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16

식민지 불온열전 - 미친 생각이 뱃속에서 나온다

[알라딘]식민지 불온열전 - 미친 생각이 뱃속에서 나온다

식민지 불온열전 - 미친 생각이 뱃속에서 나온다
정병욱 (지은이) | 역사비평사 | 201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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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는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했던 시기다. '불온'은 통치 권력이나 기존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태도나 기질이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 불온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당연하게도 일제 지배층에서 바라볼 때 불온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유명한 독립투사도, 널리 알려진 영웅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보통사람들이다. 어쩌면 우리 부모나 조부모, 이웃의 삼촌 이야기일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중일전쟁기, 곧 전시기에 불온한 언동을 했다는 죄로 일제에 검거된 사람들이다. 그 시기는 식민지 권력이 일상 영역에 침투하고 통제를 강화하며 삶을 옥죄던 때다. 내선일체와 같은 식민정책이 실시되고, 아침마다 궁성요배를 하며, 창씨개명과 일본어 상용이 강요되었다.

일제 통치에 대해, 천황에 대해 불평불만을 얘기하면 여지없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끌려 들어갔다. 비단 독립전쟁을 했던 사람만이, 조직을 만들어 독립투쟁을 했던 사람만이 일제의 감시하에 놓여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감시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에게도 적용되었다.

이 책은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이야기를 들려준다. '불온'이 함의하듯 체제와 통치 권력에 저항하는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의 삶과 투쟁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을 구성해내는 방법과 주인공들은 어쩐지 낯설다. 저자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이라는 거대 역사 대신, 당대의 작은 개인들의 삶에 주목하고 그들의 삶과 일상, 저항을 복원했다.

경성 유학생 강상규, 독립을 열망하다

천변 풍경|옥구군 옥봉리 남동마을, 부농의 아들|옥구 간척지, 식민지 모순의 전시장|농민의 자식들|보통학교 다니기|동네 노인들이 들려준 영웅전|경성 유학과 주체할 수 없는 불온|학적부와 학생 일기, 그리고 개인 일기|독립의 꿈과 계획|병서와 히틀러를 읽고|독서 취향 : 대중성과 전통성|지도를 들고 들로 산으로|형의 이해를 바라다|도시, 상대적 박탈감과 유흥|불만을 토로하고 생각을 나눌 친구가 필요해|‘국어상용’과 이중 언어생활의 피로|창씨를 할 바에는 개명까지?|설문조사와 급우들의 호응|자율 공간|검거와 신문, 재판|모범과 불온, 양자를 봉합하는 학력주의|입신출세와 민족, 자존감|과연 권력이 이긴 걸까|빼앗긴 들에 봄은 왔건만

자소작농 김영배, ‘미친 생각’이 뱃속에서 나온다

근로보국단 결성식이 있던 날 밤|식민지 권력과 마을이 만나다 : 행정과 자치의 공조|농촌진흥회나 야학에 열심이지만 공출이나 동원은 싫다|경찰, 마을을 들락거리다 : 시국좌담회|“가끔 미친 생각이 뱃속에서 나와” : 불온의 근원|상대적 빈곤|가진 자와 못 가진 자 : 지주제, 온정주의, 동족 의식|사랑방, 재담꾼 김영배의 무대|수다의 정치학, 통합과 배제|공공성 경쟁|투서, 공모, 그리고 사실|사건의 숨은 주인공

신설리 패, 중국인 숙소에 불을 지르다

반중국인 폭동, 일제의 계략인가|민족주의 때문인가|또 다른 시각, 도시화와 갈등|신설리·왕십리 패: 직공과 야채농|불황의 최저점|경마장과 중국 노동자, 조선 소작농|인력 브로커와 방, 노동 통제|만보산 사건은 ‘불난 곳에 기름’|일상적인 경쟁과 이웃의 죽음|군집성, 가진 자와 권력자에 대한 불만|지역 대물림

