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7

박인식 [서평] 제국의 위안부-지식인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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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식 13 June at 05:01 · [서평] 제국의 위안부-지식인을 말한다


1. 읽기 준비

2013년 7월에 발간된 <제국의 위안부-식민지 지배와 투쟁의 기억>은 (이하 <원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한다는 오해의 중심에 섰다가 급기야는 친일의 오명을 쓰고 발간 1년여 만에 피소되기에 이른다. 저자인 박유하 (Park Yuha) 교수는 일방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고 피소되면서 겪어온 기록을 ‘논점’을 중심으로 한 <제국의 위안부-지식인을 말한다>와 ‘소송과정’을 중심으로 한 <제국의 위안부-1460일의 기록> 두 책으로 정리해 2018년 6월 발간한다.
<원저>에 이어 <제국의 위안부-지식인을 말한다>를 (이하 <본서>) 읽자니 먼저 ‘역사수정주의’라는 낯선 개념을 이해해야 했다. 열심히 살펴봤는데도 주장이 서로 달라 혼란스러웠다.
위키피디아는 ‘역사수정주의’를 ‘수정주의’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옥스퍼드 사전은 ‘수정주의(revisionism)’란 ‘정설로 굳어진 어떤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asking questions about and trying to change existing beliefs about how events happened or what their importance or meaning is)’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역사수정주의’ 본래의 뜻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이해할 법하다. 학설이 진전을 이루려면 기존 학설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니 이 용어 자체는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용례는 주로 내셔널리즘(nationalism)에 한정되어 있고, 특히 일본의 자기합리화를 위한 역사왜곡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들고 있다. 이런 내용으로 볼 때 저자를 비판한 이들이 <원저>를 ‘역사수정주의’의 산물로 규정한 것은 ‘친일’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본서>가 <원저>를 비판한데 대한 저자의 반론을 밝힌 것인 만큼 먼저 비판의 내용을 파악해야 했다. 독자의 편의만 생각한다면 비판의 글과 이에 대한 반론을 모두 수록해 함께 살필 수 있었으면 좋기는 했겠다. 비판의 글을 찾기 위해 저자가 각주에 밝힌 출처를 따라다녔고,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뒤졌다. 유감스럽게도 단행본은 전자책으로 발간된 것이 없어 비판의 중심이 되는 글 몇 개는 보지 못한 채 그에 대한 저자의 반론만 읽었다.


2. 바르게 읽고 바르게 쓰기

<원저>를 읽게 된 동기가 되었던 소송과 온라인에 나도는 비판을 살펴보면서 상당수가 오독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의도적인 것이든, 독자의 게으른 책읽기에 비롯된 것이든.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실’을 적시하고 아울러 비판의 근거나 논리를 제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비판하는 이들 대부분 <원저>에 언급된 ‘사실’은 건너뛰고 자기 ‘해석’만 내세웠고, 결과적으로 저술 의도가 왜곡된 채로 비판을 받는 모양이 되었다. 또한 ‘사실’을 적시하지 않으니 ‘해석’된 비판만 읽어야 하는 독자들은 이 비판이 타당한지 판단할 수 없었다.
평생 보고서를 써오면서 ‘사실’과 ‘해석’과 ‘해법’을 구분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언제든 보고서 말미에 날것 상태의 ‘사실’(raw data)을 싣고, ‘해석’과 ‘해법’을 나누어 적었다. 사람에 따라서 자료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해석’이 다르면 ‘해법’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내 ‘해법’이 언제나 최선일 수 없고 틀릴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잘못된 ‘해법’을 적용해 비용이 낭비되는 걸 막자면 ‘해법’을 검증해야 하고, 검증을 위해서는 이를 구분하는 게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원저>나 반론, 재반론에 대해 평가하기에는 무지한 사람이다. 드러난 텍스트를 제대로 읽으려고 애쓰는 독자에 지나지 않는다. 텍스트를 바르게 읽기 위해 비판한 글을 출력해놓고 <본서>에 실린 저자의 반론과 함께 읽었다. 그런 방식으로 반론 중 법학자 ‘서경식 교수’, 법학자 ‘이재승 교수’, 한국학 전공 ‘박노자 교수’, 한국사 박사후과정의 ‘젊은 학자들’의 글을 읽었다. 저자가 긴 지면을 할애해 반론을 펼쳤던 조선근현대사 전공 ‘정영환 교수’의 글은 반론의 근거인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을 구할 수 없어 제외하였다.
아래는 비판의 글과 반론을 함께 읽은 결과이다. 둘 모두를 판단할 역량에는 미치지 못하니 그저 읽으면서 궁금했던 점을, 그것도 일부를 적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회가 닿는다면 관심 있는 분들과 토론할 기회를 가져보고 싶다.

