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4

비루하다 뜻: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

비루하다 뜻: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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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루하다 鄙陋하다 :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
어휘 형용사 혼종어


• 예시: "비루하다"의 활용 예시 4개
비루한 태도.
비루하게 굴다.
흥선의 인격은 그들의 눈에는 너무도 비루하게 보였으므로 종실의 강아지에게까지 경계의 눈을 붓는 김씨 일문에게도…. 김동인, 운현궁의 봄
윤도집이 본래 양반은 아니지마는 선비의 찌꺼기가 남아 있어서 비루한 짓은 못할 사람이다. 박경리, 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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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정의 출처: Oxford Languages · 자세히 알아보기
단어를 검색해 보세요.
비ː루-하다, 鄙陋-
형용사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
"비루한 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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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절하다의 의미 - 사전 - WORDROWhttps://wordrow.kr › 사전
허름하고 지저분하다., 하찮고 시시하다., 어떤 일이나 일을 조직하는 것이 거칠고 실속이 없으며 지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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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11. — 모든 지식의뢰 및 지식맨 처리기록. 등록된 기록 총 22,672,465 건 ... 비루함 뜻이 무엇인가요? 처리정보. 처리일시 : 의뢰일시와 동일함.
2020. 3. 26. — 비루하다'는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는 을 지닌 형용사이다. 비루함은 ... 대한민국 정치의 비루함은 이제는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
이문열 · 2021 · ‎Literary Collections
내 일찍이 학문에  두었으나 게으르고 둔해 성취가 크지 못했 고, 속된 진취(進就)를 꿈꾸었으나 그 ... 사람들은 어질어 그 뜻의 비루함조차 너그럽게 보아 넘겼다.
진덕수, ‎정민정 공저, ‎이한우 역 · 2015 · ‎Philosophy
제대로 하려면 반드시 말의 뜻을 글〔時文 시문 배움을 이런 식으로 을 뿐이니 체득 ... 이들 가르침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자가 있기는 한데 끝내 세속의 비루함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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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함·경탄·분노·끌림… 억눌린 내면 속의 감정 48가지 표현하라
2013.11.22 19:57 입력
정원식 기자
▲ 강신주의 감정수업…강신주 | 민음사 | 528쪽 | 1만9500원

강신주씨(46)는 철학이라는 추상의 학문이 구체적 삶에서 어떤 쓰임새를 지닐 수 있는지에 관심이 많은 철학자다. 일상과 철학의 접촉면을 넓힘으로써 철학이 인간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그는 알랭 드 보통을 닮았다. 보통은 <철학의 위안> <불안> 등에서 철학이 일상의 감정적 혼란에 대응하는 유용한 치료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스피노자의 <에티카>와 48편의 소설을 동원해 비슷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책과 삶]비루함·경탄·분노·끌림… 억눌린 내면 속의 감정 48가지 표현하라

 
저자는 “이성의 윤리학이 아니라 개개인의 감정에 주목한 감정의 윤리학을 옹호”한 <에티카>와 세계문학의 걸작이라는 두 종류의 프리즘을 통해 인간이 느끼는 48가지 감정의 스펙트럼을 분석한다. 저자는 ‘감정수업’이라 명명한 이 분석 작업이 우리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평범한 삶을 뿌리에서부터 뒤흔들 수 있는 힘을 지닌 데다, 한 개인이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감정들의 정체에 대한 섬세한 이해 없이는 행복한 삶을 살기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다. “감정들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우리가 과연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비루함’이란 어떤 감정인가. 스피노자에 따르면, “비루함(abjectio)이란 슬픔 때문에 자기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것”이다. 번역 탓인지 모호한 진술이다. 저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여기서 말하는) 슬픔은 어떤 타자가 나의 삶의 의지를 꺾으려고 할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저자는 인간이 비루함을 느끼고 그것을 극복하는 구체적 사례를 러시아 소설가 투르게네프(1818~1883)의 단편소설 ‘무무’에서 찾아낸다.

농노 신분인 게라심은 같은 처지인 타티야나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의 여지주에게 이 감정은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노예가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 감정의 주인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노예나 다름없었던 농노는 자신의 감정을 부정해야만 한다. 만일 부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부정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여지주는 타티야나를 다른 농노에게 시집보낸다. 강아지 무무는 상심한 게라심이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버팀목이다. 그런데 여지주는 무무마저 죽이려 한다. 게라심은 여지주가 무무를 죽이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스스로 죽이기로 결심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타티야나와 무무를 연달아 잃게 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감정이 비루함이라면, 게라심이 여지주에게서 무무를 빼앗아 자기 손으로 죽이는 것은 비루함에 대한 저항이다.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도 지킬 수 없다는 진실을 뼈저리게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무무를 죽인 뒤 게라심이 여지주로부터 도망을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다.”

저자는 이어 ‘철학자의 어드바이스’라는 이름이 붙은 주석에서 “유년 시절에 만들어진 슬픔이 하나의 습관처럼 내면화될 때 우리는 자신을 항상 비하하는 감정, 즉 비루함에 젖어들게 된다”면서 “사랑만이 비루함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법”이라고 덧붙인다. 자긍심, 경탄, 절망, 분노, 질투, 적의, 후회, 끌림, 수치심을 포함한 다른 47가지 감정에 대한 글들도 이와 동일한 체제로 짜여 있다. 철학적 통찰, 고전소설에 대한 요약과 분석, 인생상담, 삽화로 사용된 명화 45점 등 다소 이질적인 요소들이 혼재돼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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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함과 비루함에 관한 고찰

2015.5.16
by시네
Apr 22. 2016


비참함과 비루함에 관한 고찰.

