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8

1906 이병한선언 이후 : 세대화, 세계화, 세력화 – 다른백년



선언 이후 : 세대화, 세계화, 세력화 – 다른백년

기획칼럼
조성환/이병한의 [개벽파 선언]
선언 이후 : 세대화, 세계화, 세력화

2019.06.24 0 COMMENTS

1. 방탄소년단과 개벽청년단

마지막 글입니다. 마무리를 짓지는 않습니다. 마침표를 찍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느낌표가 더 어울립니다. 선언인 까닭입니다.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비로소 출발선에 섰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한 판 뜰 참입니다. “다른 백년, 다시 개벽”, 신고식을 올렸을 뿐입니다. 지난 150년 개화판을 갈아엎는 개벽의 새판 짜기를 심고(心告)했을 따름입니다. 선언은 시대의 혼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선언 이후에는 혼신을 다하여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더 큰 과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실행론과 실천론, 프로토콜과 매뉴얼이 필요한 단계로 이행합니다.

애당초 그저 ‘감’만 있었을 뿐입니다. 개화세가 저물어 간다는 직감과 직관이 있었을 따름입니다. 앞장서서 나팔을 불면 강호의 고수부터 ‘샤이 개벽파’들까지 슬금슬금 나와 주시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피리 소리가 한결 듣기에 아름다워야 했습니다. 개벽의 새벽을 마중하는 상두소리에 버금갈만한 선율과 화성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본디 혼자 하려던 작업을 파하고 합작을 권유했던 까닭입니다. 독야청청보다는 융복합의 시너지를 꾀했습니다. 역시 ‘감’에 따랐던 것입니다. 조성환 선생님이라면 철학과 사학의 앙상블로서 개벽 사상사의 대합창을 빚어볼 만 하겠다는 판단이 섰던 것입니다. 틀리지 않았다고 자평합니다. 저의 바람몰이에 선생님의 내공이 둔중한 베이스로 결합하면서 한결 체계를 갖춘 메시지를 발신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방탄소년단

지난 편지를 세 번에 걸쳐 읽었습니다. 하루에 한 차례씩 사흘간 곱씹었습니다. 함께 읽어간 문헌들 가운데는 블록체인과 방탄소년단에 대한 책도 있었습니다. 서로 관련이 없을 법한 분야의 책을 동시에 읽어가면서 생각의 고랑을 파고 새로운 고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 제 나름의 독서법입니다. 개벽세대와 블록체인과 BTS를 궁글리며 생각을 키워갔습니다. <한살림선언>이 있었던 1989년에 월드와이드웹(www)이 발진했음을 말씀 드렸습니다. 블록체인은 공부하면 할수록 ‘인터넷 2.0’에 방불하는 파급력을 내장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탈중앙을 실천하고 탈중심을 실현할 수 있는 요술방망이 같습니다. 중심과 주변의 위계를 전복할 수 있는 개벽술에 가깝습니다. 대/소와 강/약과 갑/을이 공진화하는 한살림과 온생명의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적극적으로 도입할 만한 테크놀로지입니다. 그간 의회부터 은행까지 중간집단들이 독과점으로 누리던 권력을 극적으로 분산시키고, 소유와 국유 사이 공유의 새 길을 내기에도 무척 유리합니다. 우리말로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합니다. ‘Living’과 ‘Buying’을 모두 포함합니다. Life 또한 생명이자 생활을 뜻합니다. 고로 생활이란 생명 활동이자 생산 활동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사고파는 교환 행위부터 인생을 사고하는 일생까지 모두 담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포스트-민주주의와 포스트-자본주의의 기술과 예술로써 블록체인 공부에 열심을 내볼만 합니다.

