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9

2002 [사모를 만나다] "목회자와 결혼했을 뿐인데,






사모를 만나다 목록총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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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를 만나다①] 교회 내 약자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부교역자 아내'니라
부교역자 아내 10명이 말하는 신앙생활과 육아, 고립과 외로움


기자명 곽승연 기자
승인 2020.02.27 16:26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교회에서 부교역자 아내는 며느리 같은 존재다. 담임 사모는 시어머니고 권사들은 시누이다. 한마디로 부교역자 아내는 교회 내 서열 꼴찌다."
[뉴스앤조이-곽승연 기자] 한 부교역자 아내가 인터뷰 중 한숨을 쉬며 말했다. 부교역자 아내들은 교회의 며느리가 되어 속을 끓이고 있었다. 부교역자 상황도 좋지 않지만, 그나마 남편은 자신이 사명으로 받은 일을 하면서 가끔 '설교'라는 발언권도 사용한다. 부교역자 아내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하고 발언권도 없다.
세대가 바뀌고 사회 인식이 달라지면서 교회 안에서도 여성의 지위를 재고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부교역자 아내 중에서도 전통적인 '사모상'에서 벗어나 직장 생활을 하고 남편 사역에 함께 엮이지 않는 등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부교역자 아내가 '사모는 이래야 한다'는 관습에 얽매여 있다.
<뉴스앤조이>는 일주일간 부교역자 아내 10명을 인터뷰했다. 이제 목회자 아내가 된 지 3년이 지난 사람부터 30년 이상 '사모'로 산 사람까지 다양하게 만났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부담을 느끼고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터뷰에 응해도 불안해하며 몇 번이고 익명을 보장해 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말문이 한번 트이자 짧은 시간에도 많은 이야기를 쏟아 냈다. 그중 한 부교역자 아내의 말이, 이들이 처한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 줬다.
"돈도 없고, 남편은 사역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데 좋은 사역지는 못 만나고, 정착해 있는 교회도 없고, 나는 일도 못 하고, 애들은 어리고, 맡길 사람도 없고… 고립돼 있는 상태였다. 우울증이 심하게 왔다."
관습처럼 굳어진 '사모상'
머리 모양부터 복장까지 검열
목회자 아내는 딸려 온 사역자?
"사모는 돈에 초연해야 한다"




