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4

중국의 전제, 일본의 봉건 - 전제국가사론 |아다치 게이지

중국의 전제, 일본의 봉건 - 전제국가사론 | 일본사 연구총서 1
아다치 게이지
(지은이),
박훈 (옮긴이)빈서재2023-01-23

원제 : 專制國家史論: 中國史から世界史へ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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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쪽



중국의 전제, 일본의 봉건 - 전제국가사론
에도시대를 생각한다 - 도쿠가와 3백 년의 유산



책소개
에도 말기와 메이지유신 전환기를 주로 공부하는 박훈 교수는 도쿠가와 시대를 다룬 연구서가 매우 적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변의 연구자들을 모으고 때를 기다리다가 플라톤 아카데미와 함께 연구서를 출간할 기회를 마련했다. 한일관계가 나빠질수록 서로를 알아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간 외면되었던 일본 근세와 근대의 주요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빈서재 출판사는 이에 호응하여 연구총서를 준비했다.


목차


차 례 . . . . . . . . . . . . . . . . . . . . . . . . . . . 6
머리말 . . . . . . . . . . . . . . . . . . . . . . . . . . 15

제 1 장 전제국가 인식의 계보 . . . . . . . . . . . . 19
1.1 중국에서 발견한 전제국가 . . . . . . . . . 19
1.1.1 고염무 . . . . . . . . . . . . . . 19
1.1.2 량치차오 . . . . . . . . . . . . . 23
1.2 근대일본에서 형성된 중국 전제국가론 . . . 29
1.2.1 나이토 고난 . . . . . . . . . . . 29
1.2.2 1930년대 사회과학의 중국 인식 32
1.3 전후 일본의 연구동향 . . . . . . . . . . . . 47
1.3.1 ‘세계사의 기본법칙’ . . . . . . . 47
1.3.2 전제국가론으로의 재접근 . . . . 50

제 2 장 전제국가와 봉건사회 . . . . . . . . . . . . 55
2.1 중국사회와 일본사회 . . . . . . . . . . . . 55
2.1.1 중국의 촌락과 일본의 무라 . . . 55
2.1.2 가족 ·동업자 조직 . . . . . . . . 64
2.1.3 중국의 사회재생산 . . . . . . . . 68
2.1.4 중국사회의 결합원리 . . . . . . 74
2.2 권력의 편성형태 . . . . . . . . . . . . . . . 78
2.2.1 일본 봉건사회의 단체중적체 성격 78
2.2.2 전제국가의 사회 ·정치편성 . . . 79

제 3 장 전제국가의 형성 . . . . . . . . . . . . . . . 85
3.1 전 국가사회의 발전이론 . . . . . . . . . . . 85
3.1.1 공동체 해체사에서 단체 형성사로 85
3.1.2 인간사회의 형성 . . . . . . . . . 89
3.1.3 무리에서 수장제까지 . . . . . . 97
3.2 중국전제국가의 형성 . . . . . . . . . . . . 110
3.2.1 중국수장제의 형성 . . . . . . . . 110
3.2.2 국가형성을 이끈 두 개의 힘 . . . 116
3.2.3 전제국가의 형성 . . . . . . . . . 122
3.3 고전고대국가와 일본 고대국가의 형성 . . . 132
3.3.1 고전고대국가 . . . . . . . . . . 132
3.3.2 고대국가 형성의 일본적 특질 . . 139
3.4 국가단계의 위치 . . . . . . . . . . . . . . . 143
3.4.1 집단발전의 굴절점인 국가단계 . 143
3.4.2 초기국가론 . . . . . . . . . . . . 145
3.4.3 단계 ·유형 ·상호관계 . . . . . . 147

제 4 장 봉건사회와 전제국가의 발전 . . . . . . . . 149
4.1 일본 봉건제의 형성과 발전 . . . . . . . . . 149
4.1.1 소경영 ·공동체 ·영주제 . . . . . 149
4.1.2 공동체와 영주제의 강화발전 . . 154
4.2 전제국가발전의 체계와 제반 단계 . . . . . 158
4.2.1 초기 전제국가 . . . . . . . . . . 158
4.2.2 전제국가의 변질과정 . . . . . . 163

