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2

마루야마 마사오 - 일본의 근대를 비판하면서도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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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 기자였나, 일본의 지식인들이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까지의 근대는 긍정하면서도 미국과 대결하게 된 1941년 이후의 파시즘 과정만 부정한다고 비판했던 사람이? 그는 식민지배를 부정하지 못하는 일본인의 세계관 자체를 문제삼으면서 마루야마 마사오를 비판했다. 나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때가 있다.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에 한참 공부할 때 내가 다케우치 요시미, 마루야마 마사오, 후지타 쇼조 등을 읽으면서 격하게 반발했던 부분이 이들이 일본의 근대를 비판하면서도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출병에 앞서 식민지 조선의 평양에 잠시 머물렀던 적도 있지 않은가? 그는 천황제가 일본인의 자유로운 인격 형성에 치명적인 장애물이라는 자신의 지적인 결론을 내면서 중학생 때부터 갖고 있던 천황에 대한 믿음을 끝낼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그 천황의 이름으로 행해진 식민지배를 반성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많은 불만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 권혁태 선생의 저작이었나? 마루야마 마사오가 조선에 대해 회고한 부분이 있다. 그에게는 조선보다도 "군대"에서의 폭력적인 황민화 경험이 엄청나게 강하게 인식되었던 듯한데 조선인 상관들한테 맞았던 기억을 말한 부분이 있다. 군대에서는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차별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직 군의 계급뿐이고 그 계급은 천황에 대한 충성, 황민화에 따라 형성된 위계질서였다. 천황제에 충성한다면 조선인조차도 그 속에서 평등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조선인 군인들을 면회 온 가족들에 대해 회고하는데 조선인 가족들이 "평등하게 기뻐"했다고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상당히 인상깊었던 표현이라 기억하는데 그는 그 부분이 바로 황민화 정책의 "죄"라고 말한다. 이민족인 조선인조차도 그토록 강렬하게 흡입할 정도로 천황제의 독을 맹렬했다. 요컨대 그는 일본 근대를 천황제를 축으로 살펴보면서 그 연장에서 식민지 조선을 바라보았던 것이라 생각된다. 식민지배 자체를 특별한 '죄'로 다루기보다는 천황제에의 포섭력이 이민족에까지 미칠 정도로 강렬했던, 그리하여 그것이 일본인의 자유로운 인격 형성을 근본에서부터 부정하는 요소였다는 점을 그는 더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아마 권혁태 선생의 논지도 이랬던 걸로 기억한다. 음미할만한 지점이 있다. 내 기억으로 권혁태 선생은 나카노 도시오를 인용하여 이 부분을 대단히 강하게 비판하며 마루야마 마사오의 근대론에서는 "제국주의"가 없었다고, 다시 말해서 "민족문제"가 사상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민족이 이민족으로서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평등"의 대상으로 나타나게 하는, 이민족으로서의 조선인을 일본인과 동등하고 평등하게 대하는 군대의 경험이 그에게 부정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을 "강제적 동질화"로 파악하고 있었다. 민주주의는 그러한 동질화 작용에 저항하고 그것을 막으며 개인의 내면을 지켜주는 수단이자 제도인데 일본의 근대는 그러한 민주주의로부터 이탈하면서 개인성을 말살하고 강제적 동질화를 실행하는 파시즘의 길을 걸었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그에게 제국주의라는 게 따로 존재할 이유가 없었던 이유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마루야마 마사오의 근대론에 격렬하게 반발하던 '민족주의적'인 "조센진" 손민석은 마르크스를 재구성하는 와중에 마루야마와 동일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근대국가라는 건 본래부터, 본디 "제국적"인 것이었다. 한나 아렌트적 의미에서 제국과 제국주의를 구별하자면 제국은 법, 언어 등의 보편적 제도로 다양한 복수의 이민족을 포섭할 수 있는 전근대적 시스템이고 제국주의는 국민국가에 기초해서 이민족을 탄압하고 억압하려는 근대적 현상이다. 나는 아렌트적 의미에서의 제국이 근대국가에 적용된다고 본다. 마르크스에게 있어 '제국주의'란 오히려 레닌이 말한 "자본주의 발전의 최고 단계"에 부합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레닌이 마르크스를 다시 읽으면서 제국주의 개념을 인식하게 됐고 그것이 <제국주의론>으로 이어진 듯한데 문헌적 근거는 없다. <제국주의론 노트>까지 뒤져보았지만 내가 읽은 부분을 레닌도 읽었다는 문헌적 근거를 찾지는 못해 심증만 갖고 있다. 아무튼 마르크스에게 제국주의란 자본제 사회가 이제 소멸을 향한 마지막 길을 걷는 단계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루야마 마사오보다도 마르크스가 훨씬 더 날카롭게 근대국가의 폭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기본적인 인식, 식민지를 사상해버린다고 권혁태가 격하게 반발하는 지점, 을 받아들인다. 이민족이 이민족으로 나타날 수 있게 되는, 개인의 내면을 보호하고 그 본질적 특질을 드러나게 해주는 민주주의적 시스템이 갖춰졌을 때 과연 제국주의 체제라는 게 유지될 수 있겠는가? 권혁태는 마루야마의 근대의 완성이 식민주의와 배치되지 않고 오히려 제국주의가 근대의 완성이라는 식으로 비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가 않다. 조선인이 조선인으로서 살며 천황제로부터 벗어나 있다면 그는 일본인이 될 수도 없거니와 일본국에 속해 살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권혁태의 비판은 옳은 지점이 많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오류라 생각된다. 마루야마를 비판해야 하는 지점은 메이지 유신 이래 다이쇼 시대까지의 일본 근대에 나타났던 식민지배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다는 점 자체가 아니라 반대로 일본 근대의 몰락 혹은 이탈을 식민지배와의 관련 속에서 고찰해내지 못했다는 점으로 보아야 한다.
마루야마가 비판하는 파시즘의 "강제적 동질화"는 조선인이라는 타자, 중국인이라는 타자, 유럽인이라는 타자, 미국인이라는 타자 등의 다양한 타자를 상대로 하지 않고는 이뤄질 수 없었다. 그것이 이민족인 조선인마저도 일본인으로 포섭하게 되었을 때 몰락을 예정되어 있었던 것 아닌가? 어떻게 일본 근대의 내적 논리에서 조선인의 포섭이 가능했는지를 마루야마가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비판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일본인의 내셔널리즘을 극복하는 과정이었기에 '조선인'이 차별에서 벗어나 "일본인"이 되는 "해방"이기도 했지만 일본인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과정이기도 했다. "천황에 충성하는 조선인=일본인"이란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 충성과 반역의 세계를 마루야마는 놓쳐버렸다. 일본의 몰락은 그 지점에서 찾아야 되는 것 아닐까. 사상사적으로 근대인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과정을 더 상세하게 밝혀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의 연구는 너무 "역사적"이고 "일본적"이다. 천황이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동질화하는 '죄'를 범했다면, 마루야마는 조선인에게 말을 걸지 않는 "죄"를 범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은 마루야마 마사오를 비롯한 일본의 지식인들을 단순히 식민지배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만 말고 일본인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계기를 읽어내어 우리의 근대와 비교하며 심화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일본인에게 전달되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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