하다. 빙수를 만드는 여성 봉사원의 모습이 보인다. 매대 앞에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시민들도 보인다. 이 모든 장면이 나의 호기심을 계속 자극하고 있다.

그사이 나는 전 세계 평화운동가들이 들어와 있는 ‘평양 카톡 라이브방’에 접속해 나의 새로운 발견을 전했다. 평양 ‘빙수’ 매대! 평양시민의 거리 카페인 빙수 매대의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전송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는 기필코 저 빙수를 먹어야겠다고.” 안내원이 돌아왔다.
평양 거리카페 – 빙수매대
빙수를 만들고 있는 봉사원

안내원에게 청했다. “안내원 선생, 저기 평양시민들이 먹고 있는 저게 빙수 맞지요?” “네, 선생님 맞습네다.” 안내원이 대답한다. “제가 지금 더위에 갈증도 심하게 나고 배도 출출해서 빙수를 먹고 싶은데요. 같이 가서 함께 드실래요?” 최대한 정중히 안내원에게 먹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안 된다는 것이다. 한번 뭔가 하고 싶으면 꼭 해야만 하는 내 성격 상, 그냥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안내원 선생, 왜 안 된다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이유가 대체 뭔가요?” “내가 지금까지 안내한 재외동포 선생님 중에 한 번도 빙수 매대에서 파는 빙수를 먹은 분이 없습네다. 게다가, 길거리 매대 빙수 시식은 일정에도 없지 않습네까.”

이것이 이유라니.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안내원 선생, 그것이 이유라면, 제가 처음 길거리 빙수 매대에서 빙수를 먹은 재외동포가 되겠어요. 그리고, 꼭 일정대로만 움직여야 하나요? 여행을 하다 보면 새롭게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이 생기기 마련이고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일정은 달라질 수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빙수를 먹는 게 우리 일정에 차질을 주는 건 아니 잖아요. 저는 꼭 빙수를 먹고 싶어요.”
북한의 아이스크림 – 에스키모 매대
북한의 아이스크림 – 에스키모 매대

안내원을 설득하기로 작정한 나는 끈질기게 그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 내가 힘들게 북녘 땅에 온 이유를 환기시켰다. 북녘동포의 일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빙수 매대 시식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평양시민들이 즐기는 여름철 먹거리를 나도 꼭 시도해 보고 싶다.

그러는 사이, 전세계 한인평화활동가로부터 “불굴의 의지로 빙수 먹방 투쟁!!” 이라는 농담 섞인 응원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어쩌면 지금의 안내원과의 의견 충돌은 나의 자유주의가 북의 원칙주의와 만나 그 해결의 접점을 찾고 있는 상황은 아닌지. 그러나, 나의 굽힐 줄 모르는 설득에 드디어 안내원은 자기 뜻을 굽혔다. “리 선생님의 자유주의는 정말 못 당하겠습네다. 빙수 같이 가서 드시자요.” 우리는 이제 빙수 매대로 간다!
얼음, 팥, 과일, 견과류, 아이스크림이 어우러진 평양 거리카페 빙수

초록색 나뭇잎 문양의 귀여운 식탁보가 놓인 둥근 테이블 하나를 차지해 앉았다. 흰색 제복을 입은 봉사원의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얼음을 갈고 있다. 어느새 하얀 눈꽃 송이가 피어오른다. 소복히 유리그릇에 담는다. 그 위에 과즙으로 보이는 액체를 붓는다. 그리고 다른 재료를 하나하나 담아낸다. 안내원은 빙수 세그릇을 우리 테이블로 가져왔다. 흰색 스푼이 놓여 있는 먹음직스런 빙수 그릇. 어느새 눈꽃은 과일단물에 녹아 자취를 감추었다. 수북이 쌓인 다양한 재료 위에 큼직한 아이스크림이 두드러진다. 나는 그 많은 빙수를 게 눈 감추듯이 순식간에 비웠다. 아, 시원하다! 그리고 행복하다! 더위와 바쁜 일정에 지친 나의 몸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평양 길거리 카페 빙수에 반응했다. 빙수 먹방 투쟁은 이렇게 아름답게 막을 내렸다.
영어로 표기된 라벨이 주목을 끄는 빙수매대

