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8

[탐방] ‘반핵평화운동 연합’ - 동대신문

[탐방] ‘반핵평화운동 연합’ - 동대신문


[탐방] ‘반핵평화운동 연합’평화군축운동의 대중적 전개 역할 떠맡아

<容(용)>
승인 1991.03.20

지난해 핵폐기물처리장건립 반대 투쟁을 전개했던 안면도지역주민의 외침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이것은 환경과 핵문제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 한반도 민중들의 생존과 직결된 사안이라는 대중적 인식의 확산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반도 비핵지대화 반대’ ‘한국군 현대화 계획’등의 발언에서 보여지듯 미국의 공세적 대북정책은 그대로 유지되며 이는 남한의 군비확장과 TS훈련, 한․미․일 군사동맹체제의 강화 등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3일, 평화․반핵․환경관련 부문 지역단체와 활동가들은 포괄하는 ‘반핵평화운동연합(공동의장 김남주․김현)이 반전반핵 평화군축운동의 대중적 전개를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문익환, 계훈제, 백기완, 이영희씨 등을 지도위원으로 약 6백여명의 회원이 가입된 ‘반핵평화’는 공해추방운동연합의 분과였던 반핵평화위원회가 모태가 되어 지난해 12월 준비위원회를 꾸리고 부문 지역 단체와 개인들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조직구성 작업에 들어갔다.

현재 공해추방운동연합, 평화연구소, 보건의료단체 반핵분과 연대모임 등 부문단체와 목포, 군산 등지의 지역운동단체들이 결합되어 있다.
‘반핵평화’는 창립에 앞서 지난 11일 평화연구소와 공동으로 ‘한반도의 군축과 사회복지’심포지엄을 주최하기도 했다.
“80년대 이후 부쩍 높아진 환경․핵문제에 관한 관심과 남북한 평화구조 정착을 위한 통일운동으로서의 평화운동은 선도적 투쟁이 아닌 대중부문운동으로 자리 잡혀야 한다”는 조임숙사무국장은 ‘반핵평화’의 위상에 대해 “평화운동의 이론․정책개발과 대중적 실천을 수행하는 부문운동조직이라고 밝힌다.
과거 군축문제를 입 밖에 꺼내기조차 어려웠던 사회적 분위기에 비하면 지금의 정세는 미국이나 집권세력 스스로 단계적 미군감축 등을 떠들고 있듯이 군축여론을 조성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되었다 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과 남한의 군사력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허구적인 군축안을 폭로해내는 선도적 투쟁이 시급히 요구된다.
이에 ‘반핵평화’에서는 한반도 비핵지대화 선언, 핵무기 배치상황과 군사전략 정보공개 요구, 핵기지 철폐․평화협정 체결쟁취, 핵발전소 신규건설 반대 등을 주요사업과제로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운동은 미국과 집권세력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할 때 어떻게 대중성을 확보하느냐가 그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이에 ‘반핵평화’는 당면과제로서 핵기지, 핵발전소 반대를 위한 지역연대사업의 활성화를 설정해놓았다.
“지역순회강연 등을 통해 미군기지 , 핵발전소 주민들에게 핵무기의 존재를 알리고, 비핵지대화를 관철시킬 수 있는 범시민운동을 벌여나가겠습니다.
또한 핵무기철거문제에 있어 상징적 존재라 할 수 있는 원폭피해자들을 중심으로 반핵운동을 전개하겠습니다“라며 조임숙사무국장은 반핵평화운동의 대중성 확보에 대한 방안을 말한다.
이 땅에 핵무기, 미군기지가 있는 한 평화는 있을 수 없다.
더구나 허구적인 미군철수와 함께 증강되는 남한의 군비확산은 한반도의 평화를 더욱 멀어지게 한다.
이 땅의 민중의 생존을 위하여, 남북분단의 극복을 위하여 평화․군축운동을 대중적으로 힘있게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容(용)> .

