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9

알라딘: [전자책] 방랑기 하야시 후미코

알라딘: [전자책] 방랑기

[eBook] 방랑기 
하야시 후미코 (지은이), 이애숙 (옮긴이)   
창비   2015-03-23
정가 9,800원



책소개

창비세계문학 41권. 일본 쇼오와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하야시 후미꼬의 대표작. 제국주의 침략이 한창이던 1920년대 후반에 연재를 시작, 궁핍에 시달리던 평범한 사람들의 신산한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대공황의 와중에도 60만부나 팔리는 기록적인 인기를 누렸다.

어릴 때부터 행상을 하는 부모를 따라 여러곳을 전전하고, 토오꾜오의 빈민가로 흘러들어 갖가지 잡일로 생계를 꾸리면서도 문학적 열망을 놓지 않았던 작가의 자전적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어려운 시기를 견디던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샀다.

일본 근현대사에서도 가장 혼란스럽던 시기에 의지가지없이 여자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는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덧문처럼" 불안정하지만, 가난에도 사회적 속박에도 굴하지 않고 "후지 산이여! 너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 여자가 홀로 여기 서 있다"라고 외치며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추구해나간다.

방랑의 삶과 거리낌 없는 태도, 질긴 생활력, 그리고 억누를 길 없는 문학에 대한 욕망이 뒤섞이는 '나'의 모습은 하야시 후미꼬의 삶의 여정과 겹치며, 가차없는 현실 속에 방랑하던 도시 하층민들을 대변하고 위로해주었다. 작가는 자신의 문학을 일컬어 "쌀을 됫박으로밖에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양식이 되는 소설"이라고 했는데, 고된 삶에 한끼 밥과도 같던 하야시 후미꼬의 작품들은 생전에도 높은 인기를 누렸지만, 사후에도 여러차례 영화, 연극, 드라마로 제작되며 사랑받고 있다.접기

책속에서

P.129
낡아빠진 바구니 하나.
살이 부러진 양산.
담배꽁초보다 한심한 여자.
나의 필사적인 전투 준비는 고작 이 정도랍니다.

P.135
돈이 필요합니다. 흰쌀밥에 사각사각 씹히는 좋은 단무지를 함께 먹는다면 금상첨화인데 말이죠. 가난하면 아이처럼 됩니다. 내일 아주 행복할 겁니다. 적은 액수지만 원고료가 들어옵니다. 그것으로 나는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려 합니다. 지도만 보고 있습니다만, 정말 아무 즐거움도 없는 이 까페 이층에서 저를 공상가로 만드는 것은 계단 위의 더러운 지도뿐입니다. 어쩌면 우라니혼의 이찌부리라는 곳에 갈지도 모릅니다. 죽느냐 사느냐, 여하튼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P.261
사상과 철학을 경멸하는 흰 벤치 위의 여자에게
더러운 입맞춤이라도 해주세요
하나의 현실은
잠시 굶주림을 채워주니까요.

P.336
뭔가를 쓴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나는 소설이라는 것을 쓰고 싶습니다. 시마다 세이지로오라는 사람은 놀랄 만큼 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소설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말〔馬〕이 소리 높여 우는 그런 걸 쓰면 돼요. 열심히 숨을 헐떡이면서 말이죠.

P.390~391
산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노동은 신성하다, 누군가가 부추겨서 가난한 자에게 이런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준다. 역겨우리만치 빈민을 경멸하고 무학문맹(無學文盲)을 업신여기려고 꼼짝달싹 못하게 여러가지 규칙을 만든다. 빈민은 태어나면서부터 사생아처럼 추락한다.
행복의 마차는 일찌감치 이런 무리들 사이를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모두 배웅한다. 그저 멍하니 소리친다. 달을 도둑맞은 듯한 느낌이 든다. 허공에 떠 있던 행복한 금화 같은 달의 환한 빛이 사라졌다. 달조차도 만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나는 귀족이 딱 질색이다. 피부에 탄력도 없는 불구자다.

P.406~407
이렇게 살아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5엔 수입으로는 시골에 돈을 보낼 수도 없다. 마음을 담은 아름다운 세계는 그 어디에도 없다. 나 자신을 경멸할 뿐이다. 무엇보다 자만심이라는 것이 스스로를 불우하게 생각하도록 내몬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 따위 별것 아닌데도 기발한 것만 생각해 스스로를 비웃을 뿐.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우습다. 뭣 하나 제대로 된 글을 쓰지도 못하는 주제에 문자가 항상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건 이상한 거야. 고작 시골뜨기 주제에, 도대체 문학이란 무엇일까요? 하느님, 가끔 이상한 인생이 제게는 있어요. 그리고 그것에 휩쓸려버려요.

밑줄긋기
P.9vita
나는 숙명적인 방랑자다. 내게는 고향이 없다.


저자 소개
지은이: 하야시 후미코 저자파일 

최근작 : <작가의 산책>,<발칙한 그녀들>,<작가의 계절> … 총 58종 (모두보기)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연인에게 버림받은 후 여러 아나키스트 시인들과 동거와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미술학도 데쓰카 료쿠빈과 결혼했다. 생활이 안정되자 자전적 소설 ≪방랑기(放浪記)≫를 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만주, 조선, 런던, 파리 등을 여행하며 기행문을 쓰기도 하고 중일 전쟁 때 난징에 특파원으로 가 기사 등을 집필하기도 했다. 저널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세상을 뜨기까지 집필과 여행, 취재와 강연 등을 멈추지 않았다. 대표작으로는 ≪방랑기≫, ≪청빈의 서(清貧の書)≫, ≪굴(牡蠣)≫, ≪늦게 피는 국화≫, ≪뜬구름≫ 등이 있다.접기

옮긴이: 이애숙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일본어 문학여행 (워크북 포함)>,<일본명작기행 (워크북 포함)>,<일본의 소설 (워크북 포함)> … 총 22종 (모두보기)
도쿄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과 문학박사.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色彩から見た王朝文學』 『일본의 소설』(공저) 『王朝びとの生活誌』(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히로시마 노트』 『오키나와 노트』 『근현대 일본의 사상가들』(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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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분포
    8.5

구매자 (5)전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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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자냥  2018-03-12

언제나 배고픔을 생각해야만 하는, 떼려야 떼어 낼 수 없는 처절한 굶주림. 그 속에서도 꿋꿋하게 문학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글을 써 내려간 하야시 후미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면서 글을 쓰고 작품을 만들어낸 그녀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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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1983  2018-07-19

20세기 초 일본에서 참 자유롭고 특이한 삶을 살고 작품을 내놨던 작가의 출세작입니다. 수기 형식의 글답게 지루할 틈 없이 최소한의 읽는 맛은 보장하는 책입니다. 나루세 미키오 감독이 이 작가의 작품들을 많이 영화화했는데 그만큼 자연스레 다채로운 영상을 떠올리게 하는 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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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근  2021-06-08

문구가 낡았다. 옛 책이라 그럴지 모르겠지만,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 후 사투리로 변화를 준것이 읽기 힘들며, 일본어 발음을 이상하게 표기했다. (토쿄 라고 적으면 될것은 또오꾜오) 읽으면서도 애써 또오꾜오 (토쿄) 큐우슈우(큐슈) 등 다시한번 읽게 되었다. 이 옮긴이의 책은 안사게 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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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보  2020-06-04

오노미치 센코지 공원내 시비(詩碑)를 발견하고 작가를 알게 되었다. 가난한 부모 밑에서도 삶의 의지를 잃지 않으려는 생명력과 문학 소녀로서 책읽기를 쉬지 않으면서 시, 동화를 통해 푼돈으로 연명해 나갔던 작가의 글 속에는 제국주의의 모습까지 당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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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이로  2020-12-29

아주 오래된 서점 읽다 이 작가를 알게 되었네요. 30년대에 이런 책이 나오다니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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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자냥   2018-03-14

이따금 중고서점에 가서 책을 판다. 갖고 있어봤자 짐만 될 것 같은 책들을 주로 처분한다. 나는 웬만해서는 책을 팔지 않는데, 그래도 가끔 팔고 싶은 책이 나온다. 대부분은 책을 판매한 돈으로 다시 중고 책방에서 다른 책을 산다. 엄밀한 의미로는 책 교환이 맞는 셈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책을 팔아서 생긴 돈으로 다른 책을 사지 않았다. 중고 서점에서 눈에 띄는 책이 없기도 했지만, 올해 이미 책을 많이 산 터라 그것들을 다 읽을 때까지는 책 사는 것을 자제하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마침 집에 원두가 딱 떨어졌다. 그래서 나는 책을 판 돈으로 원두를 200그램 사고, 여과지도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마트에 들러서 이것저것 먹을거리도 샀다. 책 여섯 권과 바꾼 돈 3만 7천 원은 그렇게 순식간에 온전히 먹을거리로 변한 것이다. 뱃속으로 들어갈 것들과 교환해서 집으로 오는 길에 문득 하야시 후미코의 <방랑기>가 떠올랐다. 작품 속 나, 즉 하야시 후미코도 책을 판다. 읽은 책은 거의 되파는 것 같다. 그녀 또한 그렇게 생긴 돈으로 먹을거리를 산다.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그 음식이 배고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되고 나는 커피나 맥주, 과일처럼 허기를 채우는 것과는 거리가 먼 품목이다. 기호식품이랄까. 굳이 먹지 않아도 상관없을 그런 것들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내 곁을 떠난 책에도, 맞바꾼 음식에도 크게 특별한 감정이 들지는 않는다.