기왕의 중심-주변의 위계를 전복한 대표적인 사례로 방탄소년단을 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비틀즈에서 BTS까지 반세기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세계사의 대반전, 동과 서의 재균형을 상징하는 사건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애초 파릇파릇한 ‘힙합 아이돌’로 출발했습니다. 1980년대 아메리카의 흑인 빈민가에서 출발했던 음악 장르를 완전히 육화하고 승화시켜 되먹이고(feedback) 되돌려(re-volution)주고 있는 것입니다. “방탄”(防彈)이라는 메타포부터가 절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방어를 할 뿐이지 공격하지 않습니다. 한자 “무”(武=戈+止)가 구현하고 있는 동방적 문무(文武) 사상을 고스란히 재연하고 있습니다. 모름지기 무(武)라는 것은 창(戈)을 거두는(止) 행위에서 완성됩니다. 총으로 쏘고 창으로 찌르는 것이 아니라 총과 창을 거두는 것이 무의 궁극입니다. 그리하여 무를 문으로 반전시키는 활동을 문명이라 일컬었습니다. 그 동방적 문/무 관념을 전면적으로 민주화하고 민중화한 것이 동학운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나이더 총, 무력으로 윽박지르는 서세의 개화에 맞불을 놓아 맞대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개화를 뛰어넘는 생명의 지평을 열어젖히며 ‘다시 개벽’으로 응수했던 것입니다. 응징으로 응전한 것이 아니라 응분 된 도리로써 시대의 화두에 응답한 것입니다. 동학군은 죽임을 살림으로 되돌리는 생명군이자 방탄군이었습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 만국의 만국에 대한 경쟁을 만인과 만국과 만물의 한살림으로 되살려내는 방탄개벽단이었습니다.

Blockchain과 BTS. 기술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개벽파 선언>은 시중(時中)을 꿰뚫고 꿰차고 있는 것이 아닌가 흐뭇합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而待天命), 선언이 실언과 망언이 아니라 씨앗과 밀알이 되는 관건 또한 시운(時運)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천지인의 조화도 때가 맞아야 이루어집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 신도 우주도 공명합니다. 천간(天干)이 ‘기(己)’이고 지지(地支)가 ‘해(亥)’인 2019년, 하늘사람들의 집합적 커밍아웃 “개벽파 선언”이 상서로운 까닭입니다.



2. 세대화
개벽학당

그러함에도 <개벽세대> 창간 등은 앞서가는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치면 모자란 만 못합니다. 서두르면 자빠집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일렀습니다. 개벽세대를 기르자는 충심에야 어찌 이론의 여지가 있겠습니까. 응당 벽청(개벽하는 청년)과 벽동(개벽하는 아동)을 모시고 기르고 섬겨야 마땅하겠습니다. 우리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미세먼지 자욱한 춘삼월에 개벽학당의 문을 연 연유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겨우 넉 달을 공부했을 뿐입니다. 현재의 벽청들에게 신시대의 기치를 표방하며 깃발을 나부끼고 기수로 나설만한 내공이 있는가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합니다. 선생님의 강연과 저의 세미나를 따라오기에도 허겁지겁 입니다. 뉴스레터 만들기도 매번 턱걸이, 과부하에 걸려 있습니다. 단칼에 잘라 말할 수 있습니다. 역량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절차탁마, 여전히 갈고 닦고 연마해야 합니다. 겨우 ‘연습생 과정’에 입문했을 뿐입니다. 혹여나 헛바람이 들어 무언가를 해보고자 한다면 아서라 바짓가랑이를 붙들고서라도 뜯어 말려야 할 시점입니다. 역시나 때가 관건입니다. “하산”(下山)도 적시가 있는 법입니다. 때에 맞지 않은 출사에는 하강과 하락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시장은 의외로 은근히 합리적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의 메커니즘은 온정을 베풀지 않습니다. 축적된 실력 없이 깝죽거리면 반짝 스타는 될지언정 삽시간에 추락하고 도태되기 십상입니다.

