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6

구연철이라는 인물은 정말 군함도에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실재한 인물이 자신의 체험담이나 고생한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우리도 당연히 경청해야 합니다. 하지만, 구연철이라는 인물은 정말 군함도에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사실얘기라면 우리도 반성해야겠지만, 없는 얘기를 하니까 우리가 지금 이렇게 모여서 논의하는 겁니다.”
어제 포스팅에 댓글로 올려 두었던 군함도주민들의 증언영상 후반에 나오는 노인의 이야기다.(영어자막 있음)
최근 들어 일본인들도 적극 반론을 펴고 있는데, 위안부문제에선 일본인 전 ‘위안부’체험자들—현장에 함께 있었던 이들—이 전혀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것(수기등은 남아있다)과 대조적이다.
이렇게 또다른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고 나섰다는 건, 위안부문제에서 겪은 일을 또다시 겪지 않겠다는 의지표명으로 보인다.
물론 기억은 불명확할 수 있으니 반론도 제기가능할 것이다. 징용문제에 관여해 오신 전문가/법률가 분들이, 어떤 형식으로든 응답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반론이든, 재조사 후 시정이든.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사과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이 이상의 사태악화를 막을 수 있고, 문제 해결도 가능해진다. 피해자와 함께 하는 일이란 꼭 ‘똑같이’ 생각하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위안부문제에서도 초기부터 이의제기가 있었는데, 관계자들은 무시했다. 그리고 그저 ‘우익!’으로 딱지 붙여 손가락질하기에 바빴다. 
그렇게 위안부문제 ‘운동’은 성공했지만,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그런 방식의 ‘운동’과, ‘운동화한 학문’만을 모두가 무조건적으로 추수한 결과다. 
오늘의 한일관계의 연원은 실은 위안부문제에 있다.
이번만큼은 규탄과 무시가 아닌, “대화”가 시작되기를 . 피해국에도 품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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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elderly man, who allegedly was living in Gunkanjima during World War II, delivered a speech at the August 2017 convention of th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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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경 
기주한인(돈벌이 노동자로 주로 전시체제기 이전에 도일자)과 이입노무자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주한인과 이입노무자는 노동실태나 생활실태가 달랐습니다. 기주한인이 이입노무자를 관리하는 작업장도 있었고요. 가혹행위를 했다는 구술도 있습니다. 양자간 관계에 대해서는 다양한 구술이 있습니다. 
고 김영달 선생도 연구를 진행 중에 작고하셨지요. 기주한인의 동원에 대해서도 박사논문이 있어요. 이입노무자와 차이가 있음을 알 수있습니다.
 구연철옹은 기주한인이었고 신불산에는 자신이 기주한인으로서 이입노무자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 분이 하시마의 강제동원 생존자인 듯 왜곡되면서 기주한인과 이입노무자의 구분도 사라지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문제를 지적한 일본인도 차이를 모르고 하는 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하시마의 이입노무자가 기주한인이나 일본인과 동등한 상황에 있었다고 생각하고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하시마 강제동원 부정론자들이 대표사례로 제시한 ‘소년 광부는 없었다’도 오류이지요. 생존자인 최장섭옹은 14세에 동원되었습니다. 당시 동원 규정에 미달 연령이었지요. 14세가 소년이 아니라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는 일본인이라고 정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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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정혜경 그렇군요.전문가로서의 견해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징용은 강제동원이니 강제동원이 없다는 말은 할 수 없지요.
그런데 “이 분이 하시마의 강제동원생존자인것처럼 왜곡”된 상황을, 사태를 잘 아시는 분들이 지적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 구별을 제대로 해야 진짜 강제동원자들이 구제될 테고,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최봉태변호사같은 분이 이런 구분을 전혀 하지 않고 언론을 장악중인 것도 이런 사태를 만든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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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경 박유하 네. 군위안부의 실태도 다양한데 그 가운데 가장 열악한 상태를 모아서 표준 이미지를 만든 것 처럼. 하시마는 반대의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작업장에서도 노동실태는 달랐으므로 양상은 매우 다양했어요. 

신불산애 보면 구연철옹 집안은 이입노무자와 무관한 생활을 했습니다. 하시마는 섬이라 불가능했지만 다른 지역의 기주한인들은 틈새를 적극 활용해서 징용도피나 비협조 사례로 많았습니다. 협화회 수첩을 불법 발급하는 것은 일반적이었고요.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 보다 체제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다양한 실태를 모으고 객관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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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함도 생존자 "강제 징용자 비참한 생활 계속 알릴 것"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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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함도 생존자 "강제 징용자 비참한 생활 계속 알릴 것" | 연합뉴스
    군함도 생존자 "강제 징용자 비참한 생활 계속 알릴 것"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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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준 박유하 비디오 속 할아버지 발언이 뼈를 때리는군요.
      "하지마가 지옥이었으면 가족을 불러들였겠어요?"

      구연철 옹 부친이 섬에서 혼자 지옥생활 하는 게 억울해서 같이 고생하자고 아내와 자식을 사지로 끌어들였나 봅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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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ng Hwan Park "운동화한 학문"이라는 표현이 와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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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박성환 작년에 저를 비판한 학자들에 대한 반론책 내면 서 썼던 표현이예요.
      초기에 “강제연행”으로 생각했기에 “국가범죄””법적책임”을 강조했지만, 이후 그게 아니라는 걸 안 다음에도 어떻게든 “강제성”을 지키려고 위안소에서 자유가 없었다는 식으로(그건 군인한테 자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거나, 일반위안소는
      인신매매해온 업주가 도망치지 않도록 구속한 것인데도)내용을 바꾸면서도 그런 변화를 외부엔 공식화하지 않았죠. “운동”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 다른 학자들도 어떻게든 “강제성”발견에만 매달려 학문이 운동에 종속된 정황이 있습니다. 그런 정황을 말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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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ng Hwan Park 박유하 학문이 운동화하고, 반일팔이로 돈 버는 사이비들을 비판하기는 커녕의 이론적 배경 역할까지 해주고, 반론내는 학자는 우익으로 몰아 색깔론으로 망신주고 짓밟고...사실 제국의 위안부 사태를 지켜보며 한국 인문사회학계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회과학보다 인문학 영역에서 논쟁할 때 보면 한 쪽이 A라는 용어를 B의 의미로 사용한다고 명시해도 다른 쪽은 A라는 용어를 C로 규정한다면 그 사람이 A라는 용어를 B라는 의미로 썼다는 것을 감안하여 비판하지 않고 그냥 자기가 생각하는 그 용어의 정의인 C로 받아들이고 비난하더군요. 그러다보니 논쟁은 평행선으로 흘러가구요. 대체로 형이하학인 자연과학에서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 일이라 보면서 답답할 때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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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박성환 중요한 점을 지적해 주셨네요. 바로 거기에 일부학자들의 기만이 있어요. 위안부문제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구요. 잘못 알고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알고도 전략적으로 그렇게 사용해서 무기로 삼는 사람도 있지요. 역사학계도 여성학계도 마찬가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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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ung Koh 흥미롭네요. 일제강점기를 둘러싼 여러 주제 중 가장 재미있고 가장 보편화돼 있어서 거의 모든 증언과 해석을 덮어씌우고 있는 게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 경우에도 역시 마찬가지네요. 누가 왜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구연철이라는 개인의 거짓말과 하지마 사람들의 조직적 거짓말의 가능성. 그리고, 이 짧은 다큐멘터리조차도 너무 엉성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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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ung Cheol Ahn 싸우지 말고 진정한 대화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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