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9

"행복하지 않다면 진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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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지 않다면 진보가 아니다"

<21세기 사상강좌>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행복의 정치학'

강양구 기자  |  기사입력 2003.12.24. 20:16:00
녹색평론사 등이 주최한 <21세기를 위한 사상강좌> 세 번째 강사로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생태주의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지난 10일과 11일 밤 서강대 성이냐시오관과 충남 홍성군 홍동면 환경농업교육관에서 두 번에 걸쳐 강좌를 개최했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두 번의 강연을 통해 현재 세계화가 초래하는 현실이 큰 위기를 초래할 것임을 경고하고,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노르베리-호지는 <오래된 미래>와 <허울뿐인 세계화>를 통해 제시된 자신의 반세계화, 반개발, 소농 중심의 농업과 지역 자립 경제의 복원, 도농(都農)연대 등을 주장하면서 궁극적으로 진보의 새로운 화두가 '행복'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르베리-호지는 또 '전체적(holistic)'분석과 '세계적(global)'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가만을 강조하거나, 지역적 실천만을 강조하는 것은 둘 다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초국적 기업과 금융 자본 그리고 미국의 패권주의 등으로 이루어진 전세계적인 시스템이며 이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국가간 연대와 국가 개혁, 지역적 실천, 그리고 개인의 깨달음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강연을 직접 듣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책으로 접한 것보다 노르베리-호지가 대안 세계와 진보에 대해 매우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고, 자기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실천가의 모습이 강하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고민을 좀더 심도 있게 소개하기 위해 <21세기를 위한 사상강좌> 후 13일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와 따로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에는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와 이필렬 에너지대안센터 대표, 에코페미니스트 모임 '꿈 꾸는 지렁이들의 모임'의 이윤숙, 허진혁 씨, 녹색평론 독자모임의 김정현 씨 등이 참석해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와 의견을 주고받았다. 허진혁 씨와 김정현 씨는 대화 내용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다음은 2시간 동안 이루어진 인터뷰 전문.

프레시안 :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헬레나 : 내가 이전에 다른 나라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삶의 방식으로 보여서 매우 흥미롭다. 기존의 발전 방식을 답습하면서도, 상당수의 한국 사람들은 매우 생각이 깊고 현명해 보인다. 또 다들 활기가 넘치고 건강해 보인다. 산업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것보다 전통적 가치가 잘 보존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내가 맞게 본 건가?

프레시안 : 한국은 현재 매우 빨리 변화하고 있다. 가족 형태만 봐도 알 수 있다. 출생률은 낮고, 많은 부부들이 이혼하고 있어 기존의 핵가족도 급속히 해체되고 있다. 당신이 기대하는 전통적인 가치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헬레나 : 그것은 한국만의 현실은 아닌 것 같다. 다른 나라 역시 경제적 압박이 이혼과 가족 붕괴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더 많이 이동하고,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런 현실 때문에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대안운동(counter movement)'이 확산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산업화의 어두운 면에 좀더 주목해야**

프레시안 : 동감한다. 한국에도 세계화에 반대하는 '대안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고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산업화가 더 가속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 중 하나이다. 또 한국의 경제는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헬레나 : 한국이 점점 더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로 고착화되고 있는 것은 큰 문제이다. 그렇게 될수록 한국 경제는 유가변동과 같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크게 휘둘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도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제에서 점차 탈피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점에서 국제적 연대가 중요하다. 유럽의 각국들도 미국에 횡포에 대항해 연대를 하고 있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개발도상국들도 G22 블록을 만들어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대항하고 있다. 이처럼 전세계적인 국제 연대를 만들어 지금과 같은 독점 경제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변화에 힘이 실리면 현실성 있는 지역화 경제를 꿈 꿀 수도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G22 블록을 얘기했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생각해보자. 서구는 산업화에 진입한 지 약 2백여년이 되었다. 서구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산업화된 자본주의의 열매를 향유했고, 또 향유하고 있다. 그러나 제3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여전히 그 이익에 목말라 하고 있다. 현재 동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은 산업화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세계 경제에 편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미친 듯이 산업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중국은 인상적이다. 산업화의 이익을 먼저 향유한 서방사람들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인들에게는 산업화의 부정적인 면을 들이대며, 그런 방향이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산업화가 발전의 상징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헬레나 : 먼저 산업화된 자본주의 사회의 진실을 포착해야 한다.