No Pain, No Gain. 인고의 학습을 견디고 버티어 내어야 술이창작(述而創作)의 희열, 고진감래의 유레카가 은총처럼 찾아오는 법입니다. 기성의 학교와 학원이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아서 병폐이고 적폐라면, 생각만 많이 하고 충분히 배우지 않으면 또한 위태롭다 하겠습니다. “나를 살리고, 이웃을 살리고, 뭇 생명도 살리는” 개벽꾼, 널리 만인과 만물을 모두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아직은 쑥과 마늘을 먹으며 더욱 정진해야 할 단계입니다. 여전히 ‘개벽’이라는 단어에는 숱한 오해와 편견이 따라붙고 있는 형편인 탓입니다. 자칫 설레발로 나섰다가 총알받이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개벽이 ‘힙’의 대명사가 되기까지는 우리가 발판을 깔아주고 방탄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하기에 더더욱 혹독하고 엄정하게 트레이닝 시켜야 하겠습니다. 아낄수록 냉엄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벽청들에게 지금 필요한 사람은 자모(慈母)보다는 엄부(嚴父)일지 모릅니다.
개벽학당

다만 그 성장 스토리는 공유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탄소년단이 부단한 노력 끝에 아이돌에서 아티스트로 거듭나기까지, 그들을 성원하는 혁신적 팬덤 문화의 기수 ‘아미’가 있었습니다. BTS와 ARMY는 상호진화하면서 더불어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스토리텔링을 함께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풋풋한 벽청 1기, ‘연습생 시절’로부터 창간을 하고 창업을 하고 창당도 하는 개벽 2.0의 대서사를 SNS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공유하고 공감해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각자가 제 영역에서 인플루언서가 되어 개벽파의 지분을 늘려가며 ‘다시 개벽’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디자인하고 브랜딩하고 마케팅 해나가는 편이 개벽파의 향로에도 이롭겠습니다.

물론 맡겨만 두어서도 아니 되겠습니다. 파종 다음에는 육종입니다. 자생력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성장하기 전까지는 물도 뿌려주고 거름도 주어야 합니다. 아낌없이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물심양면으로 골고루 후원해야 합니다. 씨드머니, 종자돈을 구해야 합니다. 당장 개벽학당 다음 학기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골치를 썩여 왔습니다. 골머리가 아프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골똘하게 골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쉬운 방법으로 에둘러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일정한 기탁금을 낼 수 있는 인사들로 이사회를 꾸리는 쉬운 길은 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개벽학당, 어떻게 만들 것인가> 세미나를 만들어 청년세대와 기성세대가 미래학교 모델을 함께 궁리하는 판을 벌리기로 결정한 까닭입니다. 그 난상토론과 심사숙고의 과정을 언론사 연재를 통해 확산시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세미나의 최종 결과물을 가지고 벽청들이 주도하는 쇼케이스를 열어볼까 싶습니다. 개벽학당의 로고도 벽청들이 직접 고안하고 당가(黨歌)도 작사하고 작곡해 보기를 권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미래학교, 세상을 바꾸는 개벽학당을 만들고자 하노라니, 눈 밝고 품 넓은 분들은 후원하고 투자하고 기부하시라 당당하고 떳떳하게 독려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 세계화최인아 책방

화창한 5월 강남의 한복판, “최인아 책방”에 속속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책 그 저자 깊이 읽기’의 일환으로 <유라시아 견문> 시리즈를 세 번에 걸쳐 대화하는 자리였습니다. 한강에서 시원한 바람 맞으며 맥주 한잔 들이키기에 딱 좋은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누가 이런 날 5만원이나 내고 북토크에 올까 하는 염려는 기우에 그쳤습니다. 매번 열다섯 명의 인원이 꼬박꼬박 채워졌습니다. 깊이 읽고 토론하는 문화적 욕구가 넓게 퍼져있음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1인 기업, 1인 미디어, 1인 대학의 실험이 가능하겠다는 판단을 굳힌 계기이기도 합니다.

세 차례의 깊이 읽기를 마무리 할 무렵, 책방 마님 최인아 대표가 돌직구를 날렸습니다. 왜 하필 동학인가? 아메리카부터 유라시아까지 죄다 싸돌아다닌 사람이 어째서 개벽을 기치로 내세우는 것인가 직문했습니다. 우리 것이라서? 토착적이라서? 의아함과 의구심을 표하신 것입니다. 최인아 대표는 제가 만나온 숱한 개화파들 가운데서도 가장 마음이 열리고 생각이 트인 분입니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그 유명한 카피처럼 시대정신을 간파하고 새 언어를 직조해내는 감각도 탁월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조차도 ‘개벽파 선언’이나 ‘개벽학당’에는 흔쾌히 손을 들어줄 수 없는 미심쩍음과 석연치않음이 싹 가시지 않은 것입니다.

