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23

손이상의 호기심 천국 - 노동당의 총선 패배를 바라보며

손이상의 호기심 천국 - 노동당의 총선 패배를 바라보며
노동당의 총선 패배를 바라보며
2016.04.22
손이상
http://fabella.kr/xe/80929

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 노동당의 실패는 단순히 선거 전략을 잘못 세웠기 때문이 아니다. 이번 선거에 뛰어든 사람들은 전략이 일관되지 않다는 걸 몰랐을까? 알았을 거다. 알면서도 떠밀려 갈 수 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됐나? 제일 큰 이유는 노동당은 자신들의 상상과는 달리 노동자 정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가 상상하는 자아와 현실의 자아 사이에 어마어마한 괴리가 있다. 그런데도 거울단계의 이미지를 진짜 자기자신이라고 강하게 믿는다.

이건 노동당 뿐 아니라 한국 정치의 아주 특징적인 부분이다.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칭하는 집단이 박정희 식의 개발 독재를 지지한다든지, 국가/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집단이 시장의 파괴적인 확장을 부추긴다든지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건 우익이 특히 사기꾼이어서가 아니다. 자칭 자유주의자들은 개발 독재를 지지하고 권위에 기대면서도 '진짜로' 자신들이 미국의 리버럴과 비슷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저쪽 뿐 아니라 이쪽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선거를 통해 보건대 그나마 정의당은 자신들이 중산층 정당이라는 걸 알아챈 모양이다. 심상정만 빼고 말이다. 정의당의 주요 구성원은 세월호 리본을 달고 다니기는 하지만 당장의 고민거리는 주택 할부금과 자동차 보험료인 계급이다. 한겨레나 경향신문을 읽지만 중학생인 아이를 밤 10시까지 학원에서 굴리지 않을 수 없는 계급이다. 타겟층이 비교적 분명하니 일관되게 전략을 짤 수 있다. 그 당의 유일한 문제는 그 전략에 맞지 않는 심상정이나 노회찬이 없으면 당이 안 굴러간다는 거다.

그럼 노동당은? 수도권 룸펜 정당이다. 룸펜은 줄어들지 않는 학자금 대출과 원룸 월세가 고민인 계급이다. 집에서 혼자 즉석식품 먹으면서 미국드라마 다운받아 보는 계급이다. 비정기적으로 알바를 하긴 하는데 그게 자신의 계급성을 만들지는 않는다. 이게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당의 정체성을 잘못 알고 있으니 당의 구성원과 지지자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을 억누르고 '상상으로' 원하는 것을 선거에 들고 나온다. 일 하는 사람이면 다 노동자라는 말은 웃기는 소리다. 90년대 초반까지는 그런 말이 먹혔을 지도 모른다. 그 때는 사회 구조가 어느 정도는 실제로 그랬으니까. 지금은 전혀 안 그렇다. 그 시절에 고착된 아저씨들만 그런 얘길 한다.

물론 울산시당이라든지 몇몇 지역당은 (대부분 비정규직인) 노동자로 채워져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들은 조직도 약하고 중앙당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노동당이 민주적이었던 적은 맨 처음 당명을 정할 때 뿐이었다. 사공이 많은 배가 민주적이라는 건 착각이다. 리더십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안 돌아간다. 사회에서 뺨 맞고 당에 와서 화풀이 하는 것도 발언이랍시고 열어놓고 있으면 먼 지역에 사는 당원들의 발언 기회가 그만큼 줄어드는 거다. 쓰레기 같은 포스팅을 계속 구독하면 읽고 싶은 포스팅이 밀려나는 페이스북 타임라인과 같다.