부교역자 아내들은 교회 내 전형적인 사모상 때문에 복장 하나, 행동 하나에 눈치를 보고 있었다.
부교역자 아내들은 교회 내 전형적인 사모상 때문에 복장 하나, 행동 하나에 눈치를 보고 있었다.
부교역자 아내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은 관습처럼 굳어진 전형적인 사모상에 대한 부담이었다. 결혼한 사람이 목회자일 뿐인데, 아내들은 교회에서 복장 하나, 행동 하나에 눈치를 보고 있었다.
부목사 아내 A는 남편이 한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을 때, 담임목사 아내에게 '사모가 하지 말아야 할 항목'을 문서로 받았다. 내용은 "청바지 금지, 백팩 금지, 민소매 금지, 무릎 위로 올라오는 치마 금지, 네일 아트 금지" 등이었다. B도 남편을 통해 몇 가지 유의 사항을 전달받았다. "옷을 단정하게 입으라고 했다. 청바지나 찢어진 바지는 입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C는 "머리를 묶고 다니니 교인들이 자꾸 '사모님, 너무 어려 보여요'라고 하더라. 권사님들이 그 말뜻을 풀어 줬는데 '머리 좀 하고 다니라'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부교역자 아내들은 예배 참석을 강요받기도 했다. B는 "담임목사가 부교역자들을 불러, 집에 가서 전하라고 했다더라. 부교역자 아내들은 모든 예배·부흥회 참석을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D는 "사모는 1등 교인이 돼야 한다. 아파서 새벽 기도에 빠지기라도 하면, 교인들은 '사모님, 어디 아프셨어요?'라고 묻기는커녕 그냥 째려본다. 100점짜리 교인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주눅 들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남편이 사역하러 온 교회이지만, 담임목사가 목회자 아내를 '함께 딸려 온 사역자'라고 인식하는 경우도 잦다. E는 남편 사역지에서 영아부 사역을 떠맡았다. 그는 "영아부 사역자를 뽑지 않고 나를 사역자로 세웠다. 페이를 주지 않아도 쓸 수 있는 인력으로 여긴 것 같다. 당연하게 봉사를 강요했다. 내가 아이도 키워 봤고 내 아이 나이도 (영아부 아이들과) 비슷하니까 잘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2년 정도 영유아 예배 봉사했다"고 말했다. F도 "강제로 아동부 봉사 하게 됐다"고 말했다. A는 "2년간 월요일만 빼고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봉사를 시켰다"고 말했다.
'목사 아내는 직장을 가지지 말고 기도로 교회와 남편 사역에 내조해야 한다'는 인식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A는 "담임목사가 부교역자 아내들에게 직업을 갖지 못하게 했다. 예를 들어, 직업이 교사라면 휴직하라고 했다. 부교역자는 수입이 많은 것도 아닌데, 아내들이 일하는 걸 안 좋아했다. 이유는 '사모는 경제적으로 빈곤해야 한다. 돈에 초연해야 한다. 남편 사역을 도와주려면,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려면 일을 쉬어야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아이가 4명인데, 남편 수입만으로 가정을 꾸려 가는 게 쉽지 않다. 대부분 목사 가정은 차상위 계층이다. 나라에서 지원하는 복지 제도로 생활한다"고 말했다.
자연스러운 '독박 육아'
갑작스러운 권고사직으로
아내는 경력 단절,
자녀들은 낯선 곳 적응해야
부교역자 아내들은 '독박 육아'를 당연하게 감당해야 했다. 전임 부교역자들은 출퇴근 시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비교적 적다. 30개월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G는 "일요일에는 한 번도 점심을 먹어 본 적이 없다. 남편은 목회자끼리 식사하고, 양가 부모님도 교회 일로 바쁘다.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 식당에 가야 하는데 한창 활발한 쌍둥이를 데리고 가기는 무리다"고 말했다.
E는 "교회에서 일반 교인들 가정은 아빠가 아이와 같이 밥을 먹거나 가정과 함께 있는 모습이 노출돼도 상관없는데, 교역자 가정은 그러면 안 된다. '목회자는 양을 돌보는 목자이기 때문에 본인 아이들이나 아내를 돌보는 게 덕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나 혼자 아이를 케어하고 아이들이 아빠에게 가거나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담임목사와 나이 많은 교인들이 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편들이 목회 사명을 이유로 육아를 꺼리기도 한다고 했다. H는 "남편이 사역자로 살고 싶어 하는데, 생계가 불안하고 앞길도 막막했다. 남편이 너무 힘들어하기에, 그럼 내가 일할 테니 당신이 (잠시 사역을 쉬고) 육아를 맡아 달라고 했다. 그런데 남편은 목회자 사명이 있기 때문에 사역해야 한다면서 육아를 피했다"고 말했다.
1년마다 받아야 하는 재청빙과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는 '권고사직'은 부교역자 본인뿐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치명적이다. H는 "아이들이 뛰어다녀서 집주인이 나가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세 보증금이 교회 돈이라 남편이 담임목사에게 얘기했다. 담임목사는 조금 지켜보자더니, 다음 달 권고사직을 통보했다"며 "다른 사역지가 구해지면 나가라는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나가라는 것이었다. 그 기간 내 사역지를 구하는 건 전적으로 우리 몫이었다"고 말했다.
B는 남편과 함께 사역지를 옮기면서 가장 걱정되는 점은 아이들이라고 했다. 그는 "지역을 옮길 때마다 아이들 유치원을 가장 먼저 알아본다. 옮긴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잘 적응하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하면 부모 때문인 것만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남편 사역지를 따라 지역을 옮기면, 부교역자 아내들은 어렵게 시작한 일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H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조금이나마 소득도 있었는데 남편이 사역지를 옮기게 되면서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B도 "사역지를 지방으로 옮기고 하다 보니까 짧은 계약직 경력만 생기더라. 다시 도전해야 하는 시기인데, 나이는 많아졌고 내 이력은 그대로고 취업 문턱은 높아진 것 같아 위축된다"고 말했다.
A는 "사모가 돼서 후회하는 일은 하고 싶은 걸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첫째를 낳고 일을 그만뒀다. 아이가 크면 재취업하려 했는데, 그냥 포기하게 됐다.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고립된 부교역자 아내들
아내들끼리도 '사모' 가면 쓰고 생활
담임목사 아내가 챙겨(?) 주지만
갑질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



