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눔의집에 거주하시던 배춘희 할머님의 6년째 기일이다. 할머님은 일본의 배상을 원하지 않으셨고 용서하고 싶다는 말씀을 첫만남에 하셔서 나를 놀라게 했던 분이다.
그런데 배춘희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눔의집 소장은 배할머니가 “국가배상”을 원하셨다고 말했다. 언론 역시 돌아가신 분이 아니라 산사람의 입에 주목했고 그래서 배할머님은 졸지에 그 고유성을 잃고 “한을 품고 돌아가신 또한명의 ‘위안부’”할머니가 되었다. 작고 후 나온 기사들은 물론이고, 이후 나눔의집에 세워진 흉상에도 (그런 사회의 욕망에 저항했던)”배춘희”라는 고유한 개인은 없다. 그곳에 있는 건,지원단체와 이 사회가 필요로 했던 집단으로서의 이름— ‘위안부’ 뿐이다.
망자를 산 자가 이용하는 건 흔한 일이다. 역사 역시 많은 경우 죽은 이가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해 쓰여진다. 하지만 산 자가 해야 할 일은 이미 들려 오지 않는 목소리를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있는 그대로 들으려 노력하는 일뿐일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변 시키는 것이 아니라. 
물론 망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은 누군가 해야 하고,그 역시 애도의 한 방식이긴 하다. 하지만 산 자가 해야 할 일은 망자의 심중과 정황을 ‘쉽게’ 설명하지 않는 일이다.
배춘희 할머니의 목소리를 조금씩 나누어 내놓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나하나 마주하고 그때그때 다른 심경과 정황을 온전히 ‘이해’하려 하는 것만이, 살아남은 자들의 ‘소비’에서 망자를 구하고 존중하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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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춘희 할머니의 목소리를 조금씩 나누어 내놓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나하나 마주하고 그때그때 다른 심경과 정황을 온전히 ‘이해’하려 하는 것만이, 살아남은 자들의 ‘소비’에서 망자를 구하고 존중하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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