노동당이 살아남으려면 자기 정체성이 뭔지를 계속 살피면서 대대적으로 재편하거나(이 경우 재개발에 밀려나는 자영업자라는 패는 버려야 한다. 대립관계다), 아니면 지방 도시의 노동자들에게 훨씬 더 힘을 실어주거나(이 경우 수도권의 청년활동가들이라는 패는 버려야 한다. 대립관계다), 아니면 빈곤한 대학생들을 데리고 노동계급화하거나(말이 안 된다), 아니면 누가 쿠데타 수준으로 들고 일어나서 당권을 혼자 틀어쥐어야 한다(그럴 인물이 없다). 넷 다 무지 어려워 보인다. 뭐라도 해낸다면 나는 노선이 다르더라도 노동당 실무자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지금은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독박을 쓰고 고통받아야 하나 하면서 안쓰러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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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의 정체성 아노미? 손이상씨의 페이스북 글에 부쳐
2016.04.22 
박권일
http://fabella.kr/xe/80947

난 요즘 노동당이 하는 짓 열에 여덟, 아홉은 마음에 안든다(안간힘을 다해 점잖게 표현한 거다). 이에 대해 말할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손이상씨의 글을 보면 내 고민은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그의 글이 진보정당의 맹점을 날카롭게 짚어주어서? 반대다. 아주 기본적인 지점에서부터 틀렸기 때문이다. 댓글들,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을 보니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다.
진보정당이 계속 망하는 덴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스스로의 무능과 분열이 첫째 이유고, 기성정당과 제도적 장벽이 둘째 이유고, 정당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가 셋째 이유다. 사실 셋째 이유는 그리 결정적이진 않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의외로 심각하다. 견적이 안나오는 압도적 무지... 하긴 악의적으로 무지를 가장하는 경우도 있을 게다. 손이상 씨의 글은, '0.38% 지지율의 동호회 정당'을 마음껏 조롱하고 싶은 이들에게 마침맞은 핑계를 제공해준 것 같다. '저봐, 망하는 애

2000년대 초중반 민주노동당의 절정기에 그 당은 '일하는 사람'을 전부 묶어 노동자, 농민, 소상공인을 대변하는 '잡탕정당'이었지만, 지금처럼 정체성을 가지고 조롱당하지는 않았다. 이후 그 당이 몰락한 원인 역시 정체성 아노미 따위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현대 정당은 신분, 계급, 정체성의 '동일성'으로 묶이는 조직이 아니다. 여기엔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이 모두 해당된다. 계급 또는 계층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것은 서로 "대립관계"가 발생하지 않는 동질적인 개인들을 솎아내어 그들을 대리하고 대표하는 행위가 아니다. 사회적 "대립관계"는 같은 작업장 내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왜? 그들 역시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일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대립만이 아니라 산업구조에서 발생하는 대립도 있다. 더 극단적으로 말해본다면, 어떤 노동자 집단의 존재 자체가 다른 노동자 집단의 존재를 위협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을 대변하는 정당은 불가능한가? 손이상 씨 논리대로라면 한국의 정당은 거의 노동조합의 갯수만큼 생겨야 한다. 아니, 대립관계를 궁극적으로 따져나가다보면 한국의 정당은 모두 1인정당이어야 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 각자도생의 사회이므로.

