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30

알라딘: 체르노빌의 아이들 (반양장)



알라딘: 체르노빌의 아이들 (반양장)




체르노빌의 아이들 (반양장)
히로세 다카시 (지은이),육후연 (옮긴이)프로메테우스2006-09-06원제 : チェルノブリの少年たち (1990년)



























미리보기


정가
8,000원
판매가
7,200원 (10%, 800원 할인)

8.6100자평(1)리뷰(15)

168쪽
152*210mm
218g
책소개
일본의 반핵.평화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히로세 다카시가 1986년의 체르노빌 참사를 소재로 쓴 르포 소설. 핵사고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뜨리는가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1990년 출간되어 일본 사회에 반핵운동의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환경운동의 고전으로 꾸준히 읽혀온 작품이다.

세계 최악의 원전사고로 기록되는 체르노빌 참사는 20주년이 되는 2006년까지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고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와 인근 국가의 사람들이 대를 이은 후유증의 고통에 지금도 신음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깊은 상처를 남긴 사고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끊임없이 원자력발전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실재 있었던 사건을 기초로 하며, 원자력 발전소 건설의 위험성과 무모함을 부각시키는 데 최대한 초점을 맞춘다.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던 그 날, '죽음의 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도망쳤지만 끝내 죽음을 맞게 되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발전소 책임자인 안드레이 세로프의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책속에서



... 타냐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사람 그림자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이윽고 그 그림자는 타냐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타냐는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살금살금 다가가 상대방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타냐는 깜짝 놀라 돌아보는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는 땀과 진흙이 범벅되어 엉망이었고, 왼쪽편 얼굴과 몸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또한 너덜너덜해진 셔츠 사이로 드러난 그의 오른편 몸은 목덜미에서 가슴까지 빨갛게 익어 있었다. 이 무슨 처참한 꼴인가. 타냐의 눈에서 왈칵 쏟아졌다. 그리고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온몸에 힘이 빠지더니 피투성이인 남자의 손목마저 놓쳤다. - 본문 56쪽에서 접기


추천글

‘서울에 핵발전소를!’ 하고 외치는 마음
- 최종규 (작가)




저자 및 역자소개
히로세 다카시 (廣瀨隆) (지은이)
저자파일
최고의 작품 투표
신간알림 신청


‘1人 대안언론’이라고 불리는 히로세 다카시는 자신이 발언한 내용만큼이나 그 책임을 깊이 인식하고 실천하는 저널리스트 겸 논픽션 작가이다. 또한 일본 우익과 재벌의 공공연한 위협과 폭력에 항거하는 반핵평화활동가이자 다방면에 걸친 취재를 통해 심도 있는 분석을 펼치기로 정평이 나 있다. 핵발전을 통해 공급되는 도쿄전력의 전기를 일절 사용하지 않기 위해 살고 있는 집을 손수 뜯어고치고, 자칫 자신의 불온한 저술 작업으로 인해 전체에게 누를 끼칠 수 있다면 시민단체나 진보조직의 가입 권유는 오래전부터 정중히 사절해왔지만, 단 한 명의 시골 농부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언제든 마다않고 손팻말과 짐을 챙겨 떠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현재 국내에 번역 소개된 그의 저작들로는 미국의 자본가를 중심으로 세계 근현대사를 심층취재한 <제1권력: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왔는가>를 비롯하여 전쟁의 본질과 발발 이유를 그 특유의 발상력으로 날카롭게 해부한 <클라우제비츠의 암호문: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체르노빌의 아이들>,<땅이 운다>,<도쿄 최후의 날> … 총 56종 (모두보기)






끔찍하다는 생각뿐.
transient-guest 2011-01-27 공감 (1) 댓글 (0)
Thanks to
공감





마이리뷰

구매자 (4)
전체 (15)

