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25

[알라딘]화산도 1~12 세트 - 전12권

[알라딘]화산도 1~12 세트 - 전12권

원고지 2만 2천 장, 20여 년에 걸친 집필 끝에 완성된 재일조선인작가 김석범의 노작으로, 연재 중이었던 1983년에 아사히신문 오사라기 지로상을 수상했고, 단행본은 1998년 마이니치 예술상을 수상했다. 소설의 전반부는 80년대 후반에 우리말로 옮겨진 바 있으나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화산도>의 진면목을 궁금해 했던 독자들의 오랜 기다림 끝에, 동국대 일본학연구소 소장인 김환기 교수의 번역으로 최초 완역판 <화산도>가 출간됐다.

<화산도>는 제주 4.3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인 1948년 2월 말부터 이듬해인 1949년 6월 제주 빨치산들의 무장봉기가 완전히 진압될 때까지의 해방직후 혼란스러운 정국을 배경으로 한다. 작품의 주요 무대는 제주도가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서울과 목포뿐만 아니라 오사카와 교토, 도쿄도 비중 있게 등장한다. 빨치산들의 무장투쟁 자금의 유입 경로, 재일동포들의 실상과 일본공산당과의 관계 등이 일본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일각에 알려진 것과 달리 김석범의 <화산도>는 제주의 문제만을 다루지 않았으며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좇는 작품은 더더욱 아니다. 이 소설은 역사의 격랑에 휩쓸린 민중의 슬픈 역사를 애도하는 장중한 진혼곡이자, 야만적인 폭력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존엄 평화를 외치는 작품이다.
조선총독부의 일장기 대신 내걸린 서울 미군정청의 성조기는 내려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왜 저기에 성조기 깃대가 계속 서 있는 것일까? 저건 태극기가 아니고 성조기가 틀림없나? 아니, 성조기로 보이는 건 내 착각일 것이라는 식의 터무니없는 비현실적인 감각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_<화산도> 1

우리말이 서툰 이 노인이 국수주의와 멸공의 깃발을 치켜들고 민족과 국토를 양분하는 선거를 치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점령군 군법회의에 정하는 바에 따라 이를 사형 또는 기타의 형벌에 처한다. 이방근의 뇌리에 맥아더 포고문 제2호의 결말 분분이 떠올랐다. _<화산도> 2

난 전쟁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실제로 전쟁터에 끌려가 옥쇄를 각오한 자가 아니면, 전쟁이 얼마나 무섭고 어리석은지를 모르는 법이지요. 무엇 때문에 모두들 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뭡니까, 지금 강 선생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제주도에서 무장봉기가 시작된다, 즉 무기를 손에 들고 적과 싸운다니까, 그것도 일종의 전쟁입니다. _<화산도> 3

무장봉기…, 음, 무장봉기란 말이지…. 무장봉기는 장구벌레가 들끓는 물을 마시고, 조밥과 고구마를, 아니 조와 고구마 줄기로 죽을 쑤어 먹는 섬사람들이 일으키는 것이다. 그들은 여차할 때 들고 일어난다. 매일같이 낮잠을 자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들은 일어난다.
_<화산도> 4

해방된 지 3년, 이렇게 많은 자기 민족의 유혈과 시체를 초석으로 삼으면서 무슨 정부 수립이고 건국 축전입니까. 아니지요, 원래 괴뢰정권이라는 게 그런 식으로 만들어집니다. 해방이고 나발이고, 패전국인 일본과 독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후 민주주의 같은 것은 이 나라와는 관계없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자력으로 독립과 해방을 달성한 것이 아닙니다. _<화산도> 5

서울로 이주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본적을 제주도에서 본토로 바꾸어 자신의 고향 땅과 작별을 고하고, 유려한 서울말을 익혀서-이방근은 이에 대해 구역질을 느꼈지만- 변신한다. 제주도가 본적이어서는 ‘입신출세’에 커다란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_<화산도> 6