13년차 부교역자 아내 C는
13년 차 부교역자 아내 C는 "사모들이 서로 본인 이야기를 잘 안 한다. 웬만하면 자기 모습을 감추고 사모라는 가면을 쓰고 생활한다. 나는 그렇게 살기 싫었고, 그렇게 살 줄 몰랐다"고 말했다.

부교역자 아내들은 교회에서도 어울릴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교인들 사이에서도 '사모님'이라고 불리며 일반 신자와는 다르게 인식되고, 그렇다고 목회자 그룹에 낄 수도 없기 때문이다. B는 "담임목사가 교인들하고 깊이 있게 어울리지 말라고 했다. 교인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고, 혹여라도 말실수하게 되면 교인들이 실족할 수 있기 때문에 자제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I는 "사모는 셀 모임에 속해 있지 않아, 신앙을 나누거나 고충을 말하고 싶은데 이야기할 곳이 없다. 남들은 나에게 와서 상담해 달라고 하기도 하는데, 내가 상담을 받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 너무 교회에만 신경 쓰는 남편이 서운할 때도 있다. '너랑 결혼하지 말고 그냥 교회나 다닐 걸. 그러면 오히려 네가 내 이야기 더 잘 들어 줬을 텐데'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부교역자가 많은 교회에서는 아내들끼리 모임이 형성되는데, 이것도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곳은 못된다고 했다. E는 "사모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 교인들도 사모와 함께 있는 걸 불편해한다. 누구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다. 사모들끼리 친밀하고 교류가 잘되면 좋을 텐데, 서로 친하지도 않고 고립되기만 한다"고 말했다. I는 "사모끼리 이야기하는 걸 더 조심해야 한다. 다른 목사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C는 "사모들이 서로 본인 이야기를 잘 안 한다. 웬만하면 자기 모습을 감추고 사모라는 가면을 쓰고 생활한다. 나는 그렇게 살기 싫었고, 그렇게 살 줄 몰랐다. 처음에는 사모들 모임에서 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어느 순간 보니, 나 혼자만 이야기하고 있더라. 다른 사람들은 형식적인 이야기만 했다. 목회자 아내로 13년을 살아 보니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구나' 깨달았다. 떠나간 사모들과 연락 한번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역자 아내들 모임은 대부분 담임목사 아내 말을 듣는 자리가 된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갑을 관계'가 그대로 아내들 사회로 이어지는 것이다. E는 "교인들이 소그룹을 할 때 사모는 사모들끼리 소그룹을 했는데, 그냥 담임 사모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본인만 말하고 담임 사모 말이 끝나기 전까지는 모임이 끝나지 않았다. 매주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진행됐다. 담임 사모도 이야기할 데가 없으니 이해하려 했는데, 정말 멘탈이 나갈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J는 "담임 사모의 신앙관이나 아이 양육 가치관이 틀리다고 생각하지만 말하지 못한다. 아이가 예배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하게 있었던 적이 있는데, 담임 사모가 정신과 상담을 받아 보라고 했다. 굉장히 당황스럽고 불쾌했지만, 티 내지 않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동의하지 않아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말에도 '순종'이라는 말로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담임목사 아내 성격에 문제가 있으면, 가장 큰 피해는 부교역자 아내들이 입는다. 담임목사 아내와의 갈등을 견딜 수 없어 사임한 목사 아내 F는, 지금도 가끔 그가 꿈에 나온다고 했다. F는 "담임 사모가 질투가 많고 거짓말과 이간질이 심했다. 내가 교인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욕만 안 했지, 인격 모독적인 이야기를 일삼았다. 교회에서 사례비를 주다 보니 사람을 돈으로 취급했다. 남편은 '150만 원 값도 못하네'라는 말도 들었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직장·멘토 있어서 견뎌
"남편 목회와 동일시하면 안 돼
아내들도 자아실현해야"




