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7

다시, 빛 속으로 - 소설가로 변신한 사회학자 송호근, 작가 김사량의 삶 속으로 들어가다.

다시, 빛 속으로 -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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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빛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소설가로 변신한 사회학자 송호근, 작가 김사량의 삶 속으로 들어가다.

일제강점기, 도쿄제국대학 재학 중 집필한 소설 『빛 속으로』로 일본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에 오른 천재 작가 김사량. 일본어와 한국어를 넘나들며 하층민의 삶을 기록해 나간 그의 작품에는 박경리의 역사적 울혈, 백석의 토속적 감성, 김승옥의 근대적 감각의 원형이 도처에 발견된다. 그럼에도 분단 이후 이념 대결 과정에서 그는 완전히 잊힌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데올로기의 시대, 한국문학사는 북한 인민군 종군작가로 변신한 그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엇이 그의 극적인 변신을 이끌었나? 그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빛’은 무엇인가?
그가 겪은 시대적 고통은 결국 분단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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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작가의 말 5

고향만리

태항산채 15
전투 28
취조 38
노선분열 47
의무대원 홍숙영 53
자작나무 숲 62
의무동 71
진격명령 77
회상 82
종전 방송 89
축제 93
고향만리 98
장지민 동지 102
이별예감 110
혁명 풍문 115
숙영의 절규 122
김두봉 128
신다니 도시오 140
허정숙 145
작별 152

아버지를 찾아서

김봉현 기자 161
자유실천문인협의회 169
아버지의 기억 175
김달수 182
퍼즐 189
도쿄 시절 199
《제방》 동인 206
장마 216
중앙정보부 221
정욱제 227
이서현 부장 237
강채원 247
추적 253

다시, 빛 속으로

전화 269
부산행 275
전쟁 282
미처 못 한 말 296
비밀협약 308
하동으로 319
현준식 329
다시, 빛 속으로 336
마지막 편지 341

김사량 연보 351
참고문헌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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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이미지


저자 소개 (1명)
저 : 송호근 (SONG,HO-KEUN,宋虎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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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석좌교수.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학자. 정치와 경제를 포함, 사회 현상과 사회 정책에 관한 정교한 분석으로 널리 알려진 학자이자 칼럼니스트로, 2020년까지 〈중앙일보〉에 기명칼럼을 만 17년 동안 썼다. 1956년 경북 영주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역서 『철학과 예술사회학』(1983), 학위 논문을 발전시킨 『칼 만하임의 지식사회학 연구』(1983)를 출...
펼쳐보기판사 리뷰
경계에 선 작가 김사량

일제강점기 말의 작가 김사량(金史良, 1914~1950)은 26세에 쓴 소설 『빛 속으로』로 1940년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을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는 김사량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내정했지만, 그가 ‘반도인’이라는 이유로 후보작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일본어와 한국어를 넘나들며 이루어진 그의 작품활동은 민족성, 토속성을 근간으로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지역을 넘어선 근대적 보편성을 추구했다. 작가 황석영은 그의 작품을 읽고 “조선과 일본을 넘어선 동아시아의 당대 보편성 속으로 훌쩍 넘어가 버렸다. 식민지의 ‘우물 속을 벗어난’ 젊은 루쉰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평한 바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이후 이어진 해방공간이라는 시대적 혼란은 그의 문학을, 삶을 삼켜 버렸다. 일본 황군 위문단으로 북경에 파견된 그는 일제의 억압을 벗어나고자 연안의 태항산으로 탈출하였고, 그곳에서 조선의용군 선전대에 가담하였다. 광복 후 고향 평양으로 돌아가서는 북조선예술가총연맹 간부로, 6·25전쟁 종군작가로 활동해야만 했다. 이러한 격변 속에서 김사량의 글은 이데올로기적 도구가 되어 투박하게 변해 갔으며, 전쟁으로 목숨마저 잃어야 했다. 그리고 이후 이어진 체제대결 상황에서 그의 문학은 남·북 모두에서 삭제되었다.

