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3

알라딘: 또 하나의 조선 - 시대의 틈에서 ‘나’로 존재했던 52명의 여자들 이숙인 2021

알라딘: 또 하나의 조선


또 하나의 조선 - 시대의 틈에서 ‘나’로 존재했던 52명의 여자들   
이숙인 (지은이)한겨레출판2021-06-29

356쪽
책소개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개성과 재능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조차 버거웠던 시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취를 남긴 52명의 조선 여성을 담은 책. 저자 이숙인이 <한겨레>에 2년간 연재했던 [이숙인의 앞선 여자]를 묶고 보강해서 한 권으로 엮었다. ‘조선시대 여자’였다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다르게 욕망하고 행동했던 52명을 통해 오늘의 독자는 주위를 둘러보고 미래를 고민하게 된다.

장희빈, 대장금, 황진이처럼 널리 알려진 인물들을 비롯해 ‘음란하고 아름다웠던’ 낙안 김씨, 당대에선 드물게 여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담긴 성장기의 주인공 숙희, 마을을 돌며 근심을 위로했던 무녀 추월, 상속받은 액수의 세 배로 재산을 불린 ‘자산 관리의 달인’ 화순 최씨 등 시대의 한계와 인간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여성들의 다채로운 서사를 볼 수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1. 구체적으로 살고 입체적으로 존재하다
피난길의 담대한 꿈, 남평 조씨
솔직한 모성, 신천 강씨
평범했으나 숭고한 삶, 김돈이
대적하는 짝, 송덕봉
가려진 재능, 신사임당의 두 손녀
칼 대신 붓을 든 이유, 풍양 조씨
근원적 고통에 대한 유대, 여비 춘비
사랑으로 쓴 성장의 기록, 손녀 숙희
마을을 돌며 근심을 위로하다, 무녀 추월
유모의 인생역전, 봉보부인 백씨
자산 관리의 달인, 화순 최씨
선비 아내의 내공, 문화 류씨
알 수 없는 탁월함, 송씨 부인
다산의 아내로 산다는 것, 홍혜완
귀양지에서 다산을 되살리다, 소실 홍임모母

2. 성녀와 마녀의 프레임을 넘어
마음의 주체가 되다, 허난설헌
시대를 초월하는 시대정신, 황진이
임금의 마지막을 지킨 어의녀, 대장금
공동체를 위한 한 줄기 빛, 논개
시련에도 잃지 않은 예의, 정순왕후
가부장 권력을 내 편으로, 소혜왕후
조선과 중국의 경계인, 한계란
7개월 만에 ‘구성된’ 죄, 폐비 윤씨
사실은 평범한 여인, 장희빈
성공을 향한 몸부림, 정난정
뒤늦게 위로된 슬픔, 세자빈 강씨
사랑이라는 영원한 주제, 도미 부인

3. 닫힌 운명에 균열을 내다
부당한 이혼 요구에 맞서다, 신태영
혈통의 허상을 드러내다, 옥비
성범죄 피해자의 사적 복수, 김은애
사족 여성의 사생활, 함안 이씨
피해자에게 돌을 던지는 국가, 환향녀 윤씨
감정과 욕망의 주인, 여비 돌금
죽음으로 얻은 명예의 역설, 박씨 부인
집단 광기의 제물, 신숙녀
열녀 만들기 프로젝트, 배천 조씨
아름답고 음란하게, 낙안 김씨
임금의 새벽잠을 깨운 촌부, 윤덕녕
참을 수 없는 희롱, 여비 향복
사족의 민낯을 까발리다, 유감동

