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8

"신은미 토크콘서트 테러 고등학생 인터뷰한 이유는.." | Daum 뉴스



"신은미 토크콘서트 테러 고등학생 인터뷰한 이유는.." | Daum 뉴스




"신은미 토크콘서트 테러 고등학생 인터뷰한 이유는.."이선필 입력 2019.07.27. 18:06 수정 2019.07.27. 18:15 댓글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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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앨리스 죽이기> 김상규 감독


[오마이뉴스 이선필 기자]




▲ 다큐멘터리 영화 <앨리스 죽이기>의 김상규 감독.
ⓒ (주)인디플러그


자유당 국회의원을 지낸 외할아버지를 두고 어린시절인 1970년대에 리틀 엔젤스 단원으로 전 세계를 누볐던 신은미씨는 그 누구보다도 반공정신으로 투철했다. 음악에 재능이 있었고, 미국 이민 길에 오른 뒤 그는 촉망받는 성악가이자 교수로 경력을 쌓아갔다.

"북한 사람 하면 뿔이 있는 줄 알고 살았다"던 그가 중년을 막 넘긴 무렵 고국으로부터 강제 출국 명령을 받았고, 여전히 입국 금지 상태다. 남편의 제안으로 2011년 다녀오게 된 북한 여행, 그 경험을 공개하면서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공작을 좋아했고, 대학생 땐 로봇 연구에 빠져 있던 한 공학도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 환호했던 보통의 시민이었다. 뒤늦게 미군 장갑차에 여중생 미선, 효순이 짓밟히고 이 사건이 묻히는 과정을 알게 되며 로봇을 팽개치고 카메라를 들었다. 한국 사회 문제에 촉을 세우고 있다가 2013년 신은미씨의 존재를 알게 됐다. 막연하게나마 북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그는 영화화를 제안했고 신은미씨가 겪은, 그러니까 강제 출국을 당하기까지 그 53일간을 고스란히 담게 됐다.

그렇게 탄생한 다큐멘터리 <앨리스 죽이기>는 그 자체로 우리 사회가 여전히 넘지 못하고 있는 레드 콤플렉스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첫 장편 영화로 관객과 만남을 기다리고 있는 김상규 감독은 최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작업 과정을 되짚었다.

종북 몰이의 시작점

"2013년 초에 신은미씨의 글을 처음 봤다. 그리고 그해 중반인가 그분의 강연을 듣고, 이듬해 2014년 4월 다시 강연이 있길래 찾아갔다. 당시 북한에 대한 입체적 모습을 영화로 담으려는 기획이 있었기에, 영화화를 제안했는데 흔쾌히 동의하셨다. 마침 신은미씨와 남편께서도 제가 틈틈이 유투브에 올린 여러 영상들을 알고 계시더라. 그래서인지 큰 어려움 없이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탈북민 여러 명의 증언을 모아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감독의 복안. 시작점이 바로 신은미씨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사안이 엉뚱하게 진행됐다. 토크콘서트 중 신은미씨는 한 고등학생에게 폭탄 테러 공격을 받고, 극우단체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당한 것이다. 그 사이에 < TV조선 > 등 종편 채널에선 신씨의 활동을 '종북'이라 규정했고, 삽시간에 많은 언론이 그 단어를 받아썼다.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며 "다른 탈북민을 만나는 걸 포기하고 신은미씨가 겪은 일을 중심으로 북한이 아닌 한국사회를 바라보게 됐다"고 김상규 감독은 설명을 이었다.




▲ 영화 <앨리스 죽이기>의 한 장면.
ⓒ 인디플러그


- 우리가 보는 북한이 왜곡됐고 제한적이라는 생각이 평소에 있었던 건지. 요즘까지도 일부 종편 채널에서 탈북민들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 역시 여전히 그런 비판을 받고 있긴 하다.
"2002년과 2003년 금강산 관광을 갔었다. 미화원 한 분과 이야기한 적 있는데 말 한마디 걸기가 조심스럽더라. 그게 그렇게 두려울 줄이야. 용기를 내서 말을 붙였는데 평범한 분이었다. 신은미씨도 아마 비슷할 거라 느껴졌기에 그의 경험이나 여행기가 와닿았던 것 같다. 우리가 (대중 매체를 통해 접하는) 전형적인 북한 정보가 전부는 아니잖나. 그곳에도 평범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신은미씨를 통해 다시 알게 된 것이다.

