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6

조영준 공론장으로 찾은 인민과 시민 사이논평



5 공론장으로 찾은 인민과 시민 사이논평

조 영 준*



104 《시민의 탄생》의 저자 송호근 교수는 한국연구재단의 우수학자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지난 수년간 집중적인 연구를 수행해 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회 과학자 중의 한 사람에게 국가적인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지원하였고, 그 결

현 과로서의 저작물이 하나둘씩 출판되기 시작했다. 전작인 《인민의 탄생》이 대 대사 한민국학술원의 2012년도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고, 후속작으로서 《시민 광장 의 탄생》이 출간된 것은 그러한 사업의 성과에 해당한다. 이렇게 인문·사회

분야에서 특정의 주제에 대하여 긴 호흡을 가지고 차분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기 시작하였다는 점은 꽤 고무적이다. 저자가 기획하고 있는 마지막 저서인 《현대 한국 사회의 탄생》(가제)이 활자화되어 3부의 연작 전 체가 독자 앞에 선보이게 된다면, 한국의 인문학계와 사회과학계에서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생태계에 대한 전범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서평을 의뢰 받은 평자가 《시민의 탄생》이라는 책을 들춰보기 전에 기대 했던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자. 독자의 입장에서 ‘시민의 탄생’이 라는 제목만 보면 책의 내용이 최소한 두 가지 중의 하나일 것으로 예상할 법 하다. 하나는 ‘탄생’된 ‘시민’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내용이고, 다른 하 나는 ‘시민’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일 것이다. 전자가 시민 의 구체적인 실체를 드러내는-근대 시민의 원형을 찾아나가는-작업이라면, 후자는 시민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사회’와 더불어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를



* 한국학중앙연구원 조교수, 경제학, 《시폐 市弊 -조선후기 서울 상인의 소통과 변통-》 등 다수 논저.

확인하는 과정에 해당한다. 현대 사회를 전공한 사회학자가 익히 활용할 수 있는 사회학 이론을 한국 역사에 접목하기에 용이한 것은 역시 후자의 방법 론이었을 테고, 이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으리라 판단된다.


장의 구조 변동’이라는, 《시민의 탄생》에는 ‘조선의 근대와 공론장의 지각 변 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는 한국 근대사에 대한 저자의 접근이 ‘공론 장’이라는 틀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론장(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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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here)이라는 용어는 꽤나 심오하고 난해한 것이지만-사회학이나 철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평자가 이해하기로는-사적 주체들이 공적으로 등장하여 형성한 ‘담론장’ 또는 ‘의사소통의 장’으로서 이해관계가 결부되어 비판적 논 의가 진행되는 추상적 공간 또는 영역 정도로 파악될 수 있겠다.

저자는 두 권의 책에 걸쳐서 처음부터 끝까지 공론장이라는 큰 틀을 원용

하여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인민의 탄생》에서 주목한 것은 ‘사족 공론장’ 또는 ‘양반 공론장’에서 이루어졌던 지배 담론이 ‘평민 공론장’의 등

공 론 장 으 로 찾 은

인 민 과  시민 사 이



시민의 실체를 드러내는 실증적 방법론이 아닌, 담론 분석을 통한 역사 이 해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의 탄생》에 대한 서평은 단지 《시민의 탄생》 의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완결될 수 없다. 전작인 《인민의 탄 생》에 대해 미리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인민의 탄생》에는 ‘공론

장과 확대를 통해 대체되어 갔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전통 체제를 떠받 들고 있었던 종교, 교육, 향촌이라는 세 가지 축이 변화하였다고 보면서, 각 각 ‘종교적 담론’, ‘문예적 담론’, ‘정치적 담론’으로 개념화하였다. 변화가 발 생한 가장 큰 요인은 국문 또는 언문 담론의 형성이었고, 그 중심에는 ‘한글’ 을 읽을 줄 아는 인민, 즉 문해인민(文解人民)이 있었다. 요컨대, 문해인민 으로 대표되는 평민이 주체가 되는 담론장이 여러 차원에서 확산되어 갔고, 공론장의 형성을 기다리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인민의 탄생》에서 내어 놓은 결론이다.

