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0

권혁범 윤평중 교수가 고종석 선생과 내 글에 반론을 제기했다.

 윤평중 교수가 고종석 선생과 내 글에 반론을 제기했다. 재반론을 쓸지 말지 생각  중이다.  (사실 고샘과 나는 정치적 입장이  매우 다른데  한패로 몰렸다.)

그가 공개한 글을 내 페친들을 위해서 아래에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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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1956년생. 미국 남일리노이 주립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신대학교 대학원장 및 학술원장 역임. 

캘리포니아 대학교(버클리) 역사학과 방문학자, 미시간 주립대학교 철학과 객원교수, 뉴저지 럿거스 대학교 정치학과 풀브라이트 학자로 연구. 

2012년 이후 현재까지 조선일보에 ‘윤평중 칼럼’을 쓰고 있고 

2014년 이후 지금까지 KBS 객원해설위원. 

현재 한신대학교 철학과 교수. 

저서로 『푸코와 하버마스를 넘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과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담론이론의 사회철학』 『논쟁과 담론』 『극단의 시대에 중심잡기』 『윤평중 사회평론집』 『급진자유주의 정치철학』 『시장의 철학』 『국가의 철학』 등이 있고, 공저로는 『주체개념의 비판』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공정과 정의사회』 『신일철, 그의 철학과 삶』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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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색>,<자유와 21세기적 문제군>,<촛불 너머의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 총 26종 (모두보기)



한 '조선일보 칼럼니스트'의 변론(辯論)

1. 두 지식인(고종석 선생-권혁범 교수)이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나의 행보가운데 조선일보 기고행위를 강하게 비난했다. 고 선생과 권 교수의 입론은 간단하다. 내가 '극우 신문인 조선일보의 사실 왜곡과 선전선동의 미화원'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비판이다. 내가 극우 반동세력의 이데올로그 역할을 맡아왔다는 비난이다.

2. 고 선생과 권 교수의 입론은 2000년대초 유행했던 '안티 조선운동'의 조야(組野)한 선악 이분법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당시 '안티 조선'을 선도한 강준만 교수의 문제제기가 갖는 의의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특정 신문 기고를 '악에 부역한 망동'이라는 식으로 재단하는 강 교수의 단순논리가 매우 난폭할 뿐 아니라, 민주적 다원사회의 공론장을 위협한다고 반론한 바 있다. 

나는 보수지가 됐건 진보지가 됐건 특정 신문을 악(惡)으로 여기는 선정적 행태에 대해 그 당시에도 결연히 반대했고 지금도 반대한다. 

3. 고 선생의 비판은 특히 기본을 결여하고 있다. 나는 칼럼니스트이기 이전에 철학자인데(나는 11권의 단독저서와 30여권의 공저를 썼다), 나의 칼럼집 정도를 읽고 나를 다 파악한 듯이 여긴다. 그에겐 논객을 비판할 때 요구되는 최소한의 지적 성실성도 없다.

내가 "조선일보와 탐욕스럽게 결탁"한 "기회주의적 처신때문에 온전한 지식인에 미달한다"고 고 선생은 주장한다. 내 스스로 온전한 지식인이라고 여긴 적이 한번도 없으니, '조선과 탐욕스럽게 결탁한 기회주의자'라는 게 그의 비판(비난?)의 핵심인 셈이다.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나는 칼럼니스트 데뷔를 94년도에 한겨레신문에서 했다. 당시 한겨레 얼굴 칼럼이던 '한겨레논단'에 박원순 변호사와 격주로 3개월을 썼다. 그땐 고 선생도 한겨레에 있었을 때인 것 같은데 고 선생 논리라면, 내가 한겨레와 '탐욕스럽게 결탁'하면서 칼럼니스트로 데뷔한 것이 된다. 

그후 지금까지 나는 조선, 중앙, 동아, 경향, 한국, 문화, 세계, 경제신문등 거의 모든 중앙 일간지에 칼럼과 좌담 등을 실어왔는데 이것도 해당 매체들과 '결탁'한 것인가? 이 모든 신문들에 내가 먼저 글을 싣겠다고 한적은 없었고 언제나 매체쪽에서 요청해온 데 응했을 뿐이다. 나는 매체와 상관없이 언제나 '나의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4. 조선일보는 2012년부터 내게 '윤평중 칼럼'이라는 고정 꼭지를 주었다. 3주에 한번 쓰는 이 칼럼에서 나는 내가 쓰고싶은 대로 쓰는 온전한 집필의 자유와 권리를 누린다. '윤평중 칼럼'의 내용과 표현을 두고 신문사 쪽과 갈등했을 때도 있었으나 나는 한번도 내 칼럼을 두고 양보한 적이 없다. 

내 칼럼을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조선일보 애독자들도 많다. '빨갱이'라는 비난도 댓글엔 넘쳐난다. 그러나 조선쪽에서 이런 독자들 반응을 전달하면서 내게 압력을 넣는다거나 한적은 없었다. 

5. 고 선생 말대로 내가 "조선일보와 탐욕스럽게 결탁한 기회주의자"라면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고료? 물론 나는 고료를 받는다. 그러나 그 고료는 다른 보수지에서 받은 고료와 비슷하다. 

명성? 물론 나는 '조선일보 칼럼니스트'로 약간의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조선의 제안이 더 빨랐을 뿐 만약 다른 신문에서 '윤평중 칼럼' 기고 제의를 먼저 해왔더라면 그에 응했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에서 '윤평중 칼럼'을 쓰기 시작한 2012년 이래 나는 진보지를 포함해 숱한 신문들의 칼럼 집필 요청을 일관되게 사양해왔다. 난 그걸 겹치기 출연을 고사한  상도의(商道義)라고 여겼다. 다른 신문들엔 윤평중 칼럼과 겹치지 않는 대담이나 특별기고, 그리고 주간지나 월간지 원고 청탁에 응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내 나름의 '절제'는 결과적으로 나를 '조선일보 칼럼니스트'로 제한하는 사회적 이미지를 낳게 된다. 극단적 진영대립이 사회적 양식(良識)과 균형감각을 삼켜버리는 한국의 야만적 픙토에서 특정 진영에 자동적으로 귀속돼버리게 된 것이다.

