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4

김용휘 -해월 최시형의 공경과 살림의 평화사상


해월 최시형의 공경과 살림의 평화사상
김용휘 (한양대학교)
국문요약
이 논문은 한국인의 평화사상 중에서 동학의 2세 교조 해월 최시형의 사상을 다룬다. 해월의 평화사상은 한마디로 공경과 살림의 평화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천지를 한 낱 물리적 자연으로만 보지 말고 부모님처럼 섬기라고 하였고, 거기서 난 모든 사람과 만물이 하나의 형제자매라고 설파했다. 이러한 만유와의 우주적 연대성에 의거한 화해와 공경, 그리고 살림의 정신이 그의 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평화사상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마음의 깊은 평화가 가져오는 힘과 부화부순의
가정의 평화, 그리고 사해동포주의적 평화의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폭력과 전 쟁이 생명의 존엄성과 연대성에 대한 자각 없이 상대방을 차별하고 수단화함으로써 일어 난다고 볼 때 해월의 공경과 살림, 사해동포주의적 이상은 비록 관념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지 모르나 가장 근본적이고 강력한 실천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주제어: 해월 최시형, 평화, 평화사상, 심화기화, 살림, 사해동포주의, 개벽.

Ⅰ. 머리말

지금 한반도는 북핵 문제로 촉발된 북미간의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될 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엄중한 상황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체제유지를 위한 최후 수단으로 생각하고, 미국은 평화협정의 조건으로 먼저 핵 폐기를 내세우고 있어서 그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6❙ 통일과 평화(92·2017)

사실 이러한 한반도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분단으로 인해 항시적으로 전쟁 위기에 노출되어 평화를 위협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분단체제가 가져온 온갖 갈등과 분열로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루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갈등은 물론, 세대갈등도 일정부분 분단으로 야기된 측면이 있다. 정치도 종종 정책대결보단 이념대결로 가 버린다. 심지어 경제적 평등의 주장, 양극화 해소 같은 의제들조차 종북 적 사고로 매도되기도 한다.
분단은 우리의 정신도 반쪽으로 만들어 사고의 경직성을 초래해왔다. 배제와 분리, 이분법적 사고를 무의식적으로 강요함으로써 다양한 상상 력, 창의적이고 통합적 사고를 차단해왔다. 어떤 면에선 분단 전 일제강 점기 지식인들의 사유가 훨씬 넓었을 뿐 아니라 웅혼했다. 때문에 우리 사회의 갈등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고, 상식과 보편적 가치가 존중받는 사 회를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영구적인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 먼저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불급한 일이라고 할 수 있.
한반도 분단은 민족내부의 문제임과 동시에 국제문제이기도 하다. 한 반도 냉전구도의 해체를 통한 평화체제로의 전환, 그리고 동아시아평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아시아 평화, 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독일통일이 유럽통합과정의 일부이었으며, 유럽 역사발전 과정의 한부분이었듯이 한국의 분단체제 해소는 한반도 평화 는 물론 아시아 역사발전 과정의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1)

 1) 한반도평화포럼 지음, 󰡔통일은 과정이다󰡕 (서해문집, 2015), 64.
해월 최시형의 공경과 살림의 평화사상
하지만 지금과 같이 신냉전체제로 재편되는 국제관계 속에서 분단체 제를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 이를 위해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관계의 역학구도를 정확하게 이해한 바탕 위에서 고도의 전략과 깊은 지혜가 요구된다. 이러한 전략 과 지혜는 단지 현실정치에 입각한 정치사회학적 접근만으로는 안 되며, 역사적 경험에서 지혜를 얻고, 종교적·영성적 통찰에서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근본적으로 탐색하는 인문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 작업의 일환으로 19세기 서세동점의 격변기에 탄생한 동학의 역 사와 사상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19세 기 조선의 상황도 지금과 별반 다르진 않았고, 특히 동학은 서양제국주 의의 침략에 대응해서 보국안민(輔國安民)의 우리 학문으로 출발했기 때 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동학의 평화사상, 그 중에서도 해월 최시형을 중 심으로 동학의 사상 안에 깃들어 있는 평화의 사유를 살펴보고, 그것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Ⅱ. 보국안민의 우리학문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1824~1864)는 애초에 구도 동기가 보국안민 (輔國安民)이었다. 당시는 오랜 세도정치의 폐해 속에서 중앙정부의 무 능과 지방수령들의 학정으로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져있었다. 게다가 서양 제국들의 아시아 침략이 노골화되면서 서양의 침략에 대한 위기감 이 팽배하던 때였다. 그래서 수운은 우리나라는 악질이 세상에 가득 차 서 백성들이 하시라도 편안할 때가 없으니 이 또한 상해의 운수요, 서양 은 싸우면 이기고 치면 빼앗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천하가 다 멸 망하면 또한 순망지탄이 없지 않을 것이라. 보국안민의 계책이 장차 어 디서 나올 것인가2)라고 탄식하였다.
8❙ 통일과 평화(92·2017)
수운은 보국안민의 계책을 찾기 위해 10년을 주유천하하였다. 한 때는
직접 칼을 들고 서양의 침략에 대비하려는 생각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수운은 검무를 추기도 하였고, ㅇ를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도 하였다. 하 지만 정리된 동학의 가르침에 따르면 더 이상 칼로 방비하는 방법은 나 오지 않는다. 대신 주문과 영부라는 다소 신비적인 처방을 보국안민의 대책으로 내놓는다. 이는 수운의 문제의식과 관련이 있다. 수운은 당시 의 위기의 원인을 외부에만 돌리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종교창시자들처 럼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제의 원인을 마음에서 찾았다. 수운은 옛 사람들은 하늘을 공경하고 하늘의 이치에 따라 살았는데 지금 사람들은 더 이상 하늘을 공경하지 않고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심(各自爲心)에 빠 졌다고 보았다.3) 하늘과 단절되어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을 위기의 근 본원인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각자위심이 탐욕을 낳고 교만과 사 치를 낳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착취와 억압, 차별과 폭력으로 나 타났다는 것이다. 제국주의적 침략이나 세도가의 권세나 수령들의 폭정 이나 그 근본원인에서는 마찬가지라고 본 것이다.
따라서 수운이 경신년(1860) 4월에 하늘님을 만난 감격과 더불어서 얻 은 해답은 직접적으로 서양 제국에 대한 군사적 대비라든지 굶주리는 백 성들의 배를 부르게 하는 그러한 차원의 것은 아니었다. 수운이 얻은 답 은 보다 근본적 차원에서 하늘과 유리되어 황폐해진 마음을 생명의 근원 적 샘에 다시 잇고 치유함으로써 내면의 초월적 차원을 회복하는 그런 차원의 것이었다. 따라서 자기의 마음에 깃든 하늘을 먼저 발견하라는 것이 수운의 핵심 가르침이었고, 이는 나중에 시천주(侍天主)라는 하나 의 철학적 명제로 정립되었다. 여기서 주문과 영부는 이러한 이기심을 하늘의 마음으로 회복시키는 수련법으로서 주어진 것이었다.
2) 최제우, “포덕문,” 󰡔동경대전󰡕 (최제우와 최시형의 글 인용은 다음을 저본으로 한다), 천도교중앙총부 편, 󰡔천도교경전󰡕 (2006), 21.
3) 위의 글, 17.
해월 최시형의 공경과 살림의 평화사상

