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9

자산어보, 흑산 그리고 정(丁) 브라더스 1-2 < 하광용 인문교양 기행 < Culture·People < 기사본문 - 뉴스버스(Newsverse)

자산어보, 흑산 그리고 정(丁) 브라더스 ① < 하광용 인문교양 기행 < Culture·People < 기사본문 - 뉴스버스(Newsverse)


자산어보, 흑산 그리고 정(丁) 브라더스 ①


기자명 하광용 인문교양 에세이스트
입력 2021.07.17

양재천 근처 동네에 명소가 하나 생겼습니다. 괴테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을 가진 영화관입니다. 전 너무 좋습니다. 산보하듯 발걸음 가볍게 조금만 걸으면 그곳에 도착하니 말입니다. 마치 그녀 집에 가는 젊은 베르테르처럼 즐거움을 안고 출발하게 됩니다. 이제 전처럼 예비 시간을 두고 일찍 출발하거나 마차 주차 문제로 고역을 치르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주차에 드는 삯도 세이브됩니다. 그런데 기쁜 저와는 달리 그녀는 울상입니다. 오픈 하우스 시기가 작년 역병이 성행할 때라 소리 소문 없이 문을 열어 오픈 효과를 전혀 거두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손님 수가 준 것은 다른 집도 마찬가지이니 어느 정도 차치하고서라도 말입니다. 새로 지은 집이라 그녀 집 가득 채워 놓은 예쁘고 안락한 신상과 첨단 이기를 꽤나 자랑하고팠을 텐데요.

'테넷', '미나리', '더 스파이'를 그곳에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더 스파이 전에 '자산어보(玆山魚譜)'도 보았습니다. 자산어보 개봉 당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전에 시장에 나왔던 유사 상품 '흑산(黑山)'입니다. 불과 8년 차를 두고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대작이 각각 속한 필드의 대가들에 의해 소설과 영화로 나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명세와 평판도가 톱클래스인 소설가 김훈 씨와 영화감독 이준익 씨가 이렇게 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그를 알리고 띄우고 싶었나 봅니다.

사실 그 인물은 지금까지는 그의 동생에 가려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은 위인입니다. 학창 시절 국사 교과서에 단 한 줄 정도만 기록되었으니 말입니다. 20세기까지 그랬던 그가 21세기에 들어 유명 소설가와 영화감독에 의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니 이것은 매우 잘 된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만한 자격이 있는 그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대중 문학과 예술의 힘을 실감하게 됩니다.
영화 자산어보 포스터.
김훈 장편소설 흑산

그 주인공은 바로 정약전(丁若銓)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 백과사전인 자산어보의 저자이지만 대개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의 형이라는 부가 설명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인물입니다. 그 집안 친족들이 대거 연루된 신유박해 시 동생 정약용과 함께 귀양길에 올라 전남 나주까지는 동행하고 거기서 형은 뱃길 따라 서쪽 흑산도로, 동생은 땅길 따라 동쪽 강진으로 가서 유배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후 우애 좋은 이 형제는 볼 듯 볼 듯하다가 끝내 못 보고 서로의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간 나눈 형제간 편지 문안으로 볼 때 그때 그들 정 씨의 본관인 나주에서의 이별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산(玆山)과 흑산(黑山)은 같은 의미입니다. 둘 다 검다는 뜻으로 흑산도를 둘러싼 바다 색깔이 푸르다 못해 검은빛을 뗘 멀리서 보면 섬의 산까지 검게 보여 예부터 그렇게 불렸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유학자 정약전은 흑산의 검음이 불길하다 생각해 흑산어보가 아닌 자산어보라 명명했다고 합니다. 같은 검음이라도 흑(黑)과 자(玆)의 의미가 그렇게 다른가 봅니다. 혹자는 자산어보의 자자가 검을 현이 두 개 붙어 있으므로 독음을 현으로 해서 현산어보라고 불러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참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글자 한문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표의문자보다 표음문자가 좋고 그것의 끝판왕인 우리 한글이 좋습니다. 일단 쉽고 선명하니 말입니다.

천주교 박해와 정약용 3형제

소설 흑산과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의 동생인 정약용의 이야기를 필연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도권에서 함께 살던 그들을 그곳에서 강제로 떠나게 한 조선 후기 천주교 탄압에 대한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소설 흑산에선 흑산도에서 벌어지는 정약전의 이야기와 육지에서 벌어지는 그의 친족들이 연루된 천주교 박해 이야기가 시간을 오가며 교차식 구성으로 이어집니다. 그가 자산어보를 기술하는 이야기는 비중이 낮습니다.

