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6

홍콩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 - 언급되지 않고 지나치는 것에 대해


며칠간 페이스북을 보면서 마음이 참 착잡합니다. 
홍콩사태에 대한 전 세계의 공분 (여러 모순 때문에, 진보보수/좌우를 막론한... 링크글 한번 참고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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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각 홍콩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홍콩 시민들이 겪는 억압에 대해 공분하고 연대해야 하지만, 동시에 언급되지 않고 지나치는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곤란함을 안고 있다. 
오늘날 홍콩에서 벌어지는 억압은 결코 중국공산당 혹은 시진핑이 발명해낸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지금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것은 홍콩을 99년 간 식민 통치한 제국주의 영국에 의해 발명된 것이었고, 홍콩의 민중들은 오랫동안 이에 맞서서 저항했었다. 
주지하다시피 홍콩은 아편전쟁 이후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홍콩에 거주하던 중국인 노동자들은 많은 차별과 학대를 당했고, 선박 노동자의 경우, 영국인 선원들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백인 선원의 20%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았다.
1922년 홍콩의 선박 노동자들이 결성한 홍콩선원노조의 파업은 불과 1년 전 결성된 중국공산당의 혁명 여정과 광둥성 지역 노동운동을 촉발시킨 역사적 저항이었다. 당시 홍콩 시민들을 가혹하게 통치하고 있던 영국 식민당국은 위력적인 파업에 한수접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투쟁은 당시 광둥성 곳곳을 분할 통치하고 있던 제국주의 열강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홍콩은 아시아 금융시장의 허브이고, 관광과 쇼핑의 도시인데다, 한때는 어떤 변종된 아시아 문화의 수도 같은 곳이었지만, 면적으로는 아주 작다. 그러니 이 도시를 일반적인 다른 '국가단위'와 비교해 완전히 독립적인 체제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제대로 된 설명은 아니다. 이곳에 도입된 극도의 고도화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외양상 많은 모순을 감춘다. 그곳에 있던 무수한 빈부격차를 감추고, 억압의 역사를 감추는 효과를 낳는다. 그러니, 영국의 식민지배 시절엔 잘 살았고 민주주의였지만, 중국 반환 이후 민주주의가 후퇴되었다는 식의 서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 식민지배 시절에 민주주의의 호혜를 입고 있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에 가깝다. 적어도 그런 거짓말을 하려면 영국 본토에 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전무했다고 말할 뻔뻔함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였다고 사기칠 뻔뻔함도 있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홍콩의 끔찍한 빈부격차를 낳은 것은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와 광둥의 전통적 자본가들의 공모였지, 중국 대륙의 통치자들은 아니었다. 60~70년대 홍콩에서 벌어진 많은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런 자본주의적 억압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그 역사적 억압의 주체는 국가자본주의의 억압자로 변이한 중국공산당 엘리트들로 치환되어버렸다. 홍콩에서 '자유'를 말한다는 것은 즉 공산당에 맞서 저항한다는 의미가 되었다. 서구의 매스미디어와 지배엘리트들이 홍콩의 투쟁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심지어 남한에서 박정희를 추앙하는 자들도 홍콩 시민들의 투쟁을 지지한다고 말하고, 오늘날 홍콩의 많은 시민들은 '영국 식민지 시절의 홍콩깃발'을 흔드는 일부 시민들과도 함께 시위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홍콩 시민들의 투쟁을 지지해야 하고, 연대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에 어떤 이름이, 어떠한 모순들이 감추어져 있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면 당연히도 설명충이 되어버리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많은 걸 감춰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국내에서는 <우산혁명>이란 이름으로 공개된, 넷플릭스에서 배급하는 <조슈아 웡>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영화는 서구 다큐멘터리 작가의 시선으로 홍콩의 우산 시위를 담고 있는데, 당연히도 많은 역사적 모순을 감추고 있다. 게다가 우산혁명이 안고 있던 정치적, 사회적, 계급적 한계 역시 모른 척 한다. 
