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29

왜 자꾸 "당신 80년대에 뭐했어?"라고 묻는가? : '운동권 체질'이 진보를 죽이는 이유 ①



왜 자꾸 "당신 80년대에 뭐했어?"라고 묻는가? : '운동권 체질'이 진보를 죽이는 이유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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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사상 이웃추가 | 2016.04.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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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야기


왜 자꾸 "당신 80년대에 뭐했어?"라고 묻는가?
 '운동권 체질'이 진보를 죽이는 이유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운동권에 대한 ‘침묵의 카르텔’
(이진순) 선생님 강의나 책에서, 시민운동, 민중운동이 이렇게 개선되면 좋겠다고 꼬집는 부분이 있는데, 제가 볼 때는 너무 살살 꼬집으세요.(웃음) 따끔하게 아픈 맛이 잘 안 느껴집니다.
(신영복) 저로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사회적 약자니까. 약자들에 대한 비판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공간에선 안 하는 게 좋아요. 우리끼리 있을 때 해야지. 저도 따로 만나면 여러 가지 이야길 합니다.
(이진순)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세요.
(신영복) 진보의 질이 많이 추락했다는 거 인정합니다. 이명박, 박근혜 욕하는 걸로 자위하고 자기 내부에서 강인한 진보성을 발견하는 건 소홀히 하고 있거든요. 난 지금이 참 중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흔히 ‘너나 잘해’ 하는 말이 있는데 정말 우리부터 잘해야 되는 시기거든요.1

