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9

남기정 서울대 교수 “한·일 과거사 해석의 일치 외교 노력 기울여야” - 경향신문

남기정 서울대 교수 “한·일 과거사 해석의 일치 외교 노력 기울여야” - 경향신문


남기정 서울대 교수 “한·일 과거사 해석의 일치 외교 노력 기울여야”
주영재 기자 
입력 : 2019.07.28


남기정 서울대 국제대학원 일본연구소 교수가 지난 7월 24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일관계 전망을 주제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 인터뷰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한·일관계 재구축을 위한 방안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갈등의 뿌리는 역사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일본 수출 규제조치의 출발점인 대법원의 강제동원 노동자에 대한 배상 판결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불법적인 강점이며 따라서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은 효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일본은 식민지 지배는 합법이었다는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24일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55)를 만나 한·일관계의 재구축을 위한 방안과 향후 일본의 정치 전망을 들었다. 남 교수는 일본의 대표적 진보지식인 와다 하루키 교수의 제자로, 일본 정치와 외교, 동아시아 국제정치 전문가다. 그는 양국이 역사 해석의 불일치를 일치시키려는 과거사 청산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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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1일 일본의 참의원 선거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첫째 자민당 단독 과반은 실패했지만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과반을 차지했다. 둘째 개헌선인 의석 수 3분의 2 확보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야당은 이른바 아베 비판표를 결집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고 아베 비판의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본다. 일본 참의원 선거는 우리 입장에서 큰 주목을 받았지만 의회를 해산하고 치뤄지는 중의원 선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분하다. 일상에 밀접한 이슈가 강조되는데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는 연금문제, 소비세 증세와 아울러 개헌이 선거의 중심 쟁점으로 등장했다. 개헌은 일본 내에 암반과도 같은 평화주의 여론을 결집할 수 있어 조심스러운 주제였다. 아베 입장에서 세 가지 불리한 주제를 걸고 선거전을 치뤘는데 나름대로 선전했다.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비롯한 아베 정책에 일단 국민들의 지지가 표현됐다는 점에서 참의원 선거가 끝나도 문제가 바로 수습되거나 급격하게 변하기보다 지금 조치가 어느정도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아베 4연임 설이 나오고 있다. 개헌 움직임이 이어질까.


“개헌선에 이르지 못한 건 일본 국민이 미묘한 균형을 잡은 것이다. 정국 운영을 신중하게 하라는 것이다. 자민당을 중심으로 왼쪽에 공명당, 오른쪽에 유신회의가 있는데 이들 개헌파의 여론이 다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자위대 명기, 긴급사태에 대한 대응체제 마련, 선거구제 개편, 교육개혁 등 개헌 문제와 관련해 이들이 제각각 다른 의견을 갖고 있어서 합의된 개헌안을 만들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아베가 개헌 깃발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본인의 신념이기도 하고 보수 결집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야당인 국민민주당은 헌법 개정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 이쪽에 접근해 개헌선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1~2년 사이 진전될 거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아베 4연임 설이 나오고 있다. 과거 자민당이 파벌 중심 정당이었을 때는 정권에 대한 피로 현상이 있을 때 이를 대체하는 자민당 내 대안세력이 있었다. 지금 자민당 안에서 아베를 이을 뚜렷한 2인자가 없다는 것은 결국 아베가 내려올 경우 자민당도 정권교체가 될 수 있는 혼란스런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뜻이다. 4연임은 아베 정권이 안정됐다기보다 불안정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


-참의선 선거 결과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지점은.


“특히 야권이 이긴 지역에서 치명적 선거구가 있었다.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걸린 오키나와에서 여당이 연패하면서 오키나와 현민의 반아베 의사가 확실히 드러났다. 향후 미·일동맹 유지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탈원전이 쟁점이었던 니가타와 이지스 어쇼어 배치(요격미사일 방어체계) 문제가 걸린 아키타현에서도 패했다. 미군기지와 원전 문제, 미·일동맹이라는 일본의 중장기 향방을 놓고 굉장히 중요한 주제에서 여당이 곤혹스런 선거전을 치렀고 졌다는 것은 아베 독주를 견제할 장치가 있고, 그것이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아베가 일방적으로 승리해서 한국 때리기를 계속 하고 개헌 정국으로 이끌어간다는 건 과잉독해이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정치 지형을 잘 이용해 대일 외교를 여러 층위에서 전개하면 외교적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우리 국민의 불매운동과 여행 자제는 어떻게 보나.

“시민사회의 의사표출로 환영할 만하다. 그렇지만 과격한 방식으로 흘러서 우리 정부가 실리를 따지면서 대응할 여유 공간을 협소하게 해서는 곤란하다. 마치 선조 때 조선처럼, 대한제국기의 풍전등화에 빠진 나라처럼 볼 필요가 없다. 촛불혁명으로 세운 정부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박정희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일군 피와 땀으로 세계 10위권까지 올라온 나라다. 많은 나라가 민주주의 위기를 겪고 있는데 그 어느 나라도 하지 못한 민주주의 혁명을 이뤘다. 일본 시민사회가 부러워할 시민사회를 가진 나라다. 일본 시민사회를 끌어들여서 아베를 압박할 수 있는 역량도 있고, 그걸 표출할 필요가 있다.”



남기정 서울대 국제대학원 일본연구소 교수가 지난 7월 24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일관계 전망을 주제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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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젊은층의 자민당 지지율이 다른 세대에 비해 높은 이유는.