이날 이후로 나와 안내원, 운전기사는 거의 매일 두 번씩 빙수를 먹었다. 그리고 빙수값은 언제나 안내원이 지불했다. 내가 내려고 했는데, 한사코 안내원이 먼저 내는 바람에 번번이 그가 빙수값을 치르게 되었다. 첫날 미래과학자거리에서 먹은 빙수의 값은 3개에 미화로 1불 정도였다. 길거리 빙수 매대와 청량음료 매대는 평양시민들이 한여름 더위를 식히는 장소 중 하나인 듯하다. 거리 곳곳에 길모퉁이마다 어김없이 ‘청량음료’와 ‘빙수’ 매대가 있었다. 빙수 한 그릇에 10~30센트, 우리 돈 120~360원이면 한여름의 더위를 날려버릴 수 있다.

길거리카페의 ‘빙수’는 평양시민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아주 저렴한 가격이다. 하지만, 그 내용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충실하다. 첫날 먹은 빙수에는 눈꽃 같은 얼음 위에 귤 단물, 팥, 아이스크림, 수박, 토마토, 땅콩, 호두가 들어 있었다. 인심도 후하게 모든 재료를 풍성히 담아 주었다. 빙수는 매대마다 재료와 맛이 달랐다. 어떤 곳은 들쭉 단물과 수박 단물 등 다른 과즙을 넣기도 한다. 또한, 각각의 재료의 비율도 다르고 아이스크림이 들어가기도 하고 안 들어가기도 한다. 매대 봉사원의 조리법과 재료에 따라 빙수가 다른 듯하다.
재료와 맛이 매대마다 다양한 평양 빙수

특히, 처음 먹었던 빙수의 풍미는 정말 잊히지 않는다. 아이스크림의 풍부한 맛, 귤 단물의 새콤달콤함, 그리고 견과류와 과일이 절묘하게 조화된 빙수의 맛은 진정 특별했다. 아직도 그 맛의 여운이 혀끝에 남아 있는 듯하다. 북에서의 둘째날부터 시작된 길거리 카페 즐기기는 일주일 내내 계속되었다. 천연 과일로 만든 청량음료와 에스키모라고 불리는 아이스크림까지 다양한 여름철 길거리 카페 음료와 먹거리를 체험했다.

남이나 북이나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팥빙수는 남에서도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여름철 음식이다. 남한의 거리 곳곳에서는 거의 10m 간격으로 카페가 즐비하고 시원한 여름 음료를 즐기며 더위를 잊는다. 30도를 웃도는 평양의 폭염 속에 시민들은 거리 카페 빙수 매대에서 부담 없는 가격의 빙수를 즐기며 더위를 식힌다. 남과 북의 동포는 이미 많은 삶의 영역에서 서로가 닮아있다. 70년을 헤어져 살아도 우리는 한 동포임을 일상생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평양 거리카페 – 빙수/청량음료 매대

평양의 방과 후 특별활동 교육기관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길거리 카페 ‘빙수’ 매대에서 더위를 식힌 우리는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평양시 만경대구역에 위치한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국가가 운영하는 방과 후 특별활동 프로그램 교육 기관이다. 예체능과 과학 분야에서 소질이 뛰어난 1만2천여 명의 초중고 학생들이 활동하며 각자의 소질과 재능을 갈고 닦는 곳이다.

눈앞에 U자형의 건축물이 펼쳐진다. 외관으로 보기에 그 규모가 웅장하다. 지금까지 평양에서 본 건축물은 다른 나라의 도시에서 보지 못했던 독특한 양식이었다. 우리나라 전통건축 양식의 특징을 살린 ‘인민대학습당’을 비롯해 창전거리, 려명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등에서 본 고층의 살림집(아파트)에서 북한 특유의 미적 감각과 미의식이 드러난다. 밝고 산뜻한 색감과 독창적인 디자인. 새롭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전경

여러 무리의 중국인 관광객과 서양인관광객들이 보인다. 입장 차례를 기다리는 평양시민의 모습도 보인다. 안내원이 입장표를 구해 와 입장이 시작되었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궁전과 같은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정서에 맞게 꾸며진 실내 디자인과 장식이다. 이름 그대로 마치 소년 궁전에 온 느낌이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내부

눈망울이 똘망똘망한 초급중학교(중학교) 여학생이 활짝 웃으며 나를 맞이한다. 자기 이름을 소개한다. 나를 안내할 학생이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학생이다. 과학 수재(영재)로 소년궁전 소조 활동에 참여한다고 한다. 영재답게 똑부러지는 목소리로 자신을 표현한다. 총기와 명민함이 눈빛과 말씨에서 느껴진다.