현재 중국 당국의 강경대응, 일국양제 약속이 폐기되는 것처럼 보여지는 상황은 대다수 홍콩 시민들을 불안감으로 몰아넣고 있다. 나아가 홍콩 경제가 안고 있던 장기간의 경기침체, 빈부격차도 그 불만을 증폭시키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런 불만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모른 척하고, 단순하게 법제의 강화와 강경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은 결코 민주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 때문에 홍콩 시민들의 저항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지금의 투쟁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무결한 것이라고 말할 순 없다. 우리는 우산혁명의 실패 이후에 왜 빈곤층은 친중으로 돌아섰고, 중산층만이 반중으로 남아있었는지, '데모시스토'처럼 이 운동을 선두에서 급진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치조직들이 갖고 있는 '홍콩내셔널리즘'의 한계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들은 다른 홍콩 좌파들과 달리, 역사적 모순이나 노동 억압에 대해서는 좀처럼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또, 우산혁명 당시 홍콩 시민들이 갖고 있던 본토 출신 중국인 노동자 및 여행객들에 대한 일정한 혐오 정서에 대해서도 더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홍콩의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는 것이 '진보'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곳곳의 지역주의 및 독립노선에 대해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 '절대권력의 억압에 대한 숭고한 저항'처럼 느껴지고, 또 전달되는 것은 어딘가 많은 걸 빼먹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대다수 사람들의 해방과도 거리가 멀다. 
그런 역사적 모순들에 대해 사고하지 않으면, 실패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에서 좌우 막론하고, 홍콩 시민에 대한 연대의 마음이 하나의 목소리로 뭉개지는 것은 이것이 '순수한 저항'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역사와 정세에 대해 별로 엄밀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시아 식민지배의 원죄를 안고 있는 영국, 미국 등 서구 강대국들의 위선이 역겹다. 지금의 역사적 모순은 그것에서부터 시작됐고, 우리는 그것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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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과 홍콩에서 150키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곳 광저우의 평화로움, 즉 이 거대한 단절은,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또 바깥에 계신 분들은 중국의 야만적인 언론 통제와 공안 통치 때문이라고 아주 쉽게 답변하시겠지만, 제가 보기엔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가상역사소설을 써 보면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만일 부산(홍콩)과, 제주도(대만)가 광복 후 여전히 일본 통치령으로 남았다 (부산과 제주도 시민 여러분께 제 무례한 상상에 대해 미리 사과를 드립니다). 아니, 제주도는 나중에 
우여 곡절끝에 별도의 독립국가가 됐는데 한반도의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엔 여전히 박정희/전두환의 후예들이 이끄는 단일 독재 정부가 유지돼 왔다. 그런데, 일사분란한 국가자본주의 덕에 경제도 꽤 괜찮은 편이다. 일본이 20년전에 부산은 한반도에 돌려줘서 부산과 한반도는 일국양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령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를 누리던 부산시민들이 갈수록 한반도 독재정권의 압력 때문에 부담을 느끼다가, 본격적인 시위에 돌입한다. 그리고, 우리는 한반도인이 아니라 부산인이다.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돌려달라. 이런 주장을 한다면, 한반도인들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할까요 ? 부산인들이 한반도인들을 증오하면서 (한반도의 독재 정부가 아니라) 우리는 일본인들, 혹은 과거 피플파워를 보여준 필리핀인들, 혹은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자들에게 더 큰 연대의식과 공감을 느낀다. 이런 말을 한다면... 저는 한반도인이지만 (유사)자유주의자로서 (저는 자유주의를 꼭 지지하지는 않지만, 내면에 그런 기질이 고착화 돼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듯합니다. ) 그들의 판단을 존중할 겁니다 . 설사 대승적 측면에서, 혹은 역사적 맥락에서 그들의 판단이 그다지 아름답게 들리지 않아도요. 정말로 싫으면 그리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 물론 한반도의 독재정부가 그것을 허용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이고요. 사실 반도에게 외면 당해온 역사가 길었던 제주도민들이 그런 결정을 한다면, 특히나 그건 존중 받아야 하겠죠. 그런데, 지금 홍콩 사태에 흥분하시는 다른 한국인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실지.... 홍콩인들의 정당한 요구는 (권리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대상이지만, 그게 혐중 감정에서 비롯되거나, 단순히 홍콩인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주기 때문이라는 이상한 한류열광 논리, 혹은 홍콩인들의 독립요구는 압제자에 대한 피압박민의 정당한 요구다라는 맥락을 무시한 판단에서 비롯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Comments
  • Keun-Ho Rew 가상소설의 전제조건이 경제가 나쁘지는 않다는 것인데.. 그게 환율장난, 보조금 지급이나 지재권 탈취라는 반칙을 통해서 얻은 것이라는 점이 문제네요.