39년 차 목회자 아내 손명희 전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목회자 아내도 교회 밖으로 나와 자아실현을 하고 본인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으로 관계없음.)
39년 차 목회자 아내 손명희 전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목회자 아내도 교회 밖으로 나와 자아실현을 하고 본인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으로 관계없음.)
부교역자 아내들은 대부분 힘든 상황을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에 응한 사람 중에는 부교역자 아내로 살며 속앓이했지만,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은 경우도 있았다.
C가 버틸 수 있었던 건 '멘토'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모로 살다 보니, 보는 눈에 집착하게 됐다. 여러 부담감에 눌려 있었다. 남편에게 이야기하면 조금 풀리기는 했지만, 속에 있는 걸 잘 얘기할 수 없어서 속병이 났다"고 말했다. C는 "멘토 목사님과 그분의 사모님을 만나며 영적인 교제를 나눈 게 힘이 많이 됐다. 중요한 건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서서히 자유함이 생겼다. 교인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사모들도 영적인 공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I는 남편이 목회하는 중에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는 "교회에서 '언제까지 일할 생각이냐'고 질문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남편 목회 때문에 내가 일을 관두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목사 벌이가 넉넉하지 않다. 남편 혼자 벌면, 생각이 달라도 교회에 빌빌대야 한다. 나도 남편 수입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부부 관계가 더 안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다"며 "한번은 남편이 담임목사와의 의견 차이 등으로 사임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 '사임하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직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데에는 남편 도움도 필요했다. I는 "남편이 본인 목회 때문에 내가 희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교회에서도 '아내가 앞에 나서서 하는 성격이 못된다'고 하면서 방어해 주는 편이다. 실제로 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사모 모임이나 교회 봉사 등을 다른 사모들처럼 많이 하지는 않는다. 사모치고는 배려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남편이 목회하며 행사가 있을 때 가서 도와주는데, 남편은 내가 12년 직장 다닐 때 한 번도 와서 도운 적 없다"고 말했다.
39년을 목회자 아내로 살아온 손명희 전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아내들이 남편 사역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손 전 대표는 "많은 목회자 아내가 남편의 목회 성공이 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이 잘되면 물론 기쁜 것이지만, 그건 그냥 남편의 성공일 뿐이다. 목회자 아내도 교회 밖으로 나와 자아실현을 하고 본인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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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를 만나다②] "목회자와 결혼했을 뿐인데, 나는 '신앙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아내 + 엄마 + 사모' 역할에 얽매였던 8년…"하나님 안에서 진짜 '나'를 찾고 싶다"