만약 서구 사회의 경우 식민지가 없었다면 그들의 풍요로움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들은 사람들에게 한쪽이 부유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른 한쪽은 필연적으로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 이것은 산업화된 선진국 내부에서도 관찰되는 문제다. 런던의 슬럼가에는 매우 가난한 노동자들이 산업혁명 전보다 실질적으로 더 나은 삶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다. 부유한 서구 사회조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빈곤 속에 살고 있는지를 우리는 똑바로 알아야 한다.

산업화가 계속 진행되고 수출이 증가하는 한편에서는 폭력을 사용해 노예를 양산하는 구조가 재생산되고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이런 착취의 구조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착취 구조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중국이 과거 미국이 했던 것처럼 노예를 대량으로 공급받을 수 있을까? 식민지를 만들어 값싼 자원을 공급받을 수 있을까? 현재 값싼 자원은 지구 전체로 봤을 때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값싼 노동력이란 것도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거기다 우리는 부유한 서구 사람들이 점점 더 막대한 '심리적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아동 학대, 강간, 자살과 같은 자신과 이웃을 향한 폭력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이 결코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 공포의 시간들이 증가했다. 이것이 바로 '심리적 비용'이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이런 '심리적 비용'이 증가하고 있고, 그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불행해지고 있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과연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안다면 서구의 실패한 전철을 답습할지 의문이다.

***국가를 개혁해 저항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프레시안 : 당신은 <허울뿐인 세계화 (Small is Beautiful, Big is Subsidized)>(따님 간)에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당신은 국가 권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신은 녹색당과 같은 정치세력들과 연대해 국가 개혁, 또는 국가권력 장악을 통해 세계화에 대응할 생각이 있는 것인가?

헬레나 : 우리는 전체적(holistic)인 분석을 해야 하며 이것은 동시에 세계적(global)이어야 한다. 여러 나라에서 일해 본 나의 경험은, 사람들이 진실을 포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큰 이유를 알게 해 주었다. 우리가 사는 시스템은 세계적인 반면, 사람들은 지나치게 지역적인(local)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의 상황은 매우 특수하다.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이다. 또 영국에서는 사람들이 그들의 경제 체계가 독일의 그것만큼 효율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하다고 말한다. 독일 사람들은 영국인들만큼 공동으로 작업할 줄 모르기 때문에 자신들의 경기가 나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또 영국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소농을 보호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소농들도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적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는 이 파괴의 패턴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모든 사실들이 분명해진다.

남과 북, 다시 말해서 덜 산업화된 곳과 더 산업화된 곳 모두를 관찰해보면 국민국가가 중앙집중화된 시스템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국민국가는 단일문화를 확산하고 생물 다양성, 사회와 문화의 다양성을 말살해왔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국면은 지난 몇 백 년의 과정보다도 훨씬 더 심각하고 복잡하다.

국민국가로 인한 문제는 1백만 배는 더 악화되었는데 여기에는 초국적 기업과 금융자본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 국민국가가 해왔던 단일문화를 확산하고 중앙 집중화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전세계적 차원에서 더욱더 심화시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의 활동이 대부분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을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 전세계적으로 힘을 지역으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국민국가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지금 현재 지역 공동체로 우리 모두가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권력을 지역으로 되돌리면서 동시에 탈중심화된 세계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중심화된 기구(機構)가 필요하다. 더 생존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국민국가를 활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단 국민국가의 강화가 지역 공동체의 파괴를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령 특허권과 지적재산권을 생각해보자. 현재 특허권과 지적재산권은 기업의 이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제도가 짜여져 있다. 그런 권력을 기업으로부터 되찾아 와야 한다. 기업들이 지역의 천연자원을 마구잡이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방법들을 강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국가는 기업의 착취로부터 지역을 보호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권력을 기업으로부터 되찾아오는 과정이 모든 지식과 천연자원의 특허권을 국민국가가 소유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국민국가는 지역의 자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돕는, 든든한 조력자와 보호자의 역할을 지향해야 한다.

***개인·지역·국가·세계 차원의 대응 필요해**

프레시안 : 그렇다면 그 전체적 분석을 통해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견을 듣고 싶다.

헬레나 :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일단 현 시스템을 잘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스템을 잘 이해해야만 이 시점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행동을 취할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해를 돕는 교육 활동을 지금 즉시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를 교육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교육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세계 경제와 소비문화가 어떤 영향을 가져왔는지, 어떤 끔찍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정확히 알고 교육해야 한다.