빛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분단 이후 무엇이 김사량의 글을 그토록 변하게 만들었는가? 혼란스러운 시대상황 속에서 그가 찾아 헤맨 ‘빛’은 무엇이었는가?” 송호근 작가는 자신이 오랫동안 품어 온, 그리고 김사량 문학 연구자들이 해석하지 못한 이러한 의문에 스스로 답하고자 주어진 자료와 사회학적 상상력을 토대로 “상상의 집을 지어 올”렸다. 문학이라는 형식을 빌려 역사적인 연구를 통해서는 접근할 수 없었던 김사량의 삶, 그리고 그가 추구한 ‘빛’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 것이다. 그는 전작 『강화도』로 소설에 입문하게 된 계기에 대하여 “객관의 세계를 떠나 소설적 상상력을 통해 지금 현실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하여 송호근 작가는 김사량으로 대표되는 당대 사람들의 정신과 육체가 체제와 이데올로기로 인하여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사회학 연구로는 묘사할 수 없었던 시대적 아픔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보다 실감나게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빛은 이데올로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을 야만으로 몰고 가는 모든 억압의 가면을 벗기는 행위가 빛이다.” 소설 속 화자를 통해 송호근 교수가 말하는 ‘빛’의 의미이다.

아버지를 찾아서

기록된 바 없는 분단 이후 김사량의 삶을 찾아 나가는 소설 속 주체는 그의 아들이다. 김사량 본인이나 제3자가 아닌 아들의 시선을 통해 그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 김사량의 아들로 대표되는 전후 세대는 ‘아버지가 없는 세대’, 즉 정신적 중추가 없는 세대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온 아버지 세대의 굴종을 부정해야 했고, 6·25전쟁에 휘말렸던 전쟁 세대의 정신적 빈곤을 거부해야 했다. 누구로 돌아가야 하는가? 누구를 정신의 버팀목으로 설정해야 하는가? 이는 20세기 한국의 정신사적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 송호근 작가의 진단이다. 결국 아들이 김사량을 찾아 나가는 과정은 김사량이 겪은 고통을 추체험하고 이해하는 작업임과 동시에 대한민국을 성장시켜 온 전후 세대의 정신적 혼란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소설을 통해 다시 오늘의 세대 또한 전후 세대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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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다시 빛 속으로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산*람 | 2018-08-03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10578208


1945년 ‘조선출신 학도병 위문단원’으로 중국에 파견된 김사량은 북경에서 연안으로 탈출하여 7월 초순 남장촌의 조선의용군 태항산 산채에 도착한다. 여기서 연안파의 여러 인물들과 의사인 홍종숙 등을 만난다. 그는 일본 유학시절 <빛 속으로>를 발표하여 1940년 일본의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가다. 일본군과 결전을 준비하던 중 해방이 되면서 북쪽으로 진군하다가 귀국하는 포로 중에 있던 옛날 학우 신다니 도시오를 본다. 홍종숙과는 정이들어 함께 탈출을 꿈꾸기도 하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귀국한다.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와 문인으로 활동하지만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출신 성분 때문에 지방을 떠돈다. 심장병이 발작하여 병원에 입원한 그는 3년 만에 홍종숙을 다시 만난다. 6.25 전쟁이 터지자 종군기자가 되어 남쪽으로 내려와 활동을 한다. 연합군에 밀려 후퇴하다가 심장병이 발작하여 강원도 원주 치악산 동굴에 낙오된다. 북으로 후퇴하던 홍종숙은 김사량을 만나자 간호할 것을 주장하지만 상부의 명령으로 그를 두고 후퇴 한다. 태항산에서 같이 활동하던 현준식이 간호를 하겠다고 남지만 소식이 끊긴다.