4. 시대의 틈에서 ‘나’를 꽃피우다
보고 느끼고 기록하라, 남의유당
가문의 영광을 만든 여자, 서영수합
사람을 만드는 교육, 이사주당
집안일의 지식화, 이빙허각
삶의 성리학자, 임윤지당
퇴계학 중흥의 어머니, 장계향
여성 불교의 적극적인 힘, 이예순
남편의 스승이 되다, 강정일당
고통을 글로 치유하다, 김호연재
낙방거사를 품은 여걸 시인, 김삼의당
천하를 품에 안은 소녀 여행가, 김금원
대정 벌판의 따뜻한 바람, 정난주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한양에 살던 사대부가 부인 남평 조씨(1574~1645)는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63세의 나이로 피난길에 오른다.
P. 51 이른바 생열녀(生烈女) 조씨의 자기 기록은 2백 자 원고지 5백 장 분량에 담겨 있다. 이름하여 〈자긔록〉이다. (…) 이 기록은 남성 문사들의 붓끝에서 나온 그간의 열녀가 여성 그 자신의 진실과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열녀가 된 여성들이 과연 남성들이 찬양해온 그런 존재, 즉 ‘한 치의 주저함 없이 의(義)을 향해 장렬하게 죽은 굳센 의지’의 소유자인가 하는 것이다.  접기
P. 64 공부 외에 집안일을 즐겨 하지 않는 숙희를 할아버지는 개의치 않았다. 숙희는 봉제사·접빈객의 노동에 묻혀 죽도록 일만 하고 배움과 지식에서 차단되었다고 하는 조선 여성과는 다른 모습이다. 열두 살의 숙희는 언문을 잘하기로 소문이 났다. 조부에게 글을 배우러 오던 열다섯 살 손응상이 언문을 공부하면서 숙희에게 배움을 청했다. 이 사실은 동생 숙길을 통해 할아버지에게 보고되었다. 중간에 말 심부름을 한 노비들이 볼기에 장(杖) 10여 대씩 맞았고 응상은 쫓겨났다. 숙희 또한 할머니에게 종아리 10대를 맞았다.  접기
P. 76 영화나 소설 속 유모가 자신이 기른 아이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정도였다면 백씨는 욕심이 많고 수완이 좋았다. 이에 봉보부인에 빌붙어 벼슬을 구하려는 자들이 모여들었다. 문을 활짝 열어 그들을 상대한 결과, 가산은 점점 불어났고 궁중에 출입하는 날이면 추종하는 자가 길에 가득했다. 왕과 자주 대면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위치의 봉보부인은 관찰사, 이조참판, 병마절도사 등을 청탁하여 따냈다.  접기
P. 121~122 자료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황진이에 관한 많은 부분은 실재라기보다 허구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1505~1506년 즈음에 태어나 40년 남짓 살다간 중종 연간(1506~1544)의 인물이라는 것 외에 출생이나 행적들에 대해서는 이야기마다 제각각이다. (…) 물론 세월이 갈수록 부풀려지거나 새로워졌다는 것이지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시에 등장하는 벽계수나 소세양 등도 그녀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사람들이다.  접기
P. 129 중종의 신뢰 속에서 장금의 의술은 점점 정교해져 10년이 지나자 대장금이라 불리며 내의녀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된다. 다시 20년이 흐른 중종 39년(1544)에는 이른바 어의녀(御醫女)로 임금을 진료하고 약을 의논하는 일을 맡는데 여의로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예순 안팎은 되었을 것이다. 장금이 실력 있는 의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노력이 크지만 무엇보다 세종 이후 훌륭한 여의를 기르고자 한 제도적인 노력이 큰 몫을 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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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숙인 (지은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책임연구원으로, 가족과 여성 중심의 연구 시각으로 조선시대 사상사를 기획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유교경전의 여성사상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시아학술원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를 지냈고, 여러 대학에서 동양철학 및 한국철학을 강의해왔다. 근래에는 전문 연구의 대중화에 의미를 두고 다산연구소의 <실학산책>, <한겨레>의 <이숙인의 앞선 여자> 등의 칼럼을 써왔고, 시민을 대상으로 한 동아시아 문화와 한국학 강좌에 참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동아시아 고대의 여성사상》 《정절의 역사》 《신사임당》이 있고, 공저로 《조선 여성의 일생》 《노년의 풍경》 《일기로 본 조선》 《선비의 멋 규방의 맛》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열녀전》 《여사서》 《오륜행실도》와 공역으로 《역주 묵재일기》(전6권)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또 하나의 조선>,<가족인문학 : 나는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되살아나는 여성> … 총 30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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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밑바닥 여종에서 저 높은 왕비까지
산골 촌부에서 한양 마님까지
10대 소녀에서 여든 할머니까지…

남성들의 나라에서 한평생을 살아내고
때로는 경이롭게 운명을 넘어선 여자들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개성과 재능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조차 버거웠던 시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취를 남긴 52명의 조선 여성이 있었다. 《또 하나의 조선》은 신분상으로는 밑바닥 여종에서 왕비까지, 지역으로는 남녘 산골 촌부에서 한양 마님까지, 나이로는 10대 소녀에서 여든 할머니까지, 정사(正史)라고 하는 실록이나 양반 남성의 문집으로 구성되는 조선 ‘너머’의 조선을 담았다. 조선이라는 역사 공간에서 여자로 살았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 없는 이들의 이야기는 ‘조선 여성들의 일반적인 삶’이란 착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그렇듯 그들 또한 각기 다른 환경과 맥락 속에 놓인 감정과 욕망의 주체였다. 특정한 유형이나 이미지로 규정할 수 없는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존재였다.