공론장의 교체에 대한 분석은 《시민의 탄생》에서 이어진다. 가장 주목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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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대 사 광 장


과 오목한 곡선(이를 테면, z=-y²)이 서로 90도(또는 270도)의 각도를 이 루며 회전되어 있는 축에서 접하며 형성하는 3차원적 개념, 즉 쌍곡포물면 (hyperbolic paraboloid)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추락과 부상이 가지는 의 미가 단순히 하락이나 상승에만 있지는 않으며, 거기에는 방향의 전환이라 는 개념이 추가된다.

저자는 ‘말안장 시대’를 대강 “1860년대 초에서 1894년 갑오개혁까지”로


만한 내용은 ‘양반 공론장’이 쇠퇴하고 ‘평민 공론장’이 확대된 시기를 ‘말안장 시대’로 특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근대적 질서가 붕괴하고 근대적 질서가 자리잡아 나가는 중첩된 시기를 지칭하기 위해 기존 학계의 ‘안장(saddle)’ 개념을 차용한 것이다. 저자가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수학적 으로 표현하자면-안장은 추락하는 하나의 시대(이를 테면, y=-x³)와 부상 하는 또 하나의 시대(이를 테면, y=x³)가 단순히 같은 평면에서 만나는 2차 원적 개념이 아니다. 안장이 가지는 의의는 볼록한 곡선(이를 테면, z=x²)

설정하고 있다(p.34, p.250). 그 이유는 저자 스스로 1894-1895년간의 갑 오개혁을 “근대 개혁의 출발점”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p.252). 저자 가 제시하는 논리에 대해 평자가 수긍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근대’의 개 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 저자는 갑 오개혁에 의해 ‘유교적 지식 국가’에서 ‘세속적 근대 국가’로의 전환을 꾀했다 고 보았는 데(p.254),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 제도의 차원에서 근대를 찾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제도의 변화가 경제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대 해서는 경제발전론이나 제도경제학을 전공하는 경제학자 사이에서도 공감 대가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어떤’ 제도가 ‘실제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실증적 방법론에 의한 접근만이 그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 갑오개 혁에 의해 무언가 큰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이 가지는 의미를 과대평가해서는 곤란하다는 의미이다.

저자가 곳곳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비관적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는


한 요인에 대해서는-아직 추가적인 연구가 충분히 보충되어야 하겠지만 우 선은-개항에 따른 개방경제의 형성에 있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갑 오개혁을 근대의 시발점으로 설정하고 논의를 전개하는 한, ‘제도’의 근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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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현실’의 근대에서 나타나는 간극에 대해서 저자가 설명할 수 있는 여지 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갑오개혁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상공업 부문의 개혁 조치를 예로 들자면, “관료 제적 통제로부터 ‘시장’을 해방시”키려 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p.265). 이와 관련한 상세한 논의는 《시민의 탄생》이 아닌 《인민의 탄생》에서 찾을 수 있는데(pp.329-336), 조선 후기 상업사에 대한 저자의 인식에서는 적


점까지 고려하면, 한반도에서 근대는 식민지 시기가 아닌 갑오-을미개혁 이 후 대한제국기에 이르는 시기에 출현하였던 것으로 주장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러한 입론은 논리적으로 입증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므로, 선 언적(宣言的) 판단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진전되고 있는 경제사 연구의 성 과에 따르면, 17-19세기에 지속적으로 하락하던 여러 경제지표-토지생산 성, 신장, 인구 등-가 반등하는 시점은 갑오개혁 이후도 아니고 식민지 시기 도 아니며, 대체로 1880년대 무렵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발생

지 않은 문제점이 확인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점은 17-18세기와 달 리 19세기 후반에 발생한 추가적인 변화에 대해 거의 섭렵하지 못하고 있다 는 점이다. 시전상인이 독점을 취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자유로운 상업 활 동을 육성한다는 등의 법규 변화 내용이 마치 사실을 선도(先導)하였던 것처 럼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시전의 경우만 보더라도 1870-1880년대가 되면 금난전권(禁亂廛權)과 같은 특권이 가지는 의미는 일찍이 퇴색되어 있었고, 육주비전(六矣