<저작권자 © 동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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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평화운동연합발족
기자명 원불교신문   입력 1991.03.29 

 
교무 공동의장 맡아
의장

 한반도를 비핵지대화 하여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고, 공해추방의 일환으로 생존권을 쟁취코자하는 범대중운동단체인 반핵평화운동연합(공동의장 김현무  김남주시인)이 13일 서울 흥사단강당에서 종교인을 포함한 각 평화  환경 반핵 관련부문 지역단체 및 개인들이 총망라한 가운데 창립대회를 가졌다.
 온 국민이 핵과 전쟁의 공포로부터 해방되고 이따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데 기여함을 목적으로 발기된 반핵평화(약칭)는 반전  반핵  군축을 주요사업으로 전개하되 특히 핵위기를 일반인들에까지 인식시키는 홍보와 교육을 통하여 대중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그동안 지역을 중심으로 반핵운동을 펼치고 있는 교무(총부영산사무소)는 이번 평화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종교가 추구하는 인류구원의 궁극적인 목적과 입장을 같이하는 의의 깊은 일이라고 전제한후 반핵평화운동들이 정부정책과 대치되는 군비축소,핵무기철수, 원자력발전소폐지 문제등이여서 운동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수반되지마는 이 반대 운동을 통하여 제3의 출구를 열 수 있는 촉매가 될 수 있을것이라며 이어 핵에너지에 의존하는 문명은 시한폭탄을 안고있는 것이므로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극복되어야하며, 현재 에너지문제에 있어 최상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지마는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이들의 관심이 모아질때 새로운 방향을 찾을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핵발전소  핵기지반대를 위한 지역연대사업에 초점을 맞춰 핵관련 피해지역의 대중투쟁지원 지역내 반핵평화 운동단체 설립지원 공동실태조사등 당면과제 해결과 함께 반핵평화교실을 비롯한 회보 발간등 정기적인 사업을 전개하고 반핵평화가 발전해가려면 일반시민이 동참하는 회원확보는 물론 특히 많은 종교인(현재 6백여회원중 60명)들이 연대해서 추진해가야 할 것이라른 다수의 의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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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통史(4) 평통사 前史 _ 반핵평화운동연합
$평통史(4) $
홍보팀장 오미정 2008.02.28 18:15


2008년 1월, 25톤의 짐이 신공덕동에서 충정로로 이동하였습니다. 그 중 절반가량이 책과 문서들. 짐을 정리하면서 눈이 번쩍 뜨이는 보물들이 나왔습니다. 신공덕동 사무실 깊숙한 곳에서 사람 손을 타지 않았던 사진과 문서들. 80년대 후반 영광, 울진 등의 핵발전소·핵폐기장 건설 저지투쟁 자료들부터 90년대 초반의 반핵평화운동 자료들이었습니다. 평통사가 한국 평화운동의 맥을 잇고 있다는 명실상부한 증거들…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평통사를 접한 필자는 조직의 뿌리를 찾은 듯한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당장에라도 여러 분들과 공감하고 싶은 욕심에 덜커덕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가 귀중한 사료의 방대함에 놀라 내심 소심해진 채로 겉핥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평통사 전사(前史)를 소개합니다. 평통史 4회차에 1991년으로 되돌아간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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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 13일 오후 5시. 흥사단 3층 강당에서는 한국사회운동 사상 최초로 평화운동단체를 표방한 반핵평화운동연합이 창립한다.