어젯밤 느즈막히 일이 끝났다. 오늘 저녁엔 오랜만에 다같이 영활 보자던 준이오빠덕에, 예매해 둔 밤 11시 영화 시간을 맞춘답시고 꾸역꾸역 메워져있던 업무들을 하나씩 꺼내서 급하게 해치웠다. 그래도 아홉시 이십이분에서야 연구실을 나섰다. 그렇게 서대문에서 다함께 만나 영화관으로 가는 중, 뒷좌석에서 할게 없어 심심하던 차에, 늘 가지고 다니는 책 한권을 꺼내어 읽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두꺼운 책이라 아직까지 오일 째 끝내지 못한 책이다. 사실 두꺼워서라기보단 시간이 없었던 데에 그 이유가 더 가깝겠다.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핸드폰에 라이트를 켜서 책을 보고있는데 앞자리에서 말을 걸어왔다. 무엇을 읽느냐고.


그래서 첫 장에서 스피노자가 정의한 첫번째 인간의 감정. '비루함'이라는 단어를 던졌다. 운전하던 준이오빤 '비루함과 비참함의 차이가 뭐냐'고 물어왔는데 순간 우리는 무어라 대답을 단번에 해주지 못했다.잠시를 뜸들이다 내가 대답하길,
'비참함'은 다른 사람의 언행이나 외부적인 요인으로부터 자극되어 느껴지는 감정이고, '비루함'은 타인과 같은 외부적인 자극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내적으로 안에서부터 느껴지는 감정이 아닐까_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곧 이 이야기는 흩뜨려지고 다른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 두가지 말이 어제부터 나를 따라다녀 생각케하는것을 두고 어떡해야하나 싶지만 쫓아내기에 귀찮아 그냥 더 따라다니게 둔다. 나는 비참한 사람인가 비루한 사람인가. 두가지 전부일수도, 두가지모두 아닐수도 있다. 적어도 내가 생각했던 저 두가지 말의 정의가 아주 틀린 의미가 아니라면_ 나는 내가 비참해지는 외적인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의무가 있고, 비루함을 느끼게끔 하는 내적인 것으로부터 나를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철학의 대가 스피노자가 풀어낸 비루함의 정의는 _'비루함'이란, 슬픔때문에 자기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것_이었다. 정말 그의 말대로 '느끼는 것'이라면, 절제또한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인간의 감정은 스스로가 절제할 능력이 있다. 그 감정또한 나의 소유이고 내 신체의 일부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절제할 수 있다 분명. 그렇지만 간혹 엄청난 집체를 뽐내며 나를 에워싸 덮어버리는 감정, 특히나 슬프거나 화나는 등의 부정적 감정들을 이겨내 비집고 헤어나오고자 할 때, 그 무게를 걷어내기엔 너무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하기에 그 감정들을 절제하고 통제하길 포기하여, 그 감정의 소용돌이 속 중심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그래서 철저하게 내가 우는것이 싫다. 슬픈것이 싫은게 아니라 한낱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무력한 내 모습을 눈물 흘리는 일로 대면하는 것 같아서다. 예외는 있겠다.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때. 이를 제외하고는, 오랜시간 진득하니 생각하고 진하게 농익은 어떠한 것으로 인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렇다면 비참하고 비루함을 함께 느끼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 아래서부터 목까지 격하게 차올라서 치미는 눈물을, 정말 할 수 있는 최대로 꾸역꾸역 밀어넣었다. 억지로 다시 밀어넣어서 힘겹게 삼키고서는, 나오는길에 수고했다- 고 스치듯 생각하곤 다시 어마어마한 감정의 속으로 빠져들었다. 태어나 눈물을 이렇게까지 참아본적 없었는데, 그러는 편이 나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좋을거라 판단했다. 그날 참아진 눈물이 마치 내게 복수하듯이, 턱끝에서부터 쇄골에 이르는 목 전체에 알이 배긴 근육통을 선사했고, 덕분에 숨쉴 때, 삼킬 때마다 보란듯이 고통을 쥐어짜내주고 있다.

시간은 흐르고 있고, 많은 것은 또 변할 것이며, 그러한 현상들 가운데 나는 앞으로도 오롯이 서있겠다만, 그럴때에 나를 흔드는 것으로부터 온전히 나를 보호할 용기를 가지는 사람이길. 덧없이 어줍잖은 배려심으로 너의 표피를 먼저 생각하느라 나를 방치하지말고, 이기적이게 나를 먼저 생각해주어야 할 의무가 나에겐 분명 있음을 나이가 지남에 따라 더욱 생각한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 누구의 실수도 아니며, 그 누구의 생각도 그럴 수 있노라고 우리는 서로에게 그렇게 말을 해주며 살아갈 것이다. 물론 어쩜 그것을 말하는 입술들이 전부 진심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이 진심이라고 자신은 믿지만, 그 자신 속의 무의식은 믿지 않을지도 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속아주는 삶"을 살아가는 나와 너와 우리에게 조금 더 시간이 빨라가는 것이 능사이길 바라면서.

인간이 어떠한 순간에 느끼는 감정은, 해결이란 의미를 적용시킬 수 없다. 감정은 해결하여 끝맺음을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누구에게도. 천천히 그때그때 할수 있는 만큼씩만 그냥 흘려보내는 수 밖에. 혹여나 비참함을 원치않게 느껴버렸다면 더 이상 그것이 나를 잠식시켜 비루함으로 변모하지 않도록 철저히 절제하고 제한하는 삶과, 앞으로의 지나는 시간만큼의 지혜를 모두에게 기대하며.
우리 모두, 좋은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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