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1

김규항 반일 말고 반삼성 - ‘친일파’라는 말부터 틀려먹었다. ‘일제 부역자’라고 하자.

김규항
3 hrs · Public
반일 말고 반삼성

한국인의 반일 감정은 일제 식민지(강점기) 경험에 기인한다. 그런데 일제 식민지 경험은 일본 민족 전체와 조선 민족 전체 사이에서 일이었는가? 

모든 일본인은 식민지 착취의 결실을 고루 누리지 않았고, 모든 조선인은 착취와 핍박에 시달리지 않았다. 다수 일본 인민은 조선 인민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전쟁에 동원되고 착취당했다. 한국의 지배 계급은 대체로 일본 제국주의 지배계급과 이해를 같이 했다. 
이를테면, 일본인 위안부든 조선인 위안부든 부자 여성은 단 한명도 없다. 일제의 식민지 조선 착취는 일본 민족과 한국 민족 사이의 일이 아니라 일본 지배계급과 한국 인민 사이에서 일이었다. ‘계급성’이야말로 친일의 실체다. 
조선 지배계급은 해방 이후에도 대체로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했다. 그들이 취한 전략이 일제의 식민지 조선 착취가 갖는 계급적 성격을 ‘민족의 이름으로’ 삭제한 것이다. 이승만은 경무대에 입주하자 손수 망치를 들고 다니며 일제 전기 콘센트를 부술 만큼 반일을 내세웠다. 그러나 훨씬 더 큰 망치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부수었다. 박정희는 반일을 내세우고 집권 기간 동안 일본 문화를 금지했지만, 일본 극우세력의 정치적 지도를 받고 식민지 착취 역사를 무마하는 조건으로 막대한 정치자금을 받았다. 
그 시기 동안 ‘친일 세력 반대’는 진보적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일제에 부역했던 지배계급이 해방 이후에도 기득권을 보존한 채 지배 계급이 되었으므로, 친일 세력 반대란 다수 인민의 삶을 반영하고 저항을 담는 계급적 맥락이 있었다. 친일 세력은 해방 후 이승만에서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반공 극우 독재 세력의 주축이기도 했다. 친일 세력 반대는 자연스럽게 ‘친일 독재 세력 반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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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민주화 이후 모든 상황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친일 독재 반대 세력, 즉 민주화운동 세력이 투쟁 경력과 역사적 정당성이라는 훈장을 달고 시스템 내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들은 ‘수구 기득권 세력’과 사회 문화 영역에서 경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천년대 들어설 무렵엔 경제 차원에서도 맞서게 되었고, 그들의 세 번째 정권이 진행 중인 현재 그들은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전 영역에서 수구 기득권 세력을 넘어선 상태다.(하다못해 민주당 의원 평균 재산도 미통당보다 많다.)

이제, 친일 독재 반대 세력이 지배계급의 주류인 상태에서 ‘친일 독재 세력 반대’란 무엇인가? 

더 이상 진보적 의미를 갖지 않고 다수 인민의 삶을 반영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한 가지 의미만을 갖는다. 
두 기득권 세력끼리의 전쟁에서 신흥 기득권 세력이 상대를 공격하는 선동 구호이다. 

조국과 윤미향이 보여주듯, 기득권 전쟁은 민주화 운동 시절 대립하던 민중민주(PD)와 민족해방(NL) 세력이 반일 깃발 아래 하나가 되는 코미디를 연출한다. 수구 기득권 세력이 우익으로서 본질인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접고, ‘반일 종족주의’를 비판하는 것 역시 기득권 전쟁이 만든 코미디다. 

두 세력의 기득권 전쟁은 역사도 이념도 진실도 양심도 팽개친 순수한 이전투구의 난장판으로, 코로나19 시대를 꾸역꾸역 버텨내는 많은 사람들을 더욱 궁지로 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친일 독재 세력’ ‘토착 왜구’ 같은 말을 늘어놓거나 따라 하는 사람은 교활한 도둑이거나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지금 현재 ‘40년 전 친일 독재 세력’에 해당하는 것, 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현재 다수 인민의 삶을 거스르는 힘과 그 뼈대는 무엇인가? 그것은 ‘국가와 결합한 재벌(독점자본)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박정희 시절의 ‘국가가 관리하는 독점자본 시스템’과도 다르다. 박정희의 그것이 국가 전체의 부를 늘리는 효율적 방법으로 소수의 독점자본을 국가 정책 차원에서 육성했다면, 이건 재벌의(그 비중과 영향력을 고려할 때 그냥 ‘삼성의’라고 해도 별 무리는 없다) 이윤추구와 축적을 국민경제의 절대선으로 떠받든다. 이 시스템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권으로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비판하고 반대할 건 제국주의와 아무 관련 없는 여느 일본인이나 실체도 모호한 토착 왜구가 아니라 바로 이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가, 어떻게 바꾸는가, 에 대부분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반일 말고 반삼성을 말하자.


Comments
이권희
좋아요 100개 드리고 싶은 글입니다.
 · 3 h
이권희
공유해요~.
 · 3 h
Kevin Kim
토착왜구란 말이 입에 착착 붙는데 어케 안해요 ㅎㅎ
분명 일본 극우와 뜻을 함께하는 것들이 있는데..
인민은 안중에도 없고..그저 지들 욕심대로 사는 놈들 ㅎㅎ
 · 2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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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김규일 토착왜구 말하는 세력은 인민이 안중에 있다는 이야기?
 · 2 h
Kevin Kim
김규항 나 같이 인민을 늘 아끼는 사람 ㅎㅎ
 · 2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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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김규일 ^^ 규일인 그 세력도 비판적이잖아. 그말은 원래는 없던 말이고 그 세력이 정치적 의도(기득권 전쟁)로 만든 말인데 굳이 쓸 이유가 있는지?
 · 2 h
Kevin Kim
김규항 형도 알다시피 나의 사고의 깊이가 얕아서 페친들과 아무 생각없이 쓰고 있어요 ㅎㅎㅎ
그러니까 자주 글을 쓰라고!!!
어긋나지 않게 ㅎㅎㅎ
 · 1 h
Kevin Kim
김규항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고 주로 비판적이지만 나경원류를 보면 왜구는 존재한다고 봐요. 토착왜구 ㅋㅋㅋ
류영춘부류도 ..
 · 1 h







김규항
2 hrs · Public
‘친일파’라는 말부터 틀려먹었다. 

친일이 왜 문제인가? 일본 사람과 친하고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가 되는 건 일본과 친했는가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 인민을 착취하는 역사에 부역했는가’이다. 친일파는 이 점을 모호하게 만든다. 

앞글에서 말한 “일제의 식민지 조선 착취가 갖는 계급적 성격을 ‘민족의 이름으로’ 삭제”하는 데 맞춤한 말이다. 

식민지나 피점령 역사를 비교적 제대로 청산했다는 나라 가운데 ‘친일파’처럼 부주의하고 모호한 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 예를 들어 프랑스인들이 나치 부역자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은 ‘콜라보’다. 콜라보는 ‘콜라보라퇴르’(collaborateur, 협력자)에서 나온 말이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협력자를 표현할 땐 사용하지 않는다. 

‘친일파’에 해당하는 ‘게르마노필리’(germanophile, 친독파)는 단지 독일이나 독일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뜻한다. 모든 문제가 ‘친일파’라는 말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이 모든 문제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건 사실이다. 

‘친일파’라 말고 ‘일제 부역자’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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