기자명 곽승연 기자
승인 2020.02.28

<뉴스앤조이>가 인터뷰한 부교역자 아내들 중 30대 여성 두 명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연재합니다. 두 사람은 평범한 교회 청년이었지만 결혼한 사람이 목회자라는 이유로 한순간에 '사모'의 삶을 살게 됐습니다. 독박 육아와 고용 불안정, 교회의 각종 검열에 시달리면서도, 이들은 어디에서도 속 시원하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그림자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는 이 여성들 목소리를 경청해 보면 좋겠습니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곽승연 기자] 1985년 가을, 김수영 씨(가명)는 한 시골집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이웃에게 전도를 받은 어머니를 따라 초등학생 때 처음 교회에 나갔다. 피아노를 칠 줄 알아 중학생 때부터 10년간 성가대 반주로 봉사했다. 학창 시절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교회에 헌신하며 살았다. 평범한 '교회 다니는 착한 청년'이었다.
'사모'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금 남편을 처음 소개받을 때도, 처음에는 목회자 후보생이라는 점이 부담스러워 거절했다. 하지만 1년 뒤 지인 권유로 한번 만나 보게 됐다. 대화해 보니 마음이 잘 통하고 삶의 지향점도 비슷했다. 당시 김수영 씨는 청소년 문화센터에서 일했다. 청소년들과 함께 부대끼며 사는 것이 행복하고 보람됐다. 남편도 청소년 사역에 비전이 있었다. 3년 연애하고 28세가 되던 해 결혼했다. 그렇게 그는 전도사 아내가 됐다.

출산 100일 후 옮기게 된 사역지

혈혈단신 감내해야 했던 육아
반년의 신혼 생활을 보내고 첫아이가 생겼다. 아이를 낳고 100일이 갓 지났을 때, 김수영 씨는 남편 사역지를 따라 거처를 옮기게 됐다. 서울에 있는 교회에서 남편을 부교역자로 청빙했다. 지방 신학교 출신 전도사가 서울로 사역지를 옮겨 가는 경우는 드물어서,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에 가면 친정도 시댁도 멀어지기 때문에, 오롯이 혼자 육아를 감당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막막하기도 했다.
"아기를 처음 키우는 건데 도와주실 부모님과 떨어져서 지내야 하고, 생소한 도시에서 새로운 환경과 교회에 적응도 해야 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지낸 첫 1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는 사람도 없고 의지할 데는 가족밖에 없는데, 전임 전도사가 된 남편은 교회 일로 너무 바빴다. 아이는 갑자기 바뀐 환경 탓인지 잔병치레가 많았다. 알지도 못하는 동네에서 갓난아기를 데리고 병원에 다니며 김 씨는 많이 울었다. 그는 이때가 가장 힘들고 외로웠다고 말했다.



김수영 씨는 부교역자 아내로 살면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원하는 시기에 옮길 수 없어서 항상 불안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곽승연
김수영 씨는 부교역자 아내로 살면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원하는 시기에 옮길 수 없어서 항상 불안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곽승연

첫아이를 낳고 1년 7개월 뒤 둘째를 출산했다. 이후 꼬박 4년을 육아와 내조에 매진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조금 길게 맡길 수 있게 됐을 때, 한 사립학교에서 계약직으로 일할 기회가 생겼다. 청소년에 대한 비전이 있었던 김수영 씨는 1년간 정말 열심히 일했다. 일과 육아, 교회까지 신경 쓰다 보니 과로로 응급실에 가기도 했지만, 계속 일하고 싶었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붙었다.
문제는 남편의 사역이었다. 서울에서 목사 안수를 받아 부교역자로 5년째 일하고 있던 남편은 다시 지방에 내려가고 싶어 했다. 남편은 서울에서 쉼 없이 달려온 탓에 심신이 지친 듯했다. 김수영 씨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부교역자의 삶이라는 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어렵게 잡은 일을 그만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 지방에 내려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건 큰 부담이었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원하는 시기에 옮길 수 없어서 항상 불안했다. 당장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니,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과 정붙이고 살기도 힘들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어린이집에 잘 적응해 다니고 있는데 '우리가 아이들을 또 낯선 환경으로 내모는 것 아닌가' 싶었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왔을 때,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첫째가 유치원 생활을 힘들어했다.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미안했다. 특히 전 교회에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할 때 참 가슴이 아팠다."




