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3

손민석 | Facebook

(20+) 손민석 | Facebook


손민석
Favourites · 18 h ·

어떤 국민의 '국민성/민족성' 같은 습성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따지고 싶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있다고 본다. 레닌은 어디선가 "독일의 혁명가들은 표를 사기 위한 역 개찰구가 열려 있지 않으면 역을 점거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독일인들 특유의 질서에 대한 우상숭배적 태도를 비웃었다. 세바스찬 헤프너 또한 독일 사회민주당을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성>에 빗대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성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에게 성에 들어가게 해달라 애원하는 어떤 남자와 같다. 그 남자는 매번 문지기에게 거절당하지만 일평생을 문앞에서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문지기가 허락할 때까지 기다렸다. 세월이 흘러 그 남자가 죽게 되었을 때 그는 문지기가 그에게 "이 문은 원래부터 바로 너를 위한 입구였다. 이제 내 근무가 끝나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이제부터 이 입구는 폐쇄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죽음을 맞이하였다. 혁명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이 올 때까지 가디리기만 하며 독일인 특유의 질서에 대한 숭배를 바꾸지 못하고 히틀러가 성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독일사회민주당은 풍비박산이 났다.
한국인의 습성은 뭘까? 나는 손해를 보려 하지 않고 자기몫에 천착하는 특유의 소시민성이라고 본다. 뭉쳐지지 않고 조직되지 않으며 각자도생밖에 모르는 소시민적 습성에서는 사적 소유에 대한 집착이 강하게 나타난다. 한편에서는 민족주의에 의해 강하게 국가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에 포섭되어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공동체와 분리되어 원자화된 개인들의 각자도생이라는 하나의 광풍(狂風)이 온 사회를 휩쓸며 황폐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지도자에 대한 팬클럽적인 정치문화가 자리잡아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대통령제와 대의제 간의 충돌을 넘어 이제는 아예 후자가 전자를 떠받드는 것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도출하기에 이른 상황에서 민주노총 - 민노당이라는 사회운동 - 정당조직화 모델은 파탄났다. 민노총이 반미시위나 하고 있는 상황에서.. 뭘로 사회를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암담할 뿐이다. 매번 암담하다. 조직 없는 좌파의 삶이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손민석
Favourites · 18 h ·

돌아가는 걸 보니 2년 안에 윤석열 정부는 사실상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이를 즐거워 할 민주당도 단점정부를 지향하는 한국인의 투표성향상 2년 뒤에 폭망할 것 같으니 2년 뒤에 한국 정치는 내가 원하는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하지 않는 상태가 될 것 같다. 바람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차라리 어느 쪽도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유지되는 게 낫다고 본다..

Minju Kim

이미 경고들을 들으셨겠지만,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이 한국은 3년내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고 전망 하고들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뿐만 아니라 한국은 모든 면에서 위험한데 특히나 GDP 대비 부동산이 5배 이상 뛰었고, 그 수치가 80년 일본의 버블경제 직전과 같다고 합니다. 사실 가계부채 시한폭탄은 이명박 때부터 돌려진 것이죠.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가 뭔가 해볼 수 있는 것은 앞으로 2~ 3년뿐인데, 뚜렷한 정책이나 비젼이 없고, 추구하는 목표도 없습니…
See more




TWITTER.COM
    됐든 노병평의회가 무력을 박탈당하고 학살당하고 그러는 과정이 1848년의 2월혁명에서 6월폭동까지 프랑스의 '사회적' 공화정이 몰락하는 과정과 너무 똑같아서 아 이게 뭐지 대체, 그런 생각이 계속 드네. 1848년이 1918~1919년에 반복돼서 나타난다는 게 참 그렇네. 70년 세월을 건너서 똑같은 과정을 밟으며 멸망하는 과정을 보는 게 정말.. 이후의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과정도 1848~1851년의 3년과 판박이라 할 수 있다. 오인석 선생이 일부러 <계급투쟁> 읽으시고 그렇게 구성을 하신건가 싶을 정도로 똑같다. 프랑스혁명사 3부작을 거의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읽었더니 오인석 선생 저작의 매 페이지마다 이건 <계급투쟁>의 어느 부분, 저건 <브뤼메르18일>의 이 부분 이러면서 읽게 되네. 근데 정말 특이하네.. 이렇게까지 흡사할 수가 있나.. 인간들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다 비슷비슷한가보다.



