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8

IJS일본리뷰 - 2023年 새해 아침, 한일공동선언을 다시 읽다

IJS일본리뷰 -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2023年 01月 11日
안보 위기로 열린 계묘년 새해 아침, 한일공동선언을 다시 읽다

계묘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IJS일본리뷰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썩 가볍지 않습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먼저 올라오는 가운 데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것으로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떡국 한 그릇 만큼 커진 노파심 때문일까요.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올해 해맞이를 여러 가지 걱정과 함께 하는 게 노파심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북한이 송구영신 행사라도 하는 듯,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초대형 방사포를 3발 발사하더 니, 1월 1일 새벽에도 다시 1발을 동해로 발사했습니다. 연말 쏘아 올린 방사포는 “당 중앙에 증정하는 초대형 방사포 성능검열을 위한 검수사격” 명목이었습니다. 그리고 새해 첫날 조선 중앙통신과 로동신문 등 북한 매체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확대회 의’를 보도하면서 핵능력 강화에 나설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한국을 ‘명백한 적’으로 적시하 고, 현 정세가 ‘전술핵무기 다량 생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각시켜주고 있다면서, “핵탄 보 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임을 선언했습니다. 동시에 핵교리도 변경하여, 핵무력이 전 쟁 억제를 위한 제1의 임무를 넘어 억제가 실패할 경우 제2의 임무를 ‘결행’할 수 있다고 강조 했습니다. 확증 보복을 넘어, 상대국이 북에 타격을 시도할 경우 “핵을 먼저 쏠 수도 있다”는 ‘비대칭 확전’을 표명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북한의 행동은 지난 12월 중순 일 본이 3개 안보 문서를 발표하고 연말에는 우리 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한 시점에 나 온 것이어서, 일련의 흐름 속에서 그 의도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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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16일, 일본에서 안보 관련 세 개 문서가 최종적으로 각의 결정되었습니다. 국가안 보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 등이 그것입니다. 국가안보전략은 9년 만에 개정된 것이고, 국가방위전략은 그동안 방위계획대강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던 문서를 대체한 것입 니다. 그 의미는 영어로 표현될 때 보다 분명해집니다. 방위계획대강은 영어로는 ‘National 
Defense Program Guidelines’로 표현되던 문서입니다. 그것이 ‘National Defense Strategy’ 가 되어 그 지위가 격상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방위력정비계획은 중기방위력정비계획으로 발표되던 문서를 대체한 것으로, 이에 따라 일본의 방위력 수준이 과거에 비해 큰 틀과 장기 적 고려 속에서 정비 증강될 전망입니다. 
  특히 주목할 내용은 ‘반격 능력’ 보유를 공식화하고, GDP 대비 1% 방위비 원칙에서 벗어나 향후 5년 동안 2% 증액을 실현한다는 것을 천명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은 2023년을 방위 력 근본적 강화의 원년으로 선언했으며, 이미 2023년 방위관계비는 6조 6천 1억 엔을 책정하 여 전년 당초 예산 대비 27.4% 증액을 확정했습니다. 이는 GDP 대비 1.2%에 해당합니다. 이 러한 방위비의 대폭 증액을 통해 갖춰야 할 방위력에는 극초음속 미사일의 개발 보유와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일본이 ‘반격 능력’ 보유를 선언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일본이 공격받기 전에 선제적으로 적 기지를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이기에 ‘반격 능력’이라는 용어 자체에 대해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반격이라는 말이 공격을 받은 다음에 이에 대항해 실시하는 행동인데 반해, 일본이 이번에 규정해 놓은 것은 공격이 임박했을 때 선제적으로 상 대방 영토 내 군사거점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겠다는 것이니, 종래대로 ‘적기지 공 격능력’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판은 이번에 일본이 보유 를 선언한 능력이 ‘반격’이 아니라 ‘공격’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안보문서 채택을 계기로 일본의 미사일 방어 태세는 질적으로 변화했 습니다. 즉 요격 중심의 ‘미사일 방어(Ballistic Missile Defense, BMD)’에서 이탈하여, 요격 과 반격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통합 방공 미사일 방어(Integrated Air Missile Defense, IAMD)’ 체제로 전환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때 반격을 ‘어떤 능력으로, 어디를 겨냥해서, 어느 시점에’ 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먼저 능력과 관련해서는 일본 국산 ‘12식 지대함 미사일’의 개량형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개 량이 완료되기 전에는 미국 순항미사일 토마호크를 도입하겠다고 합니다. 이에 더해 초음속 미사일과 고속활공 미사일 등 스탠드오프(원거리) 능력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고려되 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목표 대상과 시점입니다만, 이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 불분 명합니다. 