이 인터뷰는 운동권과 진보, 아니 한국 정치의 핵심 문제를 시사해주고 있다. 진보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운동권, 정말 문제 많다. 그러나 전면에 나서 그런 지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스쳐 지나가는 식으론 한두 마디씩 하는데, 그게 전부다. 왜 그럴까?
지적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은 사회적 약자니까. 약자들에 대한 비판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공간에선 안 하는 게 좋아요. 우리끼리 있을 때 해야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해선 아무런 효과도 없다는 게 이미 충분히 입증되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이 보는 공간에서 비판을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런 사람들에겐 자격이 없다. 운동권이 운동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할 때 편안하게 자신의 안전과 성공만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 뒤늦게 나서서 운동권 비판을 한다? 뻔뻔하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아니 이들은 운동권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래서 운동권에 대한 ‘침묵의 카르텔’이라고 할 수 있는 현상이 생겨난다. 그러다 보니 운동권 비판은 보수가 도맡아 하는데, 이건 이른바 ‘적대적 공생(antagonistic symbiosis)’ 관계의 원리에 따라 오히려 운동권을 도와주는 결과만 초래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운동권의 정의를 재검토해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주화 운동이나 반(反)독재 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은 하던 일로 돌아가 묵묵히 이름 없이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영원한 존경의 대상이다. 문제는 운동권 출신으로 정계에 진출한 이들이다. 이들을 운동권으로 부른다고 해서 초야에 묻혀 사는 운동권 인사들이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는 관용이 필요하다. 이들 역시 정계에 진출한 운동권에 대해선 매우 비판적이니 더욱 그렇다. 그저 대중과의 쉬운 소통을 위해 운동권이라는 이름을 가져다 쓰는 걸로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운동권의 근본적인 문제는 운동 주체와 계급의 불일치에서 비롯된다. 최장집은 한국의 학생운동이 노동운동으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특징적인 것은, 대부분 교육 받은 도시 중산층의 배경을 가진 이들의 노동운동이 자신들의 실제 사회경제적 삶의 조건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즉 그들의 운동과 그들의 계급은 서로 분리된 것이었다. 따라서 실제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 내지 사회경제적 권리를 향상시키는 데 운동의 중심이 두어졌던 것이 아니라, ‘반제 민족 해방’ 또는 ‘사회주의 노동 해방’의 이념에 ‘복무’하려 했다. 그것은 일종의 ‘중산층 급진주의’ 내지 ‘정서적 급진주의’의 성격을 갖는 것이었고, 지금도 그 유산은 ‘내용 없는 언어들의 공격성’이나 ‘진리를 독점한 듯 내세우는 도덕적 우월 의식’ 등의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2
사실 우리가 운동권 체질이라고 말하는 것의 핵심은 바로 그런 ‘내용 없는 언어들의 공격성’이나 ‘진리를 독점한 듯 내세우는 도덕적 우월 의식’이다. 그런데 이런 체질은 반(反)독재 민주화 투쟁의 경험이 없는 건 물론 앞서 말한 ‘죄책감’이 없는 세대에게도 ‘정서 공동체’의 형식으로 전승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현실과의 괴리가 더욱 커진다. 반면 극소수일망정 진짜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 중에도 운동권 체질에서 자유로운 사람들도 있다. 더욱 중요한 건 운동의 이유가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게 나처럼 자격 없는 사람이라도 운동권 비판에 나설 수 있고 나서야만 할 이유라고 본다. 나는 최근 출간한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반(反)독재 투쟁을 지지했으면서도 운동권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은 운동권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다.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인 나 역시 그들의 헌신과 자기희생에 대해 경외감을 갖고 있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그들을 비판한다? 양심 있는 인간으로서 감히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똑같은 양심으로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면 그런 개인적인 죄책감으로 침묵하는 것은 운동권이 떠받들었던 민중에게 더 큰 죄를 짓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어찌하겠는가. 나는 결국 ‘운동권’보다는 ‘민중’을 택하기로 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가 1919년에 행한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강연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그는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두 가지 방식을 지적했다. 정치를 ‘위해’ 살거나 정치에 ‘의해’ 사는 것이다. 물론 이 둘은 상호 배타적인 건 아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정치를 위해 사는 동시에 정치에 의해 살고 있다.3
​막스 베버는 변호사들은 돌아갈 직업이 있기 때문에 직업 정치가로서도 지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막스베버와 그의 저서 『직업으로서의 정치』 
정치를 위해 산다 함은 이기적인 목적이건 이타적인 목적이건 정신적인 의미에서 ‘정치를 자신의 삶으로’ 삼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호구지책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이 측면, 즉 정치를 지속적인 수입원으로 삼는 걸 정치에 의해 산다고 볼 수 있다. 대중은 정치인이 정치에 ‘의해’ 사는 측면에 대해 양극단의 자세를 취한다. 한 부류는 그걸 너무 인정하지 않아서 탈이고, 또 한 부류는 그걸 너무 인정해서 탈이다.

다수파는 의원들에게 정치는 먹고사는 생계 수단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의원들이 생계 수단을 놓치지 않기 위해 벌이는 일은 정치인을 혐오하고 저주해야 할 이유가 된다. 이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인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아예 논의 대상도 되질 않는다. 돈이 많은 사람들만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평소에 존경 받던 운동권 인사나 학계 인사들조차 정치판에 들어가기만 하면 변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요 이유는 그들이 정치를 생계 수단으로 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점은 외면되고 ‘개인 자질론’만이 무성하다. ‘생계 수단으로서의 정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중엔 정치를 직업으로 택할 뜻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많다.
인생의 황금기 중 10년 이상을 정치에 투자한 사람에게 결정적인 결격 사유가 없는데도 어느 날 갑자기 ‘개혁’이니 ‘혁신’이니 하는 명분을 앞세워 “너 나가라”라고 그러면 그 사람은 이후 무엇으로 먹고사나? 언제든 먹고살 길이 보장되어 있는 변호사들만 정치를 하라는 건가? 그런데 바로 이 ‘변호사 모델’이 한국 정치판에서 바람직한 정치인의 모델이 되고 있다.
잘나가던 어느 의원이 어느 날 갑자기 한국 정치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화끈하게 정계 은퇴를 선언한다. 박수가 쏟아진다. 언론은 다른 의원들도 그런 자세를 배우라고 공박까지 해댄다. 그러나 그 의원은 변호사기 때문에 그런 화끈함을 보일 수 있었다는 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2044년 7월 28일 청와대에 의해 전격 경질된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은 퇴임 기자회견에서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너무 즐거워 죄송하다”고 했는데,4 그 모습은 상큼해서 보기 좋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과연 그에게 변호사라고 하는 돌아갈 직업이 없는데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막스 베버도 자신의 강연에서 변호사가 직업 정치가로서도 지배적인 역할을 해왔던 이유를 바로 그 점과 연결시키고 있다. 그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대리하도록 하는 데에 매우 유리하다는 점도 지적했다.5
 
