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0

[책속에이런일이] 경이로운 기억력의 괴짜 천재 - 화이트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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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기억력의 괴짜 천재

김대욱 기자
승인 2008.12.1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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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에 책 쓰고...19개 언어 구사한 일본학자

“앗!”



[북데일리] 일본의 어느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천황 히로히토가 있는 자리였다. 한 통의 캐러멜 상자 때문이었다. 당시 천황에 올리는 헌상품은 오동나무 상자나, 그에 준하는 최고급 포장을 하는 게 예였다. 당시 '신민'의 눈으로 보면 ‘무식하고 겁 없는’ 짓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은 미나카타 구마구스(1867년생), 이른바 괴짜 천재로 불리는 사람이다. 신간 <괴짜가 산다>(학고재. 2008)에 소개된 미나카타의 이력은 실로 경이롭다. 박물학자, 민속학자, 세균학자, 천문학자, 인류학자, 고고학자, 생물학자, 일본 최초의 생태학자, 재야학자, 환경운동가....전부 말하려면 숨이 찰 정도다.

미나카타는 신동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 취미는 필사와 암기. 무엇이든 베껴 쓰고 외우기를 즐겼다. 7살 무렵, 그는 실용사전인 <대잡서>와 그림을 곁들인 사전 <훈몽도휘>를 읽고 외웠다. 초등학교 시절엔 이웃집에서 백과사전 격인 105권짜리 <화한삼재도회>를 빌려 5년에 걸쳐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했다. 이 무렵 식물도감 <본초강목>도 베껴댔다.



그의 못 말리는 베끼기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한 번은 서점에 가서 40권짜리 전쟁 이야기책 <태평기>를 선 채로 외워 집에 돌아왔다. 옮겨 적기 위해서였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필사본 <태평기> 한 질을 묶어냈다고.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미나카타는 13살에 <동물학>이라는 책을 썼다고 전해진다. 영국의 여러 책을 참고하고, 한서와 왜서를 비교해 지었단다. 서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한다.

“우주의 물체 삼라만상에는... 실로 끝 가는 데가 없고...”

13살의 나이에 책을 쓴 것도 모자라, 우주와 삼라만상을 들먹이다니. 범상치 않은 재주에 기가 찰 노릇이다.

이토록 ‘비범했던‘ 그에겐 정규교육이 맞지 않았다. 수업은 늘 뒷전이고 개구리와 게를 잡아와 관찰하며 놀기에 바빴다. 그래도 입시학원 덕에 대학은 지금의 도쿄대학을 들어갔다. 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끼는 못 버린지라, 낙제를 받고 결국 자퇴했다.



그의 재능이 꽃을 피운 건 외국생활을 하면서다. 미나카타는 “천하제일의 사나이라는 평판을 들으리라”는 결의와 함께 미국, 쿠바, 베네수엘라, 자마이카, 영국을 떠돌며 공부에 매진했다. 특히 영국 대영박물관에 틀어박혀 연구에 몰두할 시기 그는 성큼 성장했다. <런던 발서>라는 52권의 필사노트를 완성했고(현재 미나카타 기념관에 보관), 천문학회 현상 논문 모집에 ‘극동의 별자리’로 1위에 올랐다. 그가 발표한 논문을 51개다.

미나카타가 일본에 돌아온 때는 1900년 9월이다. 와카야마현의 다나베에 정착한 그는 연구에 매진, 5년 동안 정리한 점균 표본을 대영 박물관에 기증하며 세계적인 점균학자로 이름일 알렸다. 61권에 이르는 <다나베 발서> 또한 썼다.

그는 1941년 세상을 떠났다. 그때까지 일본산 균류 4천 5백종을 채집해 1만 5천여 장의 컬러 도감(圖鑑)을 완성했다.

이런 휘황찬란한 생을 이력서로 쓴다면 어떨까. 실제 그는 이력서를 써봤다. 환갑 즈음이었다. 미나카타는 자신의 이름을 딴 식물연구소를 갖기 위해 기부자들을 모았다. 그들에게 자신의 지난 삶을 이력서로 알렸다. 글자 수는 약 5만 5천자, 7미터 70센티미터에 달하는 두루마리 이력서였다. 이 정도면 ‘놀랠 노자‘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하나 더 추가한다. 그는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칼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 19개 언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런던 발서>에는 다양한 언어가 빽빽이 들어차 있다.

(사진제공=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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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카타 구마구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rsanahi&logNo=60066544613&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

나카자와 신이치의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이라는 책을 읽다 발견한 일본의 학자는 나에게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는 일본의 와카야마현 다나베시에서 태어나 배우고 익히기를 좋아하며 산과 들을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던 학자이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 면 그는 생명체에 대한 원형질로 여겨지는 점균식물을 연구한 생물학자이었으며 문화적 원형을 연구한 민속학자이자 분야와 지역을 초월 하는 박물학적 지식의 소유자이었다. 기억력이 뛰어나 어릴적부터 읽은 책은 통째로 암기해버릴 정도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지만 학교 에서 배우는 지식의 무의미함에 절망한 나머지 대학에 가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가 연구하다 서커스단에 합류하여 쿠바에 가기도 하고 중국 으로 건너가 손문과 우정을 나누기도 하였으며 기상천외한 행동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인물이다. 이러한 여정속에서도 그는 점균식물에 대 한 연구를 놓지 않았으며 미국에서 영국으로 다시 건너가 거의 독학으로 연구를 거듭하여 네이쳐지에 논문이 게재될 정도로 성과를 이루었 다.