장희빈, 대장금, 황진이처럼 널리 알려진 인물들을 비롯해 ‘음란하고 아름다웠던’ 낙안 김씨, 당대에선 드물게 여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담긴 성장기의 주인공 숙희, 마을을 돌며 근심을 위로했던 무녀(巫女) 추월, 상속받은 액수의 세 배로 재산을 불린 ‘자산 관리의 달인’ 화순 최씨 등 시대의 한계와 인간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여성들의 다채로운 서사가 《또 하나의 조선》을 이룬다. 그 서사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조선이라는 사회의 정신과 만나는 동시에 도도히 흐르는 인간 근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인 저자 이숙인은 <한겨레>에 2년간 연재했던 [이숙인의 앞선 여자]를 묶고 보강한 이번 책을 통해 말한다. “자료가 남아 있어도 주목되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사소한 기록 하나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내었을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 책은 짧게나마 기록에 남은 자들을 통해, 소외되었던 여자들을 기억하려는 시도이다.”

성녀도 마녀도 아닌 ‘한 인간’의 자취,
그 다채롭고 도도한 힘을 만나다

이 책의 1부 ‘구체적으로 살고 입체적으로 존재하다’는 자신의 운명 안에서 나름대로 개성 있게 살았으나 ‘시대가 주목하지 않았기에’ 상대적으로 사소하게 여겨진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일례로 경북 지역에서 칠십여 생을 살다 간 신천 강씨는 딸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점잖게 박제된’ 양반가 여성의 이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첩을 들인 남편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강씨의 목소리는 500년 전을 살던 한 여성의 솔직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날것 그대로 전한다.

“뒤로 갈수록 편지의 내용은 과격해진다. ‘오로지 그년에게 붙어서 당신 것을 맡기니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싶구나. 아마도 나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니 속절은 없다.’ 강씨는 또 자신의 서러운 뜻을 남편과 자식이 모르고 있고, 또 늘 용심이 나서 살 수가 없다고 한다. 울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이 사족 마님은 품위를 지키느라 무심한 척 애를 쓴다.”_23쪽

사족 이문건가의 여비(女婢)였던 춘비에 대한 기록도 흥미롭다. 35세 전후에 몸에 종기가 퍼지기 시작해 두 달 만에 숨을 거둔 그녀를 ‘주인’ 이문건은 살려보려 애쓰며 시시각각 모든 상황을 세세하게 적어둔다. 사극에서 노비들은 그저 충직하거나 말이 없고 기록에서도 보통 소유주의 물목에 불과한데, 이문건의 시선에 담긴 춘비는 투병 중 ‘소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동시에 근원의 고통과 두려움을 호소하는 평범한 인간이다. 이문건의 ‘기록벽’ 덕에 존재의 흔적을 남기게 된 여성들이 이 책에 여럿 등장한다.

신분을 넘어선 인간 유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춘비를 비롯해 또 다른 여비 돌금과 향복, 이문건이 30년간 쓴 일기의 여자주인공인 아내 김돈이, ‘단골’로 거래했던 무녀 추월, 애지중지하던 손녀 숙희 등이다. 이들을 연결하는 이문건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우리가 과거의 인물을 불러낼 때 ‘하나의 틀’에 가두지 않는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준다. 사족 남성 이문건은 자상한 남편이자 손녀·손자를 살뜰하게 보살피고 훌륭하게 길러낸 조부인 동시에, 노비를 부릴 때는 누구보다 매정하고 심지어 어린 여비를 강간하기까지 한 사내다. “이러한 이중성에 더하여 자기 주변의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에 관한 가장 진지한 기록을 남긴 소중한 자료원”(7쪽)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역사 속 인물을 입체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은 2부 ‘성녀와 마녀의 프레임을 넘어’에서도 돋보인다. 허난설헌, 대장금, 논개 등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여성들도 낯선 맥락 속에 배치될 때 기존의 도식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난다. “우리의 삶이 인과적 순서를 밟아 계획대로 펼쳐지지만은 않듯, 이들의 삶도 우연과 필연의 길항 속에서 어둠과 밝음이 교체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6쪽) 황진이는 남성의 시각으로 재단되어온 ‘사랑의 화신’이나 ‘성녀(聖女)’ 같은 상징을 벗고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거듭난다. 저자는 또한 우리에게 폐비 윤씨로 더 잘 알려진 제헌왕후가 ‘현숙한 왕비’에서 도저히 중전 자리에 둘 수 없는 악녀가 되는 데 걸린 고작 7개월의 시간을 쫓아가며, ‘구성된 죄’의 전후를 살핀다. 장희빈에게서 300년 넘은 ‘악녀’ 꼬리표를 떼어낸 뒤, 그녀가 냉엄한 역사 현장에서 겨우 열 살 남짓한 아들의 미래를 기원했던 평범한 여자였음을 설명하기도 한다. 정난정, 정순왕후, 소혜왕후 등도 복잡다단하고 역동적인 상황 속에서 섬세하게 재발견된다.