리뷰쓰기

공감순





나의 슬픈 체르노빌




책읽기는 즐거운 경험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것은 고통스럽다. 책장을 넘기는 것이 이처럼 힘겹고 목이 멘 것은 처음이었다.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1986년에 일어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로부터 몇 주 동안에 한 가족(으로 대변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닥친 무시무시한 비극을 그린 소설이다. 책은 악몽이 시작된 운명의 금요일, 1986년 4월26일 새벽 1시30분부터 시작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직원 안드레이씨의 집 바로 근처에 있는 발전소에서 갑작스런 폭음과 함께 불기둥이 치솟는다. 4기 원자로가 폭발한 것이다. 평화롭던 동네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사람들은 미처 '방사능'의 공포를 실감하지 못한 채 피난길에 오른다. 열다섯살 소년 이반도 아버지 안드레이, 어머니 타냐, 여동생 이네사와 함께 행렬에 합류한다. 그러나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피폭자 분류에 의한 갑작스런 가족의 생이별, 그리고 죽음에 의한 영원한 지상과의 이별뿐이다. 아, 죽음 전에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에게 닥친 무시무시한 육체적 고통도 빠뜨리면 안되겠다. 눈이 멀고, 머리카락이 한 주먹씩 빠지고, 피부에 붉은 반점이 돋고, 입안에서 피가 나고, 다리가 풀려서 걸을 수가 없으며, 백혈구가 감소해 창백해진 아이들은 폭발사고 뒤 불과 며칠 만에 하나둘 죽어간다. 그리고 당국의 철저한 보안단속 아래 피지도 못한 그들의 생명은, 한 송이 꽃도, 한 마디 작별의 인사도 없이 구덩이 속에 내던져진다.

그러나, 이반의 눈을 멀게 하고, 여동생 이네사를 입에서 피를 토하며 죽게 만들고, 어머니 타샤가 병원을 돌며 아이들을 찾아헤메게 만든 이 죽음의 재는 우크라이나의 한 도시 체르노빌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의 삶을 파괴한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공중에서 흩어진 재는 바람을 타고, 비를 타고, 물을 타고 조금씩 지구 전체로 스며들어와 인류의 목을 조여온다.

이제 20년이 넘은 과거가 되어 버린 체르노빌. 반핵의 구호는 갈수록 빛이 바래고, 원자력 에너지는 '깨끗한' 대체 에너지인양 버젓이 TV광고를 해대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의 외면 속에 오늘도 신음하는 체르노빌이 있는데도. 지은이 히로세 다카시 선생은 원자력 산업의 보급은 "1950년대에 일군의 독점자본가가 돈벌이를 위해 그 보급을 획책한 데 기인한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란 것도 알고 보면 원자, 수소폭탄 산업을 경제적으로 성립시키려는 상당히 무리한 방법일 뿐"이라고 원자력 발전의 본질을 정확하게 폭로한다. '군수산업 가운데 이윤을 내는 데 단연 으뜸'이기 때문인 것이다.

체르노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이순간에도 방사능 오염에서 비롯된 각종 암에 시달리는 사람들, 죽어버린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우리는 정확한 통계조차도 갖고 있지 않다. 백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있다고 한다. 핵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상,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제2의 체르노빌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어느 누가, 우리가 이반 소년처럼 눈이 멀거나, 이네사처럼 입에서 피를 토하며 죽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는가.

안드레이, 타샤, 이반과 이네사, 그리고 핵으로 인해 고통스럽게 죽어간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빈다.
- 접기
에도가와란포 2006-09-26 공감(21) 댓글(2)
Thanks to
공감




책장을 넘기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을 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이전의 버마 아웅산 폭발 사건이나 이웅평 소령 귀순 사건에 대한 기억은 생생한 데 반해 체르노빌 사건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다가올 아시안 게임에 국력의 대부분을 쏟고 있을 때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사실에 대한 정확한 보도가 국민들의 동요를 불러올까 봐 보도를 자제했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체르노빌 사건은 "우리나라에는 영향이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는 텔레비전 뉴스 보도를 무심히 보았던 게 전부였다.