영화 자산어보는 추보식 구성으로 전반부에서만 천주교 박해를 다루고 나머지는 정약전의 흑산도 생활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거기서 만난 창대라는 어부와 자산어보를 기록하는 이야기가 핵심입니다. 소설 흑산에서 보이는 천주교 박해와 관련한 육지의 이야기와 소식은 더 이상 없습니다. 대신 동생 정약용과 인편과 서신을 통한 형제간의 끈끈한 교류와 감독의 사회 철학이 개입된 창대의 허구적인 이야기에 많은 장면을 할애합니다.
정약전과 창대 - 영화 자산어보 중에서

그 집안엔 이 형제 말고도 동복의 정 씨 형제가 한 명 더 있습니다. 그 둘 사이 가운데 형제로 그의 이름은 정약종(丁若鍾)입니다. 역사상 존재감으로 치면 약용, 약전, 약종 순이지만 그 역시 다른 형제들 못지않게 한 시대를 풍미한 매우 뛰어난 인물입니다. 2011년 출간된 소설 흑산의 기억이 어렴풋해졌지만 영화 자산어보를 보면서 이 걸출한 3형제를 또다시 들여다보게 됩니다.

아, 이들에겐 이복 형인 정약현이란 맏형도 있습니다. 그의 엄마가 죽어서 아버지 정재원이 정식으로 재혼해 약용 3형제를 낳은 것입니다. 약현의 사위는 신유박해를 서양에 알리려다 실패한 황사영이란 인물입니다. 그리고 약용의 매부는 우리나라 최초 영세자인 이승훈입니다. 이렇듯 약용의 정 씨 집안은 모두 서학인 천주교와 연결되어 있어 당시 화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정약용 3형제는 모두 끌려와 심문을 받습니다. 다른 신자를 불라는 것이고 그리고 천주교를 부정하는 배교를 강요받습니다. 조선의 이 시기보다 한 세기쯤 앞선 17세기 일본의 천주교 박해를 다룬 엔도 슈샤쿠의 소설 '침묵'을 영화화한 '사일런스(Silence)'가 생각나는 장면입니다. 그곳에선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판자를 밟고 지나가야 배교가 인정됐습니다. 일본이든 조선이든, 또 역사 속 어디에서든 배교를 거부한다는 것은 곧 죽음이고 그 죽음은 종교적 신념으로 죽는 것이기에 순교가 됩니다. 이때 같은 핏줄이지만 핍박을 대하는 이 3형제의 스탠스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정약전 3형제 - 영화 자산어보 중에서

강골의 둘째 약종은 배교를 강하게 거부합니다.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입니다. 영화에서 형 약전은 우물쭈물 어정쩡한 태도로 배교를 선택합니다. 반면에 막내 약용은 강하게 천주교를 거부하며 배교합니다. 실제 끌려오기 전까지 이 3인의 신앙 상태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역사 기록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완벽하진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종교는 인간의 마음에 내재한 믿음과 양심의 영역이니 말입니다. 강력한 유교 국가 조선이기에 조상에 대한 제사 실시 여부가 중요한 기준이 되긴 했습니다. 황사영의 장인인 이복형 약현은 혐의가 없다고 판명되어 화를 입지 않았습니다.

결국 약종은 순교합니다. 서양에선 주로 도끼로 뒷 목을 내리 치는데 조선에선 그 일을 망나니가 도끼 대신 칼로 했습니다. 이때 약종의 기개 서린 신앙심이 포효합니다. 엎드려 어둠의 권세가 지배하는 땅을 보고 죽을 이유가 없다 생각했는지 천주님이 계신 광명의 하늘을 보고 죽겠다며 누워서 눈을 부릅뜨며 칼을 받습니다. 스펙터클한 이 장면은 영화 자산어보와 소설 흑산 모두 동일하게 처리했습니다. 소설에선 망나니도 사람인지라 놀라고 당황했는지 한 번에 목을 자르지 못해 두 번 칼을 내리쳐 겨우 형을 완료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대단한 순교입니다. 흡사 베드로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 그의 스승인 예수와 같은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다 하며 거꾸로 매달린 것과 같은 순교라 할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도 그 이전엔 첫 닭이 울기 전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죽을 때 이런 대단한 순교로 그는 로마 바티칸의 초대 교황이 되는 영광을 안게 됩니다. 그에 버금가는 순교를 한 조선의 정약종은 지금 바티칸의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성인 반열에 올라 있으려나요? 아.. 그 아래 복자의 지위에 있군요. 언젠가 그가 성인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위대한 정(丁) 브라더스 중 존재감이 꼴찌인 약종도 형 약전이 이번에 소설과 영화를 통해 부각되었듯 언젠가 이렇게 대중 앞에 주인공으로 등장해 그의 형, 동생만큼이나 널리 알려지게 되기를 또 희망합니다. 그는 순교 전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회장을 지냈습니다.