수운은 이러한 수련의 원리를 수심정기(守心正氣)’4)라는 용어로 표현 하였다. 수심정기는 내 안의 하늘 마음을 회복하여 그 마음을 오롯이 지 켜내고, 나의 기운을 하늘 기운과 합치시킴으로써 몸을 바르게 하는 동 학의 공부법이다. 이처럼 수심정기가 되면 저절로 마음과 기운이 봄날의 기운처럼 화평해지는 것을 심화기화(心和氣和)’5)라고 하였다. 말 그대로 마음과 기운이 온화해져서 깊이 평화가 깃든 상태를 말한다.
한편, 수운은 당시의 시대를 다시개벽의 시대라고 보았다. 개벽은 하 늘과 땅이 처음 열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수운은 개벽후 오만년에 노이 무공 하다가서 너를 만나 성공하니라고 하였고십이제국 괴질 운수 다 시개벽 아닐런가6)라고 하여 5만 년 전 하늘과 땅이 열려 인간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그와 같이 문명적 차원의 커다란 전환이 다시 한 번 일어 난다고 보았다. 신일철은 수운의 개벽사상을 시운이 다한 왕조사회의 멸망을 예언하고, 서민들이 군자가 되어 새로 건설할 군자공동체로서의 지상천국을 대망한, ‘왕조해체기에 나타난 혁명적 변혁사상’”이라고 평가 하였다.7) 수운의 개벽사상은 내세가 아닌 현세에서 인간의 절대평등과 평화공존을 염원한 현세적 유토피아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수운은 불연기연이라는 새로운 인식론을 통해 갈등과 분쟁 해소의 방법론을 내놓기도 하였다. 불연기연은 아니다·그렇다의 역설의 논리이며, 서로 상반되고 대립된 것을 일치시키는 반대일치의 논리이다.8) 수운은 불연기연의 논리를 통해, 드러난 차원의 이면에는 숨겨진 질서가 있어서 겉으로는 모순, 반대되는 현상도 근원에서는 통합 되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분쟁을 줄이고 다양한 생각들이 평화롭게 공 존할 수 있는 방법론을 내놓았다.
이처럼 수운의 사상은 직접적으로 평화를 논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시 천주의 사상이나 수심정기의 수련법다시개벽의 역사관그리고 불연기 연의 논리는 모든 존재들이 그 자체로 거룩하며근원적으로는 하나의 하늘 기운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면서이 지상에서 평화 롭게 공존하는 삶의 방식을 추구한 평화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4) 위의 글, 51
5) 최제우, “제서,” 󰡔동경대전󰡕, 104
6) 최제우, “용담가,” 󰡔용담유사󰡕, 171; 몽중노소문답가”, 184.
7) 신일철, 󰡔동학사상의 이해󰡕 (사회비평사, 1995), 61.
8) 이돈화, 󰡔동학지인생관󰡕 (천도교중앙총부, 1974), 19.