이런 진영귀속 효과는 철학자로서의 나의 이미지에 부정적 효과를 끼쳤다고 나는 느낀다(물론 이건 나의 오해일 수도 있다). 지식사회와 (철)학계의 도덕적-학문적 헤게모니는 대부분 진보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목은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며, 사실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글의 가치는 당파성이 아니라 그 설득력과 정합성, 매력에 의해 판정되기 때문이다. 

6. 권혁범 교수의 비판은 그의 성품을 반영하듯 젊잖고 온건하다. 그러나 앞서 얘기했듯 나는 그가 2000년대초의 안티 조선 노선에 안이하게 편승하고 있다고 본다. 

권 교수는 특히 문재인 정권이 저지른 민주주의 해체와 가치규범 파괴의 중대성을 경시하고 있다는 게 내 판단이다. 그가 요새 내 칼럼에서 느낀다는 "우경화"의 기미는, 내가 문 정권을 계속 강력하게 비판하는 데 대해 그가 느끼는 '불편함'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럼에도 나는 그의 견해를 존중한다. 그와 나 둘 중에 누구 판단이 더 설득력이 있었던가 여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아마 5년 안엔 측정이 가능할 터이다. 

7. 나는 1994년 한겨레신문에서 2021년 조선일보에 이르기까지 매체를 의식하지 않고 칼럼을 써왔다(고 자부한다). 어떤 경우에도 나는 특정 매체나 그 매체의 독자들에게 영합하지 않았다. 강연 때도 주최측에 쓴소리를 하는 것을 나의 작은 원칙으로 삼아왔다. 

기본적으로 나는 '홀로 있는 者'다. 코로나 이전에도 나는 사람 만나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집돌이'였다. 

어떤 진영도 편들지 않고 누구에게도 영합하지 않는 태도 덕분에 칼럼니스트로서 내가 '장수하고 있다'는 게 내 입장이다. 물론 나의 이런 자기규정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자유롭게 부동(浮動)하는' 독립 지식인으로서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이 목표라고 나는 농반진반으로 얘기하곤 한다. 물론 나는 내 글의 밀도와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순간 공론장에서 자진 퇴장할 것이다. 그게 칼럼니스트로서 내 소박한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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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선생 페이스북(2021. 6. 17)

윤평중 교수가 오늘 정년 퇴임을 했나 보다. 윤 교수의 저서는 두 종밖에 못 읽어봤지만, 신문 칼럼을 자주 접해서 그의 생각을 비교적 소상히 아는 편이다. 

그의 생각은 이성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테제에서도 보듯, 성찰과 회의를 사유의 앞줄에 세운다는 특징이 있다. 행동하기 전에 거듭 이성에 조회해 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회색인이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지만, 내 생각과 많이 닮았다. 

그러나 그는 조선일보와 탐욕스럽게 결탁해 그 신문의 극우성을 가려준 미화원이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과리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그리하여 조선일보는 '꽃을 든 괴물'이 되었다. 

한겨레가 망가지고 조선일보가 돋보이는 지금이라고 해서 그의 과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태가 사라져도, 그 사태가 있었다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명민했지만 기회주의적이었던 그  처신 때문에, 그는 온전한(full-fledged) 지식인에 미달한다.

 말이 사나워진 것에 대해 윤 교수에게 사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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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범 교수 페이스북(2021. 6. 18)

조중동에 아주 비판적이다. 특히 C일보에 대해 더욱 그렇다. 대학선생으로 있는 동안 '기계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H신문과 같이 구독/열독했다. 심지어 같은 주제에 대해 두 신문의 기사나 논설을 비교하는 과제를  내주기도 했다. 그러나 아침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정년이 다가오면서  올해초부터 C일보를 끊었더니 스트레스도 덜 받고 무엇보다 아침에 여유가 생겼다.

 가끔씩 뛰어난 기획 기사나  칼럼을 접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합리적인 보수'와는 거리가 먼 신문이다.    정기적으로 쓰는 칼럼이나 전면 인터뷰 요청의 유혹을 받아본 적이 있다. 약간의 고민 끝에 사양했다. 

 C일보의 오피니언 코너에서 거의 유일하게 읽을만 한 것은 Y 교수(이제 퇴임한다)의 기명 칼럼이었다. 현실주의자로서의 사유, 풍성한 어휘력, 빈틈없이 논리적인 구조 구축에 감탄했다. 그의 전공이 사회철학/정치철학인 것과 관련이 있다.  (물론 나와는 정치적 관점이 많이 다르다고 본다). 그 중에서도 몇년전에 그가 쓴 5.18 관련 칼럼은 군더더기 없고 흠잡을데 없는 글이었다. (그는, 칼럼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점점 우경화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의 글은 C일보의 이분법적인 세계관, 극우성향,  사실 탐구와는 거리가 먼 선전선동성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한다. 그는 어떤 인터뷰에서 한번도 자신의 입장을 타협한적이 없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가 간과하는 것은 그의 글과 논리가 어떤 맥락,  즉  정치적 맥락의 일부로 자리잡는다는 점이다. K선생의 표현처럼 그가 '기회주의적' 처신을 해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소신을 갖고 자신의 입장을 밀고 나가는 우파 지식인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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