일단 시스템의 실체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나면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크게 개인, 지역 공동체, 국가, 전세계 차원으로 구분해 생각해볼 수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린 내면의 행복을 더 계발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정신적 활동이라고 부르자. 이런 정신적 활동에는 명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포함될 것이다. 우리는 지적인 활동을 최소화하고 대신 우리 내면을 직시하는 명상을 늘려야 한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우리는 더 많은 운동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신체적 운동에 국한된다. 더 중요한 것은 명상과 같은 정신적 운동을 강화해 내면의 행복을 찾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럼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우리는 어떤 일을 모색할 수 있을까? 우리는 개인들을 이웃과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장소나 환경과 더 긴밀하게 연결시킴으로써 지역 공동체 차원의 행복을 모색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신체적, 감성적 행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경제·사회적 구조를 새롭게 짜는 것을 포함한다.

공동체 차원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나는 지역통화 운동이나 물물교환과 같은 대안적인 지역 경제 활동을 활성화함으로써 활기를 잃어버린 지역 시장과 지역 경제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우리의 삶을 비상업화, 탈상업화함으로써 대안적인 지역 시스템을 만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역 차원의 실천에서 중요한 것 하나는 아까도 언급한 지역 농산품 운동이다. 농부와 소비자를 바로 연결하는 이런 운동은 지역 시장과 경제를 되살리고, 세계화에 대한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중요한 대안은 생태마을이나 생태공동체를 만드는 운동이다. 나는 한국에 20여개의 생태공동체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생태마을이나 생태공동체는 세계화에 대한 가장 완전한 대안적 삶을 창조하는 일이다. 생태마을이나 생태공동체에서 사람들은 더 건강하고 행복하고 지속가능하고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개인, 지역 공동체 차원의 실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방금 얘기한 대로 전체적인 관점에서 국가, 전세계 차원에서 경제 발전의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현재의 세계 무역과 세계 경제를 재규제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세계적인 반세계화 운동은 점점 큰 힘을 얻고 있고, 정부의 의사 결정과 세계 무역 투자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의 운동은 농부와 소비자를 더 긴밀하게 연결하고,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의 간극을 좁히는 등 우리가 동맹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의 연대를 기반으로 아주 독창적이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운동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세계 경제하에서 우리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한 삶을 유지할 수 없다. 환경주의자건 아니건 간에 지금 우리는 지속 가능한 삶,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나는 예전에 "방향의 전환(shifting directions)"이라는 글을 썼다.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으로 계속 가는 것이 지금 방향을 바꾸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 지금의 방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 또 그것은 전세계 90% 인구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므로 저항에 부딪힐 것이 확실하고, 결국 사회적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살 테러는 그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세계 어디서나 경찰과 군인의 증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경찰과 군인의 증강은 더 많은 폭력의 악순환을 불러올 것이다. 이 사회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재의 삶의 방식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사고를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하나의 단체, 하나의 공동체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전세계적 연대를 통해 지금과 같은 세계화에 대항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국가들이 세력을 형성해 미국의 독주에 대해 '아니오'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이런 흐름은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하루하루 운동의 성과들을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확인하고 또 현재 세계 경제가 돌아가는 일에 대해,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좀더 많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핵심은 소농 중심의 농업을 복원하는 것**

프레시안 : 당신은 저서와 강연에서 현재 세계 시스템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기업농 중심의 농업의 폐해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 적이 있다. 왜 우리가 농업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가?

헬레나 : 내가 지금 짧은 시간에 당신을 완전히 설득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농업 없이 인류가 지속 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농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농업을 단순한 경제 활동이라 생각하고 우리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세계 인류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시골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농업을 단순히 돈과 관계된 경제활동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정치 지도자들의 정신이 온전하다면) 농업이야말로 전체 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우리는 컴퓨터칩 없이는 살 수 있지만 감자칩 없이는 살 수 없다.

물론 지금 현재 진행되는 세계화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 에너지 문제나 정보, 과학기술, 지식의 문제를 살펴보는 것도 유의미하다. 농업은 이 중에서도 현재 진행되는 세계화의 논리를 가장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점점 평범한 사람들이 먹는 많은 식량이 점점 먼 거리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것은 전세계적 추세다. 당신도 지역에서 생산된 식량이 훨씬 더 비싸다는 것을 실감할 것이다. 가량 지역에서 생산된 사과는 먼 곳에서 온 것보다 5배나 비싸고, 지역의 우유와 버터도 먼 곳에서 오는 것보다 3~4배 더 비싸다.