김수영 씨는 "부부가 대화를 통해 하나의 공통된 비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곽승연
김수영 씨는 "부부가 대화를 통해 하나의 공통된 비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곽승연
남편 사역지 옮겨 다니며 육아 매진
다시 일자리 알아보려니 '경력 단절'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방에서의 사역은 1년 만에 마무리됐다. 남편은 서울에 있을 때 학교를 다니며 기독교교육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지방에서도 학업을 이어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남편은 중단했던 학업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고, 김수영 씨는 남편을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서울로 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남편 사역지에 따라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것은 김수영 씨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김 씨가 결국 거처를 옮긴 것은 남편의 사역을 남편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청소년 사역은 하나님이 김 씨 가정에 주신 비전이었다. 부부는 인생의 큰 결정을 내릴 때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대화들이 김 씨가 버틸 수 있는 힘이었다.
"부부가 대화를 통해 하나의 공통된 비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가끔 애들을 재워 놓고 남편과 차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런 시간마저 없었다면 정말 불행했을 것이다."
김수영 씨 가족은 결국 올해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남편은 새로운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고,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교회다 보니, 네 식구가 생활하기에는 남편 사례비가 넉넉지 않았다. 교회는 맞벌이를 권장했다. 나이 서른여섯에 다시 취업하려고 하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리고 남편을 따라 거처를 옮겨 다니면서, 김수영 씨는 제대로 된 경력을 쌓을 수 없었다.
"취업 문턱은 높아졌는데 내 이력은 그대로였다. 다시 도전해야 하는데 나이도 많은 것 같고 경력도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재취업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에 한없이 위축되기도 했다."
"'사모님' 되자 조심해야 할 것 많아져
다른 사람 눈치 보느라 자기 잃어
교회 다니면서도 신앙생활 피폐"




김수영 씨는
김수영 씨는 "사모는 신앙의 사각지대에 있다. 목사 아내들도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로서 자기 신앙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신앙'이었다. 목회자 아내로 8년을 살면서 김수영 씨는 자기를 잃었다. 평범한 교회 청년이 한순간에 '사모님'이 되면서 조심해야 할 것이 많아졌다. 교인들 눈치를 보기 시작하니, 점점 '김수영'은 사라졌다. 무엇보다 교회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다른 사람 시선을 의식하게 되니 신앙생활도 점점 피폐해졌다.
"사모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다른 사람의 말과 시선대로 나를 만들어 갔다. '사모라면 이런 걸 좋아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면 정말로 그걸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이자 사모로서의 역할 때문에 항상 행동을 조심해야 했고 예배에 집중하기도 힘들었다."
자기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계기는 지난해 교회에서 했던 성경 공부였다. 그 성경 공부는 '여성' 교인만 대상으로 진행했다. 여성만 대상으로 해서 그런지, 성경 공부에 참여한 교인들은 김수영 씨를 '사모'가 아닌 한 명의 크리스천으로 봐 주었다. 그들과 나눴던 교제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 모임 안에서는 서로를 직분으로 나누지 않아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교인들이 내가 사모라고 멀리하지도 않고, 격식을 차리지도 않았다.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으로 교제하니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엄마·아내·사모'라는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사모'는 프레임이었다. 김수영 씨는 이를 깨닫고 조금씩 그 벽을 깨 보려 한다. 아직 시작하는 단계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강요받은 목회자 아내 이미지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신앙을 가지고 독립적인 인생을 살고 싶다고 했다.
"교회에만 갇히는 게 아니라 사회에 나가 충분히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나를 비롯해 사모들이 본인의 이름을 찾고 사명을 좇아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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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를 만나다③] "부교역자 아내의 삶, 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나요"
남편 고용 불안정으로 경제적 어려움, 독박 육아 시달려…"나는 고립됐다"