“취업률이 높기 때문이다. 아베의 성과로 착각하지만, 출생률이 저하된 상황에서 전후 베이비부머 세대의 빈 자리를 젊은 사람들이 들어가면서 거의 100% 취업률이 달성된 상황이다. 물론 아베노믹스가 더 이상 경제 위기를 만들지 않고 일자리를 유지해 젊은이에게 그 기회가 돌아갔다는 점에서 일정 평가를 할 수 있다. 한편 평화주의를 주장한 어른 세대가 실제 행복하게 해준건 아무 것도 없는데 아베는 잘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본다. 1990년대 이후 불어왔던 이른바 ‘보통국가’ 분위기에 어릴 때부터 노출돼 평화주의를 내재화한 윗세대와 다른 감성이 있다. 반면 탈정치화된 세대라 혐한을 내재화하지도 않았다. 한국 때리기가 일본의 공식적 분위기가 된 상황에도 개의치 않고 한국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과거사 인식 불일치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화해는 불가능해 보인다.


“1965년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 위에서 성립한 한·일관계를 65년 체제라 한다. 여기서 식민지배의 ‘불법성’이라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를 완전한 합의로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를 조약에서 1905~1910년 있었던 모든 협약과 조약이 ‘이미’ 무효라는 굉장히 애매한 말로 표현했다. 우린 1910년 체결 시점에서 이미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해석하고, 일본은 일단 성립했는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무효가 됐다는 입장이다. 어정쩡한 상태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앞으로 협력할 것은 협력하면서 관리하자, 이런 식으로 봉합한 데서 문제가 생겼다. 65년 체제라는 흔들리는 기초 하에 한·일관계가 있었다. 그간 흔들릴 때마다 양쪽에서 관리하고자 하는 동력이 작용해 유지됐지만 작년 대법원 판결은 이 기초를 다시 세우라는 요청이었다.”


-그간 한·일 간 과거사 청산 노력을 인정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65년 체제는 커다란 한계가 있었다. 외교력의 한계, 국제정세상 돌파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었고 쿠데타로 등장한 정통성이 취약한 정부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 그렇지만 1990년대 이후 민주화로 시민사회가 과거사 문제 해결을 요구하자 정부도 어쩔 수 없이 일본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도 무거운 몸을 일으켜 조금씩 대응했다. 이후 위안부 문제에서 군의 관여를 인정한 고노 담화(1993년), 아시아 식민지배에 사죄·반성을 표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 한국 국민을 지칭해 사죄·반성을 표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1998년)으로 역사인식이 조금씩 발전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양국 국민의 대표가 공동선언한 것이라 국가의 의지가 반영된 조약이나 협정에 준하는 의미를 갖는 굉장히 높은 수준의 역사인식이었다. 이 선언의 내용에 대해서 일본 국민도, 한국 국민도 평가하지 않는 게 지금 문제의 한 이유이기도 하다. 2010년에도 1910년 불법 조약 100년을 맞아서 한국 국민의 의사에 반해 식민지배가 이뤄졌다는 인식(간 나오토 담화)을 표했다. 근데 마지막 한 단계, ‘불법이었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남아있다. 이를 한국과 일본이 공유하는 공동선언 형태로 만드는 것이 양국의 과제다.”


-아베는 지속적으로 고노·무라야마 담화 지우기를 시도했다.


“여러 흠집을 냈지만 부정하는 데까지 가지 못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달가워하지 않는 아베조차 지난해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당시 양국 정상이 용기를 내서 이런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평가한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이를 계속 아베에게 확인해야 한다. 아베를 완전히 부정하지 말고 아베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을 아베의 입으로 확인하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한·일관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65년 체제를 완전히 부정하고 새로운 체제를 만든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하자가 있었지만 그 이후 기울인 노력도 있다는 걸 아울러 평가하면 일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사실 그렇게 힘들지 않은 일일 수 있다. 새 조약·새 협정 체결이 아니라 엇갈린 인식이 없도록 65년 체제를 기초에서부터 안정화하자는 게 제 생각이다. 해석의 일치를 요구하고 안정화시키는 외교 노력이 남아있고, 이를 하도록 정부에 요구한 것이 대법원 판결이다. 우리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정말 존중한다면 이 부분에서 외교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그 부분이 미진했고, 그 미진함이 지금 한·일관계 파국의 한 이유이다.”


-신한반도 체제를 위한 구상은.


“이른바 신한반도 체제는 한반도가 더 이상 대립과 전쟁의 무대가 되지 않도록 하고 한반도를 동아시아에서의 평화와 협력의 무대로 바꾸는 것이다. 이는 냉전과 정전이라는 두 개의 전후 체제 극복을 필요로 한다. 과거 우리 보수 정부가 북한 위협을 전제로 한·미·일 ‘안보 삼각형’ 하에서 하위 동맹으로서 한·일관계를 만드는 구도는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다. 이걸 전제하고서는 새로운 신한반도 체제로 나갈 수 없다. 남북관계, 한·일관계 발전으로 남·북·일로 만들어지는 ‘평화 삼각형’을 만드는 걸 우리의 국가 과제로 삼아야 한다. 북·미관계 개선과 비슷한 속도로 일본도 따라오게 참여시켜야 한다. 일본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은 미·일동맹만이 아니며, 일본이 남·북·일 평화 삼각형 안에서 역할을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안보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설득해야 한다. 아베가 일본이 아니다. 아베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 있다. 그 사람들을 우군으로 끌어와서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구상으로 대일 외교를 펼쳐야 한다.”



남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진보는 일본에 대한 이해를, 보수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높여줬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표했다. 양자의 공백을 없애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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