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 것일까? 이것은 어떤 현실을 보여주는가? 지금과 같은 시스템 속에서 추세에서 농사를 짓는 생산자와 소비자는 철저히 분리돼 있다. 특히 초국적 기업이 그 분리를 가속화하고 있다. 초국적 기업의 투자자들은 농업과 농부, 소비자에 대해서 무지할 뿐만 아니라,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런 투자자들을 대리해 초국적 기업들은 특허권, 종자, 물을 지배함으로써 농부와 소비자의 분리를 가속화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우리가 먹는 실제 상품 가격에는 먼 거리에서 이동해 오는 수송비 같은 부대비용이 포함돼 있다. 이런 부대비용 등을 고려한다면 먼 거리에서 생산된 것이 훨씬 가격이 비싸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 반대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바로 정부 보조금 때문이다. 정부 보조금이 먼 거리에서 오는 농산물의 가격을 보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프라 기반 때문에 멀리서 온 것이 오히려 지역 농산물보다 더 싼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기업농은 원거리 수송 수단과 다량의 살충제, 단작(單作)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발생시킨다. 사람들은 점점 더 건강에 좋은 유기농을 선호하는데, 기업농의 경우 다량의 살충제를 쓸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것은 사람들의 선호와 반대되는 경향이다.

결국 현재 농업의 모습에서 자유경제라고 말해지는 현 시스템이 실제로는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대기업의 독점 체제에 불과하다는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는 수백 개의 작은 기업을 파괴시키고 결국 지속 가능한 경제로 가는 싹을 자를 것이다.

아까 나는 지역 차원에서 지역 농산품 운동을 전개하는 것을 얘기했다. 이것은 단순히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소비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유통되고 생산되는 조건을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지역 농산물이 지역에서 더 많이 소비될 수 있도록 지역 시장을 활성화하고, 농부들에게 더 다양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그들에게도 경제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농부들도 '단작'이 아닌 다양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경제적 또 생태적으로 이득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이런 지역 농산품 운동은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내 주장은 결코 식량과 관련한 무역을 전혀 하지 말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 속에서 우리가 소비하는 상당수의 식량이 지역에서 나와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역의 생산품과 세계화된 무역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다.

***불과 10명이 세계를 설득하다**

프레시안 : 당신은 '국제 에콜로지 및 문화협회(International Society for Ecology and Culture, ISEC)'를 이끌고 있다. ISEC의 활동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

헬레나 : ISEC는 내가 시작한 매우 규모가 작지만 국제적인 단체이다. 나는 우리의 생각을 전파하는 데 힘을 쏟았는데, 결국 그것은 모금 활동을 소홀히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결과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인력을 충분히 구하지 못했다. ISEC가 하는 모든 일들은 작은 자본으로 약 10명의 일꾼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ISEC가 시작한 일들 중에서 상당히 성공을 거둔 것들은 주로 라다크에서 벌인 사업이다. 28년 전부터 우리는 라다크의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함께 논의하며 일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 사람들은 이 정책들이 세계의 다른 곳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더 잘 이해하고 있다.

처음에 그들은 정부 전문가들이 DDT나 항생제와 같은 것들의 사용을 장려할 때 그 물질들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에게 자문을 제공할 수 있는 대안전문가(counter-expert)를 데려오는 등 여러 가지 방식을 사용하였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오래된 미래>에 쓰여 있다.

ISEC가 한 다른 일들은 지역단체가 설립되는 것을 도운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재생가능 에너지 기술을 실연(實演)해 보여주는 생태학적 개발 단체이다. 태양열을 이용한 온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풍력발전, 작은 규모의 수소전지 등 지역에 맞는 적정기술을 개발하고 장려했다. 유기농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캠페인을 펼친 것도 의미있는 일이었다.