제 5 장 근대로의 이행 1 - 경제 . . . . . . . . . . . . 171
5.1 사회유형과 경제발전 . . . . . . . . . . . . 171
5.2 중국사회의 경제형태 . . . . . . . . . . . . 174
5.2.1 조숙한 유통형성 . . . . . . . . . 174
5.2.2 면업으로 본 중일의 시장형성과정 . . . . . . . . . . . . . . . . 179
5.2.3 중국적 유통의 기본형태 . . . . 182
5.2.4 일본 봉건사회의 유통기구 형성 . 186
5.2.5 중국사회와 중국적 유통 . . . . . 193
5.2.6 노동력 지배의 실현형태 . . . . . 203
5.3 중국의 자본주의 형성 . . . . . . . . . . . . 208
5.3.1 중국형 자본주의 . . . . . . . . . 208
5.3.2 경제조직화의 진행과 규정 요인 . 217

제 6 장 근대로의 이행 2 - 정치 . . . . . . . . . . . . 223
6.1 일본 봉건사회의 성숙과 근대국가로의 이행 223
6.1.1 절대주의 . . . . . . . . . . . . . 223
6.1.2 시민혁명 . . . . . . . . . . . . . 226
6.1.3 근대일본과 전제 . . . . . . . . . 229
6.2 중국에서 근대이행의 사회적 전제 . . . . . 233
6.3 중국 내 근대적 통합의 형성과정 . . . . . . 237
6.3.1 임의단체에 의한 ‘자치’ . . . . . 237
6.3.2 공화정의 시행 . . . . . . . . . . 245
6.3.3 임의단체 대표제 권력구상 . . . 249
6.3.4 중국국민당의 당=국가제 . . . . 252
6.3.5 중국공산당의 당=국가제 . . . . 258

맺음말: 세계통합과 사회 . . . . . . . . . . . . . . . 263
후기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77
찾아보기 . . . . . . . . . . . . . . . . . . . . . . . . . 289
접기


책속에서


중국의 정치가 바뀌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이론은 적을 것이다. 사회주의적 평등이라는 정당성의 근거가 사라졌을 때 논의를 통한 합의가 결여된 국가의 통합에는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나 대외확장이라는 민족주의가 중요하게 된다. 여전히 중국은 ‘1인에 대한 복종’으로 간신히 통합되고 있다.
? 후기
P. 233일본과 비교해서 분명해진 첫 번째 중요한 점은 중국 전제국가에서 근대국가로 이행할 즈음에는 이른바 시민혁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주제의 폐절, 중간단체특권의 부정, 봉건적 토지소유에서 근대적 토지소유로의 이행 같은 변혁들은 모두 절대주의에서 근대국가로 이행할 때 나타난 특수한 현상에 불과했다. 중국의 경우 영주제는 물론 특권적인 중간단체도 단순한 지주제와는 다른 봉건적 토지소유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것들의 폐절이 변혁과제가 될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집중력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통일적인 국가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양무운동은 물론 신해혁명이나 난징 정부조차 종래 사회편성의 근본적인 변혁이나 권력구조의 폐절과 재구축 없이도 새로운 정권을 창출했다. 접기
P. 177이러한 사회적 요인에 규정되어 중국농민은 이른 시기부터 유통경제에 의존하고 있었고, 농산물의 상품화율도 높았다. 전근대에서 농산물의 상품화율을 일반적으로 추계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근대의 통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전국적 추계로 가장 신뢰도가 높은 버크의 조사는 1920년대 전반 중국 농산물의 상품화율을 52.7%로 추계했다. 이 수치는 근대일본의 농산물 상품화율과 비교해도 높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아다치 게이지 (足立 啓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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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1972년 교토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1978년 교토대학 문학연구과 박사과정단위를 취득했다. 구마모토 대학 명예교수이다. 저서는 『명청 중국의 경제구조』, 『중국 역사상의 재구성』, 『중국 전제국가와 사회통합』, 『심포지움:역사학과 현재』 등이 있다.

최근작 : <중국의 전제, 일본의 봉건> … 총 3종 (모두보기)

박훈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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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동양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에서 메이지유신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민대 일본학과에 이어 현재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동양사학회와 일본사학회 총무이사를 거쳐, 현재는 일본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메이지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역서로는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일본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또한 한중일 3국 역사학자의 글을 모은 『響き合う東アジア史』를 공동 편집했다. 접기

최근작 : <서울리뷰오브북스 6호>,<서울리뷰오브북스 5호>,<서울리뷰오브북스 3호> … 총 2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중국은 전제국가, 일본은 봉건국가 체제에서 근대로 이동했다. 그리고 2022년 시진핑은 주석 3연임에 성공했다.