저 또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야’ 수준으로는 필패이고 필망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만의 남다름과 고유성을 천착하는 것 또한 식민지 콤플렉스의 발현이자 나라별로 쪼개져서 차별성을 구하였던 20세기의 반복이자 변주에 그칠 뿐이라고 여깁니다. 국학(國學)이야말로 서구적 근대의 발명품입니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 남아시아 대분할체제, 서아시아 대분열체제 모두가 지역적 단위로 작동하던 문명질서를 조각조각 허물고 국가간체제로 재편시킨 서세동점의 파열이자 파국의 소산이었습니다. 지난 백년처럼 나누어지는 것이 나누어줄 수 있어야 다른 백년이 열립니다. 사상의 사유화에 반대하는 만큼이나 사유의 국유화에도 비판적입니다. 개벽을 한국의 아이템으로 어필할 것이 아니라, 필히 지구적 공공재로서 득템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수운과 해월도, 의암과 소태산도, 장일순과 김지하도 모두가 동서고금을 아우르고 심학과 실학을 융합하고 과학과 도학을 통섭했던 회통의 대가들이었습니다. 하여 국민(國民)으로 그치지도 않으면서 시민(市民)으로도 족하지 않는 하늘사람의 감성과 감각을 습관이자 습속으로 길들여갔던 것입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개벽학이 한국학 2.0이면서도 만국만인만물과 공공하는 지구학의 원조로서 품격을 갖출 수 있습니다.

이미 조짐은 여실합니다. 힙합을 체득하고 체화시킨 방탄소년단은 글로벌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거듭났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하던 손홍민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도 출격했습니다. LA 다저스의 에이스로 진화한 류현진은 올스타 경기 선발 출장을 노리며 월드시리즈에 나설 것이 유력합니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통하여 칸 영화제의 그랑프리를 움켜쥐었습니다. “조선의 사나이거든 풋뽈을 차라”로부터 이강인까지,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로부터 BTS까지, “YMCA 야구단”으로부터 류현진까지, 지난 백년 서방의 문화를 열심히 배운 결과 도처에서 월드클래스의 수준으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철저한 개화 학습 또한 남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자존감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개화를 충분히 배우고 익혀 그 다음 단계의 신문명을 열어젖히는 것이야말로 다시 개벽, 21세기의 개벽 2.0에 해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K-pop, K-culture, K-beauty의 대약진에 견주어 여전히 K-studies는 수줍고 미진합니다. 책상물림 먹물들이 가장 온순하고 유들유들합니다. 여태 수입과 번역에 급급하고 긍긍하며 창조와 발신으로 스위치를 변환하지 못합니다.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삼경 사상은 자유, 평등, 우애를 대체할만한 인류세의 시대정신으로 제격이건만 도무지 등잔 밑이 새까맣게 어둡습니다. 혹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세계학계에 발신하고 토론하는 글로벌 공론장을 좀처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학계에서의 제 역할과 소임 또한 이 쪽에 두려고 합니다. 제 “감”으로는 삼경사상만으로도 향후 10년 이상은 세계 사상계를 씹어 먹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편입니다. 당장 올 연말에는 한국의 범개벽파를 규합하여 베이징에서 영국과 중국 지식인들과 교류하는 자리를 만들어 보려 합니다. 내년 봄에는 보스턴에서 열리는 아시아학회(AAS)에도 다녀오려고 합니다. 내후년에는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유럽 한국학 대회에도 참여해 보고자 합니다. 서방의 다보스포럼이나 동방의 보아오포럼에 참석해도 좋을 것입니다. 지구촌 곳곳에 개벽마당을 깔아드릴 터이니 그간의 내공을 마음껏 발산해 주십사 긴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그러함에도 여전히 아쉬움은 남습니다. 프리미어리그는 영국에서 열립니다. 메이저리그는 미국에서 열립니다. 세계3대 영화제도 프랑스(칸), 이탈리아(베니스), 독일(베를린)이 꼽힙니다. 다보스도 보아오도 유럽과 중국입니다. 기왕의 무대에 한국인들이 주인공으로 올라서고는 있으나 새 무대를 직접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K-Studies가 내장하고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벽학의 근거지는 오롯이 이 땅이 감당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벽사상과 개벽문명의 플랫폼을 이곳으로부터 키워나가야 하겠습니다. 노르웨이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란 법이 있겠습니까. 동학사상, 개벽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세계적 인물을 선정하여 우리가 “녹두꽃 생명상”을 수여할 수도 있겠습니다.

