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9

[이하경 칼럼] 아베 측근들도 경제 보복은 너무했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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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아베 측근들도 경제 보복은 너무했다는데… - 중앙일보




[이하경 칼럼] 아베 측근들도 경제 보복은 너무했다는데…
[중앙일보] 입력 2019.07.29
기자
이하경 기자




러시아 WTO 피소 때 ‘신중’ 강조
한국에 화났다고 안보 이유로 보복
일, 언행불일치 … 자기 발목 잡을 것
반일 감정 자제·외교적 해법 절실




아베의 경제 보복은 비겁하다. 강제징용 문제로 화가 났다고 죄없는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심장에 비수를 들이댔다.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제외도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안보상의 이유라고 했지만 설득력이 없다. 지혜로운 일본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성명을 내고 “한국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어서 적대적인 행위”라고 비판할 정도다.

한국을 상대로 한 일본의 수출규제는 언행불일치의 전형이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합병한 뒤 제3국으로 수출되는 우크라이나 제품에 대해 군수물자가 포함됐을 우려가 있다면서 자국 영토 통과를 막았다. 그러자 2016년 우크라이나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WTO는 올해 4월 5일 소위원회를 열고 ‘준전시의 정당한 조치’라며 러시아의 손을 들어줬다. GATT 21조는 군사 전용 우려 등의 문제가 있는 상품을 규제하는 것에 대해 예외 규정으로 인정하고 있다.

일본은 2017년 11월 8일 제출한 의견서에서 GATT 21조는 중요 국익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조항’으로 이를 원용하는 국가의 재량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재량권에는 “한계가 있으며 극도로 신중히 행사돼야 한다(not unbounded and must be exercised with extreme caution)”고 했다
. 통상분쟁 전문가인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의 행위는 입장서 내용과는 달리 신중하게 안보상 예외근거를 확인하고 소명한 것으로 보이지 않아 WTO 판정 시 입장서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더구나 일본은 1941년 미국이 석유 수출을 중단하자 진주만을 공습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나라다. 수출규제의 충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고도 무모한 조치를 감행한 것은 한·일 관계는 물론 동북아 안보협력의 근간을 흔드는 조치다. 북한·중국·러시아 3국의 도발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언론과 싱크탱크는 일본의 조치를 비판하고 있지만 아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아베 핵심 참모와 깊이 교감하는 인사의 전언이다. “아베의 외교책사인 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국장도, 스가 관방장관도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는 너무한 거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구도 의견을 내지 못한다. 아베는 내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헌법개정을 밀어붙여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려는 꿈을 실현하려고 한다. 한국에 대한 일본 국민의 여론이 너무도 나쁜 이때 강하게 쳐서 까불지 못하게 하고, 강한 일본을 만들자는 계획이다. 미국도 화웨이에 이어 4차 산업혁명의 잠재적 경쟁자이고 5G 선도국가인 한국을 견제하겠다는 심리가 있어 아베를 말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제 그림이 선명해졌다. 일본 국민의 반한 감정과 미국의 묵인이 아베의 무기인 것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할 말 못하면서 쩔쩔매는 한국을 때리고,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돼서 중국을 함께 견제하는 구도가 미국엔 나쁠 것이 없다. 실제로 미국은 한국의 필사적인 중재 요청에 묵묵부답이다. 미국이 우리 편을 들어줄 거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남은 카드는 일본인의 반한 감정을 잠재우는 것뿐이다. 그래야 아베의 폭주를 제어할 수 있다. WTO 제소로 가면 유리하지만 판정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경제 보복의 불길이 안방까지 들이닥치고 있지 않은가. 일본인들은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화가 난다”고 한다. 위안부 합의를 깨더니 1965년 한일협정으로 끝난 강제징용 문제로 일본 기업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65년체제를 허물고 새판을 짜려는 것으로 의심한다. 우리로선 억장이 무너지지만 이게 일본 국민의 정서다.


일본인의 분노지수를 낮추려면 반일·항일의 언사를 자제해야 한다. “죽창가” “의병” “국채보상운동”을 외칠수록 반한·혐한 감정만 키워 아베의 폭주에 힘이 실린다. 화가 나도 참고 외교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되 식민지배의 불법 여부를 모호하게 남겨뒀던 65년 한일협정의 타협선을 지키면서 현실적·합리적 안을 제시하면 된다. 이낙연 총리도 “사태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말고 외교적 협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자”고 했다니 다행이다.

일본과 죽기살기로 싸웠던 김구는 해방이 되자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친일파라면 없으면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이 주간동아 인터뷰에서 밝힌 일화다. 박정희는 65년 대일 국교정상화 회담 결과에 대한 대통령 국민담화문에서 일본은 “불구대천의 원수”였지만 “오늘과 내일을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이 최빈국에서 경제강국으로 탈바꿈한 건 이렇게 세계 대세를 읽는 유연한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일이 아니면 토착왜구로 몰아버리는 이분법은 시대착오적 자폐(自閉)다. 일본의 일탈을 비판하되 좋은 일본과 친구가 되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국익을 지키는 확실한 길이다.

이하경 주필


[출처: 중앙일보] [이하경 칼럼] 아베 측근들도 경제 보복은 너무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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