廛)을 비롯한 다수의 시전이-인플레이션을 비롯한 여러 요인으로 인해-수 가(受價)의 프리미엄을 상실하고 나아가 외상의 누적으로 인해 발생한 고통


이렇게 갑오개혁에 대한 재평가를 달리할 수 있다면, 시기가 조정된 ‘말안 장 시대’에 대한 의미 부여 역시 달라지게 될 것이다. 또한 하강 국면이 반전 되는 계기가-동학과 같은 내부적 요인에 의해-자생적으로 마련된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개항 이전의 조선사회에서 바닥을 치고 올라서는 상 승국면으로의 전환 과정은 개항이라는 외생충격(exogenous shock)에 의한 방향 선회에 의해서 촉발되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최근의 실증 연구가 내어


에 신음하고 있었다. 즉, 시전이나 공물과 같은 조달 관행의 제도적 폐지 이 전에 이미 재분배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국가의 기능이 작동되지 않고 있 었던 것이다. 이는 갑오개혁이 가지는 의미가 위로부터의 ‘급진적 출구’의 마 련(p.265)이 아니라 전통적 경제체제의 붕괴에 대한 사후적 승인에 불과하 였을 것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갑오개혁에 의해 변화가 개시된 것이 아 니라, 변화에 떠밀린 나머지 뒤늦게나마 외세 권력에 의해 갑오개혁이 이루 어졌던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놓는 성과와 정합적이다. 그렇게 볼 수 있다면 ‘말안장 시대’라는 명명이 더 욱 적절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겠다. 또한 종래 상정되어 왔던 경제발전단계 론 등에 기반한 근대로의 이행이라는 단선적 가설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의의 도 보다 확고히 갖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공론장이라는 큰 틀을 가지고 논지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인민-개 인-시민을 장기적인 연속선상에 놓고 있다. 인민은 다시 문해인민-자각인 민(自覺人民)-개명인민(開明人民)으로의 변화 과정을 거치게 된 것으로 설 명된다. 그런데 그러한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인민의 역사와 지배층의 역사를 분리하면서, 양반-평민의 대립 구도를 의도적으로 지향하고 있다. 전작인 《인민의 탄생》에서의 논의를 환기시키면서 ‘양반 공론장’을 한문 담 론과, ‘평민 공론장’을 언문 담론과 연결시키는 것도 《시민의 탄생》에서 펼 치는 저자의 주요 논지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이 얼마나 도식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쉽게 반증할 수 있다. 18-19세기의 평민을 양반과 대립되는 존재로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간 사례-이를 테면, 상권(商權)을 획득하여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행태-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양반 세력의 축소와 평 민 세력의 확대라는 구도로 설정되기보다는 양반 계층과 평민 계층 사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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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류와 잠식 또는 융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와중에 양반과 평민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중인 계층과도 일 부 중복되지만 반드시 중인이라 할 수는 없는-중산층의 역사가 개시되는 것 이다. 하지만 《인민의 탄생》에서도 《시민의 탄생》에서도 그러한 계층에 대 한 인식을 손에 잡힐 정도로 명확히 찾아보기는 어렵다. 실체가 확인되지 않 는 ‘중서층’이라는 불명확한 표현만이 간간이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p.35, p.71 등). 한문으로 일기를 작성하고 한시를 즐겨 지으며 격변기를 살아갔던


우선 스스로 양반이 되고자, 즉 양반으로의 신분 상승을 도모하고자 한 자 들이 많았다. 저자도 익히 알고 있겠지만, 19세기 들어 여러 가지 경로를 통 해 전체 인구에서 양반의 비중이 증대되고 상민이나 천인의 비중이 감소했 다. 양반이 되지 못한, 또는 양반이 될 수 없었던 경우에도 양반을 모방하고 자 했던 사례-이를 테면, 185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보부상 조직-도 다수 확인된다. 또한 반대로, 양반 계층에서 종래의 평민의 영역을 잠식해