춘추시대 이후 통일국가를 경험한 중국은 분열과 통합을 거듭하면서 명청시대에 전제국가의 극점에 도달한다.
서유럽과 일본의 사례처럼 근대는 봉건사회에서 탄생했다. 반면 전제국가 중국의 근대화는 계속 우여곡절을 겪었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현대 국민국가의 사회통합은 약해지고 있다. 우리는 단체성이 약했지만 의사결정이 집중되었던 나라를 이미 역사속에서 경험했다. 바로 전제국가 중국이다.

[출판사 / 총서 소개]

에도 말기와 메이지유신 전환기를 주로 공부하는 박훈 교수는 도쿠가와 시대를 다룬 연구서가 매우 적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변의 연구자들을 모으고 때를 기다리다가 플라톤 아카데미와 함께 연구서를 출간할 기회를 마련했다. 한일관계가 나빠질수록 서로를 알아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간 외면되었던 일본 근세와 근대의 주요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빈서재 출판사는 이에 호응하여 연구총서를 준비했다. 접기










중국은 전제국가인가? 중국을 전제국가라 말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하여! : 아다치 게이지의 <중국의 전제, 일본의 봉건>(박훈 역, 빈서재, 2023) 서평글

가? 중국을 전제국가라 말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하여! : 아다치 게이지의 <중국의 전제, 일본의 봉건>(박훈 역, …

 
서평글 모음
중국은 전제국가인가? 중국을 전제국가라 말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하여! : 아다치 게이지의 <중국의 전제,
일본의 봉건>(박훈 역, 빈서재, 2023) 서평글
2023.01.14. 오전 9:00
손민석
1
혁명 읽는 사람 MY

아다치 게이지, <중국의 전제, 일본의 봉건>(박훈 역, 빈서재, 2023)
주말 아침부터 묵직한 분량의 글을 들고 왔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올릴까 했지만 너무
길다보니 아무래도 아침에 읽으시는 게 편할 듯해서 아침부터 무거운 주제의 책을 들고
왔습니다. 박훈 선생께서 번역하신 아다치 게이지의 <중국의 전제, 일본의 봉건>입니
다. 제목을 다소 도발적으로 "중국은 전제국가인가? 중국을 전제국가라 말하는 것의 위
험성에 대하여!"라고 하여 마치 중국을 전제국가라 하면 안된다는 것처럼 말했지만 글
을 차분히 읽어보시면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다치 게이지는 저
명한 명청시기 경제사가로 개인적으로도 참 좋아하고 존중하는 연구자입니다. 뛰어나
고 정연한 논리와 탁월한 실증 능력으로 일본 학계뿐만 아니라 해외의 학계에서도 인정
받는 학자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연구를 정리하여 이렇게 사론의 형태로 제시하였기
에 상당히 긴글을 적어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일본의 맑스주의 경제사학의 한 단면을 제시하고 그 영향력이 바다를 건
너 한국에까지 오는 와중에 어떠한 문제점들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또 제 입장에서는 그
것을 어떻게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는지에 대해 아주 길게 적어보았습니다. 막
히는 부분은 딱히 없겠지만 양이 많고 다루고 있는 주제가 워낙에 거대해서 이런저런 의
문점이 많이 생기시리라 생각합니다. 댓글로 리액션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다,
정도의 칭찬만으로도 큰힘이 됩니다.
일본 사회는 근대에 들어 중국을 전제국가로 파악하는 흐름이 강고하게 존속하고 있습
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일본의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이러한 인식틀이
잔존해 있으며, 특히 보수파의 경우에는 그러한 인식에 기초해서 한국을 반일민족주의
에 기초하여 일본을 공격하고자 하는 '반일국가'로 보는 관점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일
본은 법치국가이자 자유민주주의 국가인데 한국과 중국, 그리고 북조선은 전체주의적
이고 권위주의적이며 강한 내셔널리즘을 내세우며 법치와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여 일
본을 위협하는 반일국가라는 게 이들의 입장입니다. 그 근간에 있는 중국은 전제국가라
는 인식을 좌파인 맑스주의 역사학의 몰락 속에서 다루어 보았습니다.