하야시 후미코는 어떨까? <방랑기>의 그녀는 늘 굶주림과 싸운다. 배고픔이 가장 가까운 친구이다. 글을 써서 근근이 끼니를 이어가지만, 그 돈은 몇 푼 되지 않고, 어머니와 새아버지까지 부양하는 처지다. 저축은커녕 돈이 주머니에서 머물 틈이 없다. 그러기에 그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든다. 잡일꾼, 사무원, 여공, 카페 여급, 식모 등등 닥치는 대로 일한다. 그러면서 틈틈이 책을 읽고 문학가의 길을 꿈꾸며 글을 쓴다. 그 치열한 기록이 바로 <방랑기>이다.

이 작품을 읽노라면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함순의 <굶주림> 속 인물, <방랑기>의 인물도 모두 작가 자신을 대변한다. 문학에 대한 열정을 지닌 채, 글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주인공들이 모두 배고픔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삶의 문제 때문에 한없이 고통받는다. 그리나 <방랑기>의 그녀도 <굶주림>의 그도 생활에, 삶에, 인생에 무릎 꿇지는 않는다. 바로 거기에서 묘한 감동이 일어난다.

<방랑기>의 주인공은 하야시 후미코, 그녀 자신이다. 1920년대 여자 혼자 몸으로 세상 온갖 풍파에 맞선 것이다. 그녀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모 부양의 의무까지 지고 있다. 더욱이 가족들은 그녀가 책상 앞에 앉으면 돈이 저절로 나오는 줄 알고 있으니 그녀로서는 더 미칠 노릇이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자에게 기대지도 않는다. 오히려 남자에게 기대는 것을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카페 여급으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남자한테 두들겨 맞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밥벌이는 굳건히 해나간다. ‘후지 산이여! 너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 여자가 홀로 여기 서 있다’ 이렇게 외치며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추구해나간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응원을 보내게 된다.

내 일은 성냥갑을 붙이는 일이나 재봉틀 부업과는 다르다.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원고가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가족들에게 지금의 내 심정을 솔직하게 말해봤자 소용도 없다. 차라리 재봉틀 페달을 밟으며 부업을 하는 편이 즐거울지도 모르겠다. (284쪽)

목에 분을 바른 것을 보고 노무라 씨는 정말로 여급답다며 질책한다. 네, 저는 여급이라 어쩔 수 없어요, 라고 했다. 여급이 뭐가 나쁜 거야? 무슨 일이라도 해야지. 다른 사람이 먹여살려주지도 않는데……. (384쪽)


<방랑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배고픔’ 그리고 ‘문학’이 아닐까. 그녀 머릿속에는 프롤레타리아도 부르주아도 없다. 그저 흰쌀밥으로 만든 한줌의 주먹밥이 먹고 싶을 뿐이며, ‘남아 있는 배추를 씹으며 하얀 쌀밥의 맛을 상상’하기를 즐긴다. 톨스토이나 체호프의 작품을 즐겨 읽으며 그들의 천재성에 감탄하고 그들을 닮고 싶어 하지만 언제나 밀려오는 것은 좌절뿐이다. ‘천재를 언제나 꿈꾸지만 이 천재는 굶주린 채 먹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범재로 끝나버릴’것 같다. ‘도대체 어디에 가면 평화롭게 밥을 먹을 수 있는가’(346쪽) 고뇌할 뿐이다.

허기와 싸우기 위해 오늘도 생활 전선에 뛰어든다. 그녀의 굶주림은 이토록 처절하지만 불쌍하다거나 가여운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생활에 맞서기에 그런 것일까? 어찌 보면 한없이 짐처럼 여겨지기 쉬운 가족에게도 따스한 애정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까? 나도 그녀처럼 이렇게 삶의 무게에 지지 않고 살아나가야 할 텐데, 용기를 얻거나 마음을 다잡게 된다.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방랑기>가 출간 무렵 그토록 많은 사람에게 읽혔던 게 아닐지.

배고픔과 문학에 대한 개인적 열정만이 가득한 기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시절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이나 풍경 묘사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 묘사를 통해 당시 사회에 대한 그녀만의 예리한 시선도 엿볼 수 있다. 자신처럼 빈곤 속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은 연민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날카롭다. 그렇다고 통렬하게 비판적이거나 하지는 않다. 문학적으로도 아름다운 표현이 때때로 눈에 들어와 뇌리에 남는다. 이따금 보이는 그녀가 직접 쓴 시들도 그 진실함에 가슴을 울린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바보처럼 살아야 하는 걸까? 언제까지고 쌜룰로이드 냄새나는 쌜룰로이드 생활이다. 하루 종일 덕지덕지 삼원색을 칠하며 태양과 격리된 비뚤어진 공장 안에서 벌레처럼 그저 한없이 긴 시간과 청춘과 건강을 착취당한다. 어린 여자들의 얼굴을 바라보면 너무나 슬퍼서 가슴이 저려온다. (40쪽)

함께 자는 사람들의 저마다의 고통이 늦은 밤 방 안에 가득 차면서 나는 나 혼자만의 방이 갖고 싶어졌다. (228쪽)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이력서와 대조하면서 대체로 인품, 용모, 능력이 어떤지로 결정한다. 잠시 구경거리가 되고 나서, 엽서로 통보한다는 답변. 이런 일은 매번 똑같아서 익숙하지만 정말 재미없다. 잘못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아주 예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내게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튼튼한 몸만 있을 뿐. 살면서 우선 어떻게든 생활해나간다는 인간의 중요업무에서 언제나 나는 비참하게 실패했다. 나는 타락하기 딱 좋은 레디메이드. 고용주는 날카로운 눈을 가졌다. 이런 여자 따위를 고용할 리가 없다. (317쪽)

하숙생활은 인간을 관료형으로 만들어버린다. 전전긍긍 주위를 살피게 된다. 큰 인물이 될 수 없다. 월말에는 이불을 말리고 시골에서 온 우편환을 바꾸러 간다. 그것만으로도 하숙의 시간은 지나가버리지요. 제 경우가 아니에요. 여기 사는 학생들 얘기에요. 하이네형도 없고 체호프형도 없다. 그저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훈련을 받고 있을 뿐. (337쪽)