손민석
Favourites · toseroSacgte1y51s1:mae35Y 2d3rgat 100 ·



세계대전 이후 진행된 독일혁명의 실패 과정을 보면 엥겔스의 ‘다수자 혁명론’이 얼마나 옳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결국 사회민주당은 군부를 조금도 장악하지 못했으며, 리프크네히트 등의 극좌 세력의 혁명운동에 대항하는 와중에 독일 군부의 군국주의를 그대로 온존시켜버렸다. 근대국가의 기반을 조금도 훼손하지 못하고 그대로 온존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이 군부에 의존하는 미련한 정치적 선택을 했으니 될 리가 있나. 공부할수록 너무 속이 터지네. 답답하다. 이 긴박한 상황에서 노동자, 병사 등은 피흘리면서 앞으로 나가는데 정당, 조직, 혁명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헛짓거리 하면서 시간낭비는 낭비대로 하고, 분열은 될대로 되고, 보수세력의 세력은 온존시키고 있었다. 공부하다가 100년도 더 전의 일인데 너무 답답해서 열불이 나네. 왜 담배 피는지 알겠다.


25손민석

Favourites · nteSo4tMma15155y a6:6t1m7 1m ·

미야지마 히로시 선생은 다산의 정전제론을 재해석하면서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에 나온 '보편종교론'을 끌고 들어온다. 교환양식 D로서의 보편종교의 재현을 꾀하는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의 유교적 이상과 강대한 국가의 지배에 이용된 세계종교 간의 충돌로 다산을 독해하는 것이다. 아아, 나의 미야지마가. 나의 소중한 미야지마에 가라타니 묻었다. 진짜 한국사 연구자 중에서 내가 가장 애정하는 미야지마 히로시가 근대비판에 매몰되다가 가라타니 고진에 안착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분노가 폭발한다. 이영훈이 망가지는 것도 안타까웠지만 그것이 비극이었다면, 미야지마의 몰락은 희극에 가깝다. 이영훈은 후진국 지식인으로서의 근대지향이 현실과 충돌하며 비극적으로 흑화한 사례이지만, 미야지마는 선진국의 진보적 역사학자가 근대비판의 새로운 대안을 내세우지 못하고 전근대사에 몰두하다가 망상에 빠진 희극적인 사례이다.. 안돼.. 나의 미야지마..ㅠ



손민석
Favourites · nteSo7tMma15152y a6:6t1m7 1m ·

미야지마 히로시는 이영훈의 <한국경제사>에 비견될 저작을 능력이 부족해 못 쓰는건가, 안 쓰는건가? <세계사 속의 다산학>에 실린 그의 글을 읽다보니 이제는 약간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근대비판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종합을 보여달라. 선생님! 제발 좀, 이제 소농사회론을 한번 종합해서 이론화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발. 진짜 제발. 현기증 납니다. 당신께서 근대주의적이라고 비판하는 이영훈은 <한국경제사> 1, 2권이라는 대작을 썼어요. 주저인 <조선토지조사사업사 연구> 번역도 안됐는데 연구노트 수준도 안되는 것만 너머북스에서 내면 뭐합니까 대체.. 좀 보여줘요! 현기증 난다 진짜.