하광용은 대학 졸업 후 광고인 한 길로만 가다가 50세가 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세상사 이때 저때, 이곳 저곳, 이것 저것, 이사람 저사람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이 많다. 박학다식한 사람은 깊이가 약하다는 편견에 저항한다. 그래서 그는 르네상스적 인간을 존경하고 지향한다. 박학과 광고는 어찌보면 ‘넓다’라는 측면에서 동일성을 지닌다. 최근 ‘지명에서 이순으로의 기행’이라는 인문교양 에세이집을 출간한 그는 태평양인문학교실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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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하광용 인문교양 에세이스트
입력 2021.07.24 


[ 하광용 인문교양 기행 ]

정약전과 정약용은 그 둘 사이에 낀 형제 정약종의 순교로 살아났습니다. 약종마저 배교했다면 매우 복잡해질 문제였는데 말입니다. 형제 중 누구라도 한 명은 죽어줘야 끝날 일이었습니다. 영화에서 3형제 중 제거할 제1 타깃은 정약용으로 나옵니다. 그를 총애했던 선왕 정조가 죽은 후 당시 정치판의 이해관계가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고귀한 집에서 자라 모두 입신양명하며 잘 나가던 3형제는 그들의 인생에 천주교와 박해가 개입되어 이렇게 하나는 죽고 둘은 귀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귀양지에 가서도 남은 두 형제인 약전과 약용의 스탠스는 또 다르게 나타납니다.

흑산도에서 정약전이 16년간 남긴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은 자산어보 한 권입니다. 어상 문순득의 오키나와, 필리핀 표류 생활을 대필한 '표해록'이란 책도 있긴 합니다만 아직은 그만한 저서로 평가되지 않고 있습니다. 강진에서 정약용이 18년간 남겼거나 작업한 유물은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1(表)2서(書)를 비롯한 많은 저서입니다. 과연 대단한 형제이고 위대한 학자들입니다. 유배지에서 세상을 한탄하며 술로 허송세월 하지 않고 그곳에서도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발자취를 남겼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남긴 저서로만 보면 형제간 차이가 있습니다.

정약전의 학문의 내공은 동생 약용에 뒤지지 않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견줄 정도로 다방면에 정통한 우리 역사의 천재 정약용이 "약전 형이 나보다 낫다"라고 평가하고, 선왕인 정조도 그의 재능을 높이 사 동생 약용보다 늦게 과거를 봐 서열이 낮은 그를 안타깝게 생각해 특진시킬 정도로 그는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그래서인가 유배 시기에도 약용은 위에 열거한 본인의 저서 서술 시 편지를 통해 형에게 학문적인 조언을 구하고 이를 적극 반영하였습니다. 이때 형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일치하면 매우 좋아했습니다. 영화 자산어보에도 보이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가 많고 내공이 깊은 정약전은 본인의 학문을 내세우는 책은 쓰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알려진 자산어보조차 세상에 이로운 책이 아니라 본인이 거주한 흑산도 주민들에게만 이로운 책입니다. 거기 거주하며 죄인인 그를 맞아준 그들에게 빚을 갚고 싶었던 것일까요? 실제 그는 거기서 사촌서당을 세워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섬 아이들에게 천자문과 소학 등의 글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점을 매우 대단하게 생각합니다. 당시 조선의 양반 유학자가 언감생심 어류도감 같은 평민과 상놈을 위한 책을 쓰다니요!자산어보. (사진=문화재청)

정약전은 왜 그랬을까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세상에 뜻이 없고 재기 의지도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닐는지요. 그리고 순교한 동생 약종에게 있는 마음의 빚이 계속 그를 따라다녀 그런 것은 아닐는지요. 물론 그는 출세 등용문인 대과거도 뒤늦게 볼만큼 세상의 출세에 그렇게 연연하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동생 약용이 채근하여 뒤늦게 치른 시험이었습니다.

정약전은 사랑하는 동생 약용을 좀 더 가까이에서 빨리 만나고파 육지에서 가까운 우이도(지금의 소흑산도)까지 이사했으나 결국 만나지 못하고 1816년 그 섬에서 눈을 감습니다. 이때 동생 약용은 형의 죽음을 크게 애통해하며 '다산시문집'에 애도사 성격의 글까지 남기게 됩니다. 처자보다도 세상에서 그를 가장 잘 알아주었던 지기였다고 칭하며 말입니다. 먼저 죽은 군주 정조와 형 정약전이 그에겐 그런 존재였습니다.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겐 때론 목숨까지도 바치는 비이성적인 존재입니다.