김사량의 아들 낭림은 할머니의 결단으로 1.4후퇴 때 집안 아저씨를 따라 남하하여 서울의 큰댁에서 자란다. 큰아버지는 일제시대 강원도의 홍천 군수를 지냈다. 그래서 서울대를 나온 4촌 형은 사법고시 보기를 포기하고 공기업에 입사하여 집을 떠나 생활한다. 낭림은 이름을 봉현으로 개명하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가 된다. 아버지의 일본 활동 내용의 기사를 신문에 싣고, 일본으로 가서 함께 활동하던 김달수와 신다니 도시오를 만나 아버지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그러나 그 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그를 정욱제 과장이 풀어준다. 그는 김사량과 태항산에서 만났던 삐요넬의 본명이다. 그가 고향에 내려와 결혼하여 살다 6.25때 인민군의 포격으로 부인과 딸을 잃고 경찰에 투신하여 중앙정보부 과장이 된 것인데....
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3 댓글 2접어보기
파워문화리뷰왜곡된 문학사의 온전함을 위해서 우리가 찾아야 할 일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나*이 | 2018-02-19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10182789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우리가 배우고 있는 것이 정말 온전한 사실인가? 6,70년대 반공의 이념 아래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한 우리들에겐 북쪽의 진실이 많이 가려져 있다. 정치나 경제 등의 실상은 그래도 그런 대로 인식할 수 있는데,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너무나 모르고 있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80년대 들어서 해금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이념과 상관이 없는 작가들과 작품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품을 우리는 읽으면서 자라지 못했다. 참으로 황당한 역사인식이다. 백석, 정지용, 임화 등 많은 시인들의 작품들이 그렇다. 그 외에도 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있으리라. 그들이 북한에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프로문학을 했다는 이유 때문에 그렇게 남쪽의 사람들에게 잊혀 져야 하는 문인들인가, 글들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다.



김사량 작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리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 글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적절하게 넘나들며 우리들에게 작가의 당대 문학에 대해 말하고 있는 글이리라. 일본에서 일어로 한국의 정서를 기록한 것은 한국문학의 범주에 넣을 수 없는 것인지? 이념의 농간 속에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자신을 잃어갔던 문인들이 쓴 글은 읽을거리가 못되는 것인지? 상황이 만들어내는 문학은 어떻게 나타나는지? 이데올로기가 문학을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 이 글은 김사량을 모델로 해서 이념에 희생된 삶을 살았던 문인들의 얘기를 들려주면서 우리들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만들고 있다.



김사량은 일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한국인의 정서와 한국의 땅 이야기를 일본어로 써서 발표하곤 했다. 그러다 회한을 느끼면서 중국으로 건너가 태항산채를 무대로 하고 활동하고 있었던 연안파로 탈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연안파들과 함께 활동을 하게 된다. 일본군과의 전투를 생생하게 경험하기도 하고 전우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부대의 문화 선전을 담당하는 작가로 활동한다. 즉 부대의 일을 기록으로 남기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활동하면서 이념과 거리가 있는 그의 습성 때문에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생활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팔로군의 진격과 때를 맞춰 연안파도 일본군과의 전투에 임할 준비를 한다. 즉 한국을 회복하기 위한 작전에 동참하는 것이다. 준비가 거의 다 되었을 때, 일본 황제가 중대발표를 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무조건 항복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다시 대기하면서 고국으로 돌아갈 꿈을 꾼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북쪽에 소련의 등을 업은 김일성이 이미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고 하는 소식을 듣는 것이다. 내가 우연히 속한 연안은 공산당 노선을 따르고, 동북항일연군은 소련 노선을 추종하고, 임시정부와 광복군은 미국에 의존하는 편인데, 일본이 물러간 빈 공간에서 일어날 권력 투쟁과 노선 대립이 불을 보듯 뻔했다. 인민인가, 계급인가, 아니면 민족인가?(p54) 이 내용은 독립이 되었을 당시의 정황을 혼란스럽게 인식하고 있는 주인공의 마음이다. 그리고 1945년 한반도의 실상을 그대로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소리다.