평민-이를 테면, 《하재일기》를 남긴 공인 지규식-에 대해서는 어떤 식의 설 명을 가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양반-한문 세계와 평민-언문 세계의 충돌과 교차, 교대, 또는 대립이라는 가설은 과연 실상에 가까운 것일까? 최 상층과 최하층 사이를 채우고 있었던 다양한 인간 군상의 스펙트럼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역시 지나친 개념화에 따른 현실의 단순화에 있지 않을까? 동학이 자각인민을 만들고 근대적 개인의 원형을 이루었다는 이 책의 핵심적 주장은 실증의 결과라기보다는 상징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나중에 다시 발현되었을지라도 연속적으로 존재했다기 보다는 잠복 상태에 들어갔던 것이 아닐까?


고 필요한 재료를 역사 속에서 수집하여 건물을 쌓아 나가는, 연역적 접근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공론장이라는 개념은 방법론이라기보다는 수사에 가 까운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전체적인 논의에서 주로 2차 자료의 취합을 통해 비판적 분석이 이루어지고, 간간이 1차 자료의 선별적 인용을 통해 자 신의 견해를 강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제도사나 사건사에 대한 서술이 주류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세부적인 차원에서 대여섯 가지의 논점을 찾아볼 수 있지만, 상 세한 논의는-다른 기회를 찾을 수 있으면 찾아보되-지면 관계상 과감히 생 략하고, 이제는 그러한 논점들이 하나하나 평자의 눈에 들어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자. 저자가 기획하고 있는 연작에서 취하는 방법론 그 자체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내재되어 있지 않을까? 일련의 저서는 공론 장이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역사 자료와 연구 논저를 서베이하며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서구 이론에 의해 디자인된 설계도를 그려 놓

필요에 따라 단편적인 정보를 끌어모아 끼워 맞추다 보면 흔히 발생하게 되는 오류 중의 하나가 시대와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았던 정보를 서로 연결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문해인민에서 개인으로 의 전환을 설명하면서 풍속화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p.76), 그 풍속화가 다름 아닌 단원이나 혜원의 작품이다. 저자가 논의하고 있는 시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차라리 훨씬 후대일지라도 기산이 낫지 않았을까? 다시 말해, 산수에서 인간으로의 전환이 아니라, 인간에서 사물 또는 행위로의 전환을 묘사하는 방향으로 서술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또, 외국인의 관찰 기록 중에서 “상업과 조합의 거리”라는 표현에 주목하 면서, ‘조합’이 등장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pp.236-237, p.352). 하지 만 한국어로의 번역 이전에 그 프랑스인 부르다레가 사용한 용어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확인될 필요가 있고-아쉽게도 평자는 프랑스어 지식을 갖추지 못했다-그 조합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대 에 서울에 있었던-서양인이 관찰 가능했던, 건물을 보유한-상인의 공동체 는 새로운 형태의 결사체라기보다는 주로 시전의 도가(都家)였고, 갑오개혁 이전부터 있었던 구래 육주비전의 도중(都中)이 헤쳐 모인 것에 지나지 않는


에서의 주민 구성이 근대적 일면을 보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상당히 강력한 역사성을 보이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이와 관련하여 ‘경제시민’에 관한 논의도 일견 비약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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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8, p.241), 당시의 서울에 상인이 새롭게 ‘출현’하였다기보다는 18-19 세기에 이미 상인이나 수공업자가 서울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

다. 저자가 인용한 조성윤의 서울 주민 연구는 18세기 또는 19세기에 대한 미확인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p.241, p.456 주 82), “가내 노비와 관 속 노비가 인구의 75퍼센트 이상을 차지했”다는 정보는 19세기의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시기상의 격차뿐 아니라 17세기 한성부 북부(北部) 호 적의 지역적 특수성까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며, 그 비교 대상인 광무(光




