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8

“왜 우리는 ‘쪽발이’로 불리는가” - 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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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쪽발이’로 불리는가”
日작가 고바야시 작품집 ‘쪽발이’국내 첫 출간

‘일본인에게 조선인이란 무엇인가’를 평생의 주제로 삼아 치열하게 고뇌한 일본인 소설가 고바야시 마사루(小林勝, 1927~1971)의 작품집이 국내에서 처음 출간됐다. 도서출판 소화가 펴낸 ‘쪽발이’(이원희 옮김)가 그 책이다. 책을 보면 “일본인 작가 중 이런 사람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마사루는 조선인에 대한 사죄와 화해의 문제에 천착해 소설을 쓰고 행동해온 작가다. 그가 좌익성향의 작가이긴 했지만,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이 의아하기까지하다. 그의 작품에선 일제강점기의 우리의 모습을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이라는 보기 드문 타자의 시선을 통해 볼 수 있다.

마사루는 경남 진주농림학교의 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아버지 고바야시 도키히로(小林時弘)의 셋째 아들로 진주에서 태어났다. 1944년 대구중 4학년을 수료하고, 이듬해 3월 육군항공사관학교에 입학하지만 8월 일본의 패전으로 귀향했다. 그는 와세다대를 중퇴하고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1960년 발표한 ‘가교’는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에 올랐다. 지병인 폐결핵으로 타계하기 전해인 1970년에 발표한 작품집이 ‘쪽발이’다.

그는 왜 ‘일본인에게 조선인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그토록 천착했을까. 책에는 ‘쪽발이’ ‘가교’ ‘이름 없는 기수들’ ‘눈 없는 머리’등 4편의 중·단편 외에 ‘나의 조선’이라는 작가의 글이 실려있다.

1970년에 쓴 이 글에서 마사루는 ‘내가 조선과 조선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조선을 빼고서는 소위 메이지 100년은 난센스 이외 아무것도 아니고, 조선과 조선인의 실존 그 자체가 현대 일본 사회 및 일본인의 실태를 가장 확실하게 조명해 주는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왜 조선의 문제가 일본의 운명과 여전히 관계가 있는가. 그는 “일본의 근대 자본주의가 조선과 중국의 피를 자양분으로 빨아마시면서 성장해온 그 과거를 쏙 빼버린 채, 소위 ‘메이지 100년’사상을 지닌 일본의 지배계층이 지금부터 슬슬 미국을 대신해 아시아로 진출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조선과 일본의 미래 또한 틀림없이 더욱 견디기 힘들고 불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70년대 초반에 가진 우려는 지금 현실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일본인들이 조선인에 대해 진실로 사죄하고 화해할 때 일본에도 평화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믿은 작가였다. 그래서 그는 조선을 주제로 다루는 것이 “과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의 소설에서 양심적 일본인들이 등장해 목청 높여 조선을 옹호하고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영웅적인’ 조선인들이 주인공으로 나오지도 않는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일본인 주인공들은 마음속 깊이 조선인에 대한 차별의식에 젖어 있고, 바로 그로 인해 깊이 병들어 있는 인물들이다. ‘쪽발이’의 화자인 ‘나’, ‘가교’의 주인공 ‘아사오’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본래적인’ 차별의식으로 삶에서 스스로 장애를 만들고 허우적거린다.

그건 작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마사루는 “오랜 역사와 함께 일본인 안에서 만들어진 민족적 멸시, 차별관으로부터 나 혼자만이 결코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라며 ‘결벽증’ 수준으로 스스로를 검증하고 있다. 일본인, 일본이라는 나라가 진정으로 사죄하고 화해하려 할 때 스스로 그 병든 족쇄를 풀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하는 것이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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