살아갈수록 인생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끝내 이룬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꿈을 잃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내며 그것을 위해 얼마나 노력해 나갔느냐의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방랑기>의 ‘나’ 그리고 <굶주림>의 ‘나’, 그들이 배고픔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문제에 무릎을 꿇고 그저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에만 몰두했다면, 그리하여 글쓰기를 멀리했다면 하야시 후미코도, 크누트 함순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랑기>는 생활의 고단함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글을 써 내려간 한 여자의 생생한 기록으로 내게는 참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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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드문트   201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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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큐우슈우에 사꾸라지마라는 온천 지역이 있는 모양이다. 거기 여관집에 따님이 한 분 있었다. 그 동네 습관이 외지 사람하고는 혼인을 맺지 않는 거였는데, 이 따님이 하루는 고향이 시코쿠 ‘이요’인 광목 행상하고 눈이 맞아 덜컥 혼인을 해버렸다. 관습법에 입각한 여관집 주인 내외는 가차 없이 따님을 내쳐버려 이 외로운 신혼부부는 야마쿠치 현의 시모노세키에 터를 잡고 살게 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남편은 광목 행상을 다니며 틈틈이 아이를 만들어 딸을 둘 두었다. 행상 다니느라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아이 만들 시간은 있는 법이라서. 없는 집에 이거면 됐을 터이지만, 남자는 포목장사로 돈을 제법 모으자마자 그만 기생첩을 하나 얻어 집으로 데려오고 말았다. 머리 꼭대기까지 열을 받은 여자는, 내가 집안에서 쫓겨나는 것까지 무릅쓰고 자기하고 혼인을 했으면 지랄을 하시더라도 적당히 해야지 말이야, 눈이 폴폴 날리는 음력 정월에 여덟 살 먹은 작은 딸 후미꼬의 손목을 잡고 드런 집구석을 뛰쳐나오기에 이른다. 이 때를 굳이 서기력으로 꼽는다면 1911년 아니면 1912년. 요새 같으면 정식으로 이혼 소송해서 재산의 절반 이상을 분할 받고, 자식들 양육권에다가 다달이 교육비도 청구할 수 있겠지만 그때야 못 견디겠으면 기생첩에 안방을 물려주고 맨입으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겠지. 게다가 아이 딸린 여자 혼자 험한 세상 살 수 있었겠나. 그래 오까야마 출신으로 행상에 잔뼈가 굵은 젊은 남자를 얻으니 이름은 뭐 중요하지 않고 그저 ‘후미꼬의 새아버지’라 하고 말자. 다른 소설에서 등장하는 새아버지는 흔히 엄마와 딸의 노동력과 몸을 동시에 착취하는 괴물로 그리고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후미꼬의 새아버지는 원래 소심한 성격에다가, 고스톱, 도리짓고땡, 섰다 등등의 화투 게임을 즐기는 습관에 푹 절어 있으면서도 의붓딸한테 늘 잔정을 베풀었으나 언제 한 번 주머니가 두둑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사주에 역마살이 끼어 아무리 살풀이굿을 해봤자 소용이 없는지라 한 곳에 느긋하게 주질러 앉아 살지를 못했다. 이리하여 후미꼬는 여덟 살에 방랑을 시작해 이십 대 중반에 이르러 소설이 끝날 때까지 일본 곳곳을 전전하며 세계적 불경기를 당한 1910년대 후반에서 1920년대 초에 스스로 돈을 벌어 사는 와중에 고독과 굶주림과 약간의 부적응 적 증상에 시달리면서도 시와 동화와 소설 작업을 멈추지 못한다.
 역마살 낀 부모와 함께 방방곡곡을 다니며 행상을 했는데 어떻게 시와 동화, 소설을 쓰느냐고? 열세 살이 되자 후미꼬는 여공생활을 시작한다. 이때 정기적으로 돈을 벌면서 고등여학교를 다녔다고 하는데, 책에서는 자신이 받은 교육과정에 관해서 자세하게 기술해놓지 않았다. 원래 이야기책 읽기를 좋아하던 후미꼬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문학책을 섭렵한 것 같다. 독서의 즐거움이란 것이 사실 중독 증상을 일으키는 것이라, 이후 (작가 말고 책의 주인공으로서의) 후미꼬가 지독하게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도중에도 틈틈이 헌책방을 들락거리며 책을 사고팔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때 읽은, 노르웨이의 국가대표 소설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십여 년이 지나면 ‘바이킹의 후예들이여, 나치 군대에 입대하여 성전에 목숨을 바치자!’ 라고 침을 튀며 부역을 한 죄를 죽을 때까지 씻지 못할 크누트 함순이 쓴 <굶주림>을 읽고 많은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작중 수시로 등장하는 소설이 바로 <굶주림>. 근데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진실은, 사흘 굶어 담장 넘지 않는 인간 없고, 칼 안 빼는 인간 없다는 진리. 함순의 소설 <굶주림>에서, 계속되는 결식으로 영양실조가 극심해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지는 와중에도 우연히 들어온 현금을 자신보다 더 불쌍해 보이는 노파에게 줘버리는, 지극히 위선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나는 그 장면이 결코 고결하거나 우아하거나 명예스럽게 읽히지 않았다. 작가 자신으로 짐작되는 <방랑기>의 주인공 하야시 후미코는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의 주인공 ‘나’보다 훨씬, 훨씬 인간답다. 후미꼬는 물론 지극한 쪽팔림을 무릅쓰고, 조금의 안면만 있는 그냥 아는 사람에게 돈을 빌어 일단 뱃속에서 굶어죽을 판인 회충을 기아선상에서 구해주고, 단 한 번도 빈 돈을 갚았다는 걸 보지 못했다. 밥을 벌기 위하여 별의 별 직업을 전전하며 나중엔 카페 여급으로까지 전락하여 손님들이 사는 저질 위스키를 단번에 열 잔을 들이키는 쇼를 시전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끝까지 가는 거다. 몸 파는 일만 빼놓고. (몸을 팔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기술해놓지 않았을 뿐.) 이게 정상 아냐?
 일기 형식의 소설. 그런데 고독과 굶주림에 관한 많은 소설 가운데 사실 별 스토리가 없는 이 책을 읽는 건, 어쩌면 특이한 문장들 때문일 수도 있다. 문장의 기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들이 뭉쳐 한 인격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참으로 쓸쓸하게 표현하는 것. 작가가 소설가이기 전에 시인이라서 그런지 곳곳에 독자의 염통이 뚝 떨어지는 듯한 감성의 지뢰를 묻어 놓았다. 아름다운 책이지만, 시대가 변해서 그런지 독자에 따라 좀 궁상맞게 느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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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성지   20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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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화가 한창인 때,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농사를 지으면서 철마다 행상을 다녔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생필품을 팔던 어머니는 막차가 끊기면 아는 집에 하룻밤 신세를 지기도 하였다. 할머니와 함께 퇴락한 집을 지키며 제 할 일은 스스로 행하며 가족 누군가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쌀이 귀하여 보리에 감자와 고구마를 섞어 지은 밥을 주식으로 삼아 먹으며 귀한 손님이라도 오는 날에는 쌀밥을 맛볼 수 있었다. 쌀밥은 씹을수록 입에 착착 달라붙어 얼른 한 그릇을 비우고 할머니가 한 숟가락 덜어주는 밥까지 비우면 행복감은 밀려들었다.

 

   먹을 것이 많은 지금은 밥을 배불리 먹어보았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담고 있는 이들이 흔치 않다. 후미코의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려 가족으로서 한 집에서 살아갈 기능마저 앗아 가버렸다. 집을 나온 후미코와 어머니는 돌아갈 곳 한 군데 없는 숙명적인 방랑자로 이 골목 저 골목을 전전하였다.혼자 딸을 키우는 일이 녹록치 않아서인지 후미코의 어머니는 행상을 하는 새아버지를 만났지만 싸구려 여인숙을 전전해야 했다. 이들은 잘 팔리는 품목을 갈아타며 행상에 나섰지만 돈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해가 넘어가도 돌아가 편히 쉴 곳 없는 신세라 여인숙에서 지난한 생활을 잇고 있어도 튼튼한 몸만 믿고 열심히 일을 하자고 다짐하지만 곤궁한 현실의 벽은 철옹성처럼 견고했다. 광부를 상대로 장사를 하였지만돌아갈 고향도 없이 돈벌이를 찾아 헤매야 하는 후미코 가족의 비루한 삶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빌린 문짝을 엎고 그 위에 속옷을 늘어놓고 20전 균일 팻말을 걸고 장사를 하면서도 그녀는 책을 읽었다. 야시장 노점을 전전하는 행상의 고된 노동은 그녀의 자신감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렸지만 바보처럼 주눅 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지금 누군가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을까?’

   좀체 헤어나기 힘든 가난의 굴레에서 가난을 구제해 줄 누군가를 갈구할수록 현실은 엇박자를 놓으며 희망적 삶에서 멀어져 갔다.

 

   여느 사람들처럼 조촐한 밥상을 앞에 두고 편안히 밥을 먹는 일상적 삶조차 누릴 수 없는 그녀였지만 심미적 체험을 고양하는 시작(時作)을 멈추지 않았다. 창작 활동은 곤핍한 현실로 지쳐 있는 자신을 구원하며 고양된 영혼으로 황폐화된 삶을 넘어서는 탈출구였는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시를 쓰며 밥벌이를 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후미코의 시는 밥 한 끼를 선물하지 못하였다. 문예지에 원고를 투고하고 받은 고료는 평가 절하되어 무명작가의 감성마저 갉아먹기 일쑤였다. 후미코는 돈이 들어오는 일거리를 찾아 직업소개소를 전전하며 일을 하지만 돈은 자신에게로 오지 않았다. 카페 종업원으로 일하며 손님이 없는 날에는 동화를 써 받은 원고료 중 일부를 어머니에게 송금하며 부모를 부양하는 일에도 관심이 많았다.

 

   일자리를 찾아다니면서 비틀거리며 살아내느라 기운을 소진하며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지만 그녀는 비루한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다. 남녀 사이의 인력이 작용해서인지 그녀 역시 몇몇 남자와 인연이 있었지만 다른 방향의 길을 걸어야 했다. 고향이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그녀를 반대하는 남자의 부모도 있었지만 원망하지 않았다. 한 몸 눕힐 공간도 없이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물질을 앞세워 그녀와 함께하려는 남자의 고백을 거절하였다. 그 후 그녀는 혼자도 버거운 생활에 글을 쓰는 노무라와 함께 지내며 그의 질책과 폭력을 견디기 힘들어져 그와 헤어졌다. 생계를 위해 나서는 의지가 희박한 새아버지는 도박에 빠져 하던 일도 내팽개쳐 빚만 늘어났다. 내 집에서 편안하게 쉬고 이튿날 아침 밥상을 마주하는 평온한 일상이 요원한 현실에서 야반도주라도 해야 살겠다는 어머니를 보면서 헤어나기 힘든 가난의 굴레에서 그녀는 숙명적인 방랑을 떠올렸을 것이다.

 

 

   비자발적인 방랑으로 살아온 후미코는 떠돌이 생활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죽을 때까지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동화와 야사를 써 생활고를 해결하려 안간힘을 쓰지만 가난은 몸과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일하며 받은 돈으로 동경하는 작가 체호프와 톨스토이의 삶이 드러나는 작품을 헌책방에서 구매함은 비장미를 더한다. 조용한 관조로 일상을 돌아보며 소박하지만 자기 나름의 멋진 글을 쓰고 싶은 바람은 책을 읽으며 더 강렬해졌다. 띄엄띄엄 받은 원고료와 일한 대가를 모아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도 있지만 후미코는 필요한 이들에게 돈을 전하는 온정주의자로 남았다.

 

    시인으로 살고 싶은 이상을 드러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밥벌이가 안 된다며 말린다. 피로를 풀고 쉬면서 재충전할 수 있는 방 한 칸이 없는 이가 시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누적된 생활고에 굴하지 않는 기개를 필요로 한다. 후미코는 밥 한 그릇 제대로 먹는 게 특별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시 창작에 심혈을 기울인다.

   후지 산이여!

   너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 여자가 홀로 여기 서 있다.

   너를 비웃는 여자가 여기 있다.