당장은 ‘동학쟁이’ 박맹수 교수가 ‘개벽총장’으로 등장한 원광대학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년부터 선보인다는 사흘짜리 개벽학 국제학술회의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총장 임기 겨우 4년에 그칠 뿐입니다. 결국은 장기적인 사업 기반을 확보할 수 있는 별도의 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방안 가운데서도 저는 특히 지자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여깁니다. 경주와 여주와 원주와 전주와 익산 등 개벽과 접점이 있는 도시들을 개벽도시로 탈바꿈시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뻔하디 뻔한 ‘도시 재생’을 흔하디 흔하게 복제할 것이 아니라, 하늘도시 신생 작업으로 버전 업 시키고 싶습니다. 개벽학당의 지역거점들을 세우기에도 최적의 장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각각의 하늘도시들을 접(接)이자 허브(hub)로 삼아서 ‘궁궁의 그물망’을 엮어가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개벽학이 학으로만 그쳐서도 미진하다는 점까지 보태고 싶습니다. 20세기 일본이 전 세계로 수출했던 ZEN(禪)이라는 사상이 MUJI(無印良品)라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로 진화하여 지구촌 주민들의 삶 속으로 깊숙히 파고들고 있습니다. 중국의 신유학 사상가 장칭은 천지인 삼재론에 입각하여 통유원, 국체원, 서민원으로 구성되는 의회삼원제라는 독자적인 정치 제도를 고안해내고 있습니다. 경천과 경인과 경물을 제도적으로 디자인하는 창의적 실험이 요청되는 것입니다. 국가 경영의 운영체제(OS)를 직접 만들어 탑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웹(web)과 앱(app)으로 제공할 수 있는 매뉴얼을 작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21세기 신문명의 개략을 소프트웨어로 공급할 수 있어야 개벽학을 권장하는 진정한 문화국가, 콘텐츠 대국으로 거듭납니다. 사상을 일상으로 전환시키고, 생명과 생각을 생활과 생산과 결부시키는 실험실과 작업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개벽학당은 장차 학업과 창업을 겸장하는 하늘문명의 LAB이자 개벽도시 및 개벽국가의 인큐베이터로 진화해 가야 할 것입니다.



4. 세력화

7월에 박사학위 논문이 책으로 발행됩니다. 2013년에 초고를 완성했으니 6년이나 묵혀서 이제야 출간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학계에 애정이 크지 않습니다. 대학에 대한 애착도 뜻뜨미지근합니다. 새로 작성한 저자 소개란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학자보다는 기획가, 연출가, 혁신가, 창업가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선천이 학자 군주의 시대였다면, 후천은 학자 CEO가 더 어울릴지 모릅니다.

2018년 봄부터 원광대학교의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에서 개벽학을 연구하고 있다. 2019년 새봄에 출범한 ‘개벽학당’의 당장으로 벽청(개벽하는 청년)들과 더불어 동서고금을 회통한 신문명을 모색하고 있다. 벽청들 사이에서는 방랑자(放浪者, 호로샤)의 약칭으로 ‘로샤’라고 통한다. 로샤를 음차한 “로사”(路思)를 호로 삼아도 무방하다고 여긴다. 길에서 생각하는 사람이자(Thinker on the Road), 생각의 새 길(New way of Thinking)을 여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았다.