김창환, 살아서 불온한 낙서, 죽어서 불온한 역사

산간벽지 소학교의 교실 풍경|일본인 교장의 학생 구타와 동맹휴교|불온 낙서를 하기까지|치안유지법으로 가는 길 : 배후가 있다!|홍순창의 역사교육과 불만|김창환과 친구들의 세계 : 모욕의 공감대, 자존감|항일운동의 역사로|‘수복 지구’ 해안면의 기억|불온한 역사
[첨부 자료] 조동걸, 「양구 해안소학교 항일 교육과 맹휴운동」 전문

보론 1: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형사사건 기록’
보론 2 : 불온에 관한 7가지 단상

부표 / 미주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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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병욱

 최근작 : <식민지라는 물음>,<식민지 불온열전>,<일기를 통해 본 전통과 근대, 식민지와 국가> … 총 5종 (모두보기)
 소개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부교수로 있으며, <역사비평>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근대금융연구>, <일기를 통해 본 전통과 근대, 식민지와 국가>(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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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이 되어버린 일상,식민지를 살다
당신이나 내가 주인공일수도 있는 식민지에서의 삶과 저항

“식민지 불온열전이라……. 뻔한 얘기 아냐?”
요즘 편집 중이 책이 뭐냐는 친구의 물음에 ‘식민지 불온열전’이라 하니, 대뜸 돌아오는 말이었다. 일제에 저항한 독립투사의 전기가 아니냐고 되묻는다. 덧붙이기를, “어떤 사람 얘기냐, 유명한 독립영웅이겠지?” 한다. 결론적으로, 그의 말은 일부만 맞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 불온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당연하게도 일제 지배층에서 바라볼 때 불온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유명한 독립투사도, 널리 알려진 영웅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보통사람들이다. 어쩌면 우리 부모나 조부모, 이웃의 삼촌 이야기일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경성 유학생 강상규 이야기를 <역사스페셜>(117회 ‘경성 유학생 강상규의 조선독립 10년 계획’―2012년 10월 11일 방영)로 제작한 KBS PD 김장환은 이렇게 말한다.

“3·1운동 무렵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에 청년 시절을 보내고 1·4후퇴 때 가족과 북녘 고향을 떠나온 선친의 삶을 나는 아직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아버지 ‘가네모토 나가쿠니’가 불온한 조센징이었는지, 충량한 신민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정병욱 교수의 글을 통해 이제는 내 곁에 계시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을 읽는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중일전쟁기, 곧 전시기에 불온한 언동을 했다는 죄로 일제에 검거된 사람들이다. 그 시기는 식민지 권력이 일상 영역에 침투하고 통제를 강화하며 삶을 옥죄던 때다. 내선일체와 같은 식민정책이 실시되고, 아침마다 궁성요배를 하며, 창씨개명과 일본어 상용이 강요되었다. 일제 통치에 대해, 천황에 대해 불평불만을 얘기하면 여지없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끌려 들어갔다. 비단 독립전쟁을 했던 사람만이, 조직을 만들어 독립투쟁을 했던 사람만이 일제의 감시하에 놓여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감시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에게도 적용되었다.

이 책은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이야기를 들려준다. ‘불온’이 함의하듯 체제와 통치 권력에 저항하는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의 삶과 투쟁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을 구성해내는 방법과 주인공들은 어쩐지 낯설다. 저자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이라는 거대 역사 대신, 당대의 작은 개인들의 삶에 주목하고 그들의 삶과 일상, 저항을 복원했다. 마치 소설처럼 술술 읽히지만, 사이사이 엄밀한 학술적 논증과 분석을 놓치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에 불온 언동을 했다는 죄로 검거되어 재판을 받은 주인공의 신분은 경성 유학생, 경기도 자소작농, 서울 근교 하층민, 강원도 산간벽지 소학교 학생이다. 이들이 신분이나 계층을 대표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들을 통해 식민지 시기 다양한 계층의 삶과 사고를 엿볼 수 있다. 김장환 PD의 말처럼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어머니·아버지 세대, 할머니·할아버지 세대의 삶을 공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우리도 그들처럼
오늘, 되살아오는 불온

‘불온’이라 하면 반골의 냄새가, 반역의 느낌이 먼저 떠오른다는 사람이 많다. 우리 국어사전에도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라고 뜻풀이되어 있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 불온의 오래된 뜻은 ‘편안하지 않다’ ‘순조롭지 못하다’이고, 현재 일본의 사전에도 ‘평온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되어 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편안하지 않다’가 ‘순응하지 않다’로 불온의 의미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일본이 한국을 강점하는 과정에서 1907년 제정한 ‘보안법’이라고 한다(이 책 230쪽, ‘보론 2 : 불온에 관한 7가지 단상). 그러면서 저자는 통치층의 인식이나 태도가 식민지 시절과 연속되는 점이 많음을 지적한다.