손민석
Favourites · nteSo3tMma15141y a6:6t1m7 1m ·

내가 말하는 '임금농노제'로서의 "지역적 자본주의"의 형성은 20세기 초반의 블록경제의 재현이 아니다. 왜 자꾸 그런 오해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블록경제의 재현을 지향하기에는 세계경제의 복잡성이나 상호의존도가 지나칠 정도로 커졌다. 내가 말하는 지역적 자본주의의 형성은 세계시장의 최종 심급으로서의 미국 시장에 보다 잘 접근하기 위해서 지역적 규모로 생산 조직을 좀더 긴밀하게 재구성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미 그 자체로 지역적 자본주의인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등과의 관계 속에서 좀더 자본주의를 잘 운영하기 위해 지역적으로 재편되는 과정이라 지금은 생각하고 있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이걸 좀 잘했으면 하는데, '아시아의 미국' 운운한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여서 많은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손민석
Favourites · sptooS M1c51a ta3:1f2 9a3u1y ·

나는 한국인이 일본에 민주적 공화정을 수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일본인들 자체가 얼마나 이 천황제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일본 내셔널리즘 자체를 논파할 계기로 생각할까? 이렇게 저렇게 말하고 다니는데 솔직하게 말해서 그냥 '한국인의 내셔널리즘적 욕망'정도로 독해되는 것 같다. 일본 내셔널리즘을 천황제를 매개로 한 '천황의 자식으로서의 일본인'과 "자식이 될 수 없는 자로서의 조선인(과 오키나와인, 중국인 화교, 공산주의자 등)" 간의 "경계짓기"로 파악하지 못하는 한 일본인들은 언제까지고 천황제의 굴레 속에서 조선인을 호명하게 될 것이다. 천황제로부터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해방시켜줄 존재도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조선인(과 외부의 조선인으로서의 한국인)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내 나름의 일본 이해가 반영된 주장이다. 한국의 내셔널리즘과 일본의 내셔널리즘의 동시적 내파로서의 공화주의 혁명의 수출을 논하는건데, 사실 요즘에는 거의 포기했다. '욱일승천'에 친일파 소리 듣는 나라에서 공화주의 수출 같은 건 별 의미없어 보인다. 아무튼 나는 일본이 천황제라는 족쇄, 군주정이라는 역사적 후진성 등으로부터 탈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본다. 일본의 정신사를 좀더 깊게 이해하면 입장이 또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일본 마르크스주의의 쇠락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 언젠가 좀 글이든 방송이든 뭐든 좀 길게 풀어낼 날이 왔으면 좋겠다.