정약용은 형 약전과는 다른 책을 썼습니다. 위에 열거한 책들, 실사구시를 내세웠던 대표적인 실학자답게 그는 세상을 개혁하고 이롭게 하는 책들을 다산 초당에서 썼습니다. 국가의 제도, 법령, 행정, 형법, 민생, 경제, 토지, 조세 등 치국을 망라한 책들입니다. 한마디로 담론이 거대한 책들입니다. 유배생활 중이었지만 그는 그를 따르는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그 책들을 저술했습니다. 또 제 생각이 나옵니다. 혹시 정약용은 훗날의 재기를 꿈꾸며 본인의 건재함을 알리는 이런 책들을 쓰지 않았을까요? 아니어도 그 당시는 물론 역사에 그의 이름을 길게 남길 명저들이니 상관은 없지만 말입니다.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피렌체의 마키아벨리가 생각납니다. 그는 메디치 가문이 재집권하면서 파직되어 고문까지 받고 귀양살이하듯 피렌체 외곽 움막에 기거하며 남은 삶을 살게 됩니다. 그 집에서 그는 와신상담하며 위대한 역사상의 성현들과 영적인 교류를 하며 책을 한 권 저술하는데 그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군주론'입니다. 본인의 복직 요량으로 쓴 책이기에 그는 그 책을 당시 피렌체의 군주 로렌초 메디치 2세에게 보냈으나 책은 외면을 받아 끝내 원하는 관직에는 나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책은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가 지도자들의 필독서로 불멸의 고전에 올라 그의 이름과 함께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약용의 당시 심경도 그랬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누가 그의 속마음을 알겠습니까? 지극히 인간적인 하수 저의 생각입니다. 그는 형 약전이 죽고 2년 후 1818년 귀양살이가 풀려 서울로 올라옵니다. 하지만 그도 마키아벨리처럼 관직엔 나가지 않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저술 활동을 이어갑니다. 모진 세월에 18년 귀양살이를 했지만 그는 이후 18년을 더 살아 당시 나이로선 장수한 74세에 죽습니다. 긴 세월만큼이나 빛나는 그의 저서들이 자식처럼 주렁주렁 더 많이 생겨났습니다. 서울 근교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팔당 두물목, 마현이라 불린 조안면 그곳에 정약용의 생가가 있습니다. 형인 약전과 약종의 생가이기도 할 것입니다.

재미있는 영화 자산어보를 보고 소설 흑산을 떠올리다 보니 영화 상의 표현과 줄거리보다는 주인공 정약전과 그의 형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쓰게 되었네요. 보시듯 정 씨 3형제는 한 부모 밑에서 자라며 유학을 공부하고 새로운 서학을 만난 것까지는 같은 인생이었지만 박해로 인해 이후 인생은 완전히 갈렸습니다. 이렇듯 소설 흑산과 영화 자산어보는 시대적인 아픔으로 인해 보너스로 볼 것과 읽을 것도 많은 작품입니다.

그런데 영화 자산어보는 왜 흑백으로 화면 처리를 했을까요? 소설 흑산 표지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영화는 관객의 눈이 컬러에 맞춰져 있는데 말입니다. 배경이 흑산도이고 제목에 검음이 들어가 있어서 흑백영화로 나왔을까요? 그런데 이준익 감독의 이전 영화 '동주'도 흑백인 것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언젠가 컬러로 리마스터링한 자산어보를 꼭 한 번 보고 싶습니다. 검푸른 바다와 펄떡펄떡 뛰는 생물인 물고기들은 컬러로 봐야 제 맛 아니겠습니까? 실제 자산어보 저서에서 정약전이 놀랄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했던 물고기들입니다. 영화에서 정약전이 창대가 가른 홍어를 보며 신기해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 살아 움직이는 홍어 내부를 컬러로 보면 저뿐만 아니라 다른 관객들도 훨씬 더 신기해할 것 같습니다.

* 보너스입니다. 흑백 아닌 총천연색 물고기!

아래 이미지는 영국의 유명 일러스트 작가인 존 엣킨슨이 작업한 것으로 저명한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 속 캐릭터를 한 마리 물고기에 적용해 패러디했습니다. 그래서 모던 아트 어류도감이 완성됐습니다. 그의 나쁜 손이 아래와 같은 장난을, 아니 예기치 않은 명작을 탄생시켰습니다. 물고기 박사 정약전이 이 어보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요?


- 칸딘스키의 피쉬는 키네틱 아트 모빌의 대가 칼더도 연상하게 합니다.
- 폴록의 피쉬는 철사를 소재로 사용한 자코메티도 연상하게 합니다.
- 남성 소변기로 유명한 뒤샹의 피쉬는 다소 생소한데 그의 작품엔 ‘자전거 바퀴’도 있습니다.
- 워홀의 피쉬가 가장 불쌍합니다. 사망이 확실합니다. 꼬로록까지.. 뭉크의 것은 머리라도 살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 캔 피쉬는 이태리의 만초니도 연상하게 합니다. 그는 자기의 대변을 깡통에 담아 전 세계에 같은 무게의 금값으로 팔았습니다. 봉이 김선달이 혀를 내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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