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4

김왕근 장호두 한국의 갈등 신뢰, 사과, 위안부문제

Facebook: 김왕근 12 Au2Sgu5st42au orl2ieda019  · 이영훈 교수의 말씀은 장호두님이 연결해 주어서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한국근현대사] 이영훈 교수의 역사관 한국사회관에 대한 논쟁: 김왕근 VS 장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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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논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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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교수의 말씀은 장호두이 연결해 주어서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시중에 이영훈이라는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고, 도서관에 비치된 그의 책은 예약 대기가 길어서 빌릴 수가 없습니다. 요즘 핫한 논객인 듯합니다.

링크된 동영상을 요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이 동영상을 띄엄띄엄 봤는데, 이 사람이 한민족에 대해서 “사회적 갈등 수준이 높다.” “사회적 신뢰 수준이 낮다.”, “거짓말에 박근혜가 쓰러졌다.” “거짓말하는 악습이 나라를 망쳤다.” 등의 자극적인 언어로 말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아 동영상 전체를 보고싶지 않았습니다. 요즘 핫한 논객의 논리가 이렇게 뻔한, 시정잡배의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서글퍼지기까지 했습니다.

한민족이 사회적 갈등 수준이 높은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일본은 갈등 수준이 낮은데, 사회 전체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여성은 남성의 노리개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공영방송에서 그런 장면이 넘쳐납니다. 우리의 사회적 갈등 수준이 높은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 자체를 수치스럽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갈등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역동적임을 뜻하기도 합니다.

한국이 사회적 신뢰 수준이 낮다는 이교수의 말에도 찬성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정전이 됐다고 해서 마트가 약탈되거나 하지 않습니다. ‘문명국’으로 인식되는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일상인데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택배도 “문앞에 놔두고 가세요”라고 합니다. 사회적 신뢰 수준이 높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이런 현실에 외국인들은 놀랍니다.

“거짓말에 박근혜가 쓰러졌다” 이 말도 거짓말입니다. 박근혜는 공식 정부에서 공무원들하고 일하라고 국민이 뽑아줬습니다. 그런데 박근혜는 청와대를 무력화하고 최순실의 아바타 역할을 했습니다. 박근혜 최순실이 무능했고 부도덕했다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판결 과정을 보면 명확히 드러납니다. 유튜브에 그 동영상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교수라는 사람이 어떻게 “박근혜는 거짓말에 쓰러졌다”라고 말하는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박근혜는 자신의 무능 때문에 쓰러진 겁니다. 그가 거짓말에 쓰러졌다면, 그 거짓말을 박근혜 자신의 거짓말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악습이 나라를 망쳤다”라면서 이영훈 교수는 ‘세월호’를 언급합니다. 이건 진영논리로 보면 ‘촛불’ 정권을 부정하기 위한 말로 보입니다. 그러나 나라를 망친 건 ‘촛불’이 아니라 ‘세월호’라는 사태를 만나서 대국민 소통에 서툴렀고, 특히 세월호의 진상을 조사하려는 노력을, 정부를 동원해서 불법적으로 막았던 박근혜 대통령과 그 정권이었습니다.

청구권자금 3억달러로 개인청구권까지 다 청산됐다는 말도, 일면적인 주장입니다. 대법관들이 거짓말에 기초한 판결을 내렸다, 라는 말도 일방적인 주장입니다. 상황은 이렇게 한마디로 할 만큼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영훈 교수의 주장 중에 생각해볼 만한 내용은 “이번 재판의 원고들은 시기적으로 보아 모집과 알선에 의해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노예로 끌려갔다니요. 말이 되지 않습니다.”라는 부분입니다.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구체적인 사항에서 생각해볼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는 시각은 심각하게 왜곡돼 있습니다. 이영훈 교수는 “조선인은 일제 강점기 때 근대화됐다”라고 말합니다. 아마 이 말을 전면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가 일본이 근대화되는 시기였고 조선반도에도 그런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정에 빠지면 안 됩니다.

우리가 ‘근대’라는 말을 할 때는, 그 이전에 봉건 시대든 무엇이든, 서구가 갔던 올바른 진화의 길을 다른 주체들은 가지 못했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는 어떤 가치판단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근대’라는 프리즘으로 세상을 볼 때는 서구는 우수하고 동양은 열등하다, 라는 결론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한민족이 서구인보다 열등한가요? 한국은 짧은 시간에 산업화 민주화를 이뤘고 문화적으로도 ‘한류’로 세계를 호령하고 있습니다.

이영훈이 “조선인은 일제 강점기 때 근대화됐다”라는 말을 받아들이면 바로 “그러니 조선은 일본의 은혜를 입었다”라는 결론으로 갈 위험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생각해봅시다. 일본이 근대화 되어서, 그 다음에 일본은 올바른 길로 갔나요? 군국주의로 가서 패망의 길로 갔습니다. 일본은 단순히 서구의 아류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일궜습니다. 이 민주주의는 홍콩 시민들이 중국에 항의할 때 모범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의해서 근대화됐다면, 우리는 어떤 힘이 있기에 이런 새로운 길을 개척했을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영훈 교수는 생각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땅의 보수 세력들이 이런 측면에 눈을 감으려 합니다. 왜냐? 지금 정권이 싫으니까.

