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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그들은 왜 천황의 품에 뛰어들었나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그들은 왜 천황의 품에 뛰어들었나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그들은 왜 천황의 품에 뛰어들었나

등록 :2007-02-15 19:30수정 :2007-02-1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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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의 사상> 나카무라 미쓰오 등 지음. 이경훈·송태욱 등 옮김.이매진 펴냄·1만6500원


‘근대의 초극’ 논리로 서양정신 부정하고
일본정신 중심으로 세운 ‘대동아전쟁’ 사상 묶음


일본 우익의 뿌리는 깊다. 일본 파시즘의 창시자 기타 잇키가 대작 <일본개조법 대강>을 펴낸 것이 이탈리아 파시스트 베니토 무솔리니의 정권 장악 이듬해인 1023년이었다. 1936년 2월 26일 일단의 파시스트 청년장교들은 기타 잇키를 사상적 대부로 삼아 쿠데타를 감행했다. 장교들의 거사는 실패로 끝났고, 일본은 군부 중심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유사파시즘적 군국주의 체제를 구축했다. 지식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 체제에 반감을 느꼈고 더러는 냉소했다. 사태를 일변시킨 것은 2차세계대전의 발발, 더 결정적으로는 태평양전쟁(대동아전쟁)의 발발이었다. 1941년 12월 8일 일본 항공대가 진주만을 난타했을 때, 수많은 지식인들이 ‘의식의 혼돈상태’에서 빠져나와 천황의 품안으로 뛰어들었다. 좌익 지식인들의 전향도 잇따랐다. 일본이 세계사의 주역이 되었다는 것, 영·미로 대표되는 서구에 대항해 새로운 세계상을 펼쳐보이게 됐다는 것을 이들은 벅찬 감격으로 확신했다.

이들이 느낀 감격의 내적 논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헌으로 꼽히는 것이 ‘근대의 초극’과 ‘세계사의 입장과 일본’이라는 좌담이다. 태평양전쟁기에 일본의 일급 지식인들이 몇 차례에 걸쳐 대좌한 결과를 모은 두 문헌은 당대의 지식인들이 역사의 전개를 어떻게 바라보았고, 일본의 억압적 체제와 일본이 주도한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나아가 어떤 논리에 기대어 그 체제와 전쟁에 열광했는지 생생하게 알려준다. <태평양전쟁의 사상>은 이 별도의 좌담을 하나로 묶어 옮긴 책이다.

‘근대의 초극’이란 말하자면 이들의 논리를 요약한 시대적 명제였다. 1942년 7월 월간 <문학계>가 주최해 그해 9월과 10월에 연재한 이 좌담회는 ‘지식계의 통일전선’이었다. 사상의 뿌리가 서로 다른 ‘<문학계> 그룹’, ‘일본 낭만파’, ‘교토학파’가 모여 군국주의 체제의 침략전쟁을 이론적으로 옹호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총력전 체제 아래서 사상의 전선에서 벌이는 전쟁, 곧 사상전의 하나가 이 좌담회였던 것이다. 이들에게 서구가 이루어낸 자유주의·진보주의·자본주의, 요컨대 근대문명의 모든 성과는 극복돼야 할 대상, 척결돼야 할 병폐였다. 태평양전쟁은 단순히 영·미세력의 격파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문명이 초래한 인간 정신의 질병에 대한 근본 치료”였다. 그러므로 미국에 대항한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서양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는 해방전쟁이었다.

교토학파의 대표 학자들의 좌담을 모은 ‘세계사의 입장과 일본’ 편은 ‘근대의 초극’ 편의 논리를 좀더 세밀하게 펼치고 있다. 이들은 발전이나 진보라는 개념을 근대 유럽 특유의 것으로 규정하고, 그런 근대적 역사인식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근대의 단선적 진보사관으로 보면, 일본은 서구를 뒤쫓는 후발국가의 지위에 설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이들은 서양 지성이 구축한 역사의 도식을 부정하는 곳에서 진정한 세계사가 시작된다고 선언한다. 이들은 일본 정신을 중심으로 한 동양 정신을 서양 정신에 대립시키고, 태평양전쟁을 “반역사적인 힘에 대한 역사적 생명의 싸움”이라고 규정한다. 이 싸움의 끝에서 ‘대동아공영권’이 펼쳐진다. 이들은 ‘이에(家·집안)의 윤리’에 입각해 일본이라는 주체의 지도적 지위를 이야기한다. 집안에서 부모가 자식을 지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듯, 서양을 타파하고 세운 대동아공영권에서 일본이라는 가장이 동양의 다른 민족들을 이끌어 주체로 만들어야 하며, 이것이 일본에 할당된 특수한 역사적 사명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모든 논리는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군국주의 세력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데로 귀결한다.

이들이 전개한 ‘근대초극론’은 오늘의 눈으로 보면 탈근대주의의 한 변형으로 볼 수도 있다.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고 근대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탈근대론의 핵심 논점 가운데 일부이기도 하다. 근대의 폐해에 대한 극복의 논리가 침략과 지배와 파괴에 동원될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의 좌담은 상기시켜준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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