동아시아 냉전사가로 지나간 100년을 훑었고, 유라시아 문명사학자로 오래된 1000년을 살폈다. 갈수록 역사학자로서의 정체성은 희미하고 흐릿해지고 있다. 과거에 대한 탐구보다는 미래를 기획하고 기투하는 미래학자에 점점 더 근사해진다. 기왕이면 너무 늦지 않게 ‘학자’라는 꼬리표까지 훌훌 떼어내면 좋겠다. 다음 100년을 기획하고 다른 100년을 연출하는 미디어 창업자이자 교육 혁신가가 되고 싶다. 그 편이 본디 동아시아의 지식인, “士”에 가까워지는 길이라 믿는다.

벽청들을 지그시 바라보노라면 홀연 저의 20대가 떠오르고는 합니다. 오른손에는 <창작과비평>을, 왼손에는 <녹색평론>을 쥐었던 시절입니다. 우창비를 통해 현실을 익히고, 좌녹평을 통해 이상을 키웠습니다. 창비의 동아시아론과 녹평의 생태문명론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숙고했던 적도 있습니다. 창비의 ‘진보적 동아시아’를 ‘녹색 동아시아’로 탈바꿈시키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더랬습니다. 반면 기왕의 녹색담론이 너무 서방을 답습하고 있다는 아쉬움도 짙었기에 우리가 터하고 있는 이 땅에 착근시키고 싶다는 바람도 일었습니다. 그 생각의 맹아가 자라고 커져서 기해년 오늘의 <개벽파 선언>으로 귀결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올해가 선언의 적기라면 내년은 창간이 적시입니다. 백 년 전에도 3.1운동 이듬해인 1920년에 <개벽>이 창간했습니다. 2020년에 “개벽+”을 출범시키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범개벽파를 결집시키는 매개이자 매체이며 촉매가 되고 싶습니다. K-Studies의 진지를 구축하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촛불혁명 이후의 새 정신을 구현하는 텃밭을 가꾸어보고 싶습니다. 천도교와 원불교부터 한살림과 녹색평론까지 ‘구개벽파’들은 어쩐지 흩어진 모래알입니다. 대동단결을 촉발하는 거국적 움직임이 당최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럴수록 원(願)을 크게 세워야 하겠습니다. 원대한 꿈을 키울수록 작은 이해관계에 연연하지 않는 대범함과 초연함이 자라납니다. 생명을 생각하는 생활을 생산하는 차원에서, 무궁한 생명의 질서로 온 누리를 개벽하는 무궁아의 지평에서, 범개벽파는 반드시 대동소이(大同小異)와 구동존이(求同存異)의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 개벽 사상으로 세계관과 가치관을 확립하고, 개벽 일상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주조해야 하겠습니다. 생각은 스케일 크게 울울하게, 생활은 스타일 쩔게 섹시하게.

그리하여 개벽파는 기성세력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가 주조해간 20세기와는 다른 21세기를 추동하는 판갈이를 주도해가야 하겠습니다. 개화 좌우파의 갈등과 반목을 개벽 좌우파의 대연정으로 반전시키는 빅픽쳐의 로드랩을 그려가야 하겠습니다. 2048년 통일헌법의 근간을 동학으로 삼는 새 나라의 골격 또한 디자인해야 하겠습니다. 기어이 동학 창도 200년이 되는 2060년에는 동학국가의 꼴과 얼이 완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개벽+>를 창간하는 2020년이면 제 나이 마흔 둘이 됩니다. 2060년까지 맑은 정신 유지하며 건사할지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2060년은 작년에 태어난 제 아들이 꼭 마흔 두 살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제 육안으로 확인하지 못할지언정 제 아들 녀석은 동학국가에서 살아가기를 염원합니다. 남/녀가 보수/진보가 내국인/외국인이 기껏 소아(ego)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대하고 혐오하고 조롱하는 개화의 끝 악다구니 헬조선이 아니라, 모두가 저마다 무궁아로서 서로가 서로를 모시고 기르고 섬기는 개벽세의 일원으로 살아가기를 두 손 모아 희구합니다.