손이상 씨가 저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개념을 명확하게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에 나오는 "대립관계"는 계급적대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런 건 전혀 아니고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 정도의 의미다. 지방도시의 노동자들과 수도권 룸펜의 관계는 계급적대 관계가 아니라 그냥 '소 닭보듯 하는' 관계다. 물론 정규직 노동자와 불안정 노동자 사이에는 갈등과 '계급내 대립'이 실존한다. 이걸 부정하는 것은 기만이다. 나도 그렇지만, 요즘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말을 실체적 층위에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노동자라고 다 같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쯤 초등학생도 안다. 소위 부르주아 정당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서로 "대립"하는 집단을 모두 대변하겠다고 이야기한다. 말만 그렇게 하고 실제론 철저히 가진 자의 계급이익을 대변하지 않느냐고? 막상 들여다보면, 철두철미하게 부르주아의 계급이익에만 복무하는 것도 아니다. 과거 민주당 정책 몇은 도시빈민의 이해를 대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손이상 씨는 '정당의 핵심지지기반'과 '정당의 소구범위'를 동일시 하고 있지만 사실 이 둘은 같은 것이 아니다. 어디서부터 출발해 어디까지 외연을 확장해갈 것인가는 결국 그 정당의 선택이다. 외연을 지나치게 확장하려 한다면 그것은 문제시될 수 있겠지만("국민정당" 또는 보나파르티즘) 노동 계급 전체의 이해를 바라보는 정당이라면, 지방도시 노동자를 핵심 지지기반으로 삼는다해서 알바 노동자나 룸펜을 버리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대노동의 대립을 모르거나 무시해서가 아니다. 자본대노동의 대립을 우선시하는 까닭이다. 당위로서도 그렇고, 의회내 세력화를 위해서도 당연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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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의 보충 (박권일 선생의 질문에 답하여)
2016.04.23
손이상
http://fabella.kr/xe/8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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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의 총선 패배를 바라보며 (손이상) http://fabella.kr/xe/blog10/80929

진보정당의 정체성 아노미? (박권일) http://fabella.kr/xe/blog2/8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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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 선생은 내가 앞서 쓴 글의 "대립관계" 개념의 불명확성을 지적하며,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집단들을 대변하는 정당은 불가능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타당한 질문이었지만, 대립관계를 궁극적으로 따져나가다보면 한국의 정당은 모두 1인정당이어야 한다는 말까지 이르자, 나는 내 글의 마지막 문단에 보충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앞서 수도권의 룸펜, 재개발에 밀려나는 영세 자영업자, 울산 등 지방도시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립관계'라는 단어로 설명하며 그 중 하나는 '버려야 한다'고 쓴 바 있다. '대립관계'란 물론 '적대'가 아니며 종종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된다는 뜻이다.

질문에 답부터 하자면, 대립적인 집단들을 함께 대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다른 당에 투표하는 알바노동자와 자영업자는 대립관계가 아니다. 투표장 안에 들어서면 계급이 일시적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특정 계급이 아니라 같은 여권/야권 성향, 같은 영남/호남 사람, 같은 애국자, 같은 민주주의자, 같은 세대, 같은 종교인, 같은 정치인의 팬 등이 된다. 그러나 노동당에 투표하는 알바노동자와 자영업자는 대립관계다. 노동당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다.

노동당의 주요 정책 중 하나인 '최저임금 1만원'은 한 집단의 이득을 대변하는 한편 다른 집단에게는 가시적인 위협 또는 불안의 요인이 된다. 자영업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그렇다. 최저임금 1만원을 연봉으로 환산하면 2천 5백만원 정도다. 이미 그 정도의 수입이 있거나 그 이상을 벌어들이는 노동자에게는 의미 없는 정책이다. 그보다 적게 벌어들이는 노동자에게는 뻔히 예상되는 해고 위협의 증가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자에겐 아예 '북진통일'과 같은 급이다.

따라서 그들의 표심은 어지간해선 노동당을 향해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이 노동당에 투표한다면 그 까닭은 자기 집단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은 채 "그래, 다른 선진국들처럼 최저임금이 1만원은 되어야겠지"라는 당위에 따랐기 때문이다. 훌륭하다. 그러나 당위로만 투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간단히 알 수 있다. 노동당은 10만 표도 얻지 못했다. 선거에서는 가장 높은 계급을 제외하면 아래로 내려갈 수록 더욱 이해관계에 민감해진다. 사소한 차이가 삶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 정책은 당위가 아닌 집단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야 한다. 그런데 '최저임금 1만원' 뿐 아니라 노동당이 앞세운 정책들 중 일부는 한 집단엔 이득이 되지만 노동당과 연계된 다른 집단엔 의미가 없거나 해가 된다. 단순히 정책을 제시하고 알아서 따라오기만을 바란 거다.