Ⅲ. 해월의 생애와 문제의식

1. 해월의 생애

수운의 뒤를 이은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 1824~1898)은 평민 출신으 로서 수운의 가르침을 민중의 삶 속에서 구현하며 동학을 평민의 철학이 자 민중의 종교로, 또한 생명과 평화의 사상으로 정립했다. 그런가 하면 민중의 고난으로 응축된 분노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1890년 대의 상황 속에서 보국안민과 척양척왜를 정면에 내걸고 민중혁명의 깃 발을 올리기도 하였다. 
해월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경상(慶翔)이었다. 아버지는 종
(宗秀)이며, 어머니는 월성 배씨(月城裴氏)이다. 5세 때 어머니를, 12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남의 집 머슴살이도 하고, 제지소에서 일하기도 하 였다. 19세에 밀양 손씨(密陽孫氏)와 결혼한 뒤 처가가 있는 흥해에서 살 다가, 28세 때 경주 승광면 마복동(현 포항 신광면)으로 이사했다. 한때 마을의 집강(執綱) 일을 맡아 처리하기도 하였다. 33세에 검곡(劍谷)으로 이사했다.
해월이 검곡으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경주 용담에 현인이 났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서 수운의 가르침을 받았다. 18637월 북도중주인 (北道中主人)으로 임명되었고, 814일 수운으로부터 도통(道統)을 전수 받았다. 그해 12월 수운이 체포되자 멀리 도망가라는 수운의 언지를 받 고 태백산, 평해 등지에서 도피생활을 했다. 18643월 수운이 처형되자 다음해 1월 평해에서 울진으로 거주를 옮겨 수운의 부인과 아들을 보살 폈다. 같은 해 6월 영양으로 이사한 후 수도에 힘써 1년에 4차례씩 49일 기도를 하였다. 
186610월 수운의 탄신일에 모여든 교도들과 함께 계를 조직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1년에 2차례의 모임을 통해 흩어진 교도들을 재결속시키 고 신앙을 다져나갔다. 1871  영해에서 이필제(李弼濟)와 함께 교조신 원운동에 참가했다가 또 다시 큰 희생을 치렀다. 1875년 도()는 용시용 활(用時用活)하는 데 있으니 때에 따라 나아가야 한다고 하여 이름을 시 형(時亨)으로 바꾸었다.
1878년 접소(接所)를 열고 교도들에게 접제(接制)의 통문(通文)을 돌려 수운의 뜻에 따라 도를 펼 것을 알렸다. 18805월 인제군 김현수(金顯洙)의 집에 경전간행소를 세우고 󰡔동경대전󰡕을 간행했다. 1881년에는 단 양 샘골 여규덕(呂圭德)의 집에 경전간행소를 마련하여 󰡔용담유사󰡕를 간 행했다. 1884년 육임제(六任制)를 정하여 교단의 체계를 정비했으며 이 후 교세를 충청도와 전라도에까지 확장했다.9)
 9) 해월의 생애는 다음을 참고함. 표영삼, 󰡔동학 2 - 해월의 고난 역정󰡕 (서울: 통 나무, 2005).

1892년 7월 호남의 접주 서인주(徐仁周서병학(徐丙鶴)이 찾아와 교조신원운동을 펼 것을 주장하였다. 해월은 처음에 반대했으나 이들이 독 자적으로 충청도관찰사에게 소장을 내고, 많은 교도들도 교조신원운동 을 주장하자 11월 삼례역(參禮驛)에 도인들을 결집시켰다. 12월에는 정 부에 상소문을 올려 수운의 억울한 죽음을 신원해 줄 것과 동학에 대한 탄압을 중지할 것을 건의했으나 회신이 없자 이듬해 2월 서울로 상경하 여 광화문 앞에서 복합상소를 올리도록 했다. 이후 탄압이 더 심해지자 그해 3월 약 3만여 명의 도인들을 보은에 집결 시켜 교조신원과 척왜양 창의(斥倭洋倡義)를 내세우면서 약 20일간 민회를 열었다.
18941월 전봉준(全琫準)이 주도한 고부봉기 소식을 접하고이 또한 시운이니 금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도부와 상의 없이 이루어 진 부분에 대해서, 또한 시기적으로 이른 거사라는 측면에서 유감을 표 했다. 하지만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이 320일경 전면 기포하고, 그 에 호응하여 여러 지방에서 농민군을 조직하여 봉기하자 해월은 4월 초 에 통문을 내려 도인들을 청산에 소집했다. 해월은 이 과정에서 급진적 인 혁명보다는 온건한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여 「금석지전」이란 통문 을 발표하여 일체의 탈취와 폭력행위 등을 금지하도록 하였다. 해월은 당시 수령들의 학정과 특히 동학도들에 대한 불법적인 탄압에 대해 마땅 히 일어나 저항해야 한다고 보았지만 어디까지나 폭력적인 방식으로 해 결하기를 원치 않았다.10)
상황이 급변하여 서울의 경군과 일본군이 본격적으로 농민군들을 토벌하기 시작하자 해월은 마침내 918일 총기포령을 내려 한양을 향해 진격하였다. 그러나 11[1]일경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통한의 패배를 당하였다. 이후 1224일 충주 외서촌 되자니에서 마지막 전투를 치른이후 강원도 등으로 피신생활을 하면서 교세를 수습하고자 힘을 기울였. 189712월 손병희(孫秉熙)에게 도통을 전수하고, 18983월 원주 송골에서 체포되어 그해 6월 처형되었다