여학생의 안내를 받아 방과 후 소조 활동이 이루어지는 각 교실을 둘러보았다. 첫 번째 교실에서는 여학생들이 무용하고 있다. 학생들과 교사가 검은색 상의와 타이츠, 흰색 발레슈즈를 착용하고 있다. 아주 기본적인 현대무용 의상이다. 복장을 보고 현대무용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교사가 우리의 전통 타악기인 장구를 치며 장단을 맞추고 있다. 학생들은 장구 장단과 교사의 지시에 따라 화려하고 노련한 춤동작을 연출한다. 한 여학생이 마치 팽이가 돌아가듯 뱅글뱅글 연이어 돌며 빼어난 춤동작을 표현한다. 기묘한 재주다.

현대무용과 우리의 춤사위를 조화롭게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무용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나풀나풀 나비가 날 듯, 깡충깡충 노루가 뛰어놀 듯, 여학생들의 춤동작은 생동감과 역동감이 넘친다. 과연 무용 영재답다. 흥겨운 음악과 절도 있는 춤은 나를 비롯한 다른 참관자들을 푹 빠져들게 한다. 저 정도의 기량을 연마하느라고 얼마나 공을 들이고 노력을 기울였을지 상상이 간다. 예술의 길은 끊임없는 연습과 연마를 필요로 한다. 대견한 학생들이다.

다음 교실로 이동했다. 여학생들이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다. 소년 단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열을 맞추어 앉아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그 옆 교실에서는 남녀학생들이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그리고, 서예와 수예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교실도 참관했다. 모든 학생이 눈에 총기를 발하며 기예를 연마하고 있다. 남이나 북이나 교육에 대한 열의와 정성은 대단하다. 남과 북, 우리 미래세대는 자신의 소질을 살려 재능과 기예를 갈고닦는다. 어린 학생들을 보며 남과 북, 하나가 될 우리의 장래는 진정 밝음을 확신하게 된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 가야금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 서예활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

기예를 뽐내는 학생들의 아름다운 공연

방과 후 특별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각 교실을 둘러보았다. 중국인과 유럽인 관광객과 관람 온 평양시민들로 각 교실은 매우 붐볐다. 다른 여러 교실을 더 둘러보고 싶었으나 학생들의 공연 시간이 임박하여 우리는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공연을 기다리며 앉아있는 동안 뒷좌석에서 평양시민의 대회 소리가 들렸다. 40대 중반의 여성들이었다. 언뜻 들으니, 자신의 아이도 학생소년궁전에 넣고 싶었는데 선발되지 못해 아쉬웠다는 대화였다. 나중에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각 지역 단위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도 하고 아주 재능이 뛰어나야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 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소학교(초등학교)와 중학교(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노래와 무용, 악기연주가 총망라된 총체극을 시작으로 공연의 막이 올랐다. 색동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소학교 학생들이 노래하고 그 뒤에서 초급중학교(중학교) 학생들이 가야금과 해금을 연주한다. 힘과 생동감이 넘치는 노래는 우리의 전통 현악기와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공연을 만들어 낸다. 무대 맨 뒤에는 수십 명의 고급중학교(고등학교) 학생들이 합창한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여행하고 많은 공연을 보았지만, 이런 공연은 처음이다. 전혀 새로운 형태의 공연양식. 흥미롭다.

어린이들의 발랄함과 꿈을 표현하는 율동과 노래가 이어진다. 소학교 여학생들이 절도 있고 살아 있는 무용 동작으로 약동감을 나타낸다. 아이들의 생기발랄한 얼굴 표정이 공연의 생동감을 더한다. 아이들이 활기차게 뛰어노는 모습 그대로가 무용으로 표현된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배경영상이 스크린에 나온다. 무대 위의 공연과 잘 어우러진다. 무대조명, 무대배경, 공연하는 학생들의 의상까지 모든 것이 잘 조화를 이루며 작품이 무엇을 나타내는지를 보여준다. 전통무용, 현대무용, 아코디언 연주, 장구 연주, 바이올린 연주, 독창, 중창, 합창 등 우리 민족의 전통예술과 현대예술을 골고루 선보였다. 공연하는 모든 학생의 기량이 진정 뛰어나다.