기자명 곽승연 기자
승인 2020.02.28 19:45



<뉴스앤조이>가 인터뷰한 부교역자 아내들 중 30대 여성 두 명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연재합니다. 두 사람은 평범한 교회 청년이었지만 결혼한 사람이 목회자라는 이유로 한순간에 '사모'의 삶을 살게 됐습니다. 독박 육아와 고용 불안정, 교회의 각종 검열에 시달리면서도, 이들은 어디에서도 속 시원하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그림자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는 이 여성들 목소리를 경청해 보면 좋겠습니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곽승연 기자] 이지혜 씨(가명)는 목회자 가정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랐다. 교회 봉사도 하고 찬양팀에도 참여하면서 열심히 섬겼다. 활발한 성격으로 어디를 가나 적응을 잘했던 이 씨는 청년으로 성장하며 '선교'에 비전을 품게 됐다. 해외에서 대학을 다닌 이 씨가 그곳의 선교 현장을 직접 경험한 것이 계기였다. 현지 선교사가 신학을 공부해 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신학대학원을 준비하는 스터디 모임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같은 비전을 품은 남편과 교제하고 결혼 이야기가 오가면서 이 씨는 자연스럽게 신대원 입학을 접게 됐다. 이 씨가 속한 교단은, 남자가 목회를 하면 여자는 자연스럽게 '사모'를 하는 분위기였다. 이 씨 부부는 남편의 신대원 졸업과 동시에 해외로 선교 훈련을 떠났다. 선교 중 임신을 하게 됐고, 임신한 상태에서 타국 선교를 지속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2년 만에 귀국했다.


담임목사의 위선
담임목사 아내의 폭언
남편은 사역 그만두고 택배 일
아내는 고립된 생활에 우울증
이지혜 씨 남편은 한국에 돌아와서 곧바로 전임 전도사 사역을 시작했다. 교회 사정이 열악해 사례비는 100만 원대 초반이었다. 그래도 아이가 한 명이라 적자가 크지 않았다. 교회에서 지원해 준 2000만 원으로 알아서 집을 구해 살아야 했다. 10평 남짓한 낡은 집에서 2년 가까이 살았다. 그 기간 남편은 목사 안수를 받았다.
물질적인 어려움은 견딜 수 있었다. 정말 힘든 것은 담임목사 아내였다. 그의 부적절한 언어가 부교역자들은 물론 많은 교인을 힘들게 했다. 사소한 일로 심하게 꾸짖었고 이 씨 부부가 교인과 친하게 지내는 걸 싫어했다. 이 씨는 "담임 사모는 우리가 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방해했다"고 말했다.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일하던 남편은 심신이 지쳐 갔다.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남편은, 사역지를 옮겨 파트타임 목사로 일했다. 하지만 그 교회도 결코 편하지 않았다. 담임목사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잘했지만, 사회적 약자는 등한시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남편은 그런 담임목사의 위선적 행동에 회의를 느꼈다. 결국 그곳에서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 시기 이 씨 부부 사이에 둘째가 태어났다. 남편은 사역을 쉬면서 택배 일을 시작했다. 몸이 힘든 일이다 보니 남편은 점점 예민해졌다. 남편에게 육아 도움을 받는 것을 기대하기가 어려워, 이 씨는 아이 둘을 혼자 케어해야 했다. 아이가 둘이라 지출도 커져 경제적으로 더욱 힘들어졌다. 이 씨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남편은 사역을 다시 해 보려고 했지만 좋은 사역지를 찾지 못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나라도 일해야 하는데 아이가 어리다 보니 그럴 수도 없었다. 아이를 맡길 곳도, 정착한 교회도 없으니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한마디로 고립된 상태였다. 우울증이 심해졌다.