이번 안보문서의 최대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자민당 안보론자들은 ‘적기지’에 한정하지 않고, 상대방이 공격에 ‘착수’한 시점에 반격이 가능하도록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적기지 공격’이라는 말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만, 더 큰 문제는 ‘착수’ 하는 시점을 구체적으로 확정하기 어려워, 타격 지점과 시점에 대해 자의적인 판단이 개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입니다. 자민당과 공명당은 반격 시점과 사안에 대해 개별적으로 판 단한다는 정도로 이 문제를 봉합했습니다. 일본 정부와 자민당은 안보문서에는 ‘무력행사 3 원칙’을 만족시킨 경우 반격 능력 행사가 가능하다는 원칙을 명시했고, 그래서 전수방위 원칙 이 관철되었다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해석의 여지가 매우 넓게 남아 있는 현재 상 태에서는 기지 이외의 대상에 대해, 상대방의 일격(first strike)이 발생하지 않은 시점에서의 ‘반격’이 원칙적으로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반격’의 징후는 상대방에 의해 ‘억지가 실패 한 경우’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은 1월 1일 보도를 통해, 억제가 실패 할 경우 핵무력으로 제2의 임무를 ‘결행’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제2의 임무는 방어가 아닌 다 른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지난 12월 16일 일본이 ‘반격 능력’ 보유를 선언하고 나서 1월 1일 북한이 ‘제2의 임무’를 언 급한 보름 동안, 이 지역의 안보 위기가 휘발성이 매우 높은 상태로 고조되었습니다. 그 사이 에 우리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발표되었습니다. 37쪽짜리 문서에는 한국형 인도-태평양 전략으로서 자유・평화・번영의 3대 비전과 포용・신뢰・호혜의 3대 원칙, 그리고 9개 분야의 주요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국제정치의 주 무대로 등장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관여해 나가 는 데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수준과 방법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
다. 이에 대한 충분한 숙고가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이 문서는 이 지역에서 고조되는 안보 위기를 진정시켜 평화와 번영에 기회를 주기보다는 대립의 전선을 고착화시키고 우리가 스 스로 그 전선에 설 것을 다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 전략이 적용되는 지역적 범주와 관련한 기술입니다. ‘전략’은 북태평양, 동남아시 아-아세안, 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인도양 연안 아프리카, 유럽과 중남미를 차례로 거론하여 거의 지구적인 범위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인도-태평양이 지구적인 질서 재편의 무대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에게 생소한 지리적 개념이 등장합니다. 북태평양이라는 용어입니다. 지 금까지 동북아시아로 표현되던 것을 대체한 개념인데, 여기에는 러시아가 빠져 있습니다. 그 리고 중국을 협력국가로 표현하여 이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3대 원칙에서 포용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것과도 관련하여 중국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확인하여, 한중관계를 고려한 흔적으로 해석됩니다. 다만 중국이 북태평양 국가인지 여부는 논란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명백히 북태평양 지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러시아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것 은 문제입니다. 물론 현재 진행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고려할 때, 러시아를 이 전략문 서에 자리매김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상 지역에 중국을 포함시켰다면, 적어도 ‘글로벌 중추국가의 중장기 전략’으로 발표된 구상에 러시아를 배제해서는 안 됩니다. 러시아 가 배제된 지역적 범위를 설정하고 그것을 한국형 인태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지요? 
  이는 이 전략에서 강조하는 ‘자유’의 개념과 관련해 그 문제점이 분명해집니다. 횃불을 든 손 으로 표상된 자유의 비전을 설명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투쟁과 희생을 통해 자유민주 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지켜온 대한민국은 자유로운 인태 지역을 지향한다”는 부분입니다.   일본이 구상하여 제시하고 미국이 수용하여 발전시킨 인도-태평양 전략은 ‘자유롭고 열린 (Free and Open) 지역질서’를 추구하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자유와 개방은 두 개 의 다른 개념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자유로워서 열린’, 또는 ‘열려서 자유로운’이라는 의미 를 지닌, 두 단어가 하나의 의미를 구성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자유주의 국제질 서’를 의미합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세력을 권위주의 진영으로 간주하여 그로 부터 지켜내야 할 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하기도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언급하는 것은 이 로부터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입니다. 