해방 후 연안파에 소속되어 있던 그들은 일반인들을 대동하고 귀국길에 오른다. 귀국길에 김사량은 돌아가서의 일이 암담하다. 자본가에 속하는 자신이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일본에서 행한 문학 활동이 발목을 잡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런 가운데 태행산에서부터 자신을 많이 따랐던 의무대원 홍숙영이 그런 기운을 느끼고 자신과 도망을 치자고 한다, 하지만 그럴 기회도 잃고 그들은 평양으로 들어와 이별을 한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말이 있다. 모든 일을 자신의 잣대로 바라보는 일을 일컫는다. 일제는 자신들이 행하는 일에 늘 정당성을 부여해 왔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도, 나라를 빼앗는 일에도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고 있다. 가령 1938년 남경 침공 때에는 무려 30만 명의 죄 없는 시민들이 죽창에 찔려 죽었다. 시체가 산을 이뤘다. 교토대 교수 스즈키 시게타카는 그 소식을 접하고 조금 당황한 나머지 ‘근대의 초극’이라는 괴상한 개념을 고안했다. 근대에 갇힌 영미를 넘어, 일본정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문화, 역사, 윤리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정당화했다. 정말 웃기는 일이었다. 지식인의 반역이 그런 무서운 합리화를 낳는다는 사실에 사량은 치를 떨었다.(p64) 이처럼 황당한 말들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리를 펴는 것이다.



해방 공간은 즐거움이었다. 주체의 시간이었다. 적이 사라지자 산채를 지배하던 적멸의 규칙도 유효성을 잃었다. 적멸을 대체해 주체를 구축할 새로운 원리가 필요했다.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낯선 요청의 시간이었다. 시간의 운영, 시대의 운영을 이제 당신 스스로 해야 한다는 요청를 받아들었다. 축제의 시간이 물러가자 망망대해에 떠있는 듯한 신생함이 몰려왔다(p94) 지도자들이 느끼는 새로움, 암담함이었을 것이다. 일제 타도라는 지표를 잃어버리고 난 다음, 새롭게 일어날 것들에 대한 찾음의 시간은 또한 새로운 전쟁이었으리라. 그것이 이렇게 신생함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신생함을 다른 말로 하면 막막함이 되리라. 미지의 내일에 대해, 그것도 알 수 없는 공산주의 세계에 대해 인식하는 일은 주체로 주어진 일에 대한 보상으로 보면 되리라.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일이리라.



김사량이 한국으로 들어오고는 소식이 두절된다. 그러면서 동아일보 기자 김봉현을 통해서 얘기가 진행되어 간다. 김봉현은 김사량의 아들로 가족 중 혼자 월남하여 백모에게 얹혀 살아가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작품을 소개하는 글을 신문에 실었다가 중정에 잡혀가 곤욕을 당한다. 많은 고통을 겪고 그곳에서 아버지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서 살아서 나온다. 그 뒤 그는 말을 아낀다. 하지만 봉현은 아버지의 흔적을 쫓고, 아버지의 전쟁 중의 작품들이 이해가 되지 않아 왜 그런 작품을 썼는지 알고자 한다. 공산당을 찬양하고 김일성을 찬양하는 글들을 말이다. 그래서 결국 일본에 가서 아버지의 친구를 만난다. 그에게 아버지의 유품을 받고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부산에 살고 있는 홍숙영을 만난다. 홍숙영이 아버지를 지킨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사의 마음을 지닌다. 또한 홍천에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킨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태항산채에서부터 아버지와 함께한 현준식이다. 현준식은 여수순천 사건 때 공산당으로 몰려 은둔해 숨어살고 있다. 그를 찾은 봉현은 아버지의 마지막을 듣는다. 홍천의 어느 마을 이장 댁으로 갔고, 이장이 돌보아 주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홍숙영, 함께하는 기자 강채원과 함께 3명이 홍천을 찾는다. 그곳에서 그들은 김사량의 마지막을 듣고, 무덤까지 확인한다.