 

   후지 산이여 후지여

   활활 너의 불꽃 같은 정열이

   으르렁으르렁하며

   고집 센 이 여자의 목을 꺾을 때까지

   나는 즐겁게 휘파람을 불며 기다리리. (142쪽)

   살아남기 위해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냈던 후미코는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창작의 열정은 일본의 최고봉인 후지 산에 고개 숙이지 않는 당당함으로 그려져 비장감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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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콘도   2020-06-27

근 한 달 동안 천천히 이 책을 읽었다. 하야시 후미코...타고난 방랑의 기질과 야생마 같은 성격. 사랑스럽고 열정적인 이 여자에게 굶주린 삶이란 가혹한 형벌도 문학에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이제는 너무 친숙한 이 여인과 헤어지려니 아쉽다. 매일 밤 흐린 스탠드 아래서 하야시 후미코를 읽었던 밤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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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페이퍼 (12편)쓰기

 로쟈   2022-01-22

역시 봄학기 강의 공지다. 현대백화점문화센터 판교점에서는 봄학기 일본 근대문학을 읽는다(매주 수요일 3시30분-5시10분). 특강을 포함한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일본문학



특강 3월 02일_ 히구치 이치요, <키재기>







1강 3월 16일_ 모리 오가이, <아베 일족>







2강 3월 23일_ 이즈미 교카, <고야산 스님>







3강 3월 30일_ 나쓰메 소세키, <풀베개>







4강 4얼 06일_ 나쓰메 소세키, <우미인초>







5강 4월 13일_ 시마자키 도손, <파계>







6강 4월 20일_ 시마자기 도손, <신생>







7강 4월 27일_ 다니자키 준이치로, <소년>







8강 5월 04일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몬>







9강 5월 11일_ 고바야시 디키지, <게 가공선>







10강 5월 18일_ 하야시 후미코, <방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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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ta   2020-04-24








 오늘 읽은 문장들 중에서 짧게 모아보기











 







나는 숙명적인 방랑자다. 내게는 고향이 없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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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장소]   2018-09-06
#책읽는당
#9월미션도서
#창비
#방랑기
#하야시후미꼬
#이애숙옮김

˝ 낡아빠진 바구니 하나 , 살이 부러진 양산 , 담배꽁초보다 한심한 여자 .
나의 필사적인 전투 준비는 고작 이 정도랍니다 .˝

지지난 주였나 ? 오디오클립 여행공작단 에서 이 하야시 후미꼬의 방랑기를 다뤘었다 .
이 소설가에 대해 아주 조금 들은 기억이 나서 , 창비 책읽는 당에 미션 북으로 올라온 걸 기회로 읽어보기로 했다 .

그러고보니 책읽는 당 , 작년에 하다 올해에 멈췄는데, 미션 북을 창비에서 직접 구매하는 걸로 바뀌면서 안했던거 같다 . 창비도 민음사 북클럽처럼 책 판매 (?)쪽으로 가는가 싶어 , 이상하게 저어 됐었다 . 괜히 그랬다 . 따라 온 굿즈 , 정성들인 책 포장 . 노력하고 있구나 싶다 . 창비 !

너무 깊숙히 파고 들면 무서운 것 중 하나가 또 방랑벽 아닌가 , 어디 맺힌 데 없이 스쳐가는 사람은 뭔가에 치열하지 못하고 매사를 풍경보듯 그러지 않나 , 그런 이를 보면 내가 뭐라고 , 발목에 쇠사슬은 못해도 닻 같은 건 슬쩍 그림자에 그려 넣어주고 싶어지는데 뭐 , 괜한 오지랖 이겠지 .
읽어도 적당히 공감해야지 , 마음을 다잡게 된다 . 무서운 방랑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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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쟈   2018-04-16
일본 쇼와기의 여성작가 하야시 후미코(1903-1951)의 대표작 <방랑기>를 강의에서 읽었다. 1928-29년에 잡지에 연재되었다가 1930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돼 6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는 화제작이다(지금 기준으로는 밀리언셀러를 거뜬히 넘어선 작품).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소재로 한(혹은 작가의 일기 자체를 편집한) 이 작품에 카페 여급(요즘식으로는 유흥업소의 여종업원) 경험담도 포함된 게 화제가 된 성싶은데, 아무튼 1930년대 최대 베스트셀러가 아닌가 싶다.

창비판은 3부로 구성돼 있는데 1930년판은 2부 구성이고 3부는 1946년에 잡지에 연재되었다가 49년에야 통합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작품의 연대가 좀 복잡한 편. 배경이 된 시기는 주로 1922-26년까지다. 작가이자 화자인 후미코가 1922년 시골에서 도쿄에 상경하여 온갖 직업을 전전하면서 작가의 꿈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작중에서는 시와 동화를 쓰고(일부는 발표된다) 소설을 준비해나가는데, 후미코가 쓰는 소설 ‘풍금과 물고기마을‘(‘어촌‘이란 말 대신에 의도적으로 ‘물고기마을‘이라 쓴 건지는 잘 모르겠다)은 1931년에 발표된다.

<방랑기>는 그 과정을 담고 있어서 ‘소설이전‘ 소설이면서 ‘소설준비‘ 소설, ‘소설수련‘ 소설이다. 요컨대 소설이 아니라 소설의 재료를 나열하고 있는 기록인 것. 때문에 ‘풋내기 소설가‘라는 당대의 혹평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나로서도 궁금한 건 그 이후의 작품들인데, <청빈의 서>(1933)부터 일본영화의 거장 나루세 미키오가 영화화한 일련의 소설들이 그에 해당한다. 영화는 <번개><만국><처><뜬 구름><밥>에다 <방랑기>(1962)를 포함해 여섯 편이다(이 가운데 <뜬 구름>이 최고작으로 꼽힌다. 영화출시명은 <부운>).

단편 <만국>은 ‘철 늦은 국화‘로 번역돼 있지만 <번개><처><밥>에다 <청빈의 서>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것 같다. 요는 <방랑기>만으로는 작가로서 후미코의 성취를 말하기에 부족하다는 것. <뜬 구름>은 일단 중고본으로 주문했는데 세계문학전집판으로 제대로 나오면 좋겠다. 일본근대문학의 최대 여성작가라는 평판이 과장이 아니라면 그에 준하는 소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더불어 나루세의 영화들도 볼 수 있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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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쟈   2018-02-13
강의 공지다.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는 3월 5일부터 4월 23일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7시 30분-9시 30분)에 '로쟈와 일본 근대문학 읽기' 강의를 진행한다(http://cafe.daum.net/purunacademy/8Bko/389). 모리 오가이부터 다자이 오사무까지, 20세기 전반기 일본의 대표 작가와 작품들을 읽어보는 강의다(다니자키 준이치로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기회가 닿을 때 더 자세히 읽을 계획이어서 이번 강의에서는 뺐다). 관심 있는 분들음 참고하시길


.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 

로쟈와 일본 근대문학 읽기

1강 3월 05일_ 모리 오가이, <아베 일족>
2강 3월 12일_ 시마자키 도손, <파계>
3강 3월 19일_ 나쓰메 소세키, <갱부>
4강 3월 26일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몬>
5강 4월 02일_ 시가 나오야, <암야행로>
6강 4월 09일_ 고바댜이 다키지, <게 가공선>
7강 4월 16일_ 하야시 후미코, <방랑기>
8강 4월 23일_ 다자이 오사무, <사양>

18. 0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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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NEWWILD   2015-09-15


세상은 가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가난은 어떤 부족함에서 오는 물질적은 결과일 뿐이며, 그것은 해결해야할 문제일 뿐이라고 가르친다. 후미꼬가 수십 편의 시를 쓰고 동화를 쓰면서도 스스로 작가라고 인정하지 않는 대목은, 가지지 못한 자에게 세상이 보내는 이런 냉소를, 아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을 작가는 자신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기'의 형식으로 밀어낸다. 그 태도는 운명적인 서사가 아닌 현실의 단면을 문장으로 그려내며, 결과적으로 남는 것이 없는, 0(제로)에 가깝게 수렴하는 모습을 보인다.



환상으로 쌓은 성채 주변에 몰려사는 사람들의 군상은 생활을 면밀히 파헤친 뒤에야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후미꼬는 그 방식에 철저히 몰두하며 거의 '의무적'으로 방랑 일기를 써내려간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떠올렸는데, '방랑기'에서 다뤄진 핵심과 닮은 부분이 많은 것 같았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철저한 고백이 촘촘하고 기다란 이야기를 가지게 되는 것과 종래엔 그 모든 것이 숙명처럼 느껴진다는 점. 페소아가 생활의 면면을 잘라내고 잘라내며 깊이 들어갔다면, 후미꼬는 생활을 넓게 펼쳐 그것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리라.