손민석
Favourites · sptooS M1c21a ta4:1f2 9a0u1y ·

윤석열 취임사 좋다는 사람들 제정신 아닌 것 같다. 조금이라도 지적인 훈련을 받은 자유주의자라고 하면 윤석열의 취임사에 나온 '자유'가 얼마나 근본없는 개념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취임사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전임 보수 대통령인 이명박과 박근혜의 취임사에 비해 내용이 훨씬 부실하다. 이명박의 취임사 전문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3064 을 보면 알겠지만 이명박 취임사는 '선진화'라는 방향성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그에 맞춰서 왜 선진화가 필요한지에 대한 그 나름의 인식과 그를 뒷받침할 생애주기형 복지제도, 여성인권, 교육개혁, 기초과학 지원책, 주택 인프라, 국토개발, 환경보전, 한류 문화산업, 문화외교, 남북관계 등의 국정 운영의 문제 전반에 대한 대통령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박근혜의 취임사 https://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1042219.html 도 경제민주화 - 창조경제 - 국민맞춤형 복지 등의 패러다임이 제시되어 있다. 윤석열의 취임사에는 아무런 방향성 제시가 없다.
자유가 중요하다는데 정작 들여다보면 자유는 경제성장으로 환원돼 있어 그 의미조차 정확하지가 않다. 자유주의 사상의 어느 계보와 연결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어떠한 자유주의 사상도 경제성장 그 자체를 자유라 하지 않는다. 경제적 번영은 자유의 증대의 결과물이지, 그 자체가 추구해야 할 무엇이 아니다. 물질적인 부의 증대는 조건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꼭 자유주의에 대한 지적 훈련을 받아야만 할 필요는 없겠으나 적어도 지적 훈련을 받은 자유주의자들이 이런 조잡한 취임사를 긍정하는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해가 안돼서 말하는거다.
기본적으로 '자유주의'도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좋은 공동체란 어떻게 이뤄지는가?" 등의 질문 위에서 서있다. 지금 이 질문이 하나도 없다. 로티, 러셀, 포퍼 등이 왜 유태인 문제를 두고 고민했나. 자유주의적 회의주의의 자장 속에서는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조차도 허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자유를 왜 허용할 것인가. 왜 자유로워야 하는가. 각자 생각하는 자유가 다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다 다른데 그런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어떻게 '평화'로운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는가? 자유주의적 규범은 어떤 자유가 다른 자유에 비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직관"에 의존해 정당화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롤즈처럼 이런 '형이상학적 문제'를 다루기 싫어서 나는 자유민주주의적 공동체 속에서 살고 있고, 내가 속한 공동체는 자유와 평등을 제1의 가치로 여기는 '정치문화'를 지니고 있기에 나는 이것을 전제로 논의를 펼치겠다는 뻔뻔함 없이 자유주의자를 참칭할 수 없다. 자유주의자들은 인습, 정치문화, 직관, 인간"본성" 등의 헛소리들에 의존하지 않고는 왜 자유, 평등이 제일 중요한지 정당화를 못한다. 하다하다 안되니 "좋은 공동체", "좋은 삶" 등의 좋은 말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것이다. 이것도 궁색하니 이사야 벌린의 '소극적 자유'를 그리도 애용한다. 손민석! 네가 말하는게 뭔지는 난 잘 모르겠고! 그냥 각자 원하는대로 다른 사람 침해하지 않고 알아서 살면 되는 것 아닌가! 손민석이 같은 '빨갱이'들이 적극적 자유 추구하는 것만 막아도 된다! 그러시겠지요.. 훌륭하십니다. 모두가 자유를 누리지만 모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자유주의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이 문제를 "지식"의 문제로 환원시켜서 해소한다. 역사발전법칙 같은 '진리'에 대한 지적인 탐구를 수행하는 것으로 가치 문제를 해결한다.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영원한" 진리 같은 건 없고, 계급사회에서만 통용되는 "한시적"인 역사발전법칙에 대한 인식 속에서 가치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방식이다. 자유주의가 자기 자신을 견디지 못해 자멸한다면,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가 쌓은 '지식'이 스스로를 지양하는 방식으로 마르크스주의 자체는 살아남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퍼가 온갖 헛소리에도 불구하고 헤겔, 마르크스 등을 플라톤과 엮은 건 탁견이다.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대결은 시대를 뛰어넘어 자유주의 내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대통령한테 이런 사고를 다 하고 자유라는 개념을 쓰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가 말하는 자유가 '경제성장'이라는, 가장 저열한 수준의 자유로 환원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인 훈련을 받은 자유주의자들이 어떻게 그리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따져묻는 것이다. 자유에 대해 고민해본 자유주의자가 많지 않다보니 경제성장이 곧 자유의 확대라는 헛소리를 대통령이 해도 자유주의자를 참칭하는 이들이 감격(?)씩이나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윤석열의 말에서 한국 자유주의의 조야함을 읽어내지 못하는, 그래서 반성하지 못하는 '자칭' 자유주의자들 때문에 나같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자유주의자 노릇까지 해야 한다..


HANI.CO.KR

[전문]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700만 해외동포 여러분! 저는 오늘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에 취임하...


손민석
Favourites · nesp400402y1 m18:9utMa a0c2 ·



윤석열의 취임사 전문을 읽어봤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뭘하겠다는지도 모르겠고 자유의 의미가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이라는데 다 같은 말이다. 한마디로 중언부언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반지성주의에 위협받고 있다는 말도 무슨 근거에서 나온 말인지 모르겠다. 차라리 2010년대 이후 세계화가 멈추면서, 다시 말해서 경제적 성장이 답보 상태에 빠지면서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선호가 생긴 것을 지적하며 경제적 번영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게 본인의 ‘자유론’과도 상통하며 일관됐을 것이다. 정적을 비판하기 위해 말이 꼬였다. “빠른 성장”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라고 말하며 거듭 경제성장만 말하는데 지금의 한국 상황에서 더 빠른 성장이라는 건 불가능하다. 이명박의 747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천박한 경제성장 지상주의라 생각돼 실망스러웠다. 차라리 선택의 자유를 논하는 게 낫다. 취임사 전체를 관통하는 자유는 경제성장으로 환원되고, 과학 등의 객관적 진리에 대한 순진한 믿음을 내세우는 관료적 전문가주의에 빠져 있다. 정치가 아닌 행정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니 될 일도 안 된다. 차라리 출마 선언문이 훨씬 더 가치 있다. 자유, 인권 등을 논하지만 차별금지법이나 이런 자유로 확장되지 않는 개돼지의 자유에 지나지 않는다. 실망스럽다. 경제성장을 국가가 주도해서 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재철