박권일 선생에 따르면 "일반적인 현대 정당은 신분, 계급, 정체성의 '동일성'으로 묶이는 조직이 아니다". 백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노동당도 '일반적인 현대 정당'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이런 말을 할 때 나는 노동당원인 주변의 활동가들에게 몹시 미안함을 느끼지만 정치정당, 노동자정당, 대중정당 등은 노동당이 스스로 '상상하는 자아'이지 '실제의 자아'가 아니라고 본다. 사회적 대립관계인 서로 다른 집단들을 조직하는 것이 정당의 역할이라면, 노동당은 그것과 정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박 선생은 내가 악의적으로 정당정치에 대한 무지를 가장한다고 썼지만, 내가 보기엔 실태를 무시하고 현재의 노동당을 정당정치의 틀에서 파악하는 것이 진짜 문제다.

과거 진보신당은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라는 프레임만 설정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집단이 둘 다 저절로 따라올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당이 쪼개지고 나서야 두 노동자 집단이 처한 환경이 무진장 다르며,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도 있고, 그런 경우 선거에서 표를 얻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룸펜 청년들,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의 처지가 비슷하다고 한다면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일 따름이다. 실수를 되풀이하는 이유는 "다 일하는 사람들이고, 그렇다면 우린 다 같은 노동자고, 우린 노동자 정당이니까..."라는 상상을 현실로 굳게 믿기 때문이다. 진짜 현실에 있는 물질적·문화적·계급적 차이를 보지 않는다.

나는 앞선 글에서 '버리는 패' 운운하는 얘길 했다. 불충분한 표현이었지만 내가 그런 방법을 지지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노동당의 정치는 '패를 버리는' 정치다. 한 집단의 이득을 전면적으로 도모하는 대신 다른 집단들에겐 불안을 상쇄할 만한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목소리를 반영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그 정책이 다른 집단들에겐 의미가 없거나 해가 된다는 걸 이해하기 싫어한다. 이건 현실을 보고 이론을 세우는 대신 이론 자체가 현실이라고 믿는 한 고쳐지지 않을 고질적 문제다. 진보신당 때부터 비슷한 비판이 계속되어왔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어차피 고쳐지지 않을 문제라면 차라리 정치공학적 선택을 하는 것이 낫다. 지금은 하나를 취하기 위해 둘을 버리는 상황이다. 적어도 둘을 취하고 하나만 버리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게 내 의견인 것이다. 노동당은 물론 의회진출을 노리는 정당들 가운데 가장 급진적이며 가장 낮은 곳에 있다.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대의는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의는 그저 대의이고 저만치 멀리 떠있는 구름이다. 노동 계급 전체의 이해를 바라본다는 관념을 현실로 믿어선 곤란하다. 현실의 노동당은 그런 적이 없었고(이 문장을 쓰면서 가슴이 아프다) 지금으로선 그럴 역량도 없다.

박권일 선생은 드물게도 내 글에서 조롱의 뉘앙스를 느낀 독자다. 그는 내 글이 '0.38% 지지율의 동호회 정당'을 마음껏 조롱하고 싶은 이들에게 핑계가 될 것을 염려했다. 그러나 나는 조롱의 의도가 없었으며 내 글을 핑계로 노동당을 조롱하는 사람도 전혀 보지 못했다. 호된 질책은 고맙지만 조롱이란 그런 게 아니다. 노동당은 이번 총선에서 홍대 주변의 상가 임대차 문제를 들고 나왔다. 거기까진 좋다. 다른 정당이 거의 침묵하는 이슈에 먼저 발 벗고 나섰으니. 그런데 장사하는 자영업자들을 향해서도 '최저임금 1만원'과 '재벌 증세를 통한 기본소득', '대형마트 규제를 통한 골목상권 보호' 등을 말했다. 그들은 그게 어떻게 '의미되는지'를 몰랐겠지만, 그게 바로 조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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