    • Yuik Kim ㅎㅎ 말씀하시는 내용은 미국이 IMF 당시에 한국 정부에 얘기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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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an SooHyun Kim 대중의 광범위한 저항이 일어날 때, 그 정서가 아주 깔끔한 적은 별로 없었던 거 같아요. 정당한 요구가 핵심에 있더라도 그 주변은 이런저런 혐오감정(대개 역사적 트라우마에서 비롯한 원한이나 선민의식 등등...)으로 얼룩져 있기 마련이잖아요? 한국의 민주화 운동도 지나친 혐미정서/민족주의를 동반하기도 했고.... 최근의 촛불 항쟁이나 페미니즘의 대두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보이구요. 대중운동이 티끌없이 결백하게 정당하기만 기대하는 건 무리인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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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an SooHyun Kim 그럼에도 큰 그림을 보면 그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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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uik Kim 네 맞는 말씀입니다. 우선 이 글은 한국인들의 이 사태에 대한 반응에 대한 커멘트이고요. 제가 홍콩 친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내용은 다른 글에 정리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yuik.kim/posts/10157474259868944
    • Yuik Kim 제 판단은, 홍콩인들이 공짜로 얻었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제 제대로 값을 지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그걸 제대로 지불해야지, 자꾸 에누리를 하려들거나, 흥정 대상을 잘못 고르면, 결국 거래가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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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인들의 대륙인에 대한 멸시 정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저도 막연히 짐작하고 있다가, 2015년 중국에 돌아와서 제대로 느꼈습니다. 마치 한국의 지역감정과 비슷합니다. 물론 지금은 그 멸시의 대상이 정반대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상상력을 동원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홍콩 친구들 (보통 사람들, 비즈니스 맨, 그리고 활동가)와의 다양한 교류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저는 홍콩 활동가들에게 왜 대륙, 그것도 바로 옆의 친척들인, 광둥의 활동가들과 왜 제대로 협력하지 못하는 가에 대해서 여러번 질문을 했는데, 그들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아주 소수의 홍콩 활동가들만이 이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하튼 홍콩 사람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우선 그 지독한 속물근성에서 조금은 벗어나기를 바라고요. 그 다음에 자기들이 어떻게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을지 현명한 방법을 모색했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파국이 너무 뻔히 보입니다.
    • Sean SooHyun Kim 아아.... 생각도 못 해봤던 시각이네요. 역시 유익 쌤의 풍부한 경험에서 나온 통찰이 귀중한 배움의 계기가 되네요. 홍콩인들이 그리도 강한 대륙 멸시 정서를 갖고 있었다는 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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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ungil Sohn 조금 이해가 덜 되어서요. 그러니까 형은 부산인들이 우리는 한반도인이 아니라 부산인이다 라고 말하는 것을 존중하겠다라는 말씀이신거죠?

    그들의 판단을 존중할겁니다 라는 문장에서 그들이 누군지가 잘 모르겠구요. 그들이 한반도인리라면 그들의 판단에 대해서 언급이 되어 있지가 않아서요.

    만약 한반도인의 판단에 대해서는 사실 한 유학인이 자기가 홍콩인이라고 주장하는것에 대해서 중국인들이 린치를 가하는 사건 말고는 아는게 없어서 그게 주류의 감정인지 아니면 일부 일탈행위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서 판단을 하기가 애매한 상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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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ik Kim
14 June at 22:09 ·



일단 쉐어하고,대부분 홍명교 선생 설명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내 생각을 추가하고 싶다. 홍콩 사람들 특히 지식인들이 ‘홍콩 사람’의 정체성만을 강조하면서 근본없는 “헌법이 보장한 민주주의와 자유”를 들먹이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생각한다. 홍선생 설명대로 영국 식민지하에서 그런 건 원래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산당 정부나 대륙 사람들에게는 씨알도 안먹힐 수밖에 없고 한편으로는, 자기 부정적으로 느껴져, 특히 대륙 일반인들의, 보편적인 권리에 대한 공감보다는 악플과 무플의 악순환에 빠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 홍콩인이다"라는 선언이 특히 그렇다.

그럼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홍콩과 광저우에 각각 1년반, 1년을 살아본 내 개인적인 견해는 이렇다.

