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9

‘귀신이 온다(鬼子來了)’ : 신동아

‘귀신이 온다(鬼子來了)’ : 신동아

영화와 함께 떠나는 중국여행 ③

‘귀신이 온다(鬼子來了)’
농민의 논리, 국가주의 앞에 무너지다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입력2005-11-11

‘귀신이 온다(鬼子來了)’
영화 ‘귀신이 온다’의 주인공 마다산은 자루 속에 든 일본군을 보호해줬으나 결국 그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

오랑캐를 뜻하는 말, ‘귀신’

아편전쟁(1840∼42)이 일어나고 외국인이 몰려들자 중국인은 외국인에게 귀신 ‘귀(鬼)’자를 붙여서 불렀다. 처음 영국인이 광둥에 장사를 하러 왔을 때 밤에도 쉬지 않고 바쁘게 일하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광둥 사람들은 밤에도 낮처럼 일하는 영국 사람을 보고 ‘귀신(鬼子)’이라고 불렀다. 중국은 농업 국가여서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고, 잔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심야 골동품 시장을 ‘귀신 시장(鬼市)’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연유하여 밤에도 낮처럼 활동하는 영국 사람을 귀신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데 점차 ‘서양귀신(洋鬼子)’ ‘일본귀신(日本鬼子)’ 같은 형태로 쓰이면서 ‘귀신’이 오랑캐를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 영화 제목에서 ‘귀신’은 일본인을 가리킨다. ‘일본귀신’이 중국 외딴 농촌에 나타난 것이다.

배를 타고 물에 뜬 장성을 지나가자 산기슭에 조그만 마을이 나타났다. 영화의 무대가 된 곳이다. 장성이 병풍처럼 마을을 에워싸고 있다. 푸른 산과 마을, 장성, 그리고 마을 앞에 펼쳐진 호수가 한 폭의 그림 같다. 영화 촬영을 위해 지은 세트라지만 방금 전까지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듯하다. 골목에 풀이 우거져 있긴 하지만 영화에서 본 광경 그대로다.

입장료 10위안(1300원)을 냈다. 영화가 유명해지고 이곳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인근 마을 사람들이 이 세트장을 관리하고 있다. 옥수수를 파는 할머니가 따라온다. 그러면서 이곳저곳을 설명한다. 이렇게 나이 든 할머니도 ‘귀신이 온다’를 봤나 싶어 물었더니 영화를 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설명을 들은 값으로 옥수수 4개를 10위안 주고 샀다. 점심용으로.

영화는 농촌 마을에 사는 주인공 마다산(馬大山)의 집에 갑자기 낯선 사내가 들이닥쳐 포대 두 개를 던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내는 권총으로 위협하면서 섣달 그믐날 찾으러 올 테니 그때까지 자루를 잘 보관하고 있으라고 하고는 사라져버린다. 두 개의 포대 안에는 각각 일본 군인과 그의 중국인 통역이 있었다.



마다산과 그의 처는 사내가 찾으러 올 때까지 두 사람에게 밥을 해먹이며 잘 ‘보관’하고 있으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사내는 약속한 날짜가 지나도록 찾으러 오지 않는다. 마다산은 결국 마을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리고 마을 사람들 모두 전전긍긍한다. 마을을 점령한 일본군에게 알리자니 자루를 맡긴 사내가 돌아오면 어쩌나 두렵고, 감추고 있자니 일본군에게 발각되면 큰일이다. 다행히 일본군에게 발각될 고비를 넘기면서 6개월이 흐른다.

사실 중국 항일 영화의 전형적 패턴으로 보자면 마을 사람들은 일본군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일본 군인 하나야와 그 앞잡이인 통역관을 진즉 살해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마을 사람들은 그러지 못한다. 마을의 안전이 위태로우니 살해하자고 의견을 모으지만, 마다산은 결국 죽이지 못하고, 장성에 숨겨놓고 온다. 마다산이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여?”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이느냐? 마누라 뱃속에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 내가 사람을 죽이느냐?”

마다산에게 일본 군인 하나야는 일본인이기 전에 사람이다. 이러한 ‘개인의 기준’은 마을 사람들이 일본 군인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농민의 기준’으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심문 과정에서 일본군인이 원래는 농민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로써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 풀어지자 일본군인 하나야가 제안을 한 가지 한다. 자신을 풀어주면 일본 군대에 돌아가 양식을 가져다주겠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마을 사람들은 하나야의 제안을 선뜻 반기고, 약속 내용을 문서로 만들어 정식 ‘계약’을 체결한다. 침략자 일본인과 피해자 중국인이라는 국가의 기준, 국민의 기준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나아가 농민과 농민의 기준으로 계약을 맺고 약속을 한 것이다.

많은 중국인은 이러한 내용의 영화를 보고 중국 농민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평했다. 그러나 마을에 들어온 일본군이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하나야가 중국인의 살가죽을 벗기거나 여자를 겁탈한 것도 아니어서 일본군이면 무조건 처형해야 한다는 국가의 논리, 국민의 논리가 농민에게 먹혀들 리 없다.

마을 사람들은 국민의 논리가 아니라 농민의 논리, 생존의 논리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 그래서 양식과 일본군인을 맞바꾸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일본에 대해 분노와 적대감을 갖는 중국 국민이기에 앞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다급한 농민이다. 양식과 일본 군인을 맞바꾸기로 한 결정은 농민의 진실한 논리이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그렇다. 항일 영화의 전형적인 패턴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충분히 파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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