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2

손민석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묘사된 이병철+이건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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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묘사된 이병철+이건희의 모습을 보고 왜 내가 이렇게 발작을 하게 되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가장 근본적으로는 한국에서 기업사, 경영사, 기업가 연구라는 게 영웅주의를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일반적인 경영사학 연구들도 재벌 경영자의 뛰어난 부분 혹은 그의 업적의 정치사회적 배경을 밝혀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말하지 못한다. 자료가 근본적으로 부족한 건 말할 것도 없다보니 김성수를 연구하면 동아일보 관련 재단의 호의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고, 이건희를 연구하면 삼성친화적인 쪽의 호의를 구하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자료 자체가 편향성을 지녀 종합적인 연구가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건희 등의 개인의 업적, 개인의 뛰어난 능력 등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로 귀결된다. 

 이건 한국에서 정치인이든 기업가든 개인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연구들이 맞이하게 되는 오류이다. 개인을 신성시하고 영웅시하지 않는 연구를 하기 쉽지 않다. 이런 문제는 나같이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입장으로 넘어가면 더 커진다. 

어설픈 비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제하고도 노동착취와 정경유착 등으로 얼룩진 한국 재벌사를 좌파적 입장에서 어떻게 분석하고 묘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론적인 한계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동아일보 기자인 허문명이 쓴 일련의 이건희 관련 저서를 읽다가 이렇게까지 재벌 경영자를 찬양하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과연 내가 허문명 기자처럼 주변인들 인터뷰하고 자료 수집해서 쓴다고 할 때 얼마나 다르게 나올 것인가, 기껏해야 파업을 하거나 노조조직운동, 백혈병 등으로 피해를 본 노동자의 입장을 조금 반영하면서 재벌의 '황제경영'이 국가권력에 의한 노동자 탄압에 기초하고 있다는 말을 얹는 정도가 아니겠는가. 기껏 해봐야 재벌의 사회적 역할과 책무에 대한 '비평'적 입장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머리가 복잡해진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기업가야말로 자본주의적 생산을 지휘, 감독하는 산업의 "사령관"이라 말했다. 이 '사령관'들을 어떻게 분석하고 묘사해야 하는가.. 김종현의 기업가 연구들은 기업가 연구를 비교사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하는 대단히 훌륭한 연구이지만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지 못해 아쉽다. 재벌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연과 우연의 교차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제대로 된 전기를 쓴다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이건희에 관한 자료들을 계속 모으고 있는데 대부분이 다 내 기준에 미달하는 질낮은 것들이라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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