광둥이 중심이 되는 중국의 화남지역은 원래 반역rebelious의 고장이다. 예전엔 남만南灣이라 불렸고 한화漢化가 된 후에도 이곳은 늘 자체적인 언어와 문화(岭南文化)를 유지해 왔다. 이 안에서도 광저우가 중심이 되는 广府,潮汕,客家문화 등 다채로운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사람들, 공통적으로 저 멀리 북쪽 아니면 동쪽에 있던 중앙 정부 간섭 싫어하고, 성실하고 실용적이며 (겉모습보다 내실을 중시) 검박하여 자기 생계는 자기 스스로 챙기고 싶어하고, 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 제1의 무역/ 상업 중심지 답게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면서도 가족 宗族 중심의 전통문화를 가장 잘 지켜왔다. 그래서 광둥이 성급으로 중국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것은 경제발전 때문에 외부인구가 몰려든 이유도 있지만, 벌금이야 때리든 말든 정부의 일가족 일자녀 정책을 콧등으로 듣고 무시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야기 - 광둥은 이런 기풍안에서 신해혁명을 전후한 시기 중국 근대 혁명의 고향으로 이름을 날렸다. 태평천국의 홍시우츄안, 그리고 이어서 캉유웨이, 량치차오, 쑨원 이 사람들이 전부 광둥인인 것이 절대 우연이 아니다. 홍콩에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희구가 있다면 진짜 뿌리는 이런 수천년, 수백년의 유서 깊은 반골 정신에 기반한 것이지, 영국 식민주의자들이 중국에 넘겨 주기 전에 선심이라도 쓰듯, 흘리고 간 그런 20년짜리 가짜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전통은, 폭압적인 중국 공산당 정부도 함부로 부정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어찌 된게 홍콩인들은 베이징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자기 선조의 고향과 친척들이 있는 광둥 지역도 멀리한다. 이게 잘 이해가 안갔는데 Jung-a Chang교수님 논문을 읽고 알게 됐다. 영국 식민 정부가, 발전하는 도시 홍콩(명)에 대비되는 거대하고 낙후된 농촌, 대륙(암)의 이미지를 오랜동안 홍콩인들의 마음 속에 심어 둔 탓에, 일반 홍콩인들에게 중국은 굳이 시진핑이나 공산당이 아니라도 오랜동안 자기와는 별 상관이 없거나 될수록 멀리하고 싶은 곳과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중국 정부가 정말로 두려워 하는 게 무엇일까 ? 내 생각엔 대륙의 보통 중국인들이 홍콩 사람들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난번 6.4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내면서, 당시 천안문에 모였던, 학생과 엘리트들의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에 대한 요구뿐 아니라, 전국 각지, 보통 인민들의 반부패, 공정한 경제적 발전의 요구를 주목한 것은 특히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런 다양하고 좋은 전통과 역사를 복기하여, 홍콩과 중국의 미래를 새롭게 견인하려 하지 않고, 지나치게 단순한 화법으로 중국에 그저 정서적인 반감이나 품은 외국인들의 어그로나 끄는 게 과연 중국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 그렇지 않아도 미국과 트럼프의 부당한 압력에 맞서, 주권을 지키자고 호소하는 중앙정부의 주장이 전례없이 중국인들을 맹목적으로 단결시키고 있다고 하는 가운데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얘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중국인이지만, 동시에 (광둥인이자) 홍콩인이다...

내 생각에는 이미 대륙과는 너무나 오랜동안 단절된 젊은이들보다는 공산화 당시에, 홍콩으로 넘어오며 대륙에 비해서도 중국문화의 전통을 상당부분 지켜왔다고 자부하던 학자와 지식인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그런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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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하신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이런 내 주장은 사실 '개벽파'적 사고 방식이다. 근데에 서구로부터 도입된 좌우 개화파가 아닌 자신의 좋은 전통이 우선 기반하고, 여기에 좌우를 막론하고 새롭게 들어온 좋은 생각들이 버무려 지는 것. 그래서 어쩌면 나는 홍콩 사람들에게 혹은 광둥인, 중국인들에게 당신들에게도 '개벽파'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 농민 운동에 관심을 갖고 친근감을 느끼는 홍콩의 활동가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느끼던 안타까움이 있다. 자신들의 활동의 정당성과 가치에 대해서 늘 바깥에서 우선 레퍼런스를 찾으려고 하는 습관이다. 그러다 보니, 주체성을 갖기가 힘들고, 만일 레퍼런스를 가져온 종주가 흔들리면, 같이 흔들리게 된다. 그들이 연대의식을 느끼는 한국의 사회운동은 어디에 뿌리를 둔 것인가 ? 역시 좌우 개화사상의 작품인가? 원톄쥔 교수는 그것을 미국 자유주의의 영향이라고 폄하하기에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항변했다. 지금은, 3.1운동을 비롯한 식민지 시대의 항일투쟁 정신, 그리고 동학, 동학 이전에 조선의 성리학과 동방의 전통 사상들, 그리고 그 사상들이 우리의 생활방식과 결합해 토착화된 어떤 정신이 있었기에 좋은 좌우 개화사상도 받아들여서, 우리만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고 얘기해 줄수 있다. 이건 내셔널리즘이 아니라, 그냥 우리안에 오랫동안 쌓여 온 것들의 자연스러운 체현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대륙을 오가는 홍콩의 활동가들의 중국에 대한 실망은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근대화를 폭력적으로 겪은 우리 동아시아인들은 삶과 생각의 여러 층위에서 단절과 연속을 모순적으로 경험한다. 