놀랍지도 않아요. 민주주의에 자유가 없으면 공산주의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그냥... ㅋㅋㅋ... 반공을 제1의 국시로 하겠다는 말을 좀 21세기스럽게 한 수준?
==



손민석
Favourites · dorm:aM y1006 mt1715a0t39 ·



서평쓰고 싶어지는 책이다.








손민석
Favourites · eSos10 y 29ahl11a13 4t7:cM ·



윤석열 정부의 인선을 보면 처참하다 못해 참담한 지경이다. 이 사람의 세계관이 훤히 보인다. 그 지지자들이나 지도자나 생각하는 수준이 너무 조잡하다. 한 마디로 이 세계관은 전문가적 세계관이다. 관료 출신과 검찰 출신을 결합한 내각을 보고 있으면 '정치'라는 걸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너무 명백하게 보인다. 정치, 정치인에 대한 혐오로 구성되어 있다. '부패한 운동권의 기득권 카르텔'과 다른 전문적이고 능력 있는 엘리트 관료 출신들로 내각을 구성하겠으며, 대의제 기구와 정치를 우회하여 합리적이고 전문적인 "행정"을 하겠다는 의지가 너무 뻔히 보인다. 기가 막힐 정도이다. 성공할 수가 없다.
이 나라는 이승만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대통령들이 박정희 식의 "행정가형 대통령"을 이상향으로 추구해왔다. 거의 예외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예 국가를 회사로, 대통령을 CEO로 생각하고 기업운영하듯이 국가운영을 하려다가 임기 초반부터 대중적 저항에 부딪혀 좌초했다. 문재인이 왜 실패했나. 그렇게 하다가 정치를 못해서 실패한거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니 아무말도 안하겠다고 뒷짐지고 간신배들만 날뛰게 했다. 그 실패를 더 급진적으로 답습하겠다고 한다. 될 리가 있나.
근대 사회에서는 모든 이해를 초월한 보편적 이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 보편적 이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게 대의제 기구이다. 헤겔이 계속해서 말하듯이 대의제를 통해서 사적 이해가 보편적 이해로 전화되는 과정을 겪는다. 행정부는 그렇게 이미 '즉자적'으로 보편화된 업무를 갖고 있지만, 그 보편화된 업무는 대의제를 통해 "대자적"으로 보편화 될 때에만 비로소 시행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저 의회가 민족정신의 수준을 보여주는거라고 헤겔이 말하는거다. 이 대의제를 우회하고자 하는 욕망을 근대적 독재, 보나파르티즘이 보여줬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보나파르티즘을 지향하며 정치를 행정으로 바꾸려 노력해왔다. 왜 87년 이후 계속 대통령이 퇴임 이후 화를 겪는가, 정치를 안 하고 행정을 했으니까.. 행정의 희생자들이 가만 있을 수가 없으니까. 보편화되지 못한 행정은 사적인 이해의 추구와 다르지 않으니까.. 부르주아 정치가 환상을 내걸어야 나같은 좌파들이 이게 다 부르주아적 환상이고 어쩌고 하는데 환상조차 없다..
그런데도 수십년째 정치인 욕하고, 정당을 기득권자들의 모임이라 멸시하면서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다. 이정도면 우리집 고양이도 이제 정당과 대의제 기구를 중시해야겠구나, 정치를 좀 제대로 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할텐데.. 아직도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국민 그놈의 국민 헤겔 표현에 따르면 아무것도 아닌 nobody들, 존재하지도 않는 국민이란 허상을 좇고 있다. 이게 되겠나.. 문재인은 정당을 무시한다는 최장집의 비판에 정당을 조직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은 일단 선거에서 승리해야 생긴다며 승리한 다음에 자기도 정당조직 잘 정비해서 정당정치 할 것처럼 답변하더니 결국 안 했다. 남은 게 뭔가? 관료들의 행정처리밖에 없다. 정치가 실종된 곳에 행정, 그것도 개인화된 행정만 남는다. 개인화된 행정은 보편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5년마다 뒤집고 뒤집고 또 뒤집고.. 답답하다. 뻔히 보여서 너무 답답하다. 정치인이 정치를 안 한다고 선언하는데 왜 좋아하나 대체 왜..