저는 틈만 나면 현 정권을 비판했습니다. 왜? 그래도 이 정권이, 나라를 망친 박근혜의 잔당 자유한국당보다는 나으리라고 생각하고 싶으니까. 애정이 없는 대상에 대해 비판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경제도 외교도, 그리고 안보도 무슨 책임감 없이 그저 “이게 옳은 길이야”라고 하면서 무턱대고 달리기만 하는 것 같아서 위태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한일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하나의 예입니다. 과거 남한과 북한의 정권이 ‘적대적 공존관계’에 있었던 것처럼 문재인 정부와 아베 정부는 ‘적대적 공존관계’에 있으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듭니다. 한일간의 싸움이 나라는 둘 다 거덜내지만, 민족주의 감정에 의해서 정권의 인기에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말입니다. 일본 정부도 무논리이기는 한국 정부보다도 더한 것 같습니다.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나, 현실에 대한 성찰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성찰의 가능성이 있는 측은 상처를 입은 측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를 준지도 모를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성찰할 기회도 적습니다. 그러나 상처를 입은 사람은 그 상처가 성찰의 기회가 됩니다. 암에 걸린 사람이 “내가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내가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지 아득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하나의 예입니다. 경제전쟁으로 한판 붙고 나서 일본 정부는 너무 안일한 대응책을 냈다고 반성하는 듯도 보입니다. 그러나 “징용 문제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이것이 일본 정부의 속마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자국 기업이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일본 정부가 그런 입장에 처하게 됐다는 것은, 한국 법원이 보통은 취하지 않는 ‘사법적극주의’적 판결을 내린 것을 생각하면 이해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은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한다”라는 역사를 써낸 민족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역사를 국제적으로 확장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질지는 단정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한일간에 역사에 관한 진정한 화해로 귀결지어져야 하는 어떤 것이 될 것이지만, 그러나 전두환을 민중의 힘으로 몰아낸 것처럼, 한국이 힘으로 일본을 제압해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저는 느낍니다. 오히려 차분한 논리와 설득으로 일본의 양심 세력들의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게 하는 외교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일본의 체면도 살려주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청구권자금을 받아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징용피해자나 위안부 피해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전체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 쓴 것에 대해서 뼈저리게 반성하는 것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Gishik Lee and 17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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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호두

      일본은 갈등 수준이 낮은데, 사회 전체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여성은 남성의 노리개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공영방송에서 그런 장면이 넘쳐납니다. 우리의 사회적 갈등 수준이 높은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 자체를 수치스럽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갈등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역동적임을 뜻하기도 합니다.
      -> 우리 사회가 갈등에 역동적인 국가라는 말씀에 또한 동의하고 일본 사회에 제가 가지고 있던 해소 안되던 불만(여성 폄하)에 대해서 꼬집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사과를 알고 용서도 아는 민족일까요. 사과가 뭔지 아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사과를 요구한다며 남 탓을 하는게 갈등의 촛매제로 사용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저는 요즘 들어 의문이 많습니다.
      일단 한일 갈등이 화해 되기 위해서는 한국인이 말하는 '진정한 사과와 사죄'에 대한 정의가 확실시 되어야 할 것 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수차례 사과를 했다고 하고 한국은 진정한 사과는 한차례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한국인들은 사과를 알까요?


일례를 들어드리죠 

(1) 쇼핑몰 임블리 사건_쇼핑몰 임블리에서 호박즙 논란이라는게 있습니다. 한 소비자가 자신의 SNS에 여기에서 판매하는 호박즙에서 이물질이 나왔다고 항의 했고 후속처우를 제대로 못받았다고 털어놓자 이게 논란이 되서 나중에 임블리 운영진이 전액 환불조치하겠다고 합니다. 사과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박즙 뿐 아니라 관련된 상품들이 어디가 잘못됐다며 소송을 걸어야 한다고 소비자들이 피해자 홈페이지를만들고 이 영상을 공유하고 기사보도를 유인합니다. 그 사이 임블리는 기자회견, 유튜브, 사과문, 공지사항 등으로 숱하게 사과를 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그 사과가 진짜 사과가 아니라고 합니다. 옛날 댓글들을 다 퍼날라서 그때도 사과 했지만 답례를 제대로 안해서 사과가 제대로 이루어진게 아니라고 하고 그를 끝까지 마녀사냥합니다. 임블리는 그것 때문에 과거 남자친구 재판 문제까지 거론됐고 자신을 피해자라 말하는 가해자들을 고소하기에 이르는데도 그것 조차도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의 모습이 아니라고 또 비판합니다. 