2. 시대인식과 문제의식
해월은 당시 시대를 선천과 후천의 운수가 갈아드는 개벽의 운수로 보 았다. 이는 앞에서 살핀 수운의 시운론적 역사관을 계승한 것이다. 그러 므로 당시를 큰 전환의 시기로 인식하고, 이러한 시기에는 모든 것이 편 안하지 못하다고 보았다.
이 세상의 운수는 개벽의 운수라. 천지도 편안치 못하고, 산천초목도 편안 치 못하고, 강물의 고기도 편안치 못하고, 나는 새기는 짐승도 다 편안치 못 하리니, 유독 사람만이 따스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으며 편안하게 도를 구하 겠는가. 선천과 후천의 운이 서로 엇갈리어 이치와 기운이 서로 싸우는지라, 만물이 다 싸우니 어찌 사람의 싸움이 없겠는가.11)
해월은 당시의 시대를 불안이라는 심리적 기조로 포착하는 한편,
러한 시기에는 필연적으로 인간들의 싸움이 없을 수 없다고 인식한다. 즉 낡은 정치는 물러갔지만 새 정치가 아직 펴지 못하여 큰 난리가 예상 된다고 하였다.
선천은 물질개벽이요 후천은 인심개벽이니 장래 물질발명이 그 극에 달하
고 여러가지 하는 일이 전례없이 발달을 이룰 것이니, 이때에 있어서 도심은 더욱 쇠약하고 인심은 더욱 위태할 것이며 더구나 인심을 인도하는 선천도 덕이 때에 순응치 못할지라.12)
11)                    개벽운수,” 󰡔해월신사법설󰡕, 330.
하지만 이 전환기를 거쳐 새 하늘 새 땅에 사람과 만물이 또한 새로 워질 것이라고 하였다 당시를 이렇게 큰 전환기로 생각하는 그는 이 난 리를 거쳐 새로운 도()와 덕()이 나와 시대를 선도하고 새로운 문명 이 건설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 새로운 도와 덕은 당연히 동학의 도와 덕 을 의미하였다. 그의 문제의식은 스승이 내놓은 도를 깨달아 그것을 천 하에 펴는 일(布德天下)이었다. 다만 그는 순서에서 우리나라 운수를 먼 저 좋게 하는 보국안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널리 창 생을 건지는 광제창생을 함으로써 후천 오만년 내려갈 지상낙원을 만드 는 일이 그의 사명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단지 왕정을 끝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그는 보다 긴 호흡으로 역사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 러나 그의 역사관은 구체적인 방법론이 결여되었다는 측면에서 현세적 유토피아 사상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13)
이러한 유토피아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해월은 스승의 가르침을 평민 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민중의 삶 속으로 자리 잡게 하였다. 해월은 스승 의 시천주가르침을 사람을 하늘님같이 섬기라사인여천(事人如天)’ 의 가르침으로 재해석했다. 또한 당시 핍박받던 민중, 특히 여성과 어린 이까지도 하늘님으로 공경하라고 가르쳤다. 또한 천지를 부모와 같이 섬 겨야 한다는 천지부모의 사유를 내놓았으며, 자연만물까지도 공경하는 경물(敬物)을 외침으로써 동학을 생명사상으로 정립했다.

해월은 공경을 일상에서 생활화해 동학적 인간상을 정립하고 동학적인격의 전형을 몸소 보여주었다. 이규성은 해월 최시형은 최제우의 제 자가 되어 무극대도와 만물에 대한 종교적 경외심을 마음 속 깊이 경험 했다. 최제우는 우주와 인간의 공격적 관계, 인간과 인간의 원한 관계라는 모든 부정적 관계를 조화로 이끄는 화해와 평화의 덕을 한몸에 집약 하고 있었다.”14)라고 평가했다동학을 비로소 참다운 민중의 종교로 재 탄생시킨 것은 해월의 공이며 그의 사상은 계급해방을 넘어 남녀해방어린이해방을 촉구하였으며경물의 생태적 해방에까지 이르러 모든 생 명들이 하늘로 존중받는 평화공존의 세상을 꿈꾸었다고 할 수 있다.
12)     최시형, “기타,” 󰡔해월신사법설󰡕, 417.
13)     신일철, 위의 글, 67.