서구 사회의 실체를 견학(reality tour)하는 프로그램을 조직해 소수의 미래 라다크 지도자들이 서구 사회에 직접 가서 그들 자신의 눈으로 그 사회의 실체를 파악하도록 한 것도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환경운동가들, 양로원의 노인들, 거리의 노숙자들과 이야기한 뒤, 서구 사회가 결코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알았다. 또 서구에서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도록 했는데, 이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서구 사람들이 라다크 사람들에게 그저 당신들은 다른 방식을 취해야한다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들도 다른 방식을 원한다는 증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또 우리는 농장 프로그램(farm project)을 구성했다. 그것은 서구 사람들이 직접 라다크의 가족 농장에 와 살면서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서구 사람들이 세계화가 지구 다른 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게 해주는 배움의 장이 되었다. 이런 프로그램은 라다크 어린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5살짜리 라다크 어린이는 뉴욕에서 온 소위 주식 중개인, 변호사들이 소의 우유를 짜는 법조차 모르고, 제초법도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 특히 몸으로 하는 기술에 대해 존경심을 갖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지난 약 10년 동안 전세계 약 3만 명에게 우리의 생각을 전달했다. 이것이 라다크에서 벌인 ISEC의 활동이다.

ISEC는 이밖에도 영국과 미국, 독일, 스웨덴, 오스트레일리아와 멕시코, 캐나다의 자발적인 소규모 단체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특히 식품과 관련해 지역 농산품을 장려하는 주장들을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서적, 슬라이드, 비디오 테이프, 포스터 등을 제작했다. 이것은 무역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쌀이나 버터와 같은 기초적인 식품이 지구 반대편에서 공급되는 대신 그 지역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노력들은 특히 캘리포니아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현재 우리는 그곳 농업의 상황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우리는 그다지 강력한 연대는 아니지만 전 세계 단체들과 교류하고 있다. <오래된 미래>를 한국어로 번역한 <녹색평론>의 김종철 교수와 같은 사람들이다. 현재 <오래된 미래>의 책과 비디오는 47개 국으로 번역됐다. 우리는 지역화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싶다. 이것이 우리가 다음 단계에서 하려고 하는 일이다.

이밖에 나는 반다나 쉬바, 마틴 코어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세계화에 관한 국제 포럼(International Forum on Globalization, IFG)의 개최를 도운 적이 있다. (IFG의 연구 성과는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란 책으로 출판돼 국내에도 번역됐다.) 또 생태마을 네트워크(eco-village network)의 결성에도 도움을 주었다. 이것은 덴마크에 본부를 두고 세계 도처의 생태마을들 간의 유대를 돕고 있다.(ISEC의 홈페이지는 www.isec.org.uk)

***과학기술 맹신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대안 과학기술 모색해야**

프레시안 : 당신은 현대 과학기술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다. 대신 적정기술과 같은 대안 과학기술 모색에도 관심과 실천을 기울이고 있다.

헬레나 :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산업화의 기본 전제로서 과학기술이 다수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세계적인 하이테크 기업들, 예를 들어 미츠비시의 내부인들은 과연 기술이 앞으로도 계속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과학기술은 결코 사람들을 먹여 살리지도 않고, 항상 이익을 주는 것도 아니다. 현대 과학기술은 오직 사람들을 더 열심히 일하게 하고 분주하게 할 뿐이다. 이것은 <오래된 미래>에서 내가 말했던 것이다.

더구나 현대 과학기술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 아무리 현명한 사람도 완벽하게 그것이 안전하도 말할 수 없다. 유전자 조작과 같은 생명의 기본적인 질서를 배열하는 것이 과연 과학기술자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인간의 건강과 생태계의 문제들을 해결해 줄지 아니면 더 큰 재앙으로 다가올지 아무도 확실하게 말 할 수 없다.

또 우리는 그런 과학기술들의 사회·환경적 영향에 대해 좀더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나는 당신에게 ETC(Environmental Technology Council)를 소개하고 싶다.(www. etc.org) 그들은 25년 전에 활동을 시작했고 석유 회사가 이익을 위해 바다를 오염시키는 문제에 대해서 비판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또 유전자 조작의 파괴적인 영향과 나노 기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주도하고 있다.

현대 과학기술도 기업과 정부와 같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과학기술의의 과정과 결과에 개입하고, 그것들이 초래할 영향들에 대해 아는 것이 필요하다. ETC는 그에 대한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특히 과학기술에 대한 열정이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남아있다는 점에서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소비문화에 기반을 둔 서구 여성운동, 한계 명백해**

이윤숙: 서구 여성운동의 역사는 50년 이상이나 되지만 아직도 여성의 실질적 지위 향상은 요원하고, 그들의 삶이 행복하다고 볼 수도 없다. 최근 많은 환경주의자들은 여성주의자들이 좀더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얘기하고, 여성주의자들은 환경주의자들이 여성운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서구 여성운동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것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가?