체르노빌에 대한 관심은 사건이 있은 뒤 십여 년이 지나 관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되살아났다. 여전히 폐허인 채 아무도 출입할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발전소와 그 주변 지역, 방사능 피폭으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과, 여전히 각종 암에 시달리며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 끔찍한 기형을 지니고 태어난 짐승과 아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심히 지켜보았던 뉴스 속의 사건이 실은 세상을 뒤흔들 만한 크나큰 사고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사고 발생 2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책을 통해 체르노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사실적이고, 잔인하고, 무섭고, 두려운 책 <체르노빌의 아이들>

이 책은 15살의 소년 이반이 최초의 원전 폭발을 목격하는 것으로부터 내용이 시작된다. 주로 원전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가족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살고있던 이반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발전소라고 여겼던, 아버지의 직장이기도 한 그 곳의 폭발 모습을 지켜보면서 무의식적으로 이젠 끝장이라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경황없이 떠나게 된 피난길... 사람들은 방사능에 피폭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채 알지도 못한 채 버스로, 자가용으로 길을 떠나게 되지만,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온몸에 기운이 빠지고,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나가고, 실명을 하고, 점막과 장기의 출혈로 고통을 받으며 죽음이 자신들을 향해 엄습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남아서 화재진압과 뒷처리 작업을 하던 인부들과 발전소 직원들 역시 방사능에 대한 대비 없이 거의 맨 몸으로 현장에 투입되어 처참하게 죽어간다.

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사실적인 책의 내용은 책장을 넘기는 손을 주저하게 했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은 고통으로 먹먹해졌다. '차라리 허구였으면, 작가의 머리 속에서 그냥 재미삼아 만들어낸 내용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을 읽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

저자는 '지금 사람들이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지구는 끝장이다.'(167p)라는 생각 때문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장 안전한 에너지 생성 방법이라 일컬어지는 원자력 발전이 실은 가장 이윤이 많이 남는 군수산업(166p)의 일종이며, 원자력 발전소 추진책은 에너지 부족 문제가 아니라 독점자본의 이익과 결부된 문제(167p)라고 고발하기도 한다.

책을 읽고 나서 문득 박혜경의 맑은 목소리와 함께 한동안 방영되던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의 광고가 생각났다. 우리나라도 역시 원자력 발전소의 안정성과 유용성을 알리기에만 급급했을 뿐, 발생 가능한 사고를 국민들에게 정직하게 알리고 사고발생시 대처 방법을 교육하는 데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이대로 가면 인류에게 내일은 없다."는 진정한 고백이 지금의 비극을 극복하는 데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168p)고 가슴을 치며 호소하고 있는데, 과연 인류는 그 희망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얄팍한 책이지만 그 울림이 너무나 크고 깊어 밤 늦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 접기
logos678 2007-01-12 공감(3) 댓글(2)
Thanks to
공감




체르노빌의 아이들.


이미 오~~래 저 이야기이지만, 대학에 입학해서 1학년 1학기 때 들은 강의에서 느낀 감동을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다.
'문학의 이해'라는 과목이었는데, 고등학생 티를 못벗은 내게는 일종의 지적 쇼크로 다가왔다.
그 당시 내게는 또래들에 대해 일종의 '지적 자만'과 같은 것이 있었는데....

티없이 자유롭고, 동시에 엄청난 지성을 소유하고 계셨던 교수님의 모습에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를 느낀 것이다.
낡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수줍은 웃음을 짓고 계신 백발의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난 이 강의를 통해, '고수'를 직접 만났고 이후에는 내 생각이 남들의 생각보다 더 우월하고 옳다는 태도를 탈탈 털어 버렸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한 학기 강의였다. 그 주인공은 국문과 김인환 선생님이시다.

교수님은 언젠가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소설로 쓸 수 있어야 진짜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소설이 다른 형태의 글쓰기보다 우월하다는 뜻은 물론 아니셨고, 자신이 알고 있는 개념들간의 관계(이론)에 대한 앎이 현실의 삶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개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보편의 이론(앎)이 특수한 상황(삶)에 적용되면서 그 존재가치가 검증되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히로세 다카시의 '체르노빌의 아이들'이라는 소설은 이러한 "문학적 검증과정"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본래 소설가는 아니고, 저널리스트인 히로세 다카시 씨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건에 대한 정보를 세세하게 수집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정확한 정보들이 히로세씨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비극적 사고에 대한 진실은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은폐되거나 완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로세씨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체르노빌에 대한 모든 정보를 '소설'로 쓰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복잡다단한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있게 만든 프로세스의 오류나 피해에 대한 설명 등은 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규명한다고 해도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없다는 것도 계산했을 것이다.

