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4

Park Yuha [역사와 마주하기] 알라딘 독자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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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역사와 마주하기> 알라딘 독자서평(2022/09/19)

“한국에서 박유하만큼 오독되어지는 저자가 또 있을까?”
어떤 젊은 여성이 서평을 썼다고 알려줬다. 
여성이라서, 또 젊은이의 글이어서 더 기뻤던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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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기억에 대한 문제제기와 서발턴의 진정한 목소리 듣기

 『제국의 위안부』이후로 박유하의 저서를 죽 따라 읽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점이 있다. 한국에서 박유하만큼 오독되어지는 저자가 또 있을까? 라는 것. 

저자는 
1) 위안부의 강제 연행을 부정한 적도 없고, 
2) 위안부를 매춘부라고만 매도하지도 않았으며, (저자는 매춘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갖는 것 또한 문제 삼는다), 
3) 위안부 할머니들의 경험을 고통스럽지 않은 것으로 얘기한 적도 없다. 

다만, 저자는 '강제로 끌려가 성적으로, 육체적으로 고문 받다시피 했던 어린 소녀들'에 대한 한국의 '지배적인' 공적 기억에 문제를 제기하고 지난 30년 간의 위안부 운동의 방식, 즉 우리가 끊임없이 '할머니 투사'를 만들어온 운동의 역사를 지적했을 뿐이다.
 각종 단체가 관여하고 정치적, 법적인 흐름으로 문제가 연결되어지면서, 위안부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위안부는 하나의 일련된 피해자상이 되었고, 할머니들의 개별적인 진짜 목소리는 지워져 갔다. 이따금 한 번쯤은 생각해 보자. 우리는 진정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우리들이 원하는 목소리만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가? 

  저자가 여러 저서를 통해 늘 지적하듯, 피해자도 가해자도 하나의 얼굴만을 하고 있지 않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다층적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우리의 공적 기억'에 어긋나는 기억에 대해 지독한 반감을 가진다. 착한 일본군이나 일본을 용서하고 싶은 위안부가 왜 없겠는가? 
  우리는 거대한 역사의 한 줄이기 이전에 한 명의 개인이다. 피해자는 모두 순결하지 않을 수 있으며, 각자의 표정과 의지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순결성의 정도와, 표정과 의지의 다름이 그녀들의 고통을 거세해 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꾸준히 말해왔다. (나는 저자의 섬세한 의견을 수용하기에 세상이 지나치게 거칠고 투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또한 종종 한다.)  

 저자는『제국의 위안부』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역사를 잊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하다. 제국주의와 냉전으로 인한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식민지의 '복잡성'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만든 타자에 대한 적대를 넘어설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기지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현실의 것으로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나온 『역사와 마주하기』는 그가 과거에 썼던 이 문장처럼, '역사를 다른 방식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기존의 책에서 다뤄왔던 위안부 문제에 더해, 징용과 한일병합에 관해 어떻게 해야 '평화적 상상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논의한다.
  박유하의 저서를 처음 읽는 사람이라면 책에 나오는 정보들이 생소하고, 정보량이 많아 한 번에 휘몰아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필자는 다음의 문장을 마음 속에 전제하고 읽어보기를 권유한다. "우리 내부의 어둠을 인정하기, 적의 상처를 들여다 보기." 그렇지 않다면 전작을 하나씩 읽어본 뒤에 신작을 보는 것도 추천한다. 후기의 끝은 책에 등장했던 저자의 한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자신의 피해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피해를 통해서 다른 나라 국민들의 피해에 대한 공감력을 키울 수 있는, 그런 상상력을 한일 양국의 아이들이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의 모든 고통은 개인적이며 그 크기는 일률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기에, 오히려 상상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아픔의 크기만큼 타인의 아픔에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늘어나기를."
  저자의 섬세한 필치와 따스한 마음이 여기저기 녹아 있어 인문사회서를 읽으며 오랜만에 뭉클했다. 좋은 저서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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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일본 정부의 입장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끝났다면 ‘무엇이‘ 끝났을까. 징용 피해자들의 아픔을 일본은 어디까지 이해했을까.- P84

자국의 피해의 비참함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피해를 통해서 다른 나라 국민들의 피해에 대한 공감력을 키울 수 있는, 그런 상상력을 한일 양국의 아이들이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의 모든 고통은 개인적이며 그 크기는 일률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기에, 오히려 상상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아픔의 크기만큼 타인의 아픔에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늘어나기를.- P90

그런 연구·운동에서의 개별성 은폐가 피해자의 성화聖化와 동시에 소외감을 초래한 것은 당연한 전개였다. 대등하고 평등해야 할 민주화를 이끌어온 정의의식이, 대변자의 역할을 넘어 ‘당사자가 부재하는 당사자주의‘로 변질되고 만 것은 관계자들이 시대를 이끈 엘리트였기에 야기된 필연이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P216