Sung Won Kim

제왕적 대통령제로는 답이 없습니다. 현행 헌법을 개헌하지 않아도, 1) 국회의 총리 추천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2) 국회의 국무위원(총리, 부총리, 장관 등) 해임건의안 가결을 대통령이 천재, 지변, 전시, 사변 밎 그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과 같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법을 만들면 실질적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리 될 경우 선거제도 다당제를 보장하는 비례대표제로 바꿔야 합니다.








손민석
Favourites · eSos00 y 09ahl11a13 2t0:cM ·



2017년 무렵에 나는 문재인에 관한 짧은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적었다.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될 것이 확실한데 도대체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의 이름이 들어간 책을 전부 사서 읽고 내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었다. 연재 계획까지 세우고 지인들과 관련해서 많은 논의를 했었다. 지금 보아도 큰 틀에서는 틀린 게 적다고 생각하지만 검찰개혁을 성공으로 이끌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 자체가 틀렸기에 결과적으로 무의미한 글이 됐다. 2019년 무렵에 나는 그 글의 초안이 담긴 노트를 찢었다.
그 글의 핵심 논지는 앞으로 문재인 정부의 향방은 ‘검찰개혁’에 달려 있기에 임기 초부터 적극적으로 그것을 이끌어 갈 것이라는 것이었다. 남북관계의 위기로 인해 임기 초의 높은 지지율은 남북관계 해소로 소모되었고, 그 이상한 소득주도성장론 또한 정치적 지지세력의 조직화가 빠져 있는 바람에 동력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렇게 내 예측과 달리 임기 초에 별다른 성공 여부도 따질 수 없는 쓸데없는 짓들로 시간낭비를 계속했다. 그런 낭비는 한일관계 파탄에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박근혜 정부가 알아서 한일관계의 어려운 부분을 해소했는데, 정치적으로나 실리적으로나 보수세력을 탓하며 한일관계를 새롭게 주도할 수 있던 기회를 그는 시원하게 걷어찼다. 한일관계 파탄이 예상된다는 외교부의 보고에 그래도 어쩔 수 없다며 위안부 합의를 폐기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를 보고 이 정부는 사실상 끝났다고 봤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 개인이 지닌 그 강한 민족주의적 정서를 포착하는데 실패했다고 자책했다. 그가 보수적이고 점진적이며, 관리를 우선시하는 정치를 행하리라 보았기에 그를 지지했었다. 2017~2022년의 한국에 필요한 것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 조정이며, 그것을 수행할 이는 보수적이면서도 점진적인 태도를 지녀야 했다. 촛불’혁명’ 운운하는 얼치기 좌파들의 주장은 세상읽기를 실패했다는 증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검찰개혁’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바꾸는 좋은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구현된 그의 정치는 예상과 달랐다. 문재인의 정치는 대통령 그 자신은 침묵하는 대신 광범위하고 항시적인 대중동원에 기초해 결정을 외주화하는 형태였다. 그는 중요한 순간마다 침묵했으며 정책을 펼칠 때마다 그 정책의 혜택을 받는 새로운 계층, 계급 등을 조직하기보다 무조건적으로, 광적으로 충성하는 집단이 “알아서” 날뛰도록 냅두었다. 이러면 안된다고 하는 것마다 했고 그 결과 지지율은 계속 떨어졌다. 대선마저 졌다. 조국 사태에도 불구하고 분점정부를 싫어하는 성향의 한국인들은 단점정부를 만들어줬지만 부동산으로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그것도 하지 말라는 것만 한 결과였다.
