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2

손민석 한일관계는 1990년대 이전과 이후로 나눠볼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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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한일관계는 1990년대 이전과 이후로 나눠볼 수 있을 듯하다. 대체로 1991년 냉전 종식 이전에는 한국이 일본에 의존적인 성향이 강했다. 다시 말해서 일본의 압도적인 우위 속에서 비대칭적인 관계가 유지되었다면 1990년대 이후부터는 점차 한국이 선진화함에 따라 대칭적이고 심지어 경쟁적인 관계로 바뀌기 시작했다. 대일무역적자가 지속되는 것과 별개로 한미일 삼각무역구조는 해체되었고 중-한-일-미라는 새로운 4각 무역구조 속에서 한국은 대중무역흑자에 기초해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경제적 번영에 힘입어 한국의 국제적 지위나 상대적 존재감을 점차 커졌다.
 현재는 대중무역흑자에 의존하며 대일무역적자를 메우는 방식이 더 이상 지속불가능해졌다. 중국의 성장으로 한미일 삼각무역구조를 대체한 동북아 분업체계도 사실상 예전 같지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은 일본에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비대칭적 관계를 수용하던 1990년대 이전 관계로 돌아갈 수도 없으며, 1990년대 이후에 일본과 협력적인 관계를 형성하는데도 실패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노무현 이래 한국 정부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친중반일의 성향을 갖고 있었다. 딱히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1990년대 이전에는 민족주의를 내세우더라도 끝에 가서는 한일 간의 비대칭적인 관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면, 1990년대 이후에는 민족주의를 내세울만한 실력이 뒷받침되었던 것이다. 이렇다보니 기존의 한일관계를 방기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관계를 맺는데는 실패했다.
 이건 달리 생각하면 한국의 발전을 일본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의 선진화는 단순히 무역관계와 같은 경제의 성장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체제적인 차원에서도 이뤄졌다. 1980년대 후반까지도 권위주의적인 개발독재체제였던 한국은 민주주의에 있어서도 서구적 기준에 부합하는 명실상부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으며 문화적인 차원에서도 일본의 '선진' 문화를 수입하던 위치에서 벗어나 되려 일본에 "선진" 문화를 수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여행의 보편화라든지 미디어 영향력의 강화로 한국은 일본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던 위치에서 벗어난지 오래이다. 일본 입장에서도 한국은 민주주의, 문화, 경제 등의 여러분야에서 대등하거나 경쟁적이며, '도전적'이기까지 한 존재로 바뀌었다. 
 일본인들은 '선진화'된 한국을 곱게 보지 않는다. 어떻게든지 기존의 탈아론적인 인식에 맞추려고 노력하는데, 예컨대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일본인들의 평가를 보면 대체로 비슷한 측면이 있다. 안정성을 강조하는 일본의 민주주의를 '법치', '자유민주주의' 등으로 정체화하는 대신 한국의 민주주의는 대단히 "불안정한" 것으로 인식한다. 한일 민주주의의 작동양식의 차이로 보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에서 기존의 민주주의 체제를 더 '민주화'하려는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의 성격이 강하다면, 일본은 자민당 일당 체제의 안정성에 기초하는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이러한 차이를 차이로 보지 않고 후진성의 발로로 본다는 점에서 한일 양국 모두 비슷한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 특히 진보적인 정치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일수록 일본 민주주의가 역동성이 부족한, 정체되고 부패한, 심지어는 민주주의의 범주에도 들기 어려운 일당장기집권체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면, 일본인들은 한국 민주주의를 "좌파"가 주도하는 굉장히 불안정한 시스템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민중이 "아이고, 아이고" 하면 법이 바뀌고 외교 정책마저 바뀌는 '떼법'의 나라, 감정의 나라, 아직 민주주의가, 자유가, 법치가 무엇인지도 몰라 언제나 민중이 들고 일어나는 불안정하고 야만적인 나라로 보는 것이다. 이들에게 위안부 문제, 징용공 문제와 같은 역사문제는 한국이 법치, 자유민주주의, 실증적인 역사연구 등을 몰라서 벌어지는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보아야 안심이 되나보다. 보수파들이 그렇게 본다면 진보파들은 일본과 달리 매번 시위가 일어나고 시민의 자기권리 주장이 강한 "역동적"인 민주주의라 본다는 점에서 동일한 현상에 대한 긍부정의 차이정도에 지나지 않는 인식을 보여준다.
 냉전적 상황에서 강제적으로 한일 양국을 붙여놓는 압력이 사라지고 비대칭적이었던 관계가 한국의 성장으로 대칭적이며 경쟁적인 관계로 바뀌자마자 한일 양국은 묵혀두었던 역사문제 등을 이유로 격렬하게 대립했다. 일본의 입장에서도 딱히 한국에 빚을 지거나 의존하고 싶은 생각이 없고, 한국의 입장에서도 딱히 일본에게 더 이상 의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아직은, 그리고 사실상 앞으로도 한국이 일본을 뛰어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대칭적 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본 우위의 상황은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일본이 가진 높은 기술력, 생산력 등을 한국이 탈취하는 방향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좀 주도했으면 하는데.. 여러모로 어렵다. 구조적으로 비대칭적 관계가 대칭적 관계로 변한 이상 특별한 외압이 없으면 딱히 결합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결국 서로의 정체성이 그만큼 다른 부분도 있다. 역사관의 문제이다. 예컨대 아베 전 총리의 역사관을 정리하는 글을 한번 쓸까 하는데 아베 총리의 경우 1930년대 이후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치닫게 된 부분, 천황제 파시즘으로의 길에 대해서는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지만 그 이전의 메이지에서 다이쇼에 이르기까지의 제국주의 시절의 경험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의식 자체가 없다. 그게 왜 문제냐는 식으로 되려 화를 낸다. 위안부 문제는 천황제 파시즘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반성한다는 태도를 취할 뿐이지, 그것 자체가 왜 문제나는 식의 입장도 갖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식민지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태도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고, 독도 문제도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된다. 독도에 대한 일본 정부의 '망언'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발은 오늘날의 일본이 한국의 영토적 주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위기감보다도 이것들이 제국주의적 침략을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는 데서 오는 어떤 분노에서 나오는 것이라 본다. 
 이 둘을 어떻게 접합시킬 것인가? 한국만 갖고는 역사발전의 최전선에 나설 수가 없다. 좌파적인 국제주의를 실현하고 무언가 역사발전의 최전선에 나서기 위해서는 몸집을 키우고 기술력을 축적하고 그래야 하는데 가장 쉬운 게 일본이 축적해놓은 것들을 한국이 흡수하는 것이라 본다. 한일 간의 협력과 통합으로 지역적 자본주의의 형성까지만 가도 세계사를 주도하지는 못해도 주요한 플레이어정도는 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인들 특유의 역동성이 일본의 매뉴얼화, 안정성, 지적 축적 등의 배경과 잘 결합만 하면 굉장한 시너지를 낳을텐데.. 둘다 딱히 싫다고 하니 방법이 없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매번 고민이다. 일본은 이제 "동아시아 공동체론"도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진화과정에서 한국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어디서부터 해야 좋을지. 2010년대가 마지막 기회였던 것 같기도 하다. 많은 기회들이 2000~2010년대에 날아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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