김사량은 일본에서도 저명한 문학상을 탄 능력 있는 작가였다. 그것이 우리들에게 인지되지 못한 채 지금까지 흘러온 것은 우리 문학사에도 불행한 일이다. 많은 김사량이 이렇게 매장된 한국 문단, 어찌 온전한 문단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오늘의 문단이 이렇게 폐쇄적이 되고 많은 논란을 낳고 있는 것도 이런 닫힌 흐름이 문제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파를 만들고 다른 파는 죽이는 일련의 행동이 일어나고 있는 사회라면 그것은 병이 깊어도 많이 깊은 상황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조선인 작가 중 가장 뛰어난 문제를 보였던 김사량은 일본어로 쓰면서도 조선의 민족적 비애를 서정적, 감성적으로 담아내는데 탁월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국 문단과 평단에서는 김사량이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로,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평양을 근거지로 활동했다는 이유에서 한국문학사에 편입시키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p166) 이것은 확실히 문제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고 있는데, 다른 언어로 써졌다고 해서 우리 문학에 편입하기를 주저하는 풍토, 확실히 개선되어야 한다.



또한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예술을 목적으로만 사용했다. 개인적인 인간의 정서는 용납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감성적인 글을 쓰면서 사회적인 문제를 들춰낸 그의 성향이 적응되리라고 보는 일은 마땅치 않다. 그게 선생님의 당연한 장벽이었어요. 선생님은 날이 가면 좀 사정이 나아질 거라고 했지만, 결국 서로 충돌하는 예술성 개념을 어찌할 수 없었던 거지요. 우리 같은 의사와는 달리 세상을 보는 시선과 가치관을 몽땅 바꿔야 가능했던 일 아니겠어요? 그런 장벽에 부딪히자 작품은 점점 선전용으로 변해 갔고요. 그걸 선생님은 참을 수 없었던 거지요. 끌려갔던 거겠지요. 정권의 요구에 호응하지 않으면 가족 생계가 위태로워지는 상황에서 자신을 희생하자고 결심하지 않았겠어요?(p304) 그리고 사회적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죽이고, 자포자기하고 삶을 살아간 것이다. 그의 그런 선정용 글들은 문학도 아니고 예술이라고도 할 수가 없다. 이런 일들이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상인 것이다. 봉현은 아버지가 전쟁 중 왜 그런 문학 같지도 않은 북한 찬양의 글을 썼는가? 이해를 한다. 가족들을 살리기 위함이 아닌가



글을 읽으면서 아픈 우리들의 과거사의 일부분을 보는 듯했다. 이제는 이런 일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물리적인 분단도 서러움인데, 정신적으로까지 나눠져야 하는 일들, 가슴 아픈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또 북한의 경우, 예술까지도 집단의 이기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쓸쓸함을 금할 길이 없다. 잘 읽었다. 기억에 많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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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다시, 빛 속으로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산*람 | 2018-02-16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10178320


다시, 빛 속으로

김사량을 찾아서

송호근

나남/2018.2.10.

sanbaram



1945년 ‘조선출신 학도병 위문단원’으로 중국에 파견된 김사량은 북경에서 연안으로 탈출하여 7월 초순 남장촌의 조선의용군 태항산 산채에 도착한다. 여기서 연안파의 여러 인물들과 의사인 홍종숙 등을 만난다. 그는 일본 유학시절 <빛 속으로>를 발표하여 1940년 일본의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가다. 일본군과 결전을 준비하던 중 해방이 되면서 북쪽으로 진군하다가 귀국하는 포로 중에 있던 옛날 학우 신다니 도시오를 본다. 홍종숙과는 정이들어 함께 탈출을 꿈꾸기도 하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귀국한다.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와 문인으로 활동하지만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출신 성분 때문에 지방을 떠돈다. 심장병이 발작하여 병원에 입원한 그는 3년 만에 홍종숙을 다시 만난다. 6.25 전쟁이 터지자 종군기자가 되어 남쪽으로 내려와 활동을 한다. 연합군에 밀려 후퇴하다가 심장병이 발작하여 강원도 원주 치악산 동굴에 낙오된다. 북으로 후퇴하던 홍종숙은 김사량을 만나자 간호할 것을 주장하지만 상부의 명령으로 그를 두고 후퇴 한다. 태항산에서 같이 활동하던 현준식이 간호를 하겠다고 남지만 소식이 끊긴다.