다. 따라서 결사체의 형태였다고 하더라도 근대적 의미의 조합과는 거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저자가 《인민의 탄생》에 이어 《시민의 탄생》에 서 주목하고 있는 “자발적 결사체”의 존재 때문에 서울 거리의 조합에 대해 서도 외국인의 견문을 인용하면서 그렇게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당대 서울

武) 호적의 경우에도 자료의 부실함을 인정한 후 활용되어야 함은 널리 공지 (共知)되고 있다. 또한 당시 도성 인구가 10만 명이었다는 언급도 받아들이 기 어려우며(p.368), “사대부와 양반 관료들이 모두 난리를 피해 시골로 달 아나서 서울 장안에는 노비만 득실거렸다”(p.169)는 표현은 19세기 서울의 인구 구성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마디로 말해, 당대인이 과장해서 표현한 것을 그대로 비판 없이 수용한 것이다. 회사의 출 현이나 상회사에 대한 언급 역시(pp.242-243) 법률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 하고 있었던 초기 형태의 회사가 가지는 포말회사(bubble company)로서의 특징에 대한 이해까지 나아가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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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는 저자가 강조하는 “자발적 결사체”의 형성에 대한 의문으로


정된 형태로 《시민의 탄생》에서도 반복되었고, 부록에서 표의 형태로 그 근 거가 제시되어 있지만, 분석 기법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다만, 기 존 연구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된 내용으로부터 일정한 추세를 추출하고 방향 성을 찾아내서 의미를 부여하는, 또한 서구 학계의 이론을 원용하여 평가하 려는 시도(p.366)에 대해서는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또한 ‘1905년’부터 자발적 결사체가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서 ‘사회’의 등


연장될 수 있다. 우선 결사체의 형성이 급증했다는 점은 인정될 수 있으나 (p.369), 그러한 결사체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분석되지 않고 있다. 즉, 데이터의 성격상 연간의 유량(flow)만 확인되고 있어, 실제로 의 미를 가질 수 있는 저량(stock)의 시계열이 확보될 수 없기 때문에, 회사가 보였던 ‘거품’으로서의 성격과 마찬가지의 결사체가 대다수였을 가능성도 배 제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인민의 탄생》에서 이루어진 계량 분석이 조금 수

장 또는 탄생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현상 그 자체에 대한 동어 반복에 불과하다. 왜 증가했는가에 대한 적극적 해석은 보이지 않는다. 평자가 보기 에는 을사조약에 의해 통감부 체제가 형성되면서 조선 정부의 권력 또는 권 위, 나아가 전통의 기득권 세력이 붕괴됨과 더불어 파편화된 인간과 인간 사 이를 연결하는 새로운 질서로서의 사회가 출현하게 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 지 않을까 싶다. 즉, ‘사회’ 역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이식’된 것으로 볼 수 있으리라는 추측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제국의 근대화가 별 탈 없이 추진되었다면” 또는 “1910

년 일제의 강점이 없었다면” (p.21), “일제의 침략이 없었다고 가정하면” (p.282), “대한제국의 근대화 개혁에 힘입어 성장했더라면” (p.300), “그것이 없었다고 가정하면” (p.307), “일본의 강점이 없었다면” (p.312), “일제의 강 점이 없었다고 가정한다면” (p.432), “대한제국의 근대화가 별 탈 없이 추진 되었다면” (p.433) 등의 비역사적이고 비과학적인 가정에 의한, 검증 불가능 한 논의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 는다. 또한 “식민지 근대화론은 물질적, 경제적 외형 확대와 계량적 측정에 매몰된 근시안적 논리” (p.373)라고 매도하기도 하면서, 다른 지면에서는 조 선총독부 통계를 인용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가고 있다(p.433).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저자의 주장과 달리 경제사학자의 주요 연구는 식민 지기라는 특정 기간 동안에 조선이라는 지역 내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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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하여 ‘부각’시킨 연구 결과가 아니라, 순수한 의도로 가용한 데이터를 열심 히 모아서 과학적 방법론에 의해 엄밀히 가공한 결과를 중립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작업의 과정에서 조선 민족의 역량이 ‘부각’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과거 학계의 논의 속에서 부조적(浮彫的)이라 는 비판을 받은 연구 동향이 경제사학자들의 연구 결과와는 거리가 멀었음 을 상기해 보았으면 좋겠다.