종편에 나오는 탈북자 이야기가 전부 거짓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본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와중에 극단으로 포장된 이야기가 있을 수 있는 거고, 선정적 내용이 사람들 뇌리에 남는 것일 수 있지. <앨리스 죽이기>에 나오는 것 또한 비슷한 이야기잖나. 같은 걸 신은미씨가 얘기하느냐 탈북민이 얘기하느냐에 따라 어떤 건 (국가에게) 찍히고, 어떤 건 방송이 되기도 하고. 2002년과 지금의 차이라면 종편이 그땐 없었다는 사실이다. 비디오 환경이 달라지며 지금은 자기 진영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해도 (대중에게) 수용되는 환경이 됐다."

- 재미 성악가, 반공 교육을 제대로 받은 신은미씨가 북한 사람에 대한 애정을 품는 과정과 공학도였다가 사회성 다큐를 찍는 감독님의 모습 사이에 공통점이 많아 보인다. 변화 지점과 그 이유도 말이다.
"언론에 많이 비친 신은미씨는 강하거나 투사적 모습이었는데 제가 만나며 느낀 건 굉장히 정이 많다는 면이었다. 절 감독으로 존중해주시면서도 조카뻘이기도 하니까 이것저것 챙겨주시기도 했다. 북한 여행을 하면서 만나게 된 안내원을 두고 신은미씨나 남편께서 수양딸이라는 표현을 쓰시는데, 지금 우리에겐 어색한 표현이지만 1960년, 1970년대 한국사회가 품고 있던 가족주의를 이민자 분들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라 느꼈다. 한국사회는 빠르게 변해서 지금 그 개념이 어색한데 여전히 교포 사회에선 딸 같은 이에게 이모라고 부르라 하는 등 그런 정서가 남아 있더라."

대의 명분과 개인의 상처 사이

영화엔 "대동강 맥주가 시원하고 맛있더라", "거리에서 남녀가 손을 잡기도 하더라", "안내원들끼리도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등 신은미씨가 여행 이후 <오마이뉴스>에 남긴 여행기, 그리고 출간된 책에선 접하기 어려웠고, 상상하기 어려웠던 북한에 대한 신씨의 감상과 일반적인 사실들이 나열돼 있었다.
<앨리스 죽이기>엔 극우단체들이 국가보안법을 운운했고, 종편 뉴스 채널에서 '종북'이란 수식어를 그에게 붙이기 시작하면서 촉발된 일련의 상황이 잘 묘사돼있다. 보수 언론 등에 의해 재미 교포에서 '북한 찬양자'가 된 신은미씨에게 닥친 시련 중 하나는 바로 한 고등학생의 도시락 폭탄 테러였다. 영화에는 한 극우성향 커뮤니티에 예고 글을 올린 뒤 현장에서 검거된 그의 인터뷰 영상도 담겨 있다.




▲ "언론에 많이 비친 신은미씨는 강하거나 투사적 모습이었는데 제가 만나며 느낀 건 굉장히 정이 많다는 면이었다. "
ⓒ (주)인디플러그


- 오아무개씨 행동은 극단적인 범죄인데 그의 주장을 영화에 담는 게 좋은 선택인지 의문이기도 하다. 극소수의 생각을 너무 확산하는 건 아니었을지.
"오씨를 만나기 전, 그 사건을 두고 사람들은 대체로 세 가지 입장을 보이더라. 오씨를 비판하면서 고등학생이 그런 일을 혼자 벌일 리 없다는 배후설, 정신이 좀 이상한 거 아니냐는 말, (극우 커뮤니티 반응대로) 열사라는 반응 등이 있었다. 직접 만나서 판단해야 했다.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2년이 지나서야 수락했다. 세 시간 정도 인터뷰했다. 나름 논리와 자기 세계가 있더라.

어쨌든 제가 담으려 했던 건 그 행동의 배경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였다. 우리 사회가 저절로 진보하는 게 아니거든. 언제고 우리를 갸우뚱하게 하는 사건이나 사람이 우연히 나오진 않는 것 같다. 다 그 배경과 논리가 있음을 외면하지 말고 직면해야 한다."

