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9

중국에 이렇게 발칙한 영화가 있다니... <귀신이 온다> - 오마이스타

중국에 이렇게 발칙한 영화가 있다니... <귀신이 온다> - 오마이스타


중국에 이렇게 발칙한 영화가 있다니... <귀신이 온다>

[중국영화로 중국문화 읽기8] 인간 내면에 살고 있는 선과 악의 귀신
김대오(dae55555)편집김윤정(cascade)
17.03.05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침략 전쟁은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지배국가와 식민지 양측의 적대적 민족 감정은 오랜 기간 지속된다. 우리에게 반일감정이 그러하듯이.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일제 강점기를 희화화한 영화가 공감을 얻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영화 제작의 규제와 검열이 엄중한 중국에서 발칙하게도 일본 침략기의 양민 학살을 유쾌한 촌극풍 블랙코미디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장원(姜文)이 주연, 감독을 맡은 영화 <귀신이 온다(鬼子來了)>는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장원감독은 2000년 칸영화제에 몰래 출품해 심사위원 대상을 받지만, 중국에서 영화 상영 금지는 물론, 7년간 감독 활동 정지 처분을 받아야 했다.

영화 <귀신이 온다>는 흑백영화라는 점, 전쟁과 생명, 선과 악을 바라보는 각각 다른 시선을 다룬다는 점에서 일본 영화 <라쇼몽>을 닮았다. 주인공 마다산(馬大山)은 루쉰(魯迅)이 중국인으로 형상화한 농민 '아Q'를 떠올리게 한다.

서양 열강, 군벌, 항일 시기 숱한 전쟁을 겪어낸 중국 농민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생명'의 가치이고, '곡식 두 수레'로 대변되는 먹는 문제지, 민족, 국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을 위협하는 포로를 차마 죽이지 못해 엉엉 우는 중국 농민과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가볍게 여기며 학살을 일삼는 일본군, 그들의 눈에 비치는 생명과 전쟁의 무늬, 빛깔은 다를 수밖에 없다. 영화 <귀신이 온다>는 이런 전제를 3D 안경처럼 쓰고 들여다봐야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 주인공 마다산 무지한 농민의 형상과 인간의 선과 악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 중국영화합작제작사



▲ 영화의 배경 시펑커우(喜峰口) 장성 시펑커우에는 영화 세트장이 보존되어 있고 장원 마을로 불린다. ⓒ 중국영화합작제작사
음력 1944년 섣달 보름날 밤, 일본군 점령지인 허베이(河北)성 시펑커우(喜峰口) 농촌, 마다산의 집에 정체 모를 자루 두 개가 배달된다. '나(我)'라고만 밝힌 사내는 총을 겨누며 정월이 되면 찾으러 올 테니 잘 보관하라고, 일본군에 신고하거나 포로를 죽이면 마을 사람 전체를 몰살시키겠다고 엄포를 놓고 사라진다. 자루를 열어보니 일본군 병사 하나야와 중국 통역관 동한천(董漢臣)이다. 순박한 마을 사람들은 근처에 주둔해 있는 일본군 눈을 피해 두 명의 포로에게 상처를 치료해주고, 귀한 밀가루를 구해 만두를 만들어 대접하며 인간적 도리를 다한다. 그러나 정월이 오고, 6개월이 지나도 포로를 찾으러 온다던 '나(我)'는 나타나지 않는다. 영화 도처에 닭, 돼지, 나귀 등이 예상치 못한 유머 코드로 등장하며 블랙코미디의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웃음 너머엔 서글픈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 하얀(白) 선(善)

농민 마다산은 비록 자신들을 억압하는 일본군 포로지만, 책임감에 먹을 것을 가져다주며 마을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일본군 하나야는 천황의 군인으로 명예롭게 죽겠다고 객기를 부린다. 국가, 이념에 포섭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대비가 극명하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는 쪽과 생명을 경외하는 쪽의 차이 또한 극명하다. 6개월이 지난여름 무렵, 포로들이 닭을 이용해 탈출을 시도하자, 결국 마을 대표는 마다산에게 포로를 죽이라고 하지만, 마다산은 차마 죽이지 못하고 포로를 만리장성에 몰래 숨기고, 돌봐 준다. 사람이 짐승은 죽일 수 있어도, 사람을 죽이면 그 귀신이 평생 자신을 저주하고, 괴롭힌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때 묻지 않은 그 순수한 선(善)의 세계에 거대한 물리적 충돌이 몰려온다.