유신시대 일반 시민이 술김에 유신독재에 대해 토로한 울분이 긴급조치에 걸리면서 검거되고 징역을 산 적이 있다. 이른바 ‘막걸리보안법’에 걸린 것이다. 2008년에는 ‘미네르바’라는 필명을 가진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 리먼 브라더스의 부실과 글로벌 금융 위기에 대해 썼다가 허위 사실 유포죄로 구속되었다. 2010년에는 G-20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쥐그림을 그렸다고 검찰에 의해 기소되고 벌금형의 형사처벌을 선고받은 이도 있다. 오늘날의 불온 언동이다. 삐딱한 표현 방식이다. 이들은 조직을 만들어 체제에 항거한 것도 아니고, 사회의 저명 인사도 아니었다.
<식민지 불온열전>의 주인공들이 꼭 이와 같다. 경성에 유학 온 강상규는 자신의 일기에서 독립을 열망하고 천황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경기도 안성에 사는 자소작농 김영배는 자신의 사랑방에서 이웃에게 불온 언동을 했다고, 강원도 산골 소학교 학생 김창환과 그 친구들은 학교 교실 벽에 ‘일본 폐지, 조선 독립’이라는 낙서를 했다고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걸려 검경의 신문을 받고 형사처벌을 받는다.
저자는 행위로서 불온에 대해 세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는 정치나 운동이 아닌 삶의 공간에서는 불온과 순응의 모호한 공존이 일상적이라는 것. 둘째는 불온과 순응이 분리되어 한쪽이 강화될 때, 왜 그런지 역사적·국면적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 셋째는 저항의 뿌리로서 불온이다.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불온은 행위자와 그 시대를 보여주는 창이며, 미래를 열어가는 저항의 뿌리라고 저자는 말한다(이 책 236~237쪽, ‘보론 2 : 불온에 관한 7가지 단상). 그리고 이렇게 글을 맺는다.
“불온이 없는 사회에서 독재는 시작된다.”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 날카로운 분석
이해와 공감, 그리고 분석과 검증

역사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 글쓰기에서 팩션(Faction=fact와 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이 유행한 적이 있다.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쓰기 때문에 읽는 이의 큰 흥미를 돋운다. 소설뿐만 아니라 역사서 장르에서도 이러한 글쓰기 방식이 독자의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지나친 상상력을 덧붙임으로써 역사를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저자 정병욱은 이 책을 통해 “역사학의 서사적 전통을 복원”(성균관대 임경석 교수 추천사)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존중하는 글쓰기를 시도했다. 이야기 구성 방식으로 주인공들의 삶을 이해시키고 공감케 하며, 사이사이 분석을 집어넣었다.

