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3

[세상읽기] ‘종북좌파’ 봉준호 감독 /김갑수 : 국제신문

[세상읽기] ‘종북좌파’ 봉준호 감독 /김갑수 : 국제신문



[세상읽기] ‘종북좌파’ 봉준호 감독 /김갑수

국제신문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입력 : 2020-02-03 20:01:05
| 본지 26면



현 정의당 전신은 이정희 심상정 유시민이 함께 만든 통진당이다. 통진당의 뿌리는 민주노동당, 줄여서 민노당이다. 민노당 시절 유명인이 꽤 많이 당원으로 가입했는데 특히 선명히 떠오르는 인물은 영화감독 봉준호이다. 당적을 계승해 현재도 정의당 당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에 올라 탄압받은 사실, 더욱이 영화 ‘기생충’에 담긴 문제의식을 보면 봉준호의 사회의식은 변함없을 것이다.

입만 열면 종북, 좌익 빨갱이, 문재인 타도를 외치는 극렬 보수 인사를 방송에서 만났다. 약간 이죽거리며 나는 물었다. “그대의 언행에 비춰 보면 봉준호도 종북좌빨일 텐데 영화 ‘기생충’ 타도를 외쳐야 하는 것 아니오?” 상대는 우물쭈물 답했다. “좌익은 맞지만 그래도 봉준호는 인정해야지….” 도대체 뭘 인정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화가 안 되는 탓이다.

오늘의 한국은 1990년대에 완성됐다고 나는 주장한다. 민주화와 더불어 대혁신 시대였기 때문이다. 대혁신의 출발점은 세계화다. 처음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를 내걸었을 때 대부분 우리가 세계로 나아가 잘 해보자는 뜻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세계화는 국내를 국제화시킨다는 게 참뜻이었다. 90년대에도 어르신 평론가들은 요즘 가수들이 ‘사랑’을 ‘싸아랑’으로 발음한다고 마구 훈계했다.
하지만 90년대 신인 가수들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아예 국어 반 영어 반 섞어 쓰는 노래를 시작했다. 한글 파괴는 민족 정체성을 말살한다며 언론에서 틈만 나면 공격해댔지만, 결과를 보면 한글·한국어에 대한 자부심은 훨씬 커졌고 오히려 세계에서 학습자가 가장 늘어나는 언어로 부상했다.

또 하나의 혁신은 사상과 윤리도덕의 금제를 대부분 풀어버린 것이다. 영화 ‘JSA’에서는 남북 병사가 우정을 나누고, ‘친구’에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허용했다. 그게 이어져 오스카상을 넘보는 봉준호까지 도달한 것이다. 어느덧 한국, 한국인은 뉴욕 문화계, 파리 패션 뷰티 시장, 런던 음악씬에서 기이한 외계인이 아닌 ‘원 오브 뎀’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는 이전과는 완연히 다른 한국의 출발점이다.

내게는 긴장하며 하루하루 지켜보는 사안이 있다. 오는 9일 발표되는 오스카상에서 ‘기생충’이 어느 정도 실적을 낼 것인가. 23일 발매되는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맵 오브 더 솔; 7’이 전작의 기세를 이을 것인가. 기존 K-POP과는 성격이 다른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 열풍이 부는데 해외에서도 큰 반응이 있을 것인가 등등. 이 관심을 한마디로 묶어 말하면 ‘원 오브 뎀’의 소망 때문이다.

아직 한국은 세계 초일류 무대에서 갑자기 부상한 이색적인 틈입자 시선을 받는다. 그들 중 하나(원 오브 뎀)로 심상하게 우리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삼성 스마트폰이나 LG 세탁기 판매만으로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봉준호가 오스카 수상을 못 해도 이미 다 이룬 셈이다. ‘와호장룡’의 아시아니즘과는 달리 ‘기생충’은 세계 보편의 현재적 영화문법으로 엄청난 각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방탄의 신작 앨범은 전작만큼 팔릴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 역시 무릎을 치게 영리한 선택을 했다. 전작 ‘보이 위드 러브’가 하루 만에 유튜브 조회 수 7400만으로 기네스 기록을 갈아치운 것은 K-POP 속성 중 팝뮤직을 지향해 정점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신작의 선행 발표곡 ‘블랙스완’은 아트를 지향했다. 방탄의 아트 추구는 현재 영미팝에서 빈 공간을 공략해 확고한 자기 자리를 굳히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좋다.

예쁘고 발칙한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가 현재 최정상에 있지만, 올해 그래미상은 남사스럽고 단순하며 냉소적이기 이를 데 없는 ‘배드 가이’의 빌리 아일리시가 휩쓸었다. 초창기 펑크음악처럼 과잉된 세련성과 잘난 척으로 오히려 자기파괴를 꾀하는 언더 감성, 소위 비전통적 문화소비 욕구가 상존하는데 지코의 ‘아무노래’는 바로 그쪽을 치고 나갔다. 서방의 코리아부(한류 혐오자)들이 허를 찔린 기분일지 모른다. 방탄과 아리아나 그란데, 지코와 빌리 아일리시가 콜라보를 한다면 얼마나 근사할 것인가!


시인·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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