노무현, 문재인, 천정배, 신기남, 이재명, 임종인의 공통점
한국 정치판에선 바로 그 점이 윤리 문제로 거론되곤 한다. 2004년 8월 10일 MBC 저녁 <9 52="" span="">
그러고 보니 그간 한국 정치판에서 늘 무모할 정도로 모험 노선을 걸었거나 유난히 튀는 언행을 보였거나 운동권 이상으로 강한 진보 성향을 보인 정치인들 중엔 변호사 출신이 적지 않았다는 게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안전하게 돌아갈 곳이 있는 그들이 비교적 자신의 진퇴를 거는 승부를 걸기에 유리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2004년 8월 동국대학교 교수 황태연은 노무현 정권의 율사(律士, 법률가) 출신 수뇌들은 유신헌법으로 출세한 어두운 과거 때문에 자신들의 과거를 물타기 하기 위해 뒤늦게 더욱 과격한 민주투사로 행세한다고 주장했는데,6 ‘어두운 과거’나 ‘물타기’ 등과 같은 감정적 표현만 순화시켜 음미해보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점이 있다.
전부는 아닐망정 과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회원들 중 상당수는 동료 학생들이 민주화 운동 또는 반(反)독재 투쟁을 하던 시절에 고시 공부에만 매달렸던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이는 내심 민주화를 지지하면서도 개인적인 안전과 성공을 위해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다 갖고 있는 것이지만, ‘법의 정의’를 내세우면서 사법고시가 곧 출세의 관문으로 통하던 시절 그 관문 통과에 올인 했던 사법고시 출신들에게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당장 떠오르는 이름만 대더라도, 변호사 출신 정치인들 가운데 운동권 성향이 두드러졌던 노무현, 문재인, 천정배, 신기남, 이재명, 임종인 등이 다 그런 경우가 아닐까? 우리는 운동권이라고 하면 직접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이들처럼 죄책감으로 인해 ‘운동권 워너비’ 또는 ‘워너비 운동권’이 된 사람들도 포함시켜야 한국 정치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황태연은 이들이 “유신헌법으로 출세한 어두운 과거 때문에 자신들의 과거를 물타기 하기 위해 뒤늦게 더욱 과격한 민주투사로 행세한다”고 했지만, 좋게 표현하자면 “개인적인 안전과 성공에만 몰두했던 부끄러운 과거 때문에 자신들의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뒤늦게나마 더욱 운동권 체질을 보이게 된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변호사 출신들만 그런 경우에 해당되는 게 아니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나의 개인적인 안전과 성공을 위해 운동을 외면했던 부끄러운 과거로 인한 죄책감 때문에 뒤늦게나마 공공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전투적인 글쓰기를 해온 것 같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기에 모두가 다 운동권 체질을 보이는 건 아니지만, 운동권 문화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개혁’을 빙자한 과도한 위선의 폐해
다시 앞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문제는 정치를 그만 두면 돌아갈 곳이 없는 정치인들일 것이다. 정치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은 의원들이 생계 수단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에 대해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라는 딱지를 너무 쉽게 붙인다. ‘정치인 보험제도’나 만들어놓고 그럴 것이지,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러나 문제는 너무 심하고 심하지 않고 하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 모든 저항을 ‘기득권 세력의 저항’으로 판단하는 건 오판(誤判)이며 그로 인한 문제가 만만치 않다는 점일 것이다.
정반대 유형의 사람들은 ‘정치인=남의 돈 뜯어먹고 사는 사람’ 정도로 간주하는 냉소파다. 정치인이 뭐라고 떠들건 그걸 다 ‘돈 내놔라’ 하는 소리로만 듣는다. 대전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창연(71·서구 월평동)은 『중앙일보』 민심 탐방 인터뷰에서 “국회의원들은 전부 도둑놈들이유. 초선들도 들어가면 싹 다 변해유”라고 주장한다.7 이런 사람들은 숱하게 많다. 이들은 정치 개혁이나 정치를 통한 개혁을 아예 믿지 않는다. 그들의 뇌리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의 수준이 워낙 낮은 탓에 이런 시각의 효용이 만만치 않다. 적어도 실망하거나 좌절하는 일은 없다.
‘직업으로서의 정치’ 문제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진짜 운동권 인사들을 빼놓을 수 없다. 민주화 투사들은 자신들의 20대와 30대를 정치에 바친 사람들이다. 남들 출세하기 위해 고시 공부하거나 취직 공부 열심히 할 때에 이들은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배우고 익힌 게 넓은 의미의 정치뿐이다. 쌓은 건 그 분야의 인맥이다. 이제 정치는 그들에게 직업이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금이야 좀 달라졌지만,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어 사상 처음으로 원내에 진입한 건 물론 제3당의 위치를 차지했던 2004년 제17대 총선 이전엔 진보 정당 간판을 달고 금배지를 다는 건 불가능했다. 운동가들의 성향을 보자면 대부분 진보 정당으로 들어가야 옳다. 그러나 먹고살아야 할 것 아닌가. 온 가족의 뜨거운 열망과 기대 속에 들어갔던 1류대학을 나온 처지에 그들의 기대에도 부응해야지 평생을 거리에서만 보낼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1997년 정권교체 이전 운동가들은 대부분 ‘보수’ 야당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야당의 자리는 제한되어 있었다. 게다가 ‘지역주의 정치’와 ‘보스 정치’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자신의 지역구 사정도 고려해야 하고 자신의 인맥도 살펴봐야 한다. 여기서 여당으로 가는 이탈자들이 생겼다.