“여성이지만 ‘여성’을 넘어서야 했던 소혜왕후는 시시각각 모순된 상황에 직면해야 했을 것이다. 남편에게 순종할 것을 주장하면서 남성을 계도하여 정사를 행한 역사 속 여걸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자신의 책이 ‘민간의 우매한 여자들에게까지’ 널리 읽히기를 바라면서 그 내용은 주로 남성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서술은 학식과 정치적 감각을 두루 갖춘 이 여성 앞에 펼쳐진 세계 자체가 하나의 역할만을 고집하기에는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 아닐까.”_149~150쪽

역사는 ‘그들’로만 기록될 수도 있지만
세계는 ‘그들’만으로 구성될 수 없다

확장하고 진화하는 페미니즘과 백래시(backlash, 사회·정치적 변화에 반발하는 심리 및 행동)의 물결이 공존하는 오늘날, ‘공식적인’ 가부장제 사회에 각자의 방식으로 균열을 시도했던 여성들의 상처와 성취를 동시에 들여다보는 일은 더 의미 깊다. 3부 ‘닫힌 운명에 균열을 내다’에서는 주로 그 치열한 분투를, 4부 ‘시대의 틈에서 나를 꽃피우다’에서는 크고 작은 성취를 볼 수 있다. 성범죄 가해자를 직접 응징하고 자수한 김은애, 20세에 과부가 되어 늙고 가난한 시부모를 부양하던 중 ‘음란하다’는 헛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씨 부인, ‘열녀’가 당사자의 뜻이라기보다 다양한 시선에 의해 주문되고 제작됨을 보여주는 배천 조씨 등은 지금의 우리가 과연 그들로부터 얼마나 나아갔는지, 또는 얼마나 겹쳐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조정과 재야의 수많은 남자와 간통한 혐의로 투옥된 유감동이 지방으로 쫓겨나 종적을 감춘 데 비해, 그 많은 간부(奸夫)들은 시간이 지나자 슬금슬금 다시 요직으로 복귀해 나라를 이끌었다는 사실에선 결코 낯설지 않은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련한 처지의 박씨를 희롱하고 능멸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김조술, ‘정의란 무엇인가’를 던져 놓고 간 그의 죽음도 전혀 의미가 없진 않았던 셈이다. 이 역사적 사례를 통해 다시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2백 년 전 피해자 박씨가 그랬던 것처럼 성범죄 피해에서는 여전히 자기 파괴적으로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다. 성범죄 피해자의 명예는 죽어야만 회복되는 것인가. 죽어도 회복되지 않은 명예는 누구의 몫인가.”_238~239쪽

한편, 시대의 한계와 운명에 기꺼이 도전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가슴 벅찬 울림을 준다. 여자들의 외출이 엄격히 규제됐던 사회에서 ‘여행’에 승부를 건 두 여성, 남의유당과 김금원이 만들어낸 풍경들은 호쾌하고 통쾌하다. ‘밥이나 하고 옷이나 만들던’ 여자들의 일을 지식의 영역으로 체계화한 이빙허각, 당시 일반적이던 도피로서의 여성 불교가 아니라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여성 불교의 힘을 보여준 이예순, 글과 시로 고통을 치유하고 존엄을 회복한 김호연재와 김삼의당 등은 강하고 명민한 여성들의 아름다운 성취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여자’였다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다르게 욕망하고 행동했던 52명을 통해 오늘의 독자는 주위를 둘러보고 미래를 고민하게 된다. 역사는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소외하는가. 한 사회를 성찰하고 그 속의 ‘나’를 발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또 하나의 조선》이 존재했듯이 지금 이 순간 발견되지 않은 ‘또 하나의 한국’은 어디에 있을까.

“남의유당은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리 강했고 사람 사는 모습에 관심이 많았다. 여염집과 장터 구경은 물론 달 밝은 밤이면 망루에 올라 경관을 즐기는데, 마치 관내를 시찰하는 장수처럼 호방하게 굴다가 관아로 돌아오곤 한다. 방 안에 널려 있는 침선(針線) 거리를 보고서야 자신이 규방 여인이라는 사실에 박장대소한다.”_285쪽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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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읽고 싶어요 (4) 읽고 있어요 (3) 읽었어요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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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여자 칼럼 재미있었는데 책으로 나왔네요? 거의 읽은 내용이지만 소장하고 싶어 구매했습니다. 책도 예쁘네요.  구매
흔한 풍경 2021-07-08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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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으로 연재되던 글 몇 편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어서 구매했어요! 여성들의 이야기만으로 조선시대를 바라보는 시도도 흥미로운데, 이야기 책처럼 술술 읽히니 더 좋네요.  구매
Arcata 2021-07-08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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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면서도 옛날 같지 않고, 놀라우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여자들(언니들?!) 이야기네요. 한명 한명 읽다 보면 정들어서 사랑스럽기까지 해요.  구매
likewater 2021-07-10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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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수업자료로 쓸 책들을 고르던 중에 운좋게 만난 좋은 책! 역사적 사실관계에 충실하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재미와 감동을 주는 어려운 걸 해내네요! 강추합니다!  구매
Thja 2021-07-0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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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할머니가 있다고 해서 구매.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디테일하게 추적하는 작가님의 글쓰기 스탈에 완전 꼽힘. 다만 시각 자료가 없어 아쉬움.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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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또 하나의 조선 


'또 하나의 조선'은 남성들의 나라 조선시대에 여자로 태어나 그 속에서 각자의 '나'로 존재했던 52명의 조선의 여자들을 소개한다. 굳이 인식하지 않았지만 안 그래도 옛날 문서에서는 남성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만 접할 수 있었고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창구는 거의 없었다. 옛날 여성들의 하루 일과는 어땠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일들을 하고 살았을까 궁금하다.