평화소설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 소설에서 소설가가 쓴 극적인 구조나 기교있는 문장력같은 것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뒤 벌어지는 참혹한 피해의 과정이 세세하고 담담하게 묘사되어 있다.
한 가족의 비극적 이야기는 마치 이웃의 피해(당장 내게도 닥칠 수 있는...)와 같이 다가온다.

원자력 발전은 결코 청정한 그린에너지가 아니다. 당장의 경제적 이익을 기반으로 사탕발림되어 있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어떠한 긍정적 이야기도 믿어서는 안된다. Risk는 감수하기보다는 회피하는 것이 올바른 전략이자 태도이다. 특히 그 위험이 클수록 말이다.

이 서재의 이야기가 너무 추상적이어서 공감을 얻을 수 없는가? 그렇다면,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한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한 가족의 특수한 이야기는 공감을 주고, 그 공감을 통해 보편적 태도를 형성하게 해 줄 것이다.
- 접기
동녘새벽 2010-10-16 공감(2) 댓글(0)
Thanks to
공감




원자력 발전소가 10년마다 폭발한다면?


사람들 대부분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하여 상식이하로 둔감합니다. 우리들뿐만 아니라 20년 전, 옛 소련의 우크라이나 지역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딱 20년인 1986년 4월 26일, 옛 소련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원자력 발전소'라고 믿었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가 폭발 사고를 일으킨 날 입니다.

1945년 8월 6일은 처음으로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핵무기가 히로시마에 투하되어 일본국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그 위험을 알린 날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40년쯤 지난 1986년에 체르노빌에서는 히로시마 원폭 20배에 해당하체는 대규모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가 일어났고, 무려 13만 명이 강제 이주를 하였고 체르노빌 시가지는 죽음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1차 폭발이 일어난 후에도 창고에는 192톤의 핵연료가 저장된 체로 남아 있었으며 이 어마어마한 핵연료는 철재로 임시 봉합된 채 20여년이 지났다고 합니다. 만약 2차 폭발이 일어난다면 유럽전체가 방사능에 오염될 것으로 예측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예산도 없고 기술도 없어 유럽 국가에 손을 내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러시아 정부와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사고로 발생한 사상자 수와 영구 장애인, 신생아 장애인과 재산 피해액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래 죽음 보면서 죽음 기다리던 체르노빌의 어린이들

히로세 다카시가 쓴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바로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30분부터 17일째가 되는 5월 13일까지 세로프 가족에게 일어난 일을 소설형식으로 쓴 책입니다. 세로프가족은 원자력 발전소에 간부로 근무하는 안드레이와 아내 타냐, 그리고 아들 이반과 딸 이네사인데, 작가인 히로세 다카시는 마치 이들의 일기장을 들춰보듯이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쓴 듯 합니다.

이반과 이네사의 아버지인 안드레이는 기술간부로서 체르노빌 사고 직후 결사대의 일원으로 뽑혀 발전소 뒤처리 작업 중에 사망해 '영웅' 칭호를 받습니다. 폭발사고가 일어난 발전소로 돌아가는 안드레이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고서도 사고 수습을 위해 목숨을 걸고 떠나게 됩니다.

한편, 사고를 축소 은폐하기에만 급급한 당국에 의하여 아무런 보호조치도 받지 못한 채 그의 아들 이반과 딸 이네사는 격리 수용된 채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아이들을 찾아 헤매는 타냐에게도 사방으로부터 죽음의 그림자가 옥죄어 다가옵니다.

핵폭발로 시력을 잃고 핵방사능에 오염된 아이들은 옆 침대의 또래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공포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자꾸만 떠오르는 발전소가 폭발하던 모습과 동물들과 사람들에게 일어난 무서운 장면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실상, 의사나 간호사보다 아이들의 공포심이 백배는 더 컸다. 이 병원으로 오기 전에 어떤 아이는 동물의 시체를 밟았고, 어떤 아이는 눈앞에서 부모가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았다. 또 농민들이 강제로 피난하는 모습도 보았고, 검문소에서는 잔인하게도 부모와 생이별을 해야 했다. 한꺼번에 이런 끔찍한 일들을 겪게 된 아이들은 이제 마지막으로 감옥 같은 병원 안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아이들 주검은 더욱 참혹합니다.