내가 보는 중국인(대륙)들은 생활습관과 그 사고방식은 자연스런 전통이 우리보다 더 많이 남아있는데, 고급한 이념과 가치는, 전통안에 화석화되어 신통치 않은 경우가 많다. 중국화된 공산주의 외에는 다른 사상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겉으로 드러나는 생활습관은 굉장히 서구화돼 있고 이념과 지식의 세계도 그러하지만, 사람들의 잠재의식에 의해 지배되는 행동양식은 대단히 전통적이다. 오구라 교수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책을 읽으며 그 점에 대해서 더 깊이 느꼈다. 그래서, 그런 단절된 부분을 보충하고 정합성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만일 홍콩이 중국 대륙의 사상의 해방구 역할을 하고 싶다면, 결국 비슷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 우산 혁명이든, 지금의 상황이든 홍콩인들은 이제, 자신들만의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 과정이 새로운 단절을 만들기 보다는, 자신안의 좋은 가치들을 재발견하고, 그런 가치들과의 화해와 정합의 과정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홍명교
지금 이 시각 홍콩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홍콩 시민들이 겪는 억압에 대해 공분하고 연대해야 하지만, 동시에 언급되지 않고 지나치는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곤란함을 안고 있다.
오늘날 홍콩에서 벌어지는 억압은 결코 중국공산당 혹은 시진핑이 발명해낸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지금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것은 홍콩을 99년 간 식민 통치한 제국주의 영국에 의해 발명된 것이었고, 홍콩의 민중들은 오랫동안 이에 맞서서 저항했었다.
주지하다시피 홍콩은 아편전쟁 이후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홍콩에 거주하던 중국인 노동자들은 많은 차별과 학대를 당했고, 선박 노동자의 경우, 영국인 선원들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백인 선원의 20%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았다.
1922년 홍콩의 선박 노동자들이 결성한 홍콩선원노조의 파업은 불과 1년 전 결성된 중국공산당의 혁명 여정과 광둥성 지역 노동운동을 촉발시킨 역사적 저항이었다. 당시 홍콩 시민들을 가혹하게 통치하고 있던 영국 식민당국은 위력적인 파업에 한수접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투쟁은 당시 광둥성 곳곳을 분할 통치하고 있던 제국주의 열강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홍콩은 아시아 금융시장의 허브이고, 관광과 쇼핑의 도시인데다, 한때는 어떤 변종된 아시아 문화의 수도 같은 곳이었지만, 면적으로는 아주 작다. 그러니 이 도시를 일반적인 다른 '국가단위'와 비교해 완전히 독립적인 체제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제대로 된 설명은 아니다. 이곳에 도입된 극도의 고도화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외양상 많은 모순을 감춘다. 그곳에 있던 무수한 빈부격차를 감추고, 억압의 역사를 감추는 효과를 낳는다. 그러니, 영국의 식민지배 시절엔 잘 살았고 민주주의였지만, 중국 반환 이후 민주주의가 후퇴되었다는 식의 서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 식민지배 시절에 민주주의의 호혜를 입고 있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에 가깝다. 적어도 그런 거짓말을 하려면 영국 본토에 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전무했다고 말할 뻔뻔함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였다고 사기칠 뻔뻔함도 있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홍콩의 끔찍한 빈부격차를 낳은 것은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와 광둥의 전통적 자본가들의 공모였지, 중국 대륙의 통치자들은 아니었다. 60~70년대 홍콩에서 벌어진 많은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런 자본주의적 억압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그 역사적 억압의 주체는 국가자본주의의 억압자로 변이한 중국공산당 엘리트들로 치환되어버렸다. 홍콩에서 '자유'를 말한다는 것은 즉 공산당에 맞서 저항한다는 의미가 되었다. 서구의 매스미디어와 지배엘리트들이 홍콩의 투쟁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심지어 남한에서 박정희를 추앙하는 자들도 홍콩 시민들의 투쟁을 지지한다고 말하고, 오늘날 홍콩의 많은 시민들은 '영국 식민지 시절의 홍콩깃발'을 흔드는 일부 시민들과도 함께 시위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홍콩 시민들의 투쟁을 지지해야 하고, 연대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에 어떤 이름이, 어떠한 모순들이 감추어져 있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면 당연히도 설명충이 되어버리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많은 걸 감춰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국내에서는 <우산혁명>이란 이름으로 공개된, 넷플릭스에서 배급하는 <조슈아 웡>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영화는 서구 다큐멘터리 작가의 시선으로 홍콩의 우산 시위를 담고 있는데, 당연히도 많은 역사적 모순을 감추고 있다. 게다가 우산혁명이 안고 있던 정치적, 사회적, 계급적 한계 역시 모른 척 한다.