3. 서경식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은 서경식이 2011년 발간한 <언어의 감옥에서>의 일부로서, 그는 여기서 <원저>의 출발점이 된 <화해를 위해서>(2005)를 비판한다. <원저>가 <화해를 위해서>에서 출발했듯이 <원저>에 대한 서경식의 비판 또한 여기서 출발한다. 다행히 이 부분에 대한 번역본이 공개되어 있었다. 4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었음에도 몰입해서 그것도 세 번이나 읽을 만큼 인상 깊었다. 저자는 서경식의 비판에 대해 구체적인 반박보다는 전체적인 틀에서 반론을 제기하는데, 이는 서경식의 비판이 <원저>에 직접 가해진 것이라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반론보다 적은 지면을 할애했지만 나는 오히려 이 서평을 쓰기 위해 참고한 다른 어떤 비판보다 흥미 있게 읽었다.
저자는 <원저>에서 “비록 옳지 않은 법이라도 ‘당시의 법’이 그러하니 그에 따라 위안부를 동원한 것이 불법이 되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법적 실체는 인정하되 그것이 왜 책임져야 할 일인지 입증하는 것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서경식은 “‘당시의 법’이라는 것은 당시 국제사회를 형성하고 있던 제국주의 국가들이 피지배민족의 주권을 부정하고 당사자를 배제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이니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이유로 저자의 제안을 비판한다.
저자는 <원저>를 비롯한 여러 지면에서 “현실적으로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면 ‘도의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일관되게 주장해 오고 있다. 이에 대해 서경식은 “‘도의적 책임’이란 식민지 지배 책임을 회피하고, 책임 회피가 불가능한 경우에도 ‘법적 책임’을 부정해 ‘도의적 책임’ 수준에 한정시키려는 일본을 비롯한 식민제국의 ‘완강한 공동방어선’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오히려 “‘법이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 또는 법의 주체가 되는 것을 역사적으로 부정당해 온 사람들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법적 책임’의 상위 개념으로서 ‘도의적 책임’을 물어야 하며, 이 같은 ‘도의’에 근거해 새로운 법을 세움으로서 ‘도의적 책임’이 ‘법적 책임’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위안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 내부로부터 자성이 일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일본 정부가 ‘도의적 책임’을 인정한 것을 수용해 화해의 발판을 만들고, 아울러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을 신뢰하고 이들과 연대할 것”을 주장한다. 서경식은 “‘양심적 지식인’이 과연 ‘도의적 책임’이라는 수사(rhetoric)에 깔려 있는 ‘완강한 공동방어선’을 극복할 수 있을지” 회의를 표한다. ‘양심적 지식인’의 한계를 말하는 것인데, 이런 이유로 신뢰와 연대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또한 서경식은 “<화해를 위해서>는 범죄에 대한 용서의 조건이 갖춰져야 하며, 그 조건으로 책임 인정과 사죄와 보상이 필요하고, 그런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화해를 말하는 것은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원저>와 서경식의 비판을 함께 읽으면서 <남한산성>을 생각했다. 사십 년 직장생활 하면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최명길과 김상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늘 최명길을 선택했다. 김상헌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최명길이 빛나는 길이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비난이 따르는 길이었다. 그래도 그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비난을 감수할 수 있었다. 나는 저자가 나 같은 마음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명길과 김상헌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한 바가 같은 것처럼, 저자와 서경식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가는 길이 다를 뿐. 저자도 <본서>에서 자신과 서경식은 “사고의 차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싸움의 방식이 다르다”고 말한다.
서경식의 비판은 <원저>가 출간되기 전에 이루어진 일이고, 그 후의 모든 주장이 이 비판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그가 비판했던 <화해를 위하여> 서평에서 다시 한 번 다루어볼 생각이다. 저자와 서경식 사이에 좀 더 학문적인 토론이 이어지면 좋겠다.