책에서는 남편의 일기장에서 모습을 보인 김돈이, 인생역전 유모 봉보부인 백씨, 자산관리의 달인 화순 최씨, 부당한 이혼에 맞선 신태영 그리고 드라마나 책으로 익숙한 대장금이나 장희빈 이야기 등이 담겼다.


이렇듯 여자라는 공통점만 가지고 있는 다양한 계층,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삶의 모습들을 들여다보는 게 쏠쏠한 재미가 있다. 특히 자산관리의 달인 화순 최 씨 이야기를 읽을 땐 작은 웃음이 나기도 했다. 유명하고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제 식상하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기 같은 글들이라서 오히려 더 재미있게 읽었고 조선이라는 시대의 한 모습을 본 것 같아 가까워진 기분이다.


책에 나온 조선시대 여자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자연스레 여성인 나의 현제 삶과 반추해보았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에 따른 여성가족부 존치에 관해 여성가족부 장관이 발표한 글이 회상되었다. 나의 성별도 여성이지만 지금 사는 세상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와 상관없다는 눈빛으로 대충 읽어보고 말았는데, 어쩌면 여성가족부의 존치 여부가 내가 지금 성별에 대한 차별을 거의 못 느끼는 수준인 이유가 될 수 있겠구나 싶어 다시금 장관의 글을 찾아 읽어보았다.


또 하나의 조선이라는 책을 보면서 조선시대에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삶을 살기 어려웠던 여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취를 남긴 글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더불어 여성가족부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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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솔 2021-07-26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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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가 들어오기 시작한  조선시대부터 남여에 대한 구별과 차별이 확연히 생기기 시작한다. 엄연히 존재하는 이들이지만 역사 속에서 기록되지 않아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그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기록하고 역사 속에 자신들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렇게 남아 있는 그녀들 52명이 남긴 기록의 역사를 저자는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작업을 하는 중간 중간 자신의 할머니 '하승방 씨' 를 떠올렸다고 한다. 지적 호기심이 강해 유교 경전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좋아하고, 손주들의 책상 위를 기웃거리며 '신학문' 교과서를 탐독했던 할머니. 저자가 곁에서 지켜 본 할머니는 시대적 한계에 부딪쳐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함이 힘들었던 조선시대 여성들의  모습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신분의 구분이 확실했던 조선시대 서녀, 서자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숨겨도 숨겨지지 않을 만큼 특출난 자들은  숨기려 해도 드러날 수 밖에 없다. 서녀로 태어난 사임당의 두 손녀가 그런 경우였다고 한다. 두 손녀는 신사임당 못지않은 재능과 인품을 가진 여성들이었으나, 서녀들이었기에 혼인도 측실로만 가능하였다. 혼인하여 자식을 낳았으나 그녀들 본인은 물론 자녀들로 인정받지 못하며, 집안 문서에도 기록되지 못한다. 존재했으나 기록되거나, 기억되지 않아 존재 받지 못한 사람들. 하지만 아름답고 명석하여 지아비 이시발의 측실로 들어간 사임당의 서녀는 기록으로 남겨진다. 일찍 세상을 뜬 그녀와의 이별을 슬퍼한 이시발이 제문을 쓰며 그녀를 기록한 것이다. 엄격한 신분 사회 속 낮은 신분의 여성들을  양반 사대부들이 어떻게 취급했을지 짐작이 간다.


