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31

이은선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입장 소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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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信연구소 오늘, 21.07.31>
어제 호주거주의 페친 박세진 선생님을 통해서 다시 나의 일본관 내지는 나의 동료였던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입장 소환되었다.
2017년 여신협이 주관했던 한국재일일본여성신학포럼에서 발표했던 글뿐아니라 2019년 페북에 썼던 나의 글까지 다시 올라왔다. 놀랍고 한편 반갑기도 하다. 이 글에 대한 박유하 교수의 거친 언급이 댓글에 실렸지만 나는 별로 응대하고싶지 않고, 단지 2019년8월에 썼던 글을다시 공유하고자 한다. 곧다시 8월이다. 지금 청주 엄마에게로 가고있다. 엄마의 삶을 한편으로 고스란히 그늘지웠던 일본식민지 시절! 다시 그 기억을 가져오고 그러나 단지 미움과 회한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지금과 여기에서의 삶을 더 창조적이고 인간답게 하는 토대로 삼고싶다. 박유하 교수도같이 했으면 좋겠다.
<한국 信연구소 오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제국의 위안부'
1. 광복절도 다가오고, 얼마전 영화 <주전장>과 <김복동>도 보고하여서 다시 한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생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주제에 대한 글은 이미 여러번 썼어야 하는데 여러가지 심리적, 개인적, 학술적 요인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도 지난 2017년 2월 강정마을 <한국재일일본여성신학포럼>에서 발표했던 글,
"동아시아 역사수정주의와 평화이슈-'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에서 나름대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여러 차원의 중첩적인 성찰을 통해서 생각을 정리한 것이 있어서 오늘 다시 그것을 가져와 본다.
2. 사실 거기서 초반에 다룬 <제국의 위안부>의 박유하 교수와는 세종대에서 연구실을 나란히 하면서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인문대의 몇 안되는 또래 여교수들과 한때 모임도 같이 하면서 친밀하게 지내기도 했지만, 그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장이 점점 더 공적으로 드러나면서 개인적인 논쟁도 있었고, 관계가 소원해지다가 급기야는 아주 멀어졌다. 그런데 그녀와 내가 항상 다른 길을 갔던 것만은 아니다. 요사이 한일갈등이 첨예화되면서 독도문제 등에서 더욱 큰 역할을 하는 호사카 유지 교수가 세종대에서 소속과 임용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일문과의 그녀와 내가 함께 그 일의 해결를 위해서 나섰었다.
3. 요사이 한국의 '근대' 이해로 많은 논의들이 오가고 있다.한국에 근대가 있느냐 없느냐, 동아시아에서의 근대를 어느 시기부터로 보느냐, 서양식 근대가 아닌 '한국적' 근대, '토착적'근대가 나름대로 있었다는 등의 논의 등이다. 여기서 이 문제에 관한 입장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다. 또 다른 차원의 논의가 들어가야 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박유하 등의 입장을 한 마디로 서구 근대주의, 또는 서구 근대주의적 페미니즘의 덫에 걸린 모습이라고 보고자 한다.
4. 이들에게는 주체의 자유, 또는 개인적 자유가 최고의 가치가 되어서 자신들 위에 어떤 다른 권위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지만, 그러나 참으로 이해할 수 없게도 그녀는 근대 제국주의 국가 일본의 법은 범할 수 없는 권위로 인정하는 모습이다. 이들에게 민족이란 단지 허구적인 상상의 공동체일 뿐이고, 그래서 오늘 반일하는 한국의 모습을 주로 생명을 다한 민족주의의 한계로 보면서 세차게 비난한다. <제국의 위안부>는 그러한 입장에서 어떻게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특별히 '일본'이라는 국가의 문제이거나 또는 일본 '군대'의 문제가 아닌, 당시 세계 강대국들이 보편적으로 빠져있던 '제국주의'의 문제이던가, 또는 남성 '가부장주의'의 문제라고 희석시키고자 한다.
5. 그녀는 놀랍게도 1910년의 한일병합을 '합법적'이었다고 보고, 1965년의 한일조약의 '법적' 효력과 법적 정의를 강조한다. 이 두 조약에 대한 합법성과 적법성을 의심치 않는 것이 그녀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 근거인데, 그래서 그녀는 한국인들의 피해에 대한 요구가 "적법"한 것이 아니라거나, 일본은 단지 "도의적" 책임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러한 시각은 '민족'이나 '민족감정', '도의' 등의 의식은 전근대적 미숙으로 돌리면서도 자신은 서구 근대의 '법'이나 제국의 '헌법' 등을 절대적인 가치로 숭앙하는 모습이고, 그것은 서구 근대의 국가주의적 절대주의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그녀는 주체성을 강조하는 서구 근대적 페미니즘으로 '개인'과 '주체'로서의 위안부 피해자의 회복을 말하지만, 그녀 스스로는 다시 그 서구의 논리에 종속되어 있는 동아시아 식민지 지식인의 한 가련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이은선, "동아시아 역사수정주의와 평화이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한국여성신학> 2017 여름 제 85호, pp.23)
6. 재일한국인 3세인 정영환 교수는 그러한 <제국의 위안부>의 시각을 "피해자나 지원단체가 양보함으로써 '해결'로 이끌자고"하는, 일본 사회가 바라는 이미지와 잘 합치되는 역사수정주의의 대표적 예라고 일갈한다. 거기에는 "두 개의 역사수정주의"가 들어 있다고 한다. 즉 먼저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서구 열강들이 했던 제국주의의 연장선 상에서 보면서 그것을 불법이지 않은 행위로 보게 하려는 식민지 시대에 대한 면죄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후 일본 사회가 전쟁책임과 식민지 지배 책임을 잘 수행해 온 것으로 미화하려는 전후 일본 시대를 위한 역사수정주의라고 한다.
7. <제국의 위안부>는 오늘도 과거 일본 국가의 패악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여전히 실재하고, 또한 다시 그 국가주의의 위험성이 고개를 들고있는 때이지만 그 행위를 인류 가부장주의의 지나간 보편적인 실행으로 일반화시키고자한다. 또한 더불어서 서구적 근대주의로 더 이상의 어떤 '초월'이나 '숭고'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그 '(일본)헌법'을 들어서 그 최고의 헌법이 요구하는 국가의 일을 한 것이니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변호한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인간 삶에서 몸과 마음, 개인과 공동체, 민족과 국가, 인간과 초월, 俗과 聖 등이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不二的으로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서 서구 근대주주의 희생자가 되어있다. 서구 근대와 그 딸인 페미니즘을 열심히 배워서 인식의 주체로 서고자 했지만, 자신의 과거와 토대와 전래를 철저히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서구 근대의 '(準)식민지'가 된 모습이다. 우리가 서구 페미니즘이 아닌 한국적 페미니즘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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