4. 이재승 <위안부에 대한 잘못된 키질>

이재승은 <원저> 발간 두 달 후 ‘아포리아 출판’ 홈페이지에 <위안부에 대한 잘못된 키질>이라는 제목으로 서평을 올렸다. 그는 여기서 “법적인 책임요소가 없다면 책임을 더 이상 논하지 말자”고 말한다. 이는 일본에 법적 책임이 없으니 그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당시의 법’의 불법성 때문에 위안부 동원에 법적 책임이 있다는 걸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수십 년에 걸친 일본의 지배가 만든 문제를 고작 범법 여부로 물어야 한다는 발상은 일본에 대한 비판을 오히려 축소시킨다”고 반박한다.
이재승은 당시 일본 형법이 “사람을 강제로 연행하거나, 기망하여 연행하거나, 금전을 대가로 사람을 매매하는 행위를 범죄(약취유괴죄)로 규정한다”고 밝힌다. 이 법에 따르면 위안부 동원은 불법이 되는데, “위안부 동원을 합법화하기 위해 ‘직업소개법’을 만들어 ‘약취유괴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고 아울러 밝힌다. 여기서 저자와 주장이 엇갈린다. 저자는 “‘당시의 법’으로는 위안부 동원을 불법으로 보기 어려우니 다른 방식으로 이를 해결하자”고 하는데, 이재승은 그것이 “‘약취유괴죄’를 위반한 불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조선인 여성에게 제도적 폭력이 ‘합법적’으로 행사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는 ‘직업소개법’이 위안부 동원을 합법화했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가 되기는 한다. 그렇다면 이재승은 위안부 동원을 합법으로 보는 것인가, 아니면 불법으로 보는 것인가?
저자가 <원저>에서 “‘당시의 법’에 따라 법적책임을 묻기 어려운 상태에서 아시아평화기금은 현실적인 화해의 수단이 될 수 있겠다”는 의사를 피력했음에도 이재승은 이를 “저자는 ‘한국인들이 아시아평화기금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한다”고 읽는다. 그리고 “법적으로 일본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일본에 또 다른 책임을 이행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비판을 마무리한다. 저자는 그런 글을 쓰지 않았고, 행간에서도 그렇게 해석될만한 여지를 나는 찾지 못했다. 왜 그런 차이가 생겼을까?
저자는 <원저> 전반을 통해 남성주의적, 가부장적 사고를 비판하고 있고, <원저>를 비판하는 것은 바로 그런 사고방식 때문이라고 질타한다. 여기서도 이재승의 비판이 동일한 까닭에서 출발한 것으로 지적하고 있는데, 이재승의 비판을 부정적으로 읽는 내 눈에는 그런 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나 역시 남성주의적, 가부장적 사고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는 법을 알지 못한 채로 발주처인 이곳 정부의 횡포에 맞서 몇 년째 고단하게 공사비 지급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계약서 문구 하나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공사비 수천 만 달러의 향방이 결정되는 걸 매일 실감한다. 저자가 법을 거론한 것은 그것이 한일 관계 문제를 유발한 주요 원인으로 판단하고 어떻게 해서든 양국 관계를 화해로 이끌어보려는 진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법 전문가가 아니니 상식을 바탕으로 법적인 해석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겠다. 이재승의 비판을 읽으면서, 또한 <원저>를 비판한 다른 법학자들의 해석을 찾아보면서 법이란 상식으로 판단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대상인 것을 새삼 깨닫는다.