"그녀가 내민 팔에는 이네사보다 어린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안겨 있었다. 드문 드문 남아 있는 머리카락, 얼굴 전체에 뒤덮여 부풀어 오른 검붉은 반점 무늬들이 그 아이의 고통스러운 최루를 말해주고 있었다. 목덜미에서부터 가슴까지 제 손으로 쥐어뜯은 손톱자국이 무수하게 남아 있었다."(본문 중에서)

시인 이상희는 이 책을 읽고 "이런 이야기를 읽고, 알게 된 것이 후회스럽다. 이것이 그저 우리를 놀라게 하고 진저리치게 만들어 보려고 어느 예민한 영혼이 상상해서 빚어낸 이야기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햇빛·공기·물·바람 모두 오염... 죽음의 땅이 된 체르노빌

그러나 정말 이것뿐이었을까요? 실제로 체르노빌에서는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작가인 히로세 다카시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더 큰 피해와 공포로 가득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100㎞가 떨어진 키예프시에 사는 사람들은 큰 사고가 아니다, 안전하다는 당국 발표를 믿었지만, 사고 후 보름이 지나고 나자 당국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키예프로 흘러 들어오는 드네프르 강물이 방사능에 오염되었으며, 매일 머리를 감고, 건물의 먼지를 털어내고, 세척하고, 도로에는 물을 뿌리는 등 필사적으로 거리를 씻어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은 건물 밖으로 나와서도 안 되고 일광욕을 할 수도 없다는 경고가 이어집니다.

체르노빌 발전소의 폭발이후 결국 햇빛, 공기, 물, 바람 중에서 어느 것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땅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외출에서 돌아오면 신발 바닥을 닦고, 코를 풀고, 온몸의 먼지를 털어내고 나서 집으로 들어가는 '법'이 생겼지만,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방법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체르노빌에서 폭발이 일어나던 날, 핵구름은 기세 좋게 성층권까지 올라가 그곳에서 천장에 부딪힌 수증기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으며, 핵구름은 성층권을 둘러싼 하나의 막을 형성하였으며, 지구는 이미 '죽음의 재'로 완전히 포위당하였습니다.

"전세계 곳곳에 방목된 소들은 초원에서 풀을 뜯어 먹으면서 이 입자를 몸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핵구름은 우뚝 솟은 이 산 저 산에 부딪히며 산간지대에 많은 비를 뿌렸다. 그 빗방울은 죽음의 재로 뒤덮인 나무들을 씻기고 다시 땅으로 스며들었다… 물은 논과 밭을 적셔주었고 봄을 맞이한 농토는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처음 지구의 상공을 둘러싸고 떠돌던 괴물들의 그물망이 이제는 지구를 옴짝달싹 못하게 죄고 있는 것이다......인간이 입에 넣고자 하는 모든 것들에 이 괴물이 침투해 있었다."(본문 중에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의 희생자는 이반과 이네사 그리고 프리프야트의 아이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의 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그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작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방사능 낙진의 위험성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인간의 상상력이 도저히 밀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신에 의해 창조된 생물이라면, 마땅히 신이 창조한 세계의 현상에 대해서 자연적으로 인식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사고는 신이 창조한 세계의 현상이 아니었다. 바로 가장 신비한 신의 창조물인 원자를 파괴하는, 즉 신이 창조한 세계를 파괴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원자력 발전소가 꼭 있어야 한다고요?

신이 창조한 세계를 파괴하는 방사능의 위험을 제대로 알지 못한 어른들은 지금부터 30년쯤 전, 내가 이 책에 나오는 이반 또래였을 무렵 민방공훈련이 있던 날이면 낡은 교실 책상 아래로 들어가서 눈을 가리고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원자폭탄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도록 가르쳤답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사고 가능성에 대하여 작가는 이런 위험한 예측으로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에 건설될 원자력 발전소는 수천 기로, 1기당 사고의 위험성은 2만년에 한 번이라고 나와 있다. 얼핏 읽어보면 2만년에 한 번이 극히 적은 것 같지만, 만약 2천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고 계산한다면 10년에 한 번 사고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작가의 말 중에서)

원자력이 가장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믿고 선전하는 어른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책일 듯 합니다. 그러나 작가의 바람처럼 원자력발전소가 꼭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속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인류의 희망과 미래를 위하여 그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돕는 좋은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