김사량의 아들 낭림은 할머니의 결단으로 1.4후퇴 때 집안 아저씨를 따라 남하하여 서울의 큰댁에서 자란다. 큰아버지는 일제시대 강원도의 홍천 군수를 지냈다. 그래서 서울대를 나온 4촌 형은 사법고시 보기를 포기하고 공기업에 입사하여 집을 떠나 생활한다. 낭림은 이름을 봉현으로 개명하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가 된다. 아버지의 일본 활동 내용의 기사를 신문에 싣고, 일본으로 가서 함께 활동하던 김달수와 신다니 도시오를 만나 아버지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그러나 그 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그를 정욱제 과장이 풀어준다. 그는 김사량과 태항산에서 만났던 삐요넬의 본명이다. 그가 고향에 내려와 결혼하여 살다 6.25때 인민군의 포격으로 부인과 딸을 잃고 경찰에 투신하여 중앙정보부 과장이 된 것이다.



홍종숙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부산으로 내려가 아버지와의 관계와 북한에서 있었던 일을 듣게 되어 아버지에 대한 퍼즐을 완성해 간다. 그 때 정욱제 과장으로부터 김사량과 마지막으로 같이 있었던 현준식의 소재를 알게 된다. 현준식을 만나 아버지의 마지막 행선지인 홍천군 화전민 마을을 찾아갈 때 홍종숙과 동행한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무덤을 찾게 되고 마지막으로 남긴 아버지의 편지를 받는다.



“기사에는 페이소스가 있어야 한다. 기사 작성 6하 원칙은 팩트의 육각 모서리를 정확히 사실적으로 짚는 것을 강조하지만, 6하 원칙에 충실하면 기사는 무미건조해지고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독자들은 오히려 사건의 배경에 놓인 인간적인 스토리를 선호한다. 그러나 독자들의 선호를 따라가다 보면 그 기사는 추측기사가 되거나 기사의 생명인 정확성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p.271)” 그래서 신참기사는 넘치는 정의감과 기개로 기사를 망치고, 중견기자는 페이소스로 분별력을 읽어 기사를 망친다고 한다. 바둑의 격언에 초보는 패감을 남김없이 쓰다 지고 고수는 아끼다 진다는 말이 있듯, 글쓰기도 사실성과 흥미의 균형이 잡히지 않으면 제 구실을 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생명의 마지막 심지가 꺼지고 있소. 역사가 나를 밀어낸 것이오. 한 사람의 미약한 작가가 파도처럼 밀려드는 물결을 감당하기엔 벅찼소. 소리의 고난이 후손들에게 반복되지 않을 것을 바랄 뿐이오. 빛은 없었소. 우리의 생애엔, 한 줄기 빛을 보았던 이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소. 그러나 여기서 생과 작별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오.(p.348)” 이렇게 자신의 일생을 회상하면서도 혹시 남하하거는 언젠가 나의 무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어제 저녁 별빛이 유난히 찬란했소. 새벽에 별빛이 스러지면 내가 왔다 간 줄 아시오.’라고 생명의 빛이 꺼져가는 심정을 편지에 담아 놓고 세상을 떠난다. 불행한 조국의 역사 속에서 한 인간이 방황하면서 일생을 마친 기록을 통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저자 송호근은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춘천 한림대를 거쳐 1994년부터 서울대 사회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학, 사회비평 관련 저서 25권과 논문 다수를 저술했으며, 소설 <강화도>를 썼다. 2017년 제10회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다시, 빛 속으로>는 “1945년 봄 북경에서 연안으로 탈출하면서 김사량이 쓴 <노마만리(駑馬萬里)>의 후속편에서 시작한다. 1부 제목이 <고향만리>다. 평양으로 돌아온 후 6.25전쟁에서 전사할 때까지 그의 행적은 단편적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 단편적 사실을 골격으로 상상의 집을 지어 올렸다. <빛 속으로>의 작가를 원점에서 생각하고 싶었다. 식민지 후손인 우리에게, 분단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빛’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그래서 제목이 <다시, 빛 속으로>다.(p.7)”라고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소설의 제목에 관한 사연을 말한다.