5. 박노자 <‘용서’라는 이름의 폭력>

박노자는 저자가 피소되기 직전인 6월 초에 온라인 미디어 ‘레디앙’에 올린 <파시스트는 화해가 아니라 단죄의 대상>이라는 글에서 우크라이나 파시스트가 저지른 범죄를 거론하며 저자가 <원저>에서 말하는 것을 “파시스트 범죄를 용서하라”는 말로 여기고 이를 비판한다. 이유를 짧게 설명하다 보니 근거가 선명하지는 않지만 ‘위안부 강제 연행’과 ‘동지적 관계’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비판의 근거가 분명치 않으니 저자로서는 근거를 밝혀주기를 요청했고, 박노자는 며칠 뒤 같은 지면에 <‘용서’라는 이름의 폭력>라는 답글을 올린다.
답글에서 박노자는 “위안부 동원에 대해 국가 배상이 어려운 것은 문제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범죄를 물을 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저자의 설명에 대해 “이는 제도화된 강간이며, 전시 강간은 17세기 이후 국제법에서 엄중하게 금지되어 있다”고 반박한다. 이 과정에서 “적용하는데 난관이 있는 방법을 굳이 고집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해법을 찾자”는 저자의 진의는 실종되어 버린다.
그는 아울러 “국가의 전쟁범죄를 관민 합동 기금으로 해결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동원이 전쟁범죄인 것을 인정하고 합당한 배상을 하는 것이 최선의 해법인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것이 지난한 일인 것은 박노자 또한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 생전에 배상을 받는 길은 요원해진다. 지난한 과정 끝에 언젠가 일본 정부의 승복을 받아낸다면 국가적 명분은 찾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작 보상 받을 피해자는 배제되어 버린다. 박노자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섣부른 예단인지 모르겠지만 혹시 우리 정부가 먼저 보상하는 방안을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과연 그것이 ‘수상의 사죄편지와 실질적인 보상’ 보다 피해자가 더 원하는 방식일까? 또한 “일본 정부든 한국 정부든 깡패조직이긴 마찬가지”라는 그의 발언으로 미루어볼 때 그는 실질적인 사과와 보상보다는 어느 쪽이던 정부를 무릎 꿇게 하는데 더 치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저자는 박노자가 정영환의 <무엇을 위한 ‘화해’인가>의 <해제>에서 비판한 내용에 대해 길게 반박했는데, 아쉽게도 책을 구할 수 없었고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이 책의 서평에도 <해제>에 대한 언급은 찾을 수 없었다. 사안에 대한 박노자의 접근 방식이 내 상식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 보니 굳이 그 글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6. 젊은 학자들 <제국의 위안부를 말하다>