Ⅳ. 해월의 평화와 개벽의 길

1. 도와 덕이 사람 살리는 기틀이다

해월이 직접 평화를 언급하는 구절은 두 구절이 있다. 그 중에 하나는
다음과 같다.
남계천이 묻기를 「세 가지 재앙은 어떻게 면합니까.」 신사 대답하시기를 「삼재 가운데 전란을 피하는 일이 가장 쉬우니, 적병 이 습격하여 와서 인명을 살해할 때에 의기 남아로 하여금 적군의 앞에 나아 가 그의 원하는 바를 들어주고 평화를 공작하면 가히 면할 것이요, 흉년은 처음 평년부터 절용하여 칠년간의 양식을 저장하여 둘 것이니라. 천리가 아 직까지는 칠년 흉년은 없었느니라. 가히 흉년은 면할 것이니, 이것은 사람 사람이 단결하고 협력하면 가능할 것이요, 질병은 사람이 다 수심정기 하여 마음이 화하고 기운이 화하면 능히 면하리라.15)
이 구절은 남계천이 삼재(三災)를 면하는 방법을 묻는 대답에서 나온
14)                                       이규성, 󰡔최시형의 철학󰡕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11), 10.
15)                                       삼재 「해월신사법설󰡕, 385.
. 삼재는 가난(흉년)과 질병과 전쟁으로 백성들을 가장 괴롭히는 재앙 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전쟁을 피하는 방법은 의기남아로 하여금 적진에 가서 화의(和議)를 청하는 것으로 들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다소 순진한 답변으로 볼 수 있지만 요점은 어떤 경우에도 전쟁으로 맞부딪치 기 보다는 외교적인 담판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 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평화를 언급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손병희 묻기를 「전란을 당하면 각국이 서로 병기를 가지고 승부를 결할 것이니, 이 때를 당하여 우리 도인은 두 나라가 서로 싸우는 사이에서 어떤 좋은 생각으로 이길 수 있습니까.
신사 대답하시기를 「전쟁은 다만 병기만 가지고 이기는 것은 없느니라. 병전을 능가하는 것은 책전이니, 계책이 지극히 큰 것이니라. 서양의 무기는 세상 사람이 견주어 대적할 자 없다고 하나 무기는 사람 죽이는 기계를 말 하는 것이요, 도와 덕은 사람 살리는 기틀을 말하는 것이니, 그대들은 이 때 를 당하여 수도를 지극한 정성으로 함이 옳으니라. 큰 전쟁 뒤에는 반드시 큰 평화가 있는 것이니, 전쟁이란 평화의 근본이니라. 사상은 동방에 있고 기계는 서방에 있느니라. 구름이 서산에 걷히면 이튿날이 맑고 밝으니라. 사람은 한 사람이라도 썩었다고 버릴 것이 없나니, 한 사람을 한번 버리면 큰일에 해로우니라. 일을 하는데 있어 사람은 다 특별한 기술과 전문적 능 력이 있으니, 적재적소를 가려 정하면 공을 이루지 못할 것이 없느니라.
(오도지운)
이 구절에서는 부득이하게 전란을 당하게 되었을 경우 어떻게 처신해 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그런데 해월은 이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군사적 인 대결보다는 책전을 통해 해결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사 람을 살리는 기틀은 도와 덕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때일수록 더욱 수도에 힘쓸 것을 당부하고 있다. 큰 전쟁 뒤의 큰 평화라는 것은 그가 지금을 큰 혼란기로 보고 있으며 이후 반드시 좋은 세상이 온다는 개벽 적 역사관에 입각해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이 구절의 마지막 에는 인사(人事)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어 다소 의아스러운데 곰곰이 살 펴보면 결국 사람을 가려서 시비를 하고 분당을 함으로써 생기는 갈등과 분란을 경계하는 말로 볼 수 있다. 전란과 같은 큰일을 당했을 때, 또한 전란 이후 새로운 기반을 구축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일수록 탕평인사와 통합의 리더쉽이 요구된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구절은 이후 손병 희의 「삼전론」(1904)으로 정립된다.
위 구절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도와 덕이 사람 살리는 기틀이다.”라 는 구절이다. 도와 덕이 평화의 기틀이라는 것이다. 동학의 도는 천도(
)를 말한다. 즉 우주의 운행원리이자 생명의 원리이다. 수운은 이를 무위이화(無爲而化)’라고 풀이한 바 있다. 해월은 이 무위이화를 사람이 만물과 더불어 천도와 천리에 순응하는 우주만유의 참된 모습16)이라고 풀이하였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은 물론 만물과 더불어 공존할 수 있 는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말한다. 그런데 서양의 제국주의 문명은 천도 와 천리를 어기고 생명을 죽이는 폭력적 길로 가고 있다. 해월은 이를 바 로 잡아서 도와 덕이라고 하는 가치를 기준으로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이룩하는 길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위 두 구절을 보면 일단 해월은 평화라는 용어를 전쟁과 대비되는 개 념으로 쓰고 있다. 즉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일차적으로 평화로 보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평화의 최소 조건은 전쟁이 없는 상태이다. 이는 다음 구 절에서도 확인된다.   
묻기를 「어느 때에 현도가 되겠습니까」 신사 대답하시기를 「산이 다 검게 변하고 길에 다 비단을 펼 때요, 만국과
교역할 때이니라.
16)                       기타 󰡔해월신사법설󰡕, 421.
묻기를 「어느 때에 이같이 되겠습니까」 신사 대답하시기를 「때는 그 때가 있으니 마음을 급히 하지말라. 기다리
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오리니, 만국 병마가 우리나라 땅에 왔다가 후퇴하는 때이니라.
언제 도가 드러나 좋은 세상이 오겠냐는 제자의 질문에 해월은 산이 다 검게 변하고 길에 비단을 펼 때요, 만국과 교역할 때라고 답한다. 또 언제 그렇게 되겠냐는 질문에만국병마가 우리나라 땅에 왔다가 후퇴하 는 때라고 답한다. 결국 좋은 세상은 모든 군대가 물러가서 전쟁이 종료 되고 평화를 되찾는 그때라는 답이다. 한반도에 외국 군대가 사라지는 그날 평화가 올 것이라는 말이다

