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31

Hojae Lee - 평신도가 예수(부처)를 살려 내자 : 성인聖人으로 하루살기 1. 인류의 고전인 경전텍스트,...



(5) Hojae Lee - 평신도가 예수(부처)를 살려 내자 : 성인聖人으로 하루살기 1. 인류의 고전인 경전텍스트,...







Hojae Lee
25 July at 04:58 ·



평신도가 예수(부처)를 살려 내자 : 성인聖人으로 하루살기

1. 인류의 고전인 경전텍스트, 사서오경, 대장경, 성경, 꾸란경, 도교의 경전인 도장 등은 일점일획을 절대시하는 문자 숭배의 시대를 거쳐 인간이성의 발달과정을 거쳐 철저히 해체되어 비신화화/역사화되면서 경전의 위상은 추락하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여기에 1990년 초, 동유럽과 소련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후쿠야마는 “역사는 종언하였다”고 말할 정도로 지구촌은 민주주의의 경제적 이데오로기인 자본주의로 급속히 재편된다. 더불어 옛날 그 빛나던 종교경전의 위력은 과학의 도전으로 응전의 용기를 잃고 있으며, 경전의 정신을 담지하던 성전과 경전의 말을 전하던 직업종교인은 ‘자본’의 도전에 '오합지졸'이 되는 형국이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종말이 아니고 종교 종말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2. 성경을 포함한 경전텍스트는 건물성전 유지와 직업종교인의 생계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경전은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인간과의 대화집이다. 어느 경전이나 ‘나’의 문제를 적어놓은 일기이다. 경전은 인간(나)의 실패사와 이 실패를 고난을 통해 절대존재와 ‘궁극적 인간’과 ‘궁극적 구원의 길’을 가는 나의 승리의 희망찬가이다. 경전이 요구하는 것은 경전을 읽는 나 자신’이 그렇게 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의 삺, 석가의 삶, 공자의 삶 등등

3. 오늘! 우리는 경전이 말하는 그 궁극적 인간으로 하루만이라도 살아보자. 원래 제목을 ‘성인으로 살기 하루 프로젝트’로 하려다가 세상에 하도 프로젝트성 이벤트가 많아 평이한 제목으로 달아보았다.

4. 이런 측면에서 직업종교인의 사명은 한평생 신도를 모아서 굶어죽지 않게 갈증나게 하나님 말씀이라고 신도에게 설교나 설법을 하는게 아니다. 직업종교인은 신자가 스스로 예수처럼 살고, 부처처럼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 건물성전은 비게 만드는 것이 그의 사명이다. 교회가 늘어날수록 죄인은 많아지고, 사찰이 많아질수록 중생은 늘어난다. 향교에는 소인이 득실하고, 회사에는 가난한 노동자가 더욱 많다. 즉 종교의 목적은 모든 인간이 죄인과 소인과 중생의 자리에서 떨치고 일어나 창조적 진화의 완성체인 예수와 같은 사랑의 화신체, 더 나아가 풍류체가 되어야 한다. 병원의 목적은 모든 사람이 건강하게 살아 병원문을 닫는 것이다. 일상생활에게 의사가 병자에게 약을 줄때 어떻게 주나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이다.

5. 변찬린의 안목으로 역사적 성인은 우리와 동질의 인간이었고 우리가 가야할 길을 미리 간 ‘인간’에 불과하였다. 그는 이렇게 직시한다.

예수도 측간厠間에 웅크리고 앉아 구린 똥을 누었다.
공자도 지어미와 방사房事하여 범부凡夫 리(鯉)를 낳았다.
세존世尊도 밥을 얻어 자시고 신음하시다 열반했다
노자老子도 무명無名의 보배로움을 잠시 잊으시고 오천 마디의 흔적을 남겼다.
우리와 무엇이 다르랴?

