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윤치호와 김교신 - 근대 조선의 민족적 아이덴티티와 기독교, 개정판
윤치호와 김교신 - 근대 조선의 민족적 아이덴티티와 기독교, 개정판
양현혜 (지은이)한울(한울아카데미)2009-12-31
256쪽
152*223mm (A5신)
35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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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초기 기독교의 대표적 두 인물인 윤치호와 김교신을 통해 검증해본 제국주의에 대한 예종적 에토스, 그리고 민족정체성의 재구성. 1부 '윤치호의 정치사상과 기독교', 2부 '김교신의 신앙과 조선산 기독교'로 구성되었다.
목차
서론: 연구과제와 방법
제1부 윤치호의 정치사상과 기독교
제1장 유교적인 세계관에서 ‘기독교적 제국주의’의 세계관으로
제2장 정치사상의 논리구조와 그 적용
제3장 세계관의 변용과 ‘조선 독립 불가능론’
제4장 민족의 ‘발전적’ 해체의 길
제2부 김교신의 신앙과 ‘조선산 기독교’
제5장 사상의 형성과정과 신앙의 특질
제6장 김교신과 무교회주의
제7장 조선 기독교회에 대한 자세
제8장 ‘조선산 기독교’의 논리구조와 실천
총괄과 전망
저자 및 역자소개
양현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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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사학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나카무라 하지메 종교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저서로 《윤치호와 김교신: 근대 조선에 있어서 민족적 아이덴티티와 기독교》(1994), 《근대 한일관계사 속의 기독교》(2009), 《김교신의 철학: 사랑과 여흥》(2013), 《우치무라 간조, 신 뒤에 숨지 않은 기독교인》(2018)이 있으며, 《동화의 숲에서 절대자를 만나다》(2015), 《구안록》(2016) 외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최근작 : <윤치호와 김교신>,<우치무라 간조, 신 뒤에 숨지 않은 기독교인>,<김교신의 철학 : 사랑과 여흥> … 총 27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초기 기독교의 대표적 두 인물인 윤치호와 김교신을 통해 검증해본
제국주의에 대한 예종적 에토스, 그리고 민족정체성의 재구성
윤치호에게 기독교의 신은 근대 산업 문명이라는 지고의 가치를 수호하는 신이고 세계의 역사는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서 신적 목표를 실현해가는 무대였다. 따라서 그의 신앙은 산업사회의 ‘향상주의적 금욕’의 에토스를 자기 강제하는 윤리이고, 동시에 ‘부정된 존재’인 자신을 보호하는 ‘신의 사랑’에 합일함에 의해서 자기의 안태(安泰)와 휴식을 얻으려는 정서였다.
한편 김교신이 생각했던 역사에 대한 기독교인의 자세는 불의에서 오는 고난을 스스로 짊어지는 ‘(창조적인) 자기 수고’의 자세를 통해 불의를 정화함으로써 신의 윤리를 역사에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선산 기독교’는 불의에 의해 잃어버린 민족의 역사를 창조적으로 형성하고 신이라는 절대적 시점에서 민족을 상대화하는 민족적 아이덴티티의 표명이기도 했다.
기독교에 입교하기 전, 윤치호는 ‘화이적 세계관’을 갖고 쇠퇴해가는 조선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서구적 정치행정 시스템의 도입과 군주주도의 ‘안민(安民)의 정치 이상’ 실현을 두 축으로 한 내정개혁론을 주장했다. 수신의 완성을 꾀하는 윤리적인 희구에서 기독교에 입교한 후에도 여전히 유교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광대한 부를 자랑하는 미국 사회를 직접 체험함으로써 윤치호는 모든 비서구 제국이 추구해야 할 유일한 가치는 ‘서구화’에 있다고 파악했다. 그리고 ‘비적자(非適者)의 배제론’에 공명하면서 비로소 윤치호는 유교적인 세계관에서 탈피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세계관을 형성했던 윤치호에게 기독교의 신은 근대 산업 문명이라는 지고의 가치를 수호하는 신이고, 세계의 역사는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서 신적 목표를 실현해가는 무대였다. 일본을 ‘대리적인 마음의 조국’으로서, 이상 사회로서 그리고 조선을 ‘부정적’ 사회로서 전자에 대비시켰다. 나아가 그는 약자인 조선의 식민지화는 ‘신의 벌’로서 당연한 보답일 뿐 아니라 강자 일본의 행위는 조선의 교육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의 세계관은 ‘산업문명국=선=영원의 지복, 비산업문명국=악=영원의 멸망’이라는 도식에서 ‘강자=지배=약탈, 약자=복종=피박탈’이라는 도식으로 변용되었다. 이에 대응해서 그의 기독교 신앙도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잃어버리고 오직 ‘향상주의적 금욕’의 에토스를 스스로에게 강제하며 개인적 안태를 보장받으려는 사사적(私事的)이고 보신적인 성격의 것으로 변용되었다. 윤치호는 민족적 니힐리즘에 빠져 ‘조선 독립 불가능론’을 주장하고 식민지 질서의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개인적 활동을 전개했으나 193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적극적인 친일 행동을 취하게 된다.
한편 구체적인 역사 현실의 장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구현하려 한 김교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의를 ‘신의 정의의 분노’와 ‘신의 사랑’과의 이원성에 의해 매개된 일원적 ‘사랑’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죽음과 싸워 이긴’ 그리스도의 부활은 ‘죄’로서의 세계의 역사가 끝나고 ‘신의 나라’의 도래가 시작된 세계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인식했다.
기독교인은 인식과 행위의 개적(個的) 주체로서 자아를 확립함과 동시에 그러한 자기 존재를 신앙을 매개로 해서 보편적인 타자에게 개방함으로써 ‘근대인’을 초극할 수 있다고 김교신은 생각했다. 그리고 내적 자유를 획득했던 기독교인의 행위는 ‘근대인’의 경쟁과 성과 중심, 즉 목표 상실의 행동강박증과 그 필연적 귀결인 ‘이웃 사람 부재의 반애타성’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근대초극’ 사상은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모색하는 작업에서 입구이면서 동시에 출구를 이루는 사상적인 원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교신은 유교의 형태 안에 머무르는 정신적·윤리적인 이상주의를 복음전사적인 요소로 간주하고 기독교의 ‘사랑’의 원리를 매개로 해서 유교 윤리의 서열적인 개별주의를 보편적인 타자에 대한 사랑에 의해 보편화하고 나아가 개인적인 이상주의에 뒤따르는 독선적 영웅주의를 극복하려 했다. 조선의 정신적 전통을 기독교를 매개로 창조적으로 계승하려 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조선의 현재와 미래의 역사에 기독교의 원리를 관계시키는 것이 조선적인 기독교의 형태를 모색할 때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교신의 삶은 ‘창조적 수고자’를 실천하는 생활이었는데, 그는 후에 노동자와의 생활을 통해서 ‘자기 수고’에 의한 역사 창조의 태동을 민중 안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고난을 스스로의 것으로 받아들여서 신에게 받은 자기의 인격을 발견하고 회복해가는 민중의 모습에서 민족의 독립과 재생을 몸으로 실감했던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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