1940년 10월 21일 월요일 오후 4시 30분쯤 극장 ‘황금좌’에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날 경기공립중학교 전교생은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에 레니 리펜슈탈의 <민족의 제전>을 단체 관람했다. 4학년 강상규는 해산해도 좋다는 선생의 말이 떨어지자 동급생 김재원과 같이 길을 건너 귀가했다. (…) 강상규가 먼저 얘길 꺼냈다.
“어땠나?”
“손기정, 남승룡 선수가 우승한 장면을 보니 유쾌했는데, 두 선수가 별로 환영받지 못한 것 같아 섭섭하기도 해.”
“유쾌했다고······. 나는 슬펐다.”
김재원이 왜냐고 묻자 강상규의 말보가 터졌다. 일장기가 올라가는 순간 나라 없는 비애를 느꼈다, 지금부터 목숨을 바쳐 반드시 나라를 독립시키고 다음 올림픽은 조선에서 개최하겠다, 그때만큼은 당당히 태극기를 휘날려 우리 민족의 우수함을 세계에 알리고 나의 이름도 후세에 남기겠다, 친구로서 협력을 바란다 등등. 이따금 부는 천변의 바람이 시원할 정도로 더운 날씨다. 친구의 흥분에 김재원은 대답이 궁해 “아, 그런가” 하고 말았다. (…)
강상규는 체포되기 전까지 권력의 시선을 잘 피했던 것 같다. 단순히 피하는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권력의 규율 기술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권력의 시선을 조롱했다. (…) 강상규는 두 종류의 일기를 썼다. 학교에 제출하는 ‘학생 일기’와 자신만 보는 ‘개인 일기’. 먼저 ‘개인 일기’를 쓰고, 그중 군데군데를 골라 일본어로 ‘학생 일기’를 적어 제출하는 식이었다. 예를 들자면 영화 <민족의 제전>을 본 날 밤, 강상규는 흥분이 느껴지는 ‘개인 일기’를 길게 썼다. 손기정을 운동회에서 1등 했으나 아무도 기뻐해주는 이 없는 고아에 비유하면서 조국에 목숨을 바쳐 손기정 같이 우리 조국이 낳은 동포에게 행복이 있도록 하겠다, 후진에게 나라 없는 슬픔이 없도록 하겠다고 썼다. 학교에 제출한 그날 ‘학생 일기’에는 “손·남 선수의 우승에 나는 잠시 열광하였다”고 적었으며, 다음 날에는 전날 느낀 점이라며 “우리 일본의 선수”는 정정당당하여 다른 나라 선수들과 달리 마지막까지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니 훌륭하다고 썼다. (…) 이쯤이면 권력에 길들여져 ‘정상화’되는 개인과 다른, 자신을 스스로 주체화하는 개인을 상정해도 되지 않을까. 권력의 ‘규율화’에 맞서서 스스로를 ‘개체화’하는 개인. ‘개체화’도 관찰로부터 시작하며, 그 결과물이 ‘개인 일기’다.
― 본문 17~18쪽 / 42~43쪽.

저자 스스로 ‘불온한 글쓰기’라 이름한, 사실을 존중하면서 행위자에 어울리는 이야기식 글쓰기와 분석과 검증, 그리고 상세한 주를 단 논문식 글쓰기를 병행했다. 저자는 이 글을 쓰기 위해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의 ‘형사사건 기록’을 샅샅이 검토하고, 당시 신문 자료와 관련 참고문헌을 면밀히 훑었으며, 해당 지역 답사를 통해 친지와 관련 인물의 인터뷰까지 진행했다. 그리하여 주인공들의 불온 언동 사건을 재구성하고 재현해냈다.
<이끼>와 <미생>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는 이 책을 미리 읽고 이렇게 얘기했다.

그 시대의 억압과 고통을 알고 싶다면 저항의 디테일을 확인해야 한다. 디테일은 개인의 삶을 통해야만 목격되고 웅변된다. (…) ‘식민지 시기’를 기억하는 디테일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식민지 불온열전>은 평범한 개인의 삶에 드러나는 사회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그 디테일을 매우 잘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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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리뷰

 개인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며 식민지 말기 조선인의 삶을 이야기하다  새창으로 보기
kotwmaha ㅣ 2013-09-30 ㅣ 공감(0) ㅣ 댓글 (0)
식민지시대라고 하면 대체로 저항과 친일의 형상들이 많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친일과 저항은 식민지라는 현실의 문제와 모순을 잘 드러내주지만, 그것이 식민지 사회를 모두 드러내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렇고, 과거 역사가 말해주듯이 일반 사람들이 체제에 저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민족에 지배를 당하고 있는 식민지 현실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이 책은 어찌 보면 평범한 것으로 보이는 일반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경성으로 유학 온 시골학생, 시골에 머물다가 장터에 읍내 구경을 돌아다녔던 농민과 같은 인물, 그리고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그들은 한편으로는 ‘불온’하다는 혐의를 받거나 실제 불온함을 꿈꾸다가 일제 식민권력에 붙잡혔기에 저자를 통해 우리들 앞에 등장할 수 있었다.