정치인이 정치에 ‘의해’ 사는 측면에 대한 공공적 논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개혁’을 빙자한 과도한 위선은 우리 모두에게 좋지 않다. 평소에 자신의 개인적인 청탁을 위해 아는 정치인의 줄을 어떻게 해서든 이용해보려고 발버둥 치던 사람들이 정치인 욕하고 한꺼번에 물갈이해야 한다고 외친다면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직업으로서의 정치’의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정치 개혁 바람은 ‘밥그릇 교체’의 의미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것도 의미는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 비용과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뜨겁게 박수칠 만한 일은 못 된다.
작가
편집부
출판
인물과사상사
발매
2016.03.01.
평점

1. 이진순, 「“진보, 정말 우리부터 잘해야 합니다”: 이진순의 열림, 신영복」, 『한겨레』, 2016년 1월 23일.
2. 최장집,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폴리테이아, 2012), 73~74쪽.
3. 막스 베버(Max Weber), 이상률 옮김, 『직업으로서의 학문/직업으로서의 정치』(문예출판사, 1994), 73쪽.
4. 김태훈·강구열, 「[2004 말 말 말] “너무 즐거워 죄송”」, 『세계일보』, 2004년 12월 31일.
5. 막스 베버(Max Weber), 이상률 옮김, 『직업으로서의 학문/직업으로서의 정치』(문예출판사, 1994), 75쪽.
6. 황태연, 「건설적 역사관」, 『조선일보』, 2004년 8월 3일, A26면.
7. 이지상, 「“의원 전부 도둑놈” “반기문 나오면 여든 야든 찍을거유”」, 『중앙일보』, 2016년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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