시기와 질투 때문에 악독함의 대명사 였던 장희빈에 대한 기록을 저자가 해석한 부분은 상당히 수긍이 간다. 왕비 생활 3년 6개월, 궁궐 별채에 유폐된 희빈 생활 7년, 이후 3백 년이 넘도록 악녀로 기억되어온 장희빈은 당파 싸움의 희생양이었을 수도 있다.  또한 우리의 기억 속 선하고 자비로운 왕비의 모습인 인현왕후는 선한 피해자가 아닐 수도 있다. 악인이었던, 선인이었던, 그녀들은 모두 사대부들의 권력 싸움에 이용된 여성들이다. 게다가 그들 싸움의 정당성과 합리화를 위해 조작된 기록으로 대대손손 기억되게 된 것이다. 장희빈은 조정의 기록에 의해 우리에게 기억된다. 그 기록이 과연 얼마나 공정하고, 정확할지 알 수 없다. 여인네들의 삶은 기록되지도 않았지만,기록된 여인네들의 삶도 과연 믿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시대가 여성을 억압했다하더라도 마냥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며 서글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성장한 여성도 있었다. <호동서낙기> 라는 기행문을 쓴 김금원이 그 인물이다. 가난한 집안의 서녀 출신인 그녀는 남달리 총명해 글공부에 능했다. 공부가 어느 정도 터를 잡기 시작하자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그녀는 어차피 여성의 신분으로 골방에 처박혀 있을 수 밖에 없다면 신분을 변장하고 팔도를 여행하며 선인들의 말씀을 되새기겠다 다짐한다. 그리곤 자신의 결심을 실행에 옮긴다. 모든 여성이 환경 속에 파묻혀 살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환경과 세상을 탓하며 애닮아 하기 보단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모험을 강행하는 인물들도 있는 것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그녀들이 있었기에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성들의 나라에서 한 평생을 살아내고 한 두 글자로 기억되었을 그녀들.  책에 등장하는 52명의 총명한  그녀들은 전면에서 기량을 내보이지는 못했지만, 누군가의  여인,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내로 역사에서 다양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도 온전한 조선의 역사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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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 2021-07-30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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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틈에서 ‘나‘로 존재했던 52명의 여자들 - 『또 하나의 조선』 새창으로 보기
남성중심의 사회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었던 여성들.

이제서야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내심 반가웠습니다.

 

남성들의 나라에서 한평생을 살아내고

때로는 경이롭게 운명을 넘어선 여자들

 

성녀도 마녀도 아닌 '한 인간'의 자취,

그 다채롭고 도도한 힘을 만나다

 

『또 하나의 조선』



 

 

이 책에는 52명의 여자들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신분상으로는 저 밑바닥 여종에서 저 높은 곳의 왕비에 이르고

지역으로는 저 남녘의 산골촌부에서 한양 마님에 이르며

나이로는 10대 소녀에서 여든 할머니까지

특별한 공통점은 없었습니다.

단, '조선시대'라는 역사 공간을 거쳤다는 사실.

 



 

우리가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결코 '조선'이라는 나라는, 역사는 '남성'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녀들이 있었기에 하나의 나라가, 그리고 우리의 역사가 이어져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간과했다면 이제라도 바르게 바라보아야 하기에 이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그들 각자의 이야기는 '조선 여성들의 일반적인 삶'이란 착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역경과 고난 속에서 자신의 색깔을 만든 삶이 있는가 하면 분노와 억울함을 안고 삶을 마친 사람이 있으며, 운명에 순응하며 버텨낸 삶이 있고 집안을 일궈냈거나 예술 또는 학술로 성취한 삶도 있다. 몇 가지 유형이나 몇 컷의 이미지로 담아내기에는 그녀들의 삶은 너무 역동적이고 오늘의 우리만큼 복잡다단한 내면을 담고 있다. 우리의 삶이 인과적 순서를 밟아 계획대로 펼쳐지지만은 않듯, 이들의 삶도 우연과 필연의 길항 속에서 어둠과 밝음이 교체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 page 5 ~ 6

 

친숙한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잘 모르는 이들이었습니다.

읽으면서

'이런 여성도 있었구나!

나는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며 반성하게 되고 좀더 그녀들의 깊이 있는 이야기가 궁금하였습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은 대개 두드러진 업적이나 특별한 사건으로 위인이 된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 특별한 업적이나 사건과 무관하게 그저 평범하게 살다 간 여성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남편 이문건(1494~1567)이 30여 년간 쓴 일기의 여자주인공으로, 또 남편이 제공한 묘지명으로 그 삶이 알려진 '김돈이'.

 

젊을 적에는 집안의 제사보다 세상의 화려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

공부는 안 하고 노비들과 희희덕거리며 노는 아들을 잡아다가 몽둥이로 패는 남편에게 아들이 병이 난 것은 모두 당신 때문이라며 악을 쓰기도 했던 그녀.

그런 이들에게 남편이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를 가게 되자 누에치고 길쌈하여 돈을 만들고, 부실한 아버지를 둔 1남 2녀의 손주를 폐족의 자손으로 남지 않도록 돌보고 가르친 그녀.

