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29

왜 자꾸 "당신 80년대에 뭐했어?"라고 묻는가? '운동권 체질'이 진보를 죽이는 이유 ④

왜 자꾸 "당신 80년대에 뭐했어?"라고 묻는가?
'운동권 체질'이 진보를 죽이는 이유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독선과 막말이 경쟁력이 되는 운동권 시장 논리
운동권 체질을 가진 사람의 기본 사고방식은 정체성(identity)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그에 따라 적과 동지를 나누는 선명한 이분법이다. 민주화 투쟁 시절엔 그런 이분법이 필요했거나 불가피한 점이 있었겠지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그런 이분법은 정치적 소통의 결정적 장애가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운동권 체질은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라고 하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체질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어떤 개인적인 이익을 탐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희생해가며 대의와 대중을 위해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것이니, ‘위계질서’나 ‘규율’을 무시하기 마련이다. 물론 운동의 종교화가 극에 이르면, 과거 운동권 학생들이 ‘전대협 의장님’을 깍듯이 모셨듯이, 퇴행적 우상화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운동권 체질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는 그간 야당에서 일어난 수많은 막말 파동만 봐도 분명해진다. 자신의 발언이 당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속마음과 충동을 무조건 내지르고 보는, 그래서 자신의 존재 증명을 확실히 하려는 사람들이 야당엔 너무 많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 운동권 출신이다. 오죽하면 박상훈이 “한국 야당은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이 지나치게 강한 형태로 퇴락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할까.
“조직화의 비용을 분담할 구조도, 체계도 없는 정당이 되었다. 그저 의원실로 나뉘어 개인의 소왕국을 형성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들에게 의원직이란 독점적 영업권을 가진 자영업에 가깝다. 정당을 통해 정치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누가 더 언론 노출에 성공할 것인가 하는 개인 경쟁만 있다. 민주주의 역사를 통틀어, 지금처럼 사인화된 정치가 있었을까. 18세기 영국의 명사정당도 이보다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치가 지금 같아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보살피는 민주적 효과는 창출될 수 없다.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도 없고 경제를 좋게 바꿀 수도 없다.”1
야권의 잘 나가는 논객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대부분 운동권 출신이거나 그 언저리에서 놀던 사람들로서 자신이 정의요 진리라는 자세를 취하는 등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운동권 독선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이게 또 열성 지지자들을 열광시키는 요인이기에 운동권의 시장 논리로 보자면, 운동권 체질은 그 우물 안에서 갖춰야 할 최대 경쟁력이 된다.
운동권 체질을 가진 사람들은 그 체질의 근본이 ‘반대’인지라 반대할 건수만 나타나면 그걸 공격하는 데에 올인 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예컨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인 만큼 어찌 그걸 적당히 넘어갈 수 있으랴. 그런데 문제는 그게 곧 결판이 날 수 없는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는 데에 있고, 일반 대중은 그런 장기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JTBC 〈썰전〉의 김수아 PD는 1분 단위로 시청률을 집계한 분당 시청률의 추이를 좇아가다 보면 어떤 아이템이 대중에게 먹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한다. 분당 시청률이 크게 출렁인 적이 몇 번 있었는데, 2013년 가을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다룰 때가 그랬다고 한다.

“두 번 다뤘어요. 한 번은 뉴스타파에서 보도한 내용에 관한 것이었죠. 시작하자마자 3.5%에서 1%대로 뚝 떨어지는 거예요. 경찰 동영상이 공개됐을 때도 중요하다 싶어 다뤘는데, 결과는 같았어요.……야당 하기 쉽지 않겠어요.”