2. 마음의 평화, 일상의 평화
평화의 최소조건으로서 전쟁이 없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평화가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 또는 폭력이 없는 상태 정도로 규정한다면 너무 소극적인 정의가 될 것이다.[2]) 진정한 평화는 몸과 마 음에서 흘러넘쳐서 일상에서 기쁨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마음의 평화, 일상의 평화는 정치적 평화 이후에 주어지는 보다 적극 적 평화이다. 하지만 역으로 마음의 평화가 세상의 평화를 위한 필요조 건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마음에 평화가 깃들어야 누구를 만나든지 평화 적인 말과 행동이 가능할 것이며, 그런 평화의 방법론으로만 세상에 참 된 평화를 가져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몸과 마음의 평화를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를 수운은 심화
기화(心和氣和)’라는 말로 표현했다. 해월 역시심화기화가 되어야 참된 평화가 깃들고, 몸과 마음이 봄처럼 화해져야 세상에 봄이 올 것이라고 하였다.
南辰圓滿脫劫灰  남쪽별이 둥글게 차고 겁회를 벗어나니 東海深深萬里淸  동해가 깊고 깊어 만리에 맑았어라. 千山萬峰一柱綠  천산 만봉은 한 기둥처럼 푸르고 千江萬水一河淸  천강 만수는 한 하수처럼 맑으니라.
心和氣和一身和  마음이 화하고 기운이 화하니 온 몸이 화하고 春回花開萬年春  봄이 돌아오고 꽃이 피니 만년의 봄이로다. 靑天白日正氣心  청천백일에 기운과 마음을 바르게 하니 四海朋友都一身  사해의 벗과 벗이 모두 한 몸이로다.18)
이 시는 1871년 태백산에서 49일 공부를 마치고 읊은 일종의 오도송이 다. 평민으로 태어나 어려운 시절을 보냈고, 글공부를 제대로 하지도 못 하고 쫓기는 몸이 되었지만, 해월은 늘 그 와중에서도 수도를 게을리 하 지 않았고, 마침내 마음이 활짝 열렸다. 이 때 열린 마음의 세계는 봄의 기운으로 가득한 평화의 세계였다. 이 시는 마음이 화해지고 기운이 화 해지니 온 몸이 화해진다고 했고, 심화기화가 되어야 세상의 봄이 오고 문명의 꽃이 피어서 만년을 내려갈 평화가 올 수 있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사해의 모든 벗들이 한몸처럼 어우러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심화기화는 수심정기 공부를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지극히 고
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이다. 마음과 기운이 하늘의 기운(至氣)과 잘 조응된 상태이며, 내 몸과 마음의 테두리가 해체되어 하늘의 지극한 기운과 합치된 상태이다. 해월은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사람의 성령은 하늘의 일월과 같으니, 해가 중천에 이르면 만국이 자연히 밝고, 달이 중
18)                      강시 󰡔해월신사법설󰡕, 406~407.
천에 이르면 천강이 자연히 빛나고, 성품이 중심에 이르면 백체가 자연 히 편안하고, 영기가 중심에 이르면 만사가 자연히 신통한 것이니라.”19) 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 해월은 성인의 절개는 겨울 산마루에 외로운 소나무와 같아서 홀로 봄빛을 띤다”(聖節如冬嶺孤松 獨帶春光)고 하였
. 마음의 깊은 평화가 흘러넘치면 몸에 온화한 봄기운으로 드러나고 그 힘이 주변을 밝게 하고 생명을 살리는 원천이 된다.   
해월의 평화사상에서 특징적인 것은 부화부순의 강조라고 할 수 있
. 부부가 화순하지 못하면 그만큼 일상의 평화가 무너지는 것도 없다. 그래서 해월은 부화부순을 도의 으뜸 종지라고 하였고,“남녀가 화합치 못하면 천지가 막히고, 남녀가 화합하면 천지가 크게 화하리니20)라고 하였다. 그리고 부부화순을 위해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 절을 하라고 하 는 등 남자들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했다.
또한 일상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사람을 대하고 물건을 접함에 반드시 나쁜 것은 가려주고 잘하는 것은 칭
찬하는 것으로 주를 삼으라. 저 사람이 포악으로써 나를 대하면 나는 어질고 용서하는 마음으로써 대하고, 저 사람이 교활하고 교사하게 말을 꾸미거든 나는 정직하게 순히 받아들이면 자연히 돌아와 화하리라.21)
 
최근에 갈등과 분쟁을 줄이기 위한 비폭력대화22)가 주목받고 있기도 한데, 해월 역시 사람을 대할 때 잘못을 그대로 말하지 말고, 늘 칭찬을 주로하며 온화하게 대할 것을 강조한다. 해월은 또내 핏덩어리만이 아
19)     수심정기,” 󰡔해월신사법설󰡕, 297.
20)     부화부순,” 󰡔해월신사법설󰡕, 339~340.
21)     대인접물,” 󰡔해월신사법설󰡕, 282~283.
22)     마셜 로젠버그, 캐서린 한 옮김, (󰡔비폭력대화󰡕, 한국NVC센터. 2011) 참조.

니어니 어찌 시비하는 마음이 없으리오마는 만일 혈기를 내면 도를 상하 므로 내 이를 하지 아니하노라.”라고 하여 시비를 하기보단 순히 받아들 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해월 도 이 때를 당해 도력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기 위 해서라도 먼저 심화기화가 되어야 한다. 몸과 마음을 적신 평화의 기운 은 주변에 흘러넘쳐서 일상의 평화를 가져오게 할 것이다. 단순히 비폭 력을 넘어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가져오게 할 것이다.