위기의 가족 앞에서 괴력을 발휘한 그녀의 모습은 결코 '평범'하다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16세기 양반 여성의 일상을 보여주는 그녀의 삶은 특별하진 않지만 늘 분주했다. 공공의 기억으로 남을 생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녀의 삶은 평범했고 치열했고 숭고했다. - page 33

 

무엇보다 15세기 지식과 권력 여성의 아이콘이었던 '소혜왕후'는 참 멋지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의 교훈'이라는 뜻을 가진 《내훈》은 전적으로 여성을 위한 책일 것으로 생각된다. 서문에서도 "나라와 집안의 흥망치란은 남자의 능력에 달려 있지만, 그 부인의 덕성도 중요한 변수가 되기에 여자를 가르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한다. 그런데 《내훈》 각 장의 사례를 살펴보면 남성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고, 언행·효친·화목·청렴 등의 주제도 남성의 덕목에 가깝게 서술되고 있다. 왕의 어머니이자 왕가의 어른으로서 그녀의 관심은 내조자로서의 여성에 국한될 수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편을 하늘처럼 받드는 순종하는 아내를 요구한 것이나 나라의 재물을 소중히 관리하고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하를 요구한 대목들은 아들과 자신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여성이지만 '여성'을 넘어서야 했던 소혜왕후는 시시각각 모순된 상황에 직면해야 했을 것이다. 남편에게 순종할 것을 주장하면서 남성을 계도하여 정사를 행한 역사 속 여걸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자신의 책이 "민간의 우매한 여자들에게까지" 널리 읽히기를 바라면서 그 내용은 주로 남성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서술은 학식과 정치적 감각을 두루 갖춘 이 여성 앞에 펼쳐진 세계 자체가 하나의 역할만을 고집하기에는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 아닐까. - page 149 ~ 150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아니 지금도 반복되는 이 역사적 사실에 답답함을 느끼게 된 대목이 있었습니다.

바로 <죽음으로 얻은 명예의 역설, 박씨 부인>.

1821년 영천 사람 박씨는 겨우 20세의 나이에 과부라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그녀에게 돈은 많으나 무례하기 짝이 없는 김조술이라는 자가 집적대며 희롱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사실을 알게 된 시아버지가 김조술을 고소하지만 그는 돈으로 아전들을 매수하며 추잡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합니다.

 

박씨는 원래 음란한 여자로 이미 여러 남자들과 간통하여 임신도 여러 번 했고 지금도 배가 불러 있다. 예전에 나와도 사통하는 사이라 그날 밤 다시 꾀어내려고 한 것이다. 음란한 여자와 좀 놀려고 한 게 무슨 죄가 되나?

_<서영천박열부사>, 《연경재전집》17

 

이로 김조술은 바로 풀려나고 자신의 억울함을 수령 앞에 나가 외치지만 수령은 오히려 무례한 말로 박씨를 모욕하고 결국 박씨는 억울함을 안고 관아의 빈방을 찾아 들어가 스스로 목을 찔러 삶을 마감합니다.

 

며느리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시아버지는 다시 고소장을 내지만 또다시 수령의 작당으로, 뇌물을 받은 자들로 인해 김조술은 풀려나고 이를 곁에서 지켜보던 박씨 집안의 노복이었던 '만석'.

그가 아내에게 통고하기를 "나는 내 주인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 내가 어찌 원수 집 여비의 남편이 될 수 있겠는가"라며 왕이 거둥하는 길에 엎드려 이 원통함을 호소함으로써 박씨가 죽은 지 7개월 만에 재조사와 함께 박씨의 억울함을 풀 수 있었습니다.

 

가련한 처지의 박씨를 희롱하고 능멸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김조술, '정의란 무엇인가'를 던져 놓고 간 그의 죽음도 전혀 의미가 없진 않았던 셈이다. 이 역사적 사례를 통해 다시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2백 년 전 피해자 박씨가 그랬던 것처럼 성범죄 피해에서는 여전히 자기 파괴적으로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다. 성범죄 피해자의 명예는 죽어야만 회복되는 것인가. 죽어도 회복되지 않은 명예는 누구의 몫인가. - page 238 ~ 239

 

이 책을 통해 여러 여인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기록으로 남겨져 있기에 이제라도 알려질 수 있었지만 기록 하나 남지 않은 이들이 남길 의미들이 그저 묻혔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이 더없이 의미 있었습니다.

 

역사적 삶의 공간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사소한가는 해석의 영역이다. 자료가 남아 있어도 주목되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사소한 기록 하나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내었을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 책은 짧게나마 기록에 남은 자들을 통해, 소외되었던 여자들을 기억하려는 시도이다. - page 6 ~ 7

 

낯선 인물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익숙한 인물에 대한 재조명, 위인이라 불릴 만한 여성뿐 아니라 사사로운 욕심 가득한 여성의ㅣ 이야기까지 함께 들을 때, 좀 더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을 가진 또 하나의 조선이 그려진다. - page 7

 

앞선 시대를 살아간 이들이 우리에게 전한 이야기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기에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함을 다짐하며 책을 덮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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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7-2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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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조선 새창으로 보기
 

 