나카무라가 소농사회론에 기초하여 동아시아 자본주의 형성을 축으로 삼아 동아시아
연대를 지향하였다가 실패하며 더 이상 맑스주의에 입각한 변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
게 된 결과, 아다치는 대안부재의 상황에서 일본 봉건제가 지닌 사회통합기능만이라도
보존해야 한다는 다소 보수적인 입장으로 후퇴하였습니다. 반대로 박훈은 한국이 군현
제와 봉건제의 특징들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일본과 중국뿐만 아니라 대의제 민주주의
의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에 대안적인 민주주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는 다소 희망섞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의 논의들이 지닌 매력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한계와 모순이 존재한다는 점,
가장 근본적으로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전제국가가 지닌 '내적 동력'을 정확하게 제
시하지 못하고 유럽 및 일본의 특질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는 '대립항'으로서만 위치시
키는 바람에 대안을 제시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이 주장하는 유럽중심
주의의 극복이 아닌 보다 강고한 유럽중심주의, 근대주의로 귀결되었다는 점을 지적하
였습니다. 얼마나 설득력 있다 느끼실지 궁금합니다. 분량상 참고문헌 목록을 제하였습
니다. 궁금하신 분이 계시다면 나중에 추가하겠습니다.
많은 댓글과 구독, 그리고 홍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 나카무라 사토루와 20세기 동아시아 자본주의
a) 동아시아 자본주의론을 향해

아다치 게이지는 나카무라 사토루(中村哲, 박훈은 나카무라 데쓰로 번역했다)의 지도
를 받는 중국사연구회에 속해서 많은 뛰어난 작업들을 수행했다. 나카무라 사토루 자체
는 일본 메이지유신 경제사를 전공으로 했는데 그는 근세 일본 사회의 자본주의적 재편
의 경험을 이론화하여 '중진자본주의론' 등의 여러 흥미롭고 뛰어난 개념구성 작업을 해
냈다. 한국의 낙성대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하는 안병직 등의 뉴라이트 사단은 나카무
라 사토루가 이끄는 연구팀과의 공동 작업으로 한국의 경제개발사를 중진자본주의 개
념에 따라 재해석하는 작업을 행하는 와중에 탄생했다.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불
리는 학문적 입장이 나카무라 사토루와의 교류 속에서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이론적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나카무라 자체가 일본의 메이지유신기의 근대
이행을 전공했으며, 안병직 등의 한국 경제사학자들과 식민지기 및 현대 한국의 경제개
발에 관한 공동연구를 수행하였고, 나카무라의 제자들은 일본의 중국사연구회를 중심
으로 전근대 중국사와 중국의 개혁개방과정을 실증적으로 연구하며 이론화 하였으니
그야말로 한중일의 자본주의화 전부를 연구한 학자라 할 수 있다.

이런 나카무라의 탁월한 연구실적은 이미 공인된지 오래이다. 본인의 전공인 메이지 유
신기 경제사 연구에 있어서도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아 관련 연구사에서는 필수적인 문
헌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해외 연구사에서도 줄곧 인용되고는 한다. 게다가 중국 경제사
연구에서도, 한국 경제사 연구에서도 모두 그 탁월한 이론적 능력과 꼼꼼한 실증 능력을
인정받아 인용되거나 영향을 끼쳤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의 원전을 인용하
며 재구성하는 이론 능력에 있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한국에서도 주종
환과 같은 경제사학자들이 나카무라의 주장에 반론을 펼치기도 하였지만, 선학께 죄송
하게도 원전 재해석 등의 부분에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격차가 있었다.
1945년 패망 이후 일본의 좌익 진영은 전전의 강좌파와 노농파의 대립을 중국의 사회
주의화, 소련의 대국화, 냉전의 심화 등의 여러 정세 변화에 맞춰 새롭게 재구성할 필요
를 느끼고 있었으며 특히 중국의 사회주의화는 마르크스주의자, 비(非)마르크스주의자
가릴 것 없이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후진적인 중국 대 선진적인 일본이라는 구도는
역사발전단계의 도식에서 일거에 역전되어 사회주의 중국 대 자본주의(이자 미군정의
식민지인) 일본이라는 구도 속에 놓이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역사연구의 위기', 줄여서 "역연(歷硏)의 위기"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에
대응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질 수 있다. 도야마 시게키(遠山茂樹)의 지역사론
처럼 일국적 관점에서 탈피하여 동아시아 전체를 놓고 그 관계사를 추적함으로써 새로
운 관점을 끄집어내는 과정과 나카무라 사토루, 시바하라 다쿠지(芝原拓自) 등처럼 마
르크스와 엥겔스의 원전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세계사상(像)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동시
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두 과정은 서로 충돌하기도 했는데 예컨대 도야마와 시바하라는
이른바 '30년 논쟁'을 펼치면서 메이지유신의 성공이 외압의 차이 때문인지 일본 민족
의 내적 역량 덕분인지 등을 놓고 충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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