변변한 학위는 없었지만 그는 점균 즉 지균류학자로서 동물과 식물의 특성을 함께 갖는 점균의 연구에 크게 기여하였다. 점균류 연구는 그가 생명체의 원형에 대한 연구이었으며 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의 원형에도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연구하였다. 점균류 연구가 생명 의 본질에 관한 연구이었지만 사회와 문화의 본질에 대한 탐색은 인류학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져 동서양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적 원 형의 발견에도 큰 몫을 담당하였다. 변변한 학위하나 없었지만 민속학 고고학 인류학 식물학 동물학에 대한 조예가 깊었으며 대영박물관 직원으로 근무하기도 하였으며 '십이지고(十二支考)', '남방수필(南方随筆)'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후에 헤이본샤(平凡社)에서 간행된 전집 이 남아있다. 그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학문세계는 대단하였으나 변변한 학위가 없어 일본대학에서는 대접받지 못하였으며 제도 와 관습에 개의치 않는 말이나 행동, 성격 때문에 많은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그의 기억력은 대단하여 지금도 기억력증진 방법으로 그의 방법이 소개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경이적인 기억력을 가진 신동이었고 독서가였는데 어느날 어느 장서가의 집에서 100권의 넘는 책 을 읽고 그것을 집에 돌아간 후 기억만으로 베껴 쓸 정도였다고 한다. 며칠 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고 산에서 곤충이나 식물을 채집하기도 했기 때문에 '텐걍(텐구天狗에서 유래)'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이전에 '본초강목(本草綱目), 제국명소화집(諸国 名所図会), 대화본초(大和本草), 태평기(太平記)를 필사했으며 중학교 재학 중에 한역대장경(漢訳大蔵経)을 독파했다고 한다. 그는 하나의 분야와 관련성이 있는 모든 학문을 알려 했기 때문에 그 관심 분야는 대단히 방대했고 산에 틀어박혀 연구하며 지식의 그물은 점점 넓어져 갔다. 그는 일본의 학계에서는 학위가 없어 대접받지 못하였지만 그가 이룬 성과는 일본의 지적 성과로 아직도 유효하다고 한다. 그가 이룬 성과 를 간단하게 언급하면 1892년 영국 런던 천문학회에서 공모한 논문에서 1위 입선과 네이쳐지에 기고 등이다, 이후 그는 대영박물관 동양 조사부에 들어가 자료 정리에 힘써 인류학, 고고학, 종교학 등을 독학함과 동시에 세계각지에서 발견하고 채집한 균류에 대한 기사를 과학 잡지 '네이처' 등에 기고했다. 귀국한 후에는 탁월한 지식과 독창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일본의 민속, 전설, 종교를 세계의 광범위한 사례와 비교하여 당시로서는 세계의 다른 학문적 성과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인류 문화학의 성과를 내놓았다. 균류의 연구에서는 새로운 종 70종 을 발견했고 개인적으로 독서와 현장체험에 의하여 성취한 학문적 성취는 '인류잡지', '향토연구', '태양', 일본급일본인' 등의 잡지에 수많 은 논문을 발표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화사가들에 의하면 그는 괴짜이었으며 타협하지 않고 세상을 홀로 짊어지고 가는 고독한 연구자이었다. 그는 폭주가였으며 술로 인한 에피 소드도 많다고 한다. 어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비롯하여 산스크리트어에 이르기까지 19개국어를 구사했다 고 한다. 1906년 말에 포고된 '신사합사령'으로 신사의 숲이 벌채되어 생물이 멸종하거나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보고 1907년부터 신사 합사반대운동을 일으켰다. 또한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 이와다 준이치(岩田準一)와 함께 남색과 관련된 문헌 연구를 한 것으로도 알 려져 있다.  아래 지식인 자료와 조양욱의 <<괴짜가 산다>>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으며 아래 사이트에서 좀더 알 수 있다.

별종 중에서도 별종으로 불리는 이들이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사 논설주간 와카미야 요시부미(60)는 일본의 대표적 논객이자 비중 있는 저 널리스트다. 아사히신문의 간판 칼럼에서 ‘독도를 한국에 주라’고 외치는 당참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매국노’라는 비난과 우익세력의 위협을 받고 있다.

잡지 ‘분게이슌주’를 창간하고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 ‘아쿠다가와상’, ‘나오키상’을 만들어 일본 문학 발전에 공헌한 기쿠치 히로시 (1888~1949)다. 그는 주머니마다 지폐를 가득 쑤셔 넣고 다니다 가난한 문인과 마주칠 때마다 돈을 꺼내 쥐어준 기행으로 유명하다. 천재 생물학자 겸 민속학자 미나카타 구마구스(1867~1941)는 일본 지성의 정점이다.

어린 시절 서점에 꽂힌 40권짜리 전쟁 이야기 ‘태평 기’를 선 채로 외워서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옮겨 적은 인물이다. 영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그는 생물학에 관심이 많았던 히로히토(1901~1989) 천황의 방문을 받았다. 천황에게 점균류 표본을 담은 종이 곽을 태연히 내밀어 주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천황에게 바치는 진상품은 무조선 최고급 오동나무 통에 담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괴짜가 산다-일본의 이인(異人)이야기’는 범상치 않고, 통념을 깨고 파격을 서슴지 않은 일본의 괴짜 20명을 담고 있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법학도 출신으로 54년 동안 오사카 상임지휘자로 활동한 아사히나 다카시, 명문 도쿄대 법학과를 졸업하고도 일본산 벚나무의 순수 품종을 지키고 가꾸는데 평생을 바친 사사베 산타로, 주위의 우려와 조롱을 받으며 진출한 메이저리그에서 보란 듯이 성공한 야구선수 노 모 히데오를 만나본다.
조양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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