헬레나 : 나는 여성운동 예를 들어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운동에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 개인적인 생각만을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여성운동의 가장 큰 오류 중 하나는 여성과 남성이 똑같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런 오류는 사회의 소수자(minority)들의 주장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세계 어디서나 소수자들은 '자신들도 똑같다',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이나 인종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나는 그들 소수자들이 사회적 힘을 획득하기 위해서 지배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운동의 근본적인 잘못은 바로 거기에 있다. 여성운동이 저지른 두 번째 잘못은 그들의 비판에 생태적 논의를 빠뜨린 점이다.

현재 많은 에코페미니스트들은 그 두 가지 점에서 입장을 바꾸고 있다. 그것은 나 역시 희망하는 바이다. 그들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또 우리가 자연세계에 순응하지 않고, 생물다양성을 파괴하고 물과 토양을 훼손하는 산업화된 삶의 방식을 유지해나가는 생태계가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다.

이윤숙 : 그럼 서구 여성운동의 긍정적인 결과는 없는가?

헬레나 : 불행히도 나는 긍정적인 결과가 없다고 생각한다. 서구 소비사회에서 여성이 사회적 힘을 얻은 것처럼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나 역시 여성이 아무런 권력을 획득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권력을 여성들은 성취하지 못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업계나 정계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은 근본적으로 남성화된 여성들이다.

여성과 여성들의 욕구의 측면에서, 또 아이를 양육하는 세계 대다수 여성들의 삶을 고려했을 때 결코 서구 여성운동은 여성과 여성성에게 권력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이윤숙 : 예를 들어 이슬람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의 여성의 삶에 비해, 서구의 여성들이 훨씬 더 자유롭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헬레나 : 현재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럴까? 나는 이슬람 사회 여성들의 실제 권력은 외부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이슬람 사회보다 몇몇 서구 사회에서 여성들이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또 우리가 그 둘 중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여성과 여성성, 그리고 여성의 가치가 진정한 권력을 획득하는 것을 보증할 다른 방법들이 있다.

***여성의 가치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가 필요해**

이윤숙 : <오래된 미래>에 의하면 전통적으로 라다크에서 여성은 존경받는 위치에 있고 남녀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급속한 개발 과정을 통해 이러한 균형이 파괴되었고 그 결과 남녀간의 분열과 대립이 심각해졌다고 말해지고 있다. 현재의 상황을 알고 싶다.

헬레나 : 그 남녀의 양극화(polarization) 현상에 대해서 먼저 얘기해보자. 매우 흥미로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라다크에서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차이가 존재했다. 모든 사람들이 여성이 고유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고 남성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았으며 남성도 어느 정도 여성스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도 남자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참여하고 있었다. 라다크 전통 가정에서는 증조할머니, 할머니를 포함해 모든 여자들이 남자들과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여성의 가치들과 여성의 에너지에 둘러싸여 여성의 에너지를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농업에 기반을 둔 사회에서 여성은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성들은 출산 이외에도 집안의 대소사에 대한 결정권과 같은 남성의 권력이라고 흔히 생각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사회 속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매우 좋은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라다크는 상당히 좋은, 역동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 서구의 소비문화가 도입되면서 여성과 남성이 양극화되는 현상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남자 아이들은 람보를 흉내냈다. 그 아이들은 장난감 총을 선사받았고 람보의 옷을 입고 매우 거칠게 굴면서 여성스러운 면을 억눌렀다. 한편 여성들은 자신들의 외모에 몹시 신경을 쓰고 화장을 하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기 시작했고 매우 수동적이 되었다. 여성들은 예쁘고 날씬하게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인형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한 변화들은 매우 극적이었고 또 어린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에도 라다크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약 15년 전부터 라다크 여성들, 농촌 여성들과 함께 '여성 동맹'을 만들었다. 라다크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그들의 자녀들은 과연 행복한가, 이 진보가 정말로 행복을 가져오는가, 또 농업과 라다크 사람들의 자존심과 지역경제가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이런 문제들을 함께 모여 얘기했다.

지금 이 모임은 6천명의 회원을 가진 탈중심화된 단체로 성장했으며, 라다크의 모든 마을들에서 영향을 조금씩 확장하고 있다. 결코 충분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 자신들의 의견과 가치에 대한 생각과 자존심이 많이 고양되었다.

이윤숙 : '여성동맹'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달라. 어떤 활동을 하는가?