(2) 유승준 대법원 판결 사건_
유승준이 17년전 병역기피 논란으로 병무청 입국 거부가 된 이후에 수년에 걸친 3심 판레 끝에 엘에이 총영사관 사증발급거부 승소에서 3심 대법원 승소를 해서 원고 파기심 판결을 받자 마자 또 난리가 납니다. 유승준 같은 매국노가 한국을 왜 들어오냐는거죠. 그러면서 그가 지급 신청한 비자 종류까지 가지고 욕을 합니다. 그동안 유승준이 사과 안했을까요? 음반에 가사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중국서 아프리카 티비 등으로 울면서 무릎꿇고 사과하고 그의 온 가족이 방송으로 사과하고 사과란 사과를 다 해도 진정성이 부족하다며 안된답니다. 

(3)박근혜 전 대통령 세월호 참사 및 국정농단 관련해서는 대국민사과를 몇 차례 했고 거기에서 몇 번 눈물 흘렸는데 그 사과가 단 한마디라도 먹혀 들어갔는지는 김 기자님이 더 잘아시리라 생각 합니다. 

(4) 한국 콜마사장 혐한 발언 논란, 

한국 콜마가 얼마전 아시다시피 오전에 혐한 발언을 한 유튜브 영상을 키고 여성비하와 혐한 발언을 쏟아냈다며 난리가나서 주가 4프로 빠지고 관련 불매리스트가 온라인상에 공유되고 퇴출운동이 일어나고있습니다. 콜마 회장은 그날 직접 성명으로 사과 회사 자체적으로 사과했고 어제 사퇴까지 했는데도 계속 누리꾼들은 부족하다며 한국 콜마를 퇴출 시키겠다고 합니다. (이것 말고도 제가 연예 기사 쓰면서 사과를 하고 무릎을 꿇어도 정말 그 뿐만 아니라 가족들 마저 SNS가 다 털려버리는 이들을 한 두명 본게 아닌데 참겠습니다.)

(5)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도 진정한 사과가 기반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저는 2015년 합의문에서의 사과 1992년 일본총리 미야자와 가이치 총리가 4차례 사과를 했다네요. (관련기사 : 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829830.html) 이것 말고도 일제 식민지 강점에 대해서 총리, 일왕 등이 37차례 사과했단 소식은 많죠.
 이들은 항상 그래요. 도덕적이지않다. 진정성이없다. 반성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역사왜곡한다. 말을 항상 바꾼다. 등등등. 위에서 제가 논한 작은 당사자에 대한 사과를 수용하지 않는 민족성이 일본 관계에도 그대로 드러나요.

아베 총리가 몇 해전 "더이상 사과와 반성에 대한 강요를 후세대에게 물려주지 않고 내 대에서 끊어내겠다"고 발언한걸로 아는데 저는 오히려 이 발언이 속시원해요. 우리 민족은 어떤 사과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특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싫은게 일본이고 유승준이고 나경원이고 문재인이면 무슨 말을 해도 헐뜯고 진탕속에 빠트리고 웃고 그러는겁니다. 

도대체 왜 이 민족한테 사과하고 또 비웃음거리가 되야 하나요? 
저는 솔직히 우리 민족이야 말로 '사과를 모르는 민족'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갑자기 북한 조선통신이 본인들이 쏘아올린 미사일은 자력갱생의 표징이며 미국에 앞잡이 하는 우리 정부에 똥, 앞잡이, 괴뢰 라고 욕하는게 생각나네요. 내로 남불의 절정. 
北 "청와대, 겁먹고 짖어대는 개 같다" 대놓고 조롱 
http://www.newdaily.co.kr/.../2019/08/11/20190811000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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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역동성이 있다는 그 말, 
다른 말로는 남의 말 안듣고 계속 싸움질 하려는 특성이 있는 민족이라는 말로 해석 됩니다.
그리고 사회적 신뢰 수준이 높다 하셨는데 그런 나라에서 그토록 많은 수의 성폭행과 공직자 부정부패 및 뇌물수수가 있어서 김영란법 등까지 등장했는지 저는 '택배'랑 '정전' 사례 보다 더 큰 수준의 사회적 신뢰에 대한 보장 지표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김 기자님, 저는 이 교수님 편들려는게 아닙니다. 
그냥 이 나라가 신뢰지표가 높다고 말씀해주셨고 화해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씀해주신 부분에 대한 제 감상을 더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오히려 전국민의 40%가 노비에 중국 사대주의에 유교적 도덕주의로 명분만 따지던 무느안 양반사회 사농공상의 조선 시대 사회에 일본이 법치질서와 서구 근대화 과정을 이식 시켜주지 않았다면 자본주의 맹아가 불가능했을 것이란 이 교수 식민지근대화론을 지지하기까지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민족성이 뛰어 나다는데에 전혀 공감하지 못합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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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훈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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