‘불온’하다는 것이 뭘까? 그것은 통치자, 지배자의 시선에서 마땅치 못한 어느 감정이 포함되어 있는 용어다. 저자는 그러한 ‘불온’함을 일상적인 불평불만 속에서 잡아내고 있으며, 일상생활이라는 차원에서 식민지 사회가 포착된다. 일상적인 불평불만이 그때뿐이었을까? 물론 아니다. 하지만 불평불만이 포착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 통치권력이 전시체제기라는 극도의 상황, 권력의 힘이 ‘내선일체’를 표방하면서 개인의 일상생활에까지 촘촘하게 통제를 가했던 상황 변화에서 가능했다.

저자는 지배권력의 시각이 듬뿍 담긴 법원의 형사사건 기록을 파고들면서, 그 이면의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추리소설과 같이 개인의 내면을 파고들어간다. 그래서 글은 자칫 딱딱할 것 같으면서도 잘 읽히는 편이다. ‘잘 읽히는’ 과정에서 식민지 말기 조선인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식민지 말기 강제동원과 일상적 차별이 더욱 심해지던 공간에서 식민지 치하에서 살던 일반 사람들은 대체로 고단한 삶을 묵묵히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그 감내의 이면이 여러 차원에서 가능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 중 하나인 경성유학생 강상규의 경우 일제의 지배에 대한 역겨움을 갖고 있으면서도 입신출세를 위해서라도 학교생활은 모범적이었다. 또 입신출세는 독립된 세상에서 더 잘 될 것이라는 희망도 갖고 있었다. 학적부에 기록된 ‘모범’적인 강상규의 삶은 겉으로 보면 체제의 말을 잘 따르고 협력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따로 기록한 일기에는 일제에 대한 비아냥과 분노가 점철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저자는 모범과 불온의 동거, 개인의 이중성을 잘 그려내고 있다. “정치나 운동이 아닌 삶의 공간에서는 불온과 순응의 모호한 공존이 일상적”(236쪽)이었다고 저자는 평한다. 불온과 순응이 공존한다는 차원에서 식민지 사회는 ‘저항과 친일(협력)’을 넘어서서 다채로운 식민지 사회로 바뀐다. 또 개인 차원에서 양자가 모두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렇게 식민지 사회의 다채로움, 그리고 그 사회를 살아갔던 사람의 디테일하고 복합적인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한다.

여담이지만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다. 저자가 얘기했던 것처럼 불온은 저항의 뿌리가 될 수 있다. 다양한 '불온'함은 결국 식민지에서 해방을 가능케 했다. 또한 “불온이 없는 사회에서 독재는 시작된다.”(242쪽) 많은 사람들을 ‘불온’하게 만드는 세상은 결코 좋은 세상이 아닐 것이다. 한편으로 ‘불온’함이 안 보이는 사회, 막혀 있는 사회 역시 바람직한 사회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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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잃어버린 적이 없는 여행은 좋은 여행이 아니다  새창으로 보기
letterfjj ㅣ 2013-09-14 ㅣ 공감(0) ㅣ 댓글 (0)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 재직 중인 한국근대사 전공 정병욱 교수의 신작이 나왔다.
이 책은 저자가 국편 근무 당시 식민지기 경성지방법원 형사사건 기록을 보다가 발견했던 네 명(또는 집단)의 기록에서 그들의 행적, 나아가 식민지기 삶의 일단을 그려낸 글이다.
사료에 바탕한 팩트와 그 팩트들을 잇는 저자의 역사적 상상력으로 인해 저자의 말마따나 식민지기 여행이 충분히 생생하고 현실감있게 복원되고 있다.

