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31

손민석 - 김건태의 <대한제국의 양전>

(21) 손민석 - 김건태의 <대한제국의 양전>을 읽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광무양전을 연구한 역작이다. 사실 좀 어렵다....

손민석
17 July at 13:10 ·



김건태의 <대한제국의 양전>을 읽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광무양전을 연구한 역작이다. 사실 좀 어렵다. 연구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으면 이 책이 왜 중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책이 얇은만큼이나 저자의 독자에 대한 친절함의 폭이 좁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저자는 광무양전이 동학과 갑오개혁의 결과로 입헌군주제적 군주로 전락하게 된 것에 위기감을 느낀 고종이 조선을 황제국으로 개편하기 위해 광무양전을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양전을 주도한 기관이 중국식 명칭을 차용했다는 점, 중국식 정전제도를 이상향으로 생각했던 정약용의 구상이 참조된 사실 등이 그 근거이다.

대한제국의 개혁을 근대적 성격으로 볼 것인지 아닌지에 관해서는 논쟁이 꽤 있다. 토지조사사업과 광무양전 간의 연속성과 단절성에 관해서도 논란이 많았으며, 특히나 “시주時主”의 성격에 관한 부분은 광무양전 자체의 성격을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한 주제였다. 이영훈은 <조선토지조사사업의 연구>에서 시주라는 용어에는 “임시성”이 강조되어 있다며 광무양전이 근대적 사적소유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왕토사상에 입각해 있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박찬승 등은 당대의 시주 사용 용례를 근거로 시주는 국가로부터 토지를 임대받은 일시적인 대여자가 아니라 배타적인 사적소유권을 보장받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라며 이영훈의 주장을 맹렬하게 비난하였다.

저자는 광무양전이 근대적인가 아닌가를 논하기보다 그것의 실체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최대한 사실관계를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이 부분에서 딱히 뭐라 첨가할 말이 있는 게 없다. 결부제 자체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기 바빴다.

아무튼 저자의 입장은 광무양전을 조선시대 양안의 연속성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 부분은 많이 입증되었다고 본다. 광무양전의 내재적 성격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는 지점도 꽤 많이 밝혀졌다. 대부분 저자의 의도가 잘 입증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결론이 굉장히 이상해진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구도로 선회한 느낌이 드는 부분이다.

저자는 일본제국이 실시한 토지조사사업이 서구적 근대, 즉 “서도西道”에 입각해 한국에 적용된 것으로 ‘서도동기西道東氣’라는 다소 낯선 조어를 사용해 묘사한다. 토지소사사업과 광무양전을 단절적으로 보면서 후자를 서구적 근대와는 다른 동양적 근대로 파악하며 그 동양적 근대가 서구적 근대에 의해 억압되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당황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토지조사사업이 서양의 기술을 통해 그렇게나 급속하고 전국적인 규모에서 이뤄졌던 것은 사실이지만(저자에 따르면 대한제국의 광무양전은 평안도 등의 북방지역에서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지역적으로 차이가 컸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저자는 별달리 설명을 하고 있지 않아 아쉽다) 그것을 ‘서도西道’라 할 수 있는 것인가. 일본을 통해서 서도가 실현된다고 할 때 일본의 역할은 대체 무엇인가? 단순히 서양의 도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써의 역할만 하는 것인가? 저자가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식민지근대화론이 말하는 문명의 전파자로서의 일본제국이라는 서사가 여기서 재생된 것처럼 느낀다면 지나친 비난인가. 일본적 특수성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토지조사사업을 실행하는 주체로서의 일본인의 특성에 대해서 저자는 달리 말하고 있는 게 없다.

서유럽에서 토지를 측정하고 소유권을 증명할 문서를 발급하는 건 근대에 들어와서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상 19세기까지도 유럽지역 일대에서는 이러한 근대적 소유권의 창출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들의 역사 속에서도 토지를 조사하고 장부를 만드는 건 그것을 통해 지대를 수취해야만 했던 이들에 의한 것이었지, 국가가 주도적으로 하는 경우는 없다. 근대국가가 행하는 토지조사사업은 근대국가의 본질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것이다. 토지조사사업이 없이 근대국가는 기능할 수가 없다. 근대국가가 지닌 주권의 실현 자체가 토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도를 언급하고 싶다면 이 부분을 말해야 하겠으나, 사실 이건 근대국가가 존재한다면 어디서나 나타나는 근대국가의 본질에 해당하는 부분이기에 굳이 서도라는 표현을 쓸 이유가 없다.

토지조사라는 전통을 도道를 통해 설명하고 싶다면 되려 동양에서는 유교로 인해 예전부터 토지구획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그에 따라 인민의 생활의 안정을 꾀하는 것에서 찾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유교적 왕토사상에 입각해 토지조사를 지속적으로 행해왔던 아시아 전제국가의 이데올로기적 특질이 광무양전에서 어떻게 반영되어 나타났고, 토지조사사업에서는 어떻게 변질, 왜곡되었는지 아니면 동일하게 관측되고 있는지 등을 따지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인 논의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일본제국의 토지조사사업이 한국에서 그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이뤄졌다는 건 토지조사사업의 주체인 일본의 역사적 특질과 한국의 역사적 특질이 그만큼 어느정도 조응하는 게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1930년대 이후 일본제국이 유교화되는 과정까지 생각한다면, 다시 말해서 ‘왕정복고’로서의 메이지유신이라는 부분을 고려한다면 군현제로 재편된 일본제국과 군현제를 이미 채택해 전제국가를 운영해온 한국 간의 어떠한 유사성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 부분을 드러내면서 동도가 서기를 통해 어떻게 실현되었는지를 말했더라면 재밌었을 것 같다. 조선왕조가 내세웠던 동도서기가 일본제국이 도입한 서양의 기술을 통해 실현되었던 것이 바로 토지조사사업이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일본제국주의의 특질을 밝히는 방향으로 나아갔더라면 정말 재밌는 책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감추기 어렵다. 저자는 시종일관 대한제국의 광무양전과 일본제국의 토지조사사업을 대립관계로만 이해하는 것 같다. 메이지유신의 기본적인 성격이 왕정복고에 있으며, 그 왕정복고의 핵심은 군현제의 실시를 통한 유교화에 있다고 보면 메이지유신을 통해 동아시아 규모에서 일본이 유교화되고 더 나아가 그 유교화에 기반해 이미 유교화되어 있던 조선과 중국 등지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다 다이내믹하게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중국화하는 일본>처럼 단순히 일본적 근세와 중국적 근세의 대결로 보는 게 아니라 일본제국이 한국과 중국의 유교적 전개를 추동하고 완성시키면서 역설적이게도 그 완성으로 인해 끊임없는 전쟁이라는 모순에 빠지는 과정을 드러냈더라면 재밌었을 것 같다.

여러모로 아쉽고 어려운 책이지만 그래도 광무양전에 관해서는 이 연구가 앞으로 고전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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