“각계각층 대중운동의 비약적 성장을 배경으로 반핵평화운동은 핵발전소 건설 저지를 위한 범국민적인 운동과 송악산, 매향리, 군산, 평택, 안면도 등 미군기지, 핵관련 시설, 핵폐기물에 대한 민중의 처절한 생존권 투쟁으로 발전해 왔다. ‘반핵평화운동연합’은 이와 같은 평화운동의 자랑스런 전통을 계승하고 평화롭고 해방된 삶의 주체인 민중과 함께 이 땅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억압과 폭력에 맞서 싸워나갈 것이다” (창립 선언문 중)


△1989년 안면도, 영광 등 핵폐기장 건설 저지 투쟁에 나선 지역 주민들(왼쪽)
반핵평화운동연합의 기관지<반핵평화> 창간호(오른쪽)


△1991년 5월 18일 반핵평화운동연합 회원들(왼쪽)
1991년 6우러 3일 농섬쪽을 바라보며 설명하는 매향리 주민대책위 전만규 위원장(오른쪽)

1990년 6월부터 공해추방운동연합 반핵평화위원회 위원들을 중심으로 한 준비모임이 수차례 열렸고, 1991년 초에는 미-이라크 전쟁(걸프전)에 대한 반전활동을 전개하면서 590명이 발기인으로 참가하여 창립하게 된 것이다. 초대 공동의장은 김남주 시인과 김현 원불교 총무가 맡았다. 지도위원 명단에서는 반가운 이름 임종철 공동대표를 찾을 수 있다.

반핵평화운동연합은 1991년부터 1992년까지 핵폐기장, 핵발전소 건설 저지 투쟁. 주한미군의 핵무기 폐기 촉구 투쟁, 일본 군국주의 부활 저지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투쟁 등을 과제로 삼고, 일본 자위대의 PKO 파병, 한국군의 PKO 파병, 한미전시접수국 지원협정을 주요 사안으로 공청회, 집회, 국회비준 반대 투쟁 등 실천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한미전시접수국지원협정(WHNS)은 91년 7월 한미 정부사이에 가서명 되고, 91년 11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정식 조인한 협정이다.)

또한 기관지 <반핵평화>를 발간하였고(창간호~8호), 3차례의 반핵평화 시민교실을 열었으며, 회원의 날 행사와 기지탐방, 시민 캠페인도 활발히 하였다.

그러나 1992년 말, 대선을 거치며 김낙중 선생과 손병선 선생 등 반핵평화운동연합의 지도부가 구속되는 등 공안탄압을 받으면서 반핵평화운동연합은 “조직 자체가 존망의 위기에 놓”인다. 반핵평화운동연합의 회지 <반핵평화> 8호에서는 실무자 명의로 “설령 저희 단체가 발전적 해체를 겨냥하여 간판을 내릴지라도 그것은 ‘반핵평화’의 사상-조직적 기반을 오히려 넓히기 위한 잠정적인 ‘깃발내림’일 뿐입니다. 분단 상황이 지속되는 한, 반핵평화운동연합이 지향했던 ‘비핵’, ‘군축’, ‘평화’, ‘통일’의 이념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그 이념은 1993년~1994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연대회의와 새로운 평화운동단체 준비모임 등을 거쳐 평통사로 이어지게 된다.


△1991년 10월 17일 한반도 비핵군축 실현과 전시접수국 지원 협정 저지를 위한 결의대회


△1992년 7월 29일 일본 군국주의 부활과 동북아의 평화문제 공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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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 평화 , 핵발전소 , PKO , 매향리 , 반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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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만


"無限 폭탄-核폐기물"~"原子爐 과연 安全한가",
1974년 4월호 '新東亞' 에 실린 글 (필자:張東萬) 입니다.

지난 37년 동안 原電 테크닉이 크게 진전, 安全 장치 또한 많이 보완 되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이번 일본 원전(폭발)사고에서 보듯, 원자로 그 자체 보다 '사용後-核연료', 즉 核 폐기물 (RAW) 문제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原電의 태생적 한계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無限 폭탄-核 폐기물', 이 RAW 문제를 본 글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위험을 안고 사는 현대인, 一讀을 '강추'하는바 입니다.

글 全文은 다음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kr.blog.yahoo.com/dongman1936

약 54분 전 http://twtkr.com/dong36 에서 작성된 글
2011.03.25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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