이지혜 씨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나라도 일해야 하는데 아이가 어리다 보니 그럴 수도 없었다. 아이를 맡길 곳도, 정착한 교회도 없으니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곽승연
이지혜 씨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나라도 일해야 하는데 아이가 어리다 보니 그럴 수도 없었다. 아이를 맡길 곳도, 정착한 교회도 없으니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곽승연
어렵게 다시 구한 사역지
1년도 안 돼 '권고사직'
아이도 둘인데 "3개월 안에 나가라"
택배 일을 하던 남편은 어렵게 다시 사역지를 구할 수 있었다. 8개월쯤 지난 어느 날, 집주인이 "아이들이 너무 뛰어다닌다. 집을 좀 빼 주면 좋겠다"고 했다. 전세 보증금을 교회에서 지원해 주었기 때문에 담임목사에게 알렸다. 담임목사는 조금만 기다려 보자더니, 몇 주 후 남편에게 갑자기 교회를 나가 달라고 했다.
"담임목사는 '사역지가 구해지면 나가라'가 아닌 '11월까지 교회를 나가라'고 했다. 3개월 안에 다른 사역지를 구해야 했다. 사역지를 구하지 못하면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아이 둘을 데리고 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나도 프리랜서로 간간이 일하며 적은 돈이라도 벌 수 있었다. 남편 사역지 때문에 지역을 옮기게 되면 그만둬야 하는 일이었지만, 그런 걸 따지며 옮길 형편이 아니었다."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은 항상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듯했다. 이지혜 씨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원망도 생겼다. 부교역자 가정의 현실이 이렇다는 걸 왜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을까. 신학교에서 지식뿐만 아니라 사역자로 지내면서 힘든 점도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닌가. 결혼 생활은 책임져 주지 않으면서 결혼만 권장하는 건 아닌가. 목회자 가정의 고충은 가르쳐 주지 않으면서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고만 말하는 교회가 원망스러웠다.
이 씨는 어느 환경에서나 적응이 빠른 사람인데도, 목회자 아내의 삶이 쉽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외로움'이었다. 말할 곳이 없었다. 남편은 항상 지친 모습이었고 육아에도 신경 쓰지 못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연애하며 나눴던 선교에 대한 비전도 흐려졌다. 남편은 부교역자로, 이 씨는 아내이자 엄마로 지내면서 현실에 지쳐 갔다.




이지혜 씨는 목회자 가정의 고충을 가르쳐 주기보다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고만 말하는 교회를 원망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이지혜 씨는 목회자 가정의 고충을 가르쳐 주기보다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고만 말하는 교회가 원망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사모' 아닌 '동역자'로 봐 준 한 사람
목회자 아내들도 이야기할 곳 필요해"
이지혜 씨가 그나마 부교역자 아내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목사 아내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 덕분이었다. 이 씨는 카페에서 비슷한 고충을 겪는 부교역자 아내들을 만나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약자들끼리의 공감이랄까. 비록 익명이었지만 '사모'라는 공통점 때문에 더 쉽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야기를 들어 주는 '한 사람'이 필요했다. 이지혜 씨는 힘든 시절이었지만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자신을 '사모'가 아닌 한 명의 '동역자'로 봐준 집사였다. 영유아부 교사였던 그 집사는 이 씨에게 편하게 다가와 줬다.
"사모들을 편하게 대하는 교인이 없는데, 그 집사님은 친한 언니처럼 먼저 말을 걸어 주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분은 그저 맡겨진 일에 헌신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그 헌신의 수혜자에 내가 포함됐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이지혜 씨는 교회를 옮기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새로 옮긴 교회는 다행히도 부교역자 가정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였다. '사모' 역할을 강요하지도 않고 '이지혜' 그 자체의 생활을 인정해 주려 했다. 덕분에 남편도 잘 적응해 사역하고 있고,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나니 이 씨도 본인을 돌아볼 시간이 생겼다.
이지혜 씨는 부교역자 아내로 생활하며 부부 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목회자 부부 관계가 건강해야 교인과 교회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목회자의 건강하지 않은 부부 생활은 곧 교회를 힘들게 하더라. 부교역자 아내로 살면서, 왜 이런 걸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을까 생각했다. 다른 사모들은 나처럼 힘들어하지 않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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