저자가 복원해낸 인물 또는 집단은 총 넷이다.
첫째는 시골 출신으로 독립을 열망했던 경성중 엘리트 유학생 강상규,
둘째는 자소작농으로서 식민지권력에 반항적이었던 김영배,
다음은 1930년대 서울 도시화 과정의  경제적 갈등을 반영하는 신설리패와 중국인 노동자,
마지막으로 식민지교육에 모욕을 느꼈던 교사 홍순창과 소학교 학생 김창환과 그 친구들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한 의미에서 불온을 시도하고 드러내고 있다.
하나는 식민지 유산으로서의 불온이다. 중일전쟁 이후 치안유지법으로 조선인의 사상까지 통제하고자 했던 일제당국의 망에 걸린 불온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었을까? 책은 네 사례를 통해 당시의 불온사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어떠한 것도 책을 읽기 전 생각했던, 우리가 지금 시대의 관점으로 간주하는 인상과는 적잖이 다르다.
다른 하나는 방법으로써의 불온이다. 저자는 동료 연구자마저 보다 비중있는 인물, 사건을 연구하라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 식민지기 소시민들, 작은 사건을 파헤치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역사에서 민주주의란 이름 없고 역사 없는 사람들에게 제 이름과 역사를 찾아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머리말 중 인상깊었던 구절을 옮겨둔다.
"식민지 시기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역사 전쟁' 지역이다. 그렇다고 실제 다칠 일은 없고 귀환은 보장된다. 그러니 때론 과감히 헤매고 다른 길로 가보기를 권한다. 길을 잃어버린 적이 없는 여행은 좋은 여행이 아니다."
길을 잃어버린 적이 없는 여행은 좋은 여행이 아니다. 비단 이 책에만 적용되는 게 아닌, 인생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여러 모로 많은 이들이 읽어보았으면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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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같은 혀를 날름거리는 불온한 사람들  새창으로 보기
Anita ㅣ 2013-09-13 ㅣ 공감(0) ㅣ 댓글 (0)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흐름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대체로 그 시대를 알기 위해서는 가장 대표적이었던 인물과 사건을 공부한다.
이제껏 우리가 배워왔던 역사상의 인물들은 대체로 정치인, 군인, 경제, 종교인 등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아니라면 그 시대를 설명해낼 수 없다는 일종의 '터부'가 존재했었다.

하지만 저자는 역으로, 식민지시기 범죄자였던 조선인들에 대하여 면밀하게 탐구하고 생기발랄하게 표현한다.
'불온'은 부정적인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 시대에 불온했던 인물들은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애국적, 민족적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에서부터 저자는 '불온'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 의미를 파악하고 시대의 균열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대단히 열정적이었던 몇 사람들을 찝어서 보여준다.

이들은 우리의 옆집에 살고 있는 누군가이다. 불온이 너무나 평범하고 도처에 깔려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저자는 논증적 글쓰기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상상도 해보고, 추측도 해보고 있다.
덕분에 학문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을 법한 인물들은 저자의 손가락 위에서 다시 살아난다.
저자가 다루는 인물들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것에는 그들이 살았던 곳을 답사해 보여주는 사진자료와 생존해있는 이웃주민들의 증언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듯 저자는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불온했던 인물들의 뱃속에서부터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끄집어 보인다.
그리고 말한다. 식민지시대에 많았던 불온한 사람들은 해방 후 전쟁과 분단을 겪으면서 사라져 버렸다고.
불온이 없는 세상에 독재가 온다고.
그가 말하는 불온은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낙인찍힌 불온이 아니라, 불같은 혀가 날름거리는 불온이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어떠한 불온들이 존재하고 있을까?

저자의 한마디는 가볍게 휙휙 넘기던 책장을 몇 분이나 붙잡고 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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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등생 강상규는 왜 불온한 이중생활을 택했나 [식민지 불온열전]
키치   ㅣ 2013-09-09 ㅣ