허나 하늘과 한울와 공공하는 개벽파로서 어찌 동학몽이 우리나라 일국에 갇힐 수가 있겠습니까. 다시금 개벽학은 미래학이자 지구학입니다. 개벽학당 출범 3개월 만에 개벽풍은 이미 현해탄 건너 일본에까지 다다랐습니다. 후쿠오카의 시의원이자 ‘동아시아 생명문화 다양성 연구소’ 소장을 겸하고 있는 후지이 요시히로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또한 1978년생, 저와 동갑내기입니다. 동아시아인들이 동학을 함께 공부하는 미래를 소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만추가 절정에 이를 늦가을, 일본의 벽청들과 한국의 벽청들이 함께 어울리는 ‘동학 스터디 투어’를 제안했습니다. 내년 6월 쿤밍에서 열리는 지구촌 회합에서도 한중일을 넘어 서방에까지 동학을 알리는 기획을 해보자고 합니다.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개벽파들이 동참하여 북조선에 숲을 가꾸어가는 국제적 프로젝트도 제안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2022년에는 ‘글로벌 개벽파’들이 북조선 및 한반도를 순례하는 이벤트도 준비해 보자고 합니다.

작년이 바로 메이지유신 150주년이었습니다. 지난 5월에 연호가 바뀌어 일본은 이제 레이와(令和) 시대로 진입했습니다. 동학에 기초하여 ‘레이와 유신’을 해보고 싶다는 전언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오릅니다. 심장이 쿵쾅쿵쾅 튀어 오릅니다. 척사의 보루였던 대청제국과 개화의 아성이었던 대일본제국의 협공으로 하늘사람들의 개벽몽이 좌초된 지 120여년이 흘러 마침내 ‘개벽하는 동아시아’의 여명이 동 터오는 것인가 벌렁벌렁 설레입니다. 당장 9월에 ‘일본의 개벽파’들이 터하고 있다는 이토시마로 날아가 손을 맞잡고 눈을 맞추며 선언 이후의 실천과 실행을 논의해보려고 합니다.
여주의 세종대왕릉

11월 초로 예정된 한일 벽청 동학 기행은 ‘여주에서 원주까지’가 어떨까 기획하고 있습니다. 여주는 세종대왕과 해월신사의 묘가 모두 모셔져 있는 남다른 공간입니다. 이웃도시 원주는 한살림운동의 근거지였습니다. 한글부터 한울을 지나 한살림까지, 한국의 개벽사상사 반천년을 살피기에 최적의 코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개벽학당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일국에, 한 나라에 안주할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자타불이, ‘아국운수 먼저 한다’ 뿐이지 타국 운수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디지털과 글로벌은 21세기의 숙명인바, 일본으로 중국으로 러시아로 몽골로, 아시아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아메리카로, 지구촌 방방곡곡으로 개벽의 그물망을 잇고 따고 엮어 가야 하겠습니다. 19세기 물질개벽, 산업혁명의 벽두에 공산당선언이 탄생했습니다. 21세기 물질개벽, 디지털 혁명의 여명에 개벽당선언이 나오지 말라는 법 없습니다. 개벽청년단 가운데 일군이 전위가 되고 정예가 되어 별동체를 꾸려도 보람될 것입니다. 기왕이면 한국청년 뿐만이 아니라 다국적 연합으로 구성된 최초의 지구정당이 출현한다면 더더욱 기쁠 것입니다. “오심즉여심즉당심(吾心卽汝心卽黨心)”으로, 내 마음과 네 마음과 온 마음이 한 마음 되는 궁궁을을(弓弓乙乙)의 ‘새 정치’가 펼쳐지기를 기원합니다.
여주의 해월신사 묘

아름다운 시작은 부지기수, 수도 없이 많았다지요. ‘새로운 것’보다 더욱 난망한 일이 ‘오래된 것’으로 지속하는 일인 법입니다. 레전드로 남아야 그 싱그럽던 시발 또한 그윽하게 회고될 수 있습니다. 개벽파선언을 궁리했던 그 첫 마음을 잊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첫 문장을 써나가던 새해 첫날 그 새벽의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을 되새기는 바입니다. 개화에서 개벽으로의 터닝포인트, 선천에서 후천으로의 티핑 포인트, “새로운 하늘은 이제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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