조선하면 남존여비, 칠거지악 등 여성보다는 남성 위주의 사회체제가 떠오른다. 사극 속 조선의 여성들은 장옷이라고 하는 긴 외투로 얼굴만 빼꼼히 내놓고 바깥출입을 한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보다는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로 삶을 마무리한다. 그런 조선시대에 자신의 모습을 남긴, 자신의 이름을 남긴 52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소제목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책 속에는 총 4개의 주제 안에서 조선을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4개의 주제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첫 번째 주제에 등장했던 인물들이다. 우선 한 명도 익숙한 인물들이 없어서 신선했다. 둘째, 누군가(그중 여러 인물들이 이문건이라는 사람에 의해 남아 있다.)의 기록 때문에 남아있는 인물들의 이야기긴 했지만 노비, 손녀, 아내, 무녀 등 다양한 집단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등장하는 여성들은 사극 등을 통해 한 번 이상은 접해본 익숙한 인물들이다. 허난설헌, 대장금, 논개, 장희빈 등이 바로 두 번째 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세 번째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회적 모순과 맞서거나 희생당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성범죄나 환향녀로 낙인찍힌 인물들, 남편의 죽음 이후에 수절 혹은 열녀를 강요당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 네 번째 장은 예술가였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여성이지만 이름 혹은 호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남겼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개인적으로 기록 벽이 있었던 이문건이라는 양반에 의해 후세에 남겨지게 된 그와 관련된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중 손녀 이숙희에 대한 기록은 놀라웠다. 보통 손녀보다는 손자를 중시하는 조선시대일 텐데, 맡손녀인 숙희의 육아일기 아닌 육아일기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함께 손녀를 향한 할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조선에 비해 현재의 여성들은 많은 제약이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사회는 여성들에게 일종의 프레임을 씌운다. 육아휴직이 있다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남자와 여자 중 직장을 그만두는 비율은 엄마가 압도적으로 많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같은 업무를 하는 여성과 남성의 급여의 차이는 왜 나는 것일까? 세 번째 장에 드러난 여성에 대한 희생과 사회적 모순은 완전히 해결되거나, 이해되지 않았으면 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조선시대의 그 불합리를 계속 짊어지고 가는 것 같다. 우리 딸들이 내 나이가 되어서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이해되지 않는 시대상이라고 놀라워하는 사회가 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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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걸우네 2021-07-2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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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지루한 조선 시대 여인들 이야기 새창으로 보기
표지가 고풍스럽고 전통사회 여성이라는 주제에 잘 맞는 느낌이다.

책 자체는 솔직히 지루했다.

52명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인데 신문 등에 연재한 내용인가 보다.

이런 칼럼 모음은 분량의 한계 때문인지 깊이가 얕고 중구난방 느낌이 드는 게 문제다.

처음부터 한 권의 책으로 기획한 게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단점 같다.

더군다나 52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니 다채롭긴 하지만 간략하게 일생을 언급하고 넘어가는 식이라 깊이있는 분석이 아쉽다.

흔히 조선시대 여성이라고 하면 남존여비 혹은 축첩제도, 시집살이, 삼종지도 등 어두운 이미지만 생각나는데 사회 진출을 못했을 따름이지 사대부가 여성들은 남편의 동반자로서 존중받고 학문적 깊이도 갖추었다는 걸 알게 됐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사대부가 여성들도 성리학을 공부하여 문집을 남기는 경우도 생긴다.

성리학은 누구나 노력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요즘 의미의 만민평등은 아닐지라도 이론적으로는 많은 사람에게 열려 있는 개방적인 면도 있었던 듯하다.

여류시인이라고 하면 허난살헌이나 황진이 정도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여성들이 소개되어 반갑다.

미혼 여성은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집안 남성들, 이를테면 아버지나 남자 형제들, 남편, 시동생 등의 도움을 받아 문집을 펴내고 그 시와 학문이 전해질 수 있었다.

널리 알려진대로 허균은 누이의 시를 중국에까지 전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처음에는 중국인들이 애호하다가 분위기가 바뀌어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는 것이다.

시에도 표절이 있다니, 좀 놀랍다.

불행하게도 조선에서도 동생 허균이 역적으로 처단되자 평가가 박해졌으나 후대에 이렇게 기억되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는 시문들은 역사의 평가를 견뎌 낸 대단한 작품들인 것 같다.

정조 때 자신을 간음했다고 비방한 노파를 찾아가 칼로 찔러 죽이고 오히려 의인으로 칭송받은 김은애의 뒷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살인죄로 잡혀갔으나 정조가 명예를 지키기 위한 의로운 행동으로 방면해 줬는데, 훗날 정약용이 그 지방에 가서 뒷이야기를 들으니 어이없게도 뭔가 사건이 있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소문이란 참 얼마나 끔찍하고 질긴 것인가.

인간은 정말 이야기를 좋아하고 근원적으로 질투의 본능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오류>

163p

왕은 경복궁으로 가서 삼전(정희왕후, 소혜왕후, 인순왕후)를 문안하고 대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도록 한다.

-> 경복궁이 아니라 창덕궁에 문안했고, 인순왕후가 아니라 안순왕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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