넌 ‘친일파’ 아버지를 둔 걸 불행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일제 때 생활을 백 퍼센트 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친일이라면 친일이 아닌 사람이 없을 게다. 이 작은 섬에서 무슨 친일이냐. 큰 악은 서울 같은 육지에 있는 게다. _<화산도> 7

산은 우리들의 해방 지구, 제주 해방의 기지이고, 미래의 조선 혁명에 있어 제주도의 근거지입니다. 그곳으로, 한라산의 품 안에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 그제야 안심이 돼요. 평지에 있으면 부자유스럽고 숨이 막혀 임무가 끝나면 서둘러 산으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_<화산도> 8

우리 제주도민은 빨갱이이고, 빨갱이는 인간이 아니니 죽여도 된다는 무책임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정부의 고관이나 현지의 토벌부대 사령관 중에는, 가솔린을 섬 전체 여기저기에 뿌리고 불을 질러 30만 도민이 전멸해도, 대한민국의 존립에는 영향이 없다고 한 놈도 있습니다. _<화산도> 9

그래, 자네의 말처럼 화평의 길은 이미 닫혀 있어. 결론부터 먼저 말하지. 산중의 게릴라 전원을 조직적으로 섬에서 탈출시키는 길…. 게릴라 토벌전이 장기화됨으로써, 적에게도 사상자가 나오기 마련이니, 탈출을 보고도 못 본 체하는, 어느 정도의 정치적 타협이 생길 여지도 있으니까.
_<화산도> 10

금고에서 권총을 꺼낸 황동성이, 필요하다…면 주겠다는 것을 거절하면서도, 만약 권총이 자신의 것이 된다면 이것이 홀로 걸어 다닐 것 같은, 순간 어디에선가 왠지 엄청난 일로 이어질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_<화산도> 11

언젠가 장래에, 네 생일과 4월 3일에 대해 이야기하겠지. 4월 3일이 결코 저주받은 날이 아니었다는 것을. 30년 후, 이 불행한 민족과 나라 위에 행복이 있을까. 아아, 형님, 저는 이틀 먼저, 4월 3일에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 그런 날이 반드시 찾아온다. _<화산도> 12

우카이 사토시 (히토쓰바시 대 교수)  
: 우리는 역사를 알고 있는가? <화산도>에서 들려오는 이 물음은, 4.3 사건에 입회할 수 없었던 작가 자신이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인 동시에, 이질적인 많은 타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타자들”에게는 일본인 독자가, 재일조선인 독자가, 그러나 또한 그 시대를 살았던, 그리고 그 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남북한 모든 민중이, 그리고 결코 이 책의 독자일 수 없는 제주도 4.3 사건 당사자인 희생자 분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너무나 이질적인 시간을 살아온, 굉장히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이 동거하는, 참으로 그런 의미에서 있을 수 없고 불가능한 ‘우리’이다. <화산도>는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지, ‘역사’와 이야기는 어떻게 다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화산도> 전권의 한국어 번역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 및 동아시아에 있어, 아마도 최대의 문화 사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카모토 아쓰시 (도쿄 이와나미서점 대표이사)  
: <화산도>가 일본 전후문학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사에 있어서도 유례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민족상잔과 내전에 이르는 비극의 한국 현대사가 일본어로 쓰여졌다는 점이다. 일본어란 일본 식민지 지배에 의해 조선인을 강요된 말이다. 김석범 선생님을 시작으로 재일(在日) 작가나 시인들은 애당초 민족 언어로 쓸지, “적”의 언어인 일본어로 쓸지 논쟁하였고, 깊은 갈등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선택에 의해 일본인은 제주도를 무대로 하는, 해방직후의 정치적 대립이나 투쟁 모습뿐만 아니라, 그곳에 살아가는 조선인의 모습-식사나 부모 자식 관계, 제사, 문화, 연애, 우정, 용기 등을 읽을 수 있었다. 한편, “4.3 사건” 그 자체를 터부시하여, 오랫동안 이야기 하는 것을 금기시했던 한국에서는 이 작품은 결코 쓸 수도, 발표할 수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의 완역 출간은 참으로 기적과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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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5년 10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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