JTBC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경우 손석희 덕분에 야권 지지자들도 많이 시청하는 편인데도 그런 결과가 나온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가? 이 이야기를 소개한 『중앙일보』 기자 강인식은 “국정원을 다루지 않을 순 없다. 그건 야당의 사명 같은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 이슈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해버리고, 투쟁이 본업이 된 정당을 국민이 가까이하긴 어렵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은 승리하지 못했다. 그간 민주당은 투쟁을 자주 앞세웠지만, 정작 자신의 본업인 선거에서는 전투력을 잃었다. 지난달 재·보선에서 30%포인트 차로 지고도 ‘정권 초엔 다 그렇다’고들 말한다. 김 PD의 힌트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민주당은 국민이 다가올 만한 아이템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민주당은 그런 주제들 속에서 정부·여당을 압도할 강력한 정책 어젠다를 찾아내야 한다.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한다. 살아남아서, 표를 얻어 정권을 잡아야 세상을 바꿀 거 아닌가.”2
운동권 체질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좋은 충고를 듣고서도 그 충고의 메시지보다는 출처를 따져서 판단한다. 보수적인 『중앙일보』 기자가 한 말이기 때문에 무시해도 된다는 식이다. 더 보수적인 『조선일보』 기자가 말하면, 아예 “반대로만 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친야 인터넷 사이트의 댓글에 1년 365일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유형의 주장이다.
 
정치를 이렇게 낭비해도 괜찮은 건가?
당시 민주당은 광장에 천막당사를 차리고 101일 동안 민주주의 위기와 정권 심판을 목 놓아 외쳤지만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양권모 논설위원은 「101일 ‘천막투쟁’의 상흔」이라는 제목의 『경향신문』(2013년 11월 15일) 칼럼에서 “이쯤이면 박근혜 정부가 휘청거릴 것으로 기대했을 터이다. 정권의 정통성엔 의문부호가 찍히고, 선거에서는 정권이 심판받고,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으로 떨어져야 했다. 정국의 주도권은 야권으로 넘어왔어야 할 것이다. 국가기관 대선 개입의 광범위한 실상이 확인됐고, 이를 은폐·왜곡하려는 공작이 드러나지 않았는가. 경제민주화, 복지, 국민통합, 박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한 대표 공약들을 집권 반년 만에 모두 물렀지 않은가”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데 민주당의 ‘기대’는 하나도 과녁에 꽂히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일단 끄떡없다. 박근혜 정부 지지도는 60%를 오르내린다. 민주당은 그 반토막도 안 된다. 화성갑 보선에선 수도권 사상 최악의 ‘쪽팔리는’ 패배를 당했다. 정국은 야당은커녕 청와대가 흔들고 있다.……왜 이리 됐을까. 집권세력의 간교한 공안통치, 월등한 싸움 기술, 한국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인가. 분명 그럴 것이다. 다만 상대의 싸움 기술을 유능케 만드는 것은 자신의 무능이다. 박근혜 정부 실정의 반사이익조차 누리지 못하는 것은 민주당의 무능 탓이다.”
​2013년 9월 4일 서울광장 천막당사 앞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들의 국정원 개혁 촉구 결의대회. ⓒ 더불어민주당
어떤 무능인가? 양권모는 “민주당은 집권세력이 ‘노무현’과 ‘종북’의 덫을 놓으면 격렬하게 혹은 민감하게 반응하며 빠져들었다. 박근혜 정부가 불리한 이슈와 갈등에서 도피할 수 있도록 결과적으로 방조했다. 덕분에 박근혜 정부가 집권 6개월 만에 부도낸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이슈는 사라졌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국민통합 공약은 박근혜 집권에 ‘결정적 요인’ 중 하나다. 이들 공약의 파기는 국정원 선거 개입 못잖게, 아니 더 근본적으로 대선의 정당성과 책임 정치의 문제와 연결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정원 사태에도 요지부동이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폭락한 것은 기초연금 파기 국면에서였다. 