저자에 대한 가처분 신청이 일부 인용된 후, <원저>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지니고 있는 한국사 박사후과정의 ‘젊은 학자들’이 집담회를 가졌고, 이 결과를 <역사문제> 33호에 발표하였다. 저자를 직접 겨냥한 것도 아니고 학자들이 특정 주제를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을 나눈 ‘집담회’ 결과에까지 저자가 의견을 내야 하는지 의아했다. 저자의 반론을 다시 읽어 보니 원고 측에서 이를 재판부에 제출해 답변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젊은 학자들’이 이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발언한 것인지, 재판부에 제출할 때 동의는 했는지 궁금하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글이라는 것이 ‘의도와 무관’한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하겠다.
처음 집담회 기록을 읽었을 때 주장 대부분이 오독에서 시작된 것으로 생각했다. 다시 읽어보니 <원저>의 저술 의도를 제대로 이해한 곳도 몇 곳 눈에 띠었다. 전체적인 주장을 이해하고도 세부적인 면을 오독해 결국은 전체를 오독하는 결과를 낳았다.
최우석은 저자가 “위안부 문제에 담긴 구조적 존재를 다시 보고 우리 스스로 반성하고 비판해야 한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저술 의도를 이해하면서, 한편으로는 저자가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고, 따라서 책임도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니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저자가 “위안부 동원은 합법의 모양을 갖췄으나 제국주의의 국가 확장전략의 결과”라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고, “따라서 그 책임도 일본에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이해한다. 최우석이 저술 의도를 그렇게 이해했다면 내 생각과 같은 결론이 나와야 하는데, 정 반대로 결론지은 것이다.
이들은 같은 사안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의 표현인 ‘동지적 관계’에 대해 전영욱은 “싸우고 위안한다는 두 가지 행위를 수행했다는 측면에서 양자는 국민이었고 동지였으며, 더 나아가 제국의 국민이었다”고 정리한다. 이에 대해 최우석은 “(이 설정은) 군인을 위안부와 동지적 관계에 있는 이미지로 내세워 그 책임을 업자에게 전가시킨다”고 비판한다.
정대협에서 애써 만들어놓은 <증언집>에 따르면 위안부가 ‘소녀상’으로 대표될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 나는 <원저>를 읽으면서 왜 정대협에서 그런 위험을 무릅써가며 자기들이 만든 (‘소녀상’을 뒤집을 수 있는) <증언집>을 그대로 놔뒀는지 궁금했다. 최우석처럼 “정대협이 위안부의 다양한 상을 삭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산의 주체였다”고 주장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일까? 그 결과 최우석은 저자를 향해 “정대협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가부장적인 구조를 비판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하기에 이른다. 저자가 <원저>를 통해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이 그것임에도 불구하고.

백승덕은 저자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소녀가 아니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위안부 스스로 자원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이해한다. 김헌주는 저자가 “다수의 위안부 할머니를 배제하고, 일본인 업자를 배제하고, 폭력적이었던 군인을 배제한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소녀가 아니었다는 것은 소녀가 아니었던 위안부를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고, “다수가 전부인 것으로 오해하는 것은 결국 소수를 배제하게 된다”고 주장한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전영욱은 “정대협이 위안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민족주의의 대변자이고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백승덕은 “정대협이 자제력을 발휘해 저자를 고소하지 않았으며, 이 자제력은 운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자제력”이라고 ‘정대협의 돋보이는 대응’을 칭찬한다. 이번 정의연 사태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자기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지원단체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르고, 정의연 구성원들이 실제로 저자를 압박하는 당사자인 것이 밝혀진 지금에도 이들이 그와 같은 견해를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들이 언급한 내용 중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다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몇 곳 있었다. 정대협에서 ‘국민기금’ 수령을 반대한 일과, 위안부 할머니들이 고소에 이르게 된 일을 다른 관점에서 조망한 부분이 그것인데, 이는 소송 과정을 정리한 <제국의 위안부-법정에서 1460일> 서평에서 언급할까 한다.

7.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언론 평가와 온라인 반응

가. 발간 당시
<원저>가 대중서이기는 하지만 출간 당시 독자층이 지금처럼 넓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통용되었던 ‘위안부 상’을 거스르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주요 언론에서 이를 다루었는데, <본서>에 언급된 것처럼 저술 의도를 이해한 비평이 많았다. 몇몇 전문가들이 <본서>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다.
“인권침해 범죄의 책임이 일본제국주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배와 가난, 가부장제, 국가주의의 복합적 산물임을 강조한다. 저자의 이런 도발적 주장에 수긍하기란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일본만 매섭게 노려봐온 우리 자신의 모습도 한번쯤 거울에 비쳐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 동아일보 2013.08.10
“가부장적인 사회,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구조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위안부를 등장시킨 시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가능할 것이다. 일제가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지만 우리 안의 협력자에 대한 이야기 없이 제대로 된 성찰은 불가능하다. 위안부는 우리 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여성 문제가 아닐까.” - 오마이뉴스 2013.09.26