검찰개혁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모를까, 검찰개혁에 반발해서 나간 윤석열한테 대선까지 뺏겼다. 검찰개혁이 본질이 될 것이라는 내 이해 자체는 옳았지만 나는 문재인이라는 사람 자체의 감정선을 완전히 놓쳤다. 그는 퇴임식마저도 본인의 지지세력들을 운집시켜놓고 그들의 환호 속에서 정치적 여정을 마무리하는 쇼를 했다.
본디 문재인이 지향한, 2017년에 내놓은 검찰개혁안의 핵심에는 “시민의 자기방어권”의 확대가 있었다. 그의 정치에서 ‘시민’은 실종됐고, 그를 지지하는 민주당은 임기 내내 국가 관료제와 투쟁했다. 박정희가 만든 근대국가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점차 형해화 됐고 민주당 세력은 문재인에 이르러 그런 형해화를 아예 추구해야 할 정치적 이념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나는 그의 정치에 “전제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다. 대의제의 기능은 사라지고, 대중동원에 따라 국가 관료제의 기능적 형해화를 추구하는 정치적 운동으로서의 ‘전제주의’는 아직 가설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내게는 유용한 틀을 제공해주고 있다. 서울 중산층 중심의 대중동원형 정치, 수도권 대 지역이라는 새로운 지역주의의 시대가 문재인 정부에서 탄생했다.
반면에 좌파적인 정치기획들은 모조리 파탄났다. 이 정부가 갖다쓰지 않은 진보의제가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실제로 만든 시대는 뭔가? 각자도생의 시대, 아무도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 하고 사적 소유권을 너무나도 당연시하는 시대. 좌파 기획은 무너지고, 이제는 보수들마저도 대중동원을 자연스럽게 하는 시대가 됐다. 수도권 대 지방이라는 새로운 지역주의가 아른거리는데 내세울 의제가 없다. 폭풍우가 몰려오는 게 보이는데 우산이 없다. 그런 시대라 생각한다. 암담한 심정으로 새 정부의 출현을 본다.
윤석열 정부는 성공할 수가 없는 정부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성공하는 일이 될 이 희한한 정부의 출범을 보며 참담함을 감추기 어려운 건 문재인의 정치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2년간 문재인의 자장에 놓인 입법부와 윤석열의 행정부 간의 지리하고 조잡한 투쟁을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민주당이 패할 것이다. 처참하게.. 그때 가서 승리해도 윤석열 정부에게는 남은 게 없으리라.

Naru Seo

손민석 선생님 글을 몇 년 전부터 정말 감사히 잘 읽고 있던 사람입니다. 오늘은 감사히 잘 읽었다는 댓글을 달고 싶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고 한 시대의 정리에 큰 도움 되었습니다. 중요한 글들을 집필해 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손민석
Favourites · eSos00 y 29ahl11a13 0t6:cM ·

플루토피아 - 핵 재난의 지구사 
케이트 브라운 (지은이),우동현 (옮긴이)푸른역사2021-11-29원제 : Plutopia: Nuclear Families, Atomic Cities, and the Great Soviet and American Plutonium Disasters (2013년)

정말정말 재밌다. 나는 원자력에 대해 사실 이것저것 보고 듣고 해도 정말 잘 모르겠다..ㅠ 아직까지도 입장정리가 잘 안되고 있지만 그래도 케이트 브라운 책 두 권을 읽으면서 나름 좀 비판적 관점을 잡기는 한 듯하다. 글쓴 게 있는데 다시 써야 할 것 같다.


MyungSeok Yoon

추천해주신 덕분에 저도 잘 읽고 있습니다…

손민석

윤명석 오우, 읽고 계시군요. 평이 궁금합니다ㅎㅎ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