좋은 책은 독자에게 내용이 진짜라고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이 믿기지 않는 것. 왜 이런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그런 삶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다행이라 여겨지는 것. 스스로 할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 쓴 책은 이 반열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좋은 책의 저자들은 써야한다, 그리고 쓴다는 측정할 수 없는 온도의 무엇에 사로잡힌 인간들일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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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2015-05-18


(2월 X일)

 나는 내가 쓰레기 같은 여자라는 생각에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했다. 거리를 걷는 여자를 볼 때면 내가 하찮게 느껴지지 않았디만, 며칠을 굶으면서 그저 옆방의 태평스러운 웃음소리만 듣고 있을 때면 나는 죽어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살든 죽든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힘들어진다. 까닭 모를 초조함. 오늘 아침 내 위장에 채소 이파리만 있었던 것처럼 내 머리에는 서러운 바람만 쌩쌩 지나갔다. 극도의 피로로 인해 그야말로 살아 있는 미라 같았다. 지난 신문을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타따미 위에 꼼짝도 않고 누워 있는 내 모습을 가만히 멀리 떨어져 남의 것처럼 생각해본다. 내 몸도 비틀어져 있고, 내 마음도 비틀어져 있구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진된 육체. 아무리 굶주려도 앞으로는 까페로 달려가지 않겠습니다. 어딜 가더라도 불편한 내 마음에 번질번질 거짓 광을 내어 웃음을 보일 필요가 없는 거야. 어느 쪽에도 가고 싶지 않으면 똑바로 앞만 보고 굶주리면 되는 거야.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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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섣달꽃   2015-04-02
 

  

이렇게 많아도 되는 건지 싶을 정도로 읽을 책들이 많아서 조금 울고 싶은 심정입니다. 읽어야 할 책들도 있고, 읽고 싶은 책들도 있죠. 그 와중에 사고 싶은 책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아주 바쁩니다. 날씨는  또 어떻고요. 당장 책 들고 나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오에 겐자부로가 "소설 쓰기가 끝났다"고 한 것을 보고 그에게 호기심을 느낀 사람이 저만은 아닐겁니다. 지적 장애가 있는 아들 이야기도 알고 있었고, 그의 글도 오며 가며 읽었지만 최근 작가의 행보만큼 호기심 가지는 않습니다.

이제, 오에 겐자부로를 읽을 차례인가 봅니다.

20세기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대단한 시기입니다. 그 시기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이 책도 그런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읽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류전윈 아시나요? 류전윈.

<닭털 같은 나날>을 읽고는 이거 진짜 재밌다! 하고 이 작가의 책을 몇 권 더 샀더랬죠. 그리고 중국소설에 본격적으로 관심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만난 옌렌커, 모옌, 위화 등은 이제 아주 소중한 목록이 되었어요. 그러니 이 책은 꼭 읽어야겠죠!

이 작가도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나를 보내지 마>에서 보여준 그 처연한 느낌이 책 읽은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여태 남아 있어요. <나를 보내지 마>와 닿아 있는 것 같아서 더 기대됩니다. 이 소설.

사실 <순이 삼촌>은 읽었지만, 우리 아픈 근현대사를 깊이 있게 다뤘다는 점에서 현기영 작가의 작품은 무척 소중합니다. 단편들이 깔끔하게 묶여 새로 나왔다니 당연히 읽어봐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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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거핀   2015-04-02

신간 추천 글을 써야할 때마다 깜짝 놀란다. 벌써 한달이 지나갔단 말인가. 다들 한달을 나름의 방식으로 카운트하겠지만, 내 경우에는 신간평가단을 할 때는 이것으로 카운트를 한다. 그러니까 추천글을 쓰는 것이 한달의 시작이며, 책을 받을 때에는 중순이고, 리뷰를 써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릴 때는 월말이 가까워온다는 얘기다. 아무튼 시간은 그렇게 가고 있는 것 같다. 겨울은 이제 더 안 오겠지 싶으면, 눈치 없이 계속 말을 거는 끌리지 않는 소개팅 상대의 메시지같고, 봄이라는 것은 앞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보기위해 고개를 들라치면, 어느덧 곁을 휙 스치고 지나가 뒷모습 밖에 보여주지 않는 길거리미녀 같기만 하다. 집 앞에 나갈 때마다 가끔 만나는 얼룩고양이 은주씨(앙칼진 눈빛이 첫사랑 은주씨를 닮았기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는 농담이고, 처음 만났을 때 전신주 뒤에 숨어서 나를 지켜보고 있기에 숨을 은(隱)자에 기둥 주(柱)자를 붙였다)가 이제 좀 따듯한지 햇볕을 받으며 뒹굴거리는 희귀한 광경도 어제 보았으니 시간이 가고 그래도 조금씩 날이 따듯해져 가고 있기는 하나 보다.

 

지난 달에는 사실 마땅히 추천할만한 책이 별로 없어 난감했다면, 이번달에는 괜찮아보이는 책이 너무 많아서 난감하다(물론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지, 실제로 책을 읽고나서는 전혀 다른 판단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아무튼 어떻게 난감하든지 간에 5권의 책을 골라내야 하는 것은 사실이고, 어쩔 수 없이 이럴 때에는 평소에 사용하던 것보다 조금 더 세심한 취향의 잣대를 들이대야만 한다. 그런데 골라놓고 보니 왠지 다 어두운 이야기 같은 것이, 어두운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할 수 없이 그런건지, 아니면 나의 일반적인 취향에 가려져 있던 취향의 밑바닥에는 어두운 요소가 더 많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하기는 어떨 때는 한없이 밝고 평화로운 이야기에 끌리고, 또 어떨 때에는 야하고 변태적인 이야기에 끌리며, 또 다른 때에는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에 끌리니 그저 종잡을 수 없는 취향이다. 리모노프의 말을 빌리자면 "개떡같은 취향이지, 한마디로.")

개떡같은 취향이 개떡같이 골라낸 이번 달의 다섯 권.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구병모, 문학과지성사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뉴스를 보며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수없이 속으로 이말을 되뇌이는가. 예고없이 찾아오는 만연한 재앙을 피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가난한 시대. 구병모가 날카롭게 잘라낸 현실의 조각들은 이 가난한 시대에서, 이 말들을 부적삼아 되뇌일 수밖에 없는 가난한 마음들을 한걸음 물러서서 들여다보게 해줄까. 

고통의 해석, 이창복, 김영사

물론 재앙과 고통이 예고없이 찾아왔던 것은 오늘날의 시대만은 아니다. 그리고 훌륭한 작가들은 삶 속에서 동반될 수밖에 없는 고통의 양상을 세밀하게 추적해 그의 근원을 늘 밝히고자 하였다. 괴테, 카프카, 브레히트, 하이너 뮐러 등 독일문학의 중추를 이루는 작가들의 작품을 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그 근원에 있는 것을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익사, 오에 겐자부로, 문학동네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이 들어간 소설에는 아무래도 더 관심이 간다. 그의 문학에 담겨져 있는 창작의 원천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을까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에 겐자부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아버지의 이야기. 읽는 것을 주저할 이유가 없는 책이다.  

 



 

방랑기, 하야시 후미꼬, 창비

 

위의 책과 같이 자전적 내용의 소설이다. 가난한 여자 혼자 세상을 사는 것이 녹록한 일이 아닌 것은 요즘에도 그러한데, 1920년대 일본 사회에서는 어땠을까('방랑기'라는 제목만 보아도 말이다). 나루세 미키오의 동명의 영화(특히 주인공 역을 맡은 다카미네 히데코의 연기는 명연이다)를 아주 좋게 보았는데,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게 되는 책이다.

 



 

별을 먹는 사람들, 로맹 가리, 마음산책

 

여러 복잡다단한 이유 속에서 선택된 마지막 책. 로맹 가리라는 이름도 이름이지만, 그보다는 내용이 더 흥미로워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별’은 마스탈라라는 가상의 지역 특산물인데, 코카열매보다 강력한 효과를 자랑하는 마약의 한 종류이다. 그러니까 별을 먹어야만 버텨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제정신으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모든 비참함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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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ika   2015-03-31


가든 디자인의 발견  
  마당에 있던 꽃나무들이 하나 둘 시들거리기 시작하더니 확실히 아무런 관리를 안한 티,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지금은 모든 나무들이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감나무와 앵두나무가 남아있으니 그건 지켜내야 겠다.그러고보니 어머니가 이번 장날에 대추나무를 사다 심어야겠다고 하셨는데. 아, 대추나무가 오기 전부터 대추가 열리면 맛있게 따먹어야지,라는 생각을 먼저 하고 있으니. 작년에 몇방울 열리지도 않았던 앵두가 하룻밤새에 싸그리 사라졌던 기억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지만. 올해는 그런 일이 없겠지. 그나저나 정원가꾸기는 커녕 화분에 물 주는 것 하나도 어머니에게 미뤄두고 있으면서 왜 이리 정원가꾸기 관련 책에는 관심이 많은지. 사실 손바닥만한 마당이라 하더라도 잘 손질만 하면 사철 내내 이쁜 꽃들을 볼 수 있게 만들수도 있는데 그저 먹다 남은 과일껍데기만 줄창 갖다 버리고 있으니. 어쩔껀가. ㅉ            나의 취미라는 것을 이렇게 바꿔보고 싶기도 하지만 게으르고 손느리고 이제는 눈도 침침해져서. ㅠㅠ 안되겠다. 바느질이 그리 재미없지는 않았었는데, 진득하게 앉아서 뭔가를 꼼지락거리는 것이 갈수록 귀찮아지고 있는게야. 흙. 그러니까 이제는 그냥 흙을 만지면서 노는 걸 더 좋아하고 싶다. 요즘 화원을 지나가다보면 수국이 활짝 피어서 자꾸만 하나만 집어가라고 유혹의 손길을 내미는데... 이쁜 수국도 마당에, 아니 그건 뿌리가 너무 퍼져서 안돼. 화분에 심어야지.                                일단은 지금 십이국기를 한참 재미있게 읽고 있는 중이니, 아니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도 재미있게 읽고 있구나. 그리고 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한권 더 왔으면 하는데 이 책이 올지는 좀 기다려봐야겠다.   그림 그리기 사전은 무려 치카,의 작품이 아닌가. ㅋㅋ 어머, 이건 꼭 사야돼 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가구 만드는 것은 관심도 있고 해보고 싶기도 한데 솔직히 이런 작업실, 작업도구, 재료... 가 거창한 것들은 선뜻 손을 못대겠다. 하루의 일상이 그저 사무실에서 버티다가 집에 가면 식사준비와 정리, 드라마 잠깐 보고 있으면 졸고 있는 인생인데 도무지 뭔가를 해 볼 생각이 안나는거야. 그냥 소소하게 집 구석에 앉아서 끄적거리며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데 이것도 작심 삼..아니, 작심 열흘이 되어버렸고. 조금 규칙적인 생활이 될 듯 하면 어머니 입원, 퇴원, 사무실 일, 기타 등등 기타 등등.한동안 열심히 그림 그리기 연습을 하다가 어느 순간 뚝 멈춰버렸는데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사물을 묘사하는 것은 꾸준한 연습과 꾸준한 연습과 또 꾸준한 연습...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자꾸 끊겨서야. 아, 그러니까 내가 취미생활로 하고 싶은 것은 정원 가꾸기와 그림 그리기...인데, 뭐 하나 잘하는 것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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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 하야시 후미꼬 지음 |
 이애숙 옮김 | 창비 | 
2015년 03월 23일 출간
총 4 중4 8.8 (리뷰 5개) 