나. 피소 이후
저자가 명예훼손으로 피소되면서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되었다. 저자를 비난하는 쪽에서는 ‘친일’로 매도했고, 저자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오독’을 비난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양쪽 모두 <원저>를 제대로 읽었다는 느낌은 찾기 어려웠고, 일부 ‘용어’를 문제 삼거나 ‘표현의 자유’라는 거대 담론에 의지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원저>를 비판하는 전문가 의견은 여럿 있었는데, 의아하게도 <원저>의 취지에 동의하는 쪽은 찾기 어려웠다. 물론 내가 찾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온라인에서는 늘 그렇듯 근거를 제시한 비난을 찾기 어려웠고, 차마 옮기기 민망한 표현도 적지 않았다. ‘친일 인사’라는 표현은 그 중 완곡한 표현에 속한다. 놀라운 것은 비난을 쏟아내면서도 너무도 당당하게 <원저>를 읽지 않았다고 말한다는 점이었다. “단어부터 보기 싫어서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한 번 책을 읽어봐야 하겠지만...” 이렇게 시작하는 비판을 정당한 것으로 여길 수 있을까? 어느 정치인은 저자를 ‘청산해야 할 친일 잔재’로 몰아 세웠는데, 책을 읽어 보았느냐는 물음에 “똥은 안 먹고 냄새만으로 안다”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물론 내용을 이해한 글도 가끔 보이기는 했다. 그 중 저술 의도는 비교적 이해한 것으로 보이나 그 의도를 인색하게 평가한 글이 눈길을 끌었다.
“결국, 이 책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면해주자는 얘길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이 없다는 (일본 우익들의) 주장을 수용하는 방식을 통해 양국 간의 이견을 좁힌 뒤, 일본 리버럴들이 요구하고 있는 타협안+α를 일본 정부가 수용하도록 결단을 촉구하는 책이다. 저자의 선의를 이해할 수 없는 바는 아니나 ‘내 어깨를 내주고 상대의 심장을 찌른’ 묘안이 아닌, ‘내 심장을 내주고 상대의 머리털도 건들지 못한’ 시도였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 한겨레 2015.02.27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토론과 논쟁에서 텍스트는 컨텍스트(맥락)와 함께 읽어야 한다는 텍스트 읽기의 기본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건 애석한 일이다. 맥락이 생략된 텍스트 읽기는 오독이나 악의적 왜곡에 이용된다.” - 김규항 2015.03.09
“이 책이 한국과 일본에서 오독되고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오독과 악용까지 저자가 책임져야 하는 건 아니리라.” - 국민일보 2015.11.26
다. 정의연 사태 이후
지난달 이용수 할머니 발언으로 정의연이 이슈가 되면서 <원저>가 다시 한 번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되었다. 많은 언론에서 <원저>를 소환하고 있으나, 정작 저자가 <원저>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해법에는 관심이 없고 내용 중 정대협 비판 부분을 인용하는 데서 그친다.
물론 지원단체의 운동방식에 대한 비판도 <원저>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이기는 하다. 그러나 <원저>가 강조하는 것은 궁극적인 <화해를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이고,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 해법을 찾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논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정의연을 비판하는 쪽에 서있는 인사들이 <원저>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이 거론하는 내용을 보면 과연 <원저>를 읽기는 한 건지 의문스럽다. 한 달 가까이 화제가 되었음에도 이 서평에 인용할 변변한 구절 하나 찾을 수 없는 게 그 증거가 아닐까 한다. <원저>는 그저 누군가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구색 갖추기’로 소비되어 버리고 만다.