▲ 포로를 심문하는 마을 사람들 전쟁, 국가이데올로기에 포섭되지 않은 순수한 농민들이다. ⓒ 중국영화합작제작사



▲ 일본군 병사 하나야와 통역관 동한천(董漢臣) 두 명의 포로는 죽기 위해, 살기 위해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인다. ⓒ 중국영화합작제작사
# 검은(黑) 악(惡)

마다산은 자신이 포로를 죽일 수 없어, 목이 떨어지는 줄도 모르게 목을 잘 벤다는 6영감을 찾아가 포로들을 편안히 죽여줄 걸 청하지만, 그 또한 실패한다. 이때 그토록 죽고자 했던 하나야는 삶의 욕망을 되찾아 계략을 꾸민다. 즉 자신들을 석방해주면 지금까지 돌봐 준 대가로 곡식 두 수레를 마을에 주겠다는 것이다. 마을사람들은 이를 수용한다는 계약서를 쓰고, 마다산은 일본군 병영으로 곡식을 받으러 간다. 두 명의 포로가 복귀 신고를 하는 엄중한 상황에 곡식을 싣기 위해 몰고 온 나귀가 일본군영의 말 위에 올라타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일본군 대장은 하나야를 명예롭게 죽지 않았다고 체벌하지만, 그가 쓴 계약서를 보고 일본군은 명예를 지킨다며 곡식 여섯 수레를 내어준다. 그리고 일본군과 마을 사람들은 다 함께 잔치를 벌인다. 흥이 무르익어 갈 무렵, 일본군 대장이 하나야에게 아는 중국어를 해 보라고 하자 "당신은 할아버지고, 나는 당신의 손자입니다."라고 통역관이 욕이라며 거짓으로 알려준 말을 하고 만다. 중국에게 손자임을 자처한 하나야의 말에 일본군 대장은 마을 사람 누구든 그를 죽이라고 하고, 잔치 분위기가 급변하더니 결국 일본군은 마을 주민을 몰살하고 마을을 불태운다.

# 붉은(紅) 최후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 이후, 국민당과 연합군은 일본군을 전쟁포로로 수용하고, 통역관 동한천과 같은 친일파를 처단한다. 임신한 아내에게 갔다가 죽음을 면한 마다산은 이제 더 이상 선한 농민이 아니다. 복수심에 불타는,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 일본군을 모조리 도끼로 찍어 죽이고 싶은 야수로 변해 있다. 포로수용소에 몰래 들어가 일본군을 도끼로 처단하다 결국 붙잡혀 전쟁포로를 보호하라는 포츠담선언 위반으로 사형장에 끌려온다. 국민당군 대장은 마다산을 절제를 모르는 쓰레기라며, 중국군은 쓰레기의 피를 묻힐 수 없다며 일본포로에게 사형 집행을 맡긴다. 마다산이 돌봤던 하나야가 나서서 마다산의 목을 벤다. 흑백이던 영화는 그 마지막 순간 컬러로 변한다. 삶에서 죽음으로 전환, 선에서 악으로의 전환, 침략자이자 패자이자 포로가 칼을 들고 피해자이자 승전국의 백성을 합법적으로 처단하는 전도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다산의 머리는 땅에 아홉 번 구르고, 눈은 세 번 깜박이고, 입은 한 번 미소 짓는다. 그리고 피 같은, 인간의 내면에 들끓는,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할 수 없는 선과 악이 용해된 마그마 같은 붉은 화면 위로 엔딩 크레딧이 오른다.




▲ 최후를 맞이하는 마다산 포로였던 하나야에 의해 마다산은 참수 당한다. ⓒ 중국영화합작제작사



▲ 영화의 마지막 컬러 부분 참수 당한 마다산의 눈에 비친 장면으로, 선과 악의 전환, 삶과 죽음의 전환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 중국영화합작제작사
항일 시기 일본군을 부르던 '일본귀자(日本鬼子)'라고 불렀기에 제목 '귀신이 온다'는 '일본군이 온다'는 의미로 볼 수 있고, 배달된 두 명의 포로를 가리킨다. 또한 마다산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사람의 목숨을 경외하며, 사람을 죽이면 귀신이 온다고 신앙처럼 믿는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전쟁에서 첨예하게 드러나는 국가, 민족으로 재단하기 전에 '생명의 가치' 문제를 영화는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인간 내면 깊숙이 간직된 '선악의 에너지'가 처한 상황, 환경에 따라 귀신처럼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귀신이 온다'는 제목은 암시하고 있다.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살고 있는 선과 악의 '귀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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