이 책의 주제어
#세계고전문학 #일본고전 #일본소설


찢어지게 가난한 삶 가운데서도 놓을 수 없었던 문학을 향한 열정!
일본 쇼오와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하야시 후미꼬의 대표작 『방랑기』. 참신하고 폭넓으면서도 엄정한 기획, 원작의 의도와 문체를 살려내는 적확하고 충실한 번역으로 세계문학 독서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자 하는 「창비세계문학」의 마흔한 번째 작품이다. 저자가 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토오꾜오로 상경한 무렵부터 23세에 결혼하기까지 약 5년간의 기록을 추려 잡지에 연재한 원고를 모은 것이다. 대공황의 와중에도 60만부나 팔리는 기록적인 인기를 누린 이 작품은 전쟁이 끝난 뒤 작가 스스로 검열을 의식해 삭제했던 내용을 3부로 추가하여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생부가 기생을 데려오자 어머니를 따라 집을 나오게 된 여덟 살의 ‘나’는 일찌감치 행상을 익혀 탄광 마을을 찾아다니며 부채니 단팥빵을 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토오꾜오로 온 ‘나’는 어느 작가의 집에서 애를 보는 식모 일부터 시작해, 해고당할 때마다 직업소개소를 찾지만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한다. 비참한 생활 속에서 언제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문학을 향한 강한 열망이다. 작가인 남편으로부터 “당신이 하는 일이 뭐 대단한 것도 아니잖아”라는 말을 듣고 걷잡을 수 없는 회의에 빠졌다가도 이내 그 대단하지 않은 일에 여전히 구속당하며 나름의 작고 멋진 글을 쓰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저자가 전전했던 도시 하층민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이 소설은 20세기 초부터 1920년대까지 일본 사회의 실상을 있는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의 보고이기도 하다. ‘나’는 방랑하며 식민지배에 신음하던 일본 내 조선인과도 만나는데, 조선인들에 대한 언급은 작품 속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더불어 여성을 ‘가족’과 ‘집’ 안에 들어앉아 있는 존재로 여기던 1920년대의 사회를 향해 자기주장을 펼치며 한 여성 작가의 자기형성 과정을 오롯이 보여준다. 출간 당시에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1980년대 이후 페미니즘 비평 등을 통해 쇼오와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문학적 가치를 다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소개
저자 : 하야시 후미꼬작가 정보 관심작가 등록
현대문학가>일본작가
저자 하야시 후미꼬(1903~51, 林芙美子)는 일본 쇼오와 시기를 대표하는 소설가. 야마꾸찌 현 시모노세끼에서 출생했으며 어릴 때부터 행상을 하는 양부와 생모를 따라 여러 지역을 전전했다.... 더보기

역자 : 이애숙
역자 이애숙은 한국방송통신대 일본학과 교수. 토오꾜오 대학에서 일본 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色彩から見た王朝文?』 『일본의 소설』(공저) 『王朝びとの生活誌』(공저) 등... 더보기

목차
제1부
제2부
제3부

작품해설 / 서민의,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문학
작가연보
발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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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낡아빠진 바구니 하나.
살이 부러진 양산.
담배꽁초보다 한심한 여자.
나의 필사적인 전투 준비는 고작 이 정도랍니다.(129면)

돈이 필요합니다. 흰쌀밥에 사각사각 씹히는 좋은 단무지를 함께 먹는다면 금상첨화인데 말이죠. 가난하면 아이처럼 됩니다. 내일 아주 행복할 겁니다. 적은 액수지만 원고료가 들어옵니다. 그것으로 나는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려 합니다. 지도만 보고 있습니다만, 정말 아무 즐거움도 없는 이 까페 이층에서 저를 공상가로 만드는 것은 계단 위의 더러운 지도뿐입니다. 어쩌면 우라니혼의 이찌부리라는 곳에 갈지도 모릅니다. 죽느냐 사느냐, 여하튼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135면)

사상과 철학을 경멸하는 흰 벤치 위의 여자에게
더러운 입맞춤이라도 해주세요
하나의 현실은
잠시 굶주림을 채워주니까요.(261면)

뭔가를 쓴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나는 소설이라는 것을 쓰고 싶습니다. 시마다 세이지로오라는 사람은 놀랄 만큼 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소설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말〔馬〕이 소리 높여 우는 그런 걸 쓰면 돼요. 열심히 숨을 헐떡이면서 말이죠.(336면)

산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노동은 신성하다, 누군가가 부추겨서 가난한 자에게 이런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준다. 역겨우리만치 빈민을 경멸하고 무학문맹(無學文盲)을 업신여기려고 꼼짝달싹 못하게 여러가지 규칙을 만든다. 빈민은 태어나면서부터 사생아처럼 추락한다.
행복의 마차는 일찌감치 이런 무리들 사이를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모두 배웅한다. 그저 멍하니 소리친다. 달을 도둑맞은 듯한 느낌이 든다. 허공에 떠 있던 행복한 금화 같은 달의 환한 빛이 사라졌다. 달조차도 만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나는 귀족이 딱 질색이다. 피부에 탄력도 없는 불구자다.(390~91면)

이렇게 살아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5엔 수입으로는 시골에 돈을 보낼 수도 없다. 마음을 담은 아름다운 세계는 그 어디에도 없다. 나 자신을 경멸할 뿐이다. 무엇보다 자만심이라는 것이 스스로를 불우하게 생각하도록 내몬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 따위 별것 아닌데도 기발한 것만 생각해 스스로를 비웃을 뿐.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우습다. 뭣 하나 제대로 된 글을 쓰지도 못하는 주제에 문자가 항상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건 이상한 거야. 고작 시골뜨기 주제에, 도대체 문학이란 무엇일까요? 하느님, 가끔 이상한 인생이 제게는 있어요. 그리고 그것에 휩쓸려버려요.(406~07면) 닫기

출판사 서평

숙명적인 방랑자, 지옥 같은 허기
궁핍과 열망의 기록 하야시 후미꼬의 대표작

일본 쇼오와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하야시 후미꼬(林芙美子)의 대표작 『방랑기』(창비세계문학41)가 발간되었다. 이 작품은 제국주의 침략이 한창이던 1920년대 후반에 연재를 시작, 궁핍에 시달리던 평범한 사람들의 신산한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대공황의 와중에도 60만부나 팔리는 기록적인 인기를 누렸다. 어릴 때부터 행상을 하는 부모를 따라 여러곳을 전전하고, 토오꾜오의 빈민가로 흘러들어 갖가지 잡일로 생계를 꾸리면서도 문학적 열망을 놓지 않았던 작가의 자전적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어려운 시기를 견디던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샀다.
일본 근현대사에서도 가장 혼란스럽던 시기에 의지가지없이 여자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는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덧문처럼” 불안정하지만, 가난에도 사회적 속박에도 굴하지 않고 “후지 산이여! 너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 여자가 홀로 여기 서 있다”라고 외치며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추구해나간다. 방랑의 삶과 거리낌 없는 태도, 질긴 생활력, 그리고 억누를 길 없는 문학에 대한 욕망이 뒤섞이는 ‘나’의 모습은 하야시 후미꼬의 삶의 여정과 겹치며, 가차없는 현실 속에 방랑하던 도시 하층민들을 대변하고 위로해주었다. 작가는 자신의 문학을 일컬어 “쌀을 됫박으로밖에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양식이 되는 소설”이라고 했는데, 고된 삶에 한끼 밥과도 같던 하야시 후미꼬의 작품들은 생전에도 높은 인기를 누렸지만, 사후에도 여러차례 영화, 연극, 드라마로 제작되며 사랑받고 있다.

죽느냐 사느냐, 여하튼 떠나고 싶다

『방랑기』는 하야시 후미꼬가 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토오꾜오로 상경한 무렵부터 23세에 결혼하기까지 약 5년간의 기록을 추려 잡지에 연재한 원고를 모은 것으로, 1930년에 출간되자마자 후미꼬를 단숨에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후 1939년에 대폭 개고하여 구성을 정연하게 다듬고, 전쟁이 끝난 뒤 작가 스스로 검열을 의식해 삭제했던 내용을 ‘3부’로 추가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이렇듯 오랜 기간 개정을 거듭하며 3부 구성이 되었지만, 내용상 같은 시기의 생활과 내면을 다루며 동질적인 텍스트를 이루고 있다.