예수라고 밥안먹었겠는가. 빵드셨나? 김치나 된장찌게는 안드셨을 테고, 옷도 입으셨을테고, 백인미남으로 영화에 나오는 성스러운 얼굴이 아닌 얼굴이 약간 가무잡잡한 중동형 얼굴이시구, 키는 어느 정도 되셨을까? 그리고 예수는 직장에 나가서 돈 벌지는 않았을 테고 등등등. 예수가 33년 동안 보통 인간의 자리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는 자리까지의 생애 가운데 여러분이 어느 한 지점을 설정해 오늘하루 그렇게 살아보시라. 십자가에 또 못박혀 피흘리지는 마시고(!!!), 빈 동굴 만들어 그 속에서 삼일만에 부활한다고 기괴한 행동하지 마시고

오늘 하루 좋은 생각하고,무심했던 이웃에게 안부하고, 식사량도 조금 줄여서 생명을 아껴보고, 즐거운 얼굴로 이웃과 인사하고, 직장에서 더 활기차게 일하고...., 예수가 지금 우리의 입장에 있다면 이 보다 더한 빛나는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각 자의 자리에서 성인으로 살아보기 해 보자. 제주 한달 살기보단 오히려 성인살이 운동을 해 보자.
나는 성인이다라고 외치는 순간 나의 세계는 그렇게 재편된다. 내가 성인으로 살아가면 예수의 십자가는 빛날 것이다.

6. 류영모는 익히 알려져 있듯이 예수를 신앙이 대상이 아닌 ‘선생이자 스승’으로생각하고, 정양모 신부는 류영모를 ‘동방의 성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함석헌을 원로 신학자이자 목사인 김경재는 기독교 백년의 인물로 ‘함석헌과 김재준’을 언급하고 있다. 축 시대의 성인의 역사적 흔적이 아득하다면 가까이 더구나 같은 국적의 위의 사람들을 인간적인 ‘존경감’의 표시이상은 하지 말고 우리도 그렇게 살아보는 거다.

'7. 우리는 모두 예수, 석가, 공자, 노자를 우리가 범접하지 못하는 신앙대상의 경지에 올려놓고, 우상숭배하기 바빴다. 어제의 과오는 ‘지금’털어버리고 오늘 하루 2019년 7월 25일은 우리도 ‘성인과 같이’가 아니고 성인으로 살아보자. 만약 예수와 석가, 공자와 노자가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면 그들은 우리의 신앙대상조차 될 수 없다. 곰곰히 생각해 보라. 예수가 인간의 몸으로 와 타락 인간의 입장에서 구도하여 궁극적 인간의 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하지 않았나. 신앙은 예수로 살아야 예수와 같은 친구로 될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이지 자기도 못하는 것을 신자에게 말하며 예수를 우상숭배하여 살아서 죄인 죽어서 ‘영혼이 하늘나라 간다’는 것은 성경에 없다. 있으면 밑에 댓글다시라. 이는 불교도 유교도 마찬가지이다. 공자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한 ‘그 도道’를 우리가 같으면 되는 것 아닌가.

8. 소위 성인의 말씀이 적혔다는 경전은 우리가 그렇게 살 때에 경전의 의미가 되살아나는 것이지, 성인을 (마음속으로) 신앙대상으로 우상화하는 즉시 자신은 죄인으로 중생으로 소인으로 살면서 경전의 의미는 직업종교인이 종교장사하는 영성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지금도 감리교의 영성상품, 장로교의 영성상품 등 수백 개 교단의 영성상품이 구매자를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누가 성인聖人의 머리를 디디고 그를 초극할까 ?
고성古聖들은 그 문하에서 배운 후생後生이 스승을 떠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 자성自性을 개발하여
지인至人으로 돌면突變하기를 바라고 있다.
참 사람은 낚시를 던지지 않는다
참 사람은 그물을 짜지 않는다
참 사람은 함정을 파지 않는다.
소인小人들이 배운 것은 무성한 잎파리와 꽃
소인小人들이 포식(飽食)한 것은 꼬리와 껍질뿐
소인小人들은 낚시를 삼키고 그물에 걸려들고 함정에 빠진다.
옛 님들은 소인들이 스승을 배신하고 팔아 먹고
곡사曲士로 전락하여 아세阿世할 것을 환히 알고 있다.
환히 알고 있으면서 소인들과 대화하고 가르치는 뜻은
무리 중에서 스승을 앞 질러 갈 참 사람을 기다림이니
누가 이 크신 비밀을 알겠는가 ?
고성古聖들은 뒤에 오실 빛나는 후생後生을 기다리고 있다.
소인들의 작희(作戱)에 대도大道가 가리워 질 때
옛 성인의 문하門下에서 참 사람이 일어나
스승을 구해 내고 대도大道를 밝히 드러낸다
이런 사람을 지인至人이라 한다.

(변찬린의 “선,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

9. 빛나는 오늘! 우리 모두 오늘 하루만큼은 '성인으로 살기'하여 하루성인으로 거듭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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