《인민의 탄생》과 《시민의 탄생》은 연작이라 그런지 서술이 중첩되는 부분


또한 “경제사학자들이 식민 시기 농업 생산성의 증가와 경제 성장률의 급 등, 여타 근대적 제도의 도입을 들어 식민 통치가 조선 근대화에 기여한 바 를 즐겨 부각”한다고 하였는데, 경제사를 연구하고 있는 평자의 입장에서는

이 많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후속작에서 보다 강화된 또는 체계화된 서술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인민의 탄생》에서 ‘인민’이 확인되는데 비해, 《시민의 탄생》에서는 교양시민이건 경제시민이건 할 것 없이 ‘시민’이나 ‘시민사회’가 전혀 확인되지 않은 채 다시 후속 연구로 미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민이 빠진 《시민의 탄생》이 가지는 의의는 《인 민의 탄생》에서 확인되지 않은 ‘평민 공론장’을 확인하였다는 데 있다. 공론장 의 확인은 ‘사회’의 출현과 함께 제시되어 있고, 거기에 국한하여 판단컨대 저 자의 의도는 달성된 셈이다. 그러나, 만약 “시민 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한 사 람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었나?”와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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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고자 한다면, 또 다른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도가 이루어졌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둘째는 사회과학의 입장에서 이론과 역사를 접목시키는 방식의 서술을 시 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구 이론에 대한 탄탄한 지식을 무기로 하여 정치 사, 사상사, 사회사, 외교사, 사학사, 문학사, 경제사 등의 방대한 원전과 논 저를 섭렵하며 조각조각의 단편적 정보를 큰 틀 속에서 재구성해 나가는 모 습은 역사학계 일반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접근으로 인정된다. 한국에


비판적인 서술은 이쯤에서 그만하고, 저자의 연작 저술이 가지는 연구사 적 의의를 두 가지 정도만 짚어두고 싶다. 첫째는 기존 역사학계의 주류를 형 성하고 있는 시대사적 접근을 비판함과 동시에, 사료 중심의 역사 서술 또는 분절적 접근을 지양하려 한 점이다. 지나치게 큰 스케일을 지향하다 보니 미 시적 기초가 부실해진 경향이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단일한 시각에 서 통사적인 접근을 시도하며 역사를 조망하는 장기적 시야를 확보하려는 시

서 이루어진 기존의 역사 연구를 분해, 재편하고, 새로운 방법론에 의해 재배 치, 재구성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역작이다.

이상, 평자의 시각(視角)에서 눈에 들어왔던 몇 가지 사항을 중심으로 노 작에 대한 졸평을 감행해 보았다. 가급적 가감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 두 털어놓았으니, 부디 발전적 비판으로 수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저자가 3 부작을 완결하는 과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쁘겠다. 또한 오 독되거나 오도된 부분이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평자의 공부가 미진한 탓으 로 돌려야 할 것이다. 끝으로 동학에 관한 논의에서 저자가 피력한 역사학계 에 대한 비판적 언설이-‘동학’이라는 말을 ‘역사’로만 바꾸면-다른 모든 주 제에 대해서도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듯하기에, 아래에 인용해 둠으로 써 글을 맺고자 한다.

(역사) 관련 연구자들이 늘어나도 새로 발굴된 자료를 보완할 뿐 새로운 해석 내지 새로운 접근 방법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작금 역사학계의 모습이다. 새로 운 자료는 새로운 해석을 도출한다는 역사학 연구자들의 일반화된 믿음에 기대어 새로운 자료 발굴에 기대를 건다 해도 지난 30년에서 40년 동안 (역사) 연구의 패 러다임이 그다지 바뀌지 않은 것은 자료 발굴에 소홀했던 탓만은 아니다. 오히려 방법론적 질문에 소홀했고, 신중한 연구자들이 제기했던 근본적 질문을 자료의 한 계라는 블랙박스에 넣어 봉합했던 탓이다(pp.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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