(이 리뷰는 나남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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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정체성을 찾아 비극의 역사를 역주행하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c********2 | 2018-02-13

동계올림픽으로 나라가 시끌벅적하다.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을 비롯해 몰려온 많은 '북한 사람들'이 연일 화제의 중심에 있다.어린 시절 '이산가족 찾기'에서 보았던 이들은 형제이고,아버지고, 한핏줄이었는데그들이 부둥켜 안고 우는 것을 보고 같이 눈물도 흘렸었는데이제 북한 외교사절과 응원단은 마치 먼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처럼 구경거리에 불과하다."남남...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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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역사의 격류를 헤치고 ‘빛’ 속으로 [다시, 빛 속으로]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겸*기 | 2018-02-12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10170284







이번에 나온 <다시, 빛 속으로>는 <강화도>에 이은 송호근 교수의 두 번째 소설이다.



<강화도>에서 외세의 밀려들어오는 힘과 조정 내부의 밀어내려는 힘의 경계에서 갈등했던 주인공 신헌처럼, <다시, 빛 속으로>의 주인공 김사량도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이데올로기의 압박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김사량은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그는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1931년 평양에서 학생시위에 참여하다 퇴학처분을 받고, 형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밀항한다.



일본에서 도쿄제국대학까지 졸업한 그는 <빛 속으로>라는 작품으로 일본문학의 최고봉인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당시 문단에서 가장 권위있는 잡지이던 <문예춘추>에 이 작품을 실기도 했다.



소설은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의 정서를 일본어로 써야 했던 김사량의 당시 내면적 갈등을 보여준다.



사량이 썼던 소재는 모두 조선인의 것이었는데, 감성도 정서도 얘깃거리도 모두 조선의 체험 조각들이었는데, 일본어로 표현한 그것은 일본문학인가, 조선문학인가? p.84~85



이후 그는 일본을 떠나 중국에서 항일의용대 종군기자로 참여하였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내부에서도 곱지 않다.



김두봉 주석의 칼날은 사량을 향하고 있었다. 너는 조선의 식민지적 현실을 내지어로 재현해 일본 문단에 상정함으로써 내지문학의 완숙함을 갈망하는 내지 문인들의 아량을 만족시켜 준 것 외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공격이었다. p.137



이에 대한 김사량의 답변은 군색하기 짝이 없지만, 그의 고민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선에서는 철저한 저항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렇다고 일제에 타협한 것은 아니었어요. 붓을 꺾지 않는 한 더러 타협할 수밖에 없었지만요. 그래서 빛을 찾아 여기에 온 것이지요 p.139






해방이 되어 고국으로 향하는 김사량의 불안한 내면은 소설 속에서 반복적으로 묘사된다.



내가 우연히 속한 연안은 중국 공산당 노선을 따르고, 동북항 일연군은 소련 노선을 추종하고, 임시정부와 광복군은 미국에 의존하는 편인데, 일본이 물러간 빈 공간에서 일어날 권력투쟁과 노선대립이 불을 보듯 뻔했다. 인민인가, 계급인가, 아니면 민족인가? p.54



축제의 시간이 물러가자 망망대해에 떠 있는 신생(新生)함이 몰려왔다. p.94



독립이면 족했다. 일본의 존재가 소멸된 곳이면 족했다. 그런데 이제 전혀 다른 종류의 포격소리가 개시되는 듯했다. p.107



문학과 예술이 새 시대 건설에 앞장서야 한다는 장지민의 말에서 어떤 결기와 동시에 강압이 느껴졌다. 그 강압은 일제가 강제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인가?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지 못한다는 말인가? 문학과 예술이 구국전선의 모범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말이 느릿하게 전진하는 행렬의 자유를 가로막았다. p.108



사량은 헷갈렸다. 자신을 가두는 현실적 압박과 이념의 덫에서 탈출했는데, 이제 다시 새로운 유형의 철창으로 귀환하고 있는 것인가? 사량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p.109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항일의용대 종군기자로 활약하다 해방을 맞이하여 고국으로 돌아가는 김사량을 보여주고, 이내 시대를 건너뛰어 유신시절의 그의 아들 김봉현이 아버지가 북한의 이데올로기 선전의 도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애초에 공산주의에 관심이 없던 김사량이 북한의 선전 도구가 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해방공간의 사람들은 북한과 남한을 단지 그들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선택한 것일까?



