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5

『반일 종족주의(反日 種族主義)』를 읽는 법_김헌주 | 한국역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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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反日 種族主義)』를 읽는 법_김헌주
By 한국역사연구회 -2020년 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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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반일 종족주의(反日 種族主義)』를 읽는 법



김헌주(근대사분과)



들어가며

『반일 종족주의』(이영훈 외 집필, 미래사, 2019.7, 이하 본서)는 유튜브 방송 이승만TV에서 2018년 12월부터 45회에 걸쳐 방영되었던 강의를 책으로 정리한 것이다. 2019년 7월에 발간되었는데 한국에서 1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2019년 11월에는 일본판이 출간되어 2주일 만에 30만 부를 인쇄했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이 책이 화제가 된 것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 등을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2019년 여름의 한일관계와 맞물린 측면이 컸다. 또 비슷한 시점에 조국 전 민정수석이 본서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본서는 기본적으로는 학술서를 표방하고 있다. 책머리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우리가 범했을 수 있는 잘못에 대한 엄정한 학술적 비판입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후술하겠지만 본서는 단순한 학술서가 아니다. 본서는 학술서를 표방한 대중서이며 동시에 정치적 선전물에 가깝다. 서평자 역시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본서의 내용보다 의도에 주목하고자 한다. 세부적인 내용들을 모두 비판하는 것은 서평자의 능력 밖일 뿐만 아니라 관련한 실증적 비판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하에서는 ‘반일 종족주의를 읽는 법’이라는 문제의식으로 본서의 서술 전략과 모순점, 사회적 여파 부분에 방점을 찍고 논의를 전개하겠다.



반일 종족주의란 레토릭과 서술 전략

본서가 매우 정치적인 의도를 뚜렷이 한 선전물이라고 전제한다면, 그 전략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점은 프롤로그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목이 무려 ‘거짓말의 나라’이다. 프롤로그에서는 다소 과격한 어조로 한국인의 거짓말과 위선을 폭로한다. 요약하면,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종족적 특성’이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거짓말의 근거는 한국인의 위증죄 통계, 무고 건수, 1인당 민사소송 건수 등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정치, 학문, 사법 등에도 거짓말의 문화가 만연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문화의 저변에는 물질주의와 샤머니즘이 있는데, 이런 구조 하에서는 민족주의가 발흥할 수 없고 종족주의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본서가 학술서를 표방한 점을 감안하면 조금 당혹스러운 서문이다.

하지만 목차와 본문을 다시 확인해보면 이 서술은 치밀하게 의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주요 목차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 프롤로그 거짓말의 나라 △1부 종족주의의 기억 △2부 종족주의의 상징과 환상 △3부 종족주의의 아성, 위안부 △에필로그 반일 종족주의의 업보 순서로 전개된다. 세부 목차에는 황당무계 『아리랑』, ‘강제동원’의 신화, 후안무치하고 어리석은 한일회담 결사반대, 백두산 신화의 내막, 쇠말뚝 신화의 진실, 반일 종족주의의 신학 등이 두드러진다. 목차에서 드러나듯 학술서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난무한다. ‘기억’, ‘상징’, ‘환상’, ‘거짓말’, ‘황당무계’, ‘신화’, ‘업보’ 등의 용어는 본문에서 종족주의의 신화를 격파하는 레토릭으로 기능한다. 이런 서술 전략에 따라 심도 깊은 역사적 실증과 치열한 토론을 통해 논의되어야 할 다양한 논제들은 일도양단식으로 명쾌하게 정리되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 비판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있기에 가능한 방식일 것이다.

‘반일 종족주의’라는 제목에서도 드러나지만 본서는 흔히 많이 쓰는 반일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쓰지 않고 굳이 종족주의라는 다소 일차원적이면서 인종주의적인 개념을 내세운다. 종족주의라고 하면, 에스닉 그룹(ethnic group) 내지 네이션(nation) 등의 개념을 떠올릴 수 있는데, 본서에서 언급하는 종족주의는 학문적인 개념이 아니다. ‘반일 종족주의’란 일종의 레토릭(rhetoric)이기 때문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간다면 그 의도가 명징하게 드러나는 것은 물론 이 텍스트의 특징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 분석과 비평 : 자가당착과 연구 성과의 자의적 전유