여덟살의 ‘나’는 인생에 첫 폭풍우를 맞는다. 어머니는 생부가 기생을 데려오자 어린 ‘나’를 데리고 집을 나온다. 새아버지를 맞이한 ‘나’는 일찌감치 행상을 익혀 탄광 마을을 찾아다니며 부채니 단팥빵을 판다. 세 가족은 어딜 가더라도 싸구려 여인숙에서만 지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토오꾜오로 온 ‘나’는 어느 작가의 집에서 애 보는 식모 일부터 시작해서, 해고당할 때마다 직업소개소를 찾지만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한다. 야시장의 노점으로 번 돈은 멀리 가 있는 새아버지에게 몽땅 송금하고, 공장에서 쎌룰로이드 인형를 칠하는 일을 하거나, 고깃집 종업원, 까페 여급 일도 하며 이따금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돈을 보내기도 한다.
이런 ‘나’의 방랑은 식민지배에 신음하던 일본 내 조선인과도 만난다. 생면부지의 조선인들에게 아무 말 없이 돈을 건네주는 장면이나 칸또오 대지진 당시 더 큰 피해를 입었던 조선인들에 대한 언급은 작품 속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나’를 비롯한 일본의 빈민층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와 같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유대감과 연민의 태도는 서로의 끼니를 챙겨주는 문인 동료들과의 교류나 일하면서 만나는 여급들과의 관계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작품에서는 여러 문인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는데 잔인한 생활고에도 문학의 길을 놓지 않으며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며 당시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특히 ‘나’가 여러 가게를 전전하며 만나게 되는 여급들과의 관계는 더없이 애틋하고 끈끈한 연대감을 보여준다. 모두가 “거지와 마찬가지”이고 나약하고 불안한 처지이면서도 이리저리 채인 상처를 잘 알아봐주고 보듬어서 고단한 삶에 서로서로 버팀이 되어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와 남자들과의 관계가 있는데, 착하지만 도저히 마음이 가지 않는 남자나 어린아이처럼 순정을 고백해오는 남자를 만나기도 하고, 버젓이 바람을 피우거나 습관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들과의 관계가 이어지며 복잡하고 지난한 감정의 축을 이룬다.
2부에는 토오꾜오로 자신을 데려온 옛 남자를 만나러 찾아가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1년 남짓 같이 살며 그를 뒷바라지했지만 남자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고향의 섬으로 돌아가버렸고, 가족이 결혼을 반대한다는 편지를 보내고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확실한 매듭을 짓기 위해 남자의 집으로 찾아가지만 가족의 반대를 이겨낼 자신이 없다는 남자의 말에 실망한 채 돌아온다. 나중에 ‘나’는 궁지에 몰려 다시 한번 남자를 찾아가는데 도착하자마자 그는 이미 결혼해서 부인과 아이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남자를 만난 ‘나’는 씁쓸함만을 느낀 채 남자의 형에게서 받은 지폐 몇장을 받아들고 섬에 작별을 고한다.
전후에 발표한 3부에서는 판매금지를 우려해 연재에서 제외했던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천황에 대한 비판이나 무정부주의에 대한 언급 등이 등장한다. 어느날 황족이 탄 기차가 통과하니 선로 옆 빈민가의 창문은 모조리 밤까지 닫아두라는 명령이 내려지자, ‘나’는 “황족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존경해야 한다”라는 물음을 제기하며, 노트에 “천황 폐하는 미치셨다고 한다 / 병든 자들만의 토오꾜오!” 같은 도발적인 시구를 적기도 한다. 또 ‘나’는 무정부주의와 황족을 같이 떠올리며 “멋진 무정부주의자임을 자임”하기도 하고, 당시 유명한 무정부주의자였던 인물을 언급하며 “저는 살해당한 오오스기 사까에를 좋아한답니다”라고 쓰기도 한다. 하야시 후미꼬는 평생 어떤 사상이나 운동에도 심취하지 않았지만, ‘후지 산에 고개 숙이지 않는 여자’다운 냉소적인 시선과 거침없는 자세로 세상에 지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펼쳐나가려는 의지를 지닌 여성상을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몸을 던져 쓴다, 오로지 그것뿐

“쓴다. 오로지 그것뿐. 몸을 던져 쓰는 거다. 서양 시인인 척하면 어떨까? 척은 그만. 먹고 싶을 때는 먹고 싶다고 쓰고 반했을 때는 반했습니다라고 쓴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요?”(343면)

“뭔가를 쓴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나는 소설이라는 것을 쓰고 싶습니다. 시마다 세이지로오라는 사람은 놀랄 만큼 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소설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말[馬]이 소리 높여 우는 그런 걸 쓰면 돼요. 열심히 숨을 헐떡이면서 말이죠.”(336면)

이처럼 비참한 생활 속에서 “비루하게 개처럼 기어다니”며 “이젠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나’를 다시 일으켜세우는 것은 문학을 향한 강한 열망이다. 마찬가지로 작가인 남편으로부터 “당신이 하는 일이 뭐 대단한 것도 아니잖아”라는 말을 듣고 걷잡을 수 없는 회의에 빠졌다가도 이내 “그 대단하지 않은 일에 나는 지금 여전히 구속당하며” “나름의 작고 멋진 글”을 쓰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방랑기』는 출간 당시 전폭적인 인기에 비해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페미니즘 비평 등을 통해 쇼오와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문학적 가치를 다시 평가받고 있다. ‘나’는 가족과 남자에 안주하려 하지 않고 “파도가 치는 정도가 아니라 바닷물을 꿀꺽꿀꺽 삼키”는 난파선 같은 처지임에도 “곁눈으로 조용히 조용히 하라고 말씀하”시는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 글을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나’의 모습은 하야시 후미꼬의 문학적 여정과 고스란히 겹치며 한 여성 작가의 자기형성의 과정을 오롯이 비춰낸다.
이 작품은 한 여성 작가의 대담하고 치열한 자기기록이기도 하지만, 제국주의와 대공황의 시기를 살아가는 하층민에 대한 생생한 보고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생의 밑바닥에서 꿋꿋하게 길어 올린 문장들을 통해 하야시 후미꼬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냈고, 여성으로서 또 작가로서 삶을 향한 떨칠 수 없는 열망을 써내려감으로써 여전히 서글프고 비참한 많은 ‘서민’들로부터 사랑받아온 것이다.

추천의 말

“나는 숙명적인 방랑자다. 내게는 고향이 없다”라고 시작되는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가족이나 집에 결박되는 ‘나’를 거부한 채 오로지 예술에 의한 자아실현을 추구해나가는 삶은 한 여성 작가의 선 굵은 자기형성의 여정과 겹쳐진다. 여성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방랑의 삶과 파격적인 감성, 거리낌 없는 자유로운 창작, 절박하고 튼튼한 생활력. 여성을 ‘가족’과 ‘집’ 안에 들어앉아 있는 존재로 여기던 1920년대의 사회를 향해 던지는 통렬한 자기주장이 『방랑기』다.
이 작품은 당시 일본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역사적 보고이기도 한데, 작가 자신이 전전하던 도시 하층민의 고단한 삶이 오롯이 녹아 있다. 더불어 찢어지게 가난한 삶과 문학을 향한 왕성한 열정이 어우러지는 기이함 또한 느낄 수 있다. 배고픔은 잊을 수도 도리질할 수도 없는 가차없는 현실이었지만, 하야시 후미꼬다운 문학은 그러한 냉엄함 속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간 것이다.
?이애숙(역자, 방송통신대 일본학과 교수)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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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over 리뷰 (5)
 8.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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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ume 2022-04-04 10:48:01 총 4 중3 구매 기타
과거시대의 이야기이고 일기를 바탕으로 쓴 책인데 날짜 순이 아니라서 처음 읽을 때는 시간 순서가 왔다갔다 하는 느낌입니다. 풍요로운 물질이 넘쳐나는 지금 시점에서 근대의 작품이 와 닿을까 싶었지만 시대의 역경을 이겨내는 주인공의 지칠줄 모르는 의지는 오늘냘의 독자에게도 전해지네요. 도쿄태생이 아닌 주인공과 가족끼리의 대화체는 경상도 사투리로 표현하신 번역자분의 센스가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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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1908 2019-12-01 23:58:06 총 4 중3 구매 좋아요
세잎클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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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4281 2019-04-02 06:39:31 총 4 중4 구매 유용해요
가난한 삶속에서 문학을 향한 불굴의 열정으로 이룬 작가 하야시 후미꼬의 작품속에서 진한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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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u5b 2018-03-21 17:19:51 총 4 중3 구매 좋아요
시대상도 엿볼수 있고 자서전적인 작품이라 더욱 감정이입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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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6**00 2017-11-11 16:41:06 총 4 중4 구매 좋아요
계속해서 일본소설을 읽고 있다. 이번이 여섯번째 구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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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로그 리뷰 (4) 전체보기 쓰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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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로그 리뷰 리워드 제공 2021. 4. 1 종료
나도 가난한 영혼인 것을 ls**621 | 2022-04-10 | 추천: 0 | 5점 만점에 5점
“나는 숙명적인 방랑자다.”

이 책의 시작에 주인공은 대놓고 자신을 숙명적인 방랑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고향도 없고, 집도 없으며 부모에게조차 기댈 수 없는 주인공에게 가난은 방랑의 명분이다.

주인공은 “그저 흰쌀밥으로 만든 한 줌의 주먹밥이 먹고 싶다.”라며 끊임없이 굶주린다. 나는 제국주의를 겪지도, 전쟁을 겪지도 않았지만 주인공, 어쩌면 작가인 하야시 후미꼬의 굶주림에 조금이나마 공감했다. 