한국형 인태전략에서 교역의 자유는 정치적 자유로 대체 되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위 문장은 한국이 러시아를 비롯한 권위주의 국가들을 상대로 자유 민주주의 진영 국가들의 전위에 서서 투쟁과 희생을 감내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힙니다. 실제 로 그런 상황이 벌어질 경우, 이는 첫 번째 지역적 범위의 문제와 관련하여, 유럽의 나토-러시 아 전선이 한반도에서 재현될 수 있어서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이미 러시아를 상대로 한 경제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의 전선은 단일대오가 아닙니 다. 세계는 가치의 게임을 하는 한편 이익의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형 인태전략이 특화 된 포괄적 전략적 협력 대상으로 설정한 동남아-아세안 국가들은 러시아 제재 전선에 참가하 지도 않았습니다. 일본이 사할린-1, 사할린-2라는 에너지 사업에서 러시아와 협력하고 있다 는 지적은 이미 새롭지 않습니다. 아직 완전히 고착화되지 않은 진영 대립의 전선에 서서 한 반도에 스스로 신냉전을 앞당기고 이에 발목이 잡혀, 인도-태평양에 펼쳐질 기회의 과실을 스스로 팽개치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문제는 ‘전략’이라는 용어 선 택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이라는 조어는 일본산(made in 
Japan)입니다. 일본 외무성은 일본이 만든 지역질서 구상이 국제사회에서 수용되었다고 하 여 일본 외교의 자부심으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2016년 아베 전 수상이 처음 사용했고, 이후 2017년과 2018년 일본 외교청서에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절이 마련되어 여기에서 정식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일본에서는 인태전략이 전략문서로 발표된 적 이 없습니다. 더구나 2019년 이후로는 이 구상에서 ‘전략’이라는 용어를 지웠습니다. 최근에 는 아예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실현한다(또는 추진한다)’고 풀어 씁니다. 전략이라는 용어에는 군사안보적 의미가 짙게 배어 있어 중국, 그리고 중국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국가들 이 이에 반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일본 정부는 일본이 지향하는 바가 자유주 의 국제질서를 유지 발전시키는 데 있으며, 이 점에서 중국과도 협력이 가능하다는 점을 반드 시 덧붙입니다. 
  본가를 자처하는 일본이 ‘전략’이라는 용어에 신중하고 관련 ‘전략문서’도 없는 인도-태평양 구상에 우리가 구태여 ‘전략’이라는 용어를 붙여 문서까지 만들어 발표하는 것이라면, 우리 정부가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에 따른 이익과 손실 계산을 거치고 이 익을 최대화하면서 손실은 최소화하는 구체적인 계획이 마련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이전 정부의 신북방정책, 신남방정책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조급증에서 나온 것이 아 니기를 믿고 싶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확인해 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대일 외교의 기조로 삼 고 있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서 그 생각의 기원이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1998년의 한일공동선언은 양국 간 외교문서로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문서로 생각합니다 만, 고전이 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공동선언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내용이 눈길을 끕니다. 
  최근 다시 읽어보면서, 그 안에 ‘자유롭고 열린’이라는 구절이 들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공 동선언에는 한국과 일본이 ‘자유롭고 열린 국제경제질서’를 유지 발전시키는 데 함께 노력하 자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 질서는 중국에게도 북한에게도 열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유롭 게 열린’ 질서였습니다. 이것이 한일공동선언의 목표 지점이었습니다. 
  ‘과거직시, 미래지향’의 한일관계는 그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서 목표 지점 으로 가는 길목에서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가치의 공유를 확인했던 것입니다. 오부치 수상이 민주주의를 이룬 한국 국민의 부단한 노력에 경의를 표한 데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전후 헌 법에 담긴 평화의 가치를 지키며 국제사회에 공헌해 온 일본의 행보를 높이 평가한 것이 서로 의 자긍심을 승인하여, 상호 존경의 기반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지금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 습니다. 출발점이 되었던 ‘과거직시, 미래지향’이 흔들리고 있고, 함께 공유했던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기초가 흔들리고, 기둥이 흔들리는데, 지붕이 제대로 올 라갈지요?

  일본의 안보 관련 3문서 채택과 한국 정부의 인태전략 발표에 북한이 방사포 발사와 핵교 리 변경으로 응수하면서, 안보 위기가 한껏 고조되는 가운데 계묘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 해 아침, 1998년 한일공동선언을 다시 읽으며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어서 다행입 니다. 그로부터 25주년을 맞이하는 2023년에 한일공동선언의 지혜가 꽃으로 피어나, 이 지역을 다시 민주주의와 평화의 기운으로 채워주기를 기원합니다.
 
서울대 일본연구소 소장 직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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