전체 줄거리를 요약하면 “한국인은 거짓말하는 종족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반일 종족주의가 다양한 기억과 상징조작 등에 의해 만연하게 되어 한일관계가 파탄나고, 그 업보는 한국 사회를 옥죄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본문에 들어가서는 반일 종족주의 하의 ‘그릇된 기억과 상징 및 환상’을 논파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릇된 기억에는 토지조사사업의 40% 수탈설, 노무동원과 육군특별지원병제의 강제성 등이 열거되었는데 이 내용들을 다양한 근거를 통해 비판하고 있다. 상징과 환상의 대표적인 사례는 독도와 백두산이다. 본서에서는 독도의 역사적 근거가 되는 우산국은 존재한 적이 없는 환상의 섬으로 간주하였고, 민족의 영산으로 일컬어지는 백두산의 신성화는 근대의 산물이라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위안부 문제는 ‘반일 종족주의의 아성’으로 규정하고 별도로 한 장을 할애하여 비판하고 있는데, 핵심은 공창제론과 자발적 성노동자론이다. 이렇게 ‘종족주의적 환상’에 입각한 ‘그릇된 기억’을 비판한 후에 반일 종족주의의 업보를 성찰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본문 내용 중 학계 연구와 대중의 역사 인식이 괴리된 데서 발생한 간극을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될 점도 있다. 쇠말뚝 신화와 민족 상징으로서의 백두산 신성화에 대한 비판이 대표적이다. 대한제국기 국망의 책임을 군주 고종에 두는 관점도 동의의 여지가 있다. 토지조사사업의 무신고 수탈설 비판은 본서의 입장이 한국사학계의 최근 연구성과와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역사학계에서는 기왕의 민족주의적 연구경향을 반성하고 그에 기초해 다양한 실증 연구를 축적해 왔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본서는 ‘부분적’으로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본서는 문제의식과 서술 방향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기에 의미보다는 한계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 이하에서는 그 지점들을 지적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자가당착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대표적으로 현대 한국과 한국인의 특성에 대해 거짓말, 샤머니즘, 종족주의로 격하하는 부분이다(샤머니즘 자체가 격하의 대상이 될 수는 없지만, 본문에서 그런 의미로 쓰고 있기에 그 서술에 입각해서 논의를 전개하겠다). 주지하듯 본서는 이승만 학당의 유튜브 강의에서 비롯되었다. 대표저자인 이영훈을 비롯한 필자들 역시 이승만과 박정희, 군사정권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성취를 긍정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승만이 세우고 박정희와 전두환 등이 발전시킨 대한민국을 격하시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해방 이후 1997년 정권교체 이전까지 50년 동안 이승만 정권을 계승한 정당이 권력을 잡았고 ‘반일 종족주의’는 바로 그 시기에 절정에 달했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또한 그토록 극찬하는 국부 이승만 또한 대표적인 반일 민족주의자이다. 한미일 삼각동맹을 이루기 위한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러울 정도로 반일정책을 펼쳤던 이승만의 정세 인식과 외교론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본서의 표현대로라면 이승만이야말로 ‘반일 종족주의’의 화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다음으로 본서에서 가혹하게 비판하고 있는 한국사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부분이다. 대표적으로 토지조사사업에 관한 연구를 들 수 있다. 본서에서 비판한 토지조사사업 무신고 수탈설은 한국사학계에서 예전부터 비판되고 있었다(배영순, 1988). 그리고 집필자인 이영훈 역시 그 지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영훈이 1993년에 발표한 논문(토지조사사업의 수탈성 재검토)에서는 배영순의 선행연구를 아래와 같이 언급하고 있다.

“신고주의의 약탈성에 대해서는 배영순 교수가 그 실증적 근거를 전면적으로 문제시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라고 생각된다.”

해당 논문에서 이영훈은 무신고 수탈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배영순의 실증적 연구성과를 활용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의 선봉에 선 연구자의 연구성과를 받아들인 셈이다.