고향도 있고, 집도 있고, 기댈 부모도 있는데 나는 배부른 소릴하는 걸까. 총알 튀기는 전쟁을 치르고 있지는 않지만,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매일이 전쟁이다. 매일 밤 침대에 몸을 뉘이지만, 마음 누울 곳은 찾기 힘들다. 전쟁하듯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나도 전쟁을 한다. 인정받기 위해, 나를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치고 방랑하는 우리들도 가난한 영혼이 아닌가.

생각해보면 일본 문학을 거의 접하지 않았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에 가까운데, 사람들에게 대중적인 일본 작가 이름을 대보라 한다면 거의 추리/미스터리 장르다. 나도 모르게 생긴 프레임이다. 그러니 일본인이 바라보는 제국주의 시절과 당시의 조선인에 대한 시선을 나는 모른다. 드라마에 나오는 일본인들은 조선사람을 학대할 뿐이었는데, 주인공 아버지의 행동은 사뭇 낯설었다.

“광부 두 명이 기듯이 다가왔다. 이틀이나 굶었다고 했다. 도망한 거냐고 아버지가 물었다. 둘 다 조선인이었다. 오리오까지 가야 한다며 돈을 빌려 달라고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렸다. 아버지는 말없이 50전 은화 두 닢을 꺼내서 하나씩 쥐여주었다. 제방 위로 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텁수룩한 조선인의 머리 위로 별이 빛나고 있었고, 이상하게 우리는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1엔을 받은 두 사람은 우리 수레를 밀어주면서 마을까지 조용히 한참을 따라왔다.”

이 대목에서 사회적 약자와 조선인을 대하는 일본인의 태도는 새로웠고, 충격이었다. 어쩌면 일본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이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햐야시 후미꼬의 <방랑기>는 많은 작품과 시가 실려있는 만큼 작가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가난한 자들의 삶, 여성으로서의 가난은 좀 더 각별한 것임을 드러내며 굶주린 영혼을 절절히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고 책의 표지를 다시 보았다. 검붉은 표지는 가난한 자들의 고통을 묘사하는 것 같았고, 얇은 가지에 불안하게 달린 어린 꽃은 굶주림과 추위, 불안을 느끼게 했다. 꽤 묵직한 책의 무게는 소설을 읽고 난 후의 심정인 듯했고, 내 안의 가난한 영혼을 느끼며 생각에 잠기게 했다.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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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을까?: <방랑기>를 읽고 
jh**b07 | 2020-04-30 | 추천: 0 | 5점 만점에 3점

'아아, 내 머릿속에는 프롤레타리아도 부르주아도 없다.


그저 흰쌀밥으로 만든 한줌의 주먹밥이 먹고 싶다.


"밥을 먹게 해주세요."'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인간관계, 자존감 등 다른 요인들이 부족하면 행복을 얻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여러 방식으로 저 말을 들어왔다. 행복지수 1위 국가인 방글라데시, 부탄의 사례와 함께 말이다.


이 국가들은 가난한 국가지만 행복지수가 높기 때문에, 돈은 행복을 판단하는 지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로 돈이 거의 없어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방랑기>는 작가 하야시 후미꼬의 실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젊은 시절 작가가 쓴 일기를 엮어낸 이 책에는 여공, 사무원, 고깃집 종업원, 여급 등의 직업을 전전하며 살아온 생활이 그대로 담겨있다.


안정적인 수입을 벌며 정착하고 싶었던 그녀였지만 현실은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이었다. 문학에 대한 관심과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자신이 쓴 시와 동화를 잡지사와 신문사에 계속 기고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는다. 조금이라도 수입이 있을 때는 상황이 낫지만, 직업을 잃어 수입이 없을 때는 물에 된장 조금을 풀어 끼니를 해결하기도 한다. 급기야 이런 생활을 계속 이어가는 스스로를 혐오하기까지 한다.





후미꼬의 이야기는 1920년대의 이야기지만, 그저 남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우선 내 자신만 해도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학업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지원 없이 혼자서 모든 생활을 해야한다고 하면 나도 얼마든지 후미꼬와 같은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리고 현재 한국 사회에도 또 다른 젊은 후미꼬들이 살고 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 하고, 수많은 기회를 박탈당하는 이들이 있다. 돈이 없으면 꿈을 이루는 데도 더 많은 시간이 걸려서, 돈이 많은 이들과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진다. 이루어지지 않는 꿈,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는 이들을 박탈감과 자괴감으로 내몬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은 희망적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이상 감정을 제외한 대부분의 것은 돈으로 환산된다. 삶을 살아가면서 필수적인 것들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행복을 찾을 여유도 없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은 성립되기 어려워 보인다.
다행히 후미꼬가 살던 시절에 비해 지금은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가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다. 복지는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다만 이 복지가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이 문제를 개선해야 복지의 의미를 이룰 수 있다.
1920년대에도, 그로부터 100년 후에도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기 바란다. 더 이상 돈이 없어서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이 없길 바라며, 적어도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성립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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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찾아가는 방랑기 
mi**o1 | 2018-08-23 | 추천: 0 | 5점 만점에 5점

“나는 숙명적인 방랑자다. 내게는 고향이 없다.”(p9)후미코는 흙 수저도 갖지 못하고 태어나 자력으로 고등여학교까지 졸업한다. 그 후 연인을 따라 도쿄로 상경하면서 그녀의 본격적인 방랑이 시작된다.

후미코는 잡일꾼, 공장원, 사무원 등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연인과 헤어지고 며칠을 굶기를 반복하면서 그녀는 글을 쓰는 것 만이 자신의 미래라고 믿는다. 품삯을 받아 주린 배를 달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책을 사서 공허한 꿈에 부어 넣는다. 힘들고 지친 몸을 움직여 낡은 노트에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P72 「문장 클럽」에 실리 시 원고료 6엔을 받았다.(중략)피를 토하고 괴로워하며 죽더라도눈도 깜빡하지 않을 대지입니다.진열장 안에따끈한 빵이 있어도내가 모르는 세상은 정말피아노처럼 경쾌하고 아름답군요그때 처음으로하느님 제기랄 하고 소리치고 싶어집니다. 후미코의 재능을 알아본 소설가의 도움으로 여성 잡지에 게재할 수 있게 된다. 이를 계기로 자신의 일기형 글을 연재하면서 「방랑기」에 바탕이 된다. 후미코 일기는 ‘자기 형성을 위한 여정’이 담겨 있다.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발버둥속에도 자신을 지키려 애쓰는 마음, 문학을 향한 애틋함이 구구절절 넘쳐 난다. 단지, 글을 쓰고 싶었던 그녀의 간절함이 가끔 가슴에 비수로 다가온다. P421 쓰고 또 쓰고 퇴짜를 맞으면서도 개의치 않는 뻔뻔함, 지리멸렬한 심리의 밑바닥을 지나간다. 작은 물고기의 그림자를 쫓는 것 같다. 정말이지 빠르게 활자가 죽 늘어선다.p445 이것도 저것도 쓰고 싶다. 신처럼 쓰고 싶지만 내가 쓴 건 한 장도 팔리지 않는다. 그뿐이다. 이름 없는 여자의 비뚤어진 한마디. 어떤 길을 가야 가타이(소설가)가 되고 ̊지쓰가 되는가? 사진 같은 소설이 좋다고 한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우스꽝스러운 세상이다.P293 「요미우리 신문」에 보낸 “허파가 노래한다”라는 시, 시미즈씨 라는 분이 길어서 실을 수 없다고 알려주는 편지였다. 성병 약 광고는 정말이지 크게 나와 있는데 가난한 여자의 시는 길어서 신문에 실을 수가 없다. 겨우 여덟 면짜리 신문은 한심한 시 따위 실을 공간이 없다.  ‘방랑’이란 단어가 어색한 인생이 있을까?어느새 꽤 긴 시간을 방랑하는 나는 후미코의 독백에 눈물짓곤 하였다. 여자가 홀로 세상과 맞선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가족이란 무게를 어깨에 지고 공허한 꿈 하나 손에 쥔 채 혼자서 걷기도 힘든 길을 눈물을 삼키고 입술을 깨문 채 걷는 그녀는 우리의 엄마의 모습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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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함... 그 이상의 소설.
 lm**125 | 2015-10-04 | 추천: 0 | 5점 만점에 5점

과문한 탓에 하야시 후미꼬의 이름은 얼마 전에 지인에 의해 처음 알게 되었다. 지인의 감격
 
어린 비평을 듣고 실체를 엿보고자, 책을 구입해 읽었는데 정말이지 문학이 지녀야하는 완벽함을 겸비한 소설이 아닐 수 없었다. 읽으면서 내 마음 또한 얼마나 비통했는지 모른다....
 
간난신고의 악다구니 같은 삶을 살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소설 속 화자, 그는 바로 작가인 하야시 후미꼬 그 자신이었다. 소설, 그것도 박래품인 번역 문학을 통해 이만한 감동을 얻기는 실로 오랜 만이었다. 선인들이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 으레 평하는 말로 변용하자면,
 
"이 책을 읽고 마음이 울컥하지 않으면 그는 분명 인간의 마음을 가진 이가 아니다....."
 하야시 후미꼬 그 자신의 육체적 삶은 소멸했지만, 그는 영원토록 독자들의 마음에 불멸의
삶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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