- 영화에도 나오지만, 당시 신은미씨 토크콘서트를 막으려는 공권력과 강행하려는 주최 측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주최 측 내부에서도 의견이 나뉘는 순간이 있다. 사회 운동의 단면, 내지는 한국사회의 어떤 경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같았다.
"(잠시 생각 후) 신은미씨를 초대한 주최 측에선 어떻게든 부산 행사까지 소화해서 일정을 마무리했으면 하는 의견이었다. 영화에도 그 이유가 일부 나오듯 신은미씨의 글과 말을 불편해하는 쪽, 막으려 하는 정부 등의 의도에 굴복하지 말고 헤쳐나가자는 거였지. 신은미씨 남편께선 어쨌든 우린 손님으로 왔는데 이렇게 불안하고 배타적 상황에서 진행하는 게 맞냐 이거였다. 대의명분과 개인의 갈등이 충돌하는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신은미씨께서 많이 갈등하셨던 것 같다. 더 사회적 논란이 일어나는 걸 우려했기에 국회 일정만 하고 떠나겠다고 했다가 투사적 모습을 보여왔다. 아마 리틀 엔젤스 경험에서 비롯한 강한 면모일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혹독하게 훈련받으며 세계를 돌아다닌 경험, 또 본인의 억울함도 있을 것이고, 주최 측 의견도 수용하는 편으로 결심하신 듯하다. 물론 또 끝까지 밀고 가시진 않지 않나. 그것 또한 그분의 선택이다."

- 로봇을 만들던 공학도가 2002년 미국 장갑차 사건(미선이-효순이 사건)을 접한 이후 카메라를 들게 됐다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당시 어떤 생각을 했나.
"한 사람 인생이 하나의 순간으로 바뀌진 않겠지. 당시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걸 알았지만 찝찝함을 안고 있으면서도 놀러 다니고, 월드컵도 응원하고 그랬다. 연말이 돼 직접 현장에 가서 그 사건을 자세히 알게 됐다. 미선이-효순이 사건 말고 1년 전 전동록씨라고 미군 기지에서 철근을 옮기다가 감전됐는데, 제대로 된 조사와 보상이 없었던 사건이 있었더라. 과연 미군이 우리에게 마냥 은혜로운 존재인가, 혹시 그들에게 업신여겨지는 것 아닌가 한미관계에 대해 찾아보게 됐다.

그러면서 한국사회의 모순 중 하나인 분단 문제까지 넓어지게 된 것이다. 로봇을 만들고 프로그래밍을 하고, 그걸로 대회에 나가 성과를 내는 게 재밌었는데 자연스럽게 흥미가 우리 사회로 옮겨지더라. 동아리 방에서 코딩하는 시간보다 현장에 나가 뭔가 느끼는 시간이 많아졌다.
제 개인적 성취보단 사회 부조리함이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졌다. 영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후배들과 동아리를 만들어 취재도 해보고 2008년 광우병 시위 때 아프리카 플랫폼에서 최초로 생중계를 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를 그때 참고했다. 그런 현장이 제 피를 바뀌게 한 느낌이다. 알지 못했던 걸 알아가면서 관심이 생긴 거지."




▲ "현장이 제 피를 바뀌게 한 느낌이다. 알지 못했던 걸 알아가면서 관심이 생긴 거지."
ⓒ (주)인디플러그


- 북한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 신은미씨를 통해 한국사회를 다시금 조명하는 등의 시도가 변화를 위한 소중한 싹 같다. 또 다른 방식으로 북한을 바라본 <려행>이라는 작품도 같은 날 개봉한다. 이외에 우리 사회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싹이 있다면.
"큰 변화이자 긍정적 변화 중 하나가 미투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굉장히 남성 중심적이기도 했고, 거대 담론과 당위 중심 사회기도 했다. 아까 앞서 말했듯 대의가 중요하니 작은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자는 것이지. 함께 싸우고, 살아가는 사람들 목소리를 존중하면서 가는 것도 중요하다. 미투 운동이 펼쳐지면서 주변에서 차별받고 억눌린 여성의 목소리가 조금씩 터져 나오고, 자기 궤도에 올라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게 다른 부분으로도 확장될 수 있지 않나 기대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갑론을박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연장선에서 신은미씨를 비롯해 소수자들의 이야기도 그 역사와 배경을 살펴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8월 8일 개봉 준비와 동시에 김상규 감독은 현재 항공 노동자의 이야기를 촬영 중이다. 우리는 그가 마련한 질문에 어떤 답을 할 것인가. 한국사회를 향한 그의 관심은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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