또한 백두산에 오른 18세기 조선 선비들이 소중화의 관점에서 백두산을 위치시켰다는 논의는 당대의 역사적 맥락에 부합하는 서술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 또한 선행연구에서 지적된 바 있다. 조선후기 북방고대사 인식을 중화론의 맥락에서 분석한 연구성과가 일찍부터 제출되었던 것이다(허태용, 2013). 공창제와 위안부의 연결성을 언급하면서도 성녀/창녀의 이분법을 극복해야 한다는 논의도 이미 다양한 논자에 의해서 지적되었다(宋連玉, 2000; 박정애, 2009; 2015 外). 또한 고종 개명군주론은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학설이며 지금도 통설적 지위를 점하고 있지는 않다. 당연히 개명군주론 비판의 논리 또한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제출되어 있다. 더 나아가 post-colonial study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여 국사(national history)를 재구성하자는 논의에 동참했던 한국사 연구자들의 작업도 다양하게 제출되어 있다(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2004; 역사학의 세기, 2009; 근대 한국 제국과 민족의 교차로, 2011 등).

저자들 역시 상기한 연구성과들을 섭렵한 점은 참고문헌 등에서 나타난다. 참고문헌에 없었더라도 이 연구들의 존재를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본서의 저자들이 기존 한국사학계의 연구성과를 참고했고 그 성과를 이해하고 있음에도 기존 한국사 연구의 성과를 싸잡아서 ‘반일 종족주의’로 귀결시키는 것은 자가당착이면서 의도적 누락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보는 시각의 문제점이다. 본서에서는 ‘우리 안의 위안부’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 전제 하에 조선시대 기생→일제시대 공창제와 위안부→한국전쟁기 위안부→해방 이후 ‘양공주’ 등을 연결시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식민지기 위안부는 돌출적인 것이 아니며 역사적으로 지속된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라고 언급하면서 ‘우리 안의 위안부’를 보자고 호소한다.

얼핏 보면 참신한 문제의식인 것 같지만 사실 가부장제의 연속성 관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인식하는 문제의식은 이미 역사, 사회학, 여성학의 연구성과에서 많이 논의되었다. 한국전쟁기 위안대 설치와 위안부 동원, 박정희 정권기 ‘양공주’의 국가적 동원, 해방 이후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회적 소외 등을 식민지기와 연속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연구들은 위안부 문제를 보는 틀을 확장시키고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의 한계, 성녀/창녀의 이분법 등을 넘어서는 문제의식을 촉구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본서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위안부 공창제론’의 도구로 치환시켜 극우적 언설을 강화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성녀/창녀의 이분법을 넘자는 문제의식과 ‘매춘부일 뿐이다’라는 주장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결정적으로 위안소 제도 자체가 지금 기준으로 야만적인 제도이지만 당시 기준에서는 문제가 아니라는 서술은 본서의 입장이 어디에 놓여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독일 항복 직후 독일여성에 대한 연합군 측의 집단 강간이 당시 문제되지 않은 것처럼, 일본군 위안소도 당시에는 문제가 아니었는데, 20세기 말부터 새로 문제가 되었습니다(372쪽).”

‘위안부’ 문제 뿐 아니라 2차세계대전 당시의 전쟁성범죄를 대하는 저자들의 관점이 그대로 투영된 서술이라고 하겠다. 본서의 학문적/정치적 지향과 문제의식에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일 종족주의’ 여파와 과제

상술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본서가 일정한 대중적 폭발력을 가지는 것을 쉽게 간과하면 안 된다. 한국에서 10만 부, 일본에서 3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는 소식은 ‘반일 종족주의’의 여파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역사 대중화가 여전히 민족주의 감수성을 과도하게 투영하는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한국사 특히 일제시대에 대한 많은 과장된 오해들 예컨대 말뚝 신화와 무신고 수탈설, 장서 51종 20만권 분서설 등은 아직도 많은 사람이 믿고 있다. 더불어 여전히 한국사에 관한 ‘극단적 신화’가 팽배한 것도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낙랑군 재요서설 등으로 대표되는 대고조선론을 굳건하게 믿는 쇼비니스트의 활동이다. 이들이 정계와 언론계 등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쳤던 것도 이런 정서와 관련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해방 이후 한국사 연구 성과 및 교육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본서는 그 지점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파고들었는데, 학문적으로는 극복되었지만 여전히 잔존해있는 ‘신화’들을 고발하는 전략으로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반일 종족주의’ 여파를 무시 일변도로 대응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이 기회에 그간 한국사학계의 연구성과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동시에 연구사적 진전과 대중의 역사인식 사이의 간극에 대해서 논의하는 장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런 작업이 전제될 때,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유의미한 비판 담론도 생성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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