헬레나 : 대부분은 교육적인 내용이다. 여러 가지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한 정기적인 마을 회합이 있다.

이윤숙 :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들을 논의하는가?

헬레나 : 가장 중요한 문제는 라다크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존경심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바보 같고 뒤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들은 영어를 모른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동물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나는 도대체 왜 당신들이 외국말을 모른다고 해서 바보 같다는 느낌을 받아야 하는가, 외국인들이 이곳으로 온다면 그들이 라다크 말을 배우는 것이 오히려 옳다고 마을에서 말하곤 했다. 이런 이야기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 자존심을 잃는 것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결과 사람들이 어떻게 불행하게 되는지를 살펴보고 사람들과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빠른 속도로 강력한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창피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모든 사람들이 원래 상업주의에 물든 소비문화의 구성원이 되기를 바라고, 스스로 열등감을 느끼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람들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작업이 실제로 매우 강력한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바로 라다크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이것이 한국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윤숙 : 특별히 '여성' 동맹을 결성한 이유가 있는가?

헬레나 : 있다. 나는 이미 그 전에 남성들과 생태주의 단체에서 여러 해 같이 일을 했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이 심리적인 측면에서 예를 들어 자신의 아이들이 느끼는 행복감에 대해 남성들보다 더 예민하다는 사실 같은 것을 확인했다. 여성들은 마음으로 더 잘 느끼고 인식한다.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서 내면의 행복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 상태,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 다루려고 한다면 여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환경문제에 있어서도 여성이 더 민감하다. 라다크 여성들은 토양과 물이 오염되고 훼손되는 것에 대해, 건강 문제에 대해서 남성들보다 훨씬 더 민감하다. 여기에는 전통 사회의 진정한 식량 생산자가 여성이었고, 인간의 행복을 양육했던 것도 역시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여성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 근본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나는 권력이 여성에게로 되돌아가고 행복, 건강, 농업, 식품의 가치가 회복되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사회에서 행복, 건강, 농업, 식품의 가치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이 새로운 진보의 화두가 돼야**

프레시안 : <행복의 정치학>이라는 새로운 책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소개해 달라.

헬레나 : 길게 설명할 것은 없다. 이때까지 내가 이야기했던 것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산업화된 삶의 방식과 직업의 유동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점점 더 큰 도시로 몰리고 공동체와 자연에서 유리된 삶을 산다. 이런 사람들의 심리적, 정신적 손실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는 책이다.

현재의 지배적인 개발에 의문을 제기하고 탈중심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경제 활동을 지역화해 사회와 공동체의 구조를 다시 짜고 도시와 농촌, 남성과 여성, 세계와 지역 경제 활동이 새로운 균형을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이런 움직임이 사람들의 행복, 건강, 복지를 증가시킬 것이다.

프레시안: 권력투쟁에 대한 내용은 아니다.

헬레나 : 그렇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것이다. 지혜와 연민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이웃들 동물과 식물, 자연 환경 등 모든 피조물들에 대해 감수성을 계발하고, 공포로부터 비롯된 편협한 시각이 아니라 지혜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두려움에 유도되어 행동하고 있으며, 또 이것은 모든 갈등을 야기하는 환원주의적인 세계관이다. 예를 들어 여기에는 우리가 혐오하는 작은 벌레들에 대한 공포도 포함된다. 이것은 서구 세계관에 깊이 내재되어 있다. 채소를 먹어치우는 지렁이, 곤충 또 작은 동물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을 모두 죽여 없애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나는 이라크의 모든 테러리스트들을 몰살해 버리겠다는 현재의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만행도 이것과 유사한 논리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DDT 사용 이후 오히려 해충들이 더 강해진 것처럼 이런 폭력과 전쟁은 더욱 강력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결국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공존해야 된다는 것, 또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근본적인 방향의 전환이다.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가?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헬레나 : 내 경험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나는 지금 매우 행복하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우선 자연과의 친밀한 유대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운 좋게도 나는 스웨덴에서 자랄 때부터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두 번째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역시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내가 지금 해나가고 있는 현재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찾기 위한 운동은 내게 우리가 진정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했다.

세 번째로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저를 잘 이해해주는 멋진 남편이 있기 때문에 나는 당당하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나와 타인, 자연환경과 세계의 사회·경제 시스템은 결코 별개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지금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대안을 만들기 위한 운동에 나서고 있고, 그를 통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있다. 행복을 만드는 길에 함께 동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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