민주당은 말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공약의 파기를 숨기고 싶어 할 때 민주당은 기꺼이 눈먼 술래의 구실을 했다.……박근혜 정부의 교활한 공안통치의 재료는 드러났다. 노무현 정부와 종북 이슈를 재생산하는 것이다. 그것에 기계적으로 포획되면 박근혜 정부가 조성하는 공안정국에서 허우적대며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기 싫어하는 것(경제민주화와 복지 등)을 말해야 한다. 민생, 사회정책과 관련한 민주당의 의제를 들고 가야 한다.……며칠 들락날락하다 국회로 돌아온 민주당은 기껏 대통령 시정 연설 때 검은 옷을 입느니 마느니를 갖고 갑론을박하고, 특검과 예산안을 연계하느냐를 놓고 씨름하고 있다. 또 번지수를 잘못 찾고 있다. 지난 싸움의 결말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무슨 수가 있겠는가. 더 가서 당해보는 수밖에.”3
그러나 운동권은 민생, 사회정책과 관련한 의제로 싸워본 적이 별로 없다. 늘 이들의 피를 끓게 만드는 것은 ‘공안통치’와 ‘민주주의의 위기’일 뿐이다. 유권자들이 무얼 더 갈구하느냐 하는 건 안중에 없다. 운동권 체질파는 1080년대 의식의 연장선상에서 2010년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교수는 『중앙일보』(2013년 12월 20일)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민주주의 위기를 계속 얘기하는데, 대통령의 권위주의나 국정원 선거 개입에서만 민주주의의 위기가 오는 건 아니다. 민주진영(야권을 지칭)의 정책적 무능이야말로 민주주의 위기의 본질일 수 있다”고 일갈했다. “포지티브하고 생산적인 정책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으니까 네거티브로만 가는 거다. ‘민주주위 위기’라는 레토릭이 무능한 자들의 변명이나 도피처가 되는 게 아닌가.”
김병준은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은 심각한 문제 아닌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야권의 악순환을 얘기하고 있다. 야권이 연대하는 방식은 늘 ‘반(反)박근혜 연대’였다. ‘박근혜에 반대하는가’라는 물음에 ‘예스’라고 하면 연대하는 거다. 그 전엔 반MB(이명박)였을 거고. 거기엔 선거 승리의 공식만 숨어 있을 뿐 자기 정책에 대한 고민이 없다. 그 과정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4
최장집 교수는 “국정원 선거 개입 문제에만 몰두하는 동안, 국가를 운영하고 실제의 민생 문제를 다루는 것을 등한히 한 것은 선거 경쟁의 특성을 오해한 결과다. 민주당은 보다 삶의 현장 속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국민은 누가 더 진보적이냐 도덕적이냐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경제 문제를 개선할 대안을 만들 수 있느냐에 관심이 있다. 새누리당이 상대적으로 더 낫다.”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장도 “대선 때 민주당은 정책 대결로 몰고갔어야 했는데,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 정치·도덕적 이슈에 올인 했다. 불운이 아니라 실력 때문에 졌다”고 평가했다.5
그러나 그 어떤 비판과 주문과 충고건 운동권 체질파들에겐 씨알도 안 먹힌다. 그들을 지배하는 건 머리가 아니라 온몸에 각인된 습속이기 때문이다. 몸에 밴 버릇, 정말 무섭다. “아, 인간이라는 동물이 정말 무섭구나. 이렇게까지 안 바뀌다니!”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을 그런 놀라움이 지금 정치판에서 집단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서 이들은 바짝 엎드린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속으로 “붙고 나서 두고 보자”고 벼르고 있을 게 틀림없다. 세월이 흐르면, 즉 운동권 체질파들이 생물학적 연령을 많이 먹어 은퇴하면 저절로 해결될까? 그것도 아니다. 이 문화는 젊은 열성 지지자들에게 전수되면서 이른바 ‘신(新)운동권’의 탄생과 번성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개인적으론 달라진 생존 환경엔 귀신같이 적응을 잘 하면서도, 달라진 정치 환경에 적응하기는커녕 그런 적응을 변절로까지 보는 운동권 정서에 너그러울 뿐 아니라 호응하기까지 한다. 왜 그럴까? 혹 ‘나’와 ‘사회’를 구분하는 습속 때문은 아닌가? 정치를 단지 스트레스 해소나 카타르시스 만끽의 용도로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정치를 이렇게 낭비해도 괜찮은 건가? 한번쯤 잘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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