"권력이 개인의 몸을 길들이는 여러 다양한 기법과 전술을 통틀어 '규율'이라 하는데, 규율에 주로 동원되는 세 가지 주요 수단이 관찰(감시), 제재, 시험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관찰이다. (중략) 학교는 학생의 마음과 방과 후 생활까지도 관찰하기 위해 일기를 쓰게 하고 제출토록 했다. 강상규는 두 종류의 일기를 썼다. 학교에 제출하는 '학생 일기'와 자신만 보는 '개인 일기'. 먼저 '개인 일기'를 쓰고, 그중 군데군데를 골라 일본어로 '학생 일기'를 적어 제출하는 식이었다. (중략) 이쯤이면 권력에 길들여져 '정상화'되는 개인과 다른, 자신을 스스로 주체화하는 개인을 상정해도 되지 않을까. 권력의 '규율화'에 맞서서 스스로를 '개체화'하는 개인. '개체화'도 관찰로부터 시작하며, 그 결과물이 '개인 일기'다." (pp.42-4)

"개인이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고 실현한다는 식으로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근대사회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제반 조건을 만들고 이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 노력을 경주한 것도 근대사회에 들어와서다. 근대 개인이 이러한 자아실현의 꿈을 키우고 그 실현 방법을 배우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위인전이다. 개항기나 일제 시기에 영웅전이나 위인전이 많이 읽혔던 것은 민족주의뿐만 아니라 개인주의와도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p.30)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부교수로 재직 중인 정병욱이 쓴 <식민지 불온 열전>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에 의해 '불온'하다는 평가를 받은 여러 사람의 일생을 늘어 놓은 '열전'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을 다룬 책인 만큼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색채가 짙지만, 경성 유학생 강상규, 자소작농 김영배, 중국인 숙소에 불을 지른 신설리(지금의 신설동) 패, 소학교 벽에 조선인을 차별하는 일본인 교장을 비난하는 낙서를 한 김창환 등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독립 운동'을 다룬 책이라서 새롭고 재미있었다.


그 중에서도 강상규에 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전라북도 옥구 출신인 그는 부농의 아버지를 두고 머리가 명석한 덕에 당시 최고 명문 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 학급에서는 부급장을 맡고 성적은 전교에서 5등에 드는 모범생이자 수재였다. 일제에 충성하는 관료나 기업가로 키워질 운명이었던 그는 사실 조선의 독립을 누구보다 열망하는 '불온' 청년이었다. 학교에 입학한 목적도 '적국 정찰'이었고, 친구를 사귈 때에도 독립 운동을 함께할 동지를 가르듯이 했다. 심지어는 급우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서 독립 운동을 함께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결국 그것이 발각되어 징역을 살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10대 후반의 소년이 어떻게 그토록 비밀스럽게 모범생과 불온 청년의 '이중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는지, 그리고 명문고 졸업생이자 엘리트로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체제에 반항하는 선택을 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강상규의 이중생활은 일기를 통해서 잘 드러난다. 일부러 두 개의 일기를 작성해서 스스로를 '공적인 자신'과 '사적인 자신'으로 구분했다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일제가 학생들의 생활과 생각까지 감시하려 했고, 그 수단이 일기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90년대에만 해도 일기 쓰기 숙제가 있었다. 저학년 때는 몰랐는데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내 글을 읽는다는 것이 왠지 부끄러웠고 숙제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학급 임원이자 모범생으로서 일기도 모범이 되게 써야한다는 '자기검열'이 그 때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그 후 대학에 입학하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어떤 글인지 보다 뚜렷하게 알게 되면서부터는 자기 검열을 덜 하게 되었지만, 이렇게 인터넷에 올리는 글도 누군가에 의해 관찰되고 감시된다고 생각하면 여전히 불편하다. 강상규는 진작에 일기의 의도를 알아채고 두 개의 일기를 썼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아니, 안타깝다고 해야 하나.