3. 사해동포주의와 개벽세상

앞 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해월의 사상은 만유와의 우주적 연대성에 의 거한 화해와 공경의 사상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해월의 동학사상의 특징 은 평민의 사상이라는 점에 있으며, 모든 생명에 대한 공경과 살림을 중 시하는 생명사상이자 평화사상이었다. 이는 구체적으로 사인여천(事人如天)과 삼경(三敬)의 사상으로 표현되었으며, ‘살림의 실천으로 드러났
. 수운이 시천(侍天), 모심을 강조했다면, 해월은 양천(養天), ‘살림을 강조했다. 해월은 모심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라도 양천주(養天主)의 기 름, 살림이 필요하다고 하였다.[3]) 그의 모든 실천은 한마디로 말하면 살 림이라고 할 수 있다. 살림은 죽임에 반대되는 의미에서 살림이며, “인 간이 자기와 이웃과 자연 안에 내재해 있는 우주생명을 키움으로써 자 아공동체생태계의 공진화를 도모하는[4]) 살림이다.
이 살림은 때로는 죽임의 폭력, 기존 봉건 세력과 제국주의에 맞서는 강력한 저항의 원리가 되기도 한다. 동학농민혁명도 그러한 살림운동의 차원에서 평가할 수 있다.
갑오 일로 말하면 인사로 된 것이 아니요 천명으로 된 일이니, 사람을 원
망하고 하늘을 원망하나 이후부터는 하늘이 귀화하는 것을 보이어 원성이 없어지고 도리어 찬성하리라. 갑오년과 같은 때가 되어 갑오년과 같은 일을 하면, 우리나라 일이 이로 말미암아 빛나게 되어 세계 인민의 정신을 불러 일으킬 것이니라. 이 뒤에 또 갑오년과 비슷한 일이 있으리니 외국 병마가 우리 강토 안에 몰려들어 싸우고 빼앗고 하리라. 이 때를 당하여 잘 처변하 면 현도가 쉬우나, 만일 잘 처변치 못하면 도리어 근심을 만나리라.25)
해월은 동학농민혁명을 단순한 반봉건, 반제국의 민중 혁명일뿐 아니 라 새로운 문명을 외친 개벽운동의 차원에서 바라본다. 동학농민혁명이 야말로 조선말기 사회의 대내외적 모순에 대한 민()의 생존적 울부짖 음이었으며 불의하고 무능한 권력에 대한 총체적인 저항이었으며 외세 에 굴종하는 정부와 벼슬아치에 대해 목숨으로 민족적 자존을 지킨 항거 였다. 또한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 현실의 모순과 불평등을 개혁하 자는 자발적 정치운동이자 모든 사람들이 하늘님으로 존중받는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한 개벽운동이었다.26)
해월의 평화 사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인오동포(人吾同胞), 물오동
(物吾同胞)의 사해동포주의이다. 해월은 경천(敬天)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면서, 경천이란 공중의 하늘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공경하는 것이라 하였다. 하늘을 공경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나의 동포임 과 나아가 모든 만물이 나의 동포라는 전체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하였다.
25)     최시형, “오도지운,” 󰡔해월신사법설󰡕, 391.
26)     김용휘, “동학의 모심의 영성과 사회복지,” 󰡔영성과 사회복지󰡕 (4권 제1,
2017), 10.
하늘을 공경함은 결단코 빈 공중을 향하여 상제를 공경한다는 것이 아니
, 내 마음을 공경함이 곧 하늘을 공경하는 도를 바르게 아는 길이니, 「내 마음을 공경치 않는 것이 곧 천지를 공경치 않는 것이라」함은 이를 이름이었 다. 사람은 하늘을 공경함으로써 자기의 영원한 생명을 알게 될 것이요, 하 늘을 공경함으로써 모든 사람과 만물이 다 나의 동포라는 전체의 진리를 깨 달을 것이요, 하늘을 공경함으로써 남을 위하여 희생하는 마음과 세상을 위 하여 의무를 다할 마음이 생길 수 있나니, 그러므로 하늘을 공경함은 모든 진리의 중심이 되는 부분을 움켜잡는 것이니라.
위의 구절을 보면 해월에게 하늘은 공중의 하늘이나 인격적 절대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해월에게 하늘은 마음인 동시에 천지이다. 이는 수 운의 내유신령과 외유기화를 좀 더 세속화하여 소박하게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해월의 경천은 내 마음을 공경하는 것임과 동시에 천 지를 공경하는 것이다. 천지를 나의 생명의 근원으로서 부모처럼 공경한 다는 것이다. 천지가 나의 부모라면 그에서 나온 모든 사람들, 모든 만물 은 나의 형제자매가 된다. 그래서 인오동포, 물오동포라는 사유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천지부모의 사유는 생명사상이면서도 사 해동포주의적인 평화사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해동포주의적 이상을 수운은 억조창생 많은사람 동귀일체
하는줄을 사십평생 알았더냐[5])라고 하면서 동귀일체(同歸一體)’라는 말 로 표현하였다. 동귀일체는 모든 사람들이 한몸처럼 하나가 된다는 의미 이다. 모든 사람들이 하늘마음을 회복해서 한마음 한몸처럼 어우러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해월이 꿈꾸는 평화의 최종적 이상이라고 할 수 있
. 그래서 해월은한 사람이 화해짐에 한 집안이 화해지고, 한 집안이 화해짐에 한 나라가 화해지고, 한 나라가 화해짐에 천하가 같이 화하리 니, 비내리듯 하는 것을 누가 능히 막으리오.”28)라고 하였다.
해월의 평화사상은 심화기화의 마음의 평화에 기반한 일상의 평화,
그리고공경과 살림을 통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평화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후에 3·1운동으로 1920년대 어린이운동을 비롯한 문화운 동, 그리고 해방공간에서 통일운동으로 이어졌다. 3·1운동은 독립선언 서에서도 표방했듯이 비폭력 평화운동이자 도의적 신문명을 열망하는 개벽운동이었다. 1920년대 문화운동과 해방공간에서의 통일운동 역시 해월의 살림 사상과 천도교의 인내천에 바탕하여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를 공히 넘어서고자 했던 신문명운동의 일환이었다. 해월의 평화는 동귀 일체의 한마음으로 모두가 천도의 생명원리를 존중하는 개벽세상을 최 종적으로 열망하고 있다고 하겠다.