일찍이 ‘성노예‘ 호칭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에도 그 이름에서 벗어나지 못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020년에 목소리를 내며 반발한 것은 저항을 묵살당해온 세월에 반기를 든 것일 터이다.- P216

불화와 적대를 이끄는 모든 사고들은 자신과 타자 모두를 붕괴시킨다.- P218

불신을 심는 언어들에 휘둘리면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상식‘이자 정치 진영에 얽매이지 말고 역사와 마주해야 한다. 정치화된 담론에 휘둘리지 않고 구조를 넘어서는 개인이 늘어나면 평화는 찾아올 수 있다. 서양발 제국과 냉전으로 상처입은 아시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낸 평화를 차세대에게 건내줄 수 있는 그날을 함께 기다리고 싶다.- P236

16 comments
Park Yuha
https://blog.aladin.co.kr/lexapro/13943444
[알라딘서재]공적 기억에 대한 문제제기와 서발턴의 진정한 목소리 듣기
BLOG.ALADIN.CO.KR
[알라딘서재]공적 기억에 대한 문제제기와 서발턴의 진정한 목소리 듣기
[알라딘서재]공적 기억에 대한 문제제기와 서발턴의 진정한 목소리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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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 Hwan Park
두 책 중 어느 책이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어느 위안부와 어느 일본군의 개인적 친분 관계에 대해서 매우 자세히 쓰신 부분을 읽으면서 "개인적 경험일 뿐인데 이걸 이렇게 굳이 자세히 소개할 필요가 있나? 반일 성향의 사람들이 트집잡기 딱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모든 인간은 다면적이고, 평면적인 사람은 없으므로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영웅, 악마로 묘사하는 걸 싫어하는 편이라 그런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국민학교 1-2학년 때 들은 할머니의 인민군 경험담이었습니다. 피난 갔다 집에 와보니 퇴각중이던 인민군들이 쉬고 있었고, 우리 집이니 나가달라고 했더니 폐 끼쳐 정말 죄송하다면서 너무 배가 고프니 밥 한끼만 차려주시면 출발하겠다고 해서 밥을 차려주니 잘 먹고 고맙다고 인사하며 나갔다네요. 당시까지 제가 알던 아무에게나 총쏘고 죽이는 인민군의 모습이 아니어서 솔직히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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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박성환 네. 그런 개인의 체험과 기억이 너무 중요하지요. 동시에, 똑같은 그 사람이 전투시엔 “아무나 총 쓰고 죽이는” 그 군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도요. 중요한 건 ‘무엇이’ 평범한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비일상 상황에선 언제든 그런 군인이 될 수도 있는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일일 듯 합니다. 
Reply2 h


Dohyung Kim
서평은 아니지만 저의 페북 포스팅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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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세종대 명예 교수는 한일 양국의 현안으로 떠오른 징용피해자 문제에 대해 법지상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일부터 시작하자는 해법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우선 유골반환, 위령비 사업 등 협력사업부처 시작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그러다보면 조선인 징용이란 결국 국가의 동원이기도 한 사실을 일본 정부와 국민들이 다시 한번 기억하는 시간이 될 것이고, 징용자의 고통을 1990년대 위안부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일본인들이 이해하는 게 가능할 것이라고 박 교수는 말한다.

"위안부단체는 지금도 '법적해결'을 주장한다. 그에 비하면 징용 피해자 문제는 아직 '법 지상주의'를 정부 압박을 위한 도구로 삼고 있기 때문에 더 유연해보인다. 구체적인 방법은 논의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일도 되지 않는다."(박유하 교수의 신간 '역사와 마주하기' 93쪽)

"재판을 지원해온 한일 대리인들은 '양국의 사법이 개인청구권을 인정했다'면서 '사법부'의 권위를 강조해왔다. 구소련과 미국에 대한 일본국민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둘러싼 일본국가의 주장이 '피해자의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는 것이므로 한국인의 청구권도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개인청구권'에 집착하도록 만드는 '법적' 사고방식에 의한다면 같은 논리로 한국에 남아 있는 일본인의 재산을 둘러싼 개인청구권도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같은 책 82쪽)

"징용피해자 문제는신탁금, 연금기록, 적금통장 등을 확인하는 작업과 함께 유골반환, 위령비 사업 등을 둘러싼 협력에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소송을 하려 해도 증거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보상에 관해서도 그런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답이 나올 것이다.
시간을 들여 그런 과정을 수행한다면 그 자체로 조선인 징용이란 국가의 동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일본 정부와 국민들이 다시 한번 기억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징용된 사람들의 고통을,1990년대 위안부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일본 국민들이 이해하게 되는 것도 가능하다."(같은 책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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