1948년 38도선이 갑자기 봉쇄될 줄은 당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을까?



송호근 교수는 시대의 이데올로기라는 거대한 조류에 휩쓸릴 수 밖에 없었던 한 인간, 김사량을 돌아보며 진정한 빛이란 억압의 가면을 벗기는 행위라고 말한다.



20세기는 이데올로기의 시대다. 역사의 고삐를 장악하려는 각종 이데올로기가 충돌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겪어야 했다. 수천만 명의 생명이 전쟁터에서 희생됐다. 그들은 이성적 판단의 희생자인가? 아니다. 역사는 절대적 진리의 길을 따라 운행하지 않는다. 절대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해석의 관점이 달라질 뿐이다. 관점의 차이가 개별 인간의 죽고 사는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야만이다. p.338



빛은 이데올로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을 야만으로 몰고 가는 모든 억압의 가면을 벗기는 행위가 빛이다. 전쟁터에서 빛을 찾는 데에 절망한 아버지는 젊은 시절 빛을 찾아 헤맸던 그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p.338



일제시대, 해방공간에서 김사량이 했던 고민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분단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아직도 진정한 ‘빛’ 속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극한 대립 속에 한 인간은 미약할 뿐이다.



저자의 말처럼 역사가 현실을 망가뜨려도 그에 휘둘리지 않을 때 비로서 우리는 ‘빛’ 속으로 한발짝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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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작가 김사량의 삶을 추적하면서 ‘현대사의 블랙박스‘라 할 수 있는 ‘일제강점기-해방공간-6.25전쟁‘을 다이내믹하게 그려낸 소설입니다. 남한의 김봉현 기자가 북한의 아버지 김사량 작가의 삶을 통해 분단의 역사를 알아가는 스토리는 남북단일팀이 구성된 오늘날의 현실에서 깊이 와닿네요. 
Ljy1004 2018-02-1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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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량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이번에 처음 들었습니다. 결코 가볍지 않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잊혀지지 않도록 다시 조명한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역시 학자? 라는 느낌의 글이었습니다. 
정지윤 2018-02-19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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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과 함께 호흡하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어지럽게 흔들리던 한국 역사가 짧은 소설 속에 묵직하게 담겨더군요. 후반부로 갈수록 역사에서 사라진 것이 김사량 개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한 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거리가 많아 좋았습니다. 
책너구리 2018-02-1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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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다시, 빛 속으로 새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문학을 파고들어 읽은 적이 없기에
당대 다른 작가들에 비해 처음 들어보는 것과 다름없는
김사량.
북으로 갔다하여 한동안 남쪽에서는 연구가 힘들었다던
백석같은 분에 비하면 더더욱 덜 알려진 사람.

소설로 재탄생한 김사량은
남쪽에서는 월북을 한 작가, 6.25당시 종군작가였어서 금기시 되었고
북에서는 비김일성계에,
소설에서 그려지는 바와 같이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문학을 내면적으로 견디지 못한데다가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참혹함 속에서
지병인 심장병으로 전쟁 당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설은, 연안파들이 일본의 항복과 함께
중국대륙을 가로질러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으로부터
김사량의 아들인 신문기자 김봉현이
(실제 김사량은 두 자녀를 둔 것으로 추정만 됨)
아버지의 자취와 흔적을 찾는 과정이 큰 얼개인데,
마지막 장을 덮으며 느낀 점은
한권 분량의 장편보다는, 스케일을 키우고 디테일을 더 살려서
대하소설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개성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들의 생이 너무 축약되어서 아쉬운 마음이랄까?

김사량의 <빛 속으로>는 일본어로 쓰여져서
아쿠타가와상 후보로 선정되었다는데
국내에 소개된 김사량의 작품들을 찾아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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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언어 2018-10-30 공감(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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