10대 후반의 소년 강상규로 하여금 일기를 비롯한 여러가지 수단을 통해 이중생활을 이어가게 만든 동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가 어린시절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동네 노인들로부터 유충렬전, 조웅전 같은 영웅전을 자주 들었다는 것을 든다. 영웅전 하면 보통 민족주의로 연결짓는데, 저자는 강상규의 경우 영웅전을 통해 민족주의뿐 아니라 개인주의도 키웠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개인주의 성향은 그로 하여금 독립운동에 바로 발을 들이지 않고 학교에서는 모범생으로 살아가는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이러한 개인주의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이타주의로 나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강상규의 경우를 보면 회의적이다. "그는 독립운동을 해서 자기 이름을 날리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판사가 왜 독립을 희망하는지 묻자 "훌륭한 정치가가 되고 싶고, 그러자면 조선을 독립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대답했다. 조선을 독립시켜야 된다고 생각한 주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도 "조선에서 내가 마음대로 정치를 해보고 싶다"는 점을 하나의 이유로 댔다. 이때 민족은 입신출세와 자아실현의 장이다." (pp.80-1) 즉 독립 자체를 목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치가가 되기 위한 수단으로 독립운동을 택한 것인데, 이는 그가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할 때에도 훌륭하게 일제에 전향한 모습을 보였고 출소 후 뚜렷한 행적을 보이지 않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강상규라는 청년의 이야기는 생전 처음 듣는 것이라 새롭고, 저자의 분석에도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지만, 다 읽고나니 그 어떤 교훈이나 생각보다도 슬픔이라는 감정이 강하게 남는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기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이성에 눈을 뜨고, 밤새워 공부하고 놀기도 하면서 지내도 모자랄 그 시기에, 공적인 자신과 사적인 자신을 구분하며 비밀스럽게 살아간 그의 삶이 너무나 가엾고 불쌍하다. 또 한편으로는, 더 이상 어느 나라의 식민 치하가 아닌 지금도 모종의 권력이나 체제에 의해 길들여지고 억압되고 감시당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비단 국가 권력만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기업 권력, 학교 권력, 가정 권력, 사회 권력, 또래집단 권력 등 수없이 많은 권력의 지배에 노출되어 있다. '불온' 청년 강상규는 그것을 알고 사느냐, 모르고 사느냐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인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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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사유로 개인의 삶을 돌아보다
int   ㅣ 2013-08-30
일제 말 권력의 통제가 끝도 없이 강화되던 무렵, 불온한 언동을 했다는 이유로 검거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죄는 크지 않았다. 단지 체제에 대한 불만을 이웃에 얘기하거나, 벽에 낙서하거나, 일기장에 긁적긁적 했을 뿐. 그러나 식민지 권력은 그러한 행동마저도 전혀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은 개인의 사적 공간까지 침투해 들어와 개개인의 삶을 검열하고, 그 속에서 조그만 저항의 씨앗이라도 찾아내 말살하려 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한때 '불온'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밖으로 표출했다가 권력의 감시에 탐지당해 검거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출세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불온'이나 '저항'은 유명 독립운동가나 직업적 혁명가들의 것처럼 거창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옭아매는 체제와 권력에 대한 불만 표출 내지는 소극적 저항이 다였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같은 시대를 다룬 어떤 역사책보다 감정 이입이 쉬웠다. 책을 읽는 동안 주인공들의 평범한 삶 속에 금세 동화되었던 것. 여기에 개인의 일상까지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식민지 권력과 삶을 분절시켜서라도 최대한 자율적 공간을 확보하려는 개인들의 모습은 어느덧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과거 식민지시대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오늘날 우리가 권력과 맺고 있는 모습도 본질적으론 그리 차이가 나지 않기에.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손쉽게 자신의 삶과 경험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

저자는 식민지 공안 당국의 사건 기록을 바탕으로, 사회경제적 분석과 현지답사, 관련자들과의 인터뷰까지 첨가하여 평범한 개인들의 일상적인 삶을 '두텁게' 복원하고 있다.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것이 바로 식민지시대라는 '낯선 나라'를 독자들이 큰 거리감없이 여행할 수 있었던 이유이지 싶다.

특히 저자가 개인의 삶을 복원해 나갈 때 하나의 답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여러가지 가능성을 병렬적으로 펼쳐 보여준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깊은 사유를 거쳐 제시된 듯 보이는 여러가지 가능성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개인의 삶을 보다 폭넓게 사유하게 만들고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역사 서술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분법적인 단순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깊은 사유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 그리고 독자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한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것. 역사서라면 이 두 가지가 꼭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이 책은 두 가지 모두를 충족케 했으니,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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