8. 읽기를 마치고
<본서>에서 다룬 여러 비판이 부정 일색이어서 저자가 수긍할 내용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반론 목적으로 <본서>를 쓴 것이니 굳이 수긍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인지 전체적으로 글이 강경해보였다.
부정적인 비판 중에서도 간혹 수긍할만한 부분도 눈에 뜨이기는 했다. 그러나 온라인에 올라온 비평은 대부분 긍정과 부정으로 극명하게 나뉘어있었다. 긍정적인 관점에서도 부정적인 면이 보일 수 있고 부정적인 관점에서도 긍정적인 면이 눈에 뜨일 텐데, 좀처럼 그런 글을 찾을 수 없었다. 비판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그렇게 날선 글 대신 체온이 느껴지는 글을 기대하는 게 무리한 욕심일까? 물론 수년 간 모든 비판과 비난을 오롯이 혼자 받아내야 했을 저자에게까지 요구할 일은 아니다.
성지훈 Jihoon Sung은 이 논쟁에 대해 “아이러니하게도 ‘저자’와 ‘비판자’ 양측이 제시하는 위안부 문제의 궁극적 해결 양태가 대동소이하다”고 평가한다. 논란의 핵심을 제대로 짚은 글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월간워커스(2016.7)에 쓴 <제국의 위안부 논란-모두가 화가 나있다>와 <제국의 위안부-오독과 정독> 두 편의 글은 서평을 쓰기 위해 내가 참고한 150여 개 텍스트 중 ‘<원저>를 가장 잘 읽은 글’로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의 일독을 권한다. (댓글에 링크)
저자는 <본서>를 “<제국의 위안부> 고소고발사태는 학술공간에서 이루어졌어야 할 논의를 법정에서 이루어지도록 만든 사태인데도 나에게 비판적이었던 지식인들은 이 기간 동안 나를 공론의 장에 부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접 만든 ‘공론의 장’”으로 규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가 발간된 이래 <원저>의 주제가 공론화된 흔적은 찾기 어렵다. 이번 정의연 사태를 통해 <원저>가 다시 소환된 만큼, 이것이 공론의 장으로 연결되어 <화해를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고 진전을 이루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선 ‘성실한 책읽기’가 무엇보다 필요한 덕목이라는 말로 <본서>에 대한 전체적인 소감을 대신한다.





46Park Yuha, 李昇燁 and 44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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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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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 논란, 모두 화가 나 있다 | 주간 워커스《제국의 위안부》 논란, 모두 화가 나 있다 | 주간 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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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 오독과 정독 | 주간 워커스《제국의 위안부》, 오독과 정독 | 주간 워커스



Insu Bae

하신 작업에 경의를 표합니다. 제 감각으로는 제국의 위안부를 읽거나 논쟁을 접하여 저자의 저술 의도를 동의 여부를 떠나 어느 정도 읽어낸 이가 10% 남짓이지 싶고, 무엇이 그런 결과를 만들었을까, 6년 지난 지금까지 들여다 보며 과제로 가져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 10%에 속하지 싶은데 그건 아마 화해를 위해서를 먼저 읽어 저자의 진정성에 대한 선이해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두고 있습니다.
그 관점에서 제게, 최근 하고 계시는 작업은 도움과 자극이 됩니다. 주로 무엇을 제가 놓치고 있었는지 또는 지금부터 찾아보거나 눈여겨볼 공부재료를 덕분에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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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u Bae replied ·2 replies


변영권


박인식 replied ·1 reply



Park Yuha

아까 메세지 보냈지만 다시 씁니다. 다시 감사드려요. 자료정리까지 해 주셨다니 제가 참고해야겠어요.
특별히 덧붙일 말 없지만 뭔가 있으면 다시 쓰겠습니다.