마지막 공연에서 모든 청중이 일어나 학생들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아마추어 학생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수준의 아주 훌륭한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미리 준비해 간 꽃다발을 가장 어려 보이는 소학교 학생에게 전했다. 청중과 공연자 모두의 얼굴에 기쁨의 웃음이 가득하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공연
꽃다발을 무대 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필자

자존감과 자긍심 높은 우리 북녘 동포

공연이 다 끝나고 나를 안내해 준 여학생과도 작별을 고할 때다. 학생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연필, 볼펜, 색연필 등 학용품을 미리 준비해 왔다. 소년궁전을 친절하게 하나하나 안내해 준 여학생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작은 선물을 전하고 싶었다. 여학생에게 잘 안내해 주어서 고맙다고 하며 기념품을 전하려고 했다. 여학생의 표정이 굳어진다.

“선생님, 우리는 손님들이 주시는 선물 안 받습니다.” 단호히 거절한다. 이걸 어쩌나! 내가 혹시 실수를 한 건 아닌가? 안내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멀리 미국에서 온 동포 선생님이 마음으로 주는 선물이니 받아주면 고맙겠다”는 내 뜻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 아, 리 선생님은 다른 외국인 관광객하고는 같지 않다. 우리 동포 선생님이라 말이다.” 안내원이 멀리서 오신 동포 선생님의 정성을 생각해서 받아달라고 당부한다. 그러자, 여학생은 조금 고민하는 듯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두 손으로 선물을 받는다. “그럼, 우리 동포 선생님이 주신 선물이니 특별히 받겠습니다.” 다시, 여학생의 표정이 밝아진다. 덩달아 나도 미소를 지었다.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이 과자나 학용품 등을 선물로 주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는 자존심이 상해 외국인이 주는 선물 안 받습니다.” 여학생은 아주 또렷이 말한다. 자긍심 강하고 자존감 높은 우리 북녘 동포 여학생이다. 안내원에게서도, 운전기사에게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방북 기간 내내 식당이나 상점에서 계산할 때마다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긍심 강하고 자존감 높은 북녘 동포라는 것.
필자를 안내한 여학생과 함께

미화로 계산을 하고 잔돈이 항상 남는다. 예를 들어, 계산서가 15불 50센트면 50센트 잔돈이 남는다. 북에서는 미 달러 지폐만 사용하고 동전은 사용하지 않는다. 잔돈이 생길 때마다 나는 봉사원에게 내게 안 거슬러줘도 되니 그냥 가지라고 한다. 잔돈도 모으면 꽤 될 거다. 미국에서는 식당서나 카페에서 팁(봉사료)을 종업원에게 주는 것이 보편적이다. 물론, 북에서는 팁 문화가 없기는 하지만, 그 정도의 잔돈은 봉사료의 개념으로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번번이 거절하고 꼭 북한 화폐나 중국 화폐 또는 껌이나 사탕으로 거스름돈을 대신한다. 단 1전도 허투루 받은 적이 없다. 아주 원칙적이고 정확하다. 그 이면에는 북녘사회 일원으로서의 자긍심과 자존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부유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 나름대로 자력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함부로 의존하지도 도움을 구하지도 않는다”. 이런 메시지가 읽힌다. 어쩌면 이것은 나만의 해석일지도 모른다. 7박 8일 내내 나는 이런 메시지를 우리 북녘 동포로부터 읽었다.

다행히 오해 없이 어여쁜 **이가 내 선물을 마음으로 받아주어서 기분 좋게 작별 인사를 하고 소년궁전을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북에서의 둘째날, 오늘도 계속 배운다. 오늘 저녁 만수대창작사와 5.1 경기장 집단체조 공연 일정을 남겨두고 있다. 역시 기대되는 여정이다. 다음 회에서는 만수대창작사와 집단체조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평양의 거리 – 인도를 걷고 있는 평양 시민들
평야의 거리 – 전차를 기다리는 시민들


매사추세츠 코리아 평화운동 공동의장 이금주


매사추세츠 한국평화운동 공동의장
평화와 통일을 여는 보스턴 행동 대표

세월호를 잊지 않는 보스턴 사람들의 모임 대표

Public Schools of Brookline, MA ESL 교사

하버드대학교 응용언어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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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주 매사추세츠 한국평화운동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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