Ⅴ. 현대적 의의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해월의 평화사상은 현세적 유토피아에 입각하 고 있다. 특히 제국주의의 본질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지는 못 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해월의 사상은 종교사상이기에 보다 근본적 인 차원에서 평화의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해월은 어떤 경우에도 전쟁 을 치루기보다는 외교적인 담판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 장을 표명했으며, 부득이한 경우 전쟁이 일어나도 직접적인 병전보다는 책전을 통한 해결을 촉구했다. 하지만 당시를 개벽의 운수로 보는 그는 큰 전란이 한번은 올 것이라고 보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시기일수 록 수도에 더욱 힘써서 진정한 도덕 문명을 이룩해야 한다고 보았다.
28)대인접물,” 󰡔해월신사법설󰡕, 284.
그의 평화사상은 심화기화의 마음의 평화를 강조하고, 공경과 살림의 행동을 강조하는 평화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천지를 한낱 물리적 자연으로만 보지 말고 부모님처럼 섬기라고 하였고, 그렇기에 거기서 난 모든 사람과 만물이 하나의 형제자매라고 설파했다. 이러한 만유와의 우 주적 연대성에 의거한 화해와 공경, 그리고 살림의 정신이 그의 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폭력과 전쟁이 생명의 존엄성과 연대 성에 대한 자각 없이 상대방을 폄하하고 차별하고 수단화할 때 일어난다 고 볼 때 해월의 공경과 살림의 철학은 비록 관념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지 모르나 가장 근본적이고 강력한 실천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지금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의 상황에서 이러한 해월의 사상은 한가하
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교적 담판과 책전을 강조하였고, 도와 덕이 사람을 살리는 기틀이라고 한 해월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금 이라도 현실에만 긴박되지 말고, 생명과 평화라고 하는 보편적 가치를 무기로 삼아 보다 담대하게 외교적 담판을 통해 전쟁을 막아야 할 것이 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정부가 좀 더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대화와 화 해의 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지금은 현실 논리보다 담대한 이상을 가슴 에 품고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큰 전략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 서도 해월이 피력했던 수도를 통한 깊은 마음의 생태학, 깊은 마음의 평 화학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접수: 2017 10 31 / 심사: 2017 11 1 / 게재확정: 2017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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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eace Thought of Honor and Salim in Haewol Choi Si-hyeong

Kim, Yong-hwi (Hanyang University)
Abstract
This paper deals with the ideology of the second master of Donghak, Hoewol Choi Si-hyeong in the Korean thoughts of peace. The peace ideology of Haewol is, in a word, a peace thought of honor and salim. He told us not to see the heaven and earth as a physical nature, but to honor him like his parents, and he preached that all people and all things are brothers and sisters. The spirit of reconciliation, reverence, and ‘salim’ based on universal solidarity with all things is the core of his thought.
His philosophy of peace, on the fundamental level, shows the power of deep peace of mind, the peace of home, the peace in everyday life, and the ideals of global citizenship and global family peace. While most of the violence and war are caused by discrimination and instrumentalization of the opponent without being aware of the dignity and solidarity of life, the ideal of honor and ‘salim’ of Haewol, the ideals of global citizenship, may seem to be ideological, but they can lead to the most fundamental and powerful practice.
Key word : Hoewol Choi Si-hyeong, peace, thought of peace, the peace of mind, salim, the ideals of global citizenship, new civilization.
김용휘(Kim, Yong-hwi)
현재 한양대 철학과 강사이다. 동학에 기반한 생명 평화 운동단체인 천도교한울연대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생명평화위원장, ‘방정환한울학 교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학문으로서의 동학󰡕(책세상, 2006), 󰡔최제우 의 철학󰡕(이화여대 출판부, 2012) 등이 있다.


[1] ) 박맹수, “동학농민혁명기 해월 최시형의 활동,” 󰡔개벽의 꿈, 동아시아를 깨우다󰡕 (서울: 모시는사람들, 2011), 281~285.
[2] ) 이찬수, 󰡔평화와 평화들󰡕 (모시는사람들, 2016), 32~41.
[3] ) 최시형, “양천주,” 󰡔해월신사법설󰡕, 367.
[4] ) 모심과살림연구소,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 - 한살림선언 다시 읽
)󰡕 (서울: 도서출판 한살림, 2010), 76.
[5] )교훈가,” 󰡔용담유사󰡕,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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