박인식

오늘 하루는 쉬고 내일부터는 <1460>일을 읽을 생각입니다. 내일부터 출근은 하는데, 하루 5천 명 가까이 확진자가 생기는 판에 다시 lockdown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통행금지 시작되면 1주일 그대로 근무하면 2주일쯤 걸릴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마지막으로 <화해를 위해서>로 돌아가서 대장정(ㅋㅋㅋ)의 막을 내릴까 합니다. 혹시 독서모임 같은 거 없나요? 잘 알아뒀다가 서울 갔을 때 시간 맞으면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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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박인식 코로나가 심각하네요. 그런데 코로나 덕분에 제가 또 서평을 얻게 되는 거네요.^^
독서 모임이라기보다 책도 읽고 답사도 하는 모임은 있습니다. 일정을 미리 알려 주시면 맞춰서 모임을 할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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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min Kim

탄탄한 서평이어서 읽는 사람이 미안할 정도입니다. 감사합니다.



박인식 replied ·1 reply


권용득

성지훈 기자도 말씀하신 기사 쓰고 욕 많이 먹었어요. 당시 소위 진보 진영에서 <제국의 위안부>를 어떤 식으로든 옹호하면 뉴라이트 역사관에 물든 반동분자쯤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거든요. 서경식 교수 같은 경우 <화해를 위해서> 출간 무렵부터(혹은 그 이전부터) 박유하 교수를 일본 리버럴의 욕망에 복무하는 '반동'으로 분류하기도 했고요. 저는 그런 식의 간편한 분류가 어떻게 가능하지 모르겠지만, 특히 학자라는 사람들이, 아무튼 그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 덕분에 옹호와 비난이 서로 적대적으로 오갔습니다. 박선생님처럼 꼼꼼히 읽은 서평은 설 자리가 없었지요. 제 기억으로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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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식

권용득 아, 성 기자를 아시는군요. 읽으면서 어떤 분인지 궁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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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박인식 성지훈 기자는 가는 곳마다 입바른 소리를 해서 잘리고, 지금은 민노총에서 일하고 있는데 옹케 아직 안 잘리고 있네요. 어디든 그가 부디 장기 근속하기 바랄 뿐입니다.
그건 그렇고, 말씀하신 것처럼 <제국의 위안부> 논란 당시 몇몇 법학자들이 비난 대열에 합류했는데, 저는 그게 결국 <제국의 위안부> 논란이 형사소송으로까지 이어진 배경 아닌가 싶어요. 박유하 교수가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정한다는 식으로 '처벌의 근거'를 마련해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얼마나 비열한 선동인지는 <제국의 위안부>뿐만 아니라 반론을 비롯해 이미 여러 텍스트를 꼼꼼히 살펴보신 박선생님께 굳이 부연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아래 공유해드린 손이상의 포스팅을 참고하시면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https://www.facebook.com/yisang.sohn/posts/10202611715208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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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첨부해드린 손이상의 포스팅 아래에는 박유하 교수의 댓글도 있으니 함께 참고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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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식

권용득 아, 이 글 읽었습니다. 관련한 글들 엄청 열심히 찾아 봤거든요. 검색해서 확인한 것 중에 다운 받은 것만 150개가 넘으니까요. ㅎㅎㅎ

권용득

박인식 네. 블로그 가서 목록 봤어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eply...












김헌하

물론 10점 만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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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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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hik Lee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저도 선생님 말씀처럼 취지에 동의하는 전문가 의견이 별로 보이지 않아서 의아했습니다. 일반 사람들에게도 사실 박유하교수를 지지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의 커밍아웃 이었고 그 이유로 인간말종 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아마도 예외 없이).. 어찌되었건 지금의 일들이 박유하교수님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한국사회가 좀 더 성숙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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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식

이기식 저는 긴 글을 잘 안 씁니다. 길면 안 읽거든요. 이건 그저 제 생각을 정리할 생각으로 쓴 겁니다. 오독은 긴 글을 읽지 못하는 사회적인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 이 글을 올리면서 과연 끝까지 읽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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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kyo Kim

잘 읽었습니다. 맥락을 읽는다는 건 성실성을 요구하는데, 부분적으로 공격 받을 수 있는 게 세상사라...이런 노력이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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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식

김선교 이 긴걸 다 읽으셨어요? ㅎㅎㅎ 시간 꽤 걸렸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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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kyo Kim

박인식 3번 시도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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