현재 중국 당국의 강경대응, 일국양제 약속이 폐기되는 것처럼 보여지는 상황은 대다수 홍콩 시민들을 불안감으로 몰아넣고 있다. 나아가 홍콩 경제가 안고 있던 장기간의 경기침체, 빈부격차도 그 불만을 증폭시키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런 불만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모른 척하고, 단순하게 법제의 강화와 강경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은 결코 민주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 때문에 홍콩 시민들의 저항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지금의 투쟁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무결한 것이라고 말할 순 없다. 우리는 우산혁명의 실패 이후에 왜 빈곤층은 친중으로 돌아섰고, 중산층만이 반중으로 남아있었는지, '데모시스토'처럼 이 운동을 선두에서 급진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치조직들이 갖고 있는 '홍콩내셔널리즘'의 한계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들은 다른 홍콩 좌파들과 달리, 역사적 모순이나 노동 억압에 대해서는 좀처럼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또, 우산혁명 당시 홍콩 시민들이 갖고 있던 본토 출신 중국인 노동자 및 여행객들에 대한 일정한 혐오 정서에 대해서도 더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홍콩의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는 것이 '진보'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곳곳의 지역주의 및 독립노선에 대해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 '절대권력의 억압에 대한 숭고한 저항'처럼 느껴지고, 또 전달되는 것은 어딘가 많은 걸 빼먹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대다수 사람들의 해방과도 거리가 멀다.
그런 역사적 모순들에 대해 사고하지 않으면, 실패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에서 좌우 막론하고, 홍콩 시민에 대한 연대의 마음이 하나의 목소리로 뭉개지는 것은 이것이 '순수한 저항'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역사와 정세에 대해 별로 엄밀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시아 식민지배의 원죄를 안고 있는 영국, 미국 등 서구 강대국들의 위선이 역겹다. 지금의 역사적 모순은 그것에서부터 시작됐고, 우리는 그것을 잊어선 안 된다.
Comments
  • 원철 확실히 이런 견해들을 보면, 제가 국제 정세에 참 까막눈이란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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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ngwook Ma 저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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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ng-a Chang 맞습니다. 매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 민주주의와 인권이 원래 당연하게 존재했던 것이 아님을 지적해야 하지만, 동시에 홍선생님 말씀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싸움에 주목하고 지지해야 하는 상황이죠. 미국이나 영국의 목소리가 결코 순수하지 않다는 점도 지적해야 하고, 미국이나 영국에 하는 호소가 가지는 문제점도 제기해야 하지만, 동시에 "고립되지 않는 싸움"이 가지는 중요성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중국에 대해서도 홍콩에 대해서도 여러 측면을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빠짐없이 전달하기는 참 쉽지 않은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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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길모 이 귀절이 와닿습니다 "역사적 모순들에 대해 사고하지 않으면, 실패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에서 좌우 막론하고, 홍콩 시민에 대한 연대의 마음이 하나의 목소리로 뭉개지는 것은 이것이 '순수한 저항'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역사와 정세에 대해 별로 엄밀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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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주영 크게 공감합니다. 반면교사의 궁리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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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an SooHyun Kim 아아 좋은 글입니다. 총체적 진실에 다가가는 길은 참 지난하군요...."자신들의 활동의 정당성과 가치에 대해서 늘 바깥에서 우선 레퍼런스를 찾으려고 하는 습관이다. 그러다 보니, 주체성을 갖기가 힘들고, 만일 레퍼런스